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5

더좋은래일 | 2023.11.04 15:53:57 댓글: 1 조회: 186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4808


45

2월말에 조선학생독립중대-대외적인 명칭은 제1대대 제4중대-가 편성이 되였다. 이 중대는 중좌 중대장과 대위 소대장 하나, 소위 부소대장 하나 그리고 특무장, 서기, 나팔수, 리발병, 취사병 따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조선사람이였다. 그러니까 중대지도원과 2명의 소대장과 약간명의 견습관 및 4명의 교관이 조선사람이였던것이다.

중대지도원 주시민은 중앙대학 졸업생이고 대위 소대장 리익선은 중앙군교 제10기 보병과 졸업생. 그리고 대위 소대장 최경수는 중앙군교 제9기 포경과 졸업생이였다. 견습관들은 각각 중앙군교 제10기와 제 11기 보병과, 기병과, 포병과 및 공병과를 나왔었다.

교관 김두봉은 1919년의 <<3.1>>운동이 진압되자 중국으로 망명을 한 로혁명가로서 조선력사를 가르쳤다.

교관 한빙은 로씨야태생으로 본명은 한미하일,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중학생때에 10월혁명을 맞이하였으며 20년대 중기에는 국제공산당의 파견을 받고 조선에 나와 지하조직공작을 하였다. 후에 적에게 체포되여 7년 동안 징역을 살고난 뒤 부득이 중국으로 망명을 하였는데 학교에서는 정치경제학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세계공산주의운동사를 가르쳤다.

교관 석정은 경상남도 밀양사람으로 청년시절에 조선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변절자의 밀고로 몸에 지닌 폭탄이 들추어나 7년동안 감옥살이를 한이로서 학교에서는 조선독립운동사를 담당하였었다.(본명 尹世胄)

교관 왕웅(가명)은 평안도사투리가 남이있는분으로 군함은 대좌였다. <<1.28>>당시 중국조병창에서 사업하며 김구선생의 부탁을 받고 보온병형폭탄을 제조하여 윤봉길의사에게 제공함으로써 그 유명한 홍구공원폭탄사건을 일으키게 하였었다. 일본류학을 한 한족녀자를 소실로 두었으며 후에 소장으로 승진을 하였다.

조선학생독립중대가 편성된 뒤로부터는 다행하게 조선학생들은 삼민민주주의따위의 군더더기는 아니 배워도 되였다. 그러나 손자병법의 <<지기지피면 백전불태>> 라든가 <<싸우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것이 상수중의 상수이니라>> 따위는 역시 배웠다. 그밖에도 또 <<보병조전>>, <<사격교범>>, <<야간근무>>, <<방공>>, <<축성>>, <<폭파>> 따위의 여러가지 과목도 배워야 하였는데 그런것들은 다 전에나 마찬가지로 중국인교관들이 가르쳤다.

3월 첫 일요일에 반년동안 바깥구경을 못해 몸살이 날 지경이던 선장이가 백수십명 동급생들과 함께 풀려났다. 떼떼이 교문을 나서는데 그눈가가 호들갑스럽게

<<에, 그놈의 예비과 지긋지긋 하다!>> 하고 익살을 부려 명랑한 웃음이 전후좌우에서 터져나왔다. 다들 동감인것이다.

선장이와 장준광 그리고 오쎌로와 양씨동이가 반해량대위의 신접살이를 한번보러 가자는데 의논이 맞아 곧장 화로강으로 몰려왔다. 반해량대위는 지난해 가을 전보경과 결혼을 하였는데 이들은 그동안 줄곧 학교안에 갇혀있는 까닭에 오늘에야 비로소 뒤늦은 첫 방문을 하게 되는것이였다. 이둘중에 최년소자는 서선장이고 최년장자는 양씨동이였지만 다같은 군복차림을 하고 나서니 나이의 차이가 그렇게 눈에 뜨이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무슨 선물을 좀 사가지구 가야잖을가?>>

<<암 사가야지.>>

<<뭐가 좋을가?>>

<<아 술이면 됐지 또 뭐 있어?>>

<<예끼 순, 저 처먹을것만 생각하구!>>

<<그러지 말구 우리 털실을 사가지구... 애기 옷 떠입히라구.>>

<<아직 낳기두전에 애기옷은 다 뭐야.>>

<<그러게 말이지... 뱄는지 안 뱄는지두 모르면서.>>

<<가물에 도랑친단 말 몰라?>>

<<그래, 밴걸루 가정하구... 찬성!>>

반년동안을 갇혀있는 덕분에 받은 급료를 써먹을 기회가 없어 이들은 호주머니에 저절로 모아진 돈들이 좀 있었다.

선물꾸레미를 든 선장이를 선두로 네 사람이 새살림하는 집마당안에를 들어서니 벌써 무엇을 튀기는지 부엌에서 풍겨나오는 기름내가 야단스러웠다. 오늘 손님들이 들이밀릴것을 미리 짐작하고 그 준비를 하는 모양이였다.

<<오쎌로가 면바로 얻어만났군.>> 하고 씨동이가 웃으니 오쎌로는

<<그러게 나만 따라다니라니까. 난 도랑에 든 소띠가 돼 먹을 복을 타구났다구.>> 하고 익살을 부렸다.

평복을 입고 면도질을 말쑥이 한 반해량이 만면의 웃음으로 후배손님들을 맞아들였다.

<<자자 어서들 앉으십시오. 집이 좁아놔서... 한분은 이리루 앉으실가...>>

그리고 부엌편을 향하여 명토없이

<<손님들이 오셨는데.>> 하고 소리하니

<<녜녜, 인제 들어갑니다.>>

소리를 앞세우고 새식시 전보경이 사이문으로 들어왔다. 만수산 풍경을 수놓은 에프론에다 손을 닦으며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면면이 인사를 하는데 특히 선장이를 보고 다정한 말로

<<군복이 정말 어울리시네요. 아니 참말이예요.>> 하고 좋아하는 것이였다. 선장이가 생각지 않은 칭찬을 받고 점적하여 잠시 얼굴을 붉혔다가 곧 마음을 다잡아 가라앉히고 지꿎은 웃음을 상글상글 웃으며

<<저, 이건 애기옷 떠입힐겁니다.>> 하고 선물꾸러미를 깎듯이 두손으로 내바치니 전보경은 얼굴이 금세 홍당무우가 되였다. 이것을 보고 함께 온 세 총각이 손벽을 치며 크게 웃는데 새서방인 반해량까지 허허 따라 웃었다.

전보경의 뒤를 따라들어온 역시 에프론을 두른 녀학생이 어색한 태로 애기옷 떠입히라는 선물을 받아든 새식시옆으로 나서더니 가볍게 고개 한번을 숙여 도거리로 인사를 하였다. 창백한 얼굴과 갸날픈 몸매가 조금도 변치 않은 장옥연이였다. 오쎌로가 느닷없이 반해량을 돌아보고

<<리정호 안 왔댔습니까? 왔다갔습니까? 그 친구 무엇하느라구 아직두 안 와?>> 하고 큰소리로 말하여 총각들이 또 한바탕 웃어대니 장옥연은 고개를 푹 숙이로 족제비가 굴속으로 사라지듯 눈 깜박할 사이에 다시 부엌으로 사라져버렸다. 장옥연이 고중졸업할날도 인제 서나달 밖에 남지 않았었다.

한동안 지나 술이 나오고 또 안주가 나와 좌석이 우꾼하고 들썩해졌을 때 선장이가 학교식당에서 처음으로 돼지고기 한점을 송충이 집어삼키듯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여 모두들 웃음보를 터뜨리는중에 들락날락하며 시중을 들던 전보경이

<<어머, 돼지고기를요? 일대 진보시네요. 전에는 통 못 드셨는데.>> 하고 또 선장이를 칭잔하였다. 언제나 선장이를 좋게 말하는것은 그녀의 후천적인 버릇이였다. 술기운이 어지간히 든 오쎌로가 전보경을 돌아보고

<<아 그렇게 눈치없이 남의 총각을 자꾸 좋게 말하면 새서방이 좋아합니까? 그러구 또 이왕 좋게 말할바엔 선장이 하나만 가지구 그러지 말구 우리두 좀 좋다구 하세요. 괜히 사람 샘나잖게.>> 하고 말하여 방안에 웃음판이 벌어지는데 저민 반야를 접시에 담아들고 들어왔던 장옥연이까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웃었다. 반야란 남경의 특산으로서 절인 오리를 판대기처럼 납작하게 눌러 만든것이다. 웃음판이 가라앉기를 기다려가지고 선장이가 또 장준광이 천주학의 종교의식때문에 반찬을 얻어먹지 못하고 끼니마다 맨밥만 먹었다는 이야기를 흉내를 내여가며 하니 반해량은 저가락을 놓고 허리를 잡고 전보경은 배를 그러안고 배를 그러안고 부엌으로 뛰여 들어갔다. 떠들썩하게 웃고 지껄이는중에 불청객이 자래로 손님 하나가 또 왔다. 선장이가 돌아보니 고수머리 리정호다. 옥연이를 찾아갔다가 처소에 없으니가 간 곳을 물어서 알았는지 아니면 어림짐작으로 짚었는지 아무튼 여기를 장대고 온 모양이였다. 반해량이 얼른 일어나

<<자자, 어서 이리 와 앉으십시오.>>

리정호에게 걸상을 권하는데 오쎌로가 손에 저가락을 든채 리정호를 쳐다보며

<<여게 고수머리, 먼저 부엌에 가 인사부터 치르구 오게. 직녀성이 상사병으로 다 죽어가네.>> 하고 놀려주었다. 리정호가 지지않고

<<난 누구처럼 맥주병찜질을 할줄 모르니 안심하라구.>>

웃으며 대꾸한 뒤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와 앉으려다말고

<<신혼을 축하합니다.>>

뒤늦은 인사를 새삼스럽게 하였다. 씨동이가 술잔을 내려놓고 리정호를 쳐다보며

<<임자두 꽤 쑥일세. 인제 신랑신부가 다 헐어서 중고품들이 됐는데 신혼축하는 다 무언가.>> 하고 탄하여 술좌석은 또 한바탕 웃음판으로 변하였다.

기분들이 좋아 먹고 마시고 웃고 지껄이는중에 전보경이 술을 마시는 시늉만 하는 선장이에게 넌지시 눈짓하여 선장이가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따라나왔다 마당귀퉁이에 서있는 잎도 꽃도 아직 피지 않은 라이라크밑에 둘이 마주섰다. 불과 반년동안에 전보경이 깔끔한 새색시로 변하였는가 하면 선장이도 표표한 청년장교의 모습이 자리잡혀가고있었다.

<<저 내가 떠나올 때 미스 송이 갖다드리라는 세타를 맡아가지구 왓에요. 그렇지만 생전 어디 사람을 만날수가 있어야지요. 괜히 한겨울 가방속에서 묵혔지 뭐예요. 오늘 찾아가세요.>>

전보경이 신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하는 말을 듣고 선장이는 대번에 또 얼굴이 붉히였다. 고개를 숙이고 군화 신은 발로 애매한 땅바닥만 득득 긁다가(늙은 말이 자묵생각이 날 때 이렇게 한다) 한참만에 겨우 목구멍에서 끌어당기는 소리로

<<미스 전이...>> 하다가 얼른 다시

<<미세스 반이 좀더 맡아두십시오.>> 하고 사정하였다.

<<그건 왜요?>>

<<남들이 보는데 어떻게 가지구 들어갑니까?>>

전보경이 잠시 생각해보다가

<<좋아요 그럼.>>

승낙하고 다시 혼자말처럼

<<미스 송은 불행한 녀자예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지었다. 선장이가 짐짓 말머리를 돌렸다.

<<미세스 전이랑 이모랑 다 무고하신가요?>>

<<호젓하게들 지내지요. 별일 없에요.>>

<<언니!>>

부엌문을 열고 장옥연이 박꽃처럼 흰 얼굴을 내밀었다.

<<왜?>>

<<얼른 이거 좀 와봐줘요. 다 눌어붙으면 난 몰라!>>

전보경이 웃으며 선장이이게 눈인사하고 부지런히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런 바보!>>

부엌에서 탄내와 함께 전보경의 웃음기 띤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하루가 예비과에서 해방이 된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환락의 명절로 되였다.


장준광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과외독서를 많이 하였다. 특히 좌익서적에 대하여 농후한 흥취를 가지고있었다. 선장이도 상해에서 선전부장 성재수의 지도로 맑스주의사상에 눈뜬 뒤부터는 틈만 있으면 파고들었다. 독립중대를 내오기전에는 중국학생들의 눈을 꺼리여 반년동안을 부득이 외면을 하고 살아야 하였지만 독립중대가 편성이 된 뒤로는 다같은 교내라도 상대적인 자주성이 보장되여있었으므로 슬금슬금 눈치 보아가며 맑스-레닌주의서적들을 연구할수가 있었다. 어느날 장준광이 선장이를 소강당에서 불러내여 종합체조대옆으로 끌고 갔다.

<<무슨 일이야?>>

<<한가지 좀 의논할게 있어서...>>

<<무슨?...>>

입교하기전까지는 피차간 많이 <<했소>>나 <<했습니다>>를 썼었지만 동창생들이 된 뒤로는 말의 층하가 어느새 흐지부지되여서 나이가 엇비슷한 사이에서는 흔히 반말들을 쓰게 되였었다.

<<나하구 한청이하구 그밖에 또 한 사람... 이렇게 셋이서 독서회 꾸릴 공론을 했는데... 동무는 어떤가... 한번 동참해볼 의향이 없는가?>>

선장이가 그 독서회의 성질과 진행하는 방법을 물어본즉 장준광은 곧 <<철학의 빈곤>>, <<반듀링론>>으로부터 <<국가와 혁명>>, <<`좌익` 소아병>>에 으리기까지 예닐곱가지의 맑스-레닌주의서적들을 렬거한 뒤 그것들을 차례로 읽어내려갈 작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으로 말하면 밤마다 소등후에 몰래 저장실에들 모여가지고 시간 반씩 읽을 작정이라는것이다.

<<난 고만두겠어.>>

선장이는 단마디로 그의 권유를 거절해버렸다. 벌써부터 수면시간의 수지가 맞지를 않아 적자투성이로 고생을 하는 판인데 또

<<수면시간을 줄이여?)

그들의 독서회가 그후에 어떻게 되였는지 선장이는 구태여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몇달이 지나서다. 어떡하다 휴식시간에 장준광을 만났을 때 선장이가 문득 생각이 나 <<책 한권 빌어볼수 없겠느냐>>고 말을 건넸더니 장준광은 쾌히 승낙하고 곧 가서 <<반듀링론>> 한권을 갖다주었다. 부대조건도 아주 간단했다.

1.책을 깨끗이 거둘것.
2.아무도 보이지 말것.

밤에 선장이가 그 <<반듀링론>>을 읽으려고 펼쳐보니 페지마다 빽빽이 그어놓은 색연필의 울긋불긋한 빛갈이 현란하게 눈에 띄웠다. 파고들어 연구를 착실히 한 모양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장이는 곧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고 울도 웃도 못하게 되였다. 그 헤아릴수없이 많은 빨근 금, 파란 금들이 그어진데는 신통하게도 모두 서술과정이나 례증 따위 하등 중요할게 없는 곳이였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기피하기라고 한듯이 긴요한 대목은 고스란히 처녀지로 남겨두었었다. 하느님 맙소사!

선장이가 언어학자로 우러러보는 로민은 몸이 약한게 탈이였다. 한번은 그가 무슨 병이 나 학교병원에 입원을 하였기에 일요일날 선장이가 장준광서와 문병을 갔다. 환자가 많지 않아 그런지 또는 무슨 다른 원인이 있어 그런지 아무튼 작은 병실 하나를 혼자 쓰는데 밝고 선선한 병실이 정갈하고 아늑하기도 곧 국제호텔의 객실과 같았다(딱딱한 병영생활을 하는데 습관이 된 선장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친것이다). 깨끗한 환자복을 입고 그리고 발에다는 슬리퍼를 꿰고 신선처럼 침대에 걸터앉았는 로민을 보고 장준광이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저 하루종일 그렇게 침대에 누워 딩굴딩굴하면 되는거야?>>

<<그럼 또 뭐 있어 환자가?...>>

로민이 쓴웃음을 웃었다.

<<야 거참 팔자가 늘어졌구나.>>

<<왜, 부러워?>>

<<허허, 아닌게아니라 좀 부럽기두 한걸. 난 그놈의 교련이 딱 하기 싫어 죽겠는데... 여기 들어와 딩굴딩굴 놀구 먹으면 얼마나 좋겟어. 넨장.>>

<<그럼 나하구 바꿀가?>>

<<바꾸자!>>

우스개소리로 문병을 마치고 돌아나올 때 장준광이 선장이를 돌아보고 웃으며

<<나두 한번 해보까?>> 하고 말하였다.

<<무얼?>>

<<입원 말이야.>>

선장이가 차부소 같이 튼튼한 장준광을 한번 훑어보고나서 싱글싱글 웃으며

<<해봐라, 해봐.>>

짐짓 부추겼다.

이튿날 낮휴식시간에 장준광이 정말로 행동하였다. 일직당번이 등기부를 들고

<<...또 누구 없어 병볼 사람?...>>하고 둘러볼 때

<<나두 하나 적으라구.>>

장준광이 혁대를 고쳐 띠며 신청을 하였다.

<<장-준-광이라... 그다음... 또 누구 없어?...>>

<<그럼 자 줄서... 앞으로 갓!>>

장준광이 짧은 대렬의 꽁무니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갔다. 이런 대렬은 상관을 만나면 바도 걷고 상관을 만나지 않으면 되는대로 걷게 마련이다.

장준광을 진찰한 군의는 나이 근 40한 소좌로서 로이드안경을 썼는데 일본류학생이였다.

<<어디 아픈가?>>

<<머리가 무겁구 배가 더뿌룩하구 또...>>

<<또 어디?>>

<<어깨두 뻐근하구...>>

<<잠은 잘 자나?>>

<<잠두 잘 못 잡니다.>>

<<식욕은?>>

<<식욕두 별루 없습니다.>>

의사가 속으로

(이 녀석이 이러다가 월경통이 심하다구 하잖을라나?)

의심을 할 정도로 장준광은 아픈데를 닥치는대로 쥐여쳤다.

<<그래?... 그럼 앞섶을 헤치라구.>>

군의가 청진기를 귀에 걸구 한참 여기저기 대여본 뒤 처방전에다 몇 글자 끄적거려가지고 건네며

<<자 우선 약을 써봐.>>

말하고 곧 문쪽을 향하여

<<또 누구?>> 하고 다음 환자를 불렀다.

장준광은 앞섶을 여미고 처방전을 받아쥐고 일어서며 입원을 안 시키느냐고 물어보고싶었으나 사람이 너무 좀 치뜰어 보일것 같아 그만두구 그대로 물러나왔다. 투약구에 처방전을 들이밀고 복도에 놓인 장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놈의 군의가 대관절 무슨 약을 주려나?)

약제사가 차례대로 이름을 불러서는 약을 내주고 이름을 불러서는 약을 내주고 하였다.

<<장준광!>>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장준광이 얼른 일어나 투약구앞으로 다가서니 젊은 중사약제사가 아기리가 벌고 밑이 빤 유리컵에 피마주기름이 반컵은 착실히 담긴것을 내밀어주며

<<선자리에서 마셔오!>>

지시를 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도 유분수지! 입원을 좀 해보려고 꾀병을 하다가 선자리에서 피마주기름 반컵을 들이키고 장준광은 버릇이 뚝 떨어졌다.

한번은 어느 장난군이 남의 군모에다 몰래 자라 한마리를 그린것이 발단이 되여 중대안에 갑자기 <<자라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까닭없이 제 군모에 자라선물을 받은 피해자가 가만있을리 없다. 그는 례상왕래로 리자까지 듬뿍 붙여 두마리를 갚아주었다. 이걸을 본 다른 군들도 다 손바닥이 근질근질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며칠 안되여 온 중대안에 세상에도 괴이한 자라바람이 휘몰아치게 되였는데 개중에는 저명한 만화가 장락평 화군무도 무색할만한 걸작까지 나타났다. 즉 한명의 자라장교가 한소대 자라병사를 앞에 세워놓고 <<어깨총!>> 구령을 부르는것이다.

선장이 군모에도 두개 반의 자라가 그려졌는데 그것은 뼁끼쟁이출신인 정장파란 작자가 도적질해 그리다가 들켜 선장이에게 쥐여박히는통에 다 그리지 못하여 <<미완성의 명화>>로 남게된것이였다.

일요일의 외출은 구속스러운 병영생활을 하는 군관학교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설명절이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개중에는 일요일이 갓 지난 월요일이나 화요일부터 벌써 다음 일요일을 고대고대 기다리는축까지 있는 형편이였다.

매번 외출때마다 의전례 한차례씩 검사가 진행되는데 그것은-면도질을 했는가. 것걸개는 걸었는가. 령장과 휘장은 바로 달았는가, 손톱은 깎았는가, 단추는 떨어진게 없는가 따위를 장교들이 낱낱이 살펴보는것이다. 그런데 이날 의외의 지장이 생겨 온 중대학생들은 또 한번 가슴이 달랑달랑하게들 되였다. 검사를 하던 주번대위가 한 학생의 군모를 벗겨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놀라서

<<아니, 이게 뭐야?!>> 하고 소리를 지른것이다.

주번대위가 지른 소리를 계기로 하여 전 중대 팔구명의 장교가(중대장과 지도원까지) 총동원된 일장의 검사선풍이 일어났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사람의 군모에서 자라가 발견이 되였을뿐만아니라 그 불후의 걸작-자라장교 지휘하의 자라병사들까지 들추어났다.

중대장은 전 중대 성원앞에서 부아통을 터뜨렸다.

<<군인이 인격을 모욕해두 유분수지... 이건 본교의 면면한 혁명전통을 모독하는 행위다!...>>

이렇게 허두를 떼여놓고 한바탕 내리엮은 다음 중대장은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논초리로 3개 소대를 차례로 훑어보고나서 어떠한 항변도 불허하는 어저로 명령하였다.

<<선코를 뗀게 누구야? 썩 앞으루 나서!>>

그러나 전 중대 백수십명 군인의 인격을 모역한 죄인들중에서 감히 앞으로 한발자국 나서는 놈은-아무리 기다려도 없었다.-괴괴한 정적...

<<없는가?... 없다면 좋아. 금후 본 중대는 한달동안... 외출을 금한다!>>

보이지 않는 동요가 대오속으로 맥랑처럼 물결쳐나갔다... 중대장이 놓은 그 한마디의 으름장은 학생들에게 비길데 없이 큰 실망을 갖다안겨주었다.

(거리에 나가 한잔 하기두 이젠 다 틀렸다... 배놀이두 다 틀리구 영화구경두 다 틀렸다... 어쩌면 좋단 말이!)

이러한 고비판에 홀지에 순도자 하나가 나타나서 앞으로 두어걸음 썩 나섰다. 150여쌍의 눈길이 일시에 그에게로 쏠렸다. 그런데 사람들을 놀래운것은 그가 전연 엉뚱한 사람 즉 <<작은아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강진세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자라바람>>에 감염이 되지 않은 극소루 얌전이들중의 하나이은 누구나 다 잘 아는터였다.

중대장은 잘 믿어지지가 않는듯이 가냘픈 새색시 같이 생긴 강진세를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한번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대가 선코를 뗐단 말인가?>>

<녜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비록 작기는 해도 똑똑하고 옹골찼다.

<<음.>> 하고 중대장이 다시한번 강진세를 훑어보고 막 입을 열려던차에 불쑥 또 한 녀석이 대렬밖으로 나섰다.

<<중대장께 보고드립니다! 선코는 제가 뗐습니다. 저군은 작은아씨라 이런 장난을 못합니다!>>

보아하니 진짜 <<수악>>이 자수를 하는 모양이였다.

중대장은 짐작이 가는 모양으로 노기가 금세 푹 풀려 강진세쪽으로 다시 얼굴을 돌리고

<<그럼 왜 안담을 해 나섰지?>> 하고 물었다.

<<어차피 책일질 사람 하나 나와야 하겠기에 그랬습니다. 외출이 금지되면... 모두들 크게 락심합니다.>>

중대장의 얼굴에 알릴듯말듯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그대는 그만 물러가두 좋아.>>

순탄하게 이렇게 말한 다음 중대장은 다시 <<수악>>을 향하여 률기를 하고

<<일후에 다시 이런 못된 장난을 하면 그때는 가차가 없어. 알았지?... 좋아, 그럼 물러가.>>

사면받은 <<수악>>은 곧 표준동작으로 멋지게 경례를 붙이고 군화의 뒤꿈치를 딱 소리가 나게 부딪치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익살맞게 동급생들에게 혀바닥을 한번 날름해보이고 기분 좋게 복대를 하였다. 이어서 중대장이 중대 전원에게 물었다.

<<다들 알았는가?>>

중대장의 입에서 말이 미처 떨어지기가 바쁘게 성수가 난 150개의 입에서 우렁찬 음향이 터져나왔다.

<<알았습니다!!!>>

중대장이 눈짓을 하자 주번대위가 선뜻 한걸음 앞으로 나서서 외출을 선포하는데 해산하기전에 먼저 <<본교이 면면한 혁명전통>>을 가슴속에 아로새기기 위하여 교가를 부르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전 중대는 일제히 목청을 돋우어가지고 씩씩하게 불렀다.

노한 물결 팽배한데
당의 기발 휘날린다
이는 혁명의 황포...

비록 휴일이라 할지라도 외출을 한 학생들은 반드시 게양대에서 기를 내리기전에 돌아와야 하였다. 그런데 이날은 어찌된 일인지 저녁식사시간이 다되도록 중대에 사람 하나가 모자랐다. 점검을 해본 결과 그 모자라는 하나가 박문이라는게 드러났다. 박문은 황해도 해주사람으로 광동 중산대학에서 전학을 해온 술고래 겸 담배귀신이였다.

식사시간에 다들 <<시작!>>을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박문은 비트적거리며 식당안으로 들어왔다. 눈치 빠른 주번대위가 그 꼴을 보자 손에 들었던 저가락과 밥공기를 얼른 내려놓고 일어나가 낮은 소리로 꾸짖듯(중대장을 기탄하여) 서라고 하였으나 군인으로서 상관앞에 섰을 때 의당 한데 모아야 할 두다리는 모으지를 않았다. 주번대위는 그 군기에 어긋나는 꼬락서니를 보고 더욱 성이나 매몰차게 꾸짖었다.

<<왜 차렷을 안해?... 차렷!>>

그러나 지각을 한 주정뱅이는 차렷을 할 대신에 도리여 우습강스러운 동작으로 상대편의 다리를 가리키며 대꾸질을 하는것이였다.

<<당신... 당신은 왜 차렷을 안하지?... 당신부터 먼저... 차렷!>>

이것을 보고 밥을 먹던 학생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다들 죽을지경이였다. 중대장만 없었더라면 의심할바 없이 식당이 떠나가라고들 웃어대였을것이다.

주번대위가 부아통이 터져 박문더러 당장 밖에 나가 두시간동안 벌을 서되 잠시도 쉬지 말고 계속 차렷을 웨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내밀어보이며

<<지금 다섯시 15분이니까... 일곱시 15분까지... 계속 웨쳐야 해! 알았나? 목청껏 웨쳐!>>

그리하여 식당안의 사람들은 창문밖에서 박문주정뱅이가 목청이 떨어지라고 계속 웨쳐대는 차렷소리를 권주가 아닌 <<권식가>>로 들으며 그 한끼의 저녁밥들을 다 먹어야 하였다.

전보경이 결혼한 뒤 1년 반만에 첫딸을 낳아 그 이름을 짓는데 남편 반해량의 동의하에 선장이더러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선장이를 처녀때부터 언제나 변함없이 좋게 보아온것도 있거니와 선장이의 문학적소양을 높이 평가해서였다. 선장이가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또 책임이 무거운것을 느끼고 여러날 두고두고 머리를 짠 끝에 남녘 남자 베풀 시자<<남시>>라고 지어주었다.

선장이가 예비과때 하루는 지리교관이 수업을 하는데 괘도를 칠판에 걸어놓고 교편으로 조선을 가리키며

<<이 조선은 력대로 우리의 소국이였는데 갑오전쟁이후 일본제국주의에게 빼앗겼다. 그러니 우리는 국력을 길러가지고 이를 되찾아야 한다.>>

이런 소리를 하였다. 조선학생들이 크게 귀거슬리게 듣고 막 항의를 하려던차에 앞줄에 앉았던 절강학생 하나가 얼른 일어나 교단앞으로 나거더니 교관애게 나직나직이 무어라고 말을 하였다. 교관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곧바로 교실안을 둘러보았다.

<<이제 한 말은 잘못된것이니 정식으루 취소한다.>> 하고 탄솔하게 고패를 숙였다. 이 중대에 조선학생들이 있다는것을 모른 모양이였다.

그때부터 선장이가 그 진가성 가진 학생하고 가깝게 지내였다 호감을 가진것이다. 절강 소흥이 고향이라는데 사람이 여간만 소명하지가 않았다. 서로 맘이 맞아 일요일날 둘이 같이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고 사진에다 <<국제전우>> 라는 제사를 써넣기도 하였다. 그런 연유로 선장이는 그에게서 월왕 구천의 이야기며 월나라의 애국미녀 서시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가졌었다. 그런 이야기를 매우 흥미있게 또 감명 깊게 듣는중에 선장이는 조선사람이 애국기생 론개를 자랑으로 여기듯이 그들 월나라사람들 즉 현재의 절강성사람들은 서시를 자랑으로 여긴다는것을 알게 되였었다.

귀속에 남아있는 옛이야기와 이런저런 생각이 얼기설기한중에 선장이가 애기의 이름을 남경에서 태여난 서시-남시라고 지을 궁리가 떠오른것이였다. <<남시>> 두글자를 반해량부부가 다 좋아하는 바람에 (전보경은 손벽을 치며 좋아하였다) 선장이는 어깨의 짐을 부린것 같이 거뜬한중에 코도 좀 우뚝해질라 하였다.

공격하는 보병부대가 적진 200메테에까지 박근을 하면 이내 진용을<<산병반군(散兵半群)>>으로 변환하고 기관총조와 소총조가 엇갈아 엄호하여 전진하다가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고 그것이 작렬하는 틈을 타 적진에 돌입하여 백병전을 벌인다.

이러한 산병반군을 제4중대는 이날 옹근 한나절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였다. 연습이 다 끝난 뒤에 전 중대 3개 소대가 강화대형 즉 한쪽이 트인 입구자형으로 정렬하여 중대장의 강평을 들었다. 중대장 량중좌는 눈치가 빠르고 입이 바르기로 교내에 이름이 났었다. 그의 입버릇은 <<어딜 보지?>> 와 <<가련한 백성!>> 인데 그 음성 또한 날카롭기가 비길데 없었다. 그러한 그가 이날 강평을 하다말고 갑자기 한팔을 총렬처럼 뻗쳐서 제3소대의 한 학생을 가르키며 날카롭게 소리쳐 묻는것이였다.

<<어딜 보지?>>

그 지적받은 학생은 중대장의 강평을 귀담아듣지 않고 한눈을 팔고있었던것이다.

<<이리 나와!>>

중대장은 우선 이렇게 분부하고 그 학생이 앞에 와 서기를 기다려가지고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여?>>

주번대위 당소대장은 성질이 몹시 급한 광동사람인데 그 학생이 우물쭈물하는것을 보고 화가 나 중대장의 입에서 <<가련한 백성!>>이 튀여나오기전에 먼저 앞질러 냉큼 대답을 하라고 독촉을 하였다.

한눈 판 학생은 그제야 겨우 떨어져 가까스로 <<문정>> 두자를 입에서 짜내였다. 중대장은 두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문정을 아래우로 한번 훑어보더니 시험조로 묻기를

<<산병반군은 어떤 때 쓰는거지?>>

그러나 한동안 좋이 기다려도 대답이 아니 나왔다. 아니 나오는게 아니라 못 나오는것이다.

<<옹근 한나절 연습을 했는데... 정신은 다 어디다 팔구... 가련한 백성!>>

일이 난처하게 된 <<가련한 백성>>은 하릴없이 낯 간지러운 대답을 하였다.

<<전쟁할 때 쓰는겁니다.>>

이쪽에서 중대장이 미처 부아통을 터뜨리기전에 저쪽에서 먼저 주번대위의 부아통이 터졌다.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가지고-자기 소대 소속의 문정이 엉뚱한 대답을 하여 소대장인 그를 중인소시에 망신을 시켰으므로-한마디를 비꼬아 쏘아붙였다.

<<밥 먹을 때 쓰는겁니다!>>

이날부터 졸업을 하는 그날까지 전 중대 백수십명 장래전략가들은 모두 문정이 덕분에 어려운 고비들을 안연히 넘겼다. 그가 전형으로 지목이 된 까닭에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중대장이 의례히 그의 탈만을 잡았기때문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다른 학생들은 문정의 그늘에서 태평성대를 누린 셈이였다.

처음부터 중대에서는 별명이 성행하였는데 그중에는 <<말코>>, <<락타발>>, <<가물치>>, <<대추씨>>, <<대구>>, <<흑선풍>> 따위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것들은 각기 그 생김생김에 따라 지은것으로 그리 멋거리지지 못한, 말하자면 좀 저급에 속한다는것들이였다. 이와는 달리 점잖은 좌석에 내놓아도 부끄러울것 없는 상당히 예술적인것들도 적지 않았는바 그중의 몇가지를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늘 세도의 그릇됨을 개탄한다고 해서 <<우국지가>>, 성품이 워낙 경건하고 또 설교하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목사>>, <<심심산천의 백도라지>>를 멋들어지게 부른다고 해서 <<도라지>> 등등...

이러한 별명총중에 새 별명 하나가 더 늘었으니 그는 곧 문정의 <<전쟁할 때>>였다.

남시의 첫돌이 마침 토요일이라 하루 물리여 일요일에 돌잔치를 차리겠으니 꼭 참석해달라고 전보경이 미리 초대를 한 까닭에 이날 선장이가 씨동이와 장준광 그리고 마점산, 오쎌로와 함께 반해량네 집으로 왔다.

중화문안에서 서쪽으로 꺽이는 길모퉁이에 구경군 여라문이 둘러서서 구경들 하는중에 젊은 놈 두놈이 맞붙어 쌈질을 하는데 두놈이 다 적수를 금세 료정낼듯이 벼르면서도 주먹놀음은 아니하고 그저 자꾸 팔소매만 걷어올리고들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구경들 하다가 성미가 겁겁한 오쎌로가

<<이놈들아, 쌈을 할라면 하구 말라면 말게지... 소매만 자꾸 걷어붙이는건 무어냐?>> 하고 참견해나섰다.

정작 주먹놀음은 안하고 팔소매를 걷어올리는것으로 전투의욕이 있다는것만 보이고 그리고 말로 구경군들의 여론을 제게 유리하게 끌어당기는게 남경지방의 공식화된 쌈질격식이였다. 물고 뽑은듯한 군관학교 학생들이 관전을 하다가 그중의 하나가 큰소리로 꾸짖으며 탄해나서니 두놈은 어리뻥하여 붙은 쌈을 흐지부지 그만두고 서로 흘끗흘끗 뒤돌아보며 동서로 갈라져갔다. 구경군들도 뒤맛이 싱거운듯 뿔뿔이 흩어졌다. 네 사람은 한바탕 껄껄 웃고 다시 화로강을 향하여 걸으며 씩둑꺽둑 지껄였다.

<<자식들, 겁이 많아... 죽어두 선손은 못 건다니까.>>

<<일종의 의식이야 팔소매 걷어붙이는.>>

<<체면을 보전하는 수단이겠지 아마.>>

<<싸우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게 상수중의 상수이니라... 왜들 모르는가?>>

<<아하하! 알구보니 팔소매 걷어붙이는 의식두... 손자병법에서 나온거였구나!>>

골목안에를 들어서며 바라보니 반해량네 집앞에 옷단장을 곱게 한 돌쟁이-남시를 안고 웬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반해량은 아니다. 선장이가

(저게 누굴가?)

생각하는중에 양씨동이가 별안간 앞으로 내달으며

<<김평산!>> 하고 소리를 쳤다.

(아, 감옥에 갔던 김평산이 돌아왔구나!)

선장이가 선뜻 짐작하고 부지런히 뒤쫓아가는데 벌써 씨동이는 애기 안은 김평산을 얼싸안았다. 두 장정 사이에 끼인 애기가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것을 선장이가 얼른 대들어 빼앗아 안고

<<우리 남시 이쁘지... 울 지 마... 우리 남시 이쁘지.>>

어르며 둥개질을 하였다. 씨동이가 먼저

<<서선장.>> 하고 선장이를 가리키고 다시

<<김평산.>> 하고 김평산을 가리켜서 선장이는 애기를 안은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였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나두 이번에 누님한테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 참 반갑습니다.>>

선장이가 보니 김평산은 상고머리를 깎았는데 얼굴은 김혜숙과 전형이 비슷하나 살빛은 약간 철색이 남았다(일본감옥에서는 수용자가 만기출옥을 하기 두어달전부터 머리를 기르게 하고 또 내보낼 때는 보기 흉하지 않게 상고머리를 깎아서 내보냈다).

김평산이 장준광, 오쎌로 두 사람과도 인사를 마친 뒤에 씨동이가 새삼스레

<<고생이 많았지?>> 하고 위로해 물으니 김평산은

<<그러 그렇지 뭐.>>

가볍게 대답하고

<<그래 졸업이 언제야?>> 하고 되물었다.

<<인제 꼭 한달 남았어... 래달이야.>>

김평산이 서글푼 웃음을 웃으며

<<나두 그때 뛰였더라면... 이번에 같이 졸업을 하는건데.>>

말하고 길게 한숨을 지었다.

철창속에다 다섯해의 청춘을 묻어버리고 나온 한 조선의 애국자가 선장이 바로 눈앞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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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1/04 18:02:03

호호..애기 이름이 서시를 본따서 남시라고 잘 지엇네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올려주셔서 잘 보고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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