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1

더좋은래일 | 2023.11.02 18:43:27 댓글: 1 조회: 291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4180


41

남경성 웅장한 성벽밑을 감돌아흐르는 진회하는 남대문인 중화문의 바로 턱밑을 스치고 또 그 이름도 그윽한 막수로를 옆에끼고 돌아가 마침내는 양자강으로 흘러들어버린다. 그 진회하를 북으로 건너 부옇게 먼지 앉은 중화문안에 들어선 뒤 왼손편-서북쪽으로 10분 더 걷노라면 성벽 가까이에 그리 높지 않은 언덕하나가 두드러졌는데 그 이름을 화로강이라고 하였다. 그 화로강우에 규모가 볼만한 절 하나가 자리잡고있으니 화강석을 다듬어서 만든 산문문미에 새겨져있기를-이연선림(怡然禅林), 그 산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중에 중도 아니고 불목하니도 아니고 또 어리석은 선남선녀고 아닌 팔팔한 젊은 사람이 자주 눈에 뜨이는데 그들은 겉보기에만도 참선이나 념불하고는 인연이 먼것이 환히 알리는 속인들이였다.

이연선림의 경내에 들어서서 중들과 선남선녀들이 부처앞에 분향하는 그리 향기롭지 못한 매캐한 향내를 맡으며 동향한 중문을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규모가 어지간한 루관 하나가 나서는데 그 루관의 아래웃층은 모두 어뜩비뜩한 속인들이 거처하는 별세상이였다. 그가운데는 지난해 상해에 내려가 생명보험회사의 의사로 가장하고 찰스-신영호씨에게서 거금 5만원을 교묘하게 우려낸 말라꽹이 윤대성과 가짜조수노릇을 하던 고수머리 정호도 들어있고 또 라파에트거리 철물전 2층에서 아령으로 변절자 임규룡이의 대가리를 까죽인 오쎌로 즉 마점산이도 들어있었다.(이 마점산이는 동료들이 항일장군 마점산이와 동성동명이 재미가 적으니 이름을 가는것이 좋겠다고 권고할 때 단호히 거절하기를 <<이 마점산이더러 갈라지 말구 어서 가 마점산이더라 갈라구 해라.>> 하고 왼고개를 쳤던 호걸남아이다.) 그리고 강녕별장의 지도원 조경산과 보조원노릇하던 양씨동이도 다 이곳 사람-통칭 화로강패였었다. 북평이나 천진, 상해나 남경 또는 광주나 홍콩 등지의 반일에 뜻을 둔 조선청년들을 포섭하면 먼저 남경시내 호가화원에 있는 초대소에 데려다 묵이면서 이모저모로 살펴보고 뜯어보고 한다. 그런 연후에 채로 쳐서 버릴것은 버리고 쓸만한것을 모아서 몰래 갖다두는데가 바로 이 화로강이였다. 그중에는 극소수의 녀성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다 일본놈이라면 이를 가는 열혈의 애국청년들-고귀한 민족의 얼들이였다.

권속을 거느린 지도자급인물들과 반해량대위 같은 특수한 임무가 있고 또 고정된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화로강근처의 민가들에 집을 잡고있었다. 이밖에 중앙륙군군관학교와 중앙대학 금릉대학 기숙사에서(재학생의 신분으로)숙식하는축들도 있고 또 외지에 나가(현역군이의 신분으로)부대를 거느리는축들도 있었다.

화로강에서는 해마다 3월 1일에는 모임을 가지고 <<3.1절>>을 쇠고 또 8월 29일-나라가 망한 날에는 점심 한끼씩을 굶어서 주린 창자로 망국의 아픔을 되새겨보군 하였다. 그리고 희생자가 났을 때는 모두들 모여가지고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울지 말아...

구슬픈 노래를 불러 나라일에 목숨바친 전우들을 애도하였다.

이날 배군 양씨동이와 오쎌로 마점산이 오래간만에 어울러 막수호로 뽀트를 타고 기분이 좋아 넓은 호수가 좁다고 돌아다니는중에 역시 둘이 타고 한 사람이 노를 젓는 뽀트 하나와 호심에서 맞다들었다.(씨동은 배군출신이라 아이적부터 힘든 노젓기에 지쳐 인젠 아예 신물이 난다고 노에다 손도 대기를 싫어하므로 그냥 편안히 앉아가고 노젓기를 좋아하는 오셀로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노를 젓는데 이물에 앉았는 씨동이가 슬렁슬렁 부채질을 하며 <<내가 머슴 하나 잘 두었군.>> 하고 놀리니 오쎌로는 이마에 땀이 번지르르해가지고 <<좋두루 해석해라, 이 기생충아!>> 대꾸하고 마주 웃었다.) 맞다든 뽀트에 탄것은 수수한 양복을 입은 장년들인데 고물을 향하고 이물에 앉은 남자는 목에다 카메라를 걸었었다. 그 뽀트가 슬그머니 배머리를 돌리더니 씨동이들의 뽀트와 나란히 저아가며 카메라를 건 남자가 건너다보고 씨동이에게 말을 걸었다.

<<조선분들이시죠?>>

분명한 조선말이다. 씨동이가 경각성을 높이며

<<부스(不是), 부스!>>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흔드니 그 말을 묻던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혹시 양씨동씨가 아니십니까?>> 하고 물으며 대뜸 카메라를 들어 씨동이에게 핀트를 맞추었다.

씨동이가 얼른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데 낌새 빠른 오쎌로가 한짝 노로 물을 콱 튀여주어 카메라 든 놈은

<<아 퉤!>>

물초가 되여버렸다.

그 카메라로 무례하게 씨동이에게 핀트를 맞추다가 물벼락을 맞은자는 남경 일본령사관의 이소다라는 특무였다. 남경에 본거를 둔 조선망명자의 활동을 대처하려고 조선총독무에서 특별히 초빙해온 놈인데 조선말을 해도 이만저만 잘하지 않았었다. 그자가 씨동이의 대답을 듣고 싱글싱글 웃는데는 까닭이 있었다. 그자가 씨동이가 정말로 조선말을 모르는 중국사람이라면 의당 <<썬머(뭐라구요)?>> 하고 되물었어야 할것이기때문이다.

씨동이도 어마지두에 그런 어리석은 대답을 해놓고 곧 잘못을 깨닫기는 하였으나 한번 나간 말은 사마로도 따라잡지를 못하는 법이라 할수 없는 일이였다.(이때부터 <<부스부스>>가 씨동이의 묵은 별명<<배군>>을 대체하게 된것도 자연적인 추세라 할것이다)

씨동이와 오쎌로가 돌아오는 길에 분개하여 서로 지껄였다.

<<그 자식 내 사진을 찍어다간 무얼 하려구... 망할 자식! 매부 삼으려나?>>

<<무얼 하긴 무얼 해... 중국정부에다 사진을 들대구 형사범인 아무개가 남경에 숨어있으니 당장 인도하라구 교섭을 할 작정이지.>>

<<내가 왜 형사범이야? 정치범이지.>>

<<그놈들이야 어디 그런가. 될수만 있으면 형사범을 들쒸우는 판인데. 놈들에게 걸리면 치안유지법위반두 은전이야. 난 애당초에 그런것은 바라지두 않아. 붙잡히기만 하면 살인강도루 모가지 뎅겅은 벌어놓은거니가.>>

치안유지법이란 일본제국주의가 주로 공산당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든 악법이다.

<<까짓것 살인이면 어떻구 강도면 어떻구.>>

씨동이와 오쎌로가 화로강에 돌아와 고대 막수호에서 껶은 일을 이야기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놈 썩은 도마도나 있었더면... 보기 좋게 한번 답새겨주는걸.>>

<<아 가래침이라두 칵 좀 뱉어주지 못해?>>

<<어느 하가에 그런 궁리가 다 돌았겠니.. `부스부스` 하는 놈이.>>

<<가슴이 후둑후둑 뛰여 어쩔바를 몰랐을테지, 보나 안 보나.>>

<<가만있으려니까 이것들이 누굴 아주 파깡치를 만들잖나.>>

<<분개할것 무어 있어? 옳은 평가면 그대루 받아들이는게지.>>

<<이것들이 정말...>>

<<정말 어째?...>>

와하하 집이 떠나갈듯한 웃음소리...

일본제국주의에게 공연히 트집을 잡히여 던테를 만날가봐 남경에서는 일본령사관놈들을 일체 건드리지 말라고 장개석이가 엄명을 한 까닭에 남경에 있는 조선반일조직들에서도 뇌꼴스러운것을 꿀꺽 참고 감히 어쩌지를 못하는 형편이였다.

<<나 같으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라구 구호나 들입다 웨쳤겠다.>>

<<암, 천하대장군이시니까 물론 그리셨겠지.>>

<<이게 누굴 시까스르잖나!>>

<<오쎌로가 이번에두 하긴 재치있게 했어 그만하면.>>

<<물론이지 내야 언제나...>>

<<또 제몸을 추시는군, 한마디 했더니.>>

<<아니 그런데 왜 아직두 호르래기소리가 안 날가?>>

<<참...>>

아닌게아니라 출출들 하였다. 점심때가 훨씬 기운것이다. 여느때 같으면 벌써 식사가 다 끝이 나서 제각기 제 볼일을 보기 시작한지도 오랬을터였다.

<<이건 사람 굶겨죽일 작정인가?>>

<<이 저울쟁이가 또 어디 가 해찰을 하는건 아니야?>>

<<모르지 또...>>

<<저울쟁이>>란 오랜 독립운동가 장건상의 아들 장주연이의 별명이다. 그는 화로강의 현임식당관리원으로서 장사아치들에게 속지 않으려고 늘 제 저울 하나를 따로 가지고 다니며 장을 보아오기때문에 저울쟁이라는 별명이 붙은것이였다. 저울쟁이 장주연이는 장사아치들하고 1전, 2전을 가지고 아웅다웅 다투는 깐깐스러운 좁쌀이였다. 열렬한 애국자인 저의 아버지와는 성품이 팔팔결 다른 말하자면 불초자제였었다. 그런데 그 저울쟁이가-취사원을 데리고 나가 장을 보아와야 할 관리원이-온다간다 말이 없이 어데론가 사라져버려 취사원이 점심밥을 지을 거리가 없는것이다.

<<설마한들 이 자식이 또 부자묘에 가 드러누운건 아닐테지?>>

<<십분 가능하지.>>

부자묘는 남경의 유명한 유곽거리다. 합법적화류병균의 온상이다. 코가 썩어떨어지는것도 헤아리지 않은 용사들이 출입을 하는 곳이다. 공자가 어찌 알았으랴, 자신을 받드는 사당이 이렇게 지저분해질줄을.

언젠자 화로강의 서너 사람이 이른아침에 긴한 볼일이 있어 급히 어디를 가다가 부자묘앞을 지나는데 마침 눈이 부석부석한 웬 남자 하나가 유곽거리에서 인력거를 타고 나오다가 화로강사람들을 보자 몸을 피할수 없는 인력거우에서 얼른 외면을 하였다. 하지만 눈이 밝은 화로강패 젊은이들이 그 얼굴을 못 알아볼리가 없었다.

<<저기 저울쟁이가 아니야?>>

<<저 자식 그게 썩어떨어지지 않는게 원쑤 같은 모양이지.>>

<<저 모가지 비튼 꼴 좀 봐라.>>

듣거라 하고 큰소리로 지껄여대는것을 인력거우에 저울쟁이가 다 들은 까닭에 그후 한동안은 면구스러워 그 몇몇 사람들과는 될수 있는 한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관리원의 돌연한 실종으로 이날 화로강에서는 호떡으로 점심한때 끼니들을 에웠다. 그러니 저녁때가 되여도 한번 없어진 관리원은 다시 나타나주지를 아니하였다. 화로강사람들이 괴이쩍게 생각하고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지도부에서 곧 수사에 나섰는데 이틀후에 어이없는 회보가 헌병대위 반해량을 통하여 들어왔다.

<<장주연은 남경 일본령사관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 자수하여 현재 령사관구내에서 보호를 받고있음.>>

변절자의 부친은 이때 마침 항주에 가있어서 이 소식을 듣지 못하였지만 변절자의 고중에 다니는 누이동생 장옥연은 의외의 소식에 놀라고 또 수치스러워 오열로 혼자 자꾸 어깨를 들먹였다.(후일 장옥연은 태항산에서 항일전쟁의 승리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부친은 일본경찰의 끄나불로 전락한 친아들 장주연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5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였다.)

화로강패 젊은이들이 이를 갈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때묻은 자가용저울까지 가지고 자수를 한 장주연이는 령사관구내에서 아무 탈 없이 편안히 살고있었다.

밤에 연회가 있어서 11시가 지나서야 반해량대위는 화로강 근처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겻지고 좁은 길거리에는 벌써 행인이 그치고 개새끼 한마리 얼씬거리는것이 없었다. 달빛이 희미한 가운데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어귀까지 거의다 왔을즈음에 뒤에서 불시에 헤드라이트의 눈부신 광망을 내쏘며 승용차 한대가 달려왔다. 자신의 뚜렷한 그림자가 길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뻗어나가는것을 보며 반해량은 좁은 길에서 자동차를 피하려고 얼른 길가 뉘 집 담장밑으로 외여섰다. 자동차가 반해량을 담장에다 바싹 밀어붙이듯이 하여 멎어서는 곁에 앞뒤좌석의 문이 동시에 덜컥 열리니 반해량은 자동차와 담장과 두 문짝 사이에 갇히운 형국이 되여버렸다(이때는 승용차의 앞뒤문이 흔히는 마주났었다). 옴치고 뛸데가 없어진 반해량이 낌새 빠르게 권총 빼드는것과 거의 동시에 뒤좌석에서 무지스러운 팔뚝 하나가 쑥 나오더니 대뜸 반해량의 멱살을 움켜쥐고 낚아채였다. 자동차안으로 끌어들일 작정이다.

(랍치!)

순간에 깨닫고 반해량이 두발을 뻗디디며 손에 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니 괴괴한 밤거리에 총성이 두드러지게 요란하였다. 쥐도 새고 모르게 붙잡아가려던것이 의외로 왁자해질 모양이라 랍치범들은 문문치 않은 헌병대위를 내깔리고 곧 차를 몰아 뺑소니를 쳐버렸다.

반해량이 권총을 손에 쥔채 달빛 희미한 길거리에 서서 생각해보았다.

(나를 랍치하려는 놈은 일본놈밖에 없을테구... 또 내가 이 골목안에 산다는것을 아는 놈이 장주연이밖에 없을테구... 죽일 놈 같으니!)

그러나 해괴한 일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아니하였다.

며칠후, 선향묶음을 손에 든 양복쟁이 하나가 목에다 카메라를 건 양복쟁이 하나와 동반하여 화로강의 이연선림을 찾아왔다. 격식대로 부처앞에 분향하고 합장배례하고 그리고 인도하는 중에게 미리 정갈한 봉투에 넣어가지고 온 얼마의 돈을 시주하였다... 례불을 끝낸 뒤에 경내를 돌아본다고 핑게하고 마당에 내려서며 바로 제 집 드나들듯 서슴없이 중대문안에를 들어섰다. 늘 다녀본것이라기도 한것처럼 익숙하고 수월수러웠다. 마침 안마당에서 권연을 꼬나물고 뒤짐을 지고 철학자연하게 어정거리던 오쎌로와 마점산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목에 카메라를 건자가 잘칵 샤타를 눌렀다. 참으로 날랜 동작이였다. 실로 눈 깜박할 사이였다. 오쎌로가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보니 아 이런, 막수호에서 물초를 만들어준 바로 그놈이 아닌가! 어리무던하게 사진 한장을 찍히운 오쎌로가 분이 나서 루관을 향하여 고함을 냅다 질렀다.

<<왜놈이 왔다, 왜놈!>>

2층 중간쯤의 창문으로 수염이 텁수룩한 얼굴 하나가 대려다보며 심상한 말투로

<<뭐가 왔어?>>

<<왜놈 왜놈! 왜놈이 사진 찍으러 왔어!>>

소리를 치니 루관의 아래웃층이 불시에 벌집이 터진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문들을 열어젖뜨리는 소리. 쿵쿵쿵쿵 층층대를 뛰여내려오는 소리. 와이샤쯔바람으로 뛰여나오는 사람에 잠뱅이바람으로 달려나오는 사람에... 개중에는 턱과 뺨에다 솜뭉치 같은 비누거품을 단채 손에다 면도칼을 들고 뛰여나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잠간동안에 사오십명 사람이 불법침입 아닌 불법침입을 한 두 왜놈을 겹겹이 둘러쌌다.

<<왜들 이러시오?>>

카메라를 목에 건자가 에워싼 사람들을 둘러보며 비양스럽게 물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태도다. 외교특권이란 호신부가 그와 더불어 있었기때문이다.

<<이제 그 필림을 이리 내시오!>>

말라꽹이 윤대성이 두눈섭을 일으켜세우고 달려들려는 양씨동이와 오쎌로를 한옆으로 밀어내고 앞으로 한발자국 썩 나서서 한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비양조로

<<그건 왜?>> 하고 묻는것을 윤대성이

<<`그건 왜?` 이 자식이 뻔뻔스럽구나. `그건 왜?`>> 하고 뇌며 에워싼 사람들에게 눈짓한 뒤 다시 그자를 항햐고 명령조로

<<내가 이제부터 하나에서 열까지 셀테니... 그안에 네 손으로 그 필림을 뽑아서 빛을 보여라.>>

말한 다음

<<법은 멀구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너두 잘 알테지?>> 하고 으름장까지 놓고나서

<<자 그럼... 하나->> 하고 세기 시작하였다.

위압감에 눌리워 그자가 더는 뻗서지 못하고 일껏 찍은 필림을 무효로 만드는것을 지켜본 뒤에 수령격인 윤대성이 수십명 사람을 거느리고 산문까지 따라나가 두놈을 곱게 배송하였다. 화로강패 젊은이들이 산문앞에 무더기로 모여서서 뒤통수를 치고 돌아서는 두 왜놈을 바라보며 앙천대소를 하는것을 이연선림의 중들이 무슨 일인가 해서 삐끔삐끔 내다보았다.

<<저울쟁이란 놈이 우리 속내를 싹 다 일러바친 모양이군.>>

<<그야 더 말할것 있나.>>

<<그렇지만 소용있나... 화로강을 송두리채 떠가지는 못할거구.>>

<<옥연이가 가엾게 된걸.>>

<<가엾긴 뭐가 가엾어? 오래빈 오래비구 누이는 누이지.>>

<<암 처남은 처남이구 매부는 매부지.>>

<<이건 누굴 시까스르는겐가?>>

<<여게 친구, 괜스레 너무 신경과민증에 걸리지 말라구.>>

이와 같이 씩둑꺽둑 지껄이며 화로강패가 도로 걷히여 들어왔다.

화로강패 젊은축들의 이야기거리로 되는 장옥연이는 철도 채나기전에 어머니를 여의였다. 그 아버지 장건상은 자식 남매에게 정신적인 구속을 주지 않으려고 속현을 하지 않았다. 부녀가 화로강 근처에서 세방살이를 하며(아들은 이연선림에서 다른 청년들과 같이 기거를 하였으므로) 그 딸의 성장하는 모습을 눈앞에 보는것을 장건상은 락으로 삼았다. 옥연이는 언제나 얼굴이 창백한 가냘프디 가냘픈 소녀였다. 지금은 고중 2학년-방년 18세의 다 큰 처녀였지만 큰 나무그늘에서 자란 한송이 들꽃같은 연약하고 처초한 그 풍정은 보기에 애련하기만 하였다. 이런 딸을 남경에다 두고 간 까닭에 장건상은 부득이한 공무로 서너달 항주에 머무는 동안 딸 보고싶은 마음이 정히 간절하였었다. 일이 겨우 다 끝이 나서 남경으로 돌아오게 되였는데 불편하게도 상해까지 와가지고 다시 기차를 갈아타야 하였다. 장건상이 상해 북정거장에 내려가지고 남경렬차가 떠날 때를 대합실에 나가 기다리려고 개찰구를 향하고 오가는데 홈의 콩크리트기둥뒤에 붙어서서 옆에 섰던 일본령사관 경찰서 사복형사들에게 자신을 손가락질해보이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그는 감감히 몰랐다. 더구나 그 손가락질을 해보이는자가 제 친아들일줄이야 그가 어찌 알았으랴! 웬 낯선 장년남자 둘이 앞을 막아서며

<<장건상선생 아니십니까?>> 하고 알은체를 하는데 장건상은 공연히 섬찍하여 선뜻 대답을 못하였다. 그 두 사람이 날랜 동작으로 랑옆에 와 바투 붙어서며

<<볼일이 있으니 우리하구 좀 같이 가십시다.>>

말할 때에야 비로소 장건상은 자신이 벗어날수 없는 무서운 그물에 걸린것을 깨달았다. 순간 장건상의 보이지 않는 눈앞에 피득 떠오르는것은 해당화 비에 젖어 무게를 못이기는듯 가련해보이는 딸 옥연이의 모습이였다.

(저것이 장차 누구를 믿구 산단 말이.)

통곡을 해도 시원찮을 장건상의 심정이였다.

저울쟁이 장주연이는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멀찌감치에서 덤덤히 바라보고있었다. 이 추물, 이 민족의 치욕, 이 개짐승은 천도가 무심하여 그후 아무 징벌도 받지 않았다. 도의적인 징벌도 받지 않았다. 도의적인 징벌이란 인간에게만 적용이되는것이니까 그에게는 적용되지를 않는것이다.

그러잖아도 오빠가 자수를 하고 또 밀고를 하였다는 수치감에 지지눌려 이 세상을 살 생각이 없던 옥연이가 설상가상으로 또 아버지까지 체포되였다는 마른하늘의 벼락같은 소식에 접하였다. 옥연이 엎덫에 치인 비둘기처럼 몸부림쳤다. 너무 어마해 열여덟살 처녀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내기가 어려운 타격이였다.

옥연이가 저녁도 지어먹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마당에 땅거미가 기여들무렵 정신없이 일어나 집을 나와가지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그림자처럼 걸어갔다. 중화문으로 향하였다. 그 중화문을 나서면 바로 진회하다. 수백수천년 기나긴 세월을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진회하의 무심한 물줄기가 가엾는 처녀에게 오라고 손길을 치는것이다

(죽어버리자. 깨끗이 죽어버리자. 죽으면 만사가 끝이다. 근심걱정 다 잊어버리고... 고이고이 잠들자. 엄마가 기다리는 곳으로... 어서 가자. 엄마가 기다리는 곳으로... 어서 가자.)

인적이 끊어진 진회하의 어두운 강뚝에 올라서서 한참 강물을 굽어보다가 옥연이는 허리를 구푸리고 손으로 더듬어서 돌을 주어모았다. 여라문개 주어모아 치마폭에 싸안고 허리르 펴니 어지간히 묵직하다.

(자 인제 인간세상의 모든 번뇌와도 영별이다.)

옥연이가 막 물속으로 뛰여들려는 찰나에 난데없이 웬 남자의 억센 손이 나타나 팔죽지를 꽉 잡았다.

<<옥연이 미쳤어? 이게 무슨짓이야?>>

귀에 익은 목소리다.

<<놓아주세요! 제발 놓아주세요!>>

옥연이는 말소리가 여직 울려는 사람 같았다. 남자는 두말 않고 곧 손으로 옥연이의 치마폭을 거머쥔 손목을 꽉 눌러 싸안았던 돌들을 와르르 풀어놓았다.

고수머리 리정호-사로니까행동때의 가짜조수가 몸부림치는 옥연이의 손목을 잡아끌고 강뚝을 내려왔다.

이 밤따라 서쪽하늘에서는 개밥바라기가 유난히 반짝였다.

추천 (4) 선물 (0명)
IP: ♡.162.♡.239
로즈박 (♡.101.♡.124) - 2023/11/02 22:50:36

그때는 변절자도 참 많앗을테죠
...사람이 다 같진 않을태니까요..
오늘도 잘 보앗습니다..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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