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38

더좋은래일 | 2023.11.01 09:00:57 댓글: 1 조회: 274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3673


38

서선장이가 소속한 단체라느니보다는 정당의 상해특구전부장 성재수는 광주학생사건때 서울서 동맹휴학을 선동, 조직하고 또 경찰에 폭행을 가했다는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게 되자 이곳저곳으로 피신해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중국으로 망명을 한 사람이다. 광주학생사건 당시 그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재학중이였는데 그의 부친은 역시 서울 수송동에서 <<전치위원>>이라는 병원을 경영하는 개업의였다.

선장이도 리춘근의 소개로 성재수를 알게 되여 공사 사사로 수차 만나본적이 있는데 마랑거리 그의 아빠트에를 가면 서울서 발간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신보>> 따위의 조선문신문은 물론이려니와 <<경성일보>> 같은 일본신문도 얻어 볼수가 있었다. 그리고 잡지들도 <<개벽>>, <<조광>>, <<삼천리>>, <<조선녀성>>, <<조선문단>> 간은 성인독물외에 <<어린이>>, <<별나라>> 같은 아동독물까지 다 구비되여있었다. 그러나 국내의 신문잡지들에서 요점이나 필요한 부분을 발취하여 중앙에 올려보내는것이 그의 주요한 임무의 하나였었다.

이날 성재수가 국내로 들여보낼 편지 몇통을 쓰는데 밤이 이윽해서야 겨우 끝이 났다. 너무 오래 앉아있은 까닭에 허리가 뻑적지근하였다. 바람도 쏘일겸 우체통에 저레 갖다넣으려고 아빠트를 나섰다. 행인이 거의 그치다싶이 한 거리를 시원한 밤바람을 쏘이며, 가로수의 락엽을 밟으며 호젓이 혼자 거니는 멋에 발 가는대로 걷다나니 시간이 꽤 간 모양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의다 와서 무심코 보니 골목어귀에 시커먼 자동차 안대가 서있었다. 공연히 섬찍한 생각이 앞서서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멀찌감치 어둑시그레한 집그늘에 가 붙어서서 동정을 살폈다. 자신이 들어있는 아빠트의 현관문이 열린것이 바라보였다.

(저 문이 왜 저렇게 열렸을가?)

도난방지로 문단속을 잘하기로 소문이 난 상해사람들이다. 대낮에도 언제나 꼭꼭 잠그고 사는 문이 이 밤중에 무슨 변고가 없다면 저렇게 허수히 열어놓을리가 만무하다. 열려있는 문뒤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더욱 놀라운것은 2층 자기 방에 불이 켜져있는것이다. 그리고 창문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것이다. 누가 자신을 잡으로 왔다는것을 선뜻 짐작하고 수궁(도마뱀붙이)처럼 집그늘에 더 바싹 달아붙었다. 일본경찰의 월경행동임이 대개 틀림없이 보였다. 일본놈들은 전에도 여러번 자동차를 몰고 비법적으로 프랑스조계에 침입하여 이렇게 조선혁명자들을 랍치해간적이 있었다. 사후에 알고 프랑스식민주의당국이 항의를 하면 일본제국주의는 그런 일이 절대로 없다고 딱 잡아떼게 마련이였다.

빈방을 들이덮쳤다가 허탕을 짚은 두놈이 도로 나오는것을 2층에서 내비치는 불빛에 보니 침대보를 벗겨서 압수한 서류들을 대충 뭉뚱그려 싸들었었다. 문뒤에 숨어섰던 두놈도 마저 나와 네놈이 바쁜 걸음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골목어귀에 대기시켜놓은 자동차를 타러 나왔다. 문등밑을 지날 때 그중 한놈의 얼굴을 성재수가 눈결에 알아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저건 임규룡이가 아닌가!)

임규룡이는 조직의 련락원이다.

(그럴리가 없는데... 내가 빗보았나?)

(아니아니 틀림없는 임규룡이야!)

성재수가 무슨 갈래판을 몰라서 잠시 어리뻥할즈음에 그 시커먼 자동차는 우르릉 엔진소리와 함께 배기가스를 뒤로 내뿜고 쏜살로 달아나버렸다. 성재수가 그늘에서 나와서 부지런히 집안에를 들어와 불한당놈들이 온갖 군데를 들뒤진 뒤끝이라 방안은 문자 그대로의 불란장판이였다. 상해태생인 주인집 마누라가 와들와들 떨면서

<<후시상(胡先生) 자오양라(遭殃啦) 자오양라!>> 하고 울음반 지껄이며 뱅글뱅글 돌아갔다. 주인집에서는 성재수를 복건사람 호선생으로만 알고있었다.

이튿날오전중으로 성재수는 포석거리에 있는 포석리라는 아빠트단지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즉시 리춘근을 찾아서 되여진일을 알리고 또 대책을 의논하였다.

<<세상에 이런 일두 그래 있을수 있습니까?>>

<<보기는 분명히 보셨겠지요?>>

<<슬프게두... 틀림이 없습니다.>> 하고 성재수가 서글프게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니 리춘근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요?>>

<<조직이 덩굴걷이가 되기전에 얼른 손을 써야지요.>>

<<어떻게?...>>

<<한번 더 확인을 해보구 뚜렷한 증거가 있으면... 할수 있습니까... 없애치웁시다.>>

당일범으로 서선장이는 김혜숙과 함께 임규룡이의 거처를 감시하고 또 그뒤를 밟을 임무를 맡았다.

임규룡이는 라파에트거리 북단의 자물쇠, 칼, 가위, 대접쇠, 문장부 따위 자질구레한 철물을 파는 가게방 2층에 방 한칸을 세들어있었다. 그 길건너 비슥맞은편에 련속그림책을 세놓은 가게 하나가 있어서 그 가게에 들어가 앉으면 한책을 2전씩 세를 내고 10전이면 네댓시간은 어렵지 않게 소일을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줄창 거기 들어앉아있을수는 없는 일일뿐더러 중년의 녀성인 김혜숙은 더구나 안될 일이였다. 그래서 선장이가 한나절을 지켜본 뒤에 김혜숙이 교대를 해주러 왔을 때 둘이 의논하고 철물전 역시 비슥맞은편에 있는 잡화점 2층에 방 한간을 세들기로 하였다(<<빈방 있음>>이라는 패찰이 나붙어있었다). 5원 50전 방세부터 선셈해주어 주인을 안심시켜놓고 방안에 들어가보니 책상 하나, 걸상 하나도 없는 알뜰한 빈방이다. 세간붙이가 하나도 없이 맨몸으로 세든 사람을 주인이 수상히 여길것도 념려가 되려니와 그보다도 우선 급한것은 창문턱이 앉은키보다 높아서 맨 마루바닥에 앉아서는 맞은편을 바라볼수가 없는것이였다. 선장이가 방구석에 나동그라져있는 보지랑비를 집어다가 시험조로 한번 깔고 앉아보니 거미줄이 얼기설기한 처마와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바라보일뿐이였다. 선장이가

<<대동감시소나 천문대를 꾸렸으면 꼭 알맞겠군요.>> 하고 웃음의 소리를 하며 일어서니 김혜숙도

<<내처 서서 지키는 수도 없구.>> 하고 당혹해하는 웃음을 웃었다.

<<나 괜찮습니다. 미세스 전이 문제지.>>

<<내 내려가 주인한테 핑게하구 걸상 하나 빌어봅시다. 그러구 세간붙이가 없는 까닭두 해석을 해야지요, 괜히 의심사잖게.>>

<<어떻게 뭐라구 해석을 하실 작정입니까?>>

<<상주에서 동생네가 이사를 오겠는데... 이미 집을 좀 잡아달래서 그러는거라구... 얼렁뚱땅해놓지요 뭐.>>

<<대단히 구차스럽군요.>>

<<모루 가나 기여 가나 서울만 가면 그만이지요.>>

다행히도 빌어온것이 사개가 느슨해져서 찌걱거리기는 해도 긴걸상이여서 두 사람이 같이 앉을수가 있었다. 걸상을 창문밑에다 바싹 가까이 갖다놓고 유리창에다 바른 종이가 찢어진데로 내다보면 상대편에게 들키지 않고도 감시의 목적에 달할수가 있었다.

<<그동안 아무 동정이 없던가요?>>

<<꼴이 아마 늦잠을 자는 모양입니다. 그러찮구야 이게 어느땝니까...>>

말을 하다말고 선장이가 잠망경을 들여다보듯이 눈을 유리창에다 붙인채

<<저저... 나오네요!>> 하고 낮게 소리쳤다.

<<어디?>> 하고 김혜숙이 얼른 눈을 유리창에 갖다붙이고 내다보니 자주빛 줄무늬가 비낀 넥타이를 맨 임규룡이가 철문전앞에 나섰다. 길 아래켠을 향하여 손짓하며

<<왕바오처!>>

인력거를 부르는 소리가 잡화점 2층에까지 똑똑히 들려왔다. 선장이가 후닥닥 뛰여일어나며

<<여기 기세요... 내 얼른 따라가보께.>>

말하고 김혜숙이 미처 무슨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부지런히 방문을 열어젖뜨리며 나와서 통통통통 아래층으로 뛰여내려왔다.

서투른 미행군 서선장이가 곧 인력거 한채를 잡아타고 그뒤를 따랐으나 얼마 못 따라가 닭 쫓던 개 먼산 바라보는 꼴이 되여버렸다. 혼잡한 거리에서 눈 깜박할 사이에 임규룡이를 잃어버린것이다. 선장이가 파김치가 되여가지고 들어오는것을 보고 김혜숙이 적이 웃으며

<<고만 일에 죽지가 부러질것 무어 있에요, 사내대장부가.>> 하고 친근하게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여기는 내게 맡기구 어서 돌아가 식사나 하세요,이모가 기다릴텐데. 그리구 맘놓구 푹 쉬세요. 이따 올 때는 저레 저녁식사를 하구 오세요. 이런 일이 그렇게 쉽게 하루이틀에 성공이 될줄 아세요? `만만디`루 할 작정하구 조급해마세요.>> 하고 싹싹하게 어루만져주어서 선장이는 빠졌던 맥을 다시 추었다.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지.)

예로부터 있어온 속담을 제게 좋게 둘러맞추고 다시 싱싱하게 살아서 밥을 먹으러 갔다.

썩후에 선장이가 다시 와 김혜숙과 교대하여 임규룡이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는데 창문에 그림자가 비칠가봐 불도 켜지 못하고 어둑컴컴한 방안에서 혼자 갑갑한것을 참아가며 끈덕지게 기다렸다. 시간을 몰라 궁금하여 손목시계를 들여다볼 때만 잠간잠간 전등을 켜보군 하였다. 이런 일을 하려면 야광시계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또 혁명이란 통쾌하고 장렬할것인줄 알았더니

(제기 이런 구차한짓을 해야 하다니!) 하고 쓴입도 다시였다. 10시가 지났는데도 임규룡이가 들어오지 아니하여 내가 혹시 데면데면하여 돌아오는것을 보지 못하지나 않았나 하는 의심까지 들었으나 돌아왔으면 방에 불이 켜졌을텐데 창문은 그저 새카만대로 있으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였다. 11시가 거의다 되여서야 임규룡이 탄 인력거가 이미 빈지를 닫아건 철물전앞에 와 멎어섰다. 잠시후에 2층에 불이 켜지고 창문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것이 보였다. 가게문이 열렸을 때는 바로 가게로 드나들고 가게문이 닫쳤을 때는 뒤문으로 돌아다니는 모양이였다. 선장이는 임규룡이가 자려고 불을 끄는것까지 다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발소리를 죽여가며 아래층으로 내려와 호젓한 밤거리에 나섰다. 이것으로 오늘 일은 끝이 난것이다.

안날 임규룡이가 늦잠 자던 료량하고 선장이가 이튿날아침에는 늦잡도리를 하였다. 10시 정각에 자전거방에 가 자전거 한대를 세내여 타고 라파에트거리 잡화점으로 왔다. 자전거를 가게앞에 세워놓고 2층으로 올라와 유리창에 바른 종이틈으로 내다보는데 불과 10분이 채 못되여 철문전 2층의 유리창이 열리며 곧 자리옷입은 임규룡이의 빗지 않은 머리가 푸시시한 부석부석한 얼굴이 드러났다.

(하마트면 들킬번하잖았나!)

선장이가 목을 쏙 옴츠러뜨리며 못내 다행히 여겼다. 임규룡이는 창문을 열어놓더니 창턱에서 아령을 집어들고 팔굽혀펴기로부터 법식대로 아령운동을 하는것이였다. 선장이는 속으로 비웃기를

(저 자식 뒤덜미에 사자밥을 걸머지구도... 잘 논다 망할 자식! 한 백살 살구싶은가베?)

선장이는 처음부터 임규룡이를 반역자로 락인찍고있었다. 당초에 리춘근이 확증을 얻을 때가지 경선히 손을 쓰지 못한다고 경계하던것부터가 벌써 맞갖잖았었다.

(그만했으면 다 알아봤지 또 무슨 놈의 확증이 필요하담!)

선장이는 조직의 지시라 마지못해 구차한노릇을 하고있는것이였다. 아령운동이 끝난 뒤에도 한 반시간 좋이 지나서야 임규룡이는 가게방으로 해서 밖에를 나오더니 곧 인력거를 불렀다. 인력거가 떠나는것을 보고 선장이가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뛰여내려와 자전거를 잡아타고 그뒤를 따랐다. 임규룡이는 려반거리-하비거리 모퉁이에 있는 양식점-화미찬청앞에서 인력거를 내리더니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선장이는 먼발치에서 자전거를 내렸다. 안에 들어간 사람이 실컷 먹고 마시고 할 동안 우두커니 서서 옷차림이 말쑥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출입문만 바라보았다. 싱겁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였다. 이윽고 임규룡이가 출입문으로 나오는것이 바라보여서 선장이는 슬쩍 외면을 하였다. 임규룡이는 인력거를 부르지 않고 그냥 걸어서 하비거리의 전차길을 건느더니 포도를 따라 슬렁슬렁 서쪽으로 걸어갔다. 선장이가 혹시나 뒤를 돌아볼가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전거를 밀고 청처짐하게 그뒤를 따랐다. 임규룡이는 빠리영화관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곧 권연 한가치를 피워물고 영화광고를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보는체하였다. 미구에 연회색 스프링코트를 입은 남자 하나가 다가와 담배불을 비는데 그것이 선장이의 눈에는-그렇게 생각을 해 그런지-매우 수상스러워보였다. 담배불을 붙이며 서로 몇마디 말을 주고 받는것 같더니 이내 그 스피링코트 입은 남자는 인력거를 불러타고 어데론가 가버리고 임규룡이는 영화관을 쑥 들어가버렸다. 선장이는 밖에 서서 영화가 시작되고 또 영화가 끝나는것을 멀거니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이런 맥살나는 숨박꼭질이 날마다 되풀이되던중, 어느날 선장이는 캐터이영화관앞에서 임규룡이가 바로 며칠전에 빠리영화관앞에서 하던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담배불 붙이기를 동일한 남자와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였다. 선장이는 아연 긴장해났다. 이-뒤에 무엇이 숨어있음직한-발견은 즉시 김혜숙을 통해 리춘근에게 회보되였다.

<<바싹 따르시오.>> 하고 리춘근의 지시가 없더라도 선장이는 힘이 절로 솟구쳐서 상투가 국수버섯 솟듯할 지경이였다. 그리하여 의심스러운 두 인물이 세번째(선장이가 목격한것만) 짧은 접촉을 대세계오락장앞에서 하고 곧 갈라져서 임규룡이는 안으로 들어가고 스피링코트 입은자는 인력거를 잡아타고 동쪽-황포강쪽을 향하고 갈 때 선장이는 서슴없이 임규룡이를 내깔리고 스프링코트 입은자의 뒤를 밟았다.

(도대체 네가 무얼 해먹구 사는 놈이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인력거는 얼마동안 달리다가 외로 꺾이여 황포강을 오른편에끼고 북으로 올라갔다. 외백도교를 건느자 곧 동쪽으로 꺾어들더니 얼마 아니 가서 붉은 벽돌로 지은 3층건물-일본총령사관앞에 멎어섰다. 스프링코트입은자가 청사안으로 들어가는것을 확인한뒤에 선장이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이라도 정복을 한것 같은 만족한 기분으로 자전거를 돌려세웠다.

임규룡이가 일본경찰의 끄나불과 내통한것이 의심할나위 없는 사실임을 안 뒤에 리춘근은 곧 남경에다 전보를 쳐서 행동대원 하나를 청해다가 함께 일을 의논하는데 김혜숙과 서선장이도 자연 동석하게 되였다. 선장이가 보니 그 응원온 대원은 다른 누구가 아니고 바로 오쎌로였다. 변심한 녀자에게 작별인사로 맥주병 벼락을 안겼다는 그 오쎌로였다. 이 오쎌로도 쉐익스피어의 오쎌로처럼 살갗이 좀 가무스름하였다. 그렇지만 쉐익스피어의 오쎌로장군처럼 위엄스럽게 생기지는 못하였었다. 그저 쑬쑬한 보통사람이였다.

<<어떻게 해치우는게 좋겠습니까?>> 하고 리춘근이 운을 떼고 좌중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아니하여 리춘근은 다시

<<밤에 길거리에서 재끼는데 하나 있을게구... 그러찮으면 대낮에 집안에서 재끼는게 하나 있을게구... 어디 말씀들 좀 해보십시오.>>하고 좋은 의견들을 내놓기를 조이였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두 가로등이 환한데 길거리에서 총질이나면... 글쎄 어떨가요. 너무 왁자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김혜숙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게 성질이 괄괄한 오쎌로는 솔직히

<<교외루 꾕내는수는 없겠습니까? 좀 멀직이.>>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리춘근이 고개를 한편으로 기울이며

<<글쎄요... 미스 송이 한번 또 팔을 걷구 나서주기만 하면 어떻겠는지...>> 하고 김혜숙을 쳐다보니 김혜숙은

<<그자가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미끼를 물가요? 시내라면 또 몰라두.>> 하구 미심스러워하였다.

<<그것두 그렇군요.>> 하고 리춘근이 고개를 끄덕일 때 선장이가 당돌하게

<<까짓거 그 자식 늦잠 자는걸 들이덮쳐서 료정내치우지요 뭐.>> 하고 자신의 소견을 말하니 좌중의 눈길이 모두 선장에게로 쏠렸다. 세 사람의 귀에 다 선장이의 말이 좀 무모하게 들렸던것이다. 한동안 말들이 없다가 리춘근이

<<바루 아래층이 가게방인데... 총소리는 어떻거구요?>>하고 묻는데는 선장이도 대답이 막혀 말을 못하고 눈만 끔벅끔벅하였다. 김혜숙이 혼자말로

<<설이라면 좋겠는데... >> 하고 중얼거리니 오쎌로가

<<그건 어째서요?>> 하고 좋을 까닭 물었다. 리춘근이 대신하는 대답으로

<<설에는 딱총소리가 요란하니까요. 그렇지만 시각이 급한데 설까지 미룰스는 없는 일이구...>> 하는것을 듣고 선장이가 얼른 그 말을 받아서

<<꼭 설에만 딱총을 터뜨립니까? 무슨 경사가 나두 터뜨리구, 상사가나두 터뜨리구... 아무때나 터뜨리잖습니까?>> 하고 말하니 리춘근은 깨도가 되는듯

<<딴은 좋은 생각입니다.>> 하고 낯색이 밝아지며 김혜숙을 돌아 보았다.

<<그럼 길건너 집에서 딱총을 터뜨려서 총소릴 엄페하는 방법을 써보시지요. 줄딱총을 창문밖에 드리우구 때맞춰 터뜨리면 되잖겠습니까. 주인집에다는 집들이하는데 벽사(辟邪)를 한다구 미리 말해놓구.>>

<<좋겠지요... 사람들의 이목을 딴데루 돌리는 수단두 될테니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찬성합니다.>>

이리하여 오쎌로와 선장이는 아침에 임규룡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전에 가게방으로 해 올라가서 딱총소리 나는걸 신호로 해치운 뒤에 뒤문으로 빠져나오기로 함. 리춘근과 김혜숙은 맞은편 잡화점2층에서 호흡을 맞추어 줄딱총을 터뜨리기로 함. 이와같이 의논이 일치되였다.

<<그 자식 오늘저녁 마지막 밥숟갈을 놓게 됐군.>>

<<글쎄... 저승에서두 밥이야 먹이겠지... 노상 굶기기야 할라구.>>

선장이와 오쎌로가 이와 같이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걸상에서 일어나는데 리춘근도 따라 일어나며

<<그럼 딱총은 미세스 전께서 맡아 준비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니 김혜숙은

<<녜 념려 마세요.>> 하고 선선히 자담하였다.

이튿날 이른아침때가 지나서 가게문들이 모두 열리고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붐비여 밤동안 고자누룩하던 거리가 활기를 되찾았을무렵이다. 벌건색딱총을 한타래 가슴에 안은 김혜숙과 색안경을 쓴 리춘근이 잡화점으로 들어와서 2층으로 올라가기전에 먼저 집주인과 밤잔 인사를 나눈 끝에 벽사를 하려고 딱총을 좀 터뜨리겠으니 그리 알아달라고 미리 량해를 구하였다.

<<어서 좋도록 하십시오, 어서 좋도록 하십시오.>> 하는 대머리 주인의 말을 듣고 두사람은 바로 2층으로 올라왔다. 우선 창문부터 열어놓았다. 그리고 리춘근이 손에 들고 온 두어자 길이의 참대막대기에다 줄딱총끈을 비끄러매였다. 흔히들 하는것처럼 창문밖에 드리우고 터뜨릴 작정이다. 리춘근이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준비가 다되였다. 김혜숙이 약정한대로 열린 창문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몇번 쓰다듬었다. 오쎌로가 피우다만 권연을 길바닥에 내던지고 구두발로 꽉 밟아뭉개였다. 그리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선장이를 돌아보았다. 행동이 개시되였다.-<<개잡이행동>>이. 백주에 남의 집에 뛰여들어 살인을 하려는 선장이의 가슴속에서는 쌍다듬이질이 시작되였다. 지형지물에 밝은 선장이가 앞을 서고 오쎌로가 그뒤를 바싹 따라 철물전안으로 들어갔다. 앞을 선 선장이가 스무나문살 된 중머리사환에게 고개를 끄덕하고 천정을 손가락질하며

<<림간사를 좀 뵈러 왔는데요.>> 하고 찾아온 뜻을 말하였다. 임규룡이는 적십자회 림간사로 행세하였었다.

<<네 올라가보십시오.>>

중머리사환이 그만하면 꽤 친절하다고 할만한 태도로 얼른 한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틔웠다.

<<계실가요?>>

<<아마 아직 기침전일겝니다.>>

두사람은 좁은 층층대를 하나는 앞서고 하나는 뒤서서 천천히 점잖게 올라왔다. 길건너 2층에서 딱총 터뜨릴 시간의 여유를 주느라고 임규룡이의 방문앞에서 잠시 발들을 멈추었다가 슬그머니 문을 밀어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방안에는 채 가시지 않은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서리였었다. 임규룡이가 침대우에서 개잠을 자다가 수상스러운 인기척을 잠결에 감지하고 경각심 높게 눈을 떠보았다. 정체 모를 괴한들이 들어와 선것을 보자 잽싸게 배개밑에다 손을 디밀었다.

<<꼼짝 말아!>>

낮게 꾸짖으며 선장이가 권총을 그 이마빼기에 들이대는것과 동시에 오쎌로가 그자의 배개밑에서 색에 든 권총을 끄집어내였다.

<<너 이 민족반역자... 동지를 팔아먹구... 죽어 마땅하단걸 아는가?>>

오쎌로가 날카롭게 토죄를 하니 자리옷바람의 임규룡이는 덮었던 이불을 젖히고 침대우에 일어앉아 사시나무떨듯하였다. 죽을상이 되여가지고 절절히 발명을 하였다.

<<저는 죄 지은 일 없습니다. 이건 오햅니다. 무서운 오햅니다. 혁명동지에 대해... 이게 그래 무슨 일입니까?...>>

<<아닌밤중에 왜놈들을 끌구 와서 마랑거리아지트를 들이덮친 창귀가 어느 놈이냐?>>

<<전 모릅니다. 듣느니 처음입니다.>>

<<왜놈의 끄나불하구 `빠리`에서 만나서 쑥덕거리구. `캐테이` 에서 만나서 쑥덕거리구 또 `대세계` 에서 만나서 쑥덕거리구... 이런것들은 다 무어냐?>>

<<모르겠습니다. 그런것들이 다 무언지. 전 전혀 모르는 일읿니다.>>

오쎌로가 토죄를 하는 동안 선장이는 속이 달아 목구멍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였다.

(딱총소리가 나야 총을 쏘지!)

(이젠 빼두박두 못하게 됐는데... 이 원쑤년의 딱총소리는 왜 아니 날가!)

이때 잡화점 2층에서는 리춘근과 김혜숙이 얼굴빛들이 노래져 가지고 단솥안의 개미처럼 어찌할바를 몰랐다. 왼새끼를 꼬았다. 손톱여물을 썰었다. 태평 믿은 줄딱총이 누기가 찼는지 암만 애를 써도 불이 붙어주지를 않는것이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

죽을상이 된 김혜숙이 열려있는 창문으로 건너다보니 철물전 2층 유리창안에 오쎌로의 얼굴이 나타나서 고개짓을 하였다. 딱총소리를 재촉하는것이다.

(딱총소리 얼른요! 딱총소리 얼른요!)

김혜숙은 절망적으로 고개를 가로 흔들어보였다. 젊은 동지들을 죽을 고비에 몰아넣은 책임을 자각하자 가슴이 메여졌다.

오쎌로는 유리창너머로 김혜숙의 부정적신호를 확인하고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으나 곧 다시 기운을 내고 손에 잡히는대로 창턱우에 엇놓인 아령 한짝을 거머쥐였다. 눈결에 이것을 본선장이가 임규룡이 대갈빼기에 더 바싹 권총을 들이대고

<<돌아앉아! 죽구싶니? 냉큼 돌아앉아!>> 하고 야무지게 명령하였다.

죽고싶은 생각이 꼬물도 없는 임규룡이가 마지못해 뭉기적뭉기적 벽을 향하고 돌아앉기가 무섭게 오쎌로의 아령 쥔 손이 피뜩하였다. 무거운 아령이 돌아앉은 놈의 뒤통수를 힘껏 짓쫏는 소리(해골이 바사지는 소리가 마치 잘 익은 수박덩이가 터지는것 같이 옹골겼다.) 동시에 터져나오는 외마디비명. 폭 고꾸라진 놈의 피투성이 된 대갈통을 오쎌로의 아령은 두번세번 거급 짓찧어 아주 마사놓았다. 선장이는 온몸에 소름이 좍 끼였다. 코를 거스르는 피비린내에 왈칵 걷잡을수없이 구역질이 났다...

선장이가 정신을 수습하고보니 오쎌로는 방구석 세면대앞에서서 피묻은 손을 씻고있었다. 그리고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보며 물수건으로 얼굴에 튕긴 피자국을 닦고 또 상의의 앞자락을 문질렀다.

선장이가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보니 오쎌로는 임규룡이가 벗어건 양복호주머니를 뒤지고있었다. 지갑을 꺼내고 또 무슨 종이쪽지들을 꺼내서 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 이젠 다됐소!>> 하는 소리를 듣고도 선장이가 잠시 어리뻥해 서있으니까 오쎌로는

<<빨리!>> 하고 선장이의 팔죽지를 잡아끌었다.

층층대를 내려와 뒤문으로 빠졌다. 밖에를 나오니 선장이는 막혔던 숨이 후 나왔다. 인력거들을 불러 탔다. 선장이는 그저 앞서가는 오쎌로가 가는대로 따라갔다. 전에는 별로 대수로와보이지 않던 오쎌로가 이때 선장이 눈앞에서 갑자기 천하장사 림꺽정이로 변하였다.

(나따위는 당초에 어림두 없구나!)

선장이는 속으로 시원시원히 고패를 빼였다. 오쎌로를 선배로 모시는것을 무비의 영광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열어보니 임규룡이의 지갑속에는 신분에 우울리지 않는 거금-100여원 돈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종이쪽지에도 그의 배반을 여실히 보여주는것들이 적혀있었다.

밤에 김혜숙이 선장이에게 미안해 죽으려고 하는것을 선장이가

<<그럴수도 있지요 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딱총소리가 안 난 덕에... 천금을 주구두 사지 못할 귀중한 체험을 쌓은걸요.>> 하고 상냥하게 말하니 전보경이 옆에 앉았다가

<<미스터 서가 내 눈에는 곧 메리메의 돈 호세 같아보이네요.>> 하고 웃어서 선장이는

<<그런 찬사는 들을 사람이 있습니다. 이담에 오쎌로를 만나시거든 실컷 하십시오.>> 하고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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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 선물 (1명)
IP: ♡.50.♡.146
로즈박 (♡.39.♡.172) - 2023/11/01 21:20:11

대낮에 반역자를 처단하다니..
글을 읽는데 제가 다 가슴이 떨려요..대단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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