김학철전집4-태항산록-담배국

더좋은래일 | 2024.04.23 18:16:14 댓글: 2 조회: 101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3484


소설


담배국


1

<<전쟁할 때>>라는 별명을 가진 문정삼이는 조선의용군 제X지대에서 소문난 느리배기이며 또 게으름뱅이였다. 그는 1일 16시간 수면제의 제창자였다. 그가 입을 열어서 말을 하는것은 막부득이한, 정 할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였는데 그 말하는 속도는 흡사 태엽이 거의다 풀린 축음기와도 같았다.

군관학교시절의 일이다. 일요일날 외출을 하기전에 복장검사를 하고있던 소대장-직일관이 그의 때가 다닥다닥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도대체 얼굴은 씻는가 안 씻는가? 아주 안 씻고 사는거 아니야?>>

한즉

<<천만에 말씀. 달마다 빼놓잖고 꼭꼭 씻는걸요.>>

하고 그는 태연스레 대답을 하는것이였다.

군사교련의 강도가 너무 높아서 받아내기가 힘이 드니까 그는 학교병원에 입원을 좀 해볼 생각으로(입원만 하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뒹굴어도 되므로) 꾀병을 앓았다가 군의에게 간파되여 피마주기름 한 고뿌를 선자리에서 들내게 되는 바람에 혼쌀을 먹고 병이 전쾌했다고 즉석에 선언을 한적도 있었다.

그에게 영예로운 칭호-<<전쟁할 때>>가 수여된 력사를 더듬어보면 다음과 같다.

역시 군관학교시절. 야외연습에서 분대단위의 공격이 시행되였는데 그날의 과목은 <<산병반군(散兵半群)의 형성>>이였다. 교실에서 교관이 한번, 교련장에서 중대장이 한번,그리고 소대장이 되풀이해서 또 한번 떠먹듯이 설명해들리기를

<<적전 200메터 거리에까지 박근하면 각 분대는 대형을 이내 산병반군으로 변환하고 기관총조와 보총조가 엇갈아 엄호하며 전진하다가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고 그것이 작렬하는 틈을 타서 적진에 돌입하여 백인전을 벌인다.>>

연습이 무사히 끝이 나서 전 중대 3개 소대를 강화대형 즉 한쪽이 트인 입구자형으로 정렬시켜놓고 중대장이 강평을 하게 되였다. 한데, 이것은 잘되였으나 그것은 잘못되였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해서는 아니된다... 하는 식으로 분석, 비평, 훈시를 하던 중대장이 별안간

<<제2소대 전렬... 끝으로 세번째!>>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적을 받은것은 바로 문정삼이가 점령하고있는 위치였다.

불시에 기습을 당한 그 위치의 점유자는 깜짝 놀라서

<<아, 녜?...>>

하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때, 대답을 할만한가?>>

<<? ...>>

<<산병반군은 어떤 때 쓰는거지?>>

중대장이 강평을 하면서도 문정삼이가 한눈을 팔며, 강평을 귀전으로 흘려들으며 무슨 딴 생각을 하고있는것을 보아내였던것이다.

<<...? ...>>

총을 잡고 차렷자세를 한 문정삼이는 입을 함봉하고 두눈으로 중대장을 주시한채 장승같이 서있기만 하였다.

<<어째 대답이 없지?>>

전 중대의 시선을 해살같이 한몸에 받으며 문제의 주인공은 초인적인 속도로 기억의 창고를 아래우로 발깍 다 뒤집어보았으나 그 가장 절박하고 가장 요긴한 산병반군이란 물건은 종시 나타나주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벌써 여러달전부터, 찍어서 말하면 일본공군 폭격기편대의 남경공습에 크게 자극을 받은 그때로부터, 그는 장갑항공기를 발명하려고 연구에 골몰하고있었던것이다. 한데 불행하게도 99퍼센트 완성이 된 지난밤부터 그 괘씸한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온갖 정신을 다 거기에 집중시키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지난 몇달 동안의 고심참담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느냐 안 돌아가느냐 하는 요긴목인 동시에 또 발전하는 현대과학의 정수를 모아서 립체화한, 항일전쟁의 승패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생각되였기 때문이다.

7.9밀리 강철판으로 장갑된 그 항공기는 어떠한 고사포탄이나 속사기관포에도 끄떡 안하는 공중의 요새였다. 그리고 그 비행속도와 항송력과 적재량은 단연 전세계에서의 그 류례를 볼수 없는 최첨단의것이였다. 하기에 바로 그 점이 그의 발명의 열정을 맹렬히 불러일으킨 원인이였던것이다. 그 완성을 목전에 두고 그는 거의 침식을 잊다싶이 하였다. 그러던것이 이런 난관에 부닥치다니-하늘도 무심하지-그는 눈앞이 다 캄캄하였다.

한데 그 난관이란 무슨 별다른게 아니였다. 그 완전무결한 초특급공중요새의 완성품이 자체의 중량이 원인이 되여 단 한센치도 땅에서 뜰수가 없는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뜰수가 있을가?)

이 한가지 일만을 골똘히 생각하다나니 그는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보이지를 않고 귀로 무엇을 들어도 들리지를 않을 그런 정도였다. 하니 그따위 산병반군쯤이야 애당초에 문제도 될리가 없었다.

<<어째서 대답이 없지? 말이 들리지를 않는가?>>

중대장이 다시한번 이렇게 채근을 하자 이 수산의 발명가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듯 눈을 내리깔고 느릿느릿 대답을 하였다.

<<산병반군 말입니까? 그건... 전쟁할 때 쓰는겁니다.>>

이 엉뚱한 대답을 듣고 중대장은 웃음보가 터지려는것을 겨우 참으며 짐짓 률기를 하고 다시 묻기를

<<밥 먹을 때 쓰는건 아니구?>>

한즉, 문정삼이는 내리깔았던 눈을 바로 뜨며 정색을 하고

<<천만에 말씀. 틀림없이 전쟁할 때 쓰는겁니다.>>

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이 명답을 듣자 전 중대가 일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정제하게 줄지어섰던 대렬이 다 꿈틀거릴 지경으로

장갑항공기의 연구는 여기에 이르러 땅뜀 한번 못해보고 그만 책장을 덮고말았다. 문정삼이는 여러달 밀리고 쌓인 수면부족과 과로가 일시에 덮치는 그날 밤부터 아주 몸져누워버렸다.


2


<<전쟁할 때>> 문정삼이가 조선의용군 제X지대에서 치중 즉 수송을 맡아보게 된 리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눈을 감지 못한다는 특이한 생리적인 결함을 가지고있었다. 두짝 눈을 다 감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한짝 눈만을 감지 못하는것이다. 눈을 감으려면 두짝 눈이 다 감기고 눈을 뜨려면 두짝 눈이 다 뜨이는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는 별로 불편한것이 없는 결함이였다. 무론 불구자는 아니였다. 하나 그는 혁명을 하는 사람이였다. 더구나 전쟁을 하는 사람이였다. 아무때나 수시로 총을 쏘아야 하는 사람이였다. 한데 총이란 그저 탄약을 재워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것이 아니다. 멀든가깝든간에, 크든작든간에... 목표를 들이맞혀야 한다. 총을 쏘는 의의가 바로 거기에 있는것이다. 한데 목표에 명중을 시키려면 총을 겨누어야 한다. 겨누려면 한쪽 눈을 감아야 한다. 해도 두눈을 다 감아서는 아니된다. 물론 두눈을 다 떠도 아니된다. 이 점에서, 가장 요긴한 이 점에서, 그는 불행하게도 그 불구 아닌 불구로 하여 적임자로는 되지를 못하였다. 하나 군인이란 반드시 총을 쏘아야만 되는것이 아니다. 총을 못 쏘아도 얼마든지 군인으로 될수는 있다. 례컨대 치중따위, 찍어서 말하면 말몰이따위. 이런건 소경만 아니면 누구나 다할수 있는것이다.

문정삼이는 타고난 천성으로 하여 모든 동작이 매우 느리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열성을 다하여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려고 애를 썼다. 하긴 때로는 엄청난 연착사고를 빚어내서 전대의 행동계획을 뒤죽박죽을 반드는 일이 있긴 하였지만.

어느 별빛 하나 보이지 않은 흐린 날씨의 침침칠야의 일이다. 이날 전대는 야행군에다 강행군까지 겹친 긴급하고도 먼 장거리 행군을 하게 되였다. 하여 문정삼이는 군량 실은 마바리를 몰고 대렬의 꽁무니를 청처짐하게 따라갔다. 산길에 접어들면서부터 마바리의 걸음이 더욱 더디여져서 처음에는 10메터, 20메터...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던것이 나중에는 아주 동떨어져서 대오는 대오대로 저는 저대로 따로따로 길을 가게 되였다. 샐녘에 그는 방광에서 보내오는 방수신호를 받았다. 하여 고삐를 말잔등에 뿌려 얹어서 말을 앞세워놓고 저는 혼자 뒤에 떨어져서 잠간 볼일을 보았다. 연후에 슬렁슬렁 걸어서 그뒤를 따라갔다. 이때였다. 앞서가던 말이 험한 비탈길에서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며 한쪽으로 휘뚝하는것 같더니 이어 <<히힝!>> 소리를 지르며 걷잡을 새 없이 낭떠리지아래로 굴러떨어져내려갔다. 크게 놀란 <<전쟁할 때>>가 달아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밀가루포대를 거의 만부하로 짊은 말은 그리 높지 않은 낭아래 좁은 골짜기에 벌렁 나자빠져서 네다리를 버둥거리고있었다. 워낙 직무에 충실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탈을 타고 내려가서 가엾은 짐승에게 서슴없이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젖먹은 힘을 다하여 북두끈을 끄르고 가까스로 짐들을 다 푼 뒤에 말을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하나 사태는 자못 심각하였다. 말이 걷지를 못하는것이다.

<<허, 이를 어쩐다? -야단이났군!>>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해도 도와줄 사람은 나타나주지를 않았다. 그는 길 없는 길을 더듬어서 혹시라도 근처에 인가가 있나 찾아보기로 하였다. 골안에는 아침안개가 자옥해졌다. 하나 온갖 군데를 다 찾아보아도 인가는 그림자도 없었다. 설령 인가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 란리판에 피난을 아니 가고 집에 그대로 남아있을리 없다. 그렇다면 빈집, 빈집은 이런 경우에 아무러한 도움도 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였다. 해도 역시 인간의 그림자는 나타나주지를 않았다.

<<허, 이거 정말 야단났군!>>

그는 한숨이 또 절로 나왔다. 락심천만. 락심을 하니까 갑자기 맥이 빠졌다. 맥이 빠지니까 또 갑자기 시장기가 났다. 그러자 불현듯 밤새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는것이 생각났다. 하여 그는 일단 마바리를 부려놓은데로 돌아가 요기를 하고나서 다시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가 발길을 돌이켜 한마장이나 걸었을가... 홀제 어디서 <<매->> 하는 연약한 애기의 울음소리와 같은 물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건 틀림없는 물소다.>>

그가 급히 걸음을 멈추며 귀를 기울이니 또 <<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문정삼이를 살리는 모양이다!>>

하고 <<전쟁할 때>>는 너무도 기쁜김에 제 손바닥으로 제 볼기짝을 철썩 때렸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그 소리나는쪽으로 쫓아갔다.

회색털빛과 서양낫같이 휘인 커다란 두뿔, 틀림없는 물소였다. 코에 꿰인 고삐를 질질 끌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문정삼이는 뒤로 돌아가서 땅바닥에 끌리는 그 고삐를 발로 꽉 밟았다. 란리판에 주인을 잃은, 순하고 어리석은 그 부림짐승은 낯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러한 저항도 할 생각을 않고 그저 순순히 끌려왔다. <<전쟁할 때>>가 말잔등에서 부린, 한바리 잔뜩 되는 태짐을 그 물소등에 갈아실어놓고 대충 요기를 하고났을 때는 이미 해가 두어발이나 잘 올라왔었다.

<<내가 이거 너무 늦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는

<<이 가엾는 녀석(다리 부러진 말)은 어떻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애원하는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말을 한동안 물끄러미 마주보고 섰다가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

<<용서해라. 내게는 지금 너를 구원할 힘이 없다.>>

하고 사과를 하였다.

문정삼이는 늦어진 길을 조이려고 연신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나 논밭갈이업에서 운송업으로, 제 맘이 내켜서 하는것도 아니게 급전환을 한 그 부림짐승은, 묵은 직업의식에 사로잡혀서 시종일관하게 쟁기를 끌던 때와 똑같은 보조로-견실하고도 완만한 보조로-걸음을 떼여놓는것이였다.

한낮때가 거의 되여 산길이 끝이 나면서 평지길이 시작되였다. 문정삼이는 채찍질을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는것을 알고는 빨리 갈 생각은 아예 단념을 해버렸다.

(늦든 어쨌든 목적지까지 가는것만은 대견하지.)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고삐를 소잔등에 뿌려얹고 슬렁슬렁 그 뒤를 따라갔다. 두서없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길섶의 풀잎을 훑어소 손바닥에 올려놓고 비벼서는 버리고, 또 훑어서 비벼버리고 하면서... 한데 별안간 앞서가던 물소란 놈이 급한 걸음으로 길에서 벗어나더니 엉뚱한 곳을 내닫는것이였다. 문정삼이가

<<아, 저놈의 소가!>>

하고 놀라는 동안에 벌써 그 회색의 부림짐승은 맑게 개인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송이가 선명하게 비친 못속으로 <<철거덕, 첨벙... 첨벙, 철거덕...>> 뛰여들어가버렸다. 눈과 귀와 코 그리고 밀가루포대의 일부만을 물우에 내놓고 그놈의 덩치 큰 몸뚱이는 가뭇없이 다 물속에 잠겨버렸다. 그리고는 그 큰 눈을 끔벅끔벅하며 멀거니 못가에 서있는 새 주인의 감주 먹은 고양이상을 바라보는 것이였다.

그 동물의 그러한 습성을 모르는 문정삼이가 아니였다. 허나 그동안 줄곧 말만을 부려온 까닭에 그 동물과 물 사이에 얽힌 고무줄 같은 당길심을 깜박 잊고 소홀히 대하였던것이다. 발을 굴러도, 욕을 퍼부어도, 돌맹이질을 해도 다 막무가내-소용이 없었다. 물속에 들어엎드려서 버티기내기를 하는 그 물소놈은 그런것쯤은 데시큰하게도 여기지 않았다. 한식경이 좋이 지나서, 밀가루가 물을 흠씬 먹었을즈음에야 비로소 자기의 생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킨 동물은 자진하여 소란스러운 물소리를 내며 뭍으로 올라왔다. 이리하여 락오를 한 치중병의 부림소는 한동안 운동장에다 긋는것과 같은 흰 줄을 길우에다 끝이 없이 길게 그으며 가게 되였다.

치중대에서의 문정삼이의 력사는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되였다.

그날 밤 지대장의 명령은 <<문정삼을 취사대에 조동한다>> 였다. 그것은 취사대에서 문정삼이를 필요로 해서가 아니였다. 다만 치중대에서 그를 몹시 주체궂어해서였다.


3

전대의 장거리행군은 문정삼이 개인의 부서이동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이 계속되였다. 이튿날밤 초경머리에 부대가 설영을 하게 된 곳은 어느 한길옆 텅 빈 마을이였다. 주민들은 란리를 피하느라고 있는 살림을 모두다 메고 지고 끌고 밀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가버렸었다.

<<문정삼, 어디 가서 국 끓일 푸성귀를 얼른 좀 구해오라구.>>

일이 너무 바빠서 팽이처럼 팽글팽글 돌아가던 취사위원이, 무었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멀거니 서있기만 하는 문정삼이를 보자 이렇게 말을 이르며 커다란 마대 하나를 집어던져주었다.

<<푸성귀를?>>

<<그래. 닥치는대로 아무 밭에나 들어가 캐오거나 뜯어오면 돼. 지금은 임자고 나발이고 다 없어.>>

<<어떤 푸성귀를?>>

<<아무거나 다 좋아. 다다익선이야. 많이만 구해오라구.>>

문정삼이는 마대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캄캄한 밤. 그는 회중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임자 없는 채마밭,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채마밭을 찾아나섰다. 한참을 이렇게 더듬어가노라니까 회중전등이 내비치는 불빛에 피뜩 초록색으로 뒤덮인 남새밭 같은것이 드러났다.

<<이키, 살판났구나!>>

그는 다짜고짜 밭으로 뛰여들었다. 먹음직스러운 푸성귀포기를 한손으로 덥썩 거머쥐고 한손으로는 회중전등을 비추며 힘을 들여서 쑥 잡아뽑았다. 뿌리에 흙이 묻어올라왔다. 그는 제 즈꾸신은 발등에다 대고 그 흙묻은 뿌리를 탁탁 쳤다. 그리고는 회중전등을 허리에 찬 잡낭속에 쑤셔넣은 뒤 마대아가리를 벌리고 그 속에다 흙을 털어버린 푸성귀를 집어넣었다. 그는 그 뽑아서는 털어넣고 또 뽑아서는 털어넣고 하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자꾸 되풀이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허리가 뻑적지근해지며 지근지근 아파났다. 하여 허리를 펴고 주먹쥔 손을 뒤로 돌려서 아픈데를 자끈자끈 두드렸다. 별 하나 반짝이지 않는 밤하늘에다 길게 숨을 한번 몰아쉬였다. 또 한동안 일손을 다그친 뒤에 두손으로 마대를 한번 들어보니 꽤 묵직하다. 실수없이 하느라고 회중전등을 꺼내서 비추어보니 상당히 만족할만한 상태다.

<<이만하면... 근사하겠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그는 그 불룩해진 마대를 이영차 어깨에 둘러메였다. 그리고 논틀밭틀로 걸어가며 속으로 궁리하기를

<<내게는 치중보다 취사가 적임인가본데...>>

이어 또

<<치중에서는 실패를 했으니까 이번엔 명예회복을 톡톡히 좀 해야지.>>

이렇게 타산하고 그는 어둠속에서 만족한 웃음을 혼자 싱긋 웃었다.

<<이거 좀 보라구, 한마대 이렇게 꼴딱 뽑아왔다니까.>>

메고 온 푸성귀마대를 취사위원앞에다 털썩 내려놓으며 문정삼이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속으로는

<<내 솜씨가 어떠만해?>>

하면서.

그러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취사위원은 문정삼이의 대단한 공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 푸성귀... 됐어 그럼. 얼른 썰어 씻어서 저 가마솥에 쏟아 넣고 불을 지피라구. -자, 이건... 소금!>>

하고 소금자루를 집어던져주고는 부리나케 저쪽으로 가버렸다.

문정삼이는 흥이 빠져서 맥이 났으나 할일없이 취사위원이 시키는대로 대충 썰고 또 대충 씻어서 행군용가마솥안에 쏟아넣고 물을 부었다. 연후에 눈대중으로 소금을 두고 휘휘 저은 다음 뚜껑을 눌러덮고 불을 지폈다. 국이 끓을 동안 그는 내처 불앞에 앉아서 꼬박꼬박 졸았다. 기분 좋게 꿈나라려행을 하는중에 불시에 누가 등뒤에서

<<이봐, 어떻게 됐어, 국은?>>

하고 어깨를 탁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 뭐? 국? 아, 됐어, 다됐어!>>

<<그럼 어서 퍼야지! 다들 배가 고파 죽겠다는데...>>

<<퍼야지, 물론...>>

<<자, 여기 있어, 국통.>>

<<아, 거기 놓으라구.>>

잠이 덜 깨여서 흐리터분한 문정삼이가 솥뚜껑을 열어젖히니 훅 솟구치는 뜨거운 김과 함께 이상한 무슨 역한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해도 그는 허기증이 난 전우들을 생각하고 여념없이 부지런히 국을 퍼담았다. 한통 또 한통... 국통들은 즉시 식사 당번들이 각 분대로 날라갔다.

시장끝에 밤참 쇰직한 늦은 저녁식사가 시작이 되였다. 문정삼이도 맨나중에 제 몫의 국 한그릇을 양재기에 퍼담아가지고 훌훌 불며 막 한모금 마시려는 참이였다. 훌제 각 분대에서

<<아!>>

<<이게 뭐야?>>

<<에퉤!>>

소동이 일어났다.

문정삼이는 손에 들었던 국그릇을 도로 내려놓고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걸 사람이 먹으라고 갖다주는거야?>>

하고 투덜대는 소리.

<<취사위원 어디 갔어?>>

하고 시비를 붙어보려는 소리.

<<잠간만...>>

하는 사정하는 소리.

<<도대체 어찌 된 셈판이야?>>

하고 게먹는 소리.

<<잠간만... 내 가서 물어보고 올게.>>

하고 소인을 개여올리는 소리.

해도 어찌된 영문을 모르는 문정삼이는 그저 멀거니 앉아있기만 하였다. 저하고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것으로 알고. 취사위원이 쫓아왔다.

<<이봐, 문정삼! 그 국...>>

<<국? 국이 어째?>>

하고 되물으며 문정삼이는 제 국양재기와 취사위원의 얼굴을 반반씩 갈라보았다.

<<도대체 맛은 봤나 안 봤나?>>

<<무슨? 국맛을?>>

<<그래여.>>

<<아니.>>

<<그럼 빨리 맛을 봐!>>

<<어째, 뭐가 잘못됐을가봐?...>>

말을 하며 국양재기를 입에 갖다대고 한모금 죽 들이마신 문정삼이는 대번에

<<으악!>>

하고 국그릇을 떨어뜨리고... 입안의 국물을 게워내느라고 왝왝하였다. -그것은 담배였다. 아니 담배국이였다!

그날 밤 지대장의 명령은 <<문정삼을 련락원으로 조동한다>>였다. 그것은 려락원이 부족해서가 아니였다. 단지 취사대에서 문정삼이라면 모두 도리머리를 흔들기때문이였다.

문정삼이가 취사대에서 근무한 력사는 1주야 하고 2시간-도합 26시간이였다. 하여 이튿날 전대가 다시 행군길에 오르면서부터 일대 결심을 내린 련락원 문정삼이의 눈부신 설치의 대활약은 시작되는것이였다.


4

수마(睡魔), 이것을 이겨내는 장사는 없다. 적의 철조망밑에 쓰러져서 코를 골며... 꿈까지 꾸어가며... 깊은 잠이 들었다가 날이 밝아서 오도가도 못하는 쩔쩔매는 일이 전장에서는 없지 않다.

문정삼이도 장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따라서 그도 역시 수마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약점-이라느니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만 말해서는 듣는 사람에게 명확한 인식을 주기 어려우므로 이 글의 서두에서 이미 서술한것을 다시한번 되풀이하기로 한다.

<<<전쟁할 때>라는 별명을 가진 문정삼이는 조선의용군 제X지대에서 소문난 느리배기이며 또 게으름뱅이였다. 그는 1일 16시간 수면제의 제창자였다.>>

이번 행군도중에서만도 치중대에서 한번, 취사대에서 또 한번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저지른 과실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또 자극을 받은 문정삼이는 비상한 결심으로 련락원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려고 뼈물었다. 명예회복, 설치, 이 두 단어가 잠시도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긴장하였다. 시위 당긴 활처럼 탱탱하였다. 하나 그도 인간이였다.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그렇게 긴장해있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과도의 긴장끝에 필연적으로 올것이 이 련락원에게도 바침내 드디여 오고야말았다. 전비행군중에 중요한 련락임무를 맡은 문정삼이가 꼬박꼬박 졸기 시작을 한것이다.

역시 캄캄한 밤이였다. 전쟁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잘 알고있듯이 행군중의 수면 즉 걸으면서 자고 자면서 걷는것... 그것을 지금 문정삼이는 하고있는것이였다. 해도 이건 몽유병자의 그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몽유병자는 교묘하게-의식을 하든 안하든-장애물을 피한다. 뿐만아니라 곡예단의 줄타기 같은 아슬아슬한 모험까지도 식은 죽 먹기로 해내뜨린다. 하나 그와는 달리 행군중의 수면이란 위험천만한것이다. 낭떠러지라든가 개울이라든가 혹은 지뢰라든가 하는 따위에 잘못 부닥뜨리기만 하면 잠을 깨기도전에 목숨을 잃거나 분신쇄골 가루가 나버린다.

과로에서 오는 이러한 참극은 방지하기가 어렵다. 유일한 예방대책이라면 전쟁을 안하는것이다. 하나 전쟁은 계급사회가 가지고있는 골머리 아픈 홍역이다. 이 인류사회의 참극을 근절하는 방법은 정의의 혁명적전쟁으로 반동적략탈전쟁을 극복하는것이다. 전쟁은 전쟁으로 압도해야 한다. 과거 수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눈물로써 전쟁방화자들의 량심에 그 죄악을 호소해왔다. 그들의 자비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해도 전쟁은 그치지를 않았다. 그치지 않을뿐아니라 점점 더 잔혹하게 잔인하게 더 크게 빈번하게 늘어만 갔다. 문정삼이가 종사하는 전쟁은 그 참혹한 전쟁을 근절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 즉 정의의 혁명적전쟁이였다. 그는 인류의 불행에 대하여 뜨거운 동정의 눈물을 뿌리는 혁명전사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또 인간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졸았다. 졸면서 걷고 걸으면서 졸았다. 한동안 그렇게 본능적으로 타성적으로 흔들흔들 걸으면서 졸았다. 한동안 그렇게 본능적으로 타성적으로 흔들흔들 걸어가다가 별안간 무엇엔가에 탁 부닥뜨려서

<<앗!>>

하고 놀라서 뒤로 벌렁 자빠졌다.

잠이 깨여 눈을 번쩍 떠보니 천만다행하게도 그것은 낭떠러지도 개울도 또 지뢰도 다 아니였다. 그가 부닥뜨린것은 담장이였다. 어떤 그럴듯한 사당을 에워싼 높도낮도 않은 돌각담이였다.

살가죽이 벗겨진것 같은 이마와 얼얼한 무릎을 번갈아 만지며 그는 한숨을 쉬였다.

<<젠장, 옹이에 마디로군!>>

어디가 어딘지 알수가 있어야지.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새 별들이 총총히 나있었다.

<<어, 그렇지...>>

하고 그는 중얼중얼하였다.

<<저게 북두칠성이니까... 조기서 다섯배사... 옳지 저게 틀림없는 북극성이로구나.>>

그는 똑바로 북극성을 향하고 서서 두팔을 쩍 벌렸다.

<<오른쪽이 동, 왼쪽이 서... 뒤가 남... 그러니까...>>

하고 그는 왼쪽으로 45도각 돌아서서

<<이게 서북... 그렇지, 이 방향으로 곧장 가면 되렷다.>>

하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를 않았다. 별빛아래 바라보니 앞길을 가로막아선것은 나무가 빼곡이 들어앉은 시커먼 숲이다.

<<아이구, 저런데를 어떻게 지나간다?>>

생각을 하니 그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머리칼이 곤두서는것을 느꼈다. 괴담에 나오는 마귀와 그 마귀가 산다는 소굴이 련상되였다. 바람이 불었다. 숲이 술렁거렸다. 귀신, 도깨비가 <<쉬!>>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오는것 같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숲속을 꿰고 나갈 일이 곧 저승만 하였다.

문정삼이는 허리에 찬 권총과 수류탄을 만져보았다. 해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송곳하고 딱총을 들고 곰사냥을 가는것만큼이나 자신이 없었다.

<<어떻건다?>>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갈가? 말가?>>

해도 그는 곧 어렵지 않게 자기를 납득시킬 구실을 찾아내였다.

<<날이 밝은 연후에 행동을 하는게 온당하지. 공연히 어두운데 천방지축 날뛰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더욱 랑패지.>>

하여 결심을 해택하기를

<<밝기를 기다리자!>>

결심을 채택하자 그는 긴장이 풀린탓인지 걷잡을수없이 또 졸음이 왔다.

<<에라, 여기서... 이 특등호텔에서 일박하기로 하자.>>

하고 그는 혼자 싱긋 웃고 문을 더듬어서 돌각담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덩실 높은 사당집의 돌층계를 색시걸음으로 조심조심 더듬어 올라갔다. 사당안에를 들어서보니 한쪽 구석에 벼짚이 두둑이 깔려있었다.

<<허, 내가 마수걸이 손님은 아니구나.>>

앞서간 군대인가? 아니면... 거지일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사람이 자고 간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는 드러눕기가 무섭게 가진바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계속되는 긴장과 간난한 도보행군에 몸과 마음이 다 피로할대로 피로한것도 사실이였다. 그는 샐녘까지 세상 모르고 단숨에 내리잤다. 동창이 훤이 밝아올 때

<<엉?>>

하고 눈을 번쩍 떴다. 두런두런하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것 같아서였다. 그는 본능적동작으로 권총의 자루부터 거머쥐였다. 그리고 벼짚자리우에 납작 배를 붙이고 엎드려서 귀를 도사렸다. 귀에 설은 말소리가 분명히 돌층계밑에서 들려왔다. 그는 용기를 내여 살금살금 포복전진을 하였다. 문짝 없는 문어귀까지 그렇게 가서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아래의 동정을 살피였다.

<<아!>>

하고 튀여나오는 경악의 웨침을 그는 겨우 도로 삼켰다. 가슴에서는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돌층계밑 마당에서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알루미니움남비에다 무엇을 끓이고있는것은 두놈의 적병이였다. 2대1-조우전의 막은 열렸다.

그 두놈은 서로 마주 대하고 앉아서 한놈은 나무가지를 꺾어서 불을 지피고 또 한놈은 이따금 남비뚜껑을 열고 저가락으로 휘휘 젓기도 하고 또 꾹꾹 찔러보기도 하였다. 문정삼이는 직감적으로 판단하기를

<<오. 네놈들도 길을 잃었구나!>>

하고는 가장 거센체

<<까짓거 두놈쯤이야!>>

해도 가슴에서는 여전히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심호흡하는 흉내를 한번 내였다(포복한 자세로 해야 하므로). 그리고 허리에 찬 잉크병형수류탄을 떼여서 뚜껑을 탈아열었다. 이런것도 모르고 모닥불앞에 마주앉은 두 적병놈은 태평으로 지껄거리고있었다.

문정삼이는 수류탄의 도화선을 잡아뽑았다. 사이다의 병마개를 땄을 때와도 같은 식식 식식 소리가 났다. 그는 속으로

<<하나아, 두울, 세엣...>>천천히 세고나서 그 폭발을 반초 앞둔 수류탄을 모닥불을 겨냥하고 집어던졌다. 수류탄은 면바로 남비뚜껑에 가 떨어지는 순간 폭발을 하였다. 남비고 국이고 나무가지고... 그리고 이쪽 놈이고 저쪽 놈이고 다 일순간에 박산이 나버렸다. 문정삼이는 너무도 흥분하여 벌떡 뛰여일어나 만세를 부르려 하였다. 하나 이때 별안간 돌각담밖에서 생각지 않은 왜병 한놈이 또 뛰여들어왔다. 느닷없는 폭발성에 놀라서 허둥지둥 달아들어온 그놈은 눈앞에 벌어진 의외의 참상을 보고 무슨 영문을 몰라서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동무병정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기가 막혀서 얼이 빠진 모양이였다. 이것을 본 문정삼이는 살그머니 권총을 빼들었다. 하나 다음 순간, 그의 머리속에 피뜩 떠오른것은 자기의 형편없는 사격명중률이였다. 하여 그는 얼른 권총을 도로 넣었다. 그리고 잽싸게 수류탄을 떼내였다. 이번에도 또 조금전과 마찬가지의 순서를 밟아서 파렬직전의 폭발물을 그 세번째 적병놈의 발밑에 안겨주었다.

이라하여 <<전쟁할 때>> 문정삼이는 적병 세놈을 여유작작하게 료정내였다. 해도 만일을 념려해서 아까처럼 후닥닥 뛰여일어날 생각을 아니하고 그대로 엎드린채 주위의 동정을 살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또 15분이 지나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옳다, 됐다!>>

그는 비로소 안심을 하고 일어나 조심조심 돌층계를 내려왔다. 가로세로 나둥그러진 3구의 피투성이시체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만 발길을 담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서자

<<헉!>>

하고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에는 적군치중대에서 부리는 카키색즈꾸로 턴넬형의 풍을 친 쌍두마차 한대가 서있었던것이다. 그는 추측하기를

(필시 세 녀석이 마차를 몰고 오다가 길을 잃고 배들이 고프니까 두 녀석이 내려서 때를 끓이고 한 녀석은 남아서 마차를 지켰던게지. 있음즉한 일이야.)

그는 갑자기 담이 커져서 마차에 올라가

(도대체 무얼 실었나?) 점검을 해보았다.

권연이 2상자, 술이 3상자, 통졸임이 5상자, 그외에도 여러가지... 모두가 군대의 식료품이다.

<<내가 간밤에 꿈을 잘 꾸었나보다. 이런 호박이 떨어지는걸 보니.>>

그는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또 한손으로는 적병이 두고 간 채찍을 집어들어 말궁둥이를 신바람나게 휘둘러 때렸다. 마차가 달리기 시작하였다. 숲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덜커덩거리며 제법 빠른 속도로 서북간을 향하여.


5

<<보고! 지대장동지, 식사준비가 다됐습니다!>>

<<오.>>

지대장은 피우던 담배의 불을 얼른 꺼버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취사위원의 뒤를 따라나왔다.

숙영지의 점심식사, 기실은 아침식사였다. 밤새도록 행군을 하고나서 해가 뜬 연후에 설영을 한 부대는 한낮때가 거의 되여서야 비로소 이날의 처음 식사를 하게 되였다. 하나 오랜 전란에 황페할대로 황페해진 이 지방에서는 식량난이 우심하여 부식물의 공급은 백판이였다. 그래서 항일하는 각 부대들은 례외없이 부식물의 기근상태에 놓여있었다.

반찬이라고는 맨소금밖에 없는 밥-이는 전장에서 먹는것외에는 아무 락도 없는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한데 조선의용군 제X지대의 오늘의 아침 겸 점심 식사가 바로 그 맨소금밥이였다. 식사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자 대원들은 일시에 우 하고 그러나 질서정연하게 모여들었다.

<<동지들, 오늘 우리 취사원들은 전력을 다해서 우리의 급양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지방의 형편이 너무나 마련 없는탓으로 유감스럽게도...>>

지대장의 말을 그 이상 더 듣지 않아도 대원들은 모두 눈앞에 놓여있는 돌소금그릇을 보고 충분히 리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혁명군인은 마땅히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지대장이 말을 잇는데 여기저기 에헴 하는 기침소리가 났다. -그만하셔도 인젠 다 알았습니다 하는 뜻일것이다. 지대장은 싱긋 웃고

<<그러나 이 소금에는 인체에 절대로 필요한...>>

하고 소금의 영양가치를 강조하려 하였다. 바로 이때다.

<<보고, 지대장동지!>>

이렇게 소리치며 마당으로 뛰여들어온것은 보초장.

<<<전쟁할 때>가...>>

<<?>>

<<아닙니다. 저 저 문정삼이가... 돌아왔습니다!>>

<<문정삼이가?>>

<<예, 그렇습니다.>>

<<어데?>>

보초장이 대답을 올릴 사이도 없이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덜커덩거리는 수레바퀴소리와 날카로운 채찍소리를 앞세우고 카키색즈꾸로 턴넬형의 풍을 친 일본군치중대의 쌍두마차 한대가 들이 닥쳤다. 아가리에 게거품을 문 말대가리 둘이 지대장의 턱밑에 와 멎어서며 더운 김을 내뿜었다. 지대장이하 전체 대원이 다 놀라서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보고를 하려던 보초장은 제가 설명을 하는것보다는 직접 눈으로들 보는게 더 효과적이고 또 간단명료하겠기에 그만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났다.

마차에서 사람이 내렸다. 그것은 문정삼<<전쟁할 때>>인것을 알자 사람들은 또 한번 놀랐다. 문정삼이는 천천히 걸어서 지대장앞에까지 오자 법식대로 거수경례를 하며

<<보고, 지대장동지! 련락원 문정삼 방금 도착했습니다.>> 라고 했다.

<<오.>>

<<전리품을 피로하겠습니다.>>

하고 그는 손을 들어 마차를 가리킨 뒤 다시 부동의 자세로 돌아와서

<<식료품 도합 열두상자. 그중...>>

하다가 전우들앞에 놓여있는 돌소금그릇을 눈결에 보고는 목청을 돋우어

<<통졸임... 소고기통졸임 다섯상자.>>

하고 웨쳤다. 하나 그 순간 담배국으로 실패를 하던 일이 피뜩 머리에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권연 두상자... 이건 지금 말고... 있다 나중에 식사후에...>>

하고 군더더기 주를 달았다.

<<아하하하하!>>

<<허허허허...>>

<<하, 저 친구...>>

<<담배국!>>

<<사람 웃긴다. -아이구 배야!>>

<<저 자식이 우릴 염소따위로 잘못 아는게 아니야?>>

<<일등 희극배우다!>>

소금밥의 우울을 날려버리려는듯이 모든 사람이 일시에 유쾌한 웃음보를 터뜨렸다.

소고기통졸임에, 마사무네(正宗)술에, 은사(恩赐)권연에 또 무엇무엇에... 졸다가 락오를 한 덕분에 문정삼이는 대단한 공로를 세운것이다. 그는 보고를 계속하였다.

<<마차 한대, 말 두필... 그런데 지대장동지...>>

<<?>>

<<이놈들은...>>

하고 그는 손을 들어, 앞발로 땅바닥을 득득 긁는 말을 가리키며

<<물을 보고도... 련못인지 늪인지 두군데나 지나왔는데도... 뛰여들념을 안합니다.>>

<<물? 련못?>>

<<예, 그 저...>>

대원들 틈에서 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하하하하!>>

<<어허허허...>>

<<저 작자가 물소한테 골탕을 먹어도 단단히 먹은 모양이지.>>

<<히히히히...>>

<<안 뛰여드는거야 당연하지... 말인데!>>

<<저 머저리.>>

문정삼이는 보고를 계속하였다.

<<지대장동지, 저는... 저는...>>

<<?>>

<<조 졸려서... 죽을것 같습니다.>>


1946년 서울



부언(附言): 이 작품은 해방 직후의 서울에서 좌익작가들에 의하여 결성된 문학가동맹의 기관지 <<문학>> 창간호에 실린것으로서 후에 즉 1974년에 일본에서 일어로 번역 출판한 <<현대조선문학선>>에 수록된것을 원문이 잃어졌으므로 작자가 다시 우리 말로 옮겨놓은것이다. 원문에서는 당시 당지의 철자법대로 <<하였습니다>>가 <<하였읍니다>>로, <<되였다>>가 <<되었다>>로, 또 <<련락원>>이 <<연락원>>으로, <<률기>>가 <<율기>>따위로 적혔었다.

1982년 연길

추천 (3) 선물 (0명)
IP: ♡.245.♡.77
타니201310 (♡.163.♡.118) - 2024/04/27 15:46:46

행군중의 수면이란 위험천만한것이다. 낭떠러지라든가 개울이라든가 혹은 지뢰라든가 하는 따위에 잘못 부닥뜨리기만 하면 잠을 깨기도전에 목숨을 잃거나 분신쇄골 가루가 나버린다.

맨소금밥 ...!!!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더좋은래일 (♡.208.♡.247) - 2024/04/27 18:36:29

매일매일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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