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7

더좋은래일 | 2023.11.05 16:22:10 댓글: 1 조회: 229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5053


47

서선장이가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자 곧 대부분의 동급생들과 마찬가지로 국민당군대의 소위로 임관이 되였다. 며칠후에 선장이가 배속된것은 상해에서 서쪽으로 불과 10여킬로 밖에 안 떨어진 대장이라는 곳에 주둔하고있는 부대였다. 대장은 바로 3년전인 1933년 여름에 선장이와 장준광이 상해 홍구일본신사에서 폭탄사건을 일으키고 도망치다가 방효삼대좌가 령솔하는 부대에 억류될번했던 곳이다.

사단참모장 곽소장이 참모부에 제출된 서선장이의 임명장과 리력서를 한동안 뒤적거려보고나서 앞에 들어와 공손히 서있는 신가성 가진 소좌참모에게

<<어디 사람을 한번 불러보까?>> 하고 말하여

<<녜 곧 불러들이겠습니다.>>

선장이는 의외롭게 또 이례적으로 참모장실에 불리워 들어오게 되였다. 사단참모장이 새로 부임한 위관-대위, 중위, 소위 따위를 직접 불러본다는것은 매우 드문 일이였다.

신참모에게 인도되여 들어온 선장이의 거수경례를 대범하게 받고난 곽참모장이 첫밗에 묻기를

<<일본말을 잘한다지?>>

리력서에서 알고 묻는 말이였다. 선장이가 의외의 물음에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며

<<녜... 좀 압니다.>>

겸사로 대답하니 곽참모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그대네 사람은 다들 일본말을 잘하지?>> 하고 신참모와 선장이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녜 그렇습니다.>>

<<잘됐어. 참모부에 마침 통역관이 부족하던차에.>> 하고 다시

<<신참모.>> 하고 불렀다.

<<녜.>>

<<신참모 관할하에 두도록.>>

<<녜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신참모는 곧 선장이를 돌아보고

<<서참모, 나를 따라오라.>> 하고 명령하였다,

무릇 참모부에 소속된 장교는 그 군함의 고저와 직무 여하를 막론하고 다 참모로 되는것이 법이다. 그래서 곽참모장의 말 한마디로 선장이가 대번에 통역관의 직무를 맡은 소외 참모로 된것이였으나 선장이는 다급해났다.

<<참모장께 여쭙겠습니다.>>

<<무언데?...>>

곽참모장이 책상우에 권연갑을 집어들며 상가럽게 선장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는 하부에 내려가 부대를 거느리기가 소원입니다.>>

참모장이 성냥을 그어 권연에다 불을 붙였다.

<<그건 랑만주의라는거야. 군교를 갓 나온 햇내기들에게 흔히 있는 몽상이야.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어.>>

대수롭잖게 말하고 곽참모장은 다시 신참모를 향하여

<<데리구 나가 잘 교육하도록.>>하고 명령하였다. 신참모는 여공불급하게

<<녜.>>

받들어모시고 곧 선장이를 향하여

<<따라오라.>> 하고 명령하였다.

선장이가 꼼짝 못하고 팔자에 없는 서참모로 되였다. 곽참모장의 말마따나 햇내기의 몽상은 산산쪼각이 나버린것이다.

신참모는 마흔이 이마우에 와닿은 하남사람으로 얼굴이 약간 얽었으나 맘씨는 무던한 사람이였다. 세속적인 살림군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였다. 본래는 평한선 신양역의 조역이였는데 어떻게 굴러굴러 군대에 들어와가지고 한때 치중대를 거느리다가 또 어떻게어떻게 해서 참모부에 올라와 한몫을 보는 사람였다. 그와 그의 안해는 슬하에 일남일녀를 두었는데 딸은 신양 큰집에서 할머니와 같이 살며 초중에를 다니고 또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데가 하나도 없는 서너살짜기 아들아이는 데리고있었다. 딸은 여름, 겨울 방학때만 와 한달포씩 묵어가군 하였다.

신참모가 선장이를 자기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와 걸상을 권해 앉힌 뒤에 딱딱한 군대풍이 아니고 눅직한 민간풍으로

<<서군.>> 하고 불러놓고 잇달아서 사유를 설명해들리는것이였다.

<<지금 전시는 아니라지만서두 우리는 현재 일본군대와 대치를 하다싶이 하구있소. 상해 북사천거리 일본륙전대와 우리의 전초선은 까딱하면 이마받이를 할만큼 가까운 거리에 놓여있소. 그런데 적을 알아야 막기두 하고 물리치기도 하지. 일본말, 일본글을 모르구 일본놈하구 맞선다는건 소경놀음, 귀머거리놀음을 하는거나 마찬가지요. 그러니 서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번 생각해보오. 참모장 말씀대로 괜한 생각 말구 맡겨지는 일이나 충실히 하오. 그래야 전도가 있을테니. 알겠소?>>

<<녜 잘 알았습니다.>>

<<그러구 미리 한마디 귀띔해줄건...>> 하고 신참모는 갑자기 목소리를 줄이여 속삭이듯이

<<사령부의 녀자들... 례컨대 타이피스트나 교환수 따위 또는 간호원따위의 이런 녀자들은... 일체 건드릴 생각을 말구... 아예 모르는체하구 지내시우.>> 하고 당부하지 않아도 좋을 당부를 하여 선장이는 무턱대고

<<녜 잘 알았습니다.>>

대답을 하였다. 신참모는 선장이의 대답이 건성인것 같아서 마음이 안 놓이는 모양으로

<<이건 물론 내 로파심이겠지만... 혹시 그러다가 말썽이라두 생기면 재미가 적을가봐 미리 일러두는거요. 알겠소? 녀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구태여 손을 데기 쉬운걸 건드릴게 없단 말이요. 내 말은...>> 하고 중언부언하였다.

<<말썽이 생기다니요... 다들 임자있는 녀자란 말씀입니까? 그렇다면야 무어 당부하실것두 없습지요... 누가 언감생심 남의 부인을 건드리겠습니까?>>

<<그런게 아니여.>>

<<그런게 아니라면 무업니까?>>

<<하 그 사람... 말귀가 어둡구먼그래.>>

<<제가요?>>

<<그래여.>>

자신더러 말귀가 어둡다고 하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선장이가 좀 어떨떨하여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신참모는 답답한듯이

<<이봐요. 내 말을 그래 아직두 못 알아듣겠어?>> 하고 입을 선장이 귀에 갖다대다싶이 하고 소곤거리는것이였다.

<<유부녀는 아니지만서두 다른... 사령부의 높은 량반들하구... 알겠소 인제?>>

선장이가 비로소 깨도가 되는듯 같아

<<아 녜 잘 알았습니다. 이젠.>>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신참모는 선장이의 인물이 송일엽의 말마따나 <<핸섬>>한것을 보고 마음이 안 놓여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것이였다. 젊은 녀자들에게는 번쩍번쩍한 대성이 박힌 령도보다도 젊고 말쑥한 미남자가 더 빨아당기는 힘이 있다는것을 경험에 의하여 신참모는 잘 알고있는터였다.

선장이가 신참모(다들 그를 신주임이라고 불렀다)의 안배로 곽참모장의 키꺽다리 대위 부관하고 한방을 같이 쓰게 되였다. 그부관은 성원자 원가성을 가진 호북사람으로 사람이 소탈하여 신참인 선장이를 하대하지 않았을뿐더러 얼마 오래지 않아 곧 선장이와 너나들이까지 하게 되였다.

<<원형두 원세개네 일가요?>>

선장이가 웃으며 물어보니

<<아니야, 아니야, 아무 상관두 없어.>> 하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두 같은 원씨가 아니요?>>

<<원씨는 같은 원씨라두 원세개는 하남원씨구 우리는 호북원씨야. 아주 달라.>>

<<그래 원형은 원세개를... 좋은 사람으루 보우 나쁜 사람으루 보우?>>

<<그걸 몰라서 묻나?>>

<<난 또 같은 원씨라구 좋게 말할줄 알았지.>>

<<다들 나처럼만 대공무사하라구 해.>>

원부관이 흰목을 쓰며 선장이의 어깨를 툭 쳤다.

<<나 갓 왔을 때 신주임이 사령부의 아가씨들은 애당초부터 거들떠볼 생각도 말라구 단단히 신착합디다. 그래서 난 지금두 그 아가씨들이 저 20메터 밖에만 지나가두 속이 떨려 한참씩 서서 진정을 해야하우.>>

<<에끼!>> 하고 원부관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정을 쳐다보며 하하 웃어서 선장이도 한바탕 따라 웃었다. 웃음을 거둔 뒤에 원부관이 싱글거리며 사령부의 내막을 들추어내였다.

<<신주임이 그러는데는 까닭이 있어. 전에 한번 혼이 났었거든.>>

<<무슨 혼이 어떻게 났었단 말이요?>>

<<임자 오기전에 여기 대위 참모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그 침대야. 그 친구 쓰던 침대가. 그 작자가 속은 텅 비였어도 허울만은 잘 썼거든. 멋이 있지. 한데 이치가 언감생심 우리 그 타이피스트를 건드렸네그려. 어방 없는 놈이지. 그 기집애는 바루 곽참모장의 요거야.>>하고 원부관이 새끼손가락 하나를 내들어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요?>>

<<아, 요것두 몰라?>> 하고 원부관은 뻗친 새끼손가락을 내흔들어보엿다.

<<딸?>>

원부관이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럼 조카딸?... 며느리?>>

<<에끼 이 풋병아리! 첩두 몰라? 첩... 소첩.>>

<<아, 첩!>>

<<사령부의 기집애들은 거의다 그러그러한분들의 요거야.>> 하고 원부관은 또 한번 첩의 대명사로 쓰이는 상징물-새끼손가락을 내보이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경제적이야. 따루 살림을 차리느라구 돈을 들일것두 없이 국가돈으로 제창... 히히!... 한데 그것들의 정조대를 감독할 책임을 진게 바루 신주임이거든. 그것들의 정도대가 뒤구멍으루 열리면 신주임의 모가지가 간댕간댕하는 판이야. 그래서 임자의 얼굴을 보구 마음이 안 놓여 미리미리 신칙을 해둔거여.>>

<<하하! 그런 판국이였구먼.>>

<<이젠 알았지.>>

<<잘 알았소. 그런데 그 대위 참모는 어떻게 됐소?>>

<<어떻게 될것 있어? 대번에 쫓겨났지. 지금 저 488련대에 쫓겨내려가 중대장노릇을 하구있어.>>

<<아니... 중대에 내려가 대오를 거느리는게 그래 쫓겨내려가는거요?>>

<<그럼 그게 임자 생각엔 승진 같습나? 영전 같습나?>>

<<원형 말대루 하면 그럼... 일선에서 멀어질수록 승진이겠구려?>>

<<더 말할것 있나. 위원장이 그래 대장거리에 있어 남경에 있어?>>

위원장이란 군사위원회 위원장 장개석을 말하는것이다.

<<난 그래두 아래 내려가 대오를 거느리구싶은걸.>>

<<유치원생!>>하고 원부관은 삿대질하며 선장이를 비웃었다.

그러나 아무튼 선장이는 원부관을 통하여 많은것을 배웠다. 견식을 넓혔다. 세상을 알았다.

이날 선장이가 책상우에 상해에서 발간되는 일본신문-<<상해신문>>을 펼쳐놓고 요점을 발취하고있을 때 원부관이 바쁜 걸음으로 무엇을 가지러 들어왔다가 길에 선장이 귀전에 대고

<<난쟁이가 온대여.>>하고 속삭여서 선장이도 덩달아 가는 목소리로

<<난쟁이가 와? 어떤 난쟁이가?>> 하고 물었다.

<<진난쟁이가 온대여.>>

<<진난쟁이? 진난쟁이가 누구야?>>

원부관은 얕보듯이 입을 실쭉하고

<<진난쟁이두 몰라?>> 하고 게먹었다. 선장이가 만년필을 손에 쥔채 뻔히 쳐다보기만 하니까 원부관은 곧 다시

<<진성이를 몰라 진성이? 군관학교때. 못 봤어?>> 하고 깨우쳐주듯이 말하였다.

<<오 진성이... 진성이야 봤지. 여러번 봤지. 그가 여기를 온다는거요?>>

<<응 래일오전에 왔다가... 당일치기루 돌아갈 모양이야.>>

<<무엇하러 온다는거요?>>

<<무엇하려는 무슨 무엇하려야, 시찰 오지.>>

<<그럼 원형 또 곤두박질칠 일이 났구려.>>

<<나는 곤두박질치구... 임자는?>>

<<나야 무어하우? 한낱 소위 참모쯤이야... 깨알같이 어느 구석에 가 처박혔는지두 모를판인데.>>

<<그늘의 개팔자 아니야?>>

<<아마 그런가보우.>>

원부관이 다시 간특스럽도록 가는 목소리로

<<이봐, 뉴스가 하나 있어.>> 하고 눈웃음을 쳐 선장이는

<<뉴스? 어떤?>> 하고 귀가 솔깃해졌다.

<<톱 뉴스.>>

<<글쎄 어떤 톱 뉴스?>>

<<사령부의 기집애들을 래일새벽에 몽땅 상해루 들여보낸다는거요... 하루 휴가.>>

<<갑자기 그건 또 왜?>>

<<진난쟁이가 군복 입은 녀자를 제일 싫어한다는구먼. 파마하구 뾰족구두 신구 군복 입은 녀자만 보면 대번에 오만상을 한다지 뭐야. 별놈의 병두 다 많지. 제딴에는 요망스럽다는거겠지 아마. 그래서 눈앞에 그런게 얼씬 못하게 래일 하루 몽땅 시내루 피접을 보낸대여.>>

<<그거 잘됐군. 원형더러 데리구 다니기까지 하랬으면 더욱 좋았을걸.>>

<<누가 아니래여.>>

원부관은 너털웃음을 웃고 부지런히 볼일을 보러 나갔다.

점심때 선장이가 방에 돌아와 군복을 벗어걸고 침대에 누워 잠 한숨 자볼가 하는 참에 원부관이 큼직한 수박 한덩이를 안고 들어왔다.

<<어서 일어나, 수박이나 좀 먹자구... 목이 컬컬해죽겠는데.>>

선장이가 침대에 일어나 앉으며

<<점심은?>> 하고 물으니 원부관은

<<먹었지.>>

대답하며 수박을 책상우에 털렁 내려놓았다.

<<칼 있지?>>

<<아.>>

수박을 타가지고 한 세참 먹고난 뒤 길게 숨을 한번 몰아쉬고

<<일복을 타구났나, 쥐뿔두 생기는것은 없이... 넨장.>> 하고 원부관이 푸념을 하였다.

<<무척 바빴던 모양이구려.>>

<<부관노릇은 아예 해먹을게 아니야.>>

선장이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좋기야 참모장노릇이 더 좋겠지.>>하고 웃음의 소리를 하니 원부관은 수박물 묻은 손을 선장이 물수건에다 덧붙이니고 닦으면서

<<나더러 하라면 못할줄 알아? 참모장은 고만두구 사단장을 하래두 하겠다.>> 하고 흰소리를 쳤다.

<<하기야 한 20년 근사를 모으면... 될수도 있겠지.>>

<<20년? 사람 성말라 죽으라구!>>

<<그럼 래일 진난쟁이가 오거든 말해보구려. 당장 좀 어떻게 해달라구... 하루가 새롭다구.>>

<<그래보까.>>

실없는 말을 지껄이는 동안에 원부관의 찌뿌드드하던 기분이 한결 개운해졌다. 그는 워낙 좀 변덕스럽고 또 수다스러운편이였다.

<<488련대로부터 시작해 여섯개 련대에 싹 다 기별을 해주었다, 뒤길루... 넨장할것.>>

<<무얼 말이요?>>

<<오후에 사령부에서 점검을 내려가니 그리들 알라구.>>

<<점검은 왜 또 불시에?>>

<<난쟁이가 오면 수행인원들이 중대에 내려가 예고없이 점검을 해볼 확률이 높으니까... 미리미리 밝혀두자는게지. 뒤가 언제나 칩칩들 하니깐 두루.>>

<<뒤가 칩칩하다니... 무슨 뜻이요?>>

<<각 중대의 급양병력이 언제나 차가 난단 말이여.>>

<<급양병력이 차가 나... 그건 어째서?>>

<<그건 어째서?>> 하고 한번 뇌고 원부관은

<<그래야 먹을알이 있지, 이 멍텅굴아!>> 하고 다 닦은 물수건을 선장이에게 콱 던졌다.

<<급양병력이 차가 나야 먹을알이 있다? 도무지 모를 소린데.>>

<<이봐, 가령 한중대의 급양병력을 100명분이라구 하자. 그럼 군수처에 내려보내는 급양두 100명분이겠지?>>

<<그야 물론 그렇겠지.>>

<<그럼 먹을알이 무어 있어, 딱 들어맞는데?>>

선장이가 그 말의 뜻을 해득 못하고 눈만 깜박깜박하는것을 보고 원부관은 제물에

<<가령 급양병력명단에는 100명으루 돼있는데... 실급양인원은 90명이라면... 어떻게 되겠나?>> 하고 힌트를 주었다.

<<열명분이 남겠지.>>

<<열명분이 남지? 그게 바루 먹을알이야! 인제 알겠나?>>

선장이가 기가 차서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럼 우리 사단의 실급양인원은 모두 얼마나 되는거요?>>

원부관은 싱글싱글 웃으며 손가락으로 천정을 가리켰다.

<<그건 저우에 계신 하느님밖에 모른다구. 전사자가 나두 열이면 두서넛밖에 보고를 안하니까 급양병력명단에는 언제나 유령인구가 가뜩하지. `죽은 넋`이 가뜩하단 말이야.>>

<<그럼 점검대 들통이 나면 어떻거우?>>

<<그러게 내가 뒤길로 기별을 해주었다잖아... 점검을 내려간다구.>>

<<아무리 기별을 해준대두 없는 사람이야 어디서 나우 갑자기?>>

<<저런 멍텅구리! 꾸어오지도 못해?>>

<<꾸어오다니... 어디서?>>

<<한 대대가 네개 중대씩인데... 그 네개 중대를 한꺼번에 다 점검한다는수야 없겠지? 그러니까 각 중대가 뒤구멍으루 엇갈아 사람을 빌어오구 빌려주구 하면 될것 아니야. 명단에 오른만큼 인원수를 채워놓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그러게 내가 미리 뒤길루 기별을 안해주면... 영낙없이 그것들은 앉은벼락을 맞아. 군법회의가 가래지. 그렇지만 초록은 동색이 아닌가. 서루 도와주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나가기가 고되거든. 아무도 월급만 바라구는 못살아, 사람이 들피가 진다구. 이게 바루 인간세상이라는거야... 알았나 풋병아리?... 장위원장은 당당한 300만 대군을 거느린다구 뽐을 내지만... 속내를 아는 사람이 보면 웃음거리여.>>

1936년도 그럭저럭 마지막달에 접어들어 대장거리의 가로수들이 볼품없이 앙상하게 가지만 남았다. 눈 같지도 않은 눈이 첫눈이랍시고 한번 내리기는 하였으나 한낮이 채 못되여 자취없이 다 사라져버려 땅거죽이 약간 눅눅할뿐이였다. 선장이가 새로 맞춘, 술가리에 남색테를 두른 카키색외투를 입고 나서니 제가 보기에도 멋이 찔찔 흐르는것 같았다. 처음 입어보는것이다. 위관은 외투에 남색테를 두르고 좌관은 노랑테를 그리고 장령은 빨간 테를 각각 두르는것이 군의 규정이였다. 남색테가 노랑테로 바뀌재도 어렵지만 노랑테가 빨란 테로 바뀌기는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서 원부관이 선장이에게

<<저 신주임 좀 보라구. 한뉘 노랑테를 벗어나지 못한다니까. 빨간 테는 아예 사주팔자에두 없나봐.>> 하고 비웃은적이 있었다. 그때 선장이가

<<남의 걱정은 고만하구 원형이나 어서어서 노랑테를 좀 둘러보구려.>>하고 빈정거렸더니 원부관은 대번에 미간을 찡그리며

<<내야 벌써 둘렀어야 할건데... 그 깍쟁이가 생전 어디 급을 올려줘야 말이지.>> 하고 참모장을 원망하였었다.

선장이가 대장거리에 부임한 뒤로 애인리 42호를 한번 찾아볼 마음이 긴하였으나 지난 3년 동안에 가까스로 가라앉혔을 송일엽의 마음을 또다시 흔들어놓을가 저어하여 감히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상해 서남쪽에 위치한 청포에 주둔하는 부대에 소대장으로 복무하는 장준광에게서 둘이 같이 애인리 42호를 한번 방문하자고 편지 온것도 완곡히 사절을 하였었다. 이러한 어느날 사령부의 상층들이 갑자기 얼굴가죽이 꽛꽛들 해가지고 빙하기를 만난 맘모스처럼 술렁술렁들 하였다. 원부관이 주막집 강아지처럼 들이뛰고 내뛰고 하는것을 보면 또 심상찮은 일이 난것이 분명하였다. 선장이가 슬그머니 복도에 나와 섰다가 참모장실에서 손에다 전보발신지를 들고 정신없이달려나오는 원부관의 어깨를 툭 쳤다.

<<대체 무슨 일이요?>>

원부관이 무춤하고 재빨리 앞뒤를 한번 둘러보더니

<<서안에서 장학량이가 반란을 이르켰어. 장위원장을 잡아죽였어. 말조심해!>>

귀띔해주고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선장이는 너무나 엄청난 소식에 어안이 벙벙하여 장승같이 복도 한가운에 서있기만 하였다.

<<아저씨!>>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길래 선장이가 돌아보니 신주임의 네살짜리 아들아이가 반갑다고 두팔을 벌리고 달아오고있었다. 아이가 워낙 소명하여 누구에게나 귀염을 받는 까닭에 무서운것이 없이 <<한인물입>>의 패찰이 나붙고 위병이 서있는 군사요지에도 무상출입을 하였었다.

<<천천히... 넘어진다!>>

선장이가 두팔을 벌려 어린아이를 반짝 안아들었다. 아이는 코묻은 손으로 선장이의 군복깃에 달린 령장을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작은 별이 하나 박였을뿐이다.

<<애기 밥 먹었소?>>

<<응.>>

<<누나 편지 왔소?>>

<<아니.>>

<<편지가 안 왔다구?>>

<<그때 왓소.>>

<<그때 언제?>>

<<그때그때... 다섯밤 열밤...>>

아이가 열손가락을 쥐였다폈다 해보았다. 선장이가 웃으며 또 물었다.

<<엄마 집에 있소?>>

<<집에 있소.>>

<<집에서 무어하우?>>

<<엄마? 엄마 아빠하구 쌈했소. 밥두 안 먹구 드러누웠소.>>

이때 마침 아이의 아버지 신주임이 현관으로 들어오다가 보고

<<아 저 녀석 또 들어왔니? 그렇게 들어오면 안된다구 말을 일렀건만...>> 하고 선장의 품에 안긴 아들을 나무랐다.

밤에 원부관이 군복을 벗지 않고 구두도 신은채로 침대에 엇비스듬히 누워서 권연을 피우며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는 선장이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은대로 이야기해들렸다.

<<장위원장을 그놈들이 잡아가두기만 했지 죽이진 않았대여. 고놈의 진난쟁이두 억류됐다는구먼. 지하실 맥주상자들틈에 숨어있는걸 끌어냈다나봐. 새빠진 놈이지. 양호성이하구 배가 맞아 둘이 같이 꾸몄다는거야 이번 음모를. 그러나 아무튼 어벌이 큰 놈이야 장학량이란 놈이.>>

<<그 사람들이 대관절 무엇때문에 그런 엄청난짓을 했다는거요?>>

<<공산당을 치지 말구 일본놈을 치자는거지.>>

<<공산당을 치지 말구 일본놈을 치자구? 응 난 또...>>

<<공산당하구 기맥을 통했었나봐.>>

<<원형은 그럼 어떻게 생각하우, 그들의 주장을?>>

<<주장이야 솔직히 말해 장학량의 주장이 옳지. 그렇지만 우리 위원장이 잘 말을 들을가? 어려울걸 아마.>>

<<하지만 잡아갇히웠으니 어떻거우? 말을 안 들으며 비상수단을 쓰잖을가?>>

<<모르지, 사태가 장차 어떻게 벌어질는지... 온 나라가 들썽들썽하는 판인데.>>

말하고 원부관은 덧붙여서

<<사태가 어떻게 벌어지거나 내 알배때기 있나... 될대루 넨장.>> 하고 누운채 머리맡에 놓인 재떨이에다 꽁초를 눌러껏다.

<<이러다가 또 반란을 평정한다구... 야단법석이나 하지 않을가?>>

<<넨장할 또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져?>>

<<골머리가 아프구려.>>

<<누가 아니래여.>>

<<그렇지만 최고가 볼모루 잡혔는데... 함부로 무력행사야 못하겠지.>>

<<독을 보아 쥐를 모신다 그말인가?>>

<<그렇지.>>

<<글쎄... 하응흠이란 도둑놈이 어떤 맘을 먹을지 그 심보에...>>

원부관의 념려는 바이 근거가 없지 않았다.

이날 오후 사단장이 불시에 사령부성원들을 회의실에 모여놓고 자못 긴장한 얼굴로

<<...본 사단은 래일오전중으루 주둔지를 철거하구 서북방향으루 이동한다. 새로 편성한 후방부만 뒤에 남는다. 여러분은 참모장의 지휘하에 어김없이 행동해주기를 바란다. 이상!>>

짧은 훈유를 마친뒤에 사단장은 뒤에 섰는 참모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옆으로 비켜섰다.

참모장이 곧 앞으로 나와 미리 작성한 계획서를 펼쳐놓고 사람들을 전후좌우로 장기쪽 옮겨놓듯하는데 원부관과 선장이는 사령부를 따라가고 신주임 신참모는 후방부에 떨어지게 되였다.

<<일본륙전대를 바루 코앞에 놓아두구 수천리 떨어지 서안으루 장학량을 치러 가? 미쳤나?)

선장이가 어이없는중에 또 한편으로는 속이 달았다. 남의 나라의 수치스러운 내전에 가담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부대가 18시간 안으로 정도에 오르는것은 움직일수 없는 사실이다! 선장이가 갑자기 어수선해진 사령부를 벗어나 대장거리 중간에 있는 우전분국으로 달려왔다. 남경 화로강 이연선림 윤대성앞으로 전보 한통을 쳤다. 그리고 돌아와 부리나케 소관문서들을 정리하여 신주임에게 넘겨준 뒤 제 방에 돌아와 길떠날 차비를 하였다. 대장거리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가 끝난 뒤 원부관하고 둘이서 잠시 한담하였다.

<<보산 나가 배를 타구 한구까지 거슬러올라갈 작정인가?>>

<<아니 아니.>>

<<아니라구... 그럼?>>

<<장강구루 빠져서 바다길루 련운항까지 갈 모양이야. 거기서 다시 룡해선을 리용하게 되겠지 아마.>>

<<벌써 폭격을 시작했다며?>>

<<주로 비행장들에 대해서만.>>

<<그러다가 저편에서 괘씸하다구 볼모를 해치우면 어떻거지?>>

<<해치우면 하응흠이 그 도둑놈이 좋아할판이지. 최고가 돼보구싶어 몸살을 하는 놈이.>>

<<복잡하구려.>>

<<현대판 `삼국연의`야. 그렇지만 부인이 오라버님하구 같이 서안을 갔다니까... 오래잖아 무슨 소식이 있을테지.>>

원부관이 말하는 부인은 송미령을 지징하는것이고 오라버님이란 장개석의 처남 송자문을 지칭하는것이다.

이튿날 오후 서너시경에 벌써 선장이를 태운 기선은 황해 넓은 바다를 북으로 북으로 물결을 헤가르고 있었다. 추진기가 휘저어놓은 물면이 부글부글 끓으며 넓고 긴 띠처럼 늘어지는데 그우에다 검은 연기를 낮추 나붓기며 달리는 기선을 지꿎은 갈매기떼가 무슨 구경거리나 난것처럼 왁자지껄하며 따라왔다. 배전란간에 기대서서 쌀쌀한 바다바람에 불리며 저물어가는 황해의 초겨울의 경색을 바라보는 선장이의 마음은 어수선산란하였다. 전혀 무의미할뿐만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한 전쟁에 까닭없이 휘말려드는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는데다가 전보가 바로 들어갔는지 어쨌는지를 몰라 더구나 속이 지글지글 끓었다.

(특무기관에서 깔아버린거나 아닐가?)

(왜 하필이면 륙로를 가지 않구 해로를 가노!)

(혹시 화로강에 무슨 변고가 생겼나?)

별의별 억측을 다하였다. 나중에는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라는 말이 생각나 쓴웃음을 웃었다. 맨 의심스러운것 천지였다. 불길한 예감을 떨어버리려는듯이 도리머리를 치고 이미 세운 외투깃을 다시한번 세웠다. 고향 원산앞바다의물이 맑고 투명한데 비하면 황해의 물은 어쩐지 좀 맑지 못하고 흐리였다. 느닷없는 향수가 선장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고국 두고 온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같은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 쌍년이, 한선의, 숙자아주머니, 김영하선생님 그리고 순박한 어멈의 실눈과 빈대코... 원산에서 있은 일은 전생에 있었던 일같이 아득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있은 일은 달나라, 별나라에서 있었던 일같이 묘망하였다.

<<서참모.>>

달콤하고도 차부나분한 목소리가 귀가에 울리여 선장이가 꿈에서 깬 사람같이 현실로 돌아왔다. 고개를 돌이켜보니 루즈를 짙게 바른 젊은 녀자의 상글거리는 얼굴이 숨결이 느껴질만큼 가까이에 있었다(진주알 같은 이발이 드러나는 그 입술은 이슬에 젖은 피빛의 장미꽃이파리처럼 농염하였다).

사단장의 새끼손가락이다! 쉰세살 먹은 사단장의 스물세살 먹은 소첩이다!

선장이는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무얼 하구계세요. 서참모? 대장거리에 두구 온 련인생각을 하시나요?>>

(누가 보면 어쩌려구 이 녀자가 이럴가!)

선장이는 등시포착을 당한 사이서방인것처럼 어쩔바를 몰랐다.

<<미남자, 우리 언제 한번 조용히 좀 만날가요? 할 말이 있에요. 정말이예요. 싫으세요?>>

녀자의 능갈친 태도에 선장이 가슴속에서는 두방망이질이 더욱 빨라졌다.

<<저 실례지만 볼일이 좀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안녕히!>>

인사말 같지도 않은 인사말을 남기고 선장이가 도망치듯 자리를 피아였다.

<<졸장부! 목석!>>

뒤에서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뉘 목이 달아나는걸 보려구... 망할 년!)

아침안개가 자욱한 련운항은 군대를 만재한 대소선박들로 붐비였다. 선장이가 사령부 인원들과 함께 뭍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한낮이 가까왔었다. 원부관은 머리에 쓴 군모가 비뚤어져 채양이 귀우에 와있는거도 모르고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하였다. 거리거리 골목골목이 마치 설밑의 장거리처럼 분잡스러웠다. 서안에서 수천리 떨어진 룡해선의 동단이 이럴진대는 서주나 정주, 락양쯤은 어떠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선장이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개지랄 같은 전쟁소동이였다. 곽참모장이 죄송해 쩔쩔매는 철도역장과 수송대장을 앞에 불러다 세워놓고 거행불민하다고 야단을 쳤다.

<<이게 무언가 엉? 명령을 받았으면 미리미리 준비가 있었어야지. 이게 무언가 엉? 래일해안으로 정주에 득달을 해야 한다는건 알구들 있었을테지. 그런데 이게 무언가? 어디 대답들 좀 해보라구. 이게 무언가 엉?...>>

참모장이 화가 나 <<이게 무언가 엉?>>을 아무리 곱씹어도 또 수송대장과 철도역장이 아무리 쩔쩔매며 진땀을 흘려도... 없는 차바곤은 역시 없었다.

예정대로 떠나지 못하게 된 사단은 부득이 설영을 할 밖에 없었다. 이른 저녁때에야 설영하는 수선이 일단 끝이 났다. 선장이가 하루종일 메고있던 멜가방을 벗어서 정해진 처소의 녹쓸고 찌그러진 못에다 걸어놓고 잠간 좀 누워 쉬려고 하는차에 원부관이 급한 걸음으로 쫓아들어왔다.

<<서소위, 륙참모가 부르네. 가보게.>>

륙참모는 신주임의 대리를 보는 노랑테-소좌였다.

<<어. 서소위.>>

<<녜.>>

<<상부에서 그대를 즉시 후방부로 돌리라는 전보가 왔으니... 지제 말구 곧 행장을 수습하두룩.>>

<<녜 어느 후방부루 말입니까?>>

<<어느 후방부는 어느 후방부야... 대장거리 우리 후방부지. 가거든 신주임의 지휘를 받두룩.>>

<<녜 알았습니다.>>

선장이가 처소에 돌아와 못에 걸었던 멜가방을 떼여내리니 원부관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두 모르우. 어떻게 된 일인지.>>

선장이가 바른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거 참 괴상한 일이로군.>>

<<괴상할것두 쌨소.>>

<<아니야 심상찮아.>>

<<심상찮긴 뭐가 심상찮다구 그러우... 괜히... 이런 일두 있구 저런 일두 있지.>>

<<그 손에 든건 무어야?>>

<<통행증. 타구 온 배를 도로 타구 가라는구려.>>

선장이가 대장거리를 떠났다가 엿새만에 대장거리로 되돌아왔다. 누구보다도 선장이를 반겨맞은것은 신주임의 아들이였다. 아저씨가 왔다고 손벽을 치며 좋아 날뛰는것을 보다가 선장이는 까닭없이 코가 찡해나는것을 느꼈다.

정부까지 이동했던 부대도 장개석이가 놓여나 남경으로 귀환을 하는 바람에 한달후에 회군하여 원래의 상태로 복귀되였다. 그동안에 해가 바뀌여 1937년-중국인민이 영원히 잊지 못할 재난의 해가 되였다.

7월 7일 로구교에서 중일 량군이 충돌하였다는 소식은 태평스러운 꿈속에 잠겼던 대정거리를 한번 뒤흔들어놓았다. 일본륙전대를 지척에 두고도 5년전-1932년 1월 28일의 아픔을 언제 잊었는지도 모르게 잊었던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의 뇌리에 또다시 위협적인 존재-일본침략자란 개념이 침침칠야의 번개같이 날카롭게 선명하게 비쳐들었다. 그러나 사령부의 상층들은 사태의 엄중함에 비추어 불안은 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설마 여기까지야? 설마 여기까지야?)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 자기안위로 그날그날을 흐리멍텅하게 보내였다.

(로구교사변은 양자강 건너, 황하 건너 까마득한 곳에서 생긴일이 아닌가. 걱정이 반찬이면 상발이 무너진다지. 사날 좋게 열두폭치마를 입을것 무어 있어. 제 코나 닦으면 고만이지. 공산당의 호소문? 그런건 다 그자들의 민심을 요동시키는 상투수단이야.)

이라하여 손톱 곪기는것도 모르고 염통 곪기는줄은 더구나 모르고 그 식이 장식으로 그저 벼슬이 오를 궁리, 천냥을 모을 궁리만 하고들 있었다. 썩은 늪같이 침체된 생활이였다.)

8월 9일. 상해 서교에 위치한 홍교군용비행장에 일본군장교 한놈과 병사 한놈이 군용차를 몰고 돌입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더 말할것도 없이 일본제국주의의 전쟁도발책동이였다. 그러나 놈들은 수치스럽게도 민족의 존엄을 목숨으로 사수하는 용감한 중국위병에 의하여 당장 사살되였다. 그러자 나흘후, 순양함 이즈무를 기함으로 일본침략군의 함대가 오송구를 뜷고 황포강을 꾸역꾸역 거슬러올라왔다. 개장거리를 포근히 감쌌던 안일한 꿈, 어리석은 꿈은 대번에 산산쪼각이 나버렸다. 공산당이 호소는 민심을 요동시키는 상투수간이 아니라 중화민족 존망의 위기를 알리는 웨침이고 경종이였던것이다.

이날 새벽 선정이가 일찌기 일어나 소세를 마친 뒤에 머리가 푸시시해가지고 침대에 길게 누운채 늑장을 부리며 담배를 피우고있는 원부관을 재촉하였다.

<<원형 어서 일어나우, 참모장이 또 화내겠소.>>

<<넨장할, 화를 내겠으면 내구 역정을 내겠으면 내구-내야 알배때기 있나. 나이 스물여덟에 밤낮 대위 부관이 뭐야? 임자가 내말루 전하라구... 한급 올려주잖으면 오늘부터 무기한 사보타지에 돌입한다구.>>

원부관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할수없이 일어나기는 일어났다.

<<임자 안전면도 좀 빌리라구, 내껀 날이 무뎌나서...>>

선장이가 서랍에서 안전면도를 꺼내주며

<<이럴 땐 수염이 텁수룩해야 참모장이 더 좋게 볼걸.. 바삐 돌아치느라구 면도질할 사이두 없다구. 기특하다구.>>하고 웃으니 원부관은

<<피 게으라다구 욕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하고 일소에 붙였다.

선장이가 한걸음 앞서 장교식당으로 오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날카롭게 공기를 헤가르는것 같은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쳐들어보니 아무것도 눈에 뜨이는것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굉장한 폭발성과 함께 땅이 들놀며 잇달아서 화약내와 화약내굴이 콱 안겨왔다. 전후좌우에 련이어 떨어져 터지는것은 폭탄이 아니고 포탄이였다. 폭격이 아니고 포격-함포사격이였다. 황포강에서 대장거리를 함포들의 사정안에 들어있었다.

한바탕 들이 퍼붓고나서 사격이 좀 뜨음해진 뒤에 보니 고대까지도 생기가 돌던 대장거리라 삽시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되여버렸었다. 형체없이 무너져버린 집들, 먼지로 뒤덮이고 연기에 휘감긴 집들... 온 거리에 성한 집이라곤 눈 보이는게 거의 없었다. 날벼락같이 포탄으로 밭을 갈아놨는데 남을것이 무언가!

갈린 목소리로 고함을 치는 사내들, 얼빠진 사람모양 멍하니 서있는 로인들, 흐느껴우는 아낙네들과 통곡을 하는 마누라들, 어린아이들의 울부짖음, 채 죽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 차마 눈을 뜨고는 볼수가 없는 피투성이의 끔직한 시체들... 두개골에서 살가죽이 홀딱 벗겨져 풀귀얄모양으로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사람의 머리털, 한쪽끝은 갈라진 배속에 그대로 남아있고 한쪽끝만 연줄처럼 높이 전선줄에 올라가 걸려진 사람의 밸... 선장이는 먼지범벅이 된 사람의 시체를 모르고 밟고 물큰하는 바람에 질겁을 하였다.

초연이 가시지 않은 생생한 페허속에 신주임이 실신한 사람처럼 맨머리바람으로 서있는것을 발견하고 선장이가 쫓아가보니 신주임 발밑에 그 안해와 아들의 시체가 피바다에 잠기여 가로세로 누워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따르던 어린것의 참혹한 주검을 눈앞에 보고 선장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사나이의 울음을 울었다. 신주임은 억이 막혀서인지 우는 선장이를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 눈에는 한방울의 눈물도 없었다.

<<8.13>> 에서 맨먼저 적의 포탄의 세례를 받은 조선사람은 서선장소위였다.

전쟁상태에 들어간 사단사령부는 아연 활기를 띄웠다. 춘곤을 못이겨 하품만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리찬 초겨울을 맞기라도 한것처럼 정신들을 차렸다. 선장이는 더 참을수 없어서 직접 참모장을 찾아들어가 탄원을 하였다.

<<화산으루 내려보내주십시오. 중대루 내려보내주십시오. 온몸의 피가 끓어 더는 참을수가 없습니다. 원쑤들에게 직접 총탄을 들퍼부어줘야 이 속이 후련할것 같습니다. 저 이제 스물두살입니다. 후방에 앉아있어선 무얼 합니까?>>

참모장이 선장이의 격동된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타이르듯

<<외국인간부는 수자가 적으니까 특별히 애호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 그래서 못 내려보내는거야.>> 하고 달래였다.

<<우리 나라는 일본강도에게 먹힌지가 벌써 스물일곱햅니다. 제가 나기전에 벌써 망했습니다. 수치스러운 망국노루 살아있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겠습니다.>>

선장이가 격앙된 감정에 사로잡힌것을 보고 참모장은 엄숙한 얼굴로 한동안 생각해보다가

<<좋아그럼. 맞갖잖으면 다시 올라올 셈잡구 한번 내려가보아.>> 하고 누그러들었다.

선장이가 참모장실에서 물러나와 행장을 수습하고있을 때 원부관이 488련대 련대장에게 내려보내는 참모장의 지령서를 가지고 왔다.

<<왜 전쟁귀신이 되구싶어 몸살이 나?>>

선장이는 대꾸 않고 웃으며 지령서를 받아쥐였다.

<<야외련습인줄 알아?>>

<<원형, 신세 많이 졌소.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하고 선장이가 악수를 청하니 원부관은 선장이의 손을 마주잡고 못마땅한듯이

<<모를 일이야, 아무래도 모를 일이야.>> 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조심하라구.>>

간곡히 당부를 하였다.

선장이가 련대를 거치고 또 대대를 거쳐 중대에를 내려다보니 중대장은 중앙군교의 선배로서 중위 소대장에서 대위 중대장으로 갓 승진한, 얼굴에 주근깨가 박힌 사람인데 이름은 왕세영이고 고향은 호남 상덕이라고 하였다.

서선장소위가 488련대 제2대대 제3중대 제2소대 소대장으로 임명이 되여가지고 소대성원들과 첫대면을 하였다. 소대의 실급양인원이 원래도 3개 분대 36명 밖에 안되던것이 요 며칠 전두에 셋이 죽고 셋이 중상으로 야전병원에 후송이 된 까닭에 모두 30명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가운데 또 머리와 팔에 피가 벌겋게 밴 붕대를 감은 경상자가 둘이 있어 실지로 제 몫을 감당할만한 전투원은 겨우 스물여덟 그리고 각 분대를 갈라맡은 하사관들도 중사 셋과 하사 셋이 있을뿐 상사는 하나도 없었다(그중의 둘이 경상자-붕대들을 감고있었다). 경기관총 3정에 탄약이 충족한것은 그나마 다행. 직계부대라서 장비와 급양만은 방계부대들에 비해 단연 우월하다.

선장이가 생후 처음 전호속에서 병사들과 같이 생활하며 실전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8.13>>에서 맨먼저 피를 흘린 조선사람으로 되였다. 첫날 전투에서 당황망조한중에 군관학교에서 애써 배운 <<살인과학>>이 실탄이 우박치는 싸움터에서는 별로 소용에 닿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지식은 별로 없으나마 실전의 경험이 풍부한 고참분대장들앞에서 군관학교 졸업생이라는 선장이가 실수를 여러번 하였다. 그래서 선장이는 <<불치하문>>으로 모든것을 그들에게 물어가며 하리라 마음 먹었다(한가닥 겸허심을 간직하고있는것이다). 선장이를크게 고무하고 또 신심을 북돋아준것은 병사들의 락관적정신과 왕성한 사기였다. 적과 맞불질을 할 때 적개심에 불타는 그들의 눈에서는 푸른빛이 번쩍였다. 개개 다 성난 사자였다. 그러나 일단 전황이 좀 너누룩해지면 그들은 전호속에 모여앉아 고누를 두며 롱지거리를 하는것이였다.

<<네 그 민며느리가 몇살이지?... 이쁘냐?>>

<<시시한 소리 작작 지껄이구 어서 말이나 써라.>>

<<같이 자봤지?>>

<<허 그 자식 거참.>>

<<그건 왜 꼬치꼬치 캐묻니... 샘이 나냐 니?>>

<<아니. 너두 하나 얻어줄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

<<오 그러니까 네가 쟤 아버지루구나.>>

<<아니, 걔가 얘 양아들이야.>>

<<이것들이 정말!>>

전호속에서 기름걸레로 권총을 닦다가 등뒤애서 이와 같이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려 선장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대부분이 가난한 중국농민의 아들인 그들은 일본침략군과 마주 싸우는 전쟁마당에서 선장이의 믿음직한 전우-항일의 동지들이였다.

상해는 포성으로 날이 밝고 포성으로 날이 저무는것 같았다.

황포강에 늘어선 일본군함들과 장발규부대가 지키는 포동의 포대들사이에 포격전이 벌써 한주일째 계속되였다.선장이가 지휘하는 소대는 다른 소대, 다른 중대들과 함께 진격을 거듭하는 적들은 벌써 오륙차나 물리쳤다. 선장이의 소대는 사상자가 없는 날이 없어서 며칠 어간에 30명에서 24명으로 줄어들었다. 여느 소대들도 대개 비슷한 형편이였다. 가장 골치가 아픈것은 적의 항공모함에서 날아오는 불악귀 같은 함재기들이 안하무인격으로 기탄없이 제멋대로 발광적으로 폭격을 하고 또 기총소사를 하는것이였다. 아군의 항공기는 수량상으로 절대적인 렬세에 처해있었다. 대공화력도 형편없이 미약하였다. 그래서 선장이네 소대의 기총사수들도 여느 소대들에서처럼 대공사격을 할 때는 기관총의 량각을 전우의 어깨에 걸어놓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격을 하였다. 지상의 적보다도 공중의 적이 더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이날 새벽 적의 함재기들이 먼저 머리우에 날아와 미친듯이 공대지(空对地)공격을 하고난 뒤에 잇달아서 적의 지상부대가 공격을 개시하였다. 자옥한 초연에 숨이 콱콱 막히는 전호. 흉벽에 엎드려 사격을 하다가 기총사수 하나가 작탄에 머리를 맞고 소리도 없이 실그러져 넘어갔다. 손이 모자라서 만분위급한중에 소대장인 선장이가 재빨리 그 자리에 갈마들었다. 그리고는 카키색군복에 싸인 원쑤들의 몸뚱이를 향하여 원한 맺힌 증오의 탄알을 부채살 펴듯이 하였다. 한창 정시없이 쏴갈기는중에 왼쪽 견대팔에 단 부저가락이 스쳐지나가는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탄창을 갈때 소매속이 척척하여 비로소 총을 맞은것을 알았으나 당장 코앞에 들이닥치는 적들을 놓아두고 그런것을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일단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나서 미적지근해진 빨병의 물을 마시고 숨들을 돌리는차에 위생병이 뒤늦게 쫓아왔다. 피에 젖은 군복소매를 수술가위로 베버리고 다친 팔에다 붕대를 감아주어 선장이는 한쪽 소매가 없는 군복을 입고 제딴에도 기대앉았던 부하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인제 이 소대-제2소대에 살아남은 전투원은 소대장까지 모두 합쳐 18명으로 줄어들었다. 한분대가 푼한 병력이였다. 전호속에서 점심들을 막 먹고났을 때 증원부대가 교대를 해주러 왔다. 선장이는 지키던 전호를 내맡긴 뒤 소대를 거느리고 중대를 따라 대장거리 못미처에 산재한 동네들로 정돈휴식을 하러 왔다.



때아닌 일본해군 함포들의 일제사격에 놀라 깬 상해시민들은 격발된 민족감정과 앙양괸 애국열정으로 항전장병을에 대한 지원운동에 일떠났다. 부유한 가정의 점잖은 부인네들이 거리에 세워진 금품헌납대를 찾아와 금반지, 금팔찌를 빼내놓는가 하면 리발사의 여라문살 먹은 아들이나 택시운전사의 소학교 다니는 딸이 속에 들어있는 동전이 짤랑짤랑 소리를 내는 벙어리들을 들고 달려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백발이 성선한 할아버지가 지팽막대를 드던지며 찾아와가지고 한평생 절의절식하여 모아둔 돈을 저금통장채로 바치면서

<<우리 나라 장사들이 왜적의 침노를 막는데 써주시우. 나라가 없으면 집이 왜 있겠소이까.>> 하고 차탄하는것을 듣고는 감경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렇듯 항전장병들에 대한 위문활동이 온 상해를 열풍같이 휘몰아치는중에 댄스 홀메트로폴리스의 댄서 송일엽이 휘말려들지를 않을리가 없었다. 그녀는 매트로폴리스의 번화한 밤생활을 벌써 두주일째 중단하고 파편이 날고 피가 흐르는 전쟁판을 동분서주하였다. 행동하기 간편하라고 투피스와 스카트를 벗어버리고 양복바지를 갈아입고 또 뾰족구두를 벗어버리고 정구화를 갈아신었다. 이동잡화점, 이동식품점을 방불케 하는 트럭에 앉아 곳곳이 찾아다니며 싸우는 장병들을 격려하고 또 피흘린 부상장병들을 위문하였다. 그리고 애국적상해시민들의 푸짐한 선물을 전달하였다. 사치한 하늘색운동샤쯔를 받아들고 너무 좋아 입이 벌어지는 전사들을 볼 때, 또는 쵸콜레트와 과일통졸임을 량손에 받아쥐고 싱글벙글 좋아하는 병사들을 볼 때, 송일염은 아름다운 인생을 새삼스레 가슴으로 느꼈다. 이 세상에 사는 보람을, 삶의 참된 보람을 새삼스레 심장으로 느꼈다.

이날 송일엽이 교워, 배우, 사회활동가, 연예인들로 조직된 위문대의 남녀성원들과 함께 원래는 대장거리에 있던것이 포탄벼락을 맞는통에 부랴부랴 가근방 동네들로 소개한 뒤 사단사령부를 먼저 찾아보고 또 그다음에 련대본부를 위문한 뒤 다시 대대를 거쳐 중대로 내려왔다. <<장>>이나 <<병>>이나 다 위문을 해야 한다는것이 위문대의 취지였으므로 상층을 빼놓고 하층만을 위문할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바퀴자국들이 섞갈려나 평탄하지가 못한 길을 몹시 들추며 달리는 트럭. 송일엽이 그 트럭 운전실뒤에 붙어서서 앞을 바라보니 오른편 앞길에 그리 크지 않은 동네 하나가 나서는데 그 안팎에 군대들이 버걱버걱하도록 많았다. 동구길로 접어들어가지고 조금 오려니까 왼손편에 자그마한 무슨 사당 하나가 있고 또 그 바로 옆에 웅장한 홰나무 한그루가 솟아있었다. 사당앞에다 모여총들을 해놓고 10여명의 병사가 나무그늘에 퍼더앉아 쉬고들 있었다. 그들의 지휘관인듯싶은 젊은 장교가 앉지 않고 서서 무슨 주의를 주고있는 모양인데 병사들은 그 말끝마다 번화스레 웃음보를 터뜨리군 하였다. 제3자가 보기에 벌써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트럭이 앞에 와 멎어서니 누구의 명령도 없이 병사들이 죽 일어섰다. 한쪽 소매가 없는 군복을 입고 그 팔에다 붕대를 감은 젊은 장교가 시적시적 앞으로 맞아나와 환영하는 뜻으로 거수경례를 하였다(오른팔은 성하였다). 트럭우에서 그 장교를 서산장이로 알아보자 송일엽은

<<미스터 서!>>

급하게 부르며 얼른 길우에 뛰여내렸다. 선장이가 반응이 좀 무디여 어리뻥해 섰는중에 송일엽이 쫓아와 그 손을 꼭 잡았다. 운전실에서 내린 두 남자와 적재함에서 따라 내린 두 남자, 두 녀자가 뒤에 와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나무그늘에서 병사들이 신기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4년 못 보는 동안에 표표한 청년장교로 자라난 선장이의 여러날 세수 못한 얼굴을 송일엽은 정이 어린 눈으로 파고들듯이 들여다보았다.

추천 (3) 선물 (0명)
IP: ♡.50.♡.69
로즈박 (♡.39.♡.172) - 2023/11/05 20:15:35

아이고..어떻게 두사람이 전쟁터에서 만나네요..
두사람의 인연이 어떻게 되는건지 몹시 궁금합니다..
설마 아니겟죠?

23,51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2-07
0
286
단차
2023-12-07
0
130
단차
2023-12-06
0
205
단차
2023-12-06
0
166
단차
2023-12-06
0
144
단차
2023-12-06
0
94
단차
2023-12-06
0
131
단차
2023-12-05
1
245
단차
2023-12-05
1
203
단차
2023-12-05
1
180
단차
2023-12-05
1
217
단차
2023-12-05
1
309
뉘썬2뉘썬2
2023-12-04
1
208
뉘썬2뉘썬2
2023-12-04
1
370
단차
2023-12-03
0
213
단차
2023-12-03
0
209
단차
2023-12-02
0
173
단차
2023-12-02
0
185
단차
2023-12-02
0
178
단차
2023-12-02
0
199
단차
2023-12-02
0
202
단차
2023-12-01
0
150
단차
2023-12-01
0
225
단차
2023-12-01
0
219
단차
2023-12-01
0
142
단차
2023-11-30
0
135
단차
2023-11-30
1
163
단차
2023-11-30
0
151
단차
2023-11-30
1
174
단차
2023-11-30
0
248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