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32

더좋은래일 | 2023.10.29 09:30:02 댓글: 2 조회: 371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2704


32

천진에서 상해까지 가는 길은 생각밖에 순리로왔다. 압록강을 건느고 산해관을 넘을 때는 그렇게도 지장을 갖다주던 교복, 교모가 도리여 훌륭한 경계색으로 됐던것이다. 그 먼길을 오는 동안 아무도 선장이를 건드리지 않은것이다. 렬차원이나 차장은 물론이요 렬차안을 빈번히 순찰하는 철도경찰들도 선장이 하나만은 곱게 빼놓고 지나다녔다. 선장이가 처음에는 그 원인을 몰라 속으로 괴이스레 여겼다.

(이게 대체 무슨 놈의 감투끈이야?)

그러나 차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깨닫게 되였다. 선장이의 복색만을 보고 일본학생으로 잘못들 알았던것이다. 무릇 일본놈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것이 안전하다는 기괴한 인생철학이 작용을 한것이였다. 반식민지 특유의 체세관, 체세술이 작용을 한것이였다. 선장이가 속으로는 쓴웃음을 웃으면서도

(아무튼 해롭지 않다.)

생각하고 그런 얼토당토 아니한 대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면 또 어찌하랴,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벙어리인주제에!

이동안 선장이 호주머니에는 각전 즉 동전, 은전들이 차차로 늘어갔다. 말을 모르는 까닭에 이게 얼마냐고 값을 물어볼 재간이 없어서 무엇을 사거나 무엇을 먹고 값을 치를 때는 잠자코 큰돈 즉 지전을 내주고 거스름돈을 받아넣기때문이다. 지전이 줄어드는만큼 각전은 늘어나 마침내는 선장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호주머니속의 은전, 동전들이 잘랑잘랑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네 이웃에 그 존재를 알리게끔 되였다.

선장이 머리에 혼란이 일어난것은 남행렬차의 오른쪽 즉 서쪽에 바다가 나타난것이다. 바다는 의당 왼쪽 즉 동쪽에 나타나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이건 대체 어찌된 셈판이냐? 기차가 되돌아서 북상을 한단 말인가, 아니면 하늘땅이 뒤집혔단 말인가?)

선장이가 미산호를 황해로 잘못 안것이였다. 대안이 바라보이지 않고 아득한 수평선만 바라보이는 큰 호수를 처음 보았기때문이다.

각종 조명등의 휘황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 포구 도선장에서 거대한 련락선이 14량 편성의 렬차를 서너동강을 내여 싣고 기적을 울리며 어두운 양자강을 서서히 건느는 광경을 선장이는 렬차좌석에 앉은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수면이 어두워 물이 맑은지 흐린지는 헤아릴수가 없었다. 그저 한강물처럼 맑으려니만 여겼다. 밝은 낮에 보았더라면 얼마나 실망을 하였으랴. 세상에 그 이름높이 난 양자강의 치런치런한 강물은 투명도가 거의 령에 가까운 탁류였었다.

급기야 대망의 상해역에를 당도하고보니 이게 또 웬 일이냐. 역사의 단층건물이 초라하기가 원산역의 자매역이 아닌가싶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거물도시 대상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관-철도역이였다. 양복차림의 신사량반이 애기들이 신는 고무신짝을 발에 꿰기라도 한것처럼 도무지 격에 맞지를 않았다. 선장이가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사람들 틈에 끼여 역사밖으로 나오니 여덟팔자로 들어서서 대기하던 인력거군들이 와 몰려드는데 입입이 웨치는 소리가 와글와글... 귀가 따갑고 또 귀에 설어서 머리가 띵할 지경이였다. 그중의 약삭바른 하나가 어리둥절해 서있는 선장이를 외국사람으로 선뜻 짐작한듯 재빨리 질러나오더니

<<호텔? 고 호텔?>> 하고 영어로 웨쳐서 선장이는 긴말 않고 곧 사람의 인력거에 올라탔다. 그 인력거군이 선장이를 물정 모르는 외국놈으로 넘보고 톡톡히 좀 우려낼 료량으로 손가락 둘을 뻗쳐들고

<<투 달러즈, 투 달러즈.>> 하며 내흔들어서 선장이는 속으로

(2딸라? 이 자식이 뉘게다 올가미를 씌울 작정인가?)

생각은 하면서도

<<오케이, 오케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가고나서 볼 작정이였다.

일금 2원이야(也)를 식은 떡 떼여먹기로 벌게 된것이 마음에 합당하여 인력거군은 인력거채를 잡자마자 눈이 팽글팽글 돌만큼 사람과 차량들로 붐비는 거리를 요리조리 누비며 어깨바람나게 달렸다. 선장이가 어림짐작으로


(인제 한 20원어치쯤 달렸을게다.)

속셈을 잡을즈음에 인력거가 갑자기 멎어서기에 눈을 들어보니 <<야마도려관>>이란 넉자가 눈에 왈칵 끼쳤다. 인력거군이 선장이를 일본놈으로 지레채고 제딴에는 잘한답시고 일본려관으로 끌고 온것이였다.

(이런 제기!)

선장이는 기가 막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였으나 하릴없이 트렁크를 집어들고 인력거를 내렸다. 인력거군이 등뒤에서

<<투 달러즈, 투달러즈.>>

차삯을 채근하는중에 려관이 하녀인듯싶은 젊은 녀가 하나가 진동한동 달려나와 트렁크를 받아들여갔다. 이어 려관의 사환인듯싶은 대머리 벗어진 남자가 나와 저 인력거를 어디서 타고 오셨느냐고 물었다. 역에서 타고 왔다는 대답을 듣고 그 사람은 깍듯이

<<제게다 맡기시구... 어서 드십시오.>> 하고 두손바닥을 잦혀들고 안을 가리켰다.

이튿날 려관을 떠날 때 숙박료계산서를 보니 <<차삯 선대 30전>> 이라고 적혀있었다. 에누리가 무려 륙칠배가 되였던것이다.

선장이가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려관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되였다. 하녀가 와 목욕물이 더웠다고 알려서 욕실에 가 시원히 목욕을 하고 방에 막 들어왔는데 마침맞게 하녀가 차를 가져왔다.

<<상해시가도를 어디 가면 구할수가 있을가요?>>

<<녜 저의 려관에두 있습니다. 곧 갖다드리겠습니다.>>

선장이가 널직한 자개상우에 새 지도를 펼쳐놓고 열심히 들여다보며 궁리가 많았다. 프랑스조계를 아무리 올리홅고 내리훑고 해보아도 무슨 림시정부라는 표식은 눈에 뜨이지를 않았다.

(적어도 한 나라의 정부청사인데... 지도에 표식이 없을리 있나.)

그렇지만-없었다. 쏘련령사관, 일본령사관, 영국령사관, 미국령사관, 프랑스령사관, 이딸리아령사관 또 무슨 령사관, 무슨 령사관 다 있어도 선장이의 찾는 림시정부만은 종시 없었다. 종적이 묘연하였다. 선장이는 번화한 상해거리가 갑자기 막막한 광야로 변해버린것 같았다 망연자실하여 창밖의 혼잡한 거리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다시 지도에 달라붙었다. 이번에야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였다. 홍구라는데 와있었다. 지지난달에 윤봉길이 폭탄사건을 일으킨 홍구공원이 얼마 멀지 않은 곳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림시정부는 나타나주지를 않았다. 그도그럴것이 선장이가 찾는 그 림시정부란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는 한낱 망명단체에 불과하였었다. 그리고 또 그 정부청사란것도 프랑스조계의 중심거리인 아베누이 죠프르 즉 하바거리에 2층건물한동을 세내여가지고 그 옥상에 태극기를 띄워놓은데 불과하였었다. 그나마 이때는 지지난달에 있은 윤봉길의 폭탄사건으로 저의 장령들이 폭사를 하자 일본놈들이 눈이 발갛게 뒤집혀가지고 조선반일세력을 비호한다고 프랑스당국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프랑스조계안의 조선반일세력을 뿌리뽑으려고 직접 월경기습소탕을 자행하는통에 림시정부와 그외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견뎌배기지 못하여 분분히 남경, 진강, 항주 등지로 피난을 가버린 뒤였다. 이러한 사태의 급격한 변화를 캄캄히 모르는 선장이는 오로지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헛애를 쓰고있건만 당자는 그것을 모르고있으니 딱한노릇이였다.

실망한 나머지 지도를 접은 금대로 도로 접어 한손에 들고 려관을 나섰다. 비슥맞은편 길목에서 대기하고있던 인력거가 쏜살로 달려왔다. 윤봉길의 전적지-홍구공원에를 한번 가볼 생각이나서 인력거군에게 지도를 내대고 갈 곳이 여기라는 뜻으로 풀색의 고르지 못한 장방형으로 표식되여있는 홍구공원을 가리켜보이니 인력거군이 지도를 한번 들여다보고는 곧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인력거군이 무식하여 글도 모르고 또 지도도 볼줄을 모르는 모양이였다. 네 눈이 멀뚱멀뚱 마주보았다. 까막눈과 벙어리가 다 코 막고 답답한노릇이였다. 선장이가 인력거 타고 홍구공원 갈것을 단념하고 포도를 따라 발길이 닿는대로 시적시적 걸었다. 한 3분 걸었을가 앞길에 <<항리려사>>라는 그 뜻이 매우 탐욕스러워보이는 간판 하나가 나타났다. 문앞에 가까이 가 안을 기웃거려보니 중국사람이 경영하는 려관이 틀림없었다. 삼사류에나 속함직한 허술한 려관이였다.

(진작 이런데를 왔어야 하는걸.)

일본려관이 마음에 꺼림직한것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보다도 그 으리으리한품이 숙박료를 톡톡히 떼울것 같은게 더 큰 걱정거리였다. 만리이역 백사지땅에도 돈 떨어지면 곧 끈 떨어진 뒤웅박이지 어떡한단 말이.

(이왕 들었으니 하루밤은 그대로 묵고... 래일은 천하없이도 이 려관으로 옮겨야겠다.)

선장이가 마음을 질정하니 기분이한결 거뜬해졌다. 얼마 아니 가 영화관 하나가 나섰다. <<홍구전영원>>이란 간판이 신기스러웠다.

(아하, 영화를 `전영`... 전기그림자라구 하는구나. 딴은 그럴듯해. 비치는 그림이나 전기그림자나 크게 다를게 없지.)

감탄을 한김에 우선 한번 들어가보기로 하였다. 20전을 내고 표 한장 사가지고 들어가보니 영화는 이미 돌리기 시작하였는데 빈자리가 얼마든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영화관은 아침부터 밤중까지 간단없이 같은 필림을 되풀이로 돌리는데 관람하는 시간은 제한이 없었다. 한번을 보아도 그만이요, 두번을 보아도 그만이요, 밥 사가지고 와 온종일 곱배기로 장복을 해도 그만이였다. 그렇지만 베개하고 담요를 가지고 와 드러누워 자는것만은 안되는 모양이였다.

려관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하녀가 잘 차린 밥상을 들여오고 또 나무밥통을 갖다놓더니

<<어서 많이 잡수세요.>>

인사만 하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원래 격식대로 하자면 밥상머리에 꿇어앉아 상이 날 때까지 시중을 들어주어야 하였다. 밥도 떠주고 차도 따라주어야 하였다. 그런데 요 맨망스러운것이 선장이를 조선학생이라고 깔보고 또 팁을 듬뿍 집어줄 주제가 못됨을 넘겨다보고 하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소임을 뭉때려버린것이다. 선장이는 그 계집의 소행을 괘씸히 여기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따위 쭈그렁바가지년을 앞에 앉혀놓고 꺼림직한 밥을 먹느니 차라리 혼자 먹는게 저우 낫다는 생각도 들어서 도리여 다행히 여기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목욕하러 갈 때 입으라고 갖다주던 유까다(욕의)며 깔아주는 이부자리의 카바들이 모두 깨끗이 빨아서 풀먹여 다린것이라든지, 벗어놓은 양복바지에 주름 없애는 버티개를 받아서 옷장속에 걸어놓고 또 구두를 반들반들하게 닦아놓은것이라든지, 옳게 차린 밥상이며 다다미 여덟장 깐 깨끗한 방을 혼자 차지한것이며가 다 선장이에게는 어마하였다. 엄청난 숙박료를 치러햐 할 일이 근심이 되여서였다.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구 하루밤 자고나서 보자.)

선장이의 상해에서의 첫날밤은 불안하고도 편안하였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육체적으로는 편안하였다. 날색녘에 숙자아주머니가 버선발로 쫓아오는 바람에 도망을 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고 놀라 깨니 해가 벌써 한발이나 올라왔었다. 선장이가 부지런히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먹고 또 예료한대로 하품을 칠만큼 비싼 숙박료를 치러준 뒤에 도망치듯 야마도려관을 나와가지고 곧장 항리려사를 찾아왔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수상쩍은 인물, 위험한 인물로 보이기가 쉬운 선장이가 일본총령사관경찰서 형사나부랭이의 기찰을 받지 않은것은 전적으로 일본려관에 투숙을 한 덕이였다. 하긴 세고에 어두은 선장이로서는 그런 리허를 알턱이 없었지마는.

항리려사의 상고머리를 한 사환 하나가 선장이를 비둘기장같이 좁은 방에다 안내를 하더니 첫밗에 하는 소리가

<<커미숀, 커미숀.>>

선장이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뻥해 쳐다보니까 또

<<커미숀, 커미숀.>> 하면서 제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은전 몇잎을 꺼내보이는것이였다. 꼬락서니가 숙바료외에 구전 즉 팁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팁이란 원래 주면 받고 안 주면 못 받는것인데 이 녀석은 손님이 방에 들어가 미처 앉기도전에 팁채근부터 하는것을 보니 아마 세계낯가죽두껍기내기에서 신기록을 세울 결심인 모양이였ㄷ. 선장이가 그자의 말은 대척 않고

<<더블류 씨(W.C)?>> 하고 변소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본즉 낯바닥이 땅두께 같은 사환녀석은 례사롭게

<<나 나.>> 하고 침대밑을 가리켰다. 보니 침대밑에 뻘건 칠을 한 항아리모양의 나무통 하나가 놓였는데 역시 뻘건 칠을 한 뚜껑이 덮였었다. 선장이는 놀랍고도 기가 막혀 어안이 벙벙하였다.

(이런데서 사람이 어떻게 산담?)

생각하니 걷잡을수없이 고향이 그리워났다. 그런데 또 아고보니 이런 식의 려관에서는 잘 숙자 <<숙>>만 제공하지 밥 식자 <<식>>은 제공하지를 않았다. 즉 자는것만 들어와 자고 먹는것은 나가 먹어야 하였다.

(별 놈의 법두 다 많지! 간편하게 재우구 먹이구 하면 될것을 구태여 갈라놓을건 무어람?)

선장이가 두덜거려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방이 너무 좁아 숨이 막힐것 같아 넓은 거리로 나왔다. 행여나 무엇이 걸려줄가 해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우찌야마서점>> 이라는 간판을 붙인 서점 하나가 나섰다.

(아하, 여기두 일본놈의 서점이 있구나. 어디 한번 좀 들어가보자.)

들어갔다. 가지가지의 책들이 꽂힌 서가를 한바퀴 돌아보는중에 점원과 고객들 사이에 오가는 일본말이 귀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려관에서 걸린 병 아닌 병-고독감이 봄눈 슬듯하였다. 귀에 익은 일본말에-원쑤놈의 일본말에-고향말씨 같은 친절감가지 느꼈다. 이 얼마나 기괴한 일연이냐!

한낮때가 거의 되여 어디 가 점심을 좀 먹으려고 전후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발맘발맘 걷는중에

조선료리
경성식당

이런 간판이 눈에 띄웠다.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것 같다고나할가 어두운 밤에 반짝이는 등대불을 본것 같다고나 할가.

(이젠 살았다.)

선장이는 후유 안도의 숨이 나왔다. 서울 연갑수법률사무소의 현관문을 열기라도 하는것 같은 친숙함을 느끼며 경성식당의 출입문을 가볍게 열고 들어섰다. 보니 식당안의 구조와 차림새만은 서양식이였으나 사람들은-주인이고 손님이고-다 조선사람인데다가 벽에 붙인 메뉴의 글자들도 <<국밥>>, <<랭면>>, <<갈비탕>>, <<영계찜>> 등등 등등 모두 한글이였다.

한식탁에 우연히 마주않게 된 손님이 랭면을 청하기에 선장이도 덩달아 랭면을 청하였다.

<<학생 조선서 오잖았습니까?>>

마주앉은 손님이 선장이의 눈에 띄는 학생복차림에 흥미를 느끼는듯 물었다. 나이 근 40 한, 평안도사투리가 알리는, 빈틈없는 양복차림의 점잖은 신사였다.

<<녜 그렇습니다.>>

선장이가 여공불급하게 공손히 대답을 하였다.

<<조선 어디?...>>

<<서울입니다.>>

<<오 서울... 서울 좋지요. 그래 혼자서 왔습니까?>>

<<녜.>>

<<온지 오랩니까?>>

<<아니,어제 왔습니다.>>

<<무슨 일루?...>>

<<상해에서... 학교를 좀 다녀볼가 해서요.>>

<<음...>>하고 선장이를 우아래로 한번 훑어보고나서 그 신사는 다시

<<그래 지금 어디... 려관에 들었습니까?>>

<<녜 려관에 들었습니다.>>

<<어느?...>>

<<요기서 멀잖습니다. `항리` 라든가요... 중국려관입니다.>>

<<계속 려관에 있어서야 어디 되겠습니까.>>

<<아닌게아니라 그것때문에 지금 골머리를 앓는중입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 비용은 갑절 들지... 게다가 커미숀인가 뭔갈 내라구 자꾸 커미숀커미숀합니다.>>

<<음 그거 안됐구먼...>>

이때 랭면이 나와서 이야기는 잠시 중둥무이되였다. 다 먹고나서 그 신사는 권연 한가치를 피워물었다. 해적이 칼을 짚고 갑판우에 서있는 그림이 그 권연갑에 그려져있었다. 세상에서 일컫는 <<칼표>>였다.

<<어디 조선집에 기숙을 하는게 좋을것 같은데...>>

선장이가 들어다보았다 하고

<<그런데가 있으면 어디 한군데 좀 지시해주십시오. 이대로 지내기는 정말 곤난합니다.>>

살고죽는 일이 우연히 만난 그 신사의 말 한마디에 달린것처럼 바싹 달라붙었다. 신사가 한참 생각해보다가

<<프랑스조계두 괜찮습니까?>> 하고 운을 떼여서 선장이가 속으로는 곧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생각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그저 선뜻

<<녜 아무데두 다 좋습니다.>>

당길 마음을 보였다.

<<그럼 지금 나하구 같이 그 려관으루 갑시다. 행구가 거기 있을테지요?>.

<<녜. 그렇지만 처음 뵙는 어른께 이렇게 번거로움을 끼쳐드려서...>>

<<괜찮습니다. 같은 겨례가 아닙니까. 만리이역에서 서루 돕는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구 또 요만 일이야 뭐 도와준다구 말할것두 없지요.>>

선장이가 인복이 있어서 어디를 가나 귀인을 만나는 모양이였다.

하루밤 자지도 않은 려관에다 하루치 숙박료를 물어주고 그대신에 커미숀을 한푼도 아니 주고 트렁크를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같이 온 신사가 인력거 한채를 불러서 선장이를 태운 다음 인력거군에게 갈 곳을 분명히 일러주고 또 차삯도 에누리 못하게 아주 정해주었다.

<<그럼 가보십시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되겠지요.>>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인력거가 달리기 시작한 뒤에 신사가 수첩에다 몇 글자 적어서 한장 뜯어준 종이쪽지를 들여다보니

법조계 복후거리 애인리 42호 김혜숙

이렇게 적혀있었다(나중에 알고보니 법조계란 중국말로서 프랑스조계란 말이였다. 그리고 복후거리의 복후 두 글자는 중국말로 푸쉬라고 발음을 하는데 푸쉬는 프랑스의 유명한 륙급원수의 이름이였다. 프랑스당국이 중국땅우의 한 거리를 저의 나라원수의 이름으로 명명한것이였다). 선장이가 얼마동안 인력거에 앉아가다 문득 생각해보니 그 고마운 량반의 성명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이런 태덩이 좀 봤나!>>

선장이가 후회하여 혼자말로 지껄이는데 귀가 밝은 인력거군은 저를 보고 무어라는줄 알고 일변 달리며 일변 뒤를 돌아다보았다. 선장이는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한번 내저었다.

애인리는 상해의 전형적인 아빠트단지(团地)의 하나로서 회륵골형으로 겹겹이 들어섰었다. 아빠트단지도 층하가 많은데 애인리는 1~2류에는 몰론 못 들고 또 그렇다고 4~5류에 속하는것도 아닌... 3류쯤 되는 쑬쑬한축의 아빠트단지였다. 선장이가 <<42호>> 라는 문패를 확인하고나서 인력거를 돌려보낸 뒤에 조심스레 문발을 두드려보았다. 문발이란 꺼먼 칠 혹은 뻘건 칠을 한 육중한 대문에다 문고리 겸 초인종 겸 달아놓은 중국 고유의 바라로서 역시 놋쇠로 만든 둥근 문고리로 꽝꽝 울려 사람을 부르게 된 장치였다. 몇번 두드려도 집안에서는 아무런 동정이 없어서 선장이는 자신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

(사람이 없나?)

(이사를 갔나?)

(내가 혹시 잘못 찾아온거나 아닌가?)

종이쪽지와 문패를 다시한번 대조해보았다. 틀림이 없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공연히 그 어름을 서성거리고있을즈음에 홀지에 인력거 한채가 중심통로에서 이쪽으로 꺾어들어왔다. 선장이가 트렁크를 놓아둔 42호 문앞에 와 멎어서는 그 인력거에 앉았는것은 숙자아주머니 년갑세의 하늘색의 중국식녀자홑두루마기(旗袍)를 입은 녀인이였다. 자연히 선장이와 눈길이 마주쳤다. 인력거를 내려서 돈을 주어 돌려보낸 뒤에 그 녀인은 대문앞에 놓인 큰 트렁크와 어줍은 몸가짐으로 서있는 학생복차림의 선장이를 잠시 번갈아보더니

<<누구를 찾으시죠?>>

나직이 묻는 말은 틀림없는 조선말이였다. 선장이가 너무 반가와 겉으로는 튀여나올것 같은 마음을 누르고 얼른 앞으로 쫓아나오며

<<녜 저 김혜숙씨란분을 찾아왔습니다. 혹시...?>> 하고 말끝을 흐리니 그 녀인은 의아스런 눈으로 선장이를 여겨보며

<<어디서 오셨나요?>> 하고 물었다

<<아 녜 저 어떤분이 이런 쪽지를 적어주시면서... 찾아가면 기숙을 할수 있을거라구 해서... 왔습니다.>>

<<녜 그래요. 그럼 우선 들어갑시다.>>

간소하나 정갈하고 밝으나 호젓한 방에 들어와 우선 선장이부터 안락의자에 앉혀놓고 그 녀인은 들고 온 핸드빽을 옷장서랍에 넣고 또 유리창들을 열어놓은 다음에 비로소 앞에 와 엇비슥이 대하고 앉았다. 선장이가 보니 그 녀인은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몸매는 대살지나 강기가 있어보였다. 특히 그 눈은 산속의 호수같이 맑으면서 어두은 그늘이 비끼여 깊이를 헤아릴수가 없었다. 미우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서리였고 음악적인 목소리에는 강단이 어리였었다. 숙자아주머니를 평화롭고 화려한 공작에 비한다면 이 녀인은 수수하면서도 날파람 있는 새매에다나 비겨야 할것이였다. 왼쪽뺨에 까만 점 하나가 박힌것이 한폭의 그림에 둔 락관처럼 매력적인 조화를 이루었었다. 그 녀인 즉 김혜숙은 선장이의 찾아온 뜻을 잠착히 귀담아듣고나서 선선히

<<좋습니다. 한지붕밑에서 한번 같이 지내보십시다. 3층에 마침 방 한간이 비였는데... 그 방을 쓰도록 하시지요. 같이 올라가 보십시다.>>

말하고 곧 앞을 서서 선장이를 안내하였다.

3층에는 널직한 베란다와 큰방 하나,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선장이에게 차례진것은 작은 방이였다. 들어가보니 일인용의 작은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걸상 둘... 아주 단출하였다. 선장이가 들고 들어온 트렁크를 반반한 책상우에 턱 내려놓으니 그방의 입주식은 간단히 끝이 났다. 식사는 하루 세때 아래층 부엌겸 식당에 내려가 해야 한다는것과 옆방은 미국영화발행공사에세 타이프스트로 일하는 김혜숙녀인의 시누이가 쓴다는것을 안 뒤에 대문열쇠 하나와 방문열쇠 하나를 받아쥐니 선장이의 동거인자격은 얼추 갖추어진 셈이였다.

하늘이 굽어살피신 덕분에 선장이가 일로 계속 순풍으로 큰고생을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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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29 20:01:39

아이고..암튼 인복은 타고낫네요..이리저리 힘들때마다 귀인을 만나네요..

산동신사 (♡.224.♡.93) - 2023/10/30 05:09:36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복이 많다고 해야할지 큰 고생없이 일이 풀려나가서 안심이 되네요 . 아마 인상도 좋고 해서 누구나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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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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