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7

더좋은래일 | 2023.10.22 10:10:08 댓글: 2 조회: 302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0929


17

부두에서의 대충돌을 계기로 원산로동자들의 투쟁은 폭동으로 전환되였다. 파업로동자들은 파업깨기군들과 파업방해군들을 습격하였으며 경찰대와의 충돌을 무릅쓰면서까지 반동주구들에게 복수를 하였다. 그들의 총파업은 전국각지의 로동자들과 그 주변의 농민들 그리고 학생청년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시종일관하게 받았다. 동정파업이 각지에서 일어났고 또 농민들은 식량과 시탄을 공급하였다. 파업기금이 각지에서 수집되였고 또 격려의 편지들이 련이어 래도하였다. 뿐만아니라 일본, 중국 등 외국 로동자들의 지지도 받았다.

씨동이가 경찰에 체포된것은 부두에서의 대충돌이 있은 뒤 칠팔일이 지나서였다. 선장이가 부지런히 퍼먹고 책보를 끼고 학교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씨동이네 집께서 귀에 익은 녀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선장이가 그쪽을 바라보니 씨동이네 게딱지같은 초가집앞메 사람들이 몰려섰었다. 선장이가 놀라 그리로 쫓아가려는 참에 경찰 둘이 씨동이의 등을 밀며 걸아나왔다. 찬 땅바닥에 두다리를 뻗고 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는것은 씨동이 어머니였다. 씨동이 아버지와 형 원동이는 이때 마침 바다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 선장이가 급한 걸음으로 마주 나가며 다시 보니 씨동이의 두손에는 은빛이 번들번들하는 수갑이 채워져있었다.

(수갑! 저건 경찰이 도둑을 붙잡아갈 때채우는게 아닌가!)

선장이는 영문을 몰라 눈이 휘둥그래지는것과 동시에 씨동이의 신변에 대한 념려와 우애가 북받쳐 두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선장이가 발을 멈추고 길가운데 박은듯이 서서 바라보는중에 수갑을 찬 씨동이가 두 경찰에게 등을 밀리며 가까이 왔다.

<<오 선장이냐, 걱정 말아!>> 하고 씨동이가 수갑찬 두손을 앞으로 내들고 힘있게 흔들어보이며 씩씩하게 말하였다.

<<날 감옥에 갖다 가두더라두... 난 꼭 뛰쳐나오구야말테다! 두구봐라.>>

씨동이가 기탄없이 이렇게 큰소리로 장당믈 하니 두 경찰중의 나이 좀 젊어보이는자가 뒤에서 씨동이의 어깨를 왈칵 떠밀며

<<잔말이 마라!>>하고 꾸짖었다. 그리고 나이 좀 들어보이는자는 조선사람인 모양으로

<<뒤덜미에 사자밥을 짊어진 놈이 흰소리는 잘 친다.>> 하고 비웃었다. 씨동이가 갑자기 왈칵 어깨를 떼밀리는 바람에 하마트면 고꾸라질번하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뒤를 돌아보고 대번에 눈방울을 굴리며

<<개새끼, 떼밀긴 왜 떼미니!>>하고 게먹으니 그 일본순사는 조선순사를 돌아보며 일본말로

<<이런 불한당놈은 례사방법으룬 길을 못 들인다니, 별반 거조를 내야지.>> 하고 지껄였다. 중인소시에 당장에서 손찌검은 못하고 류치장에 끌고 가가지고 톡톡히 주리대경을 안길 작정인듯싶었다. 조선순사는 얼굴에 비굴한 웃음을 띠우며 여공불급하게

<<다시 이를 말씀입니까.>> 하고 비위를 맞추었다. 이것을 본선장이는 그 조선놈이 일본놈보다
더 미웠다.

<<이 더러운 놈!>>하고 그 상판대기에 침이라도 탁 뱉어주고싶었다. 선장이가 겨드랑이에 끼였던 책보를 내려서 한손에 늘어뜨리고 씨동이옆에 바싹 붙어서니 조선순사가

<<야 야, 어딜 함부루 들어서니? 상학시간이 다됐는데... 학교나 갈 생각을 안하구!>> 하고 밤을 문 소리로 나무랐다. 씨동이가 자애어린 마로

<<어사 가봐. 가서 공부나 잘해.>>하고 다시

<<쌍년이 보거든.. 내가 념려 말라더란다구 말해라.>> 하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선장이가 뒤에 떨어져서 혼이 나간것처럼 멀거니 바라보는데 씨동이는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고개짓을 한번하였다. 내 일은 념려 말고 어서 학교나 가라. 이런 뜻인가?

인간서상의 재화란 매양 겹쳐오는 법. 된서리맞은 풀잎마냥 풀이 죽은 선장이를 학교에서 기다리고있는것은 또 하나의 타격이였다. 조회시간에 전교의 사생들앞에서 호소가와교장이 돌연히 김영하선생의 의원면직을 발표한것이다. 호소가와교장은 김영하선생이 부두로동자들의 편을 들어 란투에 뛰여든것은 공립학교훈도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부청(府厅) 즉 시청 교육과의 일본관리들과 꿍꿍이속을 차리고 권고사직을 시켜놓고서도 외면치레로 해임장에다는 의원면직이라고 적었던것이다. 선장이에게 있어서 존경하는 김영하선생의 이 돌연적인 해임은 참으로 마른하늘의 벼락이였다.

(씨동이형님이 잡혀갔는데... 또 선생님까지!)

선장이는 눈앞이 캄캄해지는것 같았다. 이때 김영하선생이 호소가와교장옆으로 다가서서 깍듯하게

<<마지막 고별인사를 해두 좋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호소가와는 못마땅해서 미간을 잠시 찌르폈다가 다시 펴며

<<간단히 몇마디만.>>하고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선생들이 서있는 곳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키로 한길 가량 턱이 진 지대였으므로 김영하선생은 두어걸음 앞으로 나와 화강석재로 쌓은 돌층계우에 섰다.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젖혀들고 김영하선생의 입을 바라보았다.

<<나 이 김영하는... 여러 학생의 부형들이 식구들 데리구 먹구살기 위해... 정당한 요구를 내걸구 파업하는걸 동정했다는 죄루... 오늘 이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김영하는 물러갑니다. 그럼 안녕히들 계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김영하선생은 학생들을 향하여 허리를 한번 깊이 구푸렸다. 그리고 다시 지대우에 눌어선 동료들을 향하여 오른쪽에다 대고 한번 왼쪽에다 대고 또 한번 허리를 깊이 구푸리며 고별을 하였다.

선장이가 울음이 터져나오는것을 겨우 참으며 박수를 냅다 치니 전체 학생들이 이에 호응하여 요란한 박수소리가 온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이에 감염이 되여 지대우의 선생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니 호소가와교장은 오만상을 찡그리고 머리를 송충대가리 내흔들듯하였다.

선장이가 방과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씨동이가 아침에 잡혀가며 전하라던 말을 전하려고 쌍년이게를 오니 두눈이 붉어진 쌍년이가 반갑게 선장이를 맞아들였다.

<<왜 장승처럼 버티구 서있니? 어서 앉아라!>>

선장이가 막상 쌍년이와 마주 대하고 앉으니 갑자기 목이 메여 꼭 전하려고 벼르고 온 말이 입밖으로 나와주지를 않았다. 씨동이는 쌍년이에게 있어서나 선장이에게 있어서나 다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서로 말은 안해도 쌍년이와 선장이는 피차에 다 그것을 잘 알고있었다. 둘이 덤덤히 마주 대하고 앉았는중에 홀지에 마당에서

<<쌍년아.>>

부르는 소리가 나서 쌍년이가 얼른 일어나가 장지를 밀어열었다. 그리고

<<정실이.>>

짧게 웨치고 곧 선장이를 돌아보며

<<너의 누나 왔다.>>

알려주고 다시 정실이를 향하여

<<어서 올라오나. 선장이두 와있다.>>

말하고 얼른 한옆으로 비켜서서 문길을 터놓았다. 셋이 솔밭같이 앉은 뒤에 정실이가 먼저
쌍년이에게 명토없이

<<무슨 별일은 없겠지?>> 하고 물으니 쌍년은

<<글쎄 모르지.>> 하고 대답하는데 그 얼굴에는 평소에 걸걸하던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수색이 짙었다.

<<그래두 뭐 너무 걱정할건 없어. 숱한 사람이 잡혀갔는데... 설마 어떨라구. 우리 도련니두 집에 못 들어오구 어디루 피신해버렸어. 경찰서에서 임의출두하란 호출이 왔는데... 사람이 있어야지. 최서사가 대신 가 연유를 말하구... 본인이 집에 들어오면 곧 출두시키겠다구 다짐을 두구 왔대여.>>

<<그래두 그건 호출이나 왔지만... 이건 아주 수갑을 채워 잡아갔거든... >>

<<수갑채워 잡아간게 어디 한둘이냐? 나 아는것만 해두 벌써 여럿인데. 조합의 골간하구 규찰대들은 다 잡아간다더라.>>

쌍년이는 잠자코 옷고름만 만지작거렸다.

<<그보다두 더 큰일은... 조합의 책임일군이... 칼맞아 죽은거야.>>

쌍년이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누가 칼에 맞아?...>>

<<로동조합 책임자 주철산이라나 하는 사람. 댁 사랑에두 한번 왔다간 일이 있어. 상심부름을 하다가 나두 한번 본적이 있는데... 아주 멋지게 생긴 남자야.>>

<<그런 사람이 뉘게 칼을 맞았다니?>>

<<뉘게 맞았는지 그거야 어떻게 아니? 아무튼 경찰에서 잡으려구 해 어디 가 피신하구 계속 파업을 지도하는걸... 밤중에 어떤놈이 글쎄 비수루 등판을 찔렀더라지 뭐냐.>>

<<그래 그런 무도한 놈을 잡아내지 못해? 경찰은 무엇 하란 경찰이야!>> 하고 쌍년이가 분개해 목소리가 새되여지니 정실이는 도리여 목소리를 낮추어가지고

<<다들 경찰에서 저의 끄나불을 시켜 한노릇이라구 쑥떡쑥떡하는데... 경찰이 다 무슨 소용있니!>>하고 고개를 외쳤다.

<<저런 죽일 놈들!>>

더더구나 씨동이를 붙잡아간것도 바로 그 경찰인데 어찌 아니 미우랴.

<<그러게 댁 령감마님이 약주를 드시구 `경찰이란 좀도둑을 잡는 큰 도둑이야` 하구 뇌셨지.>>

선장이가 이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하루사이에 많은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또 깨달았다.

<<경찰에서 살인범을 잡겠다구 특별수사본부란걸 내오구 뭐 법석을 한다지만서두 그런건 다 외면치레 이목수습이구 범인은 절대루 잡히지 않을거래. 이런 말두 다 안팎사랑의 심부름을 하며 귀동냥으루 한마디씩 얻어들은거지... 한편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드럴듯두 하지 뭐냐.>>

<<가만히 생각해볼것까지두 없이 바루 그거야. 그럴듯은 다 뭐니? 바루 그건데! 순 날도둑놈들 같으니라구!>>

<<세상이 정말 허무하지?>>

<<그래 그 주 뭐라구 하는 사람은 처자식이 있겠지?>>

<<아마 있겠지.>>

<<그럼 저걸 어떻거니?>>

<<가엾구 불쌍하지...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이랴 치랴마는.>>

<<그러자니 오죽해. 나두 우리 아버지 없는 뒤에 엄마하구 둘이서...>>

말을 하다말고 쌍년이의 두눈이 또 붉어졌다. 여린것은 녀자의 마음인가? 정실이도 눈시울이 뜨거워나는 모양으로 얼굴을 저편으로 돌렸다. 선장이는 속ㅇ로 생각하였다.

(이 세상이 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한가? 그리고 왜 또 이렇게 무정할가?)

이윽고 쌍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진사댁에선 어떻거들 있니? 당가한 맏손자가 피신을 한다... 경찰서에서 호출장이 나온다... 모르긴 해도 아마 초상난 집 같을테지.>>

<<아니야 아니야, 전혀 달라. 기침소리 하나 들리잖을만큼 조용해. 큰소리루 지껄이는 사람 하나두 없어. 댁의 가풍이 워낙 그렇대. 정말 저잖구 대범들 해...>>

<<너 오늘 틍 있니? 나하구 저녁이나 같이 먹을가, 마침 선장이두 왔는데.>>

<<아니야 아니야, 곧 가야 해. 네가 어떻거구있나 걱정이 돼 잠간 와본거야. 곧 가야 해.>>

말하며 정실이는 얼른 일어나 선장이의 소매를 붙잡으며

<<그럼 너만이라두 좀 남아있어.>> 하고 못 가게 하였다. 정실이가 섬돌우에 내려서서 신발을 신고

<<그럼 내 또 올게.>>

쌍년이에게 인사하고 곧 다시 방안에 그대로 주저앉았는 선장이를 들여다보며

<<누나 속상해하는데... 말 이키지 말아.>>

당부한 뒤 총총히 가버렸다.

쌍년이가 선장이더러 조용한 방에서 공부를 하라고 날이 채 어둡지도 않았는데 전등불을 환하게 켜주고 부엌으로 내려가 저녁을 지었다. 별찬 한두가지를 장만하느라고 보리밥 한솥 짓기나 거의 지나서 쌍년이가 쟁반이 좁도록 여러가지 반찬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쌍년이가

<<어서 먹어.>>

저가라글 집어주고 또

<<요거 먹어봐라.>>

반찬그릇을 앞에 가까이 밀어놓아주기도 하였다. 한참 밥을 먹다가 쌍년이가 느닷없이

<<너 이제 서울 가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면... 나 같은건 거들떠보지두 않겠지?>>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입에 밥을 문채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벌개졌다. 쌍년이가 그 당혹해하는양을 물끄러미 보다가 픽 웃고

<<아니다. 내가 괜히 해보는 소리다. 우리 선장이가 그럴리 있나. 어서 먹어라. 이 반찬이 맛있는거야. 어서 먹어.>>하고 다정히 권하였다.

밥들을 다 먹고나니 밖이 아주 어두었다. 선장이가 이젠 가보겠다고 일어나와 신발을 신으며 마루끝에 따라나와 섰는 쌍년이를 쳐다보지 않고 혼자말처럼

<<씨동이형님이 아까 아침에 잡혀가며 나더러 누나보고 아무걱정 말라구 말하랍디다.>> 하고 뒤늦은 전갈을 하였다.

(오, 네가 그 말을 전하려구... 일부러 날 찾아왔었구나!)

쌍년이는 비로소 깨도가 되여 가슴속이 뭉클하며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그래서 선장이를 보고

<<오냐 알았다. 또 와라.>>하고 인사하는 말소리도 여직 울려는 사람 같았다.

<<누나 잘 있수.>>

선장이가 인사하고 나가다가 어두운 마당 한가운데서 갑자기 돌아서서 마루우를 쳐다보며 무뚝뚝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난 죽을 때까지 누나를 잊지 않을테니... 안심하우.>>

어두운 겨울바다에서 지심을 울리는듯 육중한 파도소리가 일정한 사이를 두고 들려왔다. 북녘하늘에 북두칠성이 그 긴 자루가 금세 손에 잡힐듯이 뚜렷하였다.

어두운 밤이 새니 밝은 아침이다. 이날은 일요일. 이때로부터 꼭 10년전 <<3.1운동>>때 일대 봉기를 하였던 원산시민들은 이날 고종임금의 국장이 아닌 원산로동련합회의 지도일군 주철산의 사회장을 지내게 되였다. 남과 서와 북-세 방향에서 사람의 물결이 원산역전광장으로 대하를 이루며 밀려들었다. 경찰들은 <<3.1봉기>>가 10년을 주기로 또 터지는줄 알고 경겹하여 역전까지는 서너마장밖에 안되는 거리다. 정체 모를 흉범에게 암살당한 주철산의 해부를 거친 시신이 누워있는 령구는 며칠전에 경찰들이 란장판을 치고 간 명석동 원산로동자련합회 사무소에서 발인하기로 되였었다. 검은새베일을 덮은 령구를 멘 여섯중에 앞쪽 오른편은 경찰에서 수배중인 무호림이고 또 왼편은 경찰에서 임의 출두하라는 호출을 받기전에 종적을 감추었던 한정희였다. 그리고 그외의 넷도 역시 경찰에서 수배중인 로조의 간부들이였다. 닥치는대로 짓부실 기세를 보이는 수천명 회장자들의 눈앞에서 서뿔리 수갑이나 포승을 내비쳤다가는 뼈도 못 추릴 형편이므로 경찰들은 주니는 내 감히 손을 댈념을 못하였다. 화약고옆댕이에서 불꽃놀이를 하라만큼 일본경찰은 아둔하지 않았다.

선장이가 한선의남매와 함께 역전광장으로 향하였다. 처음에는 좁고 구불구불하고 점포가 즐비한 구로로 오다가 뺑덕할미네 양약방 모퉁사이에서 서쪽으로 꺾이여 넓고 곧은 신작로로 나왔다. 여기서는 로조의 사무소가 지척이므로 발인을 지켜보는 회장자들로 길이 꽉 메여 사람이 움직일수가 없었다. 교통이 그냥 마비가 된것이 아니라 아예 <<관객>>이 되였었다. 토(吐)도 사(泻)도 다 못하는 형편이였다. 이윽고 발인이 시작되였다. 선장이가 인총중에서 발돋움을 하고 령구를 바라보았다. 앞쪽 오른편의 허위대 크고 눈섭이 유난히 검은 령구군은 어디서 본적 있는 얼굴이였다. 언젠가 남산동청년회관을 습격할 때 손수레우에 올라서서 연설하던 사람의 얼굴을 선장이가 이내 알아보았다. 뒤쪽 왼편의 청수한 얼굴은 다시 말할것도 없이 한정희-은희의 형님이였다. 령구가 앞으로 나감에 따라 길을 메운 사람들도 서서히 움직여나갔다. 역전광장에 다달으니 백차일 치듯한 사람들이 령구가 들어올 길을 터 놓았다. 그러나 령구가 일단 들어가자 텄던 길은 곧 다시 오무라져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선장이와 은희는 역전에 있는 일본려관-마스야(升屋)의 쓰레기통우에 올라섰다. 거기서는 거리가 멀어 말소리를 똑똑히 들을수 없는것이 흠이였으나 그 대신에 쓰레기통의 키 하나만큼 높은 까닭에 눈앞을 가로막는것이 없어서 보이기는 잘 보였다. 타마유칠을 한 쓰레기통이 어지럽기는 해도 2월말-아직은 추운 때라서 냄새는 별로 나지 않은것이 그나마 다행이였다. 선희는 마스야의 목담밑에 가 붙어서 발돋움을 하고 보았다. 오빠의 일이 걱정되여 온 정신을 다 령구 모신 어름에 쏟는것 같았다. 령구는 두개의 성냥상자우에 가로 모셔졌다. 수십여개의 만장과 기발들이 바람에 펄펄 나붓기는 가운데 림시로 모은 연단 명색-또 하나의 성냥상자우에 허우대 크고 눈섭이 유난히 검은 문호림이 올라섰다. 조사를 시작하였다.

<<여러분, 주철산동지가 왜 그 귀중한 목숨을 바쳤는지 우리는 잘 알구있습니다. 그리구 누가 누구를 시켜 캄캄한 밤중에 이런 비렬하구 음흉하구 잔인한짓을 했는지 우리는 잘 알구있습니다.>>

첫밗에 그 입에서 말이 이렇게 부풀게 나오니 맨앞에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섰던 경부보란자가 참을 줄이 끊어져

<<중지, 중지!>>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 소리에 분격한 회장자들이 신속하고도 맹렬한 반응을 보였다.

<<계속하시오, 계속하시오!>>

<<그 게목지놈을 부집게루 집어내라!>>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죽여라!>>

<<각을 떠라!>>

<<조용히, 조용히! 계속하시오, 계속하시오. 조사를 계속하시오!>>

<<근청, 근청!>>

소래기를 지른 경부보놈은 새똥이 허옇게 뒤덮인 바위가 들물속에 잠기듯이 회장자들의 분노의 웨침속에 형적도 없이 잠겨버렸다. 문호림이 중둥무이되였던 말을 다시 이었다.

<<주철산동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업적을 남기구 갔습니다. 그의 이루지 못한 뜻을 우리는 반드시 이어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문호림이 이와 같이 조사를 계속하는중에 돌연 단층 목조역사 너머의 승차장에서 증기기관차가 새된 기적소리를 울렸다. 그것은 역구내에서 차판을 끌고 다니는, 굴뚝이 가늘고 높은 구식기관차만이 낼수있는 소리였다. 귀청이 떨어질것 같이 새된 그 기적소리에 눌리워서 문호림의 하는 조사는 바로 옆에 서있는 사람의 귀에도 잘 들리지 않았다. 아직 확성기라는것이 없는 시절이라 조사는 계속한대도 사실상 중지가 될 밖에 없었다. 그 기적소리가 경찰의 고의적인 방해책동인것을 회장자들은 이내 깨달았다.

<<저놈의 기관차를 가 박살을 내자!>>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눈 깜박할 사이에 한 백여명 잘되는 사람들이 인총중에서 뛰쳐나와 혹은 역사의 개찰구를 뚫고 혹은 목책을 뛰여넘어 눈사태처럼 승차장으로 쏟아져들어갔다. 이윽고 그 듣기 싫던 기적소리가 뚝 그쳤다. 아마 뭇주먹질에 일본인기관사가 잡아당기던 고동줄을 놓고 쭉 뻐드러진 모양이였다. 그동안에 증파된 경찰대가 회장다들이 활화산의 용암처럼 뒤번지는 역전광장을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형세가 긴박해진것을 보자 선희가 재빨리 쓰레기통에 올라섰는 두 아이께로 쫓아와 안 가겠다고 앙탈들 하는것을 억지로 끌고 광장을 벗어났다.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을 느끼는 선희가 한손에 하나씩 손목을 잡아끌고 나오는데 큰길 모통이에서 경비를 서던 젊은 순사 하나가 선희에게 알은체하며 눈인사를 하였다. 선희는 그게 누구인지 언뜻 생각나지 않아 인시성으로 그저 고개만 한번 까댁하고 지나오는데 눈이 밝은 선장이가 대번에 알아보고

<<나 벌 세우던 주재소 순사.>>하고 선히가 겨우 알아들을만큼 가는 소리로 일깨워주었다. 선희가 그제야 깨도가 되여

<<오 그렇지! 너 깨묵 먹으며 벌서던... 그때 그 순사지?>> 하고 우서워서 픽 웃으니 은희는 누이의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깨묵? 무슨 깨묵?...>> 하고 저의 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선장이가 열적어 픽 웃는것을 보고 선희는

<<아무것도 아니다. 좀 빨랑빨랑들 걷지 못해!>>하고 두 아이를 재촉하는것으로 말뒤를 거두었다.
한진사댁 속을대문앞에 이르러서 선희가 들어와 점심 먹고 가라고 붙드는것을 싫다고 뿌리치고 선장이가 집에를 오니 마침 집에 씨동이 어머니가 와 저의 어머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마주앉은 두 어머니사이에는 신문지에 뭉뚱그린 솜 한뭉치와 새로 끊은듯싶은 광목 한끈이 놓였었다.

<<쌍년이가 아침에 찾아와 돈 쉰냥(5원)을 내놓으면서... 류치장속이 몹시 춥다는데 이걸루 솜옷 한벌, 솜버선 한컬레 얼른 지어 들여보내라잖소. 우리 힘으루 지어 들여보내겠다구 내가 밀막는데두 억지루 떠맡기구 달아나니 어떻거우... 그래서 광목두 뜨구 솜두 사구 하기는 했는데... 나 혼자 손으루 어떻게 할수가 있어야지. 그래 생각다 못해 바지 하나는 점순이 엄마한테 떠맡기구 저고리는 내가 짓기루 했는데... 버선을 어떻거우? 그래 동생 소고를 좀 시켜볼가 해 이렇게 들구 온거요.>>

<<아이구 형님두 별말씀을 다하시우. 수고는 무슨 수고... 어서 두구 가시우. 내 저녁전으루 다 뒤집어서 같다드리리다.>>

씨동이 어머니가 고맙다 치사하고 돌아간 뒤에 선장이가 시험공부를 하려구 책을 들고 나앉으니 머리가 어수선산란해 글이 머리속으로 잘 들어와주지를 않았다.

추천 (3) 선물 (0명)
IP: ♡.50.♡.2
로즈박 (♡.39.♡.172) - 2023/10/22 19:27:56

다들 다치지 말고 무사햇음 좋겟어요..
올려주신덕분에 오늘도 잘 보고갑니당~~

산동신사 (♡.79.♡.155) - 2023/10/22 19:49:21

잘보고 갑니다. 수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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