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18

더좋은래일 | 2023.10.22 17:37:55 댓글: 5 조회: 269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1040


18

선장이가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서울로 올라갈 날자가 닥쳐왔다. 그러나 원산시내외에서의 경찰의 검거선풍은 점점 더 극성을 부렸다. 따라서 로동자들의 총파업은 차츰 폭동으로 변해갔다.물정이 소연한 가운데 일력이 한장한장 뜯기여

1929년 기사년
3월 큼

이런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날 선장이와 그 누이 정실이 사이에 한차례의 대화가 벌어졌다.

<<난 씨동이형님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구서 떠날라우.>>

<<미치잖았니! 시험날자가 인제 한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류치장에 갇힌 사람을 보긴 어떻게 보구 가?>>

<<난 그 형님이 꼭 도망쳐나올것만 같소 두구보오.>>

<<밝은 대낮에 꿈 좀 작작 꾸어.>>

<<그 형님이 성질을 난 잘 알구있거든.>>

<<잘 알면 무얼 해? 류치장은 려관이 아니야.>>

<<서울 가는거 아주 고만두까?>>

<<왜 어디가 근질근질해나니? 아버지가 아시면 뼈두 못 추릴라구!>>

<<그까짓 공부는 해 무어 하구? 아버지 따라 배나 타지.>>

<<굴러온 호박을 박차면 밥바가지 차.>>

<<누나 생각엔 씨동이형님이 어떻게 될것 갓소?>>

<<경찰서장한테 가 물어보렴.>>

<<쌍년이누나가 가엾어서 난 원산을 떠날 생각이 없소.>>

<<쌍년이가 아마 너 없으면 죽지.>>

<<남의 집에 가 얹혀살 일을 생각하니 도무지 맘이 내키지를 않소.>>

<<괜한 소리 말아. 벌써 차비까지 다 부쳐왔는데... 이제 전보 한장 쳐서 서울역에 도착할 시간만 알리면 다야... 복에 겨워 매화타령이냐?>>

<<뺑덕할미 알지? 약방집아들. 그 자식두 간다는데.>>

<<그럼 더 잘됐구나, 심심찮구.>>

<<걔넨 돈이 있거든.>>

<<너두 걔 부럽잖을테니 두구봐.>>

이때 한잔사댁 안방에서도 선희와 그 홀로 된 어머니-모녀사이에 이와 비슷한 대화가 벌어졌다.

<<오빠가 저렇게 숨어다니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에... 나 맘이 안 놓여 서울길을 어떻게떠나요? 떠나더라도 결말이나 보구 떠나야지요.>>

<<네가 있으면 안될 일이 되구... 네가 없으면 될 일이 안될가봐? 당찮은 념려 말구 어서어서 떠날 준비나 해. 오빠 일은 네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야.>>

<<그래두.>>

<<그래두는 무슨 그래두야. 괜히 드러다간 게두 구럭두 다 놓친다. 어른들이 할 걱정가지 네가 도맡아 할 작정이냐? 네가 제 코만 제 손으로 씻어두 이 에미는 근심 하나가 덜려.>>

<<아까두 사복형사가 중문간에 들어와 기웃기웃하던데... 어떻게 걱정이 안돼요?>>

<<네가 같이 걱정을 해주면 걱정거리가 그만큼 줄어든다던? 괜한 소리 말구 어서 시험공부나 잘해. 할아버지가 한번 말씀을 하신 이상은 인제 요개할나위가 없어. 너는 사흘안으로 떠나야 해.>>

<<여러해 다닌 학교를 졸업식에두 못 참가하면... 섭섭해 어떻거지요.>>

<<졸업식 날자가 입학시험 날자하구 상치되는거야 어떻거니. 섭섭해두 할수 없지.>>

<<입시에 만일 합격이 되면... 생전 해보지 않은 기숙사생활을 어떻게 하지요?>>

<<미국류학을 가겠달 때의 호기는 어디루 가구... 그따위 줄난 소릴 하니!>>

<<은희두 보고싶구 엄마두 보구싶구... >>

<<방학엔 안 오니?>>

<<오기야 오지만...>>

<<인제 고만하구 건너가봐. 오빠 일때문에 엄마는 머리가 묵사발이 될 지경이다. 제발 좀더 말 안하게 해다우.>>

<<코트는 그럼 어떻걸가?>>

<<서울 가 맞춰 입으렴. 원산서 지은건 아무래두 촌티가 나. 남우세스레 서울 가 그런걸 입구 다니겠니. 지난번에 박참봉네 손녀가 입구 온거 너 못 봤니? 얼마나 사치하더냐.>>

떠날 날을 하루 앞두구 정실이가 선장이를 데리고 쌍년이에게 하직인사를 시키러 왔다. 서쪽 하늘에 쪼각달이 걸려서 복잡다단한 인간세상을 지켜보는 밤이였다.

<<언제 떠난다구?>>

<<래일밤 열한시 차.>>

<<그럼 서울 가 내리는건?>>

<<아침 일곱시라나봐... 아까 낮에 전보를 쳐놨다...>>

쌍년이가 선장이를 향하여

<<아아주, 서도령이 서울행차를 하시게 됐군...>> 하고 웃는데 정실이가 옆에서

<<쌍년이누나가 가엾어서 원산을 더날 생각이 없단다.>> 하고 주를 달았다. 쌍년이가 얼굴이 금세 환해지며 선장이를 보고

<<정말이냐?>> 하고 다지니 선장이는 게면쩍어 얼굴을 붉히며 그런 말 한다고 저의 누이에게 눈을 흘겼다. 정실이가 눈치를 모르는체하고

<<씨동이형님이 나오는걸 보구 가겠다, 남의 집에 얹혀살 일을 생각하니 맘이 내키지 않는다. 공부 걷어치우구 아버지따라 배나 탈가보다... 별의별 궁리가 다 많다.>> 하고 있는대로 까발리니 쌍년이는 손벽을 치면서

<<조꼬만게 정말 맹랑찮구나.>> 하고 깔깔 웃었다. 쌍년이가 차반에 <<구리보로>>라는 밤알같이 생긴 과자를 담아내놓고 또 귤을 갖다놓고 어서 먹으라고 선장이를 권한 다음 귤 하나를 정실이손에 쥐여주고 저도 하나 껍질을 벗기면서

<<그래 선희 오빠는 어떻게 됐니?>> 하고 물었다.

<<그날 장례식에서 란리가 난 뒤로 어디 가 숨었는지... 집에서들두 몰라. 지금 날마다 댁사랑에 사복형사들이 나와 냄새를 맡구 다니는 판이지 뭐냐.>>

<<그럼 이번에 들리면 무사하지 않겠구나.>>

<<무사하지 않다뿐이야. 전번에 제 발루 걸어나오란 호출이였으니까 큰 문제 없었지만... 이젠 영낙없이 구류가 아니면 체포래.>>

<<구류는 뭐고 체포는 뭐니?>>

<<나도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다 붙잡아가는거겠지. 수갑을 채워가지구.>>

<<그 집두 인제 큰일났구나.>>

<<누가 아니라니, 걱정이다.>>

<<그래 선희는 어떻거니, 서울을 간다던?>>

<<응, 가.>>

<<언제?>>

<<래일... 아마 선장이하구 한차에 가기두 쉽지...>>

쌍년이가 웃으며 선장이를 보고

<<한진사댁 아가씨하구 동행을 하시게 됐군, 우리 서도령이.>> 하고 놀리니 선장이는 말이 없이과자만 먹는데 정실이가 턱으로 저의 동생을 가리켜보이며

<<아가씨두 저걸 아주 귀애하지 뭐냐.>> 하고 말하였다. 쌍년이가 대번에

<<당연하지야. 인물루 보나 성품으루 보나... 은희에 비길가!>> 하고 마치 선장이가 저의 작품이기라도 하듯이 자랑을 하였다.

이때 한잔사댁 안사랑에는 한잔사께 하직인사를 고하려고 김영하선새이 와있었다.

<<김선생이 서울을 가신다구?>>

<<녜, 학교에서 허울 좋은 면직을 당했으니... 인제 원산바닥에선 출로가 없게 됐습지요. 그래서 서울에 제 학생시절의 은사 한분이 계신데... 거기다 이런 사정을 편지루 여쭤보잖았겠습니까. 그랬더니 답장을 주셨는데 현재 우리 여기 학교 도서관에 변변치 못한 자리 하나가 비였으니 와있어 볼라거든 와있어보라는거지뭡니까.>>

<<어 그래요, 그 학교는 무슨 학굔데?>>

<<저 보성전문이라구... 이름있는 학굡니다.>>

<<보성전문? 잘 알지... 수송동에 있는.>>

<<아니 지금은 화동으로 옮겼답니다.>>

<<그래? 수송동에서 화동은 지척이지, 안국동 네거리만 지나서면 고대니까.>>

<<할아버님께선 서울 지리에 소상하십니다.>>

<<하하. 나두 젊어서 서울 가 신식물을 먹구 온 사람이요.>>

<<아, 녜. 그러신줄은 몰랐습니다. 황공합니다.>>

<<그래 그 선생님은 거기서 무얼 하시는데?>>

<<교수합니다.>>

<<교수, 그러구보면 김선생은 정히 전화위복이시구려, 이 원산 구석에 묻혀있느니... 도리여 잘됐단 말이요.>>

<<글쎄올시다. 어떻는지 그건 갑좌야 알겠습니다.>>

<<사람의 새끼는 서울루 보내구 마소의 새끼는 시골루 보내란 말이 있잖소. 어쨌든 가는게 좋지요. 잘돼쒜다.>>

한진사가 담배를 붙이느라고 조고받던 말이 잠시 동안이 떴다.

<<정희씨는 그저 소식이 없습니까?>>

한진사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말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래두 할아버님께서 너무 근심을 마십시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라구요. 정희씨는 신념을 위해 신명을 거는 훌륭한 혁명갑니다. 때를 만나면 큰일을 할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의 동량지잽니다.>>

<<고맙소. 나두 그 애가 하는 일을 몰리해하게 말린적은 없쉐다. 다만... >> 하고 로이는 한숨을 짓는것으로 밀막음을 하였다.

이튿날오전에 선장이가 김영하서새께 하직인사를 고하러 갔따가 선생님도 같은 밤차로 서울을 올라가게 된것을 알고 좋아서 깡충깡충 뛰다싶이 하였다.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과 한차를 타고 가게 되였는데 어찌 기쁘지 않으랴!

밤 11시 20분, 우연히 동행하게 된 네 사람-김영하선생과 한선의화 서선장이 그리고 약방집아들 뺑덕할미-곽부덕이가 역대합실에서 만나 서로 인사들을 나누고 또 제각기 배웅나온 가족들의 전송을 받으며 한차간에 올랐다. 그러나 넷이서 한좌석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하선희는 선장을 데리고 통로 오른쪽 차창밑에 자리잡아 앉고 김영하선생은 통로의 비슥맞은편인 왼쪽 차창밑에 곽복덕-부르기 매우 페로운 이름을 가진 제자를 데리고 자리잡아 앉았다.

네 사람의 몸을 실은 완행렬차가(이때는 경원선에 아직 급행렬차라는것이 등장을 하지 않았었다.) 고정하게 한 정거장 한 정거장 빼놓지 않고 차례로 들리며 밤새도록 어둠속을 달려서 차창밖에 아침안개 낀 연선의 농총풍경이 묵화처럼 아렴풋이 드러날 무렵의 일이다. 네 사람이 뒤에 두고 온 원산, 그 원산경찰서의 류치수들이 통졸임정어리모양 요지부동으로 빼곡이 들어찬 초만원 류치장에서는 일장의 활극이 벌어졌다.

렬차가 속력을 푹 줄이며 서서히 의정부역구내에 미끄러져 들어와서 홈에 나섰던 역원들이 입입이

<<의정부-!>>

<<의정부-!>>

늘어진 소리로 역명을 웨칠무렵 원산경찰서 류치장에서는-이날 이른아침 염병에 까마귀 울음소리만큼이나 듣기 싫은

<<기상!>>

<<기상!>>

웨치는 소리가 나 모두들 뛰여일어나 점호를 마친 뒤에 변기들을 내갈 때 양시동이가 사전에 동지들과 약정한대로 자기 번도 아닌데 얼른 자진하여 변기를 들고 나갔다. 씨동이는 그동안 여러날 두고 탈출할 계획을 짰었다.

변기들을 쏟아버리는 변소의 지붕은 그리 높지가 않아 처마기슭을 붙잡고 몸을 솟구치면 괴히 어렵지 않게 지붕에 올라설수가 있을것 같았다. 변소는 높직한 벽돌담밑에다 바싹 붙여지은것이므로 변소 지붕에만 올라서면 벽돌담을 넘기는 크게 힘들것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벽돌담우에 가시철이 쳐있어서 빠져나가거나 뛰여넘기가 용이치 않은것이였다(이때는 아직 최신과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군함들도 석탄을 때서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절이라 전기촐조망 같은것은 더구나 보급되지를 않았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하면 빠져나갈수도 있지마는 무엇에 쫓겨 황급히 서두는 경우에는 뛰여넘거나 빠져나갈 가망성이 희박하였다. 그러나 난점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벽돌담밖이 곧 경찰서 테밖의 길이나 공지인것이 아니라 경찰서의 테안인 본청사옆댕이에난, 정문으로 통하는 길이였다. 그러나 이런것 저런것을 다 꺼리고 사리고 할 형편이 못되였다. 도망을 칠 놈이 피나무안반 같은 계제를 기다리다가는 호호백발에 오무라미가 될 때까지 거기 그대로 엎드려있어야 한다.

<<담당님>>이라 불리는 류치장지기 순사가 열쇠묶음을 늘어뜨리고 똥내를 피하여 멀직이 서서 권연을 꼬나물고 류치수들이 변기 쏟아버리는것을 지켜보는중에 별안간 감방안에서 여러 목소리가 합창으로 <<적기가>>를 드립다 불러대였다. 그러자 중행랑처럼 죽 벌려 지은 여느 감방들에서도 발들을 구르며 집이 떠나갈듯한 큰소리로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는 붉은기를 지킨다...>> 하고 불러대였다. 담당순사가 급해맞아 입에 물었던 권연을 빼내 동댕이치고 뛰여들어가며

<<뒈지구싶으냐 이놈들!>>

게목을 지르는 동안 씨동이는 얼른 변기를 내려놓고 표범같이 날쌔게 변소의 처마기슭을 붙잡는결에 몸을 불쑥 솟구쳤다. 지붕우를 저벅저벅 걸었다. 벽돌담과 마주섰다. 또 불쑥 몸을 솟구쳤다. 가시철을 붙잡고 담장우에 엉거주춤 섰다. 두손으로 빠져나갈틈을 비집었다. 당황망조한 담당순사가 감방안의 소동을 같이 번을 서는 동관에ㅅ게 밀맡기고 다시 변소께로 뛰여나왔을 때 씨동이는 이미 가시철을 새로 갈이입은 솜옷을 네댓군데나 찢기며 빠려나가 담너머 땅바닥에 사뿐 뛰여내린 뒤였다. 씨동이는 슨냥이아가리를 일단 벗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호랑이아가리가 기다리고있었다. 씨동이는 쏜살같이 정문께로 쫓아왔다. 정문에 파수서는 경찰이 있는것을 모르는바는 아니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뒤담은 너무 높아 사닥다리 없이는 도저히 넘을수가 없었다. 파수선 놈을 때려눕히고 빠져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머리가 뜨거워나 그런 무모하기짝이 없는 계획이 성공될걸로 믿어졌다. 옹이에 마디로 일수까지 사나왔다. 씨동이가 가까이 가기전에 저편에서 먼저 발견하고

<<섰거라!>>

소래기를 냅다 질렀다. 그래도 시위를 떠난 화살은 멎어서지를 못한다. 하품에 딸꾹질로 여느때는 패검만 하던 경찰들이 요즈막은 파업로동자들의 폭동이 물이랑처럼 여기서 일어났다 저기서 수그러졌다 하는 바람에 많이는 권총들을 찼었다. 섰거라 소리를 세번 연거퍼 질러도 씨동이가 듣지 않고 불에 덴 황소처럼 그대로 내달아오니까 파수 섰던 경찰은 잽싸게 권총을 꺼내들고 엄지손가락으로 실린더를 풀었다. 탈옥수를 겨낭하고 두방을 련발하였다. 한방이 명중하였다. 한알이 권총탕이 씨동이의 뺨을 뚫고 들어가 목덜미로 빠져나갔다. 씨동이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가 얼른 다시 뛰여일어나는데 급살나게 쫓아온 경찰이 한놈도 아니고 두세놈씩 한꺼번에 들이덤볐다. 총맞은 탈옥수를 꼭뒤잡이하는결에 수갑을 절컥 채워놓고 주먹질, 발길질로 초다듬이질을 하였다. 피투성이된 씨동이는 경찰서의 대문을 한발자국 나가보지도 못하고 도로 끌려들어와 세멘트바닥에 사지를 펴고 늘어졌다...

이런일이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는 선장이가 청량리, 왕십리, 서빙고, 룡산... 서울을 끼고 도는 철도의 마디 같은 정거장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지난해 봄 학교에서 서울, 개성, 인천등지로 수학려행을 올 때 자비로 부담하려는 려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선장이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수학려행에 빠졌었다. 그래서 약방집아들 곽복덕이에게는 그 정거장들이 구면이였지만 선장이는 초면이였다. 선희가

<<뭘 그리 정신없이 내다보니?>> 하고 웃으며 저의 얼굴도 차창에 가까이 갖다대니 선장이는

<<한강의 물이...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맑소.>> 하고 딴전을 폈다

서울역, 일명 남대문정거장.

선장이의 가슴은 뛰놀았다.

(어떠한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있을가? 엄마는 지금쯤 무얼 하고있을가? 누나는 지금 어떻거고있을가? 쌍년이는? 씨동이는? 그리고 아버지는?...)

서울역에 내리니 김영하선생은 그 은사의 몸을 받은, 피차에 안면있는 젊은 남자 하나가 마중을 나왔고 또 한선희는 한진사의 옛친구의 딸이라는, 전에 원산을 한두번 다녀간적 있는 나이 지긋한 전도부인과 선희 년갑세의 그 딸이 마중을 나왔었다. 그리고 곽복덕이는 그 륙촌형이라는 십팔구세의 훤칠한 롱구선수 같은 중학생이 마중을 나왔었다. 선장이를 맞이한것은 귀부인처럼 단장을 하고 악어가죽으로 만든 핸드빽을 든 박숙자, 선장이의 외칠촌아주머니, 변호사 연갑수씨의 안해였다. 아이낳이를 못해봐 서른다섯살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이 녀자는 시집을 올 때 거액의 지참금을 가지고 왔다는 소문이 자자하였었다. 박숙자가 선장이를 보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가지고 앞으로 쫓아나와 손목을 덥석 잡으며

<<그동안에 더 컸구나!>> 하고 반기였다. 그리고 곧 다시 선장이의 동행인 선희를 향하여

<<선희두 한차에 오는건 몰랐어.>>

말하고 고개짓으로 전도부인을 가리키며

<<고대 이 아주머니께 말씀을 들어서 알았지.>> 하고 제 말에 동을 달았다.

선장이가 김영하선생과 갈라지는 인사하고 또 곽복덕이더러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동안에 박숙자는 택시 한대를 불렀다. 원산에는 시내에서 멀고 가깝고 균일적으로 차임을 1원씩 받는 그런택시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차도 서울처럼 이런 상자모양의 세단차가 없었다. 박숙자가 사양하는 ㅅ 사람을 끌어다가 앞에 앉아 집을 가르치라고 전도부인의 딸부터 선희의 트렁크 바스케트와 함께 앞좌석에 밀어넣은 다음 나머지 두 사람-전도부인과 한선희를 차례로 뒤좌석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올라타는데 선장이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박숙자가 선장이를 보고 웃으며

<<네 그 보따리는 앞에 앉은 누나를 주구... 너는 내가 안구 타면 되잖아...>> 하고 곧 선잔이를 끌어올리면 무릎에 앉히는데 선장이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왼새끼를 꼬았다. 남대문을 향하고 달리는데 차가 조금만 들놀아도 궁둥이가 박숙자 넙적다리에 털썩털썩 부딪쳤다. 선장이가 난처하여 엉거주춤 궁두이를 좀 드니 박숙자가 왈칵 끌어당겨 안으면서

<<편히 앉지 못해?>> 하고 나무람 쇰직하게 말하였다. 선장이가

(모르겠다. 될대로 돼라!) 하고 눈을 꼭 감는데 박숙자가

<<봐라, 저게 남대문이다.>>

소리하여 눈을 번쩍 떠보니 남대문은 눈 깜작할 사이에 벌써 뒤로 지나가버렸었다. 모두 해서 한 20분 밖에 안 걸리는 전 로정이 젊은 아주머니 무릎에 앉은 선장이에게는 지리감스럽게 길었다. 효자동 전도부인네 집까지 세 사람을 먼저 실어다주고 선장이가 무릎에서 좌석으로 내려앉은 뒤에 차머리를 돌리여 다시 총독부앞을 지나 안국동 네거리를 남쪽으로 꺾이여 조금 더 오니 거기가 곧 견자동 연갑수변호사의 사무소 겸 주택이였다.

<<이젠 다 왔다, 내리자.>>

자동차 멎어서는 기척을 알아차린 모양으로 <<연갑수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이 걸린 현관문이 안으로부터 열리며 녀자의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나이는 한 30이 되였을가, 그 퉁퉁한 얼굴과 실눈과 빈대코가 마음씨 무던하다는 표징같이 첫인상이 벌써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녀자였다. 그 녀자가

<<아이구 아씨, 도련님.>> 하고 반색하며 뛰여나와 선장이 손에서 보따리를 빼앗아들고

<<나리께서 여태 기다리시다가... 손님이 오셔서 고대 사무방에 드셨지 뭐에요.>> 하고 아씨 즉 박숙자에게 고하니 박숙자는 웃으면서

<<도련님 인물이 어떤가... 어멈 좀 자세히 보게.>>하고 말하였다. 어멈이 그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선장이의 얼굴을 면구스럽도록 들여다보더니

<<아이구, 어쩌면 저리도 귀하게 생기셨을가!>>하고 찬탄을 하는데 박숙자는 흐뭇해서 선장이와 어멈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생글생글하였다. 박숙자가

<<자, 들어가자. 이게 이제부터 네가 살 집이다. 아저씨 뵙거든 인사를 깍듯이 해야 해.>>하고 말을 이른 다음 다시 어멈을 돌아보고

<<나리 아침진지는?>> 하고 물으니 어멈은

<<아직 안 잡수셨에요. 아씨 오실 땔 기다리시느라구.>>

대답하고 선장이의 보따리를 한손에 든채 먼저 부지런히 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선장이는 제가 갑자기 <<도련님>>이 된데 놀라 넋이 물구나무를 서는통에 잠시 어리뻥뻥하여 지척을 분간 못하였다. 박숙자아주머니가

<<어서 신발 갈아신어라.>> 하고 재촉하는 소시를 듣고 비로소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본즉 청록색타일을 깐 현관에서 조금 턱이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루우에 슬리퍼가 여러컬레 벌려있었다. 언뜻 보니 집의 구조가 현관에서 오른편에 난 복도를 들어가면 살림방이고 현관에서 왼편으로 꺾이면 변호사의 사무실인 모양이였다. 선장이가 발보다 어지간히 큰 슬리퍼를 발에 꿰는중에 사무실 유리문안에서 전화의 벨이 울리며 곧 중년남자의 잘 울리는 목소리가

<<아 녜 그렇습니다. 연입니다. 녜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쌍년이가 놀리느라고 한 말 그대로 촌놈 서선장이가 길을 잃고 룡궁에 잘못 들어온 어느 동화의 주인공처럼 송구한 마음을 안고 박숙자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야마다가 지어놓고 쌍년이를 들인 집을 지상 최고의 대궐로 알아봤던 선장이는 박숙자아주머니의 거처하는 방이 그보다 몇배 더 으리으리한데 놀라고 또 눌려서 바늘방석에 앉은것처럼 앉음앉음이 어색하고 거북하고 또 편치 않았다. 박숙자아주머니가 웃간에 내려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어멈이 우유 두컵과 납작납작하게 썬 식빵에다 무엇을 발라서 구운것을(그것이 토스트라는것을 선장이는 후에 알았다)두접시 다반에 담아들고 들어와 선장이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웃간을 내려다보며

<<아씨두 어서 오셔서 초벌여기하세요, 나리께서 언제 들어오실지 모르는데.>>

말하고 곧 다시 선장이에게

<<어서 드세요. 도련님.>>

친절하게 권하며 상글상글 웃었다. 이날 아침 선장이에게는 맨<<난생처음>>투성이였다. 세단차도 난생처음 타보았고 도련님소리도 난생처음 들어보았고 가죽슬리퍼도 난생처음 신어보았고 또 우유도 토스트도 난생처음 먹어보았다. 한동안이 지나서 복도에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숙자아주머니가 재빨리

<<아저씨 들어오신다.>> 하고 뚱겨주어서 선장이는 부지런히 일어나 떡 서있다가 연변호사가 들어서는 발밑에서 너푼 절을 하였다. 연변호사가

<<오 왔구나. 어디 좀 보자, 어떻게 생겼기에 그렇게 야단스레 선전을 하나.>> 하고 웃으며 선장이를 끌어당겨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더니

<<딴을 그럴만두 하구나.>>하고 선장이의 얼굴과 자기 안해의 얼굴을 두어번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선장이를 놓아주고 물러앉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하 웃었다.

잘 차린 아침상이 들어와 늦은 조반들을 먹어치우고 주인 변호사가 다시 사무실로 나간 뒤에 숙자아주머니가 선장이를 데리고 이제부터 선장이가 쓰게 될 방을 보러 갔다. 복도 막바지에 달린 단간방인데 동쪽으로 유리창문 하나가 나고 북쪽으로는 장지문을 단 일본식벽장-오시이레가 젖빛의 갓을 씌운 전등과 하늘색 책꽂이가 놓인 책상이 새 주인의 광림을 기다리고있는것 같았다. 장판방 한가운데 들어서서 숙자아주머니가 보석반지 낀 손을 선장의 어깨에 얹고

<<어떠냐?>> 하고 묻는데 선장이는 말문이 막혀 그저 덤덤히 숙자아주머니의 웃음기 띤 얼굴만 쳐다보았다.

<<첫째 말 잘 듣구, 둘째 공부 잘하구... 알았지? 그러기만 하면 무어나 다 갖추어줄테니까... 알았지?>>

선장이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래를 한번 끄덕하였다. 선장이 눈앞에 미지의 세계가 펼쳐졌다. 선장이는 기쁨보다도 불안이 앞을 서서 저도 모르게 몸을 옹송그렸다.

연길이야기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3) 선물 (1명)
IP: ♡.50.♡.2
더좋은래일 (♡.50.♡.2) - 2023/10/22 20:20:18

여기까지 쓰고나니 선장이가 김학철선생을 배경으로 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들의 댓글과 보내주신 포인트,게시물추천에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로즈박 (♡.39.♡.172) - 2023/10/22 23:23:27

저도 살짝 그런 생각이 들엇댓어요..예전에 그분 사진을 본적이 잇엇는데 키도 크시고 훤칠하니 잘 생기셧죠..ㅎㅎ
암튼 이렇게 올려주신 덕분에 잘 보고잇습니다..
고맙습니당~~

연길이야기 (♡.226.♡.44) - 2023/10/23 03:03:29

맞습니다.
본인 사연을 소설화 한것이지요.
최후의 분대장,은 완전한 자서전 입니다.

한국판 최후의 분대장에는
아드님이 되는 김해양의 글에서
다른데서 볼수 없는 더 많은 내용이 있더군요..

그나저나
타자해서 올리신다니 그 로고가 대단합니다.
조글로에 격정시대 31장 까지 올려져 있더군요.
타 사이트에 글 옮겨줘도 많은 사람들이 고맙게 생각할거 같습니다.

고향이 이젠 추워 진다고 하더군요..
건강에 류의 하시면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더좋은래일 (♡.50.♡.81) - 2023/10/23 05:36:57

감사합니다^^

qjsrotqmf (♡.50.♡.75) - 2023/10/23 17:36:35

오늘도 잘 보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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