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29

더좋은래일 | 2023.10.27 19:09:13 댓글: 1 조회: 269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2317


29

1931년 여름 3천리산하의 방방곡곡에 일진광풍이 휘몰아쳤으니 이는 곧 세상에서 일컫는 만보산사건의 멀기 즉 역파이다.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관개수로때문에 조선이민과 중국농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는 보도기사가 련일 각 신문들에 게재되자 맹목적인 동포애에 피가 끓어올라 머리가 뜨거워진 백의동포들이 애매한 청인 즉 화교들에게 분풀이를 하기 시작한것이다. 일제의 식민지폭압통치에 대한 쌓이고쌓인 민족적불만이 배출구를 찾지 못해 애를 쓰다가 만만한 구멍 하나를 발견하자 일시에 그리고 내뿜긴것이다. 저속한 말로 하면 시어머 역정에 개옆구리를 찬것이다. 어디서는 남새농사하는 청인을 몇이 달려들어 톱으로 켜죽였다느니 또 어디서는 있는 돈을 다 드릴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것을 자귀로 찍어죽였다느니... 별의별 몸서리 치는 류언비어가 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이렇듯 민심이 흉흉한중에 빈지를 굳게 들인 화교들의 상점에다 조선사람들이 돌을 던지는것을 순찰중의 경찰이 보고도 제지하지 않는것을 목격하고 선장이의 머리속은 복잡해졌다. 영업허가를 내가지고 큰 거리에서 상행위를 하는 상가의 빈지짝에다 숱한 사람이 모여들어 돌맹이질하는것을 강건너 불구경하듯하는 경찰을 언제 어디서 보았던가!

일요일 오후의 일이다. 선장이가 안국동네거리에 있는 서점 겸 문방구점 이문단에 가 새로 나온 일본잡지를 립독하였다. 이때의 서점들에서는 잡지를 사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그냥 읽는것을 허용하였으므로 언제나 잡지매대 주위에는 립독 즉 <<서서 읽기>>하는 사람들이 웅게중게 둘러섰었다. 그 대부분이 학생들인데 모두 읽는데만 골똘하여 사람들이 드나들어도 대개는 눈 한번 거들떠보지 않았다. 지식욕은 왕성하나 서적을 구독할 자력이 따르지 못하는 학생들임을 잘 아는 까닭에 서점측에서도 일반고객과 층하를 두지는 아니하였다.

선장이가 두어시간 착실히 서서 읽기를 하고 이문당을 나서는데 관훈동으로 통하는 길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는것이 눈에 띄였다. 보통 안국동네거리라고 부르지만 기실은 관훈동거리는 고서점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이름이 났었다. 구경속 좋은 선장이가 무슨 일이 또 났나 하고 부지런히 쫓아가본즉 화교가 겨영하는 료리점-중화원앞에 사람이 백차일 치듯하였었다. 그리고 그 비슥맞은편에 있는 고서점-지신서점안에는 패검을 한 순사 둘이 덤덤히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선장이는 불현듯 어느해 년분인가 원산청년회관을 적색로조에서 들이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주재소 순사들은 유리창으로 내다보며 어느 바람이 부느냐는듯이 구경을 하였었다.

선장이는 타고난 정의감으로 언제나 약자를 동정하고 강자를 미워하였다. 그러기에 종업원이 모두 합해 칠팔명밖에 안되는 외국사람의 료리집에 숱한 사람이 에워싸고 란장판을 치는것을 보았을 때 선장이의 동정은 서슴없이 동포애를 초월하여 빈지 둘이고 문 닫아걸고 롱성하는 약자-중화원 청인들에게 기울어졌다. 에워싼 사람들중의 몇몇이 상투가 국수버섯 솟듯하여 빈지짝에다 돌을 던지고 또 몽둥이지를 하여 한창 기세를 올릴 때였다. 굳게 닫았던 출입문을 불시에 열어젖뜨리며 대여섯명의 롱성군이 사나운 기세로 쏟아져나오는데 그 손에는 모두 부집게, 밀대, 도끼자루 따위 연장들이 들렸었다. 이때까지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우쭐렁대던 사람들이 일시에 와 물러나며 길을 터놓으니 필사적각오라도 한듯싶은 중국사람들은 연장을 휘두르며 무인지경을 가듯하였다. 그렇게 좌충우돌 한바퀴 시위를 한 뒤에 그들은 곧 다시 걷히여 들어갔다. 그 앞장을 서서 부집게를 휘두르는 젊은 사람은 선장이가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 사람은 구스노끼만년필점앞에서 그림 그리는 거지아이에게 10전짜리 백통전을 던져주던, 나무값을 깎던 청인이였다. 그 름름하고 씩씩한 자태를 선장이는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동정은 더욱더 걷잡을수 없이 그들에게로 기울어졌다. 출기불의의 반격을 당하고 잠시나마 넋을 먹었던 사람들이 다시 정신들을 수습하며 곧 별반거조를 내려고 서두를즈음에 웬 사람 하나가

<<여러분 잠간만!>> 하고 앞을 가로막아나섰다. 선장이가 보니 뜻밖에도 김영하선생이였다. 놀람과 긴장으로 하여 선장이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저리 비켜!>>

<<냉큼 물러서지 못해?>>

<<저거 어디서 나온 묵두기야?>>

<<그 자식부터 한대 안겨라!>>

<<임마, 창아리가 터지구싶어 몸살이 나느냐?>>

<<저놈이 되놈편을 들잖나.>>

<<하늘이 높은지 땅이 낮은지 아직 모르는군.>>

<<여러분, 잠간만 내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김영하선생이 두팔을 벌려서 가라앉히는 형용을 하였다.

<<네깟놈의 말 들으려구 우리가 여기 모여선줄 아느냐?>>

<<시러베아들놈!>>

<<이 중국집 사람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조금도 겁내는 기색이 없이 웃음 띤 얼굴로 모여선 사람들을 둘러보는 김영하선생의 유화하고 침착한 태도가 떠돌던 살기를 우습게 사그라뜨렸다.

<<이건 종로에서 뺨 맞구 하강 가서 눈 흘기는 격이 아닙니까?...>>

<<할 말이 있거든 그냥 해라, 까다로운 결말을 쓰지 말구.>>

<<우리 백의민족은 종래루 죄 없는 외국사람을 멸시하거나 욕보이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고상한 품성을 지닌 자존심 있는 민족입니다. 숱한 사람이 달려들어 몇명 안되는 사람을 매질한다는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더구나 외국사람을. 자존심 있는 민족은 그런짓을 안하는 법입니다.>>

<<그놈들이 무슨 외국사람이냐? 짱꼬로지!>>

<<여보 당신 그놈들의 뢰물을 먹잖았소?>>

<<중뿔나게 나서서 괜히... 같잖은게!>>

<<당신 활동사진 변사가 아니요?>>

<<만보산에서 우리 동포들이 되놈들에게 얻어맞은걸 당신 아오 모르오?>>

<<거 싱거운 자식이 어디서 하나 튀여나와가지구 싹 식혀버리잖나.>>

<<여보 당신 갈길이나 어서 가우, 오지랖 넓게 나서서 참견질 말구.>>

<<가자, 가자.>>

<<우리두 가자, 순사놈들 저기서 재미스레 구경하고있는 꼬락서니 보기 싫다.>>

이러는 동안에 사람들의 보복의욕이 현저히 묽어지고 또 시들부들해졌다. 그러자 볼일들이 생각이 나 서로 지껄이며 흩어져가기 시작하였다. 필경은 오합지중이였다. 선장이가 흩어지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오 너도 왓었니? 가자.>>

김영하선생이 선장이를 끌고 하숙집으로 돌아와 작은 방의 미닫이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리고 미선 한자루를 선장이를 주고 또 한자루는 자신이 부치며 개탄을 하였다.

<<다들 왜놈 좋은 일 하느라구 저리잖니. 방휼지쟁일나 말... 너두 알지? 조개하고 도요새가 싸우면... 리를 보는건 어부밖에 없단 말이다. 이건다 왜놈들이 조선사람하구 중국사람을 쌈 붙여놓구... 어부지리를 보자는 흉계야. 경찰이 보구두 못 본체하는것만봐두 알 일이지. 뒤구멍으룬 붙는 불에 키질을 하면서두 겉으룬 아닌보살하는데 다들 속는단 말이다. 참 어리석지!>>

<<그럼 만보산에서 싸이 났다는것두 거짓말입니까?>>

<<쌈이야 좀 났겠지. 그렇지만 그걸 이 지경 침소봉대루 떠벌여 놓는건 왜노들이야.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는 왜놈들이지 중국백성이 아니야. 속지 말아야 해.>>

선장이는 제가 이렇게 두뇌가 명석한 인물-김영하선생의 제자라는것이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이트날오후 선장이가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고있는데 숙자아주머니가 와서

<<아저씨가 부르신다.>> 하고 말하여 선장이는 손에 들었던 책을 얼른 내려놓고 부지런히 일어나 사무실로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오 너 이 서류 가회동에 좀 갖다 전하구 오너라. 한상룡 한사장댁 알지?>>

<<녜.>>

한상룡은 동양생명보험회사의 사장으로서 경제계의 거물이였다.

<<볼품있게 이 서류가방채 들구 가거라. 그러구 가서는 두손으로 공손히 꺼내 바쳐야 해. 말썽 많던 민사소송에서 승소를 했다는거니까 아마 좋아하실거다. 내이제 막 정비서한테 전화를 걸어놨다.>>

선장이는 언제나 심부름을 다닐 때 거머번드르한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면 급이 껑충 뛰여오른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선우군의 자전거를 타구 가거라.>>

연변호사가 등뒤에 대고 이르는 말을 선장이는 여공불급하게

<<녜.>>

대답하고 곧 현관에 나와 슬리퍼를 벗어놓고 구두르르 갈이신는데

<<모자, 모자!>> 하고 숙자아주머니가 흰 줄 두줄이 둘린 교모를 들고 쫓아나왔다. 그리고 선장이 머리에 턱 쒸워주면서

<<점잖은 댁엘 간다는 녀석이 맨머리바람으루 갈테냐? 덤비기는!>> 하고 웃었다.

이때는 아직 자전거에다 자물쇠를 잠그는 법을 모르는 시절이다. 그래서 선장이는 곧 서류가방을 다들 하는 법식대로 차체가름대에 벌려서 걸고 쇠를 채운 다음 가볍게 몸을 날려 안장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설렁탕배달들이 흔히 타고 다니는 일본제 <<톱이바퀴M26>>-짐받이가 없는것이였다. 한상룡의 저택은 가회동 중턱에 있다. 길거리에서 대여섯간 들어가 어마한 솟을대문이 솟았는데 승용차가 드나드느라고 문턱이고 문지방이고 다 없애치운 까닭에 콩크리트포장을 한 민틋한 길이 정원수를 심은 마당안으로 거침없이 뻗어들어갔었다. 선장이가 자전거를 대문간에 세우고 서류가방을 떼여내리는데 더운 때라 문이 활짝 열려있는 행랑방에서 행랑아범이 돌쟁이 딸아이를 안고 마주 나왔다.

<<사장님 계시우?>>

<<녜 계시지요. 오후엔 출입을 안하셨으니까.>>

<<연변호사댁에서 서류를 갖구 왔는데요.>>

<<녜 그럼 잠간 좀 기다리시우, 내 들어가 연통하리라.>>

행랑아범이 품에 안았던 애기를 땅바닥에 내려놓는것을 선장이가 얼른 앞으로 나서서 받아안았다. 어린아이는 낯을 가리지 않는지 아무 소리 없이 안겨서 선장이의 얼굴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루더듬었다. 손은 끈적끈적하였다. 빗가지 않은 머리는 헝클어졌고 씻기지 않은 얼굴에는 흘린 코가 말라붙었는데 몸에서는 퀴퀴한 지린내 같은것이 풍기였다. 그리고 몸에 걸친것은 넝마요 삼년 묵은 때가 다닥다닥한 조꼬만 발은 까마귀발이였다. 선장이가 열려있는 문으로 되박만한 답답한 방안을 들여다보니 세 벽에 다 피자국이 고기비늘처럼 촘촘히 들어찼었다. 그것이 모두 빈대를 눌러죽인 자국임을 깨닫자 선장이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품에 안은 아이를 다시 살펴보니 그 팔이고 다리고 등이고 가슴이고... 살가죽이 성한데라고는 없었다.

(요 어린것이 저런 끔찍한 빈대굴속에서 살다니!)

생각하니 선장이는 측은한 마음을 금할바 없었다.

연통하러 들어갔던 행랑사람이 도로 나왔다.

<<들어오라시우.>>

선장이가 어린아이를 도로 넘겨주고 제몸을 한번 굽어본 뒤 정갈하게 비질을 한 사랑마당으로 걸어들어갔다. 정원수와 화단과 괴석과 양어지가 자그마한 별천지를 이루었는데 사랑채의 유리문들이 으리으리하여 선장이는 발걸음이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서울 연갑수의 법률사무소는 원산 선장이네 집에 대면 대궐이였다. 그러나 가회동 한상룡의 저택은 견자동 법률사무소에 대면 또 대궐이였다. 인간세상 높낮이가 이같이 현수하였다.

제도에 맞는 양복을 입은 표표한 젊은 비서가 마루끝에 나서서 선장이를 기다리고있었다. 선장이는 올라가지 않고 그냥 마루끝에 걸터앉으며 곧 서류가방을 열고 서류를꺼내 두손으로 공손히 비서에게 바쳤다. 비서가 서류를 받아들고 방안에 들어가 주인하고 의논하는 동안 선장이는 차고앞에 세워놓은 승용차를 살펴보았다. 연회색의 크라이슬러인데 손질이 빈틈없이 잘되여 차 전체가 거울같이 반들반들하였다. 같은 한집이건만 행랑방은 천당속의 지옥같이 대조적이라고 선장이는 생각하였다. 방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주인인듯싶은 나이 지긋한 남자의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따라웃는 비성의 낮은 웃음소리도 들렸다. 한동안이 지나서 비서가 다시 마루로 나오더니 웃는 얼굴로

<<수고했네.>> 하고 50전짜리 봉항 새긴 깔쭈기 한잎을 선장이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돌아가거든 연변호사께 사장님께서 매우 만족해하신다구 말씀하게. 그리구 쉬 한번 찾으시겠단다구.>> 하고 말을 일렀다.

<<녜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걸어왔니?>>

<<아니 자전거를... 저 대문간에 세워놨습니다.>>

<<오 그럼 잘 가게.>>

<<녜 안녕히 계십시오.>>

선장이가 재벌인사하고 한손에 서류가방 들고 또 한손에 깔쭈기 들고 대문께로 나오는데 아까 그 행랑사람은 그저 거기서 어정거리고있었다. 선장이가 보니 그 품에 안긴 돌쟁이의 손에는 고대 잡아준듯싶은 짱아-잠자리 한마리가 쥐여져 파드닥거리고 있었다.

<<벌써 돌아가시우?>>

<<녜.>>

대답하고 선장이는 바로 그 안긴 아이에게 다가가 잠자리 쥐지 않은 조고많고 어지러운 손에다 고대 상급으로 받은 깔쭈기를 쥐워주었다.

<<아니 이게 웬 일이시우?>>

행랑사람이 놀라 눈이 둥그래지는것을 선장이는

<<빈대가 그렇게 많아서 애기가 어떻게 살지요. 우선 빈대부터 잡아없앨 도리를 생각해보시우.>>

말하고 곧 한손에 서류가방을 든채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민틋한 콩크리트포장도로를 길거리를 향하여 내리달았다. 자전거를 탄김에 드라이브를 한바퀴 해볼 생각으로 재동어귀에서 오른쪽으로 꺾이지 않고 왼쪽으로 꺾이여 동구안대권 즉 창덕궁을 향하고 치달았다. 창덕궁앞에서 다시 남쪽으로 꺾이여 넓은 길을 거침새없이 꼿꼿이 단성사-유명한 영화관-앞까지 와가지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꺾이여 직선으로 종로네거리까지 왔다. 거기서 또 천천히 북쪽으로 꺾이여 비로소 견지동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집에를 와보니 활짝 열린 현관문앞에 자전거가 서너대 가로세로 세워져있었다. 그리고 현관에서는 손에 수첩을 든 사람과 어깨에 카메라를 걸멘 사람이 네댓 몰켜서서 복도끝에 나선 선우군을 쳐다보며 무슨 질문들을 하고있는 모양이였다. 선장이는

(이거 선우군이 오늘 희떱게 무슨 기자회견을 하시잖나?)

의혹하고 또 신기로와하며 한옆에 자전거를 갖다세워놓고 먼발치에서 엿들었다.

<<그래 그자식들이 모두 몇이나 되던가요?>>

<<세놈입니다. 세놈.>>

<<단 세놈이요?>>

<<녜.>>

<<손에다 무슨 흉기들을 들었던가요?>>

<<아니, 흉기는 든게 없습디다.>>

<<그럼 다 도수... 맨손이더란 말이지요?>>

<<오 참 그중의 한놈이 호주머니에서 접칼을 꺼내들구 보란듯이 접었다 폈다 합니다.>>

<<그게 주모자... 우두머리던가요?>>

<<아니, 우두머린 아닌갑디다. 우두머린... 앞장을 선놈이 우두머린것 같습니다.>>

<<그럼 맨주먹으로 위협을 하더란 말인가요?>>

<<공갈을 했다지요?>>

<<공갈을 어떻게 합디까?>>

기자들이 중구난방으로 질문공세를 들이대는 바람에 선우군은 일일이 응수하기가 어려워 땀을 빼는 모양이였다.

<<이놈아, 기집애는 여기 놔두구 어서 너만 꺼져라! 모가지를 둘려앉히기전에 냉큼 내려가지 못해?>> 하고 눈방울을 굴립디다.

<<다른 놈들은 가만히 보구만 있던가요?>>

<<그놈들두 옆에서 거들었겠지요?>>

<<그 접칼을 접었다 폈다 하던 놈은 어떻겁디까?>>

선우군이 처음에는 게면쩍어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나중에는 난당한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조금도 늦추지 않고 질문을 연방 들이대였다.

<<약한 녀자를 거기다 떨궈놓구 당신 혼자 내려오면 그 녀자가 욕을 보리란것쯤은 짐작을 했을테지요?>>

<<그 세놈에게 륜간을 당했으니 이제 그 녀자는 진정을 아주 망쳤다구 생각하지 않으시우?>>

<<사랑하는 녀자를 떼놓구 혼자 내려올 때 맘이 어떻습디까?>>

<<왜 나이트십(기사정신)을 발휘해 그자들하구 격투를 좀 벌이지 못했습니까?>>

<<1대3이 너무 버거워 감을 못했습니까?>>

<<제발 이젠 고만들 좀 물러가주십시오. 난 신열이 나 더 서있을수가 없습니다.>> 하고 비명을 울리며 선우군이 두손을 앞으로 내들도 흔드는데도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홍제원 인절미가 돼버린, 차지고 끈덕진 기자들은 사정없이 계속 물고늘어졌다.

<<지금두 그 색시하구 결혼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

<<끝까지 책임을 질 생각이 있으시오?>>

<<어떤 방법으루 그 아가씨를 위로할 생각입니까?>>

<<그녀가 이번 일을 당하기전까지는 분명히 숫처녀였습니까?>>

<<그런 증거를 혹시 가지구계시우?>>

<<그전에 당신하구 육체적관계를 맺은적은 없었던가요?>>

<<자 이쪽을 보십시오, 사지을 좀 찍겠습니다.>>

<<그 망나니들이 이제 감옥을 가게 될건 틀림이 없는데... 감상이 어떻습니까?>>

<<이 법률사무소엔 앞으루두 계속 나와 일을 보실겁니까?>>

<<연변호사는 이 일을 압니까 모릅니까?>>

이튿날 선장이가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어본즉 선우군은 안날 낮에 혼사말이 있는 녀자하고 둘이서 삼청동산속 즉 북악산밑에를 놀러 갔다가 뒤를 밟아온 깡패에게 협박을 당하였었다. 선우군은 하는수없이 녀자를 빼앗기고 저 혼자 내려오는 즉시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었다. 그러나 경찰이 급히 손을 써서 깡패 세놈을 모짝 잡았을 때는 이미 그 녀자는 륜간을 당한 뒤였었다.

연변호사는 뜻밖에 관후하였다. 그는 추문을 퍼뜨린 장본인-선우군-을 떨어내쫓지 않고 그대로 두어두었다. 그리고 안해가 남우세스럽다고 내보내자고 잔소리를 하면

<<젊은 사람이 그런 실수 한번쯤 하는건 병가지상사야. 너무 야박스레 굴것 없어.>> 하고 더 말 못하게 말문을 막아버리군 하였다. 숙자아주머니가 남편 안 듣는데서

<<초록은 동색이로군!>> 하고 입을 비쭉하는것을 보고 선장이는 혼자 속으로 웃을 밖에 없었다.

선우군은 한 두어달 동안은 코가 쉰댓자나 빠져서 풀기없이 죽어지내더니 몇달 지난 뒤에는 또다시 살아나서 검은구름에 백로 지나가기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날 선장이가 싱글거리며 지꿎이

<<그 색시를 어떻걸 작정이요, 데리구 살 작정이요?>> 하고 물어보았더니 선우군은

<<정신빠진 놈, 공중변소가 돼버린 기집을 어느 쓸개빠진 녀석이 데리구 살아!>>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선장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저치가 그 길에 들어서는 청출어람으로... 저의 스승을 릉가하지 않겠는지 모르겠다.)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여름한철 그 매미날개같이 시원한 차림차림으로 덥고 목마른 행인들을 끌어들이던 빙수점들이 거의다 차림새를 바꾸어 <<긴쯔바(왜떡)>>가게로 변하는 계절이 되였다. 빙수라는것은 얼음을 눈처럼 갈아서 유리보시기에 담고 과즙, 설탕, 련유 따위를 치고 또 건포도를 얹어서 먹는 청량음료의 일종이다. 아이스크림이 보급되기전에는 성하였으나 후에는 차차차차 아이스크림에 밀리며 마침내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추석이 가까운 때라 선장이가 동정심 많은 어멈에게 넌지시 말하여 소고기장졸임 한단지를 뒤로 빼내가지고 김영하선생을 갖다드리려고 관훈동 하숙집을 찾아왔다. 바야흐로 둥글기 시작한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였다. 방안에서는 말소리가 도란도란 나기에 무심중 지대돌을 살펴본즉 눈에 익은 김영하선생의 화단앞에 까만 녀자구두 한컬레가 놓였는데 이 역시 눈에 익었다. 틀림없이 한선희의 구두였다. 달빛속에서 선장이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두 남녀 사이에는 완충기노릇을 하던 선장이가 이젠 그 사명을 다한것이다. 선장이가 보자기에 싸들고 온 알단지를 보자기채 소리 안 나게 마루에 내려놓고 색시걸음을 걸어서 물러나왔다. 주제넘게도 선장이는 한시름이 덜린것 같았다. 어깨가 거뜬해지며 금세 날것만 같았다. 그러나 선장이가 어찌 알았으랴, 복잡한 인간세상에서 정직한 사람들의 행복은 대단원이란 그렇게 쉽사리 일어지지 않는다는것을.

9월 18일 밤에 일본군대가 남만철도를 폭파한 중국군대를 웅징하기 위하여 봉천의 북대영을 공격, 점령하였다는 보도기사가 각 신문의 제1면을 메운것은 그 다음다음날인 9월 20일의 일이였다. 그 영향을 받아 학교에서는 각기 다른 의미에서 학생들이 모두 들썩들썩하였다.

<<잘한다! 공부구 나발이구 다 걷어치우구 전쟁판에나 나가자!>>하고 신바람이 나 어깨를 으쓱으쓱하는건 공부에 취미를 못 붙이는 락제후보생들이고

<<일본군대가 세긴 세구나, 남의 나라 병영을 식은 떡 떼먹듯하는걸 보니.>> 하고 감탄하고 또 자랑스레 여기는건 정치하고는 담을 쌓은 혼돈씨들이고

<<그놈들은 무슨 할 지랄이 없어 그 먼데까지 가 란장판을 벌이누?>> 하고 못마땅하게 여겨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건 다 끌끌한축 들이고 그리고

<<잠자는 놈을 들이덮쳐 이긴게 그리 장하냐? 이 멍추야!>> 하고 눈을 희번득이며 종주먹을 들이대는건 일본놈들을 볼공대천의 원쑤로 치부한 조선의 얼들이였다. 그러나 선장이는 벌어진 사태를 분석할 능력이 겂는 까닭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였다. 다른 아이가 와 옆구리를 직신거리며

<<왜 넌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냐?>> 하고 조롱을 해도 그저 웃기만 하고 대꾸를 아니하였다. 김영하선생에게 물어보고 나서 입을 열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을 했기때문이다... 아니나다르랴, 김영하선생은 분격한 어조로

<<이건 침략전쟁이다. 우리 나라를 다 먹어삼키구도 부족해 또 중국까지 먹어보려는 수작이다. 무어나 그놈들이 옳다는건 다 그른걸루 알구 또 그놈들이 그르다는건 다 옳은걸루 알면 틀림이 없다. 우리는 이런 전쟁을 견결히 반대해야 한다.>> 하고 여지없이 타박을 하는것이였다.

한 열흘 지나서 날마다 한장씩 뜯는 일력의 <<9월 작음>>이 <<10월 큼>>으로 바뀐 날 오후의 일이다. 창경원 전차종점까지 둘이 함께 걸어나오다가 곽복덕이가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큰형이 룡산철도공장엘 다니는데...>>

<<느 큰형이 어디 있니?>>

<<우리 큰외사촌 말이야.>>

<<오 난 또...>>

<<그 형님의 말이 상당수의 철도종업원들이 이번 전쟁을 반대한다더라.>>

<<그건 어째서?>>

<<모르지. 아무튼 그래서 만주루 들어가는 군용렬차들에다 인위적으로 고장을 내놓는다더라. 기술있는 사람들이 감쪽같이 하는 일이니까 군부대에서두 웬 영문을 모른다지 뭐냐. 그런데 놀라운건 일본사람들두 일부분 우리 사람하구 한통속이 돼가지구 그런 활동을 하구있다는거야.>>

곽복덕이의 옮기는 말을 듣고 선장이는 으슴푸레하나마 일종의 심상찮은 무슨 계선을 눈앞에 보는것 같았다. 조선사람하고 일본사람을 갈라놓은 절대적인 계선이외의 그 무슨 계선을.

선장이가 우연히 얻어들은 새 소식을 얼른 갖다 전하고 또 그 해명을 들어볼 생각이 긴하여 저녁전에 퇴근시간 맞춰 관훈동에를 달아왔더니 김영하선생의 방에 전에없이 덧문이 꼭 닫혀있었다. 괴이히 여기고 마당에 서서 무춤무춤하는데 안방에서 주인집 마누라가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김선생 찾아온 학생 아니라우.>>

혼자말을 지껄이고 부지런히 일어나 마루로 나왔다. 선장이가 안방앞으로 다가섰다. 왼쪽 눈밑에 녹두알만한 까만 점이 있는 주인마누라가 호들갑스레

<<학생 아직 모르는구먼. 김선생 경찰에 잡혀갔다오.>> 하는 바람에 선장이는 놀라서

<<녜?>>하고 마루끝에 나선 주인마누라를 뻔히 쳐다볼뿐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오늘새벽 불시에 사복형사 셋이 들아닥쳤지 뭐요. 아직 일어나지들두 않았는데 누가 와 대문을 두드리더라우. 아범이 일어나가 문을 열어주었더니 글쎄 다짜고짜루 `김영하 어느 방이야?` 묻구는 신발들을 신은채 김선생 방으루 뛰여들더라는구려. 방안을 샅샅이 들뒤져 무슨 책이며 편지며 하는따위를 한보따리 압수한뒤에 아직 세수두 못한 김선생을 끌어내 앞세우더라우. 그리구 가면서 `저 방엔 아무두 드나들지 못하게 해!` 하구 개 벼룩 씹는 시늉을 하더라지 뭐요.>>

<<대체 무슨 일루 잡혀갔답니까?>>

<<아까 낮에 우리 령감이 세면도구랑 내복가지랑 드리러 종로경찰서엘 갔다왔는데... 난 잘 몰라두 아마 무슨 독서회사건이라나봅디다.>>

<<독서회사건.>>

입속으로 뇌고 선장이는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넋없이 대청기둥에 걸린 주련판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청휴창태평가(时清休唱太平歌)
(때가 워낙 맑으면 태텽가도 부르지 않는다)


무슨 잠꼬대인지 알수 없는 글귀였다.

선장이는 대들보가 휘인것만 같았다.

로즈박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2) 선물 (1명)
IP: ♡.245.♡.178
로즈박 (♡.39.♡.172) - 2023/10/27 23:12:47

참 대바르고 똑똑한 선생님이신데..김영하선생님은 어찌 되시는지?
아마도 선희랑 서로 좋아하는 사인거 같은데 다음편이 궁금합니다...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당~~

23,512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2-07
0
129
단차
2023-12-06
0
204
단차
2023-12-06
0
166
단차
2023-12-06
0
143
단차
2023-12-06
0
93
단차
2023-12-06
0
130
단차
2023-12-05
1
244
단차
2023-12-05
1
203
단차
2023-12-05
1
178
단차
2023-12-05
1
216
단차
2023-12-05
1
308
뉘썬2뉘썬2
2023-12-04
1
208
뉘썬2뉘썬2
2023-12-04
1
370
단차
2023-12-03
0
213
단차
2023-12-03
0
208
단차
2023-12-02
0
172
단차
2023-12-02
0
185
단차
2023-12-02
0
178
단차
2023-12-02
0
199
단차
2023-12-02
0
201
단차
2023-12-01
0
149
단차
2023-12-01
0
224
단차
2023-12-01
0
219
단차
2023-12-01
0
142
단차
2023-11-30
0
135
단차
2023-11-30
1
163
단차
2023-11-30
0
151
단차
2023-11-30
1
174
단차
2023-11-30
0
248
단차
2023-11-29
1
220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