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35

더좋은래일 | 2023.10.30 14:54:15 댓글: 2 조회: 361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3193


35

이때 상해의 해관(즉 세관)은 영제국주의의 관할하에 있었는데 무릇 황포강을 드나드는 상선-려객선, 화물선, 화객선들은 다 그 검사를 거쳐야 하였다. 그 해관 관리들중에 조선사람 하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신영호라고 하였다. 해관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찰스 신이였다. 신영호가 상해해관에서 얻지 못할 존재로 중용되는것은 그가 사람이 워낙 령리할뿐만아니라 영어, 일어, 중어 세 나라 말에 정통하여 막히는데가 없었기때문이다. 쌀 한마대에 팔구원밖에 안하던 시절에 월급이 280원이라는것만 보아도 그가 어느만큼 중히 쓰이는지는 가히 짐작을 할수가 있을것이다. 스물여섯살부터 이 일에 투신하여 서른아홉살이 되는 이날까지 열네해 동안 밤낮 세계 각국의 유명짜한 밀수업자들과 꾀를 겨루는것으로 살아온 까닭에 이젠 미립도 나리만큼 나 <<핀센트 찰스>>라는 별명까지 붙은 까닭에 밀수업자들이 모두 꺼리는 존재로 되였었다. 그의 별명을 핀세트라고 지은것은 속속들이 파고들어 잘 집어낸다는 뜻일것이다. 그렇지만 무능한 영국인동료들에 비하여 그가 받는 대우는 박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무릇 영국국적을 가진 백인이기만 하면 대학을 갓 나온 햇병아리들도 초임급이 400원 이하는 없었다. 그리고 10년만 근속하면 600원은 땅짚고 헤염치기고 또 25년을 근속하면 4계단 수자는 떼여놓은 당상이였다. 그러나 영궁인이 아닌, 피부색이 누른 신영호따위는 30년을 근속하고 정년퇴직을 한대도 규정에 따라 500원의 한계를 벗어날수는 없었다. 그것이 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의 구체적표현이였다. 그래서 신영호는 우는 쳐다보지 않고 아래만 내려다보고 살기로 하였다. 이삼십원 월급에 목이 매여 아등바등하는 불쌍한 인생들에 비하면 자기는 의심할바 없는 신선이였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마는 또 막상 월급날이 되여 햇내기 무능지배들이 저의 두달치, 석달치에 해당하는 월급을 당지당연하듯이 척척 받아챙기는것을 보면 심사가 뒤틀리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다. 대영제국에 개처럼 충실해보았자 개느 어디까지나 개였다. 생전 식탁밑에 엎드려있다고 던져주는 턱찌끼나 얻어먹을 가련한 신세였다. 이러한 신영호에게 뜻하지 앟은 기회가 닥쳐왔다. 천재일우라고나 할것이였다.

희랍선적의 <<사로니까>>라는 한척의 화물선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고무, 석, 목재, 원유 따위를 만재하고 입항을 하였다. 선장은 이딸리아사람이였다. 그리고 고급선원들은 개개가 백인이였지만 하급선원들은 거의다 동양인-인도인, 타이인, 필리린인 및 남양화교들이였다.

핀세트 찰스가 해관의 모터뽀트에서 닻을 내린 <<사로니까>>호의 현제로 뛰여오르는것을, 여러번 맞부딪쳐보아서 그 솜씨를 익히 아는 선장이 배전란같에서 굽어보고 손톱여물을 썰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였다. 해관에다 이 사람은 싫으니 다른 사람을 바꿔보내달라고 요청을 할수는 없는노릇이였다. 이런 배의 선장치고 뒤가 칩칩하지 않은자는 거의 없었다.

제6감각으로 냄새를 맡고 배에 오른 핀세트 찰스가 온갖 군데를 샅샅히 다 뒤져보았으나 검사망에는 허접쓰레기 금수품들이 송사리떼 걸리듯 걸릴뿐 정작 걸려야 할것은 걸려주지를 아니하였다. 하찮은 금수품들을 일부러 싣고 들어와가지고 떼우거나 또 벌금을 바치는것은 밀수업자들의 즐겨 먹는 눈가림법-상투수단이였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다. 보기 좋은 허탕이였다. 줄곧 같이 모시고 다니던 이딸리아선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러는 반면에 핀세트 찰스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단념하고 호주머니에서 검사증을 꺼내니 선장이 여공불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생각해보고 검사증을 도로 넣으니 희색이 만면하였던 선장의 얼굴이 헐쑥해졌다. 핀세트 찰스가 피뜩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것이 있기에 급히 되돌아서서 고물쪽으로 걸어가니 선장은 얼굴에서 초조한 빛과 긴장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뒤질세라 그뒤를 따랐다. 선미갑판 한구석에서 아무러하게나 놓여있는 허술한 도람통앞에서 핀세트 찰스가 발을 멈추니 선장의 얼굴빛이 금세 새카매졌다. 도람통의 마개를 열린대로 있는 아가리로는 거먼번지르르한 콜타르가 무디게 해빛을 반사하고있었다.

<<선장선생.>>

<<녜 검사관선생.>>

<<이 도람통에 들어있는게 뭐지요?>>

<<아 녜 보다싶이... 콜타르올시다 검사관선생.>>

<<그렇습니까. 그럼 어디 한번 좀 쏟아보실가요.>>

<<쏟아보다니요?>>

<<혹시 속에 무에 딴게 들어있지나 않나... 한번 좀 보잔 말씀입니다.>>

<<아 녜 물론... 좋습니다 검사관선생. 그렇지만 검사관선생... 이 정직한 해원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청천백일하에 언가생심...>>

<<물론 본인두 선장선생의 고상한 인격을 믿어 의심하잖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직책이 직책인만큼... 사정에 구애될수는 없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사람을 불러주십시오. 얼른 한번 쏟아보십시오. 이런 일은 데꺽 해치우는게 좋으니까요.>>

<<아 녜 좋습니다, 그럼 곧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검사관선생... 사람을 부르기전에 이런걸 한번 고려해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선장은 얼른 제복호주머니에서 비상용으로 미리 준비해두었던 <<홍콩-싱가포르은행>>의 어음 한장을 꺼내보였다. 핀세트 찰스가 번개같이 그 액면에다 눈길을 쏘았다

$100.000

미화 1딸라의 환산률은 중국돈 3원 30전이다. 10만딸라면 33만원-실로 핀세트 찰스의 100년분 봉급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핀세트 찰스가 컴퓨터 찜쪄먹을 속도로-5천분의 1초 동안에-계산을 하고 또 결심을 채택하였다. 잽싸게 어음을 받아넣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검사관과 선장이 다같이 경사가 났다. 검사관은 일확천금으로 벼락부자가 되고 또 선장은 선장대로 밀봉한 양철통속에 넣어 콜타르밑에다 감추어든 시가 300만딸라어치의 헤로인이 무사히 해관을 통과한것이다. 검사증을 주고받으며 검사관과 선장은 저들도 모르게

<<꾿럭!>>

<<꾿럭!>>

이러한 성질의 공식적인 장소에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인사를 나누었다. 꾿럭이란 영어로서 행운을 빈다는 말이다.

24시간후에 핀세트 찰스-신영호씨는 해관 당국에 사표를 내고 그리고 한달후에는 프랑스공원근처에 화원이 딸린 2층양옥 한채를 버젓이 사들였다. 상해에서는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독채집은 사들이지 못하는 법이였다. 전에 몰고 다니던 초라한 소형 오스틴차도 최신형크라이슬러로 갈고 또 집지킴으로 성질이 몹시 사나운 불독 한마리를 사다가 길들였다. 이리하여 신영호씨는 완전히 때벗이를 하고 유한계급으로 숙원을 이룬것이다. 그러나 로자의 말대로 복의 뒤에는 화가 숨어있는 법이다.

처음에 김혜숙은 선장이에게 중국어와 영어를 개인교수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차차로 과목 하나가 더 늘어 정치가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어느날 김혜숙이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선장이에게 해들리고있을 때 송일엽이 복도를 지나다가 열려있는 방문으로 들여다보고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미스터 서, 복수의 녀신하고 이마를 맞대구 무슨 쑥덕공론을 그렇게 하구있지요?>>

사실이 그러하였다. 남편을 총격전에서 잃고 또 동생이 현재 옥중에서 고역을 치르고있는 녀인이 복수의 일념에 불타지 않고 어쩌랴! 비록 우스개소리일망정 거기에는 진실이 담겨져있었다. 선장이는 김혜숙을 어느 모로 보나 자기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또 가르침을 받는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한번은 어떡하다 아편전쟁이야기가 났었다. 아편전쟁의 력사는 동양사에서 배운적이 있었으므로 선장이도 그 륜관은 대략 짐작을 하는터였다(이때의 중학교에는 세계사가 없고 동양사와 서양사가 있었다). 영제국주의가 아편무역에서 거액의 리윤을 추구하느라고 중국백성의 죽고사는것을 통 헤아리지 않는데 분격한 흠차대신 림측서가 영제국주의의 아편을 무수히 몰수하여 불태워버리고 또 수입금지를 명한것이 전쟁을 유발하였다는것도 대강 알고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제국주의강도를 도와 대량의 마약을 밀반입해다가 중국민중을 해친다면... 그게 뭐가 되겠습니까? 그건 용서못할 비행입니다. 범죄행위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신영호는 그런 죄악을 저질렀거든요. 시가 1천만원어치의 헤로인이 밀반입되는걸 눈감아주구 뢰물을 받아 벼락부자가 됐단 말입니다. 우리가 일본놈의 압박을 피해 중국땅에 와 살면서 도리여 중국사람을 해치는 일을 한다면... 그게 뭡니까? 배은망덕두 유분수지요! 신영호의 이번 행위는 용서할수 없습니다. 버릇을 한번 톡톡히 가르쳐놔야 합니다.>>

이와 같이 야무진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하고나서 김혜숙이

<<안 그렇습니까 미스터 서?>> 하고 묻는데 선장이는 선뜻

<<녜 맞습니다.>>하고 수긍하였다.

<<그럼 그자를 혼뜨검내주는... 미스터 서두 한번 참여해볼 생각이 있습니까?>>

<<하겠습니다.>>

선장이가 씩씩하게 호응해나서는것을 보고 김혜숙은 빙그레웃고

<<그렇다면 내 한가지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잠간 기다리십시오.>>하고 곧 일어나 뒤방으로 들어가더니 한동안이 지나서 약장사가방 같은 자그마한 가방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앞상우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젖히고 또 씌워덮은 보를 벗겼다. 선장이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속에는 네댓자루의 모양이 각기 다른 권총이 들어있은것이다.

<<어디 한번 좀 만져나보십시오... 처음이지요?>>

김혜숙이 빙글거리며 말하여 선장이는 단 부저가락이라도 쥐듯이 조심스레 그중의 한자루를 집어들었다.

<<그건 미국제브라우닝.>>

<<이건 독일제모젤... 손잡이에 나무쪼각을 덧댄게 특색입니다.>>

<<그리구 요건 역시 미국제루... 콜트. 자 어떻게 다른지 다 한번씩 쥐여나보십시오.>>

선장이는 희열로 하여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나 대견하였다.

<<그럼 그건 뭐라는겁니까... 그 륙혈포 같은거?...>>

<<오 이거... 이건 리볼버-자동권총입니다. 탄피를 튀기지 않구 여섯방을 쏠수 있습니다. 암살용-회전식 6련발- 자 한번 쥐여보십시오 어떤가.>>

이로부터 며칠동안 선장이는 김혜숙의 차근차근한 지도로 탄약을 재우는 법으로부터 분해하는 법까지 실탄사격만 빼놓고 권총 다루는 법을 다 배웠다. 끝으로 김혜숙은

<<무슨 행동을 하려구 권총을 휴대할 때는... 그냥 몸에다 지녀선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수시루 경찰에게 몸수색을 당할 념려가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이런 특제의 양말대님으루... 알겠습니까? 왼편종아리 안쪽에다 차야 합니다. 일반적으루 종다리까지는 수색을 안하니까요.>> 하고 특별하게 만든 양말대님까지 꺼내보이는것이였다.

처서가 지나서 더위는 채 숙지지 않았지만 아침, 저녁은 선선한 바람기가 좀 생기는것 같은 때였다. 오래간만에 리춘근이 선장이를 찾아왔다.

<<미세스 전을 통해 이야기는 대강 들었습니다만... 우리의 모험적인 사업에 투신할 의향이 있으시다구요?>>

자리잡아 앉아 인사수작을 마치자 곧 리춘근이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어서 선장이는 선뜻

<<녜, 우리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어나 다하겠습니다.>> 하고 결심을 표시하였다. 리춘근은 대번에 선장이의 손을 굳게 잡으며

<<그럼 우리 이제부터 행동을 같이해보십시다.>> 말하고 잇달아서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한가지 있는데... 내말은... 모험활동에 필요한 기능을 몸에 지녀야 하겠단 말입니다.>> 하고 선장이의 얼굴을 가늠하듯 똑바로 보았다

<<어떻게 할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지시대루 하겠습니다.>>

이틀후에 선장이는 북정거리에서 남경행 렬차에 올랐다.

<<하관정거장에는 헌병과 람의사 요원들이 씨글씨글하니까 하관까지 가지 말구 화평문역에서 내리십시오. 내리는 길루 인력거를 잡아타구 곧바루 중산북거리에 있는 금릉려사루 가십시오. 가서 숙박부에 `관동성`이라는 가명을 적어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몇시간 안으루 우리 사람들이 찾아올겝니다.>>

떠나올 때 리춘근이 일러준대로 행동을 하며 선장이는 모험활동에 대한 호기심으로 하여 신비경속에 이끌려드는것만 같았다.

숙박부를 들고 들어왔던 금릉려사의 사환이 선장이가 적어넣는 <<관동성>> 석자를 보더니 선장이의 얼굴을 다시한번 쳐다보고나서 아무말없이 숙박부를 도로 덮어들고 나갔다. 아니나다를가 점심때가 거의 되였을 때 복도에 발자국소리들이 나면서 곧 누군가가 와 방문을 노크하였다. 들어온 두 사람중의 하나는 양복을 입었는데 나이는 스물서너살 가량이고 다른 하나는 연회색의 따과-중국식홑두루마기를 입었는데 나이는 30 전후였다.

<<잘 오셨습니다 서동무.>>

<<원로에 수고가 많습니다 서동무.>>

처음 보는 선장이와 열렬하고도 친근한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서동무>> 소리에 선장이는 야릇한것을 느꼈다. 자신의 성밑에 <<동무>>가 붙어보기는 생후 처음이다.

(이제 정말 내가 혁명의 테두리안에 한발을 들여놓았구나.)하는 긍지와 자부심에 도취되여 머리가 휭할 지경이였다.

<<오늘은 하루 푹 쉬구... 래일 떠나도록 하십시다.>>

양복입은 사람이 위로하듯 보살피듯 말하는데 선장이가

<<아니 어디 또 다른데를... 가야 합니까?>> 하고 의아스레 물으니 그 사람은 웃으면서

<<이 남경에서 남동쪽으루 진회하를 끼고 한 30리 가면 강녕이라는 읍거리가 나섭니다.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대여섯마장을 더가면 수풀 우거진 잔산밑에 우리의 별장들이 서있습니다. 거기가 서동무 이번 나들이의 종착점입니다.>>하고 옆에 앉은 따과 입은 사람을 돌아보니 그사람도 웃으며 수긍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선장이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남경에서의 첫날밤을 지내는데, 밝은 날 가게 될 강녕에 있다는 별장들에 대하여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쳤다. 수목이 빼곡이 들어선 잔산밑에 졸졸 흐르는 도랑물... 파란색양탄자를 편것 같은 잔디밭과 바람에 설레는 정원수들... 해빛을 받아 7색무지개를 이루는 분수의 물줄기...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쏘파와 등의자... 시원한 가을바람을 내보내는 선풍기와 유백색의 전기랭장고... 선경 같은 강녕별장의 아름답고 그윽한 상상화가 선장의 머리속에서 거의 완성이 되여갈무렵 홀지에 베개를 벤 목덜미가 따끔따끔해났다. 어찌된 영문을 모르는중에 이번에는 또 엉뎅이가 따끔따끔해났다. 문득 선장이는

(갑자기 물을 갈어먹어 신경세포가 어떻게 잘못됐나?) 하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곧 다시

(습관이 되면 괜찮겠지. 설마 어떨라구.)

태평으로 생각하고 두다리를 쭉 뻗고 편안히 누워 강녕선경의 상상화를 마저 완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아름다운 뜻은 이루어지지를 못하였다. 이번에는 또 등판과 허벅다리 그리고 팔죽지와 종다리까지 일시에 따끔따끔해난것이다. 깜짝놀라 벌떡 일어났다. 데꺽 전등을 켜고 보니 누었던 요우에서 수십마리의 빈대가 와그르르 흩어진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놈들을 눈결에 보니 배때기가 터지도록 피를 빨아먹어 한껏 통통한 놈에 여름내 피 한방울 구경 못하고 배때기를 곯았는지 메밀껍질모양 얄팍한 놈에... 별의별 놈이 다 있었다. 남경성안 금릉려사-그 이름도 아름다운 금릉려사-의 그악하고 렴치 없고 이악하고 운치 없는 빈대들이 선장이의 미완성 상상화를 산산조각을 내놓았다. 랑만의 꿈에서 깬 선장이는 초련 하루밤을 무사히 날 일이 난감하였다.

이튿날 아침후에 요제나조제나하고 사람들이 와줄 때를 기다리는중에 려관앞에 싸이드카 한대가 와 서더니 측차에서 우람한 체구의 헌병 하나가 내리는데 보니 령장에는 소성이 셋-대위였다.뚜벅뚜벅 걸어들어와 계산대안에서 얼른 맞아일어서는 서사에게 명토없이

<<있는가?>>

한마디를 묻고는

<<녜녜, 있습니다 있습니다.>> 하는 서상의 여공불급한 대답을 귀전으로 들으면 곧장 선장의호실로 향하였다.

노크를 하며 곧 방안에 들어서는것이 헌병대원인것을 보고 선장이는 깜짝 놀라 엉거주춤 일어나가지고 두눈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였다.

<<서동무지요?>>

또렷한 조선말이다.

<<녜 그렇습니다.>>

<<갑시다 그럼.>>

<<녜.>>

선장이는 어리둥절하여 무조건 따라나섰다. 이런 어마한 국민당정부의 헌병대위가 자신을 데리러 올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헌병대위가 손짓하여 선장이를 먼저 뒤안장에 태운 뒤에 자신도 측차에 올라앉으니 핸들을 잡은 헌병하사가 곧 발동을 건 다음 대위에게 나직이 행선지를 물었다.

<<광화문밖.>>

대위의 말이 떨어지자 싸이드카는 곧 고르로운 폭음을 울리며 큰 거리를 내닫기 시작하였다. 남경시내를 헌병대차에 헌병과 동승하고 달리니 동정칙백리 내 말 내 타고 가기로 거치는것이라군 없었다. 광화문을 언뜻 지나 진회하에 걸린 다리를 남으로 하나 건느고 또 동으로 하나 건는 뒤 싸이드카는 평탄대로를 경쾌하게 바람을 일으키며 달렸다. 강녕읍 조금 못미쳐 꽤 포실해보이는 주막거리 하나가 나서는데 그 길가에 허술한 옷차림의 늙은 행인 하나가 쓰러져있었다. 대위가 하사를 돌아보고

<<잠간 정거.>>

명한 뒤 싸이드카가 급히 멎어서기를 기다려서 길우에 내려섰다. 내려서는 길로 곧 늙은 행인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구푸리고 들여다보며

<<여보시오 령감, 어떻게 된 일이요?>> 하고 물었다. 늙은 행인이 감았던 눈을 게슴츠레 뜨고

<<허기중이 나... 걸을수가 없쇠다...>>

죽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다가 대위의 령장이 눈에 뜨인 모양으로 인지않고 끝에다

<<나리.>>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위가 곧 하사를 시켜 가까운 주막집의 주인을 불러다가 은전 몇잎을 쥐여주며 허기증 난 로인을 좀 잘 돌보아주라고 부탁하니 주막집주인은

<<녜녜 념려 맙쇼 나리. 죄송합니다 나리.>>하고 허리를 굽신굽신하였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싸이드카는 강녕읍거리의 복판을 꿰고 나가자 이내 큰길에서 벗어나 촌길을 잡아들었다. 싸이드카가 배처럼 훌렁거리며 울퉁불퉁한 길을 한 10분 달렸을가... 앞길에 수풀이 우거진 잔산 하나가 나서는데 그 산밑에 볼품 없는 단층건물 서너채가 산재하였었다. 그중의 한채는 무슨 창고모양으로 길고 멋없고 그외의것들은 보통농가를 대수 손질하여 고쳐꾸민것 같았다. 실도랑은 있으나 수양버들은 두어주밖에 서있지 않고 길은 있으나 행인의 그림자는 보이지를 않았다. 초입에 섰는 작은 집 마당에 반원을 그리며 싸이드카가 멎어서니 활짝 열린 창문으로 머리를 길게 기른 해사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그 사람이 헌병대위를 보자

<<아 반동무.>>

알은체하고 문으로 돌아나오기가 귀찮던지 그대로 펄쩍 창문으로 뛰여나왔다. 30 전후의 키가 후리후리한 남자였다. 그 사람은 헌병대위 반동무와 악수를 나누고 또 선장이와도 악수를 나눈뒤에 헌병대위와 둘이 저쪽에 가 서서 몇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이내

<<그럼 고만 난 돌아갑니다.>>

<<수고가 많습니다.>>

선장이도 들리게 작별인사들을 하였다. 헌병대위 반동무가 선장이에게도 가는 인사하고 싸이드카에 올라앉아 온 길을 도로 가버린 뒤에 그 사람은 선장이에게 다가와 새삼스레

<<서선장동무지요? 나 조경산이라구 합니다.>>

통성명을 하고 잇달아서

<<어서 들어가십시다.>>하고 선장이를 집안으로 인도하는것이였다.

집안에를 따라들어가보니 마루를 놓지 않은 땅바닥은 고르지 못한 흙바닥이요, 보꾹을 쳐다보니 갈비대 같은 서까래가 앙상하다. 서랍이 달린 장방형의 헌 책상 하나와 서랍이 없는 장방형의 때 낀 긴탁 하나가 창문편으로 놓였다. 그리고 안쪽에는 참대격자밑에다 긴걸상 두개씩을 받쳐서 만든 침대 둘이 놓였는데 너비와 길이가 침대와 비슷한 모기장 하나씩이 쳐져있다. 선장이는 자신의선경같이 아름답고 그윽한 강녕별장의 상상화가 너무나 무참히 깨져버리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못하여 도리여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앞에 앉았는 조경산이란 사람까지 포장이 조잡한 상품처럼 값이 없어보였다. 실망감이 경멸감으로 번지는것을 선장이는 느꼈다. 조경산이 책상우의 권연갑을 집어서 선장이에게 내밀며

<<담배 피우시지요.>>

친절하게 권하는것을 선장이가 피우지 않는다고 받지 않으니

<<그래요?>> 하고 웃으며 조경산은 한가치 뽑아 입에 물고 성냥을 그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생사를 같이해야 할 동무니까... 무슨 일이나 사양 말구 서루 의논해가며 잘 지내십시다.>>

<<녜.>>

<<중국엔 언제 건너오셨습니까?>>

<<이제 서너달밖에 안됩니다.>>

<<말씨만 들어선 고향이 어디신지 잘 모르겠군요.>>

조경산은 나이가 자기보다 10여년이나 아래인 선장이에게도 초면이라서 그런지 깍듯이 경어를 썼다. 하긴 상해의 리춘근이나 김혜숙도 다 그러하였다.

<<원산입니다.>>

<<아 원산... 원산은 좋은데지요.>>

<<원산을... 가보셧습니까?>>

<<녜 가봤지요. 송도원두 가보구 명사십리두 가보구... 현재 우리 여기두 원산동무가 하나 있는걸요.>>

<<그렇습니까.>>

<<아 이제 곧 만나게 되실겝니다. 저쪽 집에서들 지금 수업중이니까요.>>

이때 밖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경산동무.>>하고 불러서 조경산은

<<아 나 여기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마침 잘 오셧습니다. 여기 동향친구 한분이 와계십니다.>>하고 문쪽을 돌아보며 웃었다.

얼굴이 거머무트름하고 체구가 건장한 남자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그 남자를 한번 보자 선장이는 앉았던 걸상에서 누가 잡아일으키는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조경산이 무슨 일인지 몰라 좀 어리둥절하는데 선장이가 큰소리로

<<씨동이형님!>> 하고 부르니 그 사람은 잠시 어리뻥뻥하고 서있다가

<<아니 너 선장이가 아니냐?>> 하고 앞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둘이 서로 부등켜안고 좋아하는것을 옆에서 조경산이 어이없다는듯이 바라보았다.

한동안이 지나서다. 양씨동이와 선장이는 실도랑 맑은 물에 발들을 잠그고 도랑가에 나란히 앉아 끝이 없이 긴 이야기의 실꾸리를 풀어나갔다.

<<그래 넌 학교를 그만뒀니?>>

<<피가 끓어서 글이 어디 머리속으루 들어와줘야지. 제2의 윤봉길이가 되구싶어 공부구 나발이구 다 걷어치우구 뛰쳐나왔소.>>

<<그럼 집에서들은 모르겠구나?>>

<<상해를 온 뒤에 편지를 내였소.>>

<<우리 집에선 어떻거구들 지내니?>>

<<그저 그렇게들 지내지. 별일은 없소. 그렇지만 큰어머니가 아주 폭 늙었습니다.>>

<<흠...>>

<<원동이형님은 올가을에 잔치를 할 모양입디다.>>

<<해야지...>> 하고 씨동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있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정실이는 어떻게 됐니?>>

<<시집가서 벌써 아들 하나 낳았소.>>

<<그래여? 그거 잘됐구나. 매부가 누구냐... 나두 아는 사람이냐?>>

<<아는 사람이 아니구.>>

<<내가 아는 사람... 누구냐?>>

<<바루 한정희요 한정희.>>

<<뭐시 한정희? 한정희라구? 음 거참 생각밖이다. 그래 한진사가 맏손자며느리를 귀여워하니?>>

<<한진사는 벌써 세상뜬지가 옛날이요.>>

<<응 그래여? 그럼 너의 매부가 지정을 물려받았겠구나?>>

<<물려받기는 했어두... 집안 형세는 자꾸 기울어져가우.>>

<<어떻거길래?...>>

<<원체 수완이 부족한데다가 맘까지 들떠있으니 일이 될게 뭐요.>>

<<그럼 거 탈났구나.>>

<<누가 아니라우.>>

<<쌍년이는 어떻거구있니?>>

<<그 누나가 불쌍하우. 왜 소식두 좀 전하잖소?>>

<<어디 그렇게 잘되니... 나두 가엾이는 생각한다.>>

<<형님이 봉천서 부친 그 전보 같은 편지는 나두 봤소. 모셔두구있습디다.>>

<<그후에는 그럭저럭 소식을 못 전하구말았다.>>

주고받던 말이 잠시 동이 끊겼다.

<<이 도랑에 소천어가 많소? 미꾸라지란 놈이 내 발뒤꿈치를 자꾸 콕콕 쫏소.>>

<<야 말 말아, 원산바다가 그리워 죽겠다. 이게 어디 사람이 살놈의데냐!>>

두 사람의 눈앞에서는 졸졸 흐르는 도랑물이 아니라 원산항 푸른 바다의 시원한 물결이 늠실거렸다.

<<이제 그 조경산이란이는 무어하는이요?>>

<<우리 여기 지도원이다. 용맹하기가 비길데 없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깎은선비 같지, 겉보기엔?>>

<<응.>>

<<그래서 다들 속는다. 무서운 사람이야. 사람을 얼마를 죽였는지 모른다. 적에 대해선 무자비한 사람이야.>>

<<예?>> 하고 선장이는 눈이 둥그래졌다.

<<너두 앞으루 그한테서 배워야 해.>>

<<내가 잘 배워낼수 있을가.>>

<<다 사람이 하는노릇인데 배우면 되지야. 걱정 말아.>>

<<아까 나를 여기 데려다준 그 헌병대위는 어떻게 된이요? 반동무라든가.>>

<<아 반해량. 우리 사람이다. 중앙군교 8기졸업생.>>

<<중앙군교?>>

<<중앙륙군군관학교... 황포군관학교의 지금이름이다. 그런데 지금 그사람의 역할이 크다. 헌병대위의 제복을 입구 우리 일을 해주니까... 어떻겠니 생각해봐라. 없어선 안될 존재지.>>

<<그러구보니 대단한이구려.>>

<<훌륭한 애국자지.>>

선장이가 등뒤의 집들을 한번 둘러보고

<<그런데 저 집들이 왜 모두 저렇게 허술하우? 난 별장이라기에 뭐 대단한줄 알았지.>> 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니 씨동이는 하하 웃고

<<왜, 실망했냐?>> 하고 선장이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실망을 안하게 됐소?>>

<<경비가 부족해서 그래 경비가. 경비가 나올 구멍이라군... 우리들의 모험활동밖에 더 바랄게 없는 형편이야. 그러게 우리 행동대는... 경비를 빌어 대는게 주요한 직책이야.>>

<<행동대?>>

<<그래여 행동대. 너두 이젠 행동대의 일원이야.>>

<<너도일원>> 이란 말에 선장이는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그래두 이건 너무 좀 초라하우. 살풍경이요. 랑만이 붙을데라군 없소.>>

<<초라하거나말거나 우리 배울것만 다 배우면 고만 아니냐? 너 전에 원산 있을 때 나하구 같이 사기막에 한번 가봤지? 얼마나 초라하구 어설프디. 그래두 거기서 구워낸 사기만은 일등이거든. 그거나 마찬가지야.>>

두 사람이 끝이 없이 지껄이고있을 때 두번째 집 마당에 앞치마를 두른 작달막한 늙은이 하나가 나서서

<<카이판나(开饭哪)!>>

네 이웃이 다 들리게 소리를 쳤다.

<<형님, 저게 뭐요?>>

<<우리 밥해주는 취사원이다... 왕첨지. 가자, 밥 먹으러 가자.>>

씨동이와 선장이는 발에 묻은 물을 부지런히 닦고 제각기 신발들을 주어신었다.

추천 (3) 선물 (0명)
IP: ♡.245.♡.205
로즈박 (♡.39.♡.172) - 2023/10/30 21:01:43

음마나...끝내 양씨동이를 이렇게 만나는군요..
산사람은 언제든지 만난다는 말이 맞군요..두사람이 얼마나 반가웟을가요?

산동신사 (♡.173.♡.19) - 2023/10/31 09:06:24

씨동이형 만나는장면 넘 감격스러웠습니다.나라를 찾기위해서 남의나라에 와서 목숨걸고 싸우는사람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것 같습니다. 많은걸 깨우치면서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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