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2

더좋은래일 | 2023.11.03 09:30:37 댓글: 1 조회: 262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4298


42

장준광과 서선장이가 난생처음 군대음식이라는것을 먹어보았다. 아침밥들을 얻어먹은것이다. 먹으면서 고대 있은 일을 생각하고 서로 마주보고 빙그레 웃었다. 일껏 잡아들인 토비혐의자가 저의 상관의 친지인것을 알자 뒤가 켕긴 두 보초병이 서로 눈짓하고 상우에 내놓은 증거물-두자루의 권총옆에다 마수걸이로 횡재하였던 지전뭉치들을 슬그머니 도로 내놓던양이 우스워서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 김봉구의 말이 자세한것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밤길에 삐친 끝에 잠들이나 한숨 자라며 민가의 뒤방하나를 치워주었다. 두 사람은 갖다주는 군대 담요 두장을 둘이 어울러 한장 깔고 한장 덮고 동여가도 모르도록 잠 한숨을 곤하게 자고 한낮대가 다되여서야 일어들 났다. 개울에 나가 미역들을 감고 들어와 점심 한끼를 또 얻어먹은 뒤에 비로소 김봉구가 사람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왔다.

<<자 인제 이야기나 좀 들읍시다.>>

<<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남상역전에서 지금 우리가 오기를 기다릴 사람이 있으니... 이걸 어떻거면 좋겠습니까?>>

<<누구요 그사람이?>>

<<우리 선배... 이번 일을 지도한 선뱁니다. 일이 끝나면 거기서 만나자구 미리 약정을 했었거든요.>>

<<그럼 어떻건다?... 우리 분대장 하나를 보내볼가?...>>

<<얼굴도 모르구 허턱 가선 어떻겠습니까?>>

<<그것두 그래.>>

김봉구는 좋은 방도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비틀었다. 이것을 보고 장준광이

<<혼자 가 알리면... 안될가요?>> 하고 말하니

<< 참 그렇두 좋겠군요.>>

김봉구가 선뜻 동의하여 선장이는 떨어지고 장군광만 먼저 가기로 작정이 되였다.

장준광이 김봉구의 분부를 받은 분대장을 따라 길거리로 나왔다. 분대장이 남상방향으로 가는 트럭 한대를 손들어 세워가지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을 불러내더니 그자리에 대신 장준광을 올려태웠다.

<<이분을 남상역전까지 잘 모시라구. 알겠나?>> 하고 운전사에게 뒤까지 누르는것이였다.

<<녜녜, 념려 맙시오, 분대장님.>>

운전사는 공연히 무엇에 잘못 걸릴가봐 쩔쩔매였다. 장준광은 자신에게 자리를 앗기운 사람이 입은 쀼죽해가지고 적재함으로 기여오르는것을 보고 미안해서 제가 올라가겠다고 하니까 운전사가 혼동하듯이 손을 홰홰 내저으며

<<안됩니다 안됩니다. 구냥 앉아계십시오.>> 하고 위태로운듯이 돌아선 분대장을 곁눈질해보았다.

한편 김봉구소위는 선장이의 이야기로 이번 일의 자초지종을 알고 또 지난 몇해 동안의 소경력까지 다 안 뒤에 빙그레 웃으면서

<<그러구보니 우리가 그동안 걸은 길은 서루 달랐어두 지향하는바는 하나였구려.>>

말하고 잇달아서 김봉구는 자신의 소경력을 선장이에게 이야기해들리는것이였다.

<<난 그해 서울서 출학을 맞은 뒤 황포군관학교엘 들어가볼 생각으루 곧장 중국으로 건너왔소. 내가 떠나기전에 우리 사촌형하구 이 관훈동으로 김영하씨를 보러 갔다가 우리가 만나잖았소? 그때 아직 어린 1학년생이더구먼.

그래 중국엘 들어와선 운이 좋았지. 우연히 귀인 한분을 만나서 비교적 순리롭게 중앙군교에 입학을 하게 됐소. 원래의 지망은 포병과였으나 그것이 어째 뜻대루 잘돼주질 않아 결국은 보병과를 다녔소. 본디는 광주 황포에 있던 학교가 그때는 이미 남경으루 옮겨와서 교명두 중앙륙군군관학교로 간 뒤였소.>>

<<그리구 지난해 봄에는 상해에서 윤봉길이 폭탄사건 일으키는 바람에 왜놈이 중앙군교에 있는 조선학생들을 반일의 화근이라구 중국정부에다 항의를 하며 당장 다 쫓아내지 않으면 후과가 좋지 못할거라구 을러방망이를 했었지 뭐요. 그래 우리 조선학생들은 한날한시에 몽땅 출학처분을 받았었지요. 하지만 그건 다 장개석이의 얼렁수였소. 왜놈들 보라구 하는 수작이였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는 명의상으로만 일단 출학을 당했다가 이튿날 전원 다시 등록을 하는데 이름은 모두 중국식으루 갈구 그리고 본적은 모두 료녕, 길림, 흑룡강 따위루 갈아버렸소. 그래서 지금 내 본적은 료녕으루 돼있구 또 이름은 호철명이라구 하오. 조선에서도 호씨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돼있소.

그리구 지난달에 졸업을 할 때 우리 이 사단의 련대장이 한분이 나를 지명해달라구 해 나 하나만 여기를 오게 됐는데... 이제 온지가 달포밖에 안되오. 그 련대장은 방효삼이라는 조선분이요. 좀이따 나하구 같이 가 인사를 합시다. 우리의 선배요. 인격자요.>>

<<중국군대에 조선분들이 많습니까?>>

<<아마 적잖을거요.>>

<<그분들두 다 우리처럼 일본을 반대합니까?>>

<<그야 물론. 일본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만은 다들 신통하게 일치하니까. 그렇지만 독립을 전취한 뒤에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에 들어선 제가끔이요. 그러구 일본을 반대하는 방법문제에 있어서두 주장들이 어긋나구.>>

이때 긴 가죽멜끈으루 모젤권총을 엇맨 애된 병정 하나가 둘어와 김봉구소위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련대장께서 손님을 모시구 오라십니다.>> 하고 전갈하여 봉구는

<<자 일어나시오, 가봅시다. 내 아까 보고를 했더랬소.>> 하고 선장이를 재촉하여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김봉구소위 즉 호철명소위가 거느린것은 련대본부 직속의 경위소대였으므로 중대, 대대를 거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직접 련대장을 만날수 있었다. 선장이는 높은분께 뵈러 간다는 바람에 마음이 좀 송구하였으나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심정으루 그냥 따라나섰다.

선장이 생각에 련대장실이라고 하면 대단할것으로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저 보통민가의 그리 크지도 않은 방 한간에 행군침대 하나, 각탁 하나, 걸상 너덧개 그리고 멜가방모양의 휴대전화기 하나... 그뿐이였다. 련대장인 방효삼대좌도 금줄 두줄에 중성 셋이 달린 령장을 달기는 하였으나 그저 보통사람이였다.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소리도 그리 우렁우렁하지 않고 또 눈도 그림이나 연극에서 보는 장수들처럼 그렇게 가로 쭉 찢어지지 않았었다. 련대장이 김봉구소위의 거수경례는 앉은해 고개 한번 끄덕하는것으로 받았으나 뒤따라들어온 서선장-낯선 애숭이 손님-보고는 얼른 일어서 례바르게 맞이하였다. 그리고 말씨도 선장이가 송구스러우리만큼 깍듯하였다.

<<방효삼이라구 합니다. 호소위에게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서 앉으십시오.>>

그리고 호소위-김봉구를 돌아보고

<<두분이라더니 어째 한분이요?>> 하고 물었다.

<<한분은 남상으루 련락을 갔습니다.>>

<<아 그래요.>> 하고 방효삼은 다시 선장이를 향하고

<<상해에선 제2차 윤봉길사건이라구 지금 란리가 났습니다. 홍구 갑북일대가 발끈 뒤집혀가지고 일본군경들은 가을중 쏘대듯한답니다. 당분간은 조심해야겠습니다.>>

말하고 잇달아서

<<폭탄이 터졌더라면 더 좋았을것인데 그렇게 되지 못해 좀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조선민족의 기개는 훌륭히 떨쳤으니까 역시 장쾌합니다.-감사합니다.>>

말하고 새삼스레 선장이의 손을 굳게 잡는것이였다.

선장이는 자신이 동지들속에 있다는 미더운 느낌에 가슴이 마냥 벅찼다.

저녁전에 장준광이 돌아오는데 리춘근도 따라왔었다. 리춘근이 남상역전에서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느라고 어찌나 속을 끓였던지 하루사이에 얼굴이 눈에 띄게 깠었다. 그래서 선장이의 무사한 모습을 보고는 그저

<<천만다행입니다. 천만다행입니다.>>하고 굳게 잡은 손을 자꾸 흔들뿐이였다.

세 모험가는 이날 저녁 련대장실에서 김봉구소위까지 다섯이서 함께 식사를 하고 눌러앉아 이야기장을 벌였다. 동지들사이에는 상하부도 없고 또 구면 초면도 없었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한결같은 적개심만이 들끓었다. 방효삼이 석상에서 한 북벌전쟁시기의 일화 하나가 선장이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당시 나는 한낱 소대장에 불과했었는데 전투중에 중대장이 중상을 입어 순차에 따라 내가 중대장의 대리를 보게 됐었습니다. 한데 그때 마침 우리 대대는... 독립대대였는데... 우세한 적에게 포위를 당해 형세가 매우 긴박했었습니다. 다행히두 우리가 점령하고있는 고지의 지형이 어지간히 험준했기에망정이지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전멸을 당하든가 풍비박산이 되든가... 어떻게 됐을겝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사병 하나가 바위너럭에 꼬부리구 자다가 잠결에 옆에 벗어놓았던 철갑모를 건드렸지 뭡니까. 당시 아직 철갑모는 희귀한것이였습니다. 전 대대에 너덧개두 있으나마나 했으니까요. 이 철갑모가 괴괴한 밤중에 바위너럭을 이리 부딪구 저리 부딪구 하면서 아래까지 굴러내려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스럽구 또 괴상스럽던지 나두 그때 눈을 좀 붙였다가 깜짝 놀라 깨났습니다. 깨나기는 했지만 그게 대체 무슨 소린지를 알수가 있어야지요. 창졸간에 판단을 내릴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뚱딴지같은 철갑모의 장난일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데 그 괴상야릇한 소리가 하나의 기적을 창조했습니다. 산밑에 둔을 치구있던 적병이 그 소리에 놀라 와- 도망들을 치기 시작한겁니다. 아마 우리가 밤중에 무슨 위력이 대단한 최신식무기를 앞세우고 돌격을 해오는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지요. 한 사병이 잠결에 건드린 철갑모가 우리 대대 전원을 구해낼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다같이 거뜬한 웃음을 웃는 바람에 운치없이 딱딱하던 련대장실에는 화기로운 분위기가 넘쳐났다. 간밤에 상해에서 일본놈의 지신밟기를 망태기를 쳐놓은것이 못내 통쾌하여 기분들이 들떴었기때문이다. 격앙한 민족감정에 도취가 되여 을지문덕장군의 이야기며 리순신장군의 이야기며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의 이야기를 받고차기로 하던 끝에 선장이가 웃으면서

<<서울서는 어느 공중변에를 가나 다 `리완용식당`이라구 씌여있습니다.>> 하고 말하니 좌석은 또 한바탕 웃음판이 되는데

<<나라를 팔아먹은 놈인데 당연하지요.>>

<<두구두구 욕먹을 일을 글쎄 왜 했겠습니까!>>

<<수치스럽지.>>

<<개만두 못한 놈, 잘코사니요.>>

입입이 한마디씩 욕을 하였다.

자리를 파하고 자러 들어올 때 리춘근이

<<방대좌가 틀이 없는분이구먼요.>> 하고 첫인상이 좋은것을 말하니 김봉구는

<<수수한분이지요. 직업군인으루선 드문 성격이지요.>>하고 자기 상관의 덕성을 칭송해 말아였다.

이튿날아침후에 리춘근은 두 모험가를 데리고 련대장에게 가 작별인사를 하고 김봉구소위가 주선해주는 군용트럭에 편승하여 남상역전에 와 내렸는데 한 두어시간 잘 기다려야 남경행 렬차를 탈수 있었다. 역전에 2층으로 된 차집 하나가 있어서 거기로 들어가앉아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직 오전이라서 그런지 손님은 별로 없었다. 2층 창문가에 자리잡고 앉아 손바닥만한 역전광장을 내려다보며 맛이 그럴듯한 계화소병(桂花烧饼)이라는 호떡을 곁들여 차들을 마시는중에 손에 해금을 든, 반백이 넘은 중늙은이 하나가 딸 같아보이는 열팔구세 가량의 덜 밉지 않은 계집아이 하나를 데리고 앞에 와 문안을 드렸다. 노래를 시켜달라는것이다. 리춘근이 두 동행을 돌아보며 웃고나서 심심파적으로

<<좋소, 아무거나 하나 하시오.>> 하고 받아주었다.

손님이 부를 노래를 지정해주지 않으니까 그들 부녀는 잠시 눈짓으로 의논한 뒤에 아버지는 바로 해금을 켜고 딸은 곧 세련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장준광과 선장이가 노래의 사의를 몰라 말귀에 념불 격으로 눈이 멀뚱멀뚱해 앉았는것을 보고 리춘근이

<<맹강녀가 만리장성 쌓으러 간 남편을 그리는 노래.>> 하고 귀띔해주었다. 장준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 중국식`솔버그의 노래`.>> 하고 중얼거리는것을 듣고 선장이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한낱 자동차수리공에 불과한 곰의 새끼같은 장준광의 입에서 그런 고상한 <<고전음악>>이 튀여나올줄은 참말 몰랐던것이다. 장준광이 종교음악, 고전음악을 존숭하는 경건한 천주교의 가정에서 자라났다는것을 선장이가 알턱이 없었다. 아버지의 해금에 맞추어 부르는 딸의 노래소리는 가가호호로 돌아다니며 문전걸식을 하는거나 별반 다를게 없는 처량한 신세가 반영이 되여서인지 듣기에 퍽 애연하였다. 그러나 한참 듣는 선장이는 무슨 깔닭인지 피뜩 당나라시인 두목의

노래를 파는 녀자가
망국의 한을 모르고

라는 귀(句)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노래가 끝난 뒤에 리춘근이 손이 크게 은전 두잎을 건네니 불쌍한 부녀는 고마와 머리를 여러번 수그렸다.

렬차안은 빈자리가 적지 않았으나 셋이 한데 앉다보니 장준광하나만 차창가에 낯 모르는 사람과 마주 대하고 앉고 리춘근과 선장이는 통로쪽으로 앉았다. 차에 오르기전에 리춘근이 미리 두 동행에게 차칸에서 조선말을 하면 주위의 이목을 끌기 쉬우니 될수있으면 좀 삼가하는것이 좋겠다고 주의시킨 까닭에 셋이 다 덤덤히 앉아 벙어리려행을 하였다. 소주정거장에서 렬차가 5분을 머무는 동안에 장준광 맞은편에 앉은 나이 지긋한 남자가 차창밖에다 돈 3전을 내밀고 송화단(松花蛋) 한알을 샀다 그 남자가 송화단의 껍데기를 찬찬히 벗기기 시작하였다. 다 벗겨가지고 입으로 가져가기전에 인사성으로 앞에 앉은 장준광에게 내밀며

<<칭(请).>> 하였다. 허례라면 허례이고 인습이라면 인습이고 아무튼 어디서나 흔히 보는 장면이다. 그러나 성미가 좀 데설궂은 장준광은 달리 받아들였다.

(이 자식 봐라, 제가 처먹으려구 다랍게 한알 사기지군... 나를 놀리는 셈인가?)

괘씸한 생각이 왈칵 난 장준광이 사양 않고 손을 내밀어 코앞에 들이민 송화단을

<<셰셰(谢谢).>> 하고 덤썩 받아가지고 씁쓸하니 다 먹어버렸다.

수고스럽게 껍데기까지 말끔히 까 바친 오리알임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장준광의 먹는 입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것을 보고 리춘근은 입만 실룩했지만 선장이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다가 마침내 배를 부둥키고 승강구로 뛰여나왔다. 사람 없는 승강구에서 미친 사람처럼 눈물을 흘려가며 혼자 자꾸 웃었다.

무석역에서 리면 없는 장준광에게 오리알을 때운 오리알임자가 한풀이 죽어가지고 내린 뒤에 세 사람은 자리들을 옮겨앉으며 서로 쳐다보고 새심스레 웃음보를 터뜨렸다. 남이야 보거나말거나. 웃으끝에 선장이가

<<소리개가 병아리 채가는 솜씨더군.>> 하고 놀려주니 장준광은

<<그 자식 이번에 아주 버릇이 떨어졌을게야. 보지, 앞으룬 다시 그따위 지정머릴 못하잖나.>> 하고 속이 편하게 대꾸하였다.

<<자 인제 우리두 요기를 좀 합시다. 뭐가 좋을가? 송화단이 좋을가?>>

웃음의 소리를 하며 리춘근이 차창밖에다 머리를 내밀구 찐만두장수를 불렀다.

세 사람이 화평문정거장에 와 내렸을 때는 이미 열한시가 가까왔었다. 역전에서 인력거들을 잡아타고 꼿꼿이 화로강으로 향하는데 문안에 들어서서 얼마 아니 와가지고 중간을 달리던 장준광이 탄 인력거가 돌연 총소리 같은 야무진 소리를 내며 빵크를 하였다. 사람이 타고 가는 인력거가 빵크를 한다는것은 극히 드문일이였다. 장준광이

<<이런 제기!>>

두덜거리고 길복판에 떡 서버린 인력거에서 내리며 맞갖잖이 혀를 끌끌 찼다.

밤이 으슥한 때라 거리에는 빈 인력거 지나다니는것이 아무리 둘러보아야 눈에 뜨이지 않았다. 앞서 가던 리춘근의 인력거도 서고 뒤따라오던 선장이의 인력거도 멎었다.

<<어떻건다?>>

리춘근이 돌아보고 걱정하니 장준광은

<<할수 있습니까, 빈 인력거를 만날 때까지 닫지요. 어서 먼저 떠나십시오.>>

말하고 곧 선장이 탄 인력거옆에 와 붙어서며 달을 차비를 하였다.

선장이가 고자누룩한 밤거리를 달리는 인력거에 앉아 두주먹 불끈 쥐고 따라오는 장준광을 내려다보며 놀려주었다.

<<왜 그렇게 타는것마다 고장이 잘 나? 네바퀴짜리를 타구 고장이 나구 세바퀴짜리를 타두 고장이 나구. 두바퀴짜리까지 고장이 나니... 무슨 살이라두 낀게 아니야?>>

<<사로니까행동>>에서는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지신밟기행동>>에서는 싸이드카가 고장이 나고 또 오늘은 인력거가 고장이 난것을 선장이는 념두에 두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게 수리공 아니야? 고장이 안 나면 어떻게 벌어먹어?>>

장준광은 배포유하게 일변 달리며 일변 이렇게 대꾸하였다.

<<내 별명 하나 지어주까?>>

<<아무려나... 무어라구?>>

<<미국에서 석유왕 강철왕이 있는거 알지?>>

<<그래서?...>>

<<고장왕이 어때? 고장이 잘 난다는 고장왕.>>

<<좋겠지. 아무 왕이구 왕자만 붙으면 의견없어.>>

<<왕에 게걸이 들리셨군.>>

장준광은 씩 웃고 대꾸를 아니하였다. 그냥 닫기만 하였다.

중로에서 장준광에게 빈 인력거 한채를 잡아태워가지고 남경성의 복판을 북쪽끝에서 남쪽끝가지 꼿꼿이 꿰뚫고 내려오다가 별빛이 우중충한 중화문을 지척에 바라보며 오른손편으로 꺾어들어 좁은 길을 한참 민틋한 어덕길이 나서는데 거기가 곧 화로강기슭이였다. 올리막길에 인력거군이 힘들어하는것을 보고 리춘근이 인력거의 발판을 굴렀다.

<<세우시오.>>

차삯을 치러주어 인력거군들을 돌려보낸 뒤에 리춘근을 선두로 일행은 이연선림을 바라고 올라왔다. 장준광과 선장이는 초행이였다. 비록 화로강에 관한 전기적인 이야기는 귀에 젖게 들었어도. 오밤중에 어둑컴컴한 산문을 쾅쾅 두드리니 두드리는 사람이 놀랄만큼 소리가 굉장히 울리여 근처민가의 개들이 큰일난것 같이 짖어대였다. 단잠에서 깨여난 불목하니가 볼에 밤을 물고 나와 문을 열어주는것을 리춘근이

<<이거 미안하우.>> 하며 은전 한잎을 그 손에 쥐여주니 불목하니는 덜 깬 잠이 갑자기 깨여서

<<천만에 천만에.>>

허둥지둥 밝은 인사성을 보였다.

화로강패의 도중일을 맡아보는 윤대성과 강녕별장에서 지도원으로 일하다가 돌아온 조경산은 뜰아래채에 따로 기거를 하고 있었다. 화로강패의 속내를 익히 아는 리춘근이 안중문을 들어서는 길로 곧장 뜰아래채에 와 문을 두드렸다. 윤대성과 조경산은 잠귀들이 밝은 모양으로 문을 세번까지 두드리지 않아서 벌써

<<누구요?>>

물으며 일어나 전등을 켜고

<<잠간만.>>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아 인제들 오십니까? 어서들 들어와 앉으십시오. 자자...>>

윤대성은 세 모험가가 들이닥칠것을 미리 알고있는것 같았다. 선장이가 속내의 바람의 조경산과 오래간만에 만난 인사를 나누는데 윤대성은 리춘근을 보고

<<저녁들을 잡숴야지요. 잠간만 좀 기다려주십시오. 내 얼른 가 이르구 오리다.>>

말하고 곧 밖으로 나가려는것을 리춘근이

<<아니 아니 먹구 왔습니다. 이게 어느땝니까. 자정이 다돼가는데. 정말입니다.>> 하고 윤대성을 도로 붙들어앉혔다.

먼길을 온 세 사사람은 우선 자는게 급하므로 지체없이 객실에 안내되였다. 윤대성의 거실과 벽 하나를 사이둔 바로 옆방이 객실인데 들어가보니 간소한 죽제품침대 세개가 덩그렇게 놓였을뿐 실내장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선장이가 속으로

(아하, 이게 바루 며칠전에 김혜숙이 와 묵다 간 방이구나.)

생각하니 공연히 애인리 42호가 그리워났다.

세사람은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드러눕는 길로 곧 잠들이 들어 아침에 기상을 알리는 호르래기소리를 들은것은 리춘근 하나뿐이였다. 소세들을 마치기가 급하게 객실에 화로강패들이 꾸역꾸역 들어왔다. 리춘근은 일을 의논하러 윤대성의 방에 가있어서 객실에는 장준광과 선장이만 있었다. 선장이는 강녕별장에서 사귄 까닭에 아는 얼굴도 적지 않지만 장준광은 거의다 초면이였다. 양씨동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선장이의 어깨를 툭 치고

<<신문에서 다 봤다.>> 하고 말하여 선장이가

<<신문에 났습니까?>> 하고 반색하였다.

<<하지만 일껏 폭탄까지 만들어다가... 왜놈의 대가리 하나 겨우 깨놓구말다니... 그게 어디 될 말이냐?>>

선장이가 열적어 머리를 긁적긁적 긁었다. 오쎌로가 싱글거리며 나서서

<<그럴바엔 차라리 망치를 하나 꽁무니에 차구 가 답새우지. 그까짓 폭탄을 해 무얼 해? 거치장스럽게!>> 하고 빈정거려서 객실안은 온통 웃음판이 되였다.

<<그러구 저군두 그렇지, 싸이드카는 타구 뛸게지 놓구 뛸게 무어람.>>

<<글쎄나 말이지.>>

<<`사로니까행동`때두 아마 고장을 냈었다지, 자동차를.>>

<<멀쩡한 고장집 아니야?>>

중구난방으로 놀려주는중에 선장이가 싱글거리며

<<아니 고장왕.>> 하고 재쳐물었다.

선장이가 간밤에 화평문안에서 공교롭게도 중간을 달리던 장준광의 인력거가 빵크나던 전말을 이야기했더니 화로강패는 집이 떠나갈듯 또 한바탕 웃어대였다. 그러는 동안에 동지적인 우정은 차차로 두터워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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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1/03 13:37:29

이번집은 웃으면서 볼수가 잇엇네요..철갑모땜에 기적같이 적들을 물리칠수 잇엇던 얘기며 기차에서 인사삼아 건넷던 오리알을 그냥 받아서 먹엇단 얘기에 같이 웃음이 빵 터졋네요..ㅎㅎ
암튼 다들 무사햇으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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