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0 행운의 여신 II

3학년2반 | 2021.12.01 08:11:49 댓글: 0 조회: 77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28931
행운의 여신 II

귀가한 옥영진 나으리는 국광과 옥항을 불렀다. 그런다음 그들을 데리고간
곳은 옥영진 나으리의 서재였다. 옥영진 나으리의 서재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단촐한 꾸밈새에 여러 가지 무기들과 무구(武具)들이 놓여있다. 그 한 구석에
는 몇가지 새로이 가져다 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2벌의 갑옷과 그에따른 여러
가지 부속 장비들... 또 새로운 무기들이 몇 개 있었다. 그 앞으로 그들을 인
도하며 옥영진 나으리가 말했다.

"좀 있으면 몽고와의 전쟁이 벌어질거야. 그때 나는 너희들을 데리고 가고자
한다. 둘 다 아마 전쟁터는 처음일테니.. 노부가 몇가지 준비해온 것이 있는
데 한벌 마음에 드는걸로 골라보게나."

옥항은 신품의 흑색 갑주앞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며 한벌의
갑주에 살며시 손을 댔다. 그러자 옥영진 나으리가 그 모양을 보더니 말했다.

"그 갑주는 국광의 것이고 네것은 저것이다."

한눈에도 옥영진 나으리가 지목한 갑주는 국광의 것보다도 더욱 두터운 강철
로 만들어져 있었다. 슬며시 한번 만져본 다음 옥항이 항의했다.

"이건 너무 무겁다구요. 이걸 입고 어떻게 싸워요?"

"국광에게는 이미 물어본 다음 구해온게 저거다. 국광은 원체 무공이 높아 실
지 갑옷 따위가 별 필요없는 정도지만 너는 달라. 이정도가 아니면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지."

그때 국광이 이것저것을 보더니 직경 1척 정도의 방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뭔가요?"

"저건 손에 장착하는 작은 방패인 '착완순(着腕盾)'이라는 거야. 한번 사용해
보겠나?"

그러더니 옥영진 나으리는 직접 국광의 왼손에 착완순을 붙여줬다. 일반의 방
패와는 달리 이건 넓은 가죽끈으로 단단히 팔에 고정해서 사용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착완순은 폭이 1척이라 손목부터 시작해서 팔꿈지를 약간 벗어나는
지점까지 부착되어 손목을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착완순을
부착한 상태에서도 활을 쏘거나 검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그 크기가 작기에 방어할 수 있는 폭이 한정되므로 일반 어림군에서는 사용되
지 못하고 무공이 뛰어난 흑풍단의 무사들에게만 주어지는 독특한 방어병기
다. 손목까지가 자유롭기에 화살이 만약 비오듯 쏟아지면 왼손으로 다시 말에
매어놓은 넓은 방패를 잡아서 사용할 수도 있으므로 무사들에게 아주 호평을
받는 몇 안되는 장비중의하나였다.

국광은 착완순을 왼손으로 퉁퉁 쳐본 다음 말했다.

"과연 뒤쪽에 부드러운 안감을 대서 충격이 아주 적게 전달되는군요."

그런다음 옆에 놓여있는 5척길이의 마상용(馬上用) 장도(長刀)를 들고는 긴
자루를 두손으로 잡고는 휘둘러본 다음 말했다.

"도를 사용하는데도 거의 착완순이 방해되지 않는군요. 아주 잘 만들어진 방
팹니다."

"그렇지. 하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면적을 크게 만들 수 없어서 동작이 느린
일반 사병들은 사용할 수도 없는 장비야. 그래 그 장도(長刀)는 마음에 드나?
항아는 창을 사용하지만 자네는 오직 검밖에 못쓰니까 마상용 장도를 가져왔
네."

"아주 좋군요. 무게도 알맞습니다. 좋군요..."

국광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저쪽 구석에 놓여있는 괴이한 물건을 보고
물었다. 그건 착완순 처럼 손에 붙이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착완순처럼 둥근
방패가 붙은게 아니라 삼각형의 긴 쇠막대기가 붙어있다는 점이 달랐다. 아마
모양만으로 봤을 때 손에 장치하여 사용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모양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떤 것은 길이가 반척 정도인 것부터 어떤 것은 1척인
것도 있었다. 어떤 건 1척3촌 정도의 길이인 것도있었는데 그건 끝부분이 유
연하게 휘어져 올라가(스키처럼)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들며 물었다.

"이건 뭡니까?"

"그건 검지판(劍止版;Sword Stopper)이라는 거야. 이렇게 쓰지."

그러면서 옥영진 나으리는 그걸 오른손에 감으면서 말했다.

"착완순은 왼손에 장착하지만 착완순 자체가 넓은 물건이라 검을 사용하면 자
연 속도가 떨어지지. 그래서 만들어진게 이 검지판이야. 이건 검을 쓰는 오른
손에 장착하고 상대방 검이나 창을 막는거지."

국광이 검지판을 이리저리 만져보는 걸 보며 옥영진 나으리가 덧붙였다.

"그 위의 홈들은 상대방 검이 옆으로 흐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검지판 위에는
요철의 문양을 만들어 놓은거야."

"아.. 예.."

"자네처럼 무공이 강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무공이 그렇게 강하지 못한
사람은 마상(馬上)에서의 전투시에 갑자기 날아오는 적의 검을 피하거나 막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그때 이 검지판을 이용하지. 실지 마상이 아니고 그냥
벌어지는 전투라면 단순히 뒤로 뛰어서 물러설 수도 있지만 말이란 놈이 그렇
게 주인의 마음에 맞게 잘 안움직여 준단 말이야. 그래서 만든거야."

"이건 왜 이렇게 생겼죠?"

예의 이상하게 생긴 검지판을 보고 말했다.

"직접 장착해보면 알 수 있지."

국광의 손에 끼워주자 국광도 그 이유를 금새 알 수 있었다.

"과연...."

이 검지판은 너무 길게 나와 손목 이상 튀어나오면 손의 움직임에 방해를 받
기 때문에 일부러 손목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완만하게 밖으로 튀어나가 손목
의 움직임에 방해를 주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
다. 그리고 검지판은 검의 흐름을 방지하기 위해 요철의 문양을 새긴 것 외에
도 삼각형 쇠막대의 곳곳에 우아한 문양을 음양각으로 새겨넣어 품위를 덧붙
이고 있었다.

"노부도 이것덕분에 못숨을 구한 적이 있어. 이 검지판과 착완순은 수 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만들어낸 흑풍단만이 가지고 있는 방어장비지. 보통 많은 이
민족들을 정벌하면서 1대 1의 대결은 꿈에도 못꿔... 대부분이 최소한 3배, 4
배 이상의 적들을 상대하기에 난전(亂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비
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지. 마음에 드는 것들을 준비해두게나. 아마 늦어도 5
일 이내에는 출동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국광은 약간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이런걸 꼭 해야만 합니까?"

"자네가 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모두들 하니까 자네만 안하면 좀 이상하
게들 생각할꺼야."

그러자 국광은 잠시 생각하더니 1척정도의 짧은 검지판 2개를 집어든 다음 말
했다.

"그러면 저는 이 두개만 하죠. 그래도 걸리적 거리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좋을대로 하게나. 하지만 항아 너는 이거.. 이거... 이것들 모두 착용해라.
이건 할애비로서 명령이야."

* * *

4일 후 황제로부터 무력정벌에 대한 윤허가 떨어졌다. 송의 주력부대는 요와
의 국경선으로 급속도로 이동하여 재배치되기 시작했으며 찬황흑풍단은 요와
의 전쟁 중에 있을지도 모를 몽고와의 변란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서 몽고와
국경지대를 소탕하는 임무를 띄고는 북상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흑풍단은 요
를 자극하지 않기위해 요와의 전쟁 후에 몽고와 전쟁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
았기에 그 이동속도는 느렸다. 사실상 중경으로부터 몽고와의 국경은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요와의 국경은 멀었으므로 핵심장수들이 모두 중경에서 급히
출발한 다음 자신의 부대로 돌아가는데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
문이다.

찬황흑풍단은 모든 장병이 검은색 갑주를 착용한다. 그리고 방패도 마찬가지
로 검은색, 말에 입히는 마갑(馬鉀)도 검은색.... 흑풍단이라는 이름에 맞게
검은색 일색이다. 흑풍단의 군기(軍旗)마저도 검은색이다. 검은 바탕에 금실
로 수놓은 皇(황)자가 흑풍단의 가장 호화로운 색깔이었다. 흑풍단은 천여명
씩 10개 부대로 나뉘어지고 그 천인대(千人隊)는 다시 10개의 백인대(百人隊)
로 나뉘고 백인대는 또다시 10개의 십인대(十人隊)로 나뉜다. 각 부대에는 장
(長)이 있어 자신보다 높은 장(長)의 명령을 전달받은 즉시 하부의 장(長)들
에게 지시하여 빠른 행동력을 보인다. 이건찬황흑풍단 만이 가진 독특한 진
용으로 상부의 명령이 신속히 하부까지 전달되도록 만들어진 장치였다. 흑풍
단처럼 소수정예인 부대에서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그 하부 병력들이 신속히
움직여 기동력으로 대부대를 제압하는 것이 효과적이었기에 만들어진 자구책
이었다.

10개의 천인대 중 4개는 전군(前軍), 4개는 중군(中軍), 2개는 후군(後軍)으
로 나뉘에 진격하면서 후군은 휘하에 배속된 어림군 1만명과 각종 보급물자와
2만여필의 말을 수송하는 수송대의 호위 임무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흑풍단
은 기병대였기에 만일을 대비하여 각자 3필씩의 전마(戰馬)를 지니고 있었고
그 말들의 보호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전군(前軍)은 그중 1개의 천인대를
십인대 100개로 잘라 부채살 모양의 정찰망을 쳐 불의의 기습에 대비한 정찰
진용을 훈련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옥영진 나으리의 말대로 찬황흑
풍단은 기습을 받지 않는 한 쉽사리 전멸할 부대가 아니었기에 그 휘하의 장
수들도 기습을 받지 않도록 최대의 노력을 다했다.

시간은 충분했으므로 옥영진 나으리는 일종의 기동훈련도 겸해서 이동했는데
그중 옥영진 나으리의 골치를 썩이는 부대가 사육(四六) 백인대(百人隊)였다.
흑풍단에서는 각 부대들을 부르는 일종의 방편으로 숫자를 사용한다. 각 부대
들은 아주 잘 잘라져 있기 때문에 그 위쪽부터 숫자로 붙여서 나가면 하나의
부대 이름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칠칠(七七) 백인대라고 한다면 제칠천인
대(第七千人隊) 소속의 제칠백인대(第七百人隊)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십인
대를 말하려면 칠칠팔 십인대라고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소부대까지 전투중에도 손쉽게 그 부대를 지칭할 수 있기에 이런 약식 명명법
은 꽤 인기리에 사용되고 있었다.

옥영진 나으리의 골치인 사육 백인대는 개개인의 실력은 상당히 뛰어나지만
그 구성원들이 고관의 자제거나 아니면 약간 무림에서 명성을 받았던가 해서
대체적으로 말안듣는 녀석들만 모아놓은 부대다. 거기에 다루기 힘든 계집애
들까지 25명이나 속해있었다. 원체가 무공의 자질로 뽑는 것이 흑풍단이다 보
니 무공이 대단히 뛰어났기에 여자라고 안받을 도리가 없었던 것인데.... 실
지 받고보니 이게 제멋대로인 계집들이 몇 있어서 후회막급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대장자리는 비워뒀다가 국광에게
맏겼던 것인데 역시나... 그 또한 통제가 안되고 있었다. 허기야 국광 자체도
통제불능의 인간이었으니... 그렇다고 다시 백인대장에서 잘라버리기도 뭣하
고 해서... 속만 끓이고 있는 것이다.

일단의 기동훈련이 끝난 다음 국광에게 10명의 십인대장들이 몰려왔다. 그들
중의 3명은 여자였는데 이렇게 갑주를 입혀놓고 보니 껴입은 것이 많아서 그
런지 사낸지 계집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모두들 거의 돼지만큼 뚱뚱한
상태로 숨을 쉴때마다 비늘갑옷이 약간씩 부풀어올랐다가는 다시 내려가고 있
었다. 계집들은 역시 계집인지라 약간의 모양을 내긴 하지만 그래도 검에 장
식한 수실을 좀 화려한 걸 사용한다거나 아니면 검지판의 문양이 화려하거
나... 또는 착완순의 문양이 화려하다... 하지만 그건 모두 다 검은색에서 음
양각의 문양이나 차이가 날뿐... 또 사내녀석들 중에서도 화려한 걸 좋아하는
인간들도 많으니...

상대를 알아낼 재주라고는 갑옷에 그려진 각 천인대를 표시하는 숫자 즉, 국
광이 소속된 천인대는 사(四), 제육백인대를 나타내는 六(육) 그리고 각 십인
대를 나타내는 숫자를 보고 상대를 알 수밖에 없다. 흑풍단에서는 그 문양이
나 숫자가 적게 그려진 사람이 가장 끗발이 높은 사람이었으니... 단주나 부
단주 두명은 아무런 표시도 없는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각 천인대장들
은 모두들 한자리 숫자만 써진 갑주를... 백인대장들은 문양 뒤에 두자리 숫
자... 최고 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십인대의 대원들은 무려 4자리 숫자의 번
호를 달고 있었다.

솔직히 국광의 수하로 있는 자들로서는 국광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전술기
동에 대해 상세히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무공이 높아 보이지도 않
는다. 송에서는 무장들은 검(劍)은 단전 옆, 그러니까 완전히 옆구리는 아니
고 그렇다고 정면도 아닌 조금 앞쪽에 착용한다. 하지만 이녀석은 건방지게도
야만족들처럼 검을 엉덩이부분에 걸릴 정도로 뒤로 달고있었다. 거기에 모두
들 하고 다니는 착완순은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검지판 2개만 덩그러니
착용한데다가 갑주를 입은 꼬라지로 보아하니 엄심갑이나 기타 보호구는 입지
도 않고 얄팍한 경갑주(輕鉀 )만 '체면상 입어준다' 하듯 덩그라니 입고있는
꼴을 보니 묵직한 철갑들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그들로서는 뱃속이 뒤틀리지
않을 수 없다. 이자식은 거의 옥영진 나으리의 후광으로 들어와서 대장노릇을
하는 모양인에 사실 자신들도 믿는 구석들이 있으니 그런것에 주눅들 사람들
도 아닌지라 한판하러 온 것이다.

그들 중에서 선두에 선 인물이 말ㅎ다. 사육삼(四六三)이라는 숫자로 보아 제
삼십인대의 대장인 냉비화녀(冷飛花女) 마화(馬花)임이 분명했다. 실지 목소
리도 여자의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로 보아 국광의 짐작이 정확했다는
걸 말해줬다. 마화는 북동원수부 부원수인 마룡 대장군의 손녀로서 대단한 무
공을 지닌 여걸이었으며 외호와는 달리 성격이 급하면서도 호탕했다. 만약 국
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사육 백인대의 대장이 될것이 확실시되는 여걸이었기
에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서생같은 국광을 보자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올라 십
인대장들을 이끌고 항의하러 온 것이다.

"이봐! 신참. 너 전투교본(戰鬪敎本)을 읽어보기나 한거야? 흑살천마진(黑殺
千馬陣)을 아예 모르고 있잖아?"

"흠... 이제부터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니 그런 잔소리라면 집어치우고 해산
해."

"뭐라고? 이게 정말... 단장 나으리의 후광을 믿고 까부는거냐!"

그러면서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검 손잡이 끝에 붙은 붉은 수실 끝에는 비
취로된 작은 꽃송이가 매달려있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외호가 만들어진 기원을
알려주고 있었다. 검은 대단히 좋은 보검으로 그녀가 검을 뽑자마자 싸늘한
예기가 뻗어나왔다. 모두들 흠칫하는 표정들이었으나 정작 국광은 무표정한
눈으로 마화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쭈... 내가 찌르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네가 찌르고 안찌르고는 상관없고 너희 모두가 다 덤벼도 나를 어떻게 할 수
는 없어. 모두들 닥치고 돌아가!"

싸늘한 대답을 남긴다음 국광이 몸을 돌린다음 돌아가려고 하자 분기탱천한
마화가 검을 찔러들어왔다. 거기에 그의 비웃는 듯한... 깔보는 듯한 대답을
듣자 안그래도 자신이 한가닥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머지 십인대장들도 말
릴 생각은 접어두고 분기탱천하여 둘의 격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국광은 마화가 찔러들어오는 검을 살짝 왼편으로 몸을틀어 피하면서 신경질나
서 너무 쎄게 찌른김에 깊이 따라들어온 마화의 투구 뒷통수부분을 손목까지
올라와있는 왼손의 검지판을 이용해서 후려쳤다.

퍽!

엄청난 타격을 입은 마화는 거의 1장여나 날아가서 저쪽에 철퍼덕 뻗은 후 곧
이어 튕겨오르듯 일어섰다. 아무리 검지판을 이용한 일격이었다고 해도 투구
를 때린 것이기에 그녀에게 큰 타격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심한 충격으로
뒷부분이 찌그러든 그녀의 투구는 날아가버렸고 안면보호대(顔面保護待) 윗부
분으로 오똑한 콧날의 윗부분과 아름답지만 타고난 성깔을 나타내는 쌍심지
돋은 두 눈... 그리고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흥!... 태극권(太極拳)? 제법 한가닥 하는 재주가 있었군. 검을 뽑아랏!"

엄청난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건조한 대답뿐...

"알아서 뽑을테니 좋을대로.."

"흥! 적수공권이라고 봐줄거라고 생각..."

그와 동시에 국광의 왼쪽가슴팍을 향해 섬전과 같은 일초가 날아왔다. 국광이
왼손의 검지판을 이용해 막는 그 순간 검은 방향을 바꿔 원을 그리며 허리 아
랫부분을 쓸어들어왔다.

"제법 괜찮군...."

그와 동시에 국광은 왼손을 내려 검지판으로 막는 순간 그대로 오른발을 마화
의 아랫배를 향해 날렸다. 마화는 그걸 느끼고 급히 몸을 왼편으로 틀었으나
국광은 피하는 마화에게 두 번째 발차기를 연속으로 날렸다.

퍽!

단전 부위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마화의 몸이 붕 날아 다시 1장여를 날아오
르더니 퍽하고 떨어졌다. 두터운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각법에 의한 충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으나 갑옷의 무게를 더해서 떨어져 내린 충격은 대단한 것이
었다. 그러나 마화에게 있어서 그 충격은 그렇게 큰게 아니었다. 자신의 자존
심이 패대기쳐진 것이 더욱 억울했던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마화의 몸에서는
짙은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화가 검을 꽉 잡고 자세를 가다듬는 순간 국광의 태도가 달라졌다. 국광은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그 검은 짙은 묵빛의 특이한 검으로 장식없는
수수한 검집이 형편없이 싸구려처럼 보여 모두들 주의하지 않았으나 얼핏봐도
그의 검은 대단한 보검으로 보였다. 천천히 검을 뽑아 그냥 앞으로 내밀며 대
강의 수비자세를 잡았는데도 벌써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검이 없을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엉성하게 보이는데도 거의 빈틈이라고는 찾기 힘들었기 때
문이다. 아니... 어쩐 일인지 압도되어 빈틈이 보여도 들어갈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네가 살기(殺氣)를 품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그와 동시에 엉성하게 앞으로 뽑아낸 묵빛 검에서는 더욱 강렬하게 묵빛이 흘
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던 십인대장들 중 한명의 입에서 힘빠진 듯한
목소리가 새나왔다.

"어기충검(御氣充劍)...."

살기를 내뿜고 필살의 검법을 펼치기 위해 자세를 잡았던 마화의 검은 어느새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실력으로 저정도의 고수
를 상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아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어기충검(御氣充劍)이라면 신검합일(身劍合一)은 통과했고 어검술(御
劍術)에는 못미치는 절정고수들이 펼치는 절예다. 초식에 의존하지 않고 저렇
게 검을 든 상태에서 어기충검을 구현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거의 화경
(化境)에 도달했다고 봐야한다. 어기충검술은 화경에 이른 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고급검법이었던 것이다. 마화가 살기를 없애자 국광은 아무 일 없었
다는 듯이 검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싸울 의사가 없으면 해산해라."

돌아서서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는 국광을 경악한 눈으로 보며... 하지만 힘없
는 목소리로 마화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너는 누구냐...."

국광이 아무 말 없이 멀어져가자 째지는 음성으로 고성을 질렀다.

"누구냔 말이다!"

하지만 국광은 멀어져버렸고 멍청히 남은 마화에게 주위에 남은 십인대장들이
모여들어 어깨를 툭툭치면서 위로했다.

"저정도의 고수라면 져도 챙피할 거 없어..."

"맞아요.. 저정도 고수라면 무림을 10년간 해매고 다녀도 만나기 힘들어요..
비무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구요."

"실망하지 말아요.."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마화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정도의 고수가 무슨 할 일이 없어서 흑풍단에 들어온거지? 겨우 장
군(將軍)이란 칭호를 받고싶어서? 무림에 나가면 부귀(富貴)와 공명(功名)이
함께할텐데... 겨우 그것도 백인대장으로.... 도저히 나는 믿을 수 없어...'

마화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니.. 믿지 못하겠어. 저녀석이 누군지 단장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러자 옆의 십인대장이 말했다.

"미쳤냐? 대장군이 너를 무슨 할 일이 없어서 만나준다는 거야?"

"내 성격에는 안맞지만 할아버지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물어봐야겠어."

"휴... 어쩔 수 없군... 모두들 같이가자. 그러면 잘하면 만나주실거야."

십인대장들의 요청을 옥영진 나으리는 물리치고 싶었지만 그들의 배후에 대단
한 인물들이 많았기에 만나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례를 올리는 십인대장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둘려보며 옥영진 나으리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마화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육 백인대장은 도대체 누굽니까?"

그러자 옥영진 나으리는 이해가 간다는 눈초리로 마화의 덕지덕지 흙먼지가
붙은 갑옷의 아래위를 지긋이 훑어보더니 나직히 말했다.

"이미 한판 해보고 알았을텐데 뭘 물어보나?"

"하지만 소장(小長)은 알아야겠습니다. 왜 그런 고수가 여기 있는지..."

그러자 빙긋이 웃으면서 옥영진 나으리가 말했다.

"나에게 빚이 있다면 이해하겠느냐?"

"빚이요?"

"그렇지... 그는 너희들도 보았듯이 무림인이다. 하지만 개인의 무공만 강할
뿐... 집단전에는 별 경험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러니 너희들이 그를 잘 이
끌어주어라."

잠시 멍청하게 있던 마화가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저정도의 고수가 대장군께 빚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그와 동시에 마화의 귀에는 전음이 들려왔다.

<그는 지금보다 더 대단한 고수다.>

마화는 경악했다.

"예?"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정도나 강하다는 말이야?'

<그는 어쩐 일인지 모르나 대단히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본좌의 아들에
게 발견되었다. 그덕분에 목숨을 건졌지. 하지만 모든 기억은 잊어버린 상
태... 그래서 근래에 다시 무공을 익혀 저정도까지 올라간거다. 하지만 본좌
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가진바 모든 실력을 다 발휘한다고는 볼 수 없
어. 그리고 전음으로 네게 말해주는 이유는 그의 상처를 검사한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의견이 국광은 암습을 당했다는... 그것도 대단히 가까운 상대에
게...>

마화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전음으로 반문했다.

<대단히 가까운상대라구요?>

<그렇다. 너같으면 친밀하지 않은 상대에게 네 검을 맏기고 등을 보이겠냐?
그의 상처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상대를 모르는만큼 이 사실을 절대로
외부에 유출시키지 마라. 알겠느냐?>

마화는 포권을 하며 전음으로 말했다.

<목숨을 걸고...>

모두들 옥영진 나으리의 막사에서 나온 후 그들은 초반에 진행된 옥영진 나으
리와의 전음을 이용한 대화에 대단한 관심을 나타냈다.

"언니는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어낸 거에요?"

"응..."

"그래 대장군께서 뭐래?"

"말할수 없어. 안그랬으면 전음으로 말할 필요가 없쟎아? 하지만 이건 단언할
수 있어. 우리가 만난 대장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

"어째... 우리가 이번 원정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말처럼 들리
는데?"

"그래... 어쩌면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다가온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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