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16~17

단차 | 2023.11.14 08:08:43 댓글: 2 조회: 179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452
16


 경민은 차 트렁크에 텐트와 각종 야영 장비를 실었다. 아직 한아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걸까? 오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여기까지 와서 다 망쳐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경민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가다듬다니 얼마나 인간다운가, 쓸데없이 혼자서도 그런 연기를 하다니. 경민은 헛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디데이예요.”

  “계획대로 산꼭대기에서 프러포즈하게요? 멋지다. 근데 한아가 등산할 체력이 되던가? 결과가 좋든 안 좋든 말해주세요.”

  오늘은 유리의 목소리에서 칼칼함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갑각류 같은 사람, 겉껍질 안쪽엔 부드럽기가 그지없었다. 경민이 웃었다.

  “네, 그럴게요.”

  전날, 흔들리던 한아의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 눈을, 그런 표정을 마주하려고 먼길을 온 건 아니었다.

  “유리씨.”

  끊으려는 유리를 붙잡았다.

  “네?”

  “만약 한아와 헤어지게 되어도, 정말 고마웠어요.”

 
 “설마 그렇게까지 상황이 나빠질 리가요. 다시 안 볼 사람처럼 감사 인사 같은 거 하지 마요.”

  “한아가 거절하면…… 돌아가야죠.”

  “친구로? 에이, 친구로 돌아가긴 너무 늦었어.”

  “여튼, 밤에 바로 보고드릴게요!”

  “그래요. 요즘 산에서도 휴대폰 잘 터지더라. 나 엄청 궁금해할 거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면 좋겠는데, 머릿속에서 재차 시간을 계산해보며 경민은 한아를 기다렸다. 오지 않는다 해도 이해할 수 있다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마음에 어떻게든 마찰을 만들려고 하고 있을 때 모퉁이를 도는 한아가 보였다. 

  어두운 한아의 표정에도 경민은 반가웠고, 북받쳐올랐고, 사랑을 확신했다. 등을 곧게 폈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었다.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희망을 놓지 못한 경민이 보지 못한 것은 한아의 백팩 속에 든 전기 충격기였다.

 

  한아와 경민이 차에 올라타 떠나고 난 후, 다른 방향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주영이 나타났다. 주영의 에코백 안에는 진짜 총과 무게가 똑같은, 아마 살상력도 비슷할 비비탄총이 들어 있었다. 에코백의 바닥이 축 늘어져 있다. 

  주영은 망설이지도, 헤매지도 않고 곧바로 경민의 집으로 향한다. 입주자인 것처럼 느긋하게, 보안이랄 것도 없는 빌라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 층에서 일단 초인종을 눌러보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살짝 열린 창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창문엔 방범창이 달려 있긴 했지만, 툭툭 건드려보자 세로대 하나가 빠졌다. 체구가 작은 주영이 들어가기 딱 맞는 틈이 생겼다. 방충망도 그 안쪽도 제대로 잠겨 있지 않았다. 

  주영은 겉옷을 벗어서 먼저 밀어넣고, 주변을 살핀 후 몸도 밀어넣었다. 어두운 실내에 머리를 들이밀며, 주영은 아폴로가 사라지기 전의 자신 역시 영영 사라졌다고 느꼈다. 

  불법 개조된 무기를 들고 무단 침입을 하는 스스로를 예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착잡한 감정들은 주영의 행동을 느리게 하지도 멎게 하지도 않았다. 김경민이 아폴로의 실종에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다면 주영은 알아야 했다.

 
  주영은 바닥에 발을 디딘 다음 발자국을 지우고, 신발을 벗어 옆구리에 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넓지 않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뭐야, 이놈의 집 꼴은.”

  용도가 뭔지 애매한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만들다 만 것 같은 기계들이 가득했다. 

  창가에는 길쭉한 망원경이 놓여 있었다. 해적 영화 소품처럼 보였는데 몸통 전체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매우 낯설었다. 문화재 불법 유통? 또 눈길을 끄는 건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크리스털들이었다. 가짜 명품 제조? 주영은 한 무더기를 헤집어보았다. 들쭉날쭉한 모양으로 보아 별로 비싼 건 아닌 것 같아, 손바닥에 붙은 보석을 팅 하고 튕겨 털어냈다.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도 열어보았다. 놀랍도록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었다. 아폴로의 머리라도 들어 있을까봐 잠깐 긴장했었다. 여기 꼴을 봐선 뭘 발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득 창가의 수상한 망원경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천체 관측용이라기엔 너무 짧고 각도도 낮은데? 역시 성범죄자인가? 

  주영이 막 망원경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문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주영이 총을 꺼내어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정규였다.

  “움직이지 마요.”

  그러나 정규도 총을 들고 있다. 그것도 주영의 것보다 훨씬 제대로 된, 아무리 봐도 진짜로 보이는 총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서로 총을 겨눈 두 사람의 호흡이 어지럽게 흩어진다.

  이건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뭐야?

 


 17



 차에 굉장히 정교해 보이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한아는 긴장과 두려움을 이기려고 말을 건다.

  “내비게이션 샀나봐?”

  세상에, 남자친구가 두렵다니. 어쩌다 이런 지경에 온 걸까. 종국에는 아무 감정 없어질까 걱정했었던 적은 있지만 두려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음, 산 건 아니고 만들었어.”

  경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도로를 주시하며 대답했다. 공대 출신들은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예체능 계열인 한아는 대학 시절 경민의 전공 책 내용을 한 줄도 못 읽었던 기억이 났다. 경민도 한아의 분야를 이해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경민이 보는 책은 정말이지 외계어 같았다.

  말이 잠시 끊긴다.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불편하게 꽉 찬 침묵이 흐른다. 젤리 같은 공기, 아주 맛없는 젤리 같은 공기를 못 견디고 경민이 다시 입을 연다.

  “함께 떠나본 일은 잘 없었던 것 같아.”

  “응. 바보 같지만 난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전혀 진취적이지 않지.”

  한아가 자조적으로 대답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 안 해. 한 번도 너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한아는 경민의 말에 살짝 기분이 풀렸다.

  “그거 알아?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이랑 하지 않는 사람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크게는 일곱 배까지 차이 나는 거?”

  경민이 웃음을 삼키려 애를 썼다. 저런 점이 정말 참을 수 없이 귀엽다니까. 오늘따라 예쁘다는 둥의 흔한 칭찬을 했다면 저렇게 기뻐했을까.

  “그래서 이 차도 좀 개조했어. 원래 크기만 하고 연비는 형편없는 차였는데 이제 리터당 40킬로미터쯤 갈 수 있어. 네가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타라고.”

  “그런 연비가 가능해? 대단하다. 속도도 잘 나오는데 신기하네. 언제 그런 걸 다 했니? 어쩌면 너는……”

  “응?”

  한아는 잠시 말을 골랐다.

  “어쩌면 나는, 네가 너무 좋은 방향으로만 변하니까 겁먹었는지도 몰라. 너는 자꾸 변하는데 나는 정체되어 있는 걸까봐, 겁먹은 걸지도. 미안해. 뉴스 봤어. 네가 조난 신호용 랜턴을 개발하고 있는 줄 몰랐어. 아이디어가 넘치는 타입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제대로 하고 있을 줄은…… 게다가 망상에 가깝게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었어. 어제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셨던 건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니까. 네가 들으면 웃을 거야. 아니, 화낼 거야. 화를 낸다 해도 할말이 없어, 나는.”

  경민이 한 손을 핸들에서 떼어내 한아의 손을 잡는다.

  “불안하게 만든 거 알아. 하지만 오늘 밤엔, 다 말할게. 다 보여줄게.”

  “어? 너 열나. 손이 굉장히 뜨거워. 괜히 멀리 온 거 아냐?”

  한아는 간만에 잡아보는 그 손이 지나치게 뜨겁고 어딘가 촉감이 다르다고 느꼈다. 핸들에 열선을 넣었나?

  “자가 발전 때문이야. 신경쓰지 마.”

  “그런 농담 하지 마.”

  한아는 웃었지만 경민은 웃다 말았다. 웃다 만 게 미묘하게 신경이 쓰일 즈음,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휴가철이 아니라 국립공원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한아는 만약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러도 누가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버렸고, 그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경민이야. 요새 어째선지 모든 게 혼란스럽게 느껴졌지만 경민이야. 언제나처럼 경민이야. 경민이는 나를 해치지 않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즐겁게 있으면 돼. 처음에 경민이를 좋아하게 되었던 때처럼 있는 그대로 흐르게 두면 돼. 둘의 관계가 망가진 것은 한쪽이, 정확히는 내가, 안간힘을 써야 했을 때부터였으니까.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 한아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이제부터는 걸어 올라가야 해. 신발 편한 거 신고 왔어?”

  경민이 내비게이션을 차에서 분리했다.

  “그건 왜 가져가는데?”

  “이제부터 더 필요할 거야.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하거든.”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등산 지도가 필요하단 걸까? 웬만한 데는 화살표로 잘 표시되어 있지 않나? 경민은 한아를 이끌며 한동안 등산로를 그대로 걷다가, 곧 길을 벗어나 산을 헤쳐나가기 시작했고 한아는 불안해졌다. 

  날카로운 풀들이 한아의 허벅지를 스쳤고, 빛을 흡수하는 검은 나뭇가지에 몇 번이나 눈을 찔릴 뻔했다. 

  경민이 입은 흰 티는 어쩐지 달빛에 발광하는 듯했는데 한아는 오랫동안 봐온 그 등에서 익숙함을 찾으려 노력했다. 저 등은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한아를 아프게 하려고 빚어놓은 실루엣 같았다. 툭 튀어나온 양 어깨뼈 사이, 깊고 우묵한 곳에 이마를 대고 울고 싶어졌더랬다. 하지만 언제나 점점 멀어져 잰걸음으로 쫓느라 한아는 울 시간도 없었다. 

  그때마다 얻은 자잘한 상처 위에 상처가 겹쳐 단단한 살이 될 때까지 이토록 오래 걸렸는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아파지려는 걸까? 아파할 여력이 남아 있었나. 이런 강렬한 감정들에 다시 휘말릴 줄이야.

  더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막 그 말이 나오려는 차에 갑자기 뻥 뚫린 공터에 이르렀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기도 했고 나무들이 죽어 생긴 곳 같기도 했다.

  “여기야.”

  경민이 바닥에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았다.

  “아, 원래 알던 데야? 언제 와봤어?”

  “아니, 여기로 어떤 물건이 배달되기로 되어 있어. 네 옆에 있기 위해서 이런저런 계약을 해야 했거든.”

  대체 누가 이 밤중에 이 말도 안 되는 위치로 물건을 배달한단 말인가. 택배일 리는 없었다. 조직폭력배?

  “무슨 위험한 일에 연루된 거 아니지?”

  경민이 사랑스럽다는 듯 한아를 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한아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나 그거 싫어해. 이마.”

  “정말? 몰랐어. 자주 그랬던 것 같은데…… 미안.”

  경민이 이번엔 한아의 입에 제대로 키스했다. 이번엔 알고 있었는데도 피할 수 없었다. 불안과 의심이 차오르는데도 왜 경민을 외면할 수는 없는 걸까, 한아는 스스로가 못마땅했다.

  “자, 이제 텐트 치자.”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로즈박 (♡.43.♡.108) - 2023/11/14 22:02:45

헐..밤에 산을 갓다고요?아이고..무서워라..먼 일이 잇을거 같은데.ㅡ

단차 (♡.252.♡.103) - 2023/11/14 22:13:10

저도 밤에 산을 가면 아무리 믿을만한 사람과 가도 무서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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