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0

더좋은래일 | 2023.11.02 10:36:18 댓글: 1 조회: 321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4000


40

진주 고향에서 이모에게 부쳐온 소포를 찾아가라는 통지서를 우정총국에서 와서 몸 가벼운 선장이가 대신 가 찾아오기로 하였다. 우정총국은 소주거리-북사천거리 길모퉁이에 있었다. 선장이가 전차를 타고 남경거리 선시백화점 조금 못미처까지 왔을 때 정류소도 아닌데 전차가 불시에 멎어서더니 운전사와 차장이 앞뒤에서 다같이

<<파업입니다. 여러분 하차해주십시오.>>

<<전차운행이 정지됐으니 다들 내려주십시오. 파업입니다.>> 하고 웨치는것이였다

<<파업>>이란 소리가 원산과 서울에서 많이 들어본 까닭에 선장이 귀에 설지는 않았으나 신기하기는 하였다. 선장이도 다른 승객들과 함께 전차에서 내려보니 남경거리를 오고가던 그 많은 전차들이 하나의 례외도 없이 모두 멎어서서(흡사 변전소가 일대 정전사고를 일으키기라도 한것 같았다) 앞뒤 승강구로 손님들을 게워내고있었다. 전차만 선줄 알았더니 뻐스도 섰었다. 단층뻐스 2층뻐스가 여기저기 우뚝우뚝 서있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하였다. 세상이 삽시에 변하여 그 흔하던 인력거가 아연 세가 났다. 전에는 일력거군들이 손님을 끄느라고 서로 싸움질을 하던것이 이제 와서는 일변하여 손님들이 서로 인력거를 타겠다고 다툼질을 하게 되였었다. 선장이가 시계를 들여다보니 10시가 조금 지났다. 10시 정각을 기하여 공공조계 혹은 전 시내의 전차, 뻐스 종업원들이 일제히 파업을 단행한 모양이였다. 공공조계의 전차회사와 뻐스회사는 다 영국자본가들이 경영하는것이고 또 프랑스조계의 전차 뻐스회사들은 다 프랑스자본가들이 경영을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파업은 필연적으로 반제국주의성질을 띠게 되지만 선장이로서는 그런 리허까지는 알턱이 없었다. 할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다리를 건느며 보니 석탄을 씻은 물같이 새까만 구정물이 흐르는 소주하는 수없이 많은 발동선과 정크 그리고 전마선들로 혼잡을 이루었었다. 일년 열두달 법석을 치지 않은 때가 없는 소주하의 의연한 풍물시다.

사람이 버걱버걱하도록 많은 우정국안에를 들어서니 맨먼저 눈에 뜨이는것이 외환률을 적어놓은 게시판인데 미국딸라는 중국화페 원(元)의 3.3배이고 일본엔(圆)은 중국화페 원과 1대1로 맞바꾸게 되여있었다. 급기야 소포를 찾고보니 속에 든것이 핫이불인지 누비이불인지 무게는 그리 나가지 않는것이 부피가 커서 드다루기가 말째였다. 머리에 이였으면 제일 간편하기는 하겠으나 중인소시에 그럴수는 없고 해서 그대로 한아름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여느때 같으면 서로 앞을 다투어 손님을 끌 인력거가 하나도 없었다.

(그놈의 파업이 무섭긴 무섭구나, 온 상해바닥에 그 흔턴 인력거가 동이 나는걸 보니.)

할수없이 주체궂은 소포보따리를 안아보기도 하고 또 들어보기도 하며 걸었다. 이르는 곳마다에 빈 전차들과 뻐스들이 내버려둔 흉가집모양 괴괴히 멎어서있었다. 선장이가 전차 뻐스종업원들의 파업때문에 애매하게 얼을 입어 소포보따리와 씨름을 하며 걷는중에

<<미스터 서!>>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며 곧 인력거 한채가 옆에와 멎어섰다. 보니 마랑거리에서 밤중에 액화를 면하고 다음날 부랴부랴 포석거리로 아지트를 옮겨버린 선전부장 성재수다. 성재수는 긴말 묻지 많고 얼른 인력거에서 뛰여내리며

<<자.>> 하고 선장이더러 대신 인력거에 오르라고 권하는것이였다.

<<아니 어서 그냥 타구 가십시오. 난 천천히 이렇게 걸어가겠습니다.>>

<<소똥구리처럼 그게 뭡니까, 저보다 더 큰 보따리를 안구. 남들이 웃습니다. 어서 오르십시오 난 인제 다 왔습니다.>>

선장이가 호사스레 인력거에 앉아가며 고대 성재수가 하던말을

(소똥구리?)

속으로 되뇌여보고 싱긋 웃었다.

선장이가 이모앞에 소포보따리를 털썩 내려놓으며

<<주체궂어서 혼났습니다.>> 하고 공치사하니 이모는 웃으면서

<<그럴줄 알고 내 지금 스끼야끼(왜전골)를 장만하는중이여.>> 하고 위로하여 말하며 모스트-기름이 사이사이 낀 소고기-가 담긴 길둥근 접시를 가리켜보았다.

<<이런 누비이불인지 핫이불인지는 무엇하러 부쳐온다지요?>>

<<맘씨 고운 우리 올케가 이 시누이생각을 해 부쳐오는건데 어찌 고맙지 않을거라구.>>

밤에 선장이가 오래간만에 포석거리로 성재수를 보러 왔다.

<<아까는 대단히 미안하게 됐습니다.>>

<<천만에 천만에.. 어서 앉으십시오.>>

권하는 의자에 앉으며 선장이가

<<파리한 돼지 두부앗는 날이라더니... 오늘이야말루 인력거군들이 생일빠낙입니다.>> 하고 웃으니 성재수는

<<이통에 좀 벌어먹으라지요, 인간이하의 생활들을 하구있는데.>> 하고 마주 웃었다.

<<인력거삯이 껑충... 갑절루 뛰여올랐습니다.>>

<<그럴테지요.>>

<<이번 파업은 그들네 로조에서 조직한거겠지요?>>

<<물론. 그렇지만 핵심적지도력량은 공산당이겠지요... 중국공산당.>>

<<녜 그렇습니까 그래요?>>

<<공산주의자들은 민중을 발동하는것을 주요한 투쟁수단으로 삼으니까요.>>

선장이는 입에다 무슨 잘 깨물어지지 않은 덩어리를 문것처럼 입술만 우물거리고 말을 아니하였다. 민중을 발동한다는 말이 마치 먼 화성에서 보내온 전문과도 같이 불가해하여서였다.

<<그에 반해 민족주의자들은 개인테로를 숭상하니까... 이것이 분기점일 밖에요. 현재 우리 조직내에서두 이런 두갈래 서루 다른주장이 맞서구있습니다.>>

<<어느 편이 옳다구 미스터 성은 생각하십니까 그 둘중에?>>

<<미스터 서는 어느 편이 옳다구 생각합니까?>>

<<글쎄요... 잘 모르니까 묻는게 아닙니까?>>

<<오늘 그들의 힘을 봤지요? 온 시내를 마비상태에 빠뜨리는.>>

선장이는 눈도 깜박 안하고 성재수의 입만 바라보았다.

<<개인테로루 일본놈 몇놈 소멸한다구 해서 그놈들의 지반이 흔들리지는 않을겝니다.>>

선장이는 여적 자신의 해온 일이 옳다구 확신을 하는 까닭에 성재수의 말이 귀속으로 잘 들어오지를 않을뿐더러 도리여 거부감까지 생겼다. 자신이 붙좇는 리춘근이나 김혜숙에게서는 이런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강년별장의 지도원 조경산이나 가장 믿고 따른 양씨동에게서도 역시 들어본적이 없었다. 개인테로는 극 소수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용감한 애국자들만이 해닐수가 있는 신성한 사명이라고 선장이는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윤봉길의사의 업적을 부정하신단 말이 아닙니까?>>

선장이 입에서 말이 부프게 나오니 성계수는 한동안 말이 없이 선장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결 부드럽게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럼 무슨 뜻입니까?>>

<<이 이야기는 두었다 이담 우리 다시 하기루 합시다. 모처럼 만났는데 오늘은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선장이도 자신이 너무 좀 당돌한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만 눙치고 뒤로 물러앉고말았다.

한주일 가량 지나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성재수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 끝에 문득 생각난듯이 일어나 가 책장안을 한참 뒤지더니 책 두권을 꺼내들고 돌아왔다.

<<이런 책을 한번 읽어보잖겠습니까?>>

<<그게 무엇하는 책입니까?>>

성재수는 대답 대신에 들고 온 책 두권을 책상우에 벌여놓았다. 손때 묻은 낡은 책들이다. 한책은 한문으로 <<변증법적유물론>> 또 한책에는 <<유뮬사관>> 이라고 역시 한문으로 찍혀있는데 둘이 다 일본 도꾜에서 간행된것이다.

<<재미있습니까?>>

<<재미가 있다마다... 할번 읽어보십시오. 재미를 들이면 아마 침식을 잊게 될겝니다.>>

<<그 정돕니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선장이가 재미가 있다는 바람에 혹해서 달라붙었다. 지식욕이 워낙 강한지라 두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다싶이 하고 파고들어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침대에 번듯이 나가누워 천정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알고보니 세상은 이런거였구나!)

선장이는 자신이 여적 흐리멍텅한 혼돈세계에서 헤맨것만 같았다. 저라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제가 어데로 가고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맹탕 남의 정신으로 살아온것만 같았다. 원산에 있는 매부 한정희를 방불케 하는 성재수의 청수한 얼굴과 심오한 철리를 간직하고있는듯싶은 넓은 이마가 새삼스레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자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온 가슴을 차지하였다. 리춘근과 김혜숙에게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무색해지리만큼 보다 강렬한것을 선장이는 성재수에게서 느꼈다.

선장이가 포석거리로 다 읽은 책들을 돌려주러 갔을 때 두 사람은 의미가 특별한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동지적인 감정이 북받쳐오르는것을 느꼈다. 성재수는 선장이의 몽매를 깨쳐준 계몽스승이였다.

<<그럼 이번엔 이 책 한번 읽어보시지요.>>

성재수가 꺼내다주는 책은 <<국가와 혁명>>이였다

<<잘 모를게 있으면 따루 메모를 해가지구 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런 소리 말구, 그런 소리 말구.>>

<<정말입니다.>>

<<같이 토론하구 같이 연구하십시다.>>

<<프랑스내전>>, <<철학의 빈곤>>, <<가정, 사유제와 국가의 기원>>... 이런 책들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선장이는 크게 변하고 성장하였다.

어느날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다가 전보경이 새슴스레

<<미스터 서가 요즘 갑자기 어른스러워지셨네요. 아니 참말이예요. 아주 로성해지셨에요.>> 하고 경이의 눈을 크게 뜨니 김혜숙도 선장이의 얼굴을 다시 살펴보고

<<아닌게아니라 많이 달라졌네요.>> 하고 수긍하는데 옆에서 이모가

<<장가갈 때가 되면 다 그런 법이여.>>하고 뚱딴지같이 동을 달아서 다들 웃음집을 터뜨리는데 선장이도 따라 웃었다. 송일엽이 이모를 쳐다보며

<<이모 중신할미노릇 하실라우?>> 하고 빈정거리니 이모는

<<하라면 하지 못할것 무어 있어?>> 하고 되받았다.

<<어떤 색시감? 코찡찡이, 얼금뱅이?>>

<<네까짓건 근처에 와 서지두 못할걸 얻어주겠다, 내가 중신을 서면.>>

김혜숙이 손에 든 숟가락으로 국그릇의 전을 울렸다.

<<이젠 입씨름 고만들 해요. 국이 싹 식는데.>>

일요일날 전보경이 2층에 사는 신문사에 다니는 사람의 두살짜리 아들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둥개질을 하며 어르는데 어린아이는 낯을 가리지 않고 두손으로 전보경의 가슴이여 얼굴을 어루만지며 캐득캐득 웃었다. 선장이가 식은 차로 목을 추기고 있는데 전보경이 가까이 와서

<<이 애기 이쁘지요.>> 하고 어린애의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서 선장이가

<<정말 이쁘게 생겼군요. 라파엘의 애기천사 같으네요.>> 하고 어린애의 토실토실한 뺨을 만져보니 어랜애는 싫다고 전보경의 젖가슴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어허, 난 싫다군.>>

<<낯을 가려서 그래요. 늘 앉아주는 사람에겐 안 그래요.>>

이모가 월계꽃이 곱개 핀 화분에다 물을 주다가

<<아가씨가 애기생각이 나 저러지.>> 하고 웃는데 무슨 까닭인지 전보경의 얼굴빛이 붉어지는듯하였다. 이모는 아랑곳없이

<<며칠 안 남았수, 잠간이지. 그때 가선 밤낮 안구 둥갤걸 가지구...>> 하고 혼자말로 지껄였다. 전보경이 게면스러워하는것을 보고 눈치빠른 선장이가 짐짓

<<아 참, 내 이 정신 좀 봐!>> 하고 무슨 일이 갑자기 생각난듯이 핑게하고 복도로 나오는데 이모의 말소리가

<<언제 온댔지 그 신랑감이?>>

등뒤에서 분명히 들렸다. 선장이는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하고 급히 3층으로 올라왔다. 전보경의 혼담이 있는것만은 대개 틀림이 없는 모양이라고 어림짐작하였다.

(당연하지 나이가 있는데... 그렇지만 그 신랑감이란 대체 어떤 인물일가?)

선장이는 공연히 서운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하는 한편 한시름이 덜리는것 같은 안도감도 없지가 않았다.

(싱겁구 주제넘은 놈!)

선장이가 자기 자신을 비웃고 보다둔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책속에서는 바야흐로 빠리꼼뮨의 로동자들이 삐에로 라쎄즈묘지에서 적들과 처절한 혈전을 벌이고있었다.

<<금붕어 사시오, 금붕어 사시오!>>

웨치는 소리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귀가 따갑게 날아들어오는 어느날 김혜숙이 잠간 좀 내려오라고 해 선장이가 보던 책을 펼친대로 엎어놓고 내려가보니 김혜숙의 방에 양복을 쭉 뺀, 신수가 환한 손님 한분이 와 앉아있었다. 그 손님이 선장이가 방안에 들어서는것을 보자 얼른 안락의자에서 일어나며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이거 오래간만입니다.>>

<<아 녜. 참 오래간만입니다.>>

선장이가 좀 당황해하며 손을 마주 잡았다. 위엄스러운 헌병대위의 정복을 양복으로 갈아입은 까닭에 지난해 가을 남경 금릉려사에서 싸이드카로 강녕별장까지 자신을 데려다주던 반해량을 선뜻 알아보지 못하였던것이다. 김혜숙옆에 전보경이 살눈섭밑에다 미소를 감추며 고개를 다소곳하고 앉았는것을 보는 순간 선장이는

(아, 신랑감!)

깨닫고 잇달아서

(응, 훌륭한 배필이야!)

기분 좋게 수긍하였다.

<<서동무가 대활약을 한다는 소식은 남경서두 다 듣구있습니다.>>

자리잡아 앉은 뒤에 반해량이 이렇게 칭찬을 주는 바람에 선장이는 얼른

<<천만의 말씀을 다하십니다. 변변치 못해 부끄럽습니다.>>

겸사로 대답하며 얼굴을 붉혔다. 김혜숙이 웃으며 반해량을 향하여

<<미스터 서가 표범의 넋을 지닌 사람이예요.>> 하고 과찬을 하는 바람에 선장이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저녁식사는 새 손님을 맞아서 경사로운 분위기속에 벌어졌다. 전보경은 알릴듯말듯 은근한 행복에 휘감겼고 그리고 송일엽은 대수로와하지 않은 오연한 태도로 손님과 술잔을 맞부딪쳤다. 송일엽이 백작부인같이 활달하고 거침새 없는데 비하여 전보경은 과년이 찬 규수같이 삼가하고 또 조심스러웠다. 송일엽이 반해량대위의 갖다주는 라이터불에 권연을 붙여물고

<<미스터 반.>> 하고 부르니 헌병대위는 얼른

<<녜.>> 하고 공순한 태도를 보였다. 송일엽은 술기운으로 눈가장이 불그스레하였다. 그녀는 요 며칠 음주를 삼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승벽으로 평소나 다름없이 마셨던것이다.

<<그러니가 이전의 걸프랜드들은 다 버리신걸루 되나요?>>

<<녜? 무슨 뜻인지 잘...?>>

<<이전의 녀자친구들 하구는 인제 아주 손을 끊으셨느냔 말씀이예요.>>

<<그런 무슨 친구라는게... 없습니다. 그러니 뭐 무슨 손을 끊구 안 끊구...>>

<<고만두세요! 다 알았에요.>>

<<아니, 정말 없습니다.>>

<<미스 전이 들으면 울가봐 그러세요?>>

<<아니 천만에!>>

반대위가 불의의 습격을 받고 쩔쩔매는것을 보고 전보경은 고개를 푹 숙였다. 김혜숙이 웃는 얼굴로 얼른 나서서 능란하게 국면을 수습하였다. 먼저 송일엽을 보고

<<너 술 취했구나. 어서 올라가 좀 누워라.>>

말을 이른 다음 반해량을 향하여

<<선생님, 어찌 알지 마십시오. 저 애 성질이 본시 저 모양이랍니다.>>

그리고 이모를 보고

<<커피는요?>> 하고 재촉하였다.

전보경이 합당한 자리를 만나서 시집을 잘 가게 되는데 송일엽이 공연히 심사가 나는 모양이였다.

석후에 다시 김혜숙의 방에 모여앉아 이야기들 하다가 이야기가 시국문제로 번져나가더니 반대위가 단연 말자루를 잡았다.

<<지금 호남, 강서, 복건 일대에선 련일 전투가 벌어지구있습니다. 공산당의 혁명근거지들을 토벌하는 작전을 대대적으루 전개하는중입니다. 사상자가 엄청납니다. 현재 장개석의 주요한 적은 일본침략자가 아니구... 중국공산당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대단히 불리한 국면이 조성된 셈이지요. 우리의 원쑤는 일본제국주의지 중국공산당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두 장개석이는 왜놈들 좋아할 일만 자꾸 하구있단 말입니다. 이런 답답한노릇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전국의 유지인사들이 일떠나가지구 애국충정으루 장개석이를 설복을 하면 어떨가요? 그러지 말라구.>>

선장이의 생각이 유치한데 놀란 반해량이 부정적으로 고개를 외쳤다.

<<그게 어디 되기나 할 소립니까?>>

<<그럼 비상수단을 써서... 죽여치우면 되잖겠습니까?>>

반해량대위는 하도 어이가 없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이 쉽지! 죽여치우기가 어디 그리 쉽습니까? 아무두 얼씬근접을 못하게 하는데.>>

<<제 목숨 하나 내바칠 각오를 하면 되잖습니까. 살아나올걸 고려한다면 어렵겠지만.>>

<<당찮은 소리! 그리구 또 장개석이 하나를 해치운다구 해결이 될 일두 아닌데. 한 당, 한 정부의 로선과 정책이 그 모양인데... 됩니까?>>

<<그럼 우린 어떡해야 합니까?>>

<<우리야 목표가 언제나 뚜렸하잖습니까?... 전력을 다해 왜놈들을 족쳐야지요.>>

<<이제 고만 영화구경들이나 가십시다. 아홉시가 거의다 돼갑니다.>> 하고 김혜숙이 제의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정론은 흐지부지되여버렸다.

이때 상해의 일류영화관 즉 봉질영화관에서는 관객이 주로 서양사람이였으므로 그들의 생활습관에 맞춰 늦저녁들을 먹고 오라고 상영시간이 모두 9시 15분으로 되여있었다.

<<어서들 가십시오, 난 좀 사양할랍니다.>> 하고 선장이가 먼저 일어서니 김혜숙이

<<왜요?>> 하고 붙들뿐아니라 전보경도

<<우리 다같이 가세요. 게리 쿠퍼가 주연한 영화예요. 안 보면 안돼요.>> 하고 진심으로 끌었다. 선장이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 게리 쿠퍼를 남성미가 있는것으로 하여 좋아하는것을 전보경은 잘 아는터였다. 전보경은 성정이 부드럽고 싹싹하고 또 다정한 녀자였다.

<<싫습니다. 어서들 다녀오십시오. 시간이 늦겠습니다.>>

헌병대위도 같이 가자고 권유하였으나 선장이가 끝내 말을 듣지 아니하여 할수없이 벗어걸었던 중절모를 떼여내렸다.

선장이가 2층에 올라와 송일엽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송일엽은 요 이틀 달마다 겪는 생리적인 원인으로 일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때면 그녀는 공연히 신경질을 내군 하는것이였다.

<<컴인(들어오세요.)>>

선장이가 들어가보니 송일엽은 옷을 입은채로 침대에 길게 누워있었다.

<<왜 같이 안 가셧지요?>>

<<날 그렇게 눈치코치 없는 인간일줄 알았습니까? 남의 좋은 일에 괜히 가루거칠게 무업니까?>>

<<인제 아주 어른이 다되셨네요.>>

<<언제는 어린아이던가요.>>

<<그러며니요. 젖비린내두 채 가시지 않았던데.>>

<<사람 칭찬이 너무 좀 과하잖습니까.>>

<<과하긴 뭐가 과해요!>>

선장이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다가 혼자말처럼

<<미스 전하구 갈라질 일을 생각하니... 어쩐지 좀 허우룩하군요.>> 하고 중얼거리니

<<허우룩할것두 쌨지!>>

송일엽의 목소리가 새되여졌다. 선장이는 또 입을 다물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내 이 이마 좀 짚어봐요. 뜨거운가 안 뜨거운가.>>

선장이가 순순히 짚어보고나서

<<아니 별반...>> 하고 말하니 송일엽은

<<그럼 발을 좀 만져봐요. 찬가 안 찬가.>> 하고 턱으로 발을 가리켰다.

<<정상입니다.>>

<<그럼 내 이 심장에다 손을 좀 대봐요, 뛰나 안 뛰나.>>

<<뜁니다.>>

<<`뜁니다`! 아주 안 뛰면 죽은 사람이게. 빨리 뛰나 안 뛰나 그걸 보란 말이예요.>>

<<글쌔 좀 빠른가...!>>

<<좀 빠른가가 무어예요. 막 쌍다듬이질을 하는데.>>

<<그 정도까지야...>>

<<난 몰라!>>

송일엽은 심심해죽을 지경인것이다. 선장이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하라는대로 해 비위를 맞춰주는것이였다. 20세기의 론개는 좀 샘바르고 또 변덕스러웠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녀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열정적이고 용감하고 그리고 애국심이 강한 녀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전보경이 8월에 영화발행공사를 사직하고 9월에 남경에 가 반해량대위와 식을 올리기로 내정이 된지 불과 10일후에 선장이가 보다 먼저 급급히 상해를 떠나야 할 일이 생겼다. 어느날 밤 저녁에 리춘근이 불시에 모리스자동차수리소의 장준광을 데리고 애인리 42호로 김혜숙과 서선장이를 보러 왔다. 김혜숙이 혼자 트럼프로 점을 치다가 얼른 일어나 손님들을 맞으며 급한 말로

<<웬 일이세요?>> 하고 리춘근을 보고 물으니 리춘근은

<<미스터 서는요?>> 하고 되묻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아마 책을 보구있을겝니다. 요새는 책때문에 다른건 다 돌볼겨를이 없는걸요.>>

<<좀 부르십시오.>>

네 사람이 자리잡아 앉은 뒤에 리춘근이 비로소

<<기실은...>> 하고 입을 열었다.

<<래달초에 홍구 일본신사에서 지신밟기가 한바탕 벌어질 모양인데... 이 기회에 우리두 인사를 한번 좀 톡톡히 드리는게 어떨가 해... 그걸 의논해보려구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선장이가 대번에

<<전적으루 찬성합니다!>> 하고 호응해나서서 김혜숙이 적이 웃으며 선장이를 한번 돌아본 뒤 리춘근을 향하여

<<구체적인 방안을 한번 제시하시지요.>> 하고 청하였다.

<<그자들이 한창 춤판일 때 폭탄벼락을 콱 안겨주었으면 이 속이 좀 후련해질것 같은데... 그러자면 미리미리 준비할것들이 좀있어서 그럽니다. 첫째 남경에다 청병을 할것인가 안할것인가...>>

리춘근이 말하는 중간에 선장이가

<<청병 필요없습니다. 필요없습니다. 우리 둘이서만두 넉넉합니다.>> 하고 옆에 앉은 장준광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리춘근의 의향을 묻는 눈치로 장준광은 말없이 한번 싱긋하는것으로 수긍하는 뜻을 보였다.

<<그럼 우선 한가지는 결정이 난걸로 치구 그다음 문제는...>> 하고 리춘근이 말하는 중간에 진보경이 쟁반에다 맥주병이며 컵이며 맥주과자며를 담아들고 들어왔다. 리춘근은 하던 말을 중둥무이하고 곧 전보경을 보고 웃으며

<<설마 이걸루 약혼턱을 때울 작정은 아니시겠지요?>> 하고 조롱을 하였다.

리춘근이 말하는 지신밟기란 일본사람들의 <<가구라(神乐)>>로서 신전(神前)에 가무를 봉납(奉纳)하는 의식의 하나였다. 이것이 있을 때는 언제나 경건한-또는 경건하지 아니한-남녀로소 참배자들로 붐비여 신사의 안팎이 들썽들썽하게 마련이였다. 그 피압박민족에 속하는 리춘근들의 편에서 보면 남의 나라를 강점한 날강도의 무리가 제 세상 같아 놀아대는 꼬락서니를 눈꼴이 틀려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가 없는노릇이였다. 그러니 이들이 대성황을 이룬 지신밟기를

(어디 좀 죽어봐라 이놈들!)

피바다를 만들어주고싶은 충동을 느끼는것을 가히 리해할만한 일이였다.

김혜숙은 모의 이튿날 곧 남경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위험한 련락공작은 녀성이-특히는 인물이 잘난 녀성이-담당하는것이 보다 안전하였다. 그리하여 닷새후에 돌아올 때 김혜숙의 려행가방속에는 갈 때는 가지고 가지 않았던 손전등 하나가 늘었었다. 겉보기에는 보통손전등과 하등 다를게 없는것이였으나 기실은 특제의 폭탄이였다.

김혜숙이 돌아온 날 밤에 리춘근은 장준광과 선장이에게 <<지신밟기행동>>의 구체적지도를 하였다.

<<행동후에 우리가 모일 장소는 남상역전... 늦든이르든 먼저 오든 나중 오든... 거기서 기다리는걸로 원칙으루 합시다. 그리구 이건...>> 하고 리춘근은 손가방속에 돈뭉치 둘을 꺼내놓는데 각각 100원-1원짜리 100장씩이였다.

<<비상금입니다. 만일의 경우를 고려해 제각기 몸에 지니는게 좋겠습니다. 그리구 행동을 하는데 들어선 첫째가 용감성이겠지만 그래두 림기응변하는 기지가 없으면... 일을 잡기가 쉽구 또 필요 없는 희생을 내기가 쉽습니다. 이 점을 특히 명심들 해주십시오. 무리를 하지 말란 말입니다. 형편 보아가며 적당히 하란 말입니다. 변통성 없이 죽을둥살둥 곧은박이루만 내밀지 말란 말입니다. 우리의 목숨은 두었다 두었다 쓸데가 아직 많구두 많습니다.>>

연후에 리춘근은 손전등형폭탄의 사용법을 떠먹듯이 일러준 뒤

<<그럼 모레저녁 여덟시.>>

말하구 두 사람과 굳은 악수를 나누는것이였다.

선장이는 윤봉길이 다된것 같아 자리에 누워서도 몸이 구름우에 둥실 떠있는것만 같았다. 무릅쓸 위험은 쑥 빼버리고 통쾌한 결과만을 음미하였다. 그러나 장준광이라는 뜻이 같고 맘이 맞는 동지를 가진것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마냥 부풀었다. 어떻게 보면 곰의 새끼 같은 인상을 주는 말수 적고 수수한 장준광은 선장이에게 있어서 곧 또 하나의 양씨동이였다.

선장이가 이날 저녁 7시 반에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황포탄에 와 기다리는데 8시가 다되도록 장준광이 나타나주지를 아니하여 이 사람이 큰일을 그르친다며 속을 지글지글 끓이는중에 바라는 승용차는 아니 오고 왕청같은 싸이드카 한대가 곤두박질쳐 달려오더니 눈앞에 와 삑- 급정거를 하였다.

<<대체 어떻게 된거요?>>

<<우선 올라타우!>>

선장이를 태운 싸이드카는 외백도교를 건너서며 곧 외로 꺾어돌아 우정총구앞까지 와가지고 다시 북사천거리로 꺾어돌더니 홍구공원을 향하고 꼿꼿이 치달았다.

<<가레이지에 시운전할 차는 아무때구 없어본적이 없소.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한대두 남은게 없잖구 뭐요. 참 신통두 하지. 그래 할수 있소? 아무게나 하나 잡아타구 왔지! 이나마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잖았더면 어떡할번했소? 넨장 시집가는 날 등창이 난다더니!>>

사람이 좀 늘씬한 장준광도 어지간히 안달이 났던 모양이였다.

홍구공원 조금 못미쳐 왼손편 갑북으로 통하는 길모퉁이에 일본륙전대의 4층으로 된 양회벽병영청사가 웅크리고있고 그비슥 맞은편 전차길 건너에 일본신사의 산문-도리이(乌居)가 한문글자의 열 개자(介)처럼 두다리를 벌리고 말없이 껑충 서있다. 도리이에서 가까운 길가 포도옆댕이에 장준광이 싸이드카를 슬그머니 갖다세웠다. 신사의 안팎은 사람으로 들끓고있었다. 왜나막신 끄는 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였다. 신사의 경내에서는 사죽성(丝竹声)이 유양한 가운데 가구라춤이 바야흐로 벌어지고있었다. 귀신더러 보라는 춤인지 사람더러 보라는 춤인지 아니면 이승과 저승이 다 함께 보라는 춤인지 아무튼 한번 볼만은 한 춤이였다. 그러나 발동을 끄지 않은 싸이트카의 핸들을 틀어쥐고 신경섬유가 팽팽하게 켕겨가지고 대기하는 장준광과 잽싸게 손가방을 열고 특제의 손전등을 꺼내는 선장이는 애당초에 그런 춤따위는 념두에 둘 여유가 없었다. 무대우에서 그냥 너울너울 춤을 추는게 아니고 지랄발광 네굽질을 다하며 딩군대도 이들 두 모험가는 한눈팔 겨를이 없었을것이다. 이제 1분이면 벌집이 터진것 같은 대소동이 일어날것을 생각하니 선장이는 심장이 곧 튀여나올것처럼 두근거렸다. 깎아지른듯한 바위너설을 단숨에 타려는 때와 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죄였다.

선장이가 여라문 발자국앞으로 나가가지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을 눈어림한 뒤 재빨리 손전등의 마구리를 탈았다. 그리고 냅다 뿌렸다. 폭탄이 손에서 날아나는 순간 입에서 절로

<<아차!>>

소리가 새여나왔다. 인화전을 뽑지 않은것이다. 너무 급히 서두르는통에 가장 요긴한것을-리춘근이 차근차근 일러주던 바로 고것을-깜박 까먹은것이였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폭탄은 제가 터질 대신에 어느 놈의 대갈통을 들이맞힌 모양으로 그놈은 금세 죽어가는것처럼 새된 비명을 질렀다.-일은 다 글렀다!

선장이가 급히 몸을 돌쳐 대기중의 싸이드카로 달려왔다. 등뒤에서는 뭇사람의 울부짖는 소리에 아우성까지 뒤섞이여 악마구리 끓듯하였다. 경황한 구경군들이 우왕좌왕하며 서로 짓밟고 짓밟히고 하는 판이다. 거룩한 지신밟기가 삽시에 란장판으로 변해버린것이다. 선장이가 측차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싸이드카가 왈칵 내닫는 바람에 선장이는 등받이가 벌렁 한번 자빠졌다가 일어앉았다. 싸이드카가 맹속력으로 전차길을 엇비슷이 가로지르는데 일본륙전대청사 정문에 섰던 위병이

<<도마레, 우쯔조(서라, 쏜다)!>>

고함을 치며 격발기를 절거덕하였다.

싸이드카는 번개같이 대통로를 건너서며 곧 륙전대청사를 왼손편으로 끼고 에돌아서 갑북방향으로 내달았다. 뒤문에 섰던 위병이 또

<<도마레, 우쯔조!>>

소리치며 격발기를 절거덕하는것을 선장이가 스치는결에 선손을 썼다. 연거퍼 두방 권총탄을 안겨준것이다. 어디를 맞았는지 위병놈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더니 곧 다시 떨궜던 총을 집어들고 앉은 자세로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어두은 밤에 하는 눈깔먼 총질은 폭발음을 감상하는 딱총 폭밖에 안되였다. 륙전대의 무장한 싸이드카들이 긴급동원하여 발동을 거는 소리가 요란스레 나면서 곧 꼬리를 물구 내달아오는데 헤드라이트의 광망이 번득번득하는것이 어마하였다.

<<진여류 곧장 나갈가?>>

<<아니 갑북으루! 큰길은 재미 적어.>>

장준광과 서선장이가 두꺼운 공기의 막을 헤가르며 짧게 한마디씩 말을 주고받았다. 세찬 바람이 정면으로 안겨와서 숨들이 콱콱 막혔다. 장준광은 앞만 보고 죽어라 하고 싸이드카를 몰아대고 선장이는 손아귀에 땀이 나도록 권총을 틀어쥐고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쫓는 싸이드카와 뒤쫓기는 싸이드카의 아슬아슬한 경주가 벌어졌다.

앞길에 북정거장에서 강만정거장으로 뻗어나간 기차길이 가로놓였는데 그 건늠길목이 바로 코앞이였다. 마침 강만쪽에서 시꺼먼 화물렬차 한편이 달려오는것이 바라보였다. 장준광이 모는 싸이드카가 질풍같이 건늠길목에 들어서서 앞바퀴를 들며 철길뚝으로 치달았다. 뒤에서는 이리떼 같은 싸이드카들이 폭음을 울리며 뒤쫓아오고 또 오른쪽에서는 화물렬차가 귀청을 째는듯한 새된 기적을 울리며 달려왔다. 이런 만분화급한 고비판에 도망치는 싸이드카가 철길우에 갑자기 덜컹 멎어섰다. 하느님이 눈깔이 멀었는지 싸이드카가 눈깔이 멀었는지 아니면 두놈의 눈깔이 멀었는지.

<<아, 이 간나새끼가 미치잖았나!>>

다급해난 장준광이 욕질을 하며 급히 서둘러 꺼진 발동을 다시 걸어보려 하였으나 감감무소식-철길우에 떡 버티고 선 싸이드카는 꿈쩍도 아니하였다. 화물렬차의 앞등불빛에 장준광과 선장이는 눈이 부셨다. 이것을 보자 선두로 달리던 륙전대 싸이드카가 측차에 건 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해왔다. 총알들이 날카롭게 머리우를 날아지나며 쌩쌩 소리를 내였다.

<<내버려두구 그냥 뛸가?>>

<<뛰자!>>

장준광과 선장이가 찜부럭을 부리는 싸이드카에서 동시에 량쪽으로 뛰여내렸다. 선장이의 발꿈치를 스치다싶이 하며 들이닥친 기관차가 싸이드카를 들이받았다. 그리고는 급정거 타력으로 쭈그렁망태기가 되여버린 싸이드카를 레루우로 10여메터나 밀고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륙전대의 싸이드카가 헤드라이트를 번득거리며 풍우같이 몰려들었다. 도망치는 두 모험가와 일본륙전대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아닌 렬차의 담벽이 턱 가로막혔다. 하느님도 눈깔이 멀지 않으셨고 또 헌털뱅이 싸이드카도 눈깔이 아주 멀지는 않았었다.

천우신조로 목숨들을 건진 장준광과 선장이가 머리에 별을 이고 또 극성스러운 모기에게 사정없이 뜯기우며 길을 잃고 논틀밭틀로 밤새껏 걷다보니 동틀무렵에 왼손편으로 어지간히 큰 주막거리 하나가 나섰다.

<<우선 저기 가 무얼 좀 얻어먹구나서 다시 봅시다. 허기증이나 걸음이 안걸리오.>>

<<갑시다, 나두 목이 딱 말라... 죽을것 같소.>> 주막거리 초입에 백년 묵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웅장하게 가지를 펴고 섰는데 그 우중충한 그늘에 국민당군대의 보초병 둘이 각각 총을 짚고 서있었다. 복초다. 수상스러운 두 도망군을 발견하자 곧 그중의 하나가 위협적인 언성으로

<<서라!>> 하고 소리쳤다. 섰다. 보초병들은 제잡담하고 대들어서 몸수색부터 하였다.

<<야, 이것 봐라. 돈뭉치가 하나씩 나오잖나!>>

도 보초병은 서로 눈짓한 뒤에 얼른 한뭉치씩 제 호주머니에 넣었다. 식전마수거리부터 횡재수가 터진것이다 또 뒤지니 이번에는 권총이 한자루씩 나왔다.

(허, 멀쩡한 토비놈들이 아닌가!)

두 보초병은 운수불길한 두 토비혐의자를 불문곡직하고 따귀 한대씩 후려갈기는데 섣달 그믐께 흰떡치는 소리들이 났다. 초다듬이질부터 해놓고나서

<<걸어라!>>

저의 상관한테로 끌고 갔다. 얻어맞은 뺨이 얼얼한 장준광과 선장이는 끌려가며 서로 돌아보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웃었다. 소한테 물려도 유분수지!

<<보고 소대장님!>>

<<들어와라.>>

소위급령장을 단 새파랗게 젊은 장교가 붙들려 들어오는 두 토비혐의자를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 입이에서

<<아 이게 누구요?>> 하고 반가운 웨침이 튀여나왔다. 선장이가 어리둥절하여 다시 살펴보니 천만뜻밖에도 그 장교는

<<아 이게 웬 일입니까?>>

서울 보성고보시절의 선배-광주학생사건때의 영웅-김봉구였다. 장준광과 두 보초병의 얼굴에 괴상히 여기는 기색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김봉구와 서선장이는 열렬히 손을 마주잡고 흔드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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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101.♡.124) - 2023/11/02 22:38:21

세상에나..어떻게 여기서 그분을 만날수가...
세상이 이렇게 좁을수가 잇다니..얼마나 반가웟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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