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4

더좋은래일 | 2023.11.04 09:08:43 댓글: 1 조회: 212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4612


44

개교일이다. 신입생 전원이 대강당에 모여 수령이시자 교장이신 장개석특급상장각하의 훈유를 받는 시각이 왔다. 강당에 들어갈 때는 무기를 휴대하지 못하는게 교칙이므로 운동장에다 중대별로 무더기무더기 모여총을 해놓고 그리고 중대마다 위병 하나씩을 세운 뒤에 질서정연하게 입장들 하였다. 일매지게 까만장화를 신고 흰 장갑을 낀 50인조 국악대가 비상문으로 숙연히 입장하여 군악대장의 지휘봉을 바라보며 긴장하여 대기하는중에 번쩍번쩍 금판대기에 큼직큼직한 대성 세알이 박힌 령잘을 단 장개석교장이, 까만 중산복을 입고 보온병을 엇멘 시종관 하나를 뒤딸리고 천천히 걸어서 입장을 하였다. 군악대장의 지휘봉이 한번 쳐들리자 격동적이면서도 멋거리진 환영곡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코밑에다 히들러식으로 챠플린수염을 기른 장개석교장은 강파르고 후리후리하고 그리고 뒤따르는 시종관은 작달막하고 여위였다. 붉은색의 주번수를 엇멘 주번대대장 중대좌가 자못 긴장하여

<<차렸-!>>

구령을 길게 불러 전원이 일시에 차렷자세를 취하니 연단에 올라선 장교장은 가장 우아하게(은혜가 매우 두텁게)손짓을 하며 <<쉬엿>>에다 친절하게도 청할 청(请)자 한자를 덧붙이는것이다. 환영곡이 그치고 훈유가 시작되니 연단 뒤쪽 한옆에 꼭두각시처럼 몸을 곧추하고 서있던 시종관이 앞으로 나와 유리컵에다 보온병의 물을 따라 연탁우에 올려놓는데 보니 말간 맹물이다. 장교장은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차도 다 안 마시는 까닭에 생전 어디를 가나 맹물대접밖에 못 받게 되여있었다. 그리고 반백을 바라보는 나이건만 떼여버리기가 아까와 그러는지 절강성동부의 사투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있어서 선장이는 무어라고 하는지 말을 절반도 채 못 알아들었다. 입버릇으로 말끝마다 <<쩌거 쩌거(这个这个)>>소리를 하는것이 귀에 거슬리기도 하고 우습강스럽기도 하였다.

이날, 훈유하는 교장각하의 입을 조절하는 제동기가 고장이 났던지 마라톤식훈유가 끝이 없이길어져서 무려 근 3시간에 달하는 바람에 적잖은 사람들이 생리적인 곤난에 부딪치게 되였다. 선장이 바로 뒤에 있는 여해암이라는 화로강패 친구도 그중의 하나였다. 수령이시자 교장이신 장개석특급상장각하께서 강당을 뜨시기전에는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것이 교칙이였으므로 그는 참다참다 못하여-방광이 파렬직전의 상태에 놓여있었으므로-마침내 결심을 채택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였다. 즉 허리에 찬 빨병을 앞으로 끌어당겨 마개를 빼고 거기다 배설을 하기로 한것이다. 그 결과 우에서는 숙연히 훈유를 삼가 듣고 아래에서는 수채가 거침새없이 페수를 방출하였다. 이때부터 공석에서는 그를 전과 같이 여해암이라고 불렀지만 사석에서는 다들 <<오줌대장>>이라고 불렀다.

학교당국에서 여러 방면으로 고려해본 결과 예비과만은 조선학생들을 단독으로 편성하지 않고 여러 중대에 풍기여 편입시켰다가 예비과가 끝나는대로 다시 집중시켜 독립중대를 편성하기로 한 까닭에 백수십명 조선학생들은 매개 중대에 10여명씩 갈리여 편입이 되였다. 선장이는 제1대대 제2중대에 편입이 되여서 섬서치, 사천치, 강소치, 광동치, 호남치, 호북치... 별의별치들과 다 사귀게 되였다. 그렇게 하니까 말을 배우고 생활습관에 익숙해지는데 좋은 점이 확실히 많았다.

그런중에 선장이를 놀래우는 일이 하나 생겼다. 섬서사투리가 좀 심한 학생 하나가 동급생인 광동학생을 찾아와 무슨 일을 의논하는데 피차에 말이 통하지를 않아 동문서답에 요령부득...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속이 답답할 지경이였다. 그럴즈음에 광동 중산대학에서 전학을 해온 로민이라는 조선학생이 불쑥 나서서 제가 통역을 해주겠다고 자칭을 하였다. 그 결과 남북쌍방은 순조롭게 의사소통이되여 매우 만족해하였다.

(한 조선사람이 두 중국사람 사이에 말의 다리를 놓아주다니!)

선장이가 경탄을 한 나머지 그 몸이 갈대같이 호리호리한 로민이를 높이 우러러보았다. 로민이는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이라고 하였다.

갓 입교를 해가지고 가장 난감하것은 뭐니뭐니해도 완전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는것이엿다. 완전군장이란 무기 탄약외에 배낭, 잡낭, 빨병 따위를 한벌 전부 갖추는것을 말한다 선장이는 생후 처음 완전군장을 하고 일어설 때 어찌나 무겁던지

(이건 내 잔등에 락타란 놈이 와 업히잖앗나?)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그런데도 학교당국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한지 또 달리기까지 하라니 이거야말로 죽어나는 노릇이다. 게다가 억하심정으로 선장이를 제3렬에다 세우기까지 하여 중대가 조련장을 구보로 돌 때는 의례 바깥테두리를 돌아야 하는 까닭에 더욱더 죽을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것만이면 오히려 또 괜찮게. 전 중대 150명 불쌍한 신입생들이 완전군장에 지지눌리며 숨이 턱에 닿아 닫고있을즈음 그 몹쓸 놈의 중대장은 사정없이 급정거까지 시켰다-<<꿇엇!>>

선장이가 이러한 고비판에서 허덕이고있던 어느날의 일이다. 제2렬의 어떤 동급생친구 하나가 홀지에 선장이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소곤소곤

<<이 맹추야, 나처럼 이렇게 좀 못해?>> 하고 제 허리를 돌려대 보이는 것이였다.

선장이가 정신을 수습하고 자세히 본즉 어, 이런! 그 친구가 허리에 찬것은 빈 칼집... 칼은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딴은 그렇게 하면 무게가 상당 근수 덜릴것만은 사실이다. 이렇게 속으로 탄복을 하며 선장이는 그 친구를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작달막한 키에 빼빼 여윈 말라꽹이인데 훌쭉한 얼굴에는 병색이 끼여있다. 선장이는 대번에 의심하기를

(저 자식, 아편쟁이가 아닌가?)

하지만 그건 그렇다손치고 그작자의 말하는 본새가 어찌 그리 고약한가, 초면인사에 대바람 맹추니뭐니. 선장이도 본시 자존심이 누구만 못지 않게 강한 사람이다. 이게 만약 다른 경우라면 벌써 따귀를 떤지도 옛날이다. 그러나 보아하니 그 작자가 비록 말본새는 그렇게 고약해도 자신의 처지를 동정해주는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선장이는 시의에 맞지 않는 자존심을 잠간 떼놓고 소곤소곤 물었다.

<<그럼 칼은 어디다 치우구?>>

<<자리밑에다 치우지 어디다 치워? 맹추 같으니!>>

<<그랬다가 혹시... 내무검사때 들춰나면 어떻거구?>>

<<둘추긴 누가 들춰? 맹추 같으니!>>

보아하니 그 작자가 노상 입에 달고있는 <<맹추>> 두 글자는 말하자면 <<로형>>, <<친애하는>> 따위의 대명사인 모양으로 조금도 개의할 필요 없는상싶었다.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더니 그는 시내 중앙대학에서 전학을 해온 작자라는데 이름은 문정이라고 하고 고향은 간도 훈춘이라고 하였다. 중앙대학 기숙사에서 화로강 이연선림을 거치치 않고 곧바로 왔던 까닭에 선장이와는 초면인 셈이였다. 그러나 아무튼 보통내기가 아닌 괴짜임은 틀림이 없었다.

선장이가 얼마 오래지 않아 곧 괴상한 현상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은즉 이 학교에서는 각 중대의 자명종들이 밤중만 되면 도보경주를 한다는것이였다. 하루밤사이에 한시간이나 시간반쯤 빨리 가는것은 례상사로서 조금도 신기할게 없는 일이였다. 이 학교를 운영하는것으로 출세를 한, 모질기로 이름난 딱장대 교장-장개석으로서는 그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다가 밤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군복을 주어입고 두시간 동안 위병을 선다는것은 그러잖아도 잠이 늘 부족한 장래장교들에게 있어서는 고역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의 자전법칙을 무시하고 시계바늘을 마구 앞당겨 돌려놓고는 부랴부랴 교대할 사람을 두드려 깨우는것이였다.

그러나 낮에 위병을 서는것은 이와 사정이 전연 달랐다. 특히 사람의 출입이 잦지 않은 후측문에서 혼자 위병을 서는것은 누구나 즐겨하는 일이였다. 모두들 그 번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가봐 왼새끼를 꼬는 판이였다. 낮에 거기서 위병을 서게 되면 그 딱 하기 싫은 교련을 면할뿐아니라 가외로 생기는 덤이 있었다. 교칙을 위반하고 수업시간에 학교를 빠져나갔던 동창생들이 몰래 돌아올때는 다들 자진하여 통행세를 바치는것이다. 즉 권연 한갑 또는 땅콩사탕 한봉지를 코아래 진상하는것이다.

어느날 선장이가 간밤에 두시간 동안 위병근무를 한 까닭에 교실에 들어와 앉기가 바쁘게 자꾸 졸음이 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날 처음 교관선생의 무미건조한 강의도 브람스의 자장가와 마찬가지 효력을 낼수 있다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선장이가 바야흐로 꿈나라 골어귀에 다달았을즈음에 별안간 교실안의 사람들이 와닥닥 모두 일어섰다. 선장이는 잠결에 피뜩 생각하기를

(공습!... 지진인가?)

그러나 그가 밖으로 뛰여나가려고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전에 교관선생의 상가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다들 앉으시오.>> 하니까 죽 일어섰던 학생들은 다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도로 착석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수업이 계속되는것이였다. 그 바람에 선장이는 더욱더 어리둥절해났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놈의 감투끈이야?)

선장이가 궁금증을 누르고있다가 휴식시간에 속으로 어학의 천재라고 우러러보는 로민을 찾아가 어찌된 영문을 물어본즉 해사한 얼굴에 눈귀가 처진 로민은 상글거리며 선장이의 몽을 열어주는것이였다.

<<누구 입에서든 `교장`소리만 나오면 모두 차렸을 해야 해. 그게 이 학교의 교칙이야. 아까 그 교관두 강의에서 군사전략가들을 꼽다가 `교장` 두 글자를 거들었었어.>>

(그런 놈의 판국이였구나!)

선장이는 비로소 영문을 알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중대지도원이 교칙을 설명하던 날 선장이는 마침 취사감독을 나가서 그 교칙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였던것이다. 취사감독이란 학생들이 돌림차례로 내려가 취사병들을 감독하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선장이가 이슬람교도는 아니지만서도 웬 일인지 어릴적부터 돼지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았다느니보다는 아주 안 먹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시골에 사는 일가집에를 다니러 갔다가 처음 본 돼지우리가 몹시 불결하던것에 연원이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운명은 그로 하여금 그런 아무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좋지 못한 습관-편식을 억지로나마 고치게 하였다. 선장이는 손무, 클라우제비쯔의 후예-군사전략가-가 되여볼 포부를 품고 이 군관학교에를 들어온 첫날부터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에 부닥쳤다. 이 별스러운 학교에서는 하루 세때 식사가 거의 끼니마다 돼지고기반찬뿐이여서 전연 선택의 여지라는게 없었다. 어쩌다가 생선이나 닭알반찬이 나올 때면 그것은 곧 선장이의 생일빠낙으로 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사시간에는 불쌍하게도 그는 바찬 없는 밥-맨밥을 먹어야만 하였다. 기막힌 팔자지!

두주일을 그렇게 견지한 끝에 그는 마침내 더는 이렇게 살수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날마다 계속되는 맹훈련에 체력이 끝장난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그는 결연히 또 단호히 비장한 결심을 내렸다.

(에라 한번 먹어보자! 설마 죽지야 할라구?)

식사때 가장 용감하게 돼지고기 한점을 집어들고 결심이 동요될가봐 눈을 꼭 감고 입안에 넣었다. 씹을 엄두까지는 나지가 않아 그대로 꿀떡 삼켰다. 아이, 소림끼쳐! 징그러운 송충이라도 먹는것 같구나...

선장이가 바야흐로 돼지고기를 적수로 고군부투하고있을즈음 저와 거의 비슷한 처지에서 허더기고있는 또 하나의 괴물을 그는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누구가 아니고 곧 장준광이였다. 천주교신자 즉 천주학쟁이인 그는 매번 식사때마다 먼저 경건하게 앞가슴에다 십자를 긋고 또 입속으로는 무슨

<<주님이여... 성찬을 베푸셔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따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주문 같은것을 중얼중얼 외우군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간 착실히 걸리는 신성한 외례가 끝이 나고보면 시세 글러지는것이였다. 원래 이 학교의 교칙이 그에게는 극히 불리하게 되여있었다. 매번 식사때 중대장이 식당에를 들어서면 주번대위가

<<차렷!>> 을 부른다. 그다음에

<<앉아!>>

그러나 <<앉아>>만 가지고는 식사를 못한다.

<<시작!>>

구령이 떨어져야만 비로소 저가락과 밥공기를 집어들수가 있다. 그런데 이들 장래의 군사전략가들은 모두다 년부력강하므로 식욕이 여간만 왕성하지들 않았다. 좋든그르든 반찬명색이기만 하면 다들 마파람에 게 눈감추듯 해치웠다. 그런 까닭에 그 십자를 긋는다, 기도를 올린다, 주문을 외운다 하는 얼간이가 눈을 뜨고 저가락을 집어들었을 때는 이미 반찬소탕전이 종장에 다달아 남은 반찬이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패잔병꼴이 되여있군 하였다. 그래서 그도 하는수없이 선장이처럼 무료하게 반찬 없는 맨밥을 먹어야 하였다. 비록 돼지고기를 없어서 못 먹는축이였지만서도.

동병상련으로 선장이는 자연히 그를 동정하게 되였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속으로는 정말 어리석은 작자라고 비웃기도 하였다. 천주학이 골수에 박힌 장준광도 나중에는 정 안되겠던지 역시 선장이처럼 용감하게 전비를 뉘우치고-그 신성한 종교의 례를 구정물통에 처넣고-옳은 길에 들어섰다. 그는 식성이 좋아 무어나 잘 먹고 또 많이 먹었다.

이밖에도 제2중대에는 괴짜가 얼마든지 있었다. 화로강패의 윤지평이라는 친구도 그중의 하나였다. 선장이는 영광스럽게도 얼마 오래지 않아 곧 그 윤모의 벽창호적본성도 알아모시게 되였다.

한번은 그이 발목이 무슨 탈이 났는지 조금 달아도 퉁퉁 부어오르며 몹시 아팠다. 그래서 그는 주번대위에게 완전군장을 하고 달리는 조련을 면제해달라고 병가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주번대위는 그가 꾀병을 하는것으로 의심하고 허가를 하지 않았다. 할수없이 그는 안깐힘을 써가며 끝까지 다 달렸는데 그 빌미로 발목이 호박처럼 부어오르며 들쑤셔나 밤에 한잠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군의소에서는 일요일 제외한 매일 낫휴식시가에만 학생들의 병을 보아주었다)>

그런데 옹이에 마디로 이튿날오전에 또 위병근무가 돌아와서 하는수없이 그는 절뚝거리며 중대본부 문앞에 가 위병을 섰다. 사단은 여기서 발단이 되였다. 안날 그의 병가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그 주번대위가 마침 중대본부로 들어갔던것이다. 그러나 윤지평이는 위병의 직분으로 의당히 해야 할 차렷도 경례도 다 안하고 숫제 고개를 외치고 못 본체하였다. 무안을 당한 주번대위가 대번에 눈알을 곤두세우고

<<왜 상관을 보구두 경례를 안하는가?>> 하고 서슬스럽게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윤지평이는 여전히 먼산을 바라보기를 하며 시들푸직한 대답을 하였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구.>>

분이 꼭대기까지 치민 주번대위가 손을 뻗쳐 그의 멱살을 들려 한즉 윤지평이는 얼른 두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총끝에 꽂은 날창을 곧추 들이대며 단호한 어조로 을러메였다.

<<덤빌래? 한발자국만 더 들어서보지... 아주 료정을 내버릴테니!>>

군대에서 이런 엄청난 소행이 허용이 될리가 만무하다. 학교당국은 당지당연하게 2주일의 처분을 그에게 내렸다. 그러나 구경은 교육기관인만큼 그리고 또 처벌을 받는자가 조선사람인것을 감안하여 갖다가 두기전에 부대조건 하나를 붙여주었다.

<<개준의 조짐이 현저할 때 앞당겨 해제한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리, 이 우둔쟁이가 한주일이 지나기 바쁘게 영창안에서 중대장에게 청원서를 낼줄을. 글체 말체 섞어작으로 된 그 청원서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대략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소생은 령어생활 한주일에 발목 아픈 병이 한결 차도가 있습니다. 하오나 근치를 하자면 2주일이란 기한은 너무 좀 촉박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하오니 중대장께서 기한을 2주일만 더 연장해주신다면 감지덕지 결초보은을 하겠나이다. 운운...

중대장은 이 청원서 명색의 쪽지를 보고는 천둥같이 화가 나서 즉각 교무처에 보고하는 한편 무장인원을 급파하여 그 대역무도한 청원자를 끌어내왔다. 중대장은 수염이 텁수록하여 끌려나온자를 중대 전체 성원앞에 세워놓고 한바탕 야단을 친 뒤에 복대할것을 명하였다(영창안에 갇혀있기를 좋아하는 놈을 그대로 가두어두면 그놈을 우대하는것으로 되므로).

그럭저럭 겨울이 되여 양자강남안에 위치한 남경성에도 첫눈이 내렸다. 북극의 자디잔 싸락눈이 살풍경스레 눈보라가 되여 휘몰아치는데 비하면 남극의 차분한 함박눈은 포근하고 안온하여 이름 못할 정취를 자아냈다.

기상나팔소리에 놀라 깬 선장이가 기계적으로 벌떡 일어나 부지런히 내무를 정돈한 뒤 각반 치고 칼 차고 탄대 두르고 총 들고 아래층으로 뛰여내려오니 각 소대는 벌써 줄들을 서는중이였다. 먼저 내려온 눈이 부석부석한 장준광은 선장이를 보자 턱을 한번 추썩이고 저의 깃걸개를 가리켜보였다. 선장이가 알아차리고 걸지 않은 깃걸개를 얼른 걸고 제자리를 찾아들어가 섰다.

제2중대 중대장 왕소좌는 호남사람으로 몸이 강파르고 얼굴도 강파른데다가 성미 또한 강파른 직업군인이였다. 3개 소대가 첫눈이 얇게 내려깔린 조련장에 정렬하기를 기다려가지고 주번대위의 보고를 받은 뒤 왕소좌는 두어발자국 앞으로 나서더니 뚱딴지같은 명령을 내리는것이였다.

<<량광학생들은 다 앞으루 나서라!>>

얼굴빛들이 가무스름한 팔구명의 광동치와 광서치들이 영문을 몰라 좀 어리둥절해하며 대렬앞에 나섰다. 선장이는 광동군벌 전제당과 광서군벌 리종인이 본교의 장교장과 맞서는 적대세력인것을 잘 알고있는터라 속으로 은근히 조바심을 하였다.

(원쑤의 씨알머리라구 다 없애치우려는거나 아니야?)

상상력이 남달리 왕성한 선장이가 집단적으로 총살하는 장면을 머리속에 그려보며 조마조마해 마음을 조이는중에 중대장이 손으로 땅바닥에 엷게 깔린 눈을 가리켜보이며

<<다들 봐, 이게 눈이라는거야.>> 하고 량광치들에게 말하는것이였다.

<<여기선 추울 때 비가 안오구 이런게 와. 다들 처음 보지? 이담에 눈속에서 쌈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미리 낮들을 익혀둬야해. 알겠나?>>

(나이 스무살을 먹도록 눈구경을 못한 인간들도 이 세상에는 있었구나!)

생각하고 선장이는 적이 놀랐다. 그리고 감탄하기를

(세상은 넓구나!)

일열횡대로 늘어서서 중대장의 교육을 받은 아열대생장의 멍청이들이 제각기 허리를 구푸리고 땅바닥에 엷게 깔린, 추울 때 온다는 고체의 비-눈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개중에는 혀끝으로 맛을 보는 어리보기까지 있으니 더욱 가관이다.

(가련한 인생들! 저 꼴 저 모양이니 스키, 스케트 타는 재미란 통 모르고 살았을테지? 아미타불!)

눈을 관찰하는 량광치들보다 그치들을 관찰하는 선장이가 더 재미있었다.

이날 저녁 자습시간에 중대장이 주번대위를 대동하고 교실 즉 소강당에 들어섰다. 주번대위가학생들에게 자습을 잠시 중단하라고 말한 뒤 선뜻 강단에 올라셨다. 중대장은 자습시간에 교실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해 150쌍의 눈이 모두 중대장의 입을 바라보았다.

<<래일 본 중대는 눈길행군연습을 한다. 왕복 20킬로의 로정인데... 점심때까지 돌아와야 한다. 그러니 아침식사를 어떻게 할것인가... 종공론해 작정하자. 의견들을 말하라.>>

생활면에서 교내민주주의를 최대한 발양한다는것을 표방하는 학교인만큼 이런 문제도 제기가 되는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침에 흔히 흰죽에 꽈배기(즉 기름에 튀긴 밀것)를 먹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가 애당초에 제기되지도 않았을것이다. 먼길을 가는데 밥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과 아침에 누가 딱딱한 밥을 먹는다더냐 그대로 죽을 먹자는 주장이 맞서 중대장은 거수로 가부를 묻게 되였다. 그 결과 죽을 먹자는편이 압도적으로 많아 중대장은

<<다수결루 결정한다. 래일아침은 평일대루... 죽을 먹기루 한다.>>

간단명료하게 일을 마무리였다.

이튿날은 쾌청으로 아침부터 해가 났다. 예정대로 길에 오른 대오가 한시간쯤 걸으니 벌써 눈이 질질 녹기 시작하였다. 질퍽한 갈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다들 빙상교예, 빙상발레의 동작을 하며 걷다나니 정제해야 할 대렬은 크게 문란해졌다. 기침에 재채기로 배속에서는 또 배속대로 <<다수결로 먹은>> 죽이 걷잡을수없이 꺼져내려가 허기증들이 나기 시작하였다. 간신히 목적지에 득달하였다. 그러나 회정에 올랐을 때는 대렬이 썩은 새끼줄 끊어지듯 토막토막 끊어졌다. 흡사 전장에서 호되게 얻어맞아 기진맥진한 패잔병들이 무질서하게 떼를 지어 패퇴하는것 같았다. 끈덕진 허기증과 얄미울 정도로 매끄러운 눈길의 협공을 받으며 선장이는 하나의 진리 비슷한것을 깨달았다.

(군량이 떨어지면 군대가 흩어지는걸 수습하지 못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중대장과 주번대위와 각 소대장, 부소대장들이 속이 달아 국면을 수습해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썻으나 헛수고였다. 무거운 무장을 한 학생들은 허덕거리고 비틀거리고... 무장을 하지 않아 몸이 가벼운 장교들은 올리닫고 내리달으며 격려하고 질책하고 타이르고 또 호령을 하였다. 선장이는 더 걸을 맥이 없어 숫제 메였던 총들 내려서 짚고 길섶에 박힌 시꺼먼 돌우에 걸터앉았다. 토막난 대오를 수습하느라고 앞으로 달려갔던 주번대위가 찔찔 미끄러지며 되돌아오다가 선장이를 발견하고 먼발치에서 꾸짖듯이 소리쳤다.

<<서선장, 무얼 하구있어?!>>

선장이가 그러잖아도 심중의 불만을 터뜨릴 계제가 없어하던차에 그런 같잖은 소리를 들으니 밸이 왈칵 나 눈이 뒤집힐 지경이 되였다. 그래서 제잡담하고 총에다 실탄을 재워 들고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며

<<죽여치우겠다!>>

맵짜게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크게 놀란 주번대위는 박은듯이 서서 저를 겨냥한 총구멍을 어린듯이 바라보았다. 이때 뒤에 오던 소대장 하나가 얼른 쫓아와 손에서 총을 빼앗아내며

<<미쳤나? 사람두...>>

부드럽게 달래고 다시

<<이젠 고만 일어서라구... 내 붙들어주께... 자.>> 하고 선장이의 총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선장이를 붙들어주며 천천히 같이 걸었다.

뜨거워났던 머리가 식은 뒤 선장이는 속으로

(젠장, 영창 몇주일은 톡톡히 벌어놨구나.) 하구 쓴입을 다시였다.

그러나 의외롭게도 아무 후탈이 없었다. 중대본부에서는 아무일도 없은듯이 과정표대로 중개를 착착 밀고나갔다. 선장이 당자가 다

(내가 꿈을 꾸지 않았었나?)

의심을 할 지경으로 뒤가 괴괴하고 무사하고 또 태평스러웠다.

부대를 거느려본 경험이 있는 선배동급생-학원 하나가 웃으며 그 오묘를 선장이에게 해석해주었다.

<<군대를 통솔하는 법이 원래 그래여. 정작 큰일은 쉬쉬하구... 작은 일은 끄집어내 왁작 떠드는 법이여. 그래야 교육이 목적을 달할수 있으니까. 그러구 이번 눈길행군에서 망태기를 친것두 구 기본하면 중대본부에 책임이 있거든. 갓 들어와 아무 경험두 없는 학생들에게 교내민주주의가 당한가! 이번 일에선 중대장이 교조주의를 했다니까. 그날 아침은 무조건 행정명령으루 밥을 먹였어야지. 그래서 더구나 쉬쉬하는거야... 알았어?>>

추천 (2) 선물 (0명)
IP: ♡.208.♡.156
로즈박 (♡.39.♡.172) - 2023/11/04 16:33:11

아..여기서 고향이 훈춘인 사람이 나오네요..ㅎㅎ
갑자기 훈춘이란말을 들으니 얼마나 반가운지..암튼 별의별곳에서 다 갓군요..

23,51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2-07
0
286
단차
2023-12-07
0
130
단차
2023-12-06
0
205
단차
2023-12-06
0
166
단차
2023-12-06
0
144
단차
2023-12-06
0
94
단차
2023-12-06
0
131
단차
2023-12-05
1
245
단차
2023-12-05
1
203
단차
2023-12-05
1
179
단차
2023-12-05
1
217
단차
2023-12-05
1
309
뉘썬2뉘썬2
2023-12-04
1
208
뉘썬2뉘썬2
2023-12-04
1
370
단차
2023-12-03
0
213
단차
2023-12-03
0
209
단차
2023-12-02
0
173
단차
2023-12-02
0
185
단차
2023-12-02
0
178
단차
2023-12-02
0
199
단차
2023-12-02
0
202
단차
2023-12-01
0
150
단차
2023-12-01
0
225
단차
2023-12-01
0
219
단차
2023-12-01
0
142
단차
2023-11-30
0
135
단차
2023-11-30
1
163
단차
2023-11-30
0
151
단차
2023-11-30
1
174
단차
2023-11-30
0
248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