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으겸 판타지 소설 요녀의복수 제2편

제주소설가 | 2023.06.20 18:17:45 댓글: 0 조회: 249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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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으겸 소설

요녀의 복수

본편 제 1편 침투

맴 맴 매
~~엠 맴..........

찌르르 찌르 찌르르...

8월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찾은 계곡......

차가운 계곡물이 밝은 태양에 반사되어 오색영롱한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동민은 가족들을 데리고 계곡 바로 앞에 넙적한 돌을 바닥에 깔고 모래를 그위에 덮어 평평하게 만든 다음 텐트를 쳤다.

"아빠 생리대 사오는 걸 깜빡했어!"

귀염둥이 딸 지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마도 아빠에게 생리대 이야기를 꺼내기가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알았다! 아빠가 요 아래 계촌마을 가서 사오마! 놀구있어라!"

"자기야! 어항도 하나 사와! 요기 송사리가 많네!"

아내는 들뜬 마음으로 계곡물속에 송사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알았어! 잠시 놀고 있어! 얼른 요 아래 계촌마을 가서 사 올게!"

동민은 올해 16세의 귀염둥이 딸 지수와 39살 아내 성미를 남겨두고 승용차를 몰고 계곡 아래로 향했다.

계곡의 비포장도로라 흙먼지도 날리고 무척 덜컹거리고 있었다.

"젠장! 얼른 지프차를 사야지. 이거야 원! 어디 피서라도 다니겠나!"

동민은 투덜거리며 덜컹거리는 계곡 길을 거의 벗어나고 있었다.

"! 이런 오지에도 피서 오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네!"

동민은 개인택시 한 대가 계곡을 올라오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혼자 가족과 지내기는 너무 외진 계곡이라 심심했는데 피서객이 오는 것을 보고 잘됐다 싶었다.

"! 인천택시잖아! 같은 동네군! 반갑다!"

동민은 개인택시의 길을 비켜주며 한 쪽 옆으로 차를 세웠다.

“.......!”

"뭐야! 남자들만 넷이네!"

동민은 금방 반가운 마음이 사라졌다

가족단위로 놀러오는 피서객이 아니라 반갑지 않아서다.

"저것들 술 먹고 시끄럽게 노래나 부르고 지랄하는 거 아닐까!"

동민은 계곡의 아내와 딸이 걱정되어 급하게 승용차를 몰고 아랫마을로 향했다.

계촌.

몇 년 전만해도 사람들도 많이 살고 학교도 중학교까지 있던 마을이지만 이젠 초등학교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30여명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오지가 되어 버린 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5일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조금은 큰 농협 하나로마트도 있었다.

오늘이 5일장이 열리는 날인 모양이다 시골 노인네들이 제법 많이 오가며 장사꾼도 여럿이 모여 있었다.

동민은 계곡의 아내와 딸 걱정 때문에 이것저것 구경할 여유도 없이 급히 하나로마트에 들려 생리대와 철물점에 들려 어항하나를 사고 바로 계곡으로 향했다.

"벌써 30분이 지났네"

동민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한 듯 중얼거렸다.

동민은 평소 느긋한 성격은 어디가고 무척 서두르고 있었다.

왠지 불길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계곡의 아내와 딸한테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

계곡이 바라보이는 급한 커브길에서 동민은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마주 오는 1톤 트럭이 바로 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급히 핸들을 돌렸지만 늦었다.

“.......!”

미미한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승용차 백미러가 나가고 1톤 트럭 방향지시등만 깨진.

"아저씨! 차를 어떻게 운전하는 거래 유?"

1톤 트럭 운전수는 젊은 청년이었다.

"좀 급해서....... 미안해요.......!"

동민이 중앙선을 넘은 것이었다.

"별로 큰 사고는 아니니깐 깜빡이 등 값만 물어내유"

청년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동민은 얼른 지갑에서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 청년에게 주었다.

"여기선 이거 고치려면 50리는 나가야해유! 3만원은 주셔야......!"

청년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동민은 다시 2만원을 더 주었다.

"너무 많아유!"

청년이 다시 1만원을 손에 들고 동민에게 내밀었다.

"! 이거 고맙습니다! 미안하구요!"

동민은 다시 만원을 받아 지갑에 넣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운전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유!"

청년은 그 말을 남기고 트럭을 몰고 사라졌다.

"........이런! 벌써 1시간이 지났다!"

동민은 얼른 승용차를 몰고 계곡으로 향했다.

"!"

계곡을 오르던 동민의 시야에 개인택시가 보였다.

"벌써 가는 모양이네!"

개인택시는 계곡을 내려오고 있었다.

".......!"

동민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걱정했던 네 명의 남자들이 개인택시를 타고 동민의 승용차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인택시에 탄 남자들은 동민을 힐긋 힐긋 보며 뭔가 떠들고 있었다.

"짜슥들! 뭐라고 떠드는 거야! 생긴 건 꼭 제비족 같이 생겨 가지고 흐흐......."

동민은 승용차를 세우고 계곡 아래로 사라지는 택시를 한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에잉. 이럴 줄 알았으면 5일장 구경이나 하고 먹을 것이라도 사 올 걸."

동민은 걱정거리가 사라지자 다시 느긋하게 승용차를 몰고 계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수야!"

"성미 어디 있어?"

잠시 후 동민은 미친 듯 계곡을 뛰어다니며 아내와 딸을 부르고 있었다.

텐트는 다 부서지고 아내와 딸의 옷은 찢어진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아내와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흥건한 피.

동민의 눈에 보이는 붉은 피.

텐트에서 계곡 위쪽의 숲속이었다.

아내의 속옷과 겉옷이 흩어져 있고 검붉은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으나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보!"

동민은 다시 숲속을 헤치며 아내를 찾았다.

"....... 지수야!"

아내의 옷과 피가 발견된 바로 위쪽 숲에 딸 지수의 옷들이 찢겨져있고 피도 흥건히 고여 있었다.

". 이놈들!"

역시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뾰족하고 길쭉한 머리통 만 한 돌이 피범벅이 된 채 놓여있었다.

"아까 그놈들이다!"

동민은 개인택시에 타고 가던 네 명의 남자들이 저지른 일이라 생각했다.

"이놈들이 트렁크에 아내와 지수를 죽여서 싣고 갔을 거야!"

동민은 급히 112로 전화를 걸며 승용차를 몰고 계곡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개인택시를 붙잡으려는 것이다.

3년 후.

동민은 승용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덥군!" 젠장! 에어컨까지 고장 나고 지랄이야!"

에어컨도 고장 난 승용차를 타고 가자니 온 몸에 땀띠가 날 지경이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문막인가. 제기랄 고속도로가 막혀서 국도로 왔더니 여기도 마찬가지군!"

동민이 투덜거릴 만도 했다.

높은 고갯길 굽이굽이에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푸르릉. 푸릉.

갑자기 승용차 시동이 꺼져 다시 걸리지 않았다.

"제길 차까지 갈 길을 막네. 당신과 딸 만나러 가는 길이 순탄치 않군! 해마다 이지랄이니 얼른 지프차를 사야지 이거야."

"무슨 일입니까?"

뒤쪽 차의 운전수가 내려 동민에게 다가와 물었다.

앞차들은 벌써 저 많큼 갔는데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해서 온 모양이다.

"차가 고장 났네요. 미안해서."

동수는 쑥스러운 듯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잠시 만요. 한쪽으로 차를 밀어보죠!"

뒤쪽 차량 운전수는 뒤쪽에 여러 차량들 사람들을 불러 동민의 차를 밀기 시작했다.

동민의 차는 도로 갓길로 옮겨졌다.

"에구 어쩌나! 그럼 수고하세요!"

모두들 한마디씩 하며 자기네 차량을 몰고 떠나기 시작했다.

"젠장! 틀렸네!"

동민이 아무리 차량을 고치려고 해도 다시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지는데.

"아무 차나 붙잡아 타고 문막까지라도 가야겠다!"

동민은 아직도 길 게 늘어서 있는 승용차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빈자리가 있는 차량이 있나 살피려는 것이다.

.........!

동민의 눈에 운전수 혼자 있는 차량이 보였다.

서너 대 뒤에 서 있는 검은색 무쏘였다.

동민은 어슬렁어슬렁 무쏘 승용차에 다가갔다.

"....... 혹시 문막까지 가시면?"

동민이 무쏘 승용차 운전수에게 말을 건넸다.

"! 차가 고장 나셨군요? 타시죠! 문막으로 지나갈 거니깐!"

흰색 티셔츠를 입고 머리엔 무스를 발라 말끔하게 빗어 넘긴 잘생긴 40대 남자였다.

.........!

어디서 본 듯하다.

동민은 그렇게 느끼며 그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어서 타시죠? 차들 움직이네요!"

40대 무쏘 운전수가 말했다.

왠지 딱딱한 말투였다.

"........"

동민은 얼른 운전수 옆자리에 올라탔다.

"어디까지 가시는데? ! 문막까지라 하셨죠!"

40대 남자가 겸연쩍게 웃었다.

"가긴 평창 쪽으로 가는데 우선 문막 가서 버스라도 타려고요!"

동민이 얼른 대답했다.

혹시라도 같은 방향이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 같은 방향이시네요! 괜찮으시면 그냥 이차로 같이 가시죠? 저도 혼자 쓸쓸했는데......!"

40대 남자가 무척 반갑다는 듯 말했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감사합니다!"

동민이 얼른 대답하면서 감사의 인사까지 했다.

"! 그 대신 저녁은 댁이 사시는 겁니다."

40대 남자가 오른손을 휘휘 저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아 물론이죠! 저녁은 뭐 드시겠어요?"

동민이 물었다.

"저야 안흥찐빵이면 됩니다. 차가 밀려서 저녁시간까지 안흥을 갈 수나 있을 지 모르지만.......!"

40대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듯 말했다.

"하하. 겨울철 같으면 길거리에서도 많이 파는데 요즘은."

동민이 오랜만에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웃는 것이었다.

3년 전 아내와 딸을 외딴 계곡에서 잃고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었다.

아내와 딸은 아직 찾지 못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경찰 수사도 언제나 제자리였다.

"심심한데 라디오라도 틀죠?"

동민이 착잡한 마음을 털어 버리려는 듯 40대 남자에게 부탁했다.

40대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라디오를 틀었다.

5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요즘 택시 운전기사 연쇄 살인사건 소식입니다.

인천 개인택시 운전기사 연쇄 살인사건의 결정적인 목격자가 나타났습니다. 인천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오모씨는 세 번째로 살해된 개인택시 기사 한모씨의 살해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경찰에 제보를 해옴에 따라 1년여에 거쳐 인천 ㅇㅇ동 택시 운전기사 윤모씨와 ㅇㅇ동 김모씨에 이어 3일전 피살된 한모씨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제자리걸음을 거듭해온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탈 예정입니다.

목격자 오모씨에 따르면 용의자는 40대 남자로 늘 오모씨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이용한 동네 주민이며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갑자기 배달 주문 전화가 와서 주문받은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동네 한적한 곳에 위치한 공터로 달려갔는데 그 곳에 용의자가 오모씨를 기다리고 있다가 소주와 오징어를 받고 돈을 지불하는데 손바닥에 피가 묻어있고 공터 한쪽에 개인택시가 세워져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일전 피살된 한모씨는 바로 그 공터에 세워진 자신 소유의 개인택시 안에서 흉기에 목과 가슴 등 세 군데나 찔린 피살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남자의 남근을 잘라 버린 방법은 1년 전에 피살된 윤모씨와 6개월 전에 피살된 김모씨와 같아 연쇄살인사건이 동일인의 소행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다음 뉴스.

딸깍.

동민이 얼른 라디오를 껐다.

......!?

40대 남자가 왜 라디오를 왜? 끄느냐 묻는 듯 동민을 바라봤다.

"! 라디오에서 별로 좋은 소식도 안 나오는 군요. 그냥 끄고 가죠!"

동민이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해명했다

"그럽시다! 그럼 세상 살아 온 이야기라도 하면서 갑시다. 하하....... 심심하니깐!"

40대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동민이 먼저 말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 살아온 이야기요?"

동민이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 지금 목적지에 무엇 하러 가시는 지 그런 이야기라도."

40대 남자는 동민에게 얼른 이야기 하라는 듯 재촉하는 표정이었다.

"....... 지금 아내와 딸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동민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내와 딸?"

40대 남자가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 아내와 딸이죠!"

동민이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

40대 남자가 한동안 말없이 운전만 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뭔가 회한이 서린 표정 같기도 하였다.

동민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체 길 게 꼬리를 물고 달려가는 차량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량 소통은 많이 원활해져 있었다.

동민의 눈가에 반짝 이슬이 맺혀 있었고 40대 남자는 그런 동민을 힐끗 힐끗 바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간혹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럼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오?"

침묵을 깬 것은 40대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였다.

"! ! 말씀하시지요!"

동민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체 말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40대 남자에게 보이기 싫어서다.

그런 동민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 일가.

40대 남자가 쯥쯜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제 나이 27살 때. 전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을 버렸다오."

" 버리다니요?"

동민이 황급히 물었다.

"....... 저보다 5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오. 전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생을 버리고 말았답니다!"

"아니! 왜요? 무슨. 말씀이신지....... . 그럼 22살 성인일 텐데?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요?"

동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 남매는 일찍 부모님을 잃고. 단 둘이 세상을 살아왔답니다. 나는 여동생을 의지하고 살았고 여동생 역시 세상에서 나만 의지하고 살았다오. 너무도 착하고 예뿐 여동생이었는데."

“........?”

동민이 어서 말씀을 계속하라는 표정으로 40대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 때문이었오."

"여자요?"

동민이 이해 할 수 없다는 투로 황급히 물었다.

"27살 나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 여자가 누이동생을 싫어했다오. 부잣집 딸이었는데 그 여자 부모님들도 내가 누이동생을 버려야 결혼 승낙을 하겠다. 하였다오."

40대 남자는 한 참을 말을 끊고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40대 남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나뿐 오라비였다오. 그 예쁘고 착한 여동생을 나 하나 잘되겠다고 돈 한 푼 없이 험한 세상으로 홀로 보냈으니 말입니다.

40대 남자는 다시 오랜 시간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착한 것이 오라비 잘되라고 눈물도 보이지 않고 제 곁을 떠나갔다오. 그 착한 것이 말입니다!"

"너무 슬퍼 마십시오! 아마 잘 살고 있을 겁니다!"

동민이 위로의 말을 했다.

"지금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40대 남자의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 찾으셨군요?"

동민이 다행이라는 말투로 물었다.

"찾았다오. 찾았답니다. 허허. 흑흑........"

40대 남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런!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군요? ! 만나셨으면 앞으로 잘해주시면 됐지. 지난 고생이야.......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동민은 40대 남자가 찾은 여동생이 너무 고생하고 살아 저렇게 40대 남자가 자책하며 운다고 생각했다.

"암요! 당연히 그래야죠! 앞으로는 이 오라비가 행복하게 해줄 겁니다!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겁니다! 영원히......."

40대 남자는 눈물을 닦으며 동민을 바라보고 싱긋 웃었다.

"아 시발! 차가 또 막히네."

40대 남자가 짜증을 냈다.

고갯길을 넘어 문막에 거의 당도한 상태에서 차량들은 또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신호등 때문이겠지요!"

동민이 말했다.

"글쎄요. 고속도로가 밀리면 국도로 빠져나오는 차량들이 많아서 국도 역시 밀리게 돼있답니다!"

40대 남자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차가 서 있으니 제가 마실 것 좀 사 올게요!"

동민이 40대 남자 대답도 듣지 않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길가에는 음료수며 군것질 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이 곳이 상습 청체구간 같았다.

군것질 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그 많큼 이 곳이 정체구간이란 것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동민은 음료수 캔 두 개와 저녁을 해결 할 겸 감자떡과 삶은 옥수수도 샀다.

그 동안 동민이 타고 온 무쏘 승용차는 아직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흥 찐빵은 저녁 늦게나 드시고 우선 이것으로 배를 채웁시다!"

차로 돌아 온 동민은 사 온 먹거리를 40대 남자에게 권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 이거 고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배가 고프던 참인데. 감자떡 맛있지요! 잘 먹겠습니다!"

40대 남자가 반색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방금까지 슬퍼 보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동민은 그런 40대 남자를 바라보면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애써 슬픔을 감추려는 가식된 행동이란 걸 동민이 모를 리 없었다.

40대 남자는 음료수를 마시며 허겁지겁 감자떡을 먹고 있었다.

.......이 사람 한이 많은 사람이구나. 배가 고파서 먹는 모습이 아니다. 저 감자떡 하나 먹을 때 마다 그 만큼 슬픔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 여동생도 찾았다면서. 아내를 잃었나?......

동민은 40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동민도 목이 마르던 참이라 음료수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차가 움직이는군요!"

동민이 앞차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자떡과 옥수수를 거의 다 먹었을 무렵이었다.

"그렇군요! 자 갑시다!"

40대 남자가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동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량들은 서서히 움직이더니 100여 미터 가서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시발! 고작해야 몇 발자국 왔네!"

40대 남자가 투덜거렸다.

"피서철이라 각오는 했지만 너무 막히네요!"

동민도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부인께선?"

동민은 조금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 그 여자 말입니까?"

40대 남자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나뿐 여자는 알고 보니 화냥년이었소! 그 부모도 못된 인간들이고. 3개월 그놈의 집구석에서 머슴 노릇만 하다가 헤어졌답니다."

40대 남자는 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착하고 예뿐 여동생을 버리고 우린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화려했죠. 결혼식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답니다.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거지처럼 살아 온 나에겐 그렇게 화려한 결혼식은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답니다. 우린 하와이로 78일간 신혼여행도 떠났다오. 생전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생전처음 구경하는 하와이에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전 동화 속 왕자가 된 기분이었답니다.100여 평 되는 큰 주택에 늘 혼자 남아서 집안 청소와 빨래는 물론이고 정원 가꾸기 등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전. 그게 아내와 장인 장모가 날 위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정말 아들처럼 열심히 장인 장모를 공경하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며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40대 남자 이야기는 이랬다.

신혼생활 3개월 정도 되던 어느 날.

우연히 담 밖에서 아내와 어떤 남자가 부둥켜안고 진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답니다.

아내는 늘 밤늦게 들어왔고. 장인 장모와 함께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 일이 너무 바빠서 그렇구나 생각하며 그런 아내를 위해 전 성심을 다했답니다.

아내 역시 밤늦게 들어와도 매일 한 두 번씩 거르지 않고 저와 섹스를 할 정도로 저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아답니다. 아니 그렇게 느낀 것이죠. 저 혼자서.

그런 아내가 외간 남자와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는데 눈이 뒤집히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 달려 나가 아내를 붙잡고 호통을 쳤답니다.

"이게 뭣 하는 짓이야? 어찌 이럴 수가 있어?"

그러나 아내는 내게 오히려 욕설을 퍼부으며 대들었답니다.

"이런 시발놈! 네가 무슨 내 서방이라도 되는 줄 알아? 거지새끼가 하도 불쌍하고 밤에 외롭고 해서 섹스나 즐기려고 데려다 놓았더니 서방 노릇하려고하네! 이 시발놈아! 넌 그냥 내 노리개야! 이게 귀엽게 봐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얼른 들어가서 밥이나 차려! 배고프니깐! 뭘 노려봐! 개새끼야!"

아내의 돌변한 태도에 전 주먹부터 날아갔죠.

결국은 아내와 키스를 하던 남자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그 집에서 쫓겨나서 다시는 그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그년도. 다시는 볼 수 없었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답니다.

“......!”

동민은 뭐라 할 말을 잊은 체 물끄러미 40대 남자의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량이 다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못된 년과 헤어진 전 여동생을 버린 죄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여동생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여동생은 찾지 못했답니다!"

40대 남자가 입을 연 것은 문막을 지나 원주에 거의 다 왔을 때다.

갑자기 차량들이 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속도라면 늦어도 밤10시 이전에 안흥에 도착해서 안흥찐빵 맛도 보고 여관방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쁘고 귀여운 여동생을 버린 죄책감으로 술에 취해서 사는 날이 많아졌고. 심지어 마약도 복용하며 못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차츰 여동생 일도 잊고 그 못된 년 생각도 잊은 채 다시 한 여자를 알 게 되었죠. 과부였지만."

"과부요?"

동민이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 술집을 하는 과부였죠. 참 좋은 여자였는데."

"왜요? 또 헤어졌나요?"

동민이 황급히 물었다.

". 바로 오늘 아침에 헤어졌답니다!"

40대 남자가 다시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요?"

동민이 다시 물었다.

"그 여자는 너무 좋은 여자였기에 헤어진 겁니다. 그 여자의 눈에 눈물이 보여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40대 남자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동민을 알고 있었다.

다시는 40대 남자가 그 여자에 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동민이 탄 무쏘 승용차는 별로 막힘없이 빠른 속도로 원주를 지나 횡성에 도착하고 있었다.

"기름 좀 넣고 가야겠네요! 휴게소 들려서 잠시 쉬었다 갑시다!"

40대 남자가 앞에 보이는 작은 휴게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잘 됐네요 저도 화장실이 급했는데......"

휴게소에서 내린 동민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새벽에 길을 떠났기 때문에 대변을 못 본 동민은 무엇보다 급한 것이 화장실 가는 것이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오는 주제에 화장실 간다고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해서 무척 참았던 동민은 서둘러 변을 해결하고 화장실을 나오긴 했으나 20여분은 지난 것 같았다.

"아이고 이거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동민이 무쏘 승용차로 달려가 차문을 열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다말고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두 남녀가 타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였다.

"! 어서 타시오! 이분들도 같은 방향이라 동행하게 되었답니다!"

40대 남자가 얼른 말했다.

"! ! 반갑습니다!"

동민은 40대 남자 옆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뒷좌석의 두 남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신세를 좀 져야겠네요! 택시를 잡으려는데....... 마침 같은 방향이라 태워주셔서."

20대 여인이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전형적인 미녀였다.

특히 양쪽 볼에 깊게 패인 볼우물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신세랄 게 뭐 있나요! 어차피 가는 방향이니."

말을 하다말고 동민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얻어 탄 주제에 그런 말을 하다니. 염치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하.......맞는 말입니다! 기름도 안 나오는 나라에....... 좋은 일이죠!"

40대 남자가 동민의 쑥스러운 마음을 해소해주고 있었다.

동민도 그런 40대 남자가 고마웠다.

"두 분이 연인사이신 모양입니다?"

동민이 뒷좌석의 두 남녀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저도 첨보는 분인걸요!"

20대 여인이 도리질을 치며 말했다.

"! 이거 실례했습니다!"

동민은 얼른 사과했다.

40대 남자 바로 뒷좌석에 앉은 20대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깎고. 말끔하게 회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불량해보이진 않았지만 인상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저씬 화장품을 k사에서 나온 오맨을 쓰시네요?"

동민의 뒷좌석의 여인이 동민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진한 라일락 향기가 물씩 풍겼다.

여인의 향기에 동민은 흠칫 놀라고 있었다.

아내와 같은 향기였기 때문이다.

"아가씬 화장품 관련 직업을 갖은 모양입니다?"

동민이 20대 여인의 물음에 시인을 하는 질문을 던졌다.

"호호....... 아니에요! 우리 오빠도 같은 화장품을 쓰거든요! 같은 향기라......."

20대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웃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동민은 느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 아내의 얼굴을 떠 올렸다.

아내의 웃는 모습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20대 여인의 모습도 무척 닮았다 눈매며. 볼우물이며. 긴 생머리까지....... 구석구석 아내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혹시.......? 아내와 친척? 아니면 동생이라도 되나.......? 흐흐 아니지 아내야 천애고아가 아니던가........내가 무슨 생각을........

동민은 20대 여인 모습을 룸미러로 훔쳐보며 마치 아내를 만난 것 같은 환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그 만큼. 20대 여인은 3년 전에 잃어버린 동민의 아내와 닮은 모습이었다.

"아가씬 y사의 rak향수를 쓰시는 군요?"

동민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맞아요! 아저씨 부인과 같은 향수죠?"

20대 여인이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걸 어떻게?"

동민이 화들짝 놀라면서 물었다.

"아저씬....... 당연하잖아요! 아저씨가 알고 있는 향수가 그 것밖에 뭐 있겠어요? 호호......."

20대 여인의 대답에 동민은 더욱 놀랐다.

동민이 놀라는 이유는 여인이 총명함과 재치까지 아내를 닮았다는데 있었다.

"아저씨! 이야기 좀 해주세요!"

20대 여인이 다시 동민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이야기요?"

동민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 아저씬 누구이며 어디 사시고 지금 무엇 하러 가시는 지? 아니면 살아 온 이야기라도.......?"

20대 여인이 어리광을 부리듯 동민이 입을 열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오빠 동생이나 형부 처제 같은 사이에서나 가능한 행동이었으며. 그 모습 또 한 아내를 판에 박은 듯 똑 같았다.

"하하....... 내가 물어도 말을 안 하던 이양반이 입을 열기는 틀린 것 같고 아가씨 이야기나 하시죠? 한번 들어 봅시다! 차량도 다시 거북이 걸음이니......."

40대 남자가 운전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저요? 저는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어머님과 단 둘이 살았답니다."

20대 여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빠도 있다면서요?"

동민이 의문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 있죠....... 호호........ 얼마 전에 만났지만........"

20대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그럼 애인을?"

동민은 20대 여인이 애인을 오빠라 부른다고 생각했다.

"호호....... 어머님과 단둘이 살다가 어느 날 오빠를 만났죠. 길거리에서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하기 직전에 절 구해준 분이 바로 오빠랍니다! s대학에 다니며 학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하던 중이었는데.......“

20대 여인은 지난 일을 회상하듯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오빠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줬죠. 학비도 해결해주고 건강이 나뿐 어머님 병환도 고쳐주고 어머님이 하시는 일도 돕고.......전 그 오빠 덕분에 대학도 무사히 마치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죠. 아직 이름도 성도 모르는 오빠지만 전 그 오빠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오빠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죠. 만약 저를 요구하면 드릴 것이고 저보고 죽음의 길로 가라하시면 망설임 없이 가겠다는 뜻이었죠. 하지만 오빤 뜻밖의 부탁을 해왔죠. 호호......."

20대 여인은 힐끗 40대 남자를 바라보곤 다시 동민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물었다.

"그 부탁이 뭔지 아세요?"

동민이 알 리 없었다.

그 것을 모를 리 없는 20대 여인이다.

".........?"

동민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호....... 어떤 한 남자에게 시집가라는 부탁이었죠. 얼굴도 모르는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니 황당하지 않겠어요?"

20대 여인이 다시 동민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그것참 황당한 부탁이네요! 그래서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셨나요?"

동민이 되물었다.

"물론이죠! 어떠한 부탁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는데....... 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그 남자 나이가 저보다 15살은 많다고 하네요. 호호......."

20대 여인은 다시 화사하게 웃었다.

웃는 여인의 모습에선 슬픈 표정이나 싫은 표정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은혜를 입었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부탁이라면 싫은 내색이라도 있어야 정상인데 여인의 표정에선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이 동민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15살이나 많다는 것은 좀........"

동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뭐 나이가 문제 있나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 되는 거지."

40대 남자가 별 문제 아니란 투로 말했다.

"맞아요! 그 남자 분 만나보니 정말 멋있고 좋은 분 같아요!"

20대 여인이 맞장구를 쳤다.

"다행이네요!"

40대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동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즘 세상에 좀 도움을 받았다고 평생 살아야하는 결혼 문제까지 은혜니 뭐니 하며 은인의 뜻에 따른다는 것은.

몇 백 년 전 조선시대에서나 있을 법 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처녀가 미친 모양이군! 아니면 모자라던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20대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 이분도 말을 할 줄 아네! 난 벙어리인줄 알았더니! 하긴 그 몰골에 여자나 따르겠어요? 그러니 여자 마음을 모를 수밖에. 혹시 장애인 아니에요? 거기가?"

20대 여인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톡 쏘았다.

"길거리에 멍석을 깔지 그러시오! 내가 내시 출신이란 걸 금방 알아차리네!"

20대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다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뜻이리라.

"아저씨! 차 좀 세워요!"

20대 여인이 40대 남자에게 뭔가 생각난 표정으로 말했다.

40대 남자는 대꾸도 없이 차를 길가에 세웠다.

"당신 내려요!"

20대 여인이 20대 남자 어깨를 손바닥으로 밀며 말했다.

20대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아저씨! 이리 오세요! 자리 바꿔요!"

20대 여인은 동민에게 자신의 옆자리로 올 것을 요구했다.

".......!"

동민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이동했다

이제 동민이 40대 남자 뒷좌석에 앉았다.

20대 여인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이제 다 와 가는데......."

동민이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민 일행을 태운 무쏘 승용차는 높은 고갯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고갯길 아래가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바로 그 안흥 인 것이다.

"아저씨! 우리 안흥에서 날이 밝으면 가요!"

20대 여인이 동민에게 말했다.

"! 그럴 예정입니다! 방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동민이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아는 집이 있어서 전화했더니 방 두 개가 있다고 하네요. 해서 방 하나만 따뜻하게 만들어 놓으라고 했죠!"

20대 여인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방 하나만?"

동민이 의문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호호....... 젊은 내시 출신은 추워야 잘 잔대요. 호호........ 아마 냉혈동물의 피를 이어 받아서 그런 모양이죠 뭐........"

20대 여인이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난 추우면 못 자는데......."

40대 남자가 투덜댔다.

"아저씬 우리와 같이 셋이 한방에서 그냥 자요!"

20대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동민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처음 보는 남자들과 같이 한방을 쓰자는 것도 그렇지만 20대 여인이나 40대 남자나 모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더욱 이상했다.

! 세상은 넓구나! 사람들이 너무 개방되어 있는 것인 지 아니면 성격이 개방된 사람들인 지 아무튼 별로 부담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동민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우선 찐빵이나 먹으러 갑시다!"

40대 남자가 고갯길 아래에서 언덕으로 차를 몰며 말했다.

s안흥찐빵집.

"이곳이 오리지널이지! 다른 곳은 다 가짜야!"

40대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녁을 안흥찐빵으로 해결 한 동민 일행은 p여관에 투숙하게 되었다.

피서철이라 빈방이 없었다.

동민 일행은 다행히 20대 여인이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방을 두 개 얻어 우선 방 하나에 모여 앉았다.

20대 남자가 사 온 소주와 순대로 술판이 벌어졌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술상을 대신했다.

동민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소주 한 잔을 마신 동민은 벌써 얼굴이 붉게 변하고 말았다.

"이 아저씬 술도 못 마시나보네!"

20대 여인이 동민의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이다.

"네 술 한 잔만 마셔도 취합니다!"

동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술도 한 잔 들어갔겠다. 이젠 그렇게 뜸들이던 당신 이야기나 시작하시면 어떠시오?"

40대 남자가 동민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요! 저도 듣고 싶어요!"

20대 여인도 맞장구를 쳤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데."

동민이 말하기 싫다는 표정이다.

"왜 할 이야기가 없어요? 그럼 부인과 연애를 어떻게 했는지 그 이야기라도 해보세요.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그런 이야기요. ?"

20대 여인이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시고 다시 잔을 채우며 재촉하고 있었다.

벌써 서너 잔은 마신 것 같았다.

20대 남자는 방문 쪽에 앉아 처음부터 따라놓은 술잔을 아직도 비우지 않고 있었다.

아내 이야기라.......! 벌써 20년 아니 19년 전 이야기군요. 우린 같은 직장에서 만났죠. 직장이라야 작은 공장이었지만. 가방공장이었죠. 제가 먼저 들어갔고. 제가 한 5개월 지난 어느 날 아내가 그 공장에 들어왔죠. 날씨가 무척 추운 늦가을이었는데....... 변변한 옷도 없고 초라한 형색이 마치 거지같았죠. 공장장이 그 형색을 보고 다른데 가 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사정을 했죠. 제발 있게 해달라고........하지만 공장장은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죠.”

동민이 예날을 회상하듯 잠시 말을 멈추고 방 천장을 물끄러미 처다 보았다. 아마 눈물을 감추려는 것이리라...

40대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잠이 든 것인가....... 졸고 있는 것인가....... 그 행동은 20대 남자와 거의 같았다. 둘 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지 졸고 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20대 여인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동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 공장에서 쫓겨 난 아내는 비틀거리며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죠. 그 공장이 금호동 산동네였는데. 아마 저녁 시간이 다됐으니. 오후 5시쯤 됐을 겁니다. 전 공장장한테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핑계를 대고 공장을 나와 그녀가 사라진 골목 비탈길을 달려 내려갔죠. 왜 그랬는지 저도 모릅니다. 아마 그 것이 인연인 모양입니다. 그녀는 멀리 가지 못하고 다른 공장 문 앞에서 또 사정을 하고 있었죠. 그 일대가 모두 가내공업으로 거의 가방공장이었죠. 멀리서 지켜보니 그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다시 비틀거리며 걷고 있던 그녀는 결국 담벼락에 몸을 의지하고 위태롭게 서 있었는데.......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죠. 전 그녀에게 얼른 달려가 말을 걸었죠. 제가 밥을 사겠으니 시간 있으시면? 그렇게 겨우 말을 했는데....... 그녀가 하는 말이 고맙다는 한마디였죠. 전 그녀 팔목을 손으로 잡고 부축하며 근처 작은 콩나물국밥집으로 갔죠. 마치 며칠을 굶은 듯 그녀는 허겁지겁 콩나물국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죠. 전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만 보고 있었죠.”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내게 수차례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죠. 전 그런 그녀를 데리고 시장 골목으로 가서 우선 입을 옷과 신발을 사서 주고 목욕탕에 데려다 줬죠.”

전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녀는 목욕탕에 들어가고 전 목욕탕 앞 만화가계에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죠. 아마 만화책을 10여권 읽었을 겁니다.”

고마워요!”

누군가 내 옆에 앉으며 하는 말에 전 그녀를 보고 무척 놀랐죠. 그녀가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입은 모습이 마치 선녀 같았거든요.”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죠?”

제가 그녀를 데리고 근처 다방으로 갔죠. 전 그녀에게 왜 이렇게 돌아다니느냐. 어디서 왔으며. 이름이 뭐냐.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죠. 단지 그녀는 어디 취직을 해야 하는데. 술집 등 유흥업소는 싫다고. 제게 취직자리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죠. 침식을 제공해주는 곳이라야 한다는 것이었죠. 전 그녀를 데리고 공장으로 돌아와서 공장장에게 취직을 시켜달라고 했죠. 공장장은 그녀를 알아볼 리 없었죠. 조금 전 그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는 그래서 저와 함께 같은 공장에 있게 되었는데. 한 두어 달 지나서 그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죠. 당시 가내공업이란 것이 문을 닫기가 일쑤였거든요. 그동안 그녀와 전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둘은 방을 하나 얻어 동거를 시작했죠. 1년 정도 지나서 돈을 모아 공장을 그만두고 리어카로 과일장수를 시작했는데 무척 수입이 좋았죠. 그녀는 첫 딸을 낳았고. 우린 차츰 돈을 벌어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그리고 ....... 4년 전 드디어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는데....... 아내와 딸은 그 아파트에서 1년도 채 살지 못했으니......."

동민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3년 전 이곳에서 멀리 않은 계곡에서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죠. 그 참혹했던 현장을 보면 죽은 것이 분명한데....... 시신도 못 찾았으니......."

동민은 눈물을 흘리며 연거푸 소주를 두 잔 마셨다.

40대 남자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마 화장실 가는 모양이었다.

20대 남자도 얼른 일어나 40대 남자 뒤를 따라 나갔다.

동민은 슬픔에 잠겨 연거푸 마신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동민은 꿈을 꾸고 있었다.

작은 텐트 속이었다.

텐트 문 앞으로 시원한 계곡물이 급한 물살을 일으키며 소리 내어 흐르고 있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방 거센 폭풍우와 함께 소나기가 퍼 붇기 시작했다.

계곡물은 금세 흙탕물로 변해 흐르기 시작했다.

"여보!"

밖에서 놀던 아내가 비를 피해 텐트 속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내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한꺼플 한꺼플 옷을 벗은 아내는 금방 알몸으로 변했다.

아내의 벌거벗은 몸이 동민을 강렬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풋풋한 향기가 텐트 안 가득 메우며 동민을 아내에게 이끌고 있었다.

"여보!"

동민은 와락 아내를 안고 키스를 했다.

아내도 기다렸다는 듯 동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둘은 달콤한 키스를 한 동안 계속했다.

어느덧 동민도 알몸으로 변해갔다.

둘은 거친 숨소리와 단내를 풍기며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밖에는 어느덧 비가 그쳐 있었다.

수많은 백합나무에 때 아닌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금세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고 말았다.

지수가 하얀 날개옷을 입고 그 꽃 위를 나풀나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지수는 연신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텐트 속에서 엄마와 아빠가 서로 알몸이 되어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수의 모습은 행복에 졎어 있었다.

그런 지수의 모습이 동민의 눈에도 들어왔다.

동민은 지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지수도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미소 짖고 있었다.

어디선가 오색나비들이 몰려와 지수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지수의 모습은 금세 나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민은 온 몸이 흠뻑 졌어 있었다.

온 몸이 나른하고 졸음이 왔다.

동민은 아내의 목에 자신의 왼팔로 팔베개를 해주고 오른손으로 아내 가슴을 움켜쥔 채로 잠이 들어 버렸다.

차가운 공기가 동민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민이 번쩍 눈을 떴다. 벌써 날이 밝아 있었다.

"이런! 벌써 아침이네!"

아침이었다.

여관 밖에는 사람들의 움직임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동민은 일어나려고 했다.

".........! 이게?"

동민은 일어나려다 말고 흠칫 놀랐다.

자신의 팔을 베고 잠든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것도 알몸으로.......

20대 여인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이게......."

동민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20대 여인이 잠을 깼다.

"먼저 일어나셨네요?"

20대 여인은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동민도 알몸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죠?"

동민이 얼른 옷을 입으며 물었다.

"어젯밤 일이 기억이 안 나시나 보네요? 저보고 여보! 여보! 하면서......."

20대 여인이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 그럼?"

동민은 어젯밤 자신이 꾸었던 꿈이 현실이라는 걸 알았다.

이 여인을 아내로 착각하고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에....... 맙소사! 이걸......."

동민은 뭐라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결혼을 앞둔 여인을 건드렸으니.......

그것도 은혜를 갚으려는 그 여인을.......

아내와 딸의 자취를 찾아 가는 길에.......

"걱정하지 말아요! 저도 원해서 한 행동이니깐!"

20대 여인이 어느새 옷을 다 입고 동민에게 다가와 앞에서 두 팔로 동민의 목을 감싸고 가볍게 입술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 그런?"

동민은 나이도 많은 자신과 그 것도 결혼을 앞둔 여인이 순순히 몸을 허락했냐고 묻고 있었다.

"아저씨가 좋아서요. 아저씨도 제가 싫지는 않죠?"

20대 여인이 두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 그거야. 그럼요!"

동민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럼 됐어요! 전 이제부터 아저씨 아내가 될 거에요. 아저씨가 거절하면 안돼요?"

20대 여인은 다시 동민의 목에 두 팔로 매달려 뜨거운 키스를 시작했다.

동민은 이 당돌한 여인은 어쩌지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서서 키스에 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가씬 결혼을 앞 둔....... 또 저와 나이차이도 많은데.......?"

한참 뒤 키스가 끝난 동민은 여인에게 물었다.

"오빠도 이해하실 거예요. 아니 찬성이겠죠! 걱정 마세요. 제가 아저씰 좋아하고 아저씨도 절 좋아하면 됐죠! 뭐 안 그래요?"

20대 여인이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여인의 표정엔 행복함이 역력해 보였다.

"정말 모를 아가씨네요? 만난 지 몇 시간 지났는데....... 마치 절 잘 아는 것 같은 행동이니....... 아무튼 저도 책임질 짓을 했으니......."

동민은 여인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젊은 여인을 건드렸으니. 아무리 술이 취해 저지른 일이라곤 하지만 동민으로서는 여인을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특히 아내를 많이 닮은 여인이기에 동민의 마음 한 쪽에선 여인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자 우리 나가요! 아침 먹고 아저씨 가시는 곳에 함께 가요!"

20대 여인이 동민의 팔을 두 손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두 사람은......?"

동민은 40대 남자와 20대 남자를 두고 묻는 말이었다.

"그들은 알 게 뭐에요 아마 먼저 갔겠죠! 자 나가요!"

20대 여인은 동민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함께 왔는데 인사라도 하고......."

동민이 말했다.

"실은 어젯밤에 먼저 떠났어요! 그리고 이제부턴 절 아가씨라 부르지 마세요! 제 이름은 선미에요 강선미."

20대 여인이 동민의 팔을 당기며 방문을 열었다.

"선미?"

동민은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아내와 이름도 비슷했다.

성미. 선미.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닌 지.

동민은 마치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같은 향수를 쓰고. 얼굴도 비슷하며. 행동도 비슷하고. 심지어 이름까지 비슷한 여인을 만난 동민은 그렇게 여관을 나서고 있었다.

동민과 선미가 계곡 입구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정도 되었을 때였다.

"이 계곡인가요?"

선미가 물었다.

"그래요! 이 계곡에서 3년 전 아내와 딸을 잃었답니다. 1시간 정도 아랫마을에 갔다 온 사이 40대 남자 4명에게 비참하게 죽었다오."

동민이 선미보다 앞장서서 계곡을 걸어 오르며 말했다.

"그럼! 산소가 이 곳에?"

선미가 다시 물었다.

"........ 아니오! 시체도 찾지 못했답니다. 다만 아내와 딸의 체취를 맡고 싶어서 온 것이오! 시체라도 찾았으면 이렇게 가슴 아프진 않을 겁니다."

동민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범인들을 못 잡았나보군요?"

선미가 물었다.

"범인요? 잡았죠. 아니 죽었다오. 3명은. 한 명만 아직 못 찾았을 뿐이지. 지난해 경찰 수사가 제자리걸음만 하기에 직접 찾아 나섰죠. 당시 기억에 남는 개인택시 넘버와 인천지역 택시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하나하나 찾아 다녔죠. 드디어 그날 이 계곡에서 보았던 범인 한 명을 찾는데 성공했다오."

동민이 잠시 말을 멈추고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에 흐르는 눈물을 선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 인천 연쇄살인 사건이? 아저씨가 복수하신 것이군요?"

선미가 놀라 소리쳤다.

"복수요? 허허....... 범인 한명을 찾아 죽이려고 시장에서 횟칼을 사 들고 놈을 어두운 골목까지 따라갔죠.......놈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물었죠. 2년 전 이 계곡에서 아내와 딸을 왜 죽였냐고."

동민이 다시 허공을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그래서 시인 하던가요?"

선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 하더군요. 놈은 아마도 마약을 한 모양이더군요. 횡설수설하며 자기와 친구들 3명이 함께 죽였다고 웃더군요. 시체는 이 계곡에 묻었다고 위치도 자세히 가르쳐 주더군요. 함께 살인을 한 친구 이름을 가르쳐 주는데.......두 명 이름을 막. 말 했을 때. 누군가 복면을 하고 나타나 놈을 죽였답니다. 그 것도 잔인하게 죽이고. 난 복면을 한 놈에게 꼼짝도 못하고 제압당해 있었죠. 힘이 엄청 강했어요. 한 손에 멱살을 잡히고 칼을 뺏겼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겠더라고요. 복면을 한 놈은 살인자를 칼로 몇 번 찔러 죽이고. 남자의 성물도 잘라 비닐봉투에 넣더니 유유히 사라졌죠. 두 번째 살인자 역시 한 발 늦어 누군가 이미 살해하고 사라진 뒤였답니다. 세 번째 살인자 역시 마찬가지였고. 아마 나머지 범인일 겁니다. 허허......."

동민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산소는 찾았나요? 이 계곡이라면서요?"

선미가 묻고 싶어도 잠시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동미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싶지 않아서 참았던 질문이다.

"찾긴 찾았는데 누군가 이미 파헤쳤고 시체는 없어진 뒤였죠.

동민이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길가에서 조금 덜어진 산비탈에 파헤친 검은 흙이 수목 사이로 또렷이 보였다.

".......! 어떻게. 어떻게요? 아저씨?"

선미는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 몰라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아내가 죽은 자리입니다!"

동민이 계곡 옆에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동민은 들고 온 검은 비닐 봉투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인 초를 돌 틈에 세워 놓고 다시 봉투에서 참외와 수박을 꺼내 반씩 갈라놓고. 접시에 담아 온 인절미를 돌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던 과일과 떡입니다!"

동민은 잠시 눈시울을 적시더니 다시 일어나 조금 위쪽 숲속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여긴 딸이 죽은 자리랍니다....... 흑 흑........"

결국 동민은 흐느껴 울었다.

선미가 동민 대신 검은 비닐봉투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이고 오랜지와 파인애풀. 초콜릿 등을 꺼내 늘어놓았다.

아마 동민의 딸 지수가 평소에 좋아하던 과일과 과자일 것이다.

"지수야! 지수야.......!"

동민의 흐느낌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유동민씨!"

언제 왔는지 두 남자가 동민과 선미 바로 뒤에서 동민을 불렀다.

".......?"

동민이 뒤를 돌아보며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유동민씨 당신을 인천 택시 기사 연쇄 살해범으로 체포합니다!"

한 남자가 한 손에 경찰증을 내보이며 수갑을 꺼내 들었다.

"제가 범인이라고요? ......! 뭔가 잘못 아신 것 같은데."

동민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변명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목격자도 있고. 당신의 혈흔도 살해 현장에서 나왔습니다. 가시죠!"

경찰은 동민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

잠깐 기다리시오!”

언제 나타났는지 40대 남자가 소리치며 경찰관 앞으로 걸어왔다.

같은 차량으로 동행을 한 40대 남자다.

선미야!”

40대 남자가 20대 여인을 불렀다.

이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 오빠!”

선미가 대답했다.

그런데.......

오빠란다.

“......!”

유동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경찰 양반! 그 유동민씨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단지 피해자일 뿐!”

40대 남자가 경찰을 보고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경찰이 물었다.

제가 범인입니다!”

40대 남자가 말했다.

오빠!”

선미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 못된 몸이 저 유동민씨 부인과 딸을 강간하고 죽이고 또 그 범인들까지 죽인 사람입니다!”

40대 남자는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동생과 어릴 때 헤어져서 제 여동생인줄도 모르고 같이 온 동료들과 못된 짓을 하고 나중에야 알고 동생 복수를 한답시고 동료들을 다 죽인 사람이 접니다!”

40대 남자는 선미 오빠이면서 성미 [동민이 아내] 친오빠였다.

같이 동행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 바로 동민이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나의 처남?”

동민이 40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몹시 화난 표정으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렇다네! 내가 바로 그 못된 처남일세! 용서를 바라진 않겠네! 미안하네! 자네 부인과 딸 시신은 저 위에 언덕에 묻혀있네!”

40대 남자가 경찰에게 수갑을 채우라는 듯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경찰은 동민에게 채웠던 수갑을 풀어 40대 남자에게 채웠다.

따라오게! 무덤을 가르쳐 주겠네!”

40대 남자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40대 남자는 비틀거리는 몸을 경찰 손에 겨우 의지 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동생을 몰라 봤습니까? 어찌 그럴 수가?”

동민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곳에 올 때 이미 술에 취해 있었네! 술에 취하지 않았다 해도 알아 볼 수는 없었을 것이야! 워낙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서. 크윽........!”

40대 남자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크흐흑........”

동민도 울었다.

동민은 선미 팔에 몸을 의지하고 걷고 있었다.

동민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언덕 위

남쪽 양지바른 곳에 무덤이 두 개 있었다.

40대 남자는 그 무덤 앞에 섰다.

여기네! 크흐흑!”

40대 남자는 털썩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산소를 향해 펑펑 울기 시작했다.

크흐흑!”

동민도 비틀비틀 걸어서 산소 앞에 넘어지듯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멀뚱멀뚱 서서 그냥 지켜볼 뿐이다.

선미는 동민이 옆에 같이 엎드려 운다.

언니! 선미야. 동생 선미가 왔어! 불쌍한 언니. 흑흑.......”

선미는 엉엉 울고 있었다.

선미를 부탁하네!”

40대 남자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동민에게 말했다.

물론 자네 부인을 잃은 아픈 상처를 다 아물게는 못하지만 조금은 잊을 수 있을 것이야!”

40대 남자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게 내가 자네한테 해 줄 수 있는 전부네!”

40대 남자가 동민에게 봉투를 하나 건네줬다.

40대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경찰과 함께 떠나기 시작했다.

동민은 그냥 산소에 엎드려 울기만 하였다.

그 옆에서 선미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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