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26

더좋은래일 | 2023.10.26 09:21:58 댓글: 1 조회: 273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1865

26

가로수의 누른 잎이 분분히 떨어져 길가는 사람들의 발에 부스럭부스럭 밟히는 계절이 되였다. 어느날 선장이가 숙자아주머니의 심부름으로 수표교근방에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탑골공원앞에서 김영하선생을 오면가면 만났다. 김영하선생은 사각모를 쓴 어던 학생 하나와 같이 무슨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고있었다. 사제가 오래간만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바로 옆에 한쪽어깨에 카메라를 걸친 허우대 큰 서양사람 하나가 저의 양복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과 백동전을 한웅큼 움켜내더니 닭에게 모이를 주듯 공원문전 넓은 길바닥에다 흩어뿌리는것이였다. 선장이와 김영하선생과 사각모를 쓴 학생이 모두 의아쩍은 눈으로 그 해괴한 거동을 지켜보는중에 공원문앞에서 구걸을 하던 거지들과 어중이떠중이들이 와 몰려들어 땅바닥에 널린 그 돈들을 줏느라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본 그 서양사람은 얼른 어께에서 카메라를 내리더니 돈을 줏느라고 서로 밀치락닥치락 쌈질하는 광경을 <<잘칵>> 하고 한장 <<잘칵>> 하고 또 한장... 사진을 찍는것이였다. 선장이 입에서

<<저런!>> 하는 소리가 나오기보다 먼저 옆에 섰던 김영하선생의 동행-사각모 쓴 학생이 번개같이 몸을 돌쳐 쫓아가더니 그 서양사람의 손에서 막 찍고있는 카메라를 홱 잡아채였다. 불의에 카메라를 빼앗긴 서양사람이 분이 나서 무어라고 고함을 지르며 카메라를 도로 빼앗으려고 덤벼드니 그 학생은 한손으로 서양사람을 밀어내치며 다른 한손으로 멜빵을 거머쥔 카메라를 한번 휘둘러 아스팔트바닥에다 사정없이 메여쳐 박산을 내놓았다. 무슨 소동이 일어난줄 알고 공원문전 파출소에서 순사 둘이 긴장하여 패검들을 누르며 쫓아나왔다.

<<여러분, 외국사람들앞에서 이런 수치스러운짓을 하지 맙시다! 민족의 긍지를 지킵시다! 민족의 자존심을 잃지 말잔 말입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사람들을 향하여 뭬치고 그 학생은 곧 마사진 카메라에서 필림을 북북 뜯어내였다. 모여선 사람들이

<<옳소!>>

<<잘하다 잘해!>>

공명을 하고 박수들을 쳐서 기세를 올릴 때 두 순사가 사람들을 밀어제치며 뛰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앙? 무슨 일이야?>>

<<왜들 이렇게 모여섰어? 웬 수선들이야?>>

경찰이 개입하는것을 보자 서양사람은 사기가 오르는 모양으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가지고 얼른 앞으로 나서서 손짓을 해가며 무어라고 지껄여대였다. 그러나 순사들이건 둘러선 사람들이건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각모 쓴 학생이 볼꼴없이 된 카메라와 뜯어낸 필림을 앞선 순사에게 건네주며 짧은 몇마디 말로 사유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강경한 태도로

<<이건 우리 민족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욕입니다. 우리 저 무례한 외국사람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구 다시는 이런짓을 안하겠다는 다짐두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요구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숭외사상에 물젖은 순사들은 물문곡직 서양사람의 편을 들어 눈방울을 굴리며 그 학생을 되려 련행하려 하였다. 순사들의 무리한 처사를 보고 김영하서생이 분연히 뛰쳐나와 따지고 들었다.

<<이건 무슨 까닭입니까? 사단을 빚어낸 장본인을 놓아두고... 그걸을 제지한 사람을 단속하는건...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둘러선 사람들의 련쇄반응적으로 분격하여 입입이 노성을 발하였다.

<<죄 없는 사람을 왜 붙잡느냐?>>

<<당장 놓아주어라!>>

<<저놈의 양코배기를 족쳐라.>>

<<노려보면 어찔테냐?>>

<<한대 안겨라, 망할 자식!>>

사태가 크게 벌어질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순사들은 엄포로 붙잡은 그 학생을 우물쭈물 놓아주었다. 그리고 참혹하게 마사진 카메라와 빛을 보인 필림을 골이 나 코를 벌름벌름하는 서양사람에게 돌려준 뒤 곧 두팔을 내저으며

<<해산,해산!>>

<<한군데 모여섰지 말구 어서들 흩어져! 어서어서 흩어져!>> 하고 소래기드을 질렀다. 군중과 경찰 사이에 떠돌던 일장의 살기가 우습게 사라졌다. 카메라는 마사졌고 학생은 놓여났기때문이다. 손재수가 터진 양코배기의 몰골을 비웃으며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갔다. 이때다. 허리에 찬 방울묶음을 요란스레 절렁거리며 신문배달 하나가 뛰여왔다. 한아름 안은 호외를 행인들에게 닥치는대로 나눠주며

<<호외요, 호외!>>

<<호외! 중앙일보 호외!>> 하고 웨쳐대는 바람에 흩어져가던 사람들이 혹은 발을 멈추고 혹은 되돌아서서 호외를 받아보려고 신문배달에게로 모여들기도 하고 또 앞길을 막아서기도 하였다. 호외는 물론 무료였다. 선장이도 김영하선생도 사각모를 쓴 학생도 빠지지 않고 한장씩 받아쥐였다. 해산하라고 고함을 치던 말상의 조선인순사도 파출소를 대표라도 한것처럼 나와 한장 덥석 받아쥐였다. 재수가 옴붙은 서양놈만 박산이 난 카메라를 한손에 드리운채 오만상을 찡그리고 서서 조선사람들의 호외 받아보는것을 구경하였다


광주에서 조선학생들과 인본학생들이 충돌하여 대혈투 전개
기인은 조선녀학생들에 대한 일본인중학생들의 민족적멸시


호외에는 이러한 눈에 띄는 표제밑에 경찰이 출동하여 학생들을 대량적으로 검거하였으나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된다는 보도와 평범한 근로자들이 투쟁에 참가하였다는 기사가 굵은 활자로 생생하게 찍혀 잉크냄새를 풍기고있었다.

선자리에서 제각기 기사들을 읽고나서 김영하선생과 사각모 쓴 학생과 선장이는 잠시간 말이 없이 여섯 눈만 마주보았다. 세사람은 다같이 미구에 불어닥칠 폭풍우를 예감하였다.

이튿날 학교에서는 광주에서 일어난 류혈충돌외에는 다른 화제가 거의 없었다. 도처에서 수군덕거리는것이 광주요 검거요 혈투요 조선학생이요 조선녀학생이였다.

방과후에 선장이가 집에를 돌아오니 숙자아주머니가 곧 큰방으로 불러들여 먹음직스러운 감이 담긴 차반을 앞에다 밀어놓아주었다.

<<먹어라 어서... 하나두 안 떫다.>> 하고 숙자아주머니는 선장이의 껍질을 벗기는것을 한참 보다가 느닷없이

<<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지?>> 하고 넘겨짚어 물었다. 선장이는 과일나이프 쥔 손을 잡시 멈추고

<<아니, 아무 일두 없었는데요.>> 하고 천연덕스레 딴청을 썼다. 선장이가 그동안 남의 집에 얹혀살자면 때로는 거짓말도 해야 한다는것을 배웠던것이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에 맘을 쏟아야지 딴짓을 하는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야. 대체 요새 아이들은 쩍하면 무슨...>>

숙자아주머니의 명토없이 하는 사설을 선장이는 잠자코 듣다가 사설이 더 나오지 못하게 가로막으려고 상글상글 웃으며 껍질 다 벗긴 감을 얼른 숙자아주머니 입에다 갖다대였다. 숙자아주머니도 그제는 하는수 없던지 픽 웃고 사설을 그만두고 감을 한입 베물었다. 선장이의 그러한 장난기 어린짓에서는 천연의 귀염성이 드러나 그럴 때마다 숙자아주머니는 저절로 눈이 가늘어지군 하는것이였다.

밤에 선장이가 숙제를 하고있는데 어멈이 홍차 한잔을 차반에 받쳐들고 들어오더니 차반을 내려놓고 선장이 귓전에다 입을 갖다대다싶이 하며

<<아까 낮에 김장독을 사러 락원동엘 갔었지요. 그런데 조선극장앞에서 눈결에 댁 나리가 택시를 타구 지나가시는걸 봤지 뭐예요.>>

속살속살 말하고 웃는데 본디 가는 실눈이 아주 감겨져 한일자가 되였다

<<그게 무에 그리 신기할게 있어?>>

<<그냥 택시만 타셨다면야 신기할게 무에 있에요, 색다른 사람하구 같이 탔으니까 말이지.>>

<<색다른 사람? 무슨 색다른 사람?>>

<<그것 보셔.>>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할게지.>>

<<글쎄 머리를 이렇게 야단스레 지지구 분을 하얗게 바르구 또 눈섭을 초생달모양으로 그렸는데... 입이란건 영낙없는 쥐잡아먹은 고양이지 뭐예요.>>

둘이 입을 막고 웃다가 선장이가

<<쉬, 아주머니 아시면 큰일 나.>> 하고 손을 내저으니 어멈은

<<누가 아니래요. 요전처럼 또 한바탕 란리가 나라구요. 도련님께니 하는 말이지.>>하고 웃음을 거두었다.

<<난 아주머니가 정말 가엾어.>>

<<아씨는 남편복이 있는것두 같구 없는것두 같구... 알수가 없예요. 속복은 없구 겉복만 있다구나 해야 옳을지.>>

선장이는 연갑수가 새삼스레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숙자아주머니를 가 위로해주고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까닭없이 가 위로를 한다면 도리여 긁어 부스럼으로 낌새를 채겠기에 그만 물러앉고말았다.

<<어멈 남편은 그런 일 없었지?>>

<<그러면이요. 제 털 뽑아 제 구멍에 박을 위인이였는걸요. 정말 진국이예요.>>

선장이는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지식이 많고 사회적지위가 높고 또 돈이 많은 연갑수가 도덕적인 면에서는 한낱 기와공에 불과한 어멈의 남편보다 까맣게 뒤떨어지는것이 한심스러워서였다.

이날 선장이가 등교를 해보니 아래웃층 복도 이르는 곳마다에 격문들이 나붙었었다. 반절한 백로지에 힘있는 붓글씨로 내려쓰고 군데군데 주필을 가한 그 격문들은 어찌나 풀칠을 단단히 하였던지 잡부가 물바께쯔와 밀걸레를 들고 다니며 긁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좀체로 잘 긁어지지를 아니하였다. 하긴 긁어버릴 맘이 없는것을 눈치레로 마지못해 하는 까닭에 일이 더 더딘지도 모를 일이였다. 선장이가 차례차례로 읽어보니 그 격문들의 대의는...


광주학생들의 투쟁을 지지, 성원하자

일제의 식민지폭압통치와 노예교육을 반대하자

오늘의 첫 상학족이 둘리는것을 신호로 동맹휴학을 단행하자


이와 가은것이였다. 교실에를 들어가보니 매개인의 책상속에 삐라 한장씩이 들어있었는데 역시 선동적인 어구로 동맹휴학에 일떠날것을 호소하는 내용이였다. 교실안은 긴장하고 흥분하고 불안하면서도 사기가 오르는 학생들로 웅성웅성하였다. 책가방을 열고 책이나 도시락을 꺼내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제자리에 가 앉은 학생도 거의 없었다. 거지반 다 책가방을 그대로 손에 든채 수군수군 귀속말을 주고받으며 서성거리고있었다. 종소리만 나면 쏟아져나가려고 대기태세를 갖추고있는것이다. 급장 오월봉-아이 아버지가 교단으로 올라가더니 호주머니에서 담배 아닌 백묵꼬투리를 꺼내여 칠판에다 가로쓰기로


광주학생 만세!

조선독립 만세!

전라남도 만세!


이렇게 써놓고 내려왔다. 오월봉이는 전라남도사람-그의 말대로 백제사람-이였다. 곽복덕이가 급히 교단으로 뛰여올라가더니 아무말없이 칠판지우개로 마지막 한줄을 쓱쓱 지워버렸다.

<<난 이럴줄 알구 미리 숙제를 하나두 안해왔다.>>

<<장하다.>>

<<대단한 선견지명이시군!>>

저기압 같은 긴박감에서 좀 벗어나보려고 이런 롱지거리들을 하다가 누군가가

<<이런 엄숙한 시각에 그런 실없는 소리들을 해?>> 하고 탄하는 바람에 롱지거리가 모두 쑥 들어가고 실내는 다시 긴박한 공기로 가득찼다. 복도를 급한 걸음걸이로 달려가고 달려오고 하는것은 이습회의 간사들-상급생들이고 그리고 계속 밀걸레로 벽에 붙은 격문을 긁어내는것은 입이 무겁고 맘씨 무던하고 얼굴이 얽은 잡역 즉 소사였다. 선장이는 긴장한중에도 며칠전에 사설이 더 나오지 못하게 감으로 탈아막던 숙자아주머니의 입이 생각났다. 또 사설을 들을 일이 곧 저승만하였다. 그렇지만 바야흐로 들이닥칠 동맹휴학의 기세앞에 그런것쯤은 구경 문제가 안되였다.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버마재비 폭밖에 안되였다. 동맹휴학의 격정이 선장이의 온 마음을 사로잡은것이다.

이윽고 상학종이 울렸다.

온 교사가 불시에 적습경보가 난 병영처럼 분주스러워지고 또 소란스러워졌다. 복도를 울리는 뭇발자국소리에 이어 열에 뜨인 학생들이 물고를 터친것처럼 동서현관으로 쏟아져나왔다. 괴괴하던 운동장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와글와글하는중에 몇 사람의 목소리가

<<5학년은 무엇들 하느냐?>>

<<5학년 나와라!>>

<<5학년, 5학년!>> 하고 웨쳐서 선장이가 2층 한가운데 5학년 교실들을 쳐다보니 두 교실이 다 잠잠하였다(5학년은 2개 학급뿐이였다). 상학종이 울리자 그 두 교실에서는 정상적으로 수업들이 시작된것이다. 운동장에는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그러는지 한 학생이 일어나오더니 열려있는 내리닫이 창문 하나를 드르륵 내려서 꼭 닫았다. 이제 서너달만 더 참으면 졸업장을 타게 될 5학년생등이 개인적인 리해타산으로 수치스러운 노아의 방주(方舟)를 타고 민족해방투쟁의 홍수를 피하려는것이였다. 한편 교직원들은 쥐죽은듯 사무실안에 들어앉아 사태를 수수방관하였다. 맹렬한 기세로 전국 파급되는 이번 동맹휴학풍조를 뉘 장사로 막아낼것인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 교직원중에는 하나도 없었을것이다.

전교 학생들의 령위격인 김봉구가 또다시 축대끝에 나서서 두팔을 벌려 가라앉히는 형용을 하자 웅성거리던 운동장은 금세 물을 친듯 조용해졌다. 김봉구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동창들의 손결하고 정직한 량심에 호소를 하였다.

<<제군, 광주에선 지금 경찰들이 무슨짓을 하구있는지 압니까? 경찰은 우리 조선녀학새을 까닭없이 모욕한 일본학생을 단속하는게 아니라 그 부당한 모욕에 항희하는 우리 조선학생들을 체포, 구금하고있습니다!...>>

운동장에서는 분노의 웨침들이 터져나왔다.

<<경찰을 족쳐라!>>

<<경찰서를 습격하자!>>

<<동대문경찰서구 종로경찰서구 싹 다 짓마사버리자!>>

잠시 조용해지기를 기다려가지고 김봉구가 다시 얼굴에 상혈이 되도록 격앙해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야만의 경찰들은 지금 죄 없는 우리 녀학생들을 잡아다 가둬놓구 속곳까지 싹 벗깁니다. 알몸을 만들어놓구 손으루 거웃을 잡아채며 취조체것을 하구있습니다. 우리 녀학생이 부끄럼을 못이겨 눈물 흘리는것을 그자들은 둘러서서 구경을 하며 낄낄거리구들 있습니다...>>

매개 학생이 다 분통을 터뜨렸다.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비분을 못 참아 주먹으로 눈물을 눌러씻는 학생들도 있었다. 운동장 이곳저곳에서 분노의 웨침이 줄폭탕 터지듯하는중에 교정변두리에 둘러친 가시철망밖에 말을 탄 헌병 두놈이 나타났다. 어깨에 권총을 엇메고 허리에 군도를 차고 그리고 발에다는 누런색가죽장화들을 신었는데 그중 한놈은 안경을 썼었다. 뒤이어 패검을 한 경찰 두놈이 교문밖에 나타났다. 이것을 보자 학생들의 분노는 절정에 달하였다. 일제히 구호를 웨치는 소리가 운동장을 뒤흔들고 그리고 교사의 벽과 창문들에 메아리를 울렸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선장이는 <<일본제국주의>>라는 말의 뜻을 제나름으로

(아마 <<대일본제국>>이니까 거기다 <<주의>> 두 글자를 더 붙였나보다.)

이쯤 해석을 하고 목청껏 그 구호를 따라불렀다.

<<노예교육 절대반대!>>

<<식민지폭압통치 결사반대!>>

<<헌병놈을 박살내라!>>

<<경찰놈을 찢어죽여라!>>

이동안에 건장한 권투선수 두엇이 중앙현관으로 뛰여들어가더니 잠시후에 하나는 3학년 맨끝의 교실안에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4학년 맨 첫머리 교실안에 나타났다. 둘이 다 오른손에 하얀 로동장갑 한짝씩을 낀것이 눈에 띄였다. 그들은 제각기 그 장갑낀 주먹으로 창문짝의 문살을 힘껏 내질러 문살이 꺾어지며 창유리들이 박산이 났다. 련이어 절그렁절그렁 유리쪼각들이 깨져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선장이는 일변 통쾌하기도 하면서도 또 일변 죄 없는 유리창에다 분풀이를 하는것은 좀 객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축대우에서 김봉구가 이습회 지도부의 명의로 동맹휴학을 선언하자 600명 학생이 일시에 아우성을 치며 돌아서서 교문께로 내닫는데 그 기세 사나운품이 마치 산사태와도 같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쇄도했을 때는 이미 그 두짝으로 된 검정철격자문에는 밖으로 자물쇠 아닌 수갑이 채워져있었다. 형세를 눈치 빠르게 판단한 두 경찰놈이 재빨리 선손을 쓴것이다. 철격자문밖에 서있는 두 경찰과 철격자문안에 갇힌 600명 학생이 마주 노려보는중에 경찰기동대가 풍우같이 몰려올것이 예상되였다. 선장이가 조바심이 나 손톱여물을 썰고있을즈음 윧선수들인 <<곰보>>와 <<백발귀>>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선장이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곰보>>와 <<백발귀>>는 표범같이 날쌘 동작으로 어지간히 높은 철문짝을 거의 동시에 타고넘었다. 600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두 경찰학교 졸업생의 유도와 두 중학교 재학생의 유도가 대번에 서로 어울렸다. 폭풍 같은 성원속에서 사기가 부쩍 오른 <<곰보>>가 허리걸이로 적수를 태질쳐놓고 쨉싸게 깔고앉으니 <<백발귀>>도 뒤지지 않고 재주를 다 부려 제 적수를 업어넘기기로 메여꽂았다.

<<잘한다!>>

<<족쳐라, `곰보`, 족쳐라!>>

<<안겨라 안겨!>>

<<`백발귀` , 사정 보지 말아!>>

입입이 웨치는중에 <<곰보>>가 재빨리 깔고앉은 놈의 제복호주머니에 손을 들어밀어 수갑열쇠를 더듬었다. <<백발귀>>는 두무릎으로 땅을 딛고 일어서려는 적수를 사정없이 발길로 내질러 아주 자빠뜨려놓고 얼른 쫓아와 <<곰보>>를 거들었다. 깔리운 놈의 허우적거리는 두팔을 꼼짝 못하게 꽉 누르고

<<없니?>>

물으니

<<있다.>>

대답하고 <<곰보>>는 자주색끈이 달린 수갑열쇠를 찾아들고 뛰여일어나 높이 쳐들어보이며

<<브라보!>>

소리쳤다. <<브라보>>는 이딸리아말로서 <<쾌재(快哉)>> 즉 <<상쾌하구나>> 라는 뜻이다. 철격자문안에서 열광적인 환성과 박수갈채라 터졌다. <<곰보>>가 철격자문에 채운 수갑을 열어벗기기가 무섭게 일시 개폈던 사람의 분류가 와 하고 문이 메이게 쏟아져나왔다. 바로 이때 학교뒤로 돌아갔던 기마헌병 두놈이 황급히 말을 달려 쫓아오더니 사람의 흐름속으로 마구 뛰여들었다. 말을 뒤발로 일으켜세우며

<<도마레(서라), 도마레!>>

<<모도레(되돌아서라), 모도레!>>

같잖게 호통질을 하였다. 이럴즈음에 앞길에 사람 한떼가 나타나 풍우같이 몰려왔다.

(경찰기동대인가?)

의혹들 하는중에 그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서 비로소 그것이 경신학교에서 쫓아온 맹휴응원대인것을 알게 되였다. 합세한 응원대와 함께 동소문안 뻐스종점까지 나오니 경찰기동대가 벌써 길을 막고 대기하고있는데 호송차(닭장차)가 모자라니까 빈 뻐스 서너대를 잡아놓고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날 서울시내에서 동맹휴학에 일떠난 학교의 수는 무려 30개소를 헤아리는데 그중의 남학교는 중앙고보, 휘문고보, 양정고보, 보성고보, 배재, 경신, 중동 동성산업, 협성실업, 경성공업, 전기학교 등등이고 또 녀학교는 리화, 배화, 근화, 숙명, 진명, 동덕, 녀자상업 등등이였으며 맹휴에 참가한 총 인원수는 만명을 훨씬 넘었었다. 그래서 경찰에서도 손이 모자라 이에 대처하는데 무진 애를 먹었었다.

육탄전돌진이 시작되였다. 선장이도 상급생들 틈에 끼여 죽을둥살둥 찌르는 기세로 내달았다. 무시무시하고 아슬아슬한 장애물경주라도 하는것 같았다. 제모의 에나멜가죽끈을 내려서 턱에다 건 경찰들과 사복을 한 형사들이 두팔을 쩍 벌리고 앞길을 막아섰다. 나가려는 학생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에 란투가 벌어졌다. 선장이는 제앞에 팔을 벌리고 막아서는 경찰의 겨드랑이밑을 그물코로 새여나가는 잔고기처럼 쏙 빠져나갔다. 사실상 경찰들은 굵은 학생들을 잡느라고 잘다란 조무래기들까지는 돌볼겨를이 없었다. 선장이는 경찰의 겨드랑이밑을 빠져나오다가 패검의 번쩍거리는 칼집에 정갱이를 탁 부딪쳐 몹시 아팠으나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대로 내빼였다. 뻐스종점에서 붙잡힌 굵은 학생들은 모두 뻐스에 실려 동대문경찰서로 압송이 되였는데 정원을 까맣게 초과한 뻐스안은 그야말로 통졸임정어리들처럼 사람이 겹쳐지고 포개지고 하였었다. 선장이는 위험한 큰길을 버리고 소삽산 골목길을 택하여 이리 돌고 저리 빠지고 몇곱절을 더 걸어서야 겨우 연갑수법률사무소로 돌아왔다. 서울장안이 온통 동맹휴학으로 들끓는 판이라 숙자아주머니도 잔사설을 할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다리는 왜 저냐?>>

<<좀 부딪쳤에요.>>

<<어디 보자. 그러게 조심을 하잖구.>>

바지가랭이를 걷고보니 정갱이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었다. 숙자아주머니가 곧 일어나 옥도정기를 갖다가 발라주고 또 입으로 홀홀 불어준 뒤

<<그놈의 동맹휴학바람에 우리 집에두 벌써 부상병이 생겼구나.>> 하고 웃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부엌편으로 돌리고

<<어멈, 도련님 점심 차려다드리게, 벤또를 그냥 갖구 왔네.>> 하고 일렀다. 선장이가 제 방에 건너와 어멈이 차려다주는 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은 일을 대강 이야기하니 어멈은 듣고 납득 잘 안 가는 얼굴로

<<왜놈들을 반대하는거하구 공부를 안하는거하구 무슨 상관이있에요, 저만 밑지지?>> 하고 물었다. 그 물음에 선장이도 대답이 막혔다. 실상은 선장이도 그 리허를 잘 모르는터였다. 그래서 선뜻 해답을 주지 못하고 한참 우물우물하다가 마침내

<<그래두 무슨 상관이 있기에 경찰놈들이 그렇게 기를 쓰구 밀막지.>> 하고 <<강력적인 교시>>를 하니 선장이를 <<절대로 숭배>>하는데 습관이 된 어멈은

<<딴은 그렇구먼요.>> 하고 대번에 승복을 하였다. 순박한 어멈의 선장이에 대한 충성심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만하것이였다.

아침에 선장이가 세수를 마치고 들어와 책상앞에 앉아 막 디켄즈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어들었을 때 숙자아주머니가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로 장지를 여닫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책이야?>>

선장이가 대답 대신에 책을 덮어서 책뚜껑을 내밀어보이니 숙자아주머니는 가볍게

<<응.>> 하고나서 다시

<<너 오늘 학교에 좀 나가봐라.>>하고 말을 일렀다.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 나가 뭐 해요?>>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아니, 나가보지두 않구?>>

선장이가 잠자코 있으니까 숙자아주머니는 선장이 어께에 손을 얹으며

<<그래두 나가봐야지야, 어서 말 들어. 학교에서 정식으루 무슨 공시가 있기전에 나가봐야 해. 그렇잖으면 무단결석이 된단 말이야, 알았냐?>> 하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선장이가 하릴없이 책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로 오는데 뻐스종점에서 조금 더 오니 길가 어느 길모퉁이에 지켜섰던 상급생 서넛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선장이가 피케라인에 걸린것이다.

<<돌아가, 돌아가. 지금이 어느때라구 못난이처럼... 책가방을 들구 어슬렁어슬렁... 체!>>

파수 선 상급생 하나가 눈을 곱게 뜨지 않고 볼멘소리를 하여 선장이는 얼른

<<나두 오구싶어 오는게 아니요.>>하고 발명을 하였다.

<<그럼 왜 왔어?>>

<<집에서 사람을 못살게 굴어 할수없이 왔소.>>

<<집에서 누가 못살게 굴어?>>

<<누군 누구겠소 우리 아주머니지.>>

세 상급생이 서로 돌아보고 한바탕 웃은 뒤에 다른 하나가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임마, 변통성이 그렇게도 없어? 중도에서 가루새지두 좀 못해? 갈데가 없으면... 도서간에도 못 가? 고지식하기는 밥 빌어다 죽 쑤어먹겠다.>> 하고 선장이를 비웃었다. 선장이가, 모든 면에서 선배의 자격이 있는 상급생들에게서 그럴듯한 계시를 받고 곧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곧장 탑골공원옆 도서관을 찾아왔다. 이 도서관의 정식명칭은 경성부립도서관 분관이였다. 단층건물이지만 내부의 설비는 장곡천정(长谷川町) 본관보다도 더 고아하였다. 입장료는 2전-닭알 하알 값-이지만 입장권 10장(한데붙은것)을 한목 사면 할인을 하여-15전이였다. 선장이가 동맹휴학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단골로 다닐 생각으로 15전을 주고 한목 10장을 샀다. 책은 한번 입장에 7권까지 빌어볼수 있었다. 엄숙한 정도로 장중하고 아늑하고 조용한 열람실에서 일본소설을 빌어다가 한 100페지 읽고나서 휴계실에 가 무료로 공급하는 더운 차물로 도시락을 먹었다. 좀 부족한것 같아서 생과자 3개-5전어치-를 더 사먹었다. 오후에 남은 200페지를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 소설책 한권을 당일에 떼고 집으로 돌아오니 숙자아주머니가 반겨맞으며

<<어떻게 됐니?>> 하고 죄여물었다.

<<등교한 아이가 모두 서넛밖에 안되니 어떡해요. 선생님이 수업은 할수 없으니 자습들이나 하라구 해 여직껏 자습을 하다 왔에요.>>

선장의 그럴사한 거짓말을 곧이듣고 숙자아주머니는 좋아서 빙글빙글 웃으며

<<선생님이 네가 등교한걸 아시겠지?>>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천연덕스럽게

<<그러면이요. 이름들을 적어가셨는데요.>> 하고 대답하였다.

<<잘됐다 잘됐어. 그게 다 이담에 네 점수로 되구 성적으로 되는거야.>>

선장이는 숙자아주머니의 턱없이 좋아하는양이 우스워 혼자 배속으로 웃었다.

석후에 선장이가 속이 답답해 관훈동 하숙으로 김영하선생을 보러 왔다. 김영하선생이

<<너의 학교에선 어떻게 됐니?>> 하고 다른 인사 다 제쳐놓고 맹휴소식부터 물어서 선장이는 전후사연을 보고 듣고 겪은대로 다 이야기하였다. 김영하선생은 참척히 듣고나더니 강개한 어조로

<<우리 민족은 무릎을 꿇구 살기보다는 꿋꿋이 서서 죽는편을 택할 민족이야.>>

말하고 선장이 어깨에 한소을 얹고 힘주어 누르는것이였다. 선장이도 조선민족이 장한 민족으로 생각이 들어 가슴이 부풀었다. 나중에 선장이가 숙자아주머니의 저에 대한 애호와 몰리해를 아울러 이야기하고

<<몸은 편해두 맘은 편하지 못한걸요. 끔찍이 사랑을 한다는게 자꾸 그릇된 방향으로 끌구 가지 뭡니까. 민족적관념이란 얻어보구 죽을래두 없단 말이예요.>> 하고 하소연하니 김영하선생은 듣고 한참 생각하다 진심으로 동정하여

<<어떻거겠니 참구 지내야지. 가난이 원쑤로구나.>>

위로하고 길이 탄식 하였다.

추천 (2) 선물 (0명)
IP: ♡.245.♡.80
로즈박 (♡.39.♡.172) - 2023/10/27 15:00:34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고 못 보앗는데 덕분에 몰아서 잘 보고갑니다..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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