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9

단차 | 2023.11.20 18:55:34 댓글: 2 조회: 245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9428
09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의 이동을 이용해 빠져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떠나던 날 아침,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말끔하게 정돈했다. 정성들여 활화산도 청소했다. 그의 별에는 활화산이 2개 있었는데 아침밥을 데우기에 그만이었다. 사화산도 하나 있었는데 그의 말마따나 '어찌 될지 누가 알겠나.' 그래서 어린 왕자는 사화산의 분화구 역시 청소해주었다. 화산은 청소만 잘해주면 폭발 위험 없이 서서히 꾸준히 타오른다. 화산 폭발이란 결국 굴뚝 속 불길이나 마찬가지인 거다. 물론 지구에서 화산을 청소하기에 우리는 턱없이 작다. 그러다 보니 화산이 그다지도 큰 골칫거리가 되고 마는 거다.





어린 왕자는 조금은 울적한 마음이 되어 최근에 돋은 바오밥나무 싹을 솎아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날 아침에는 일련의 익숙한 작업들이 유난히 정겹게 다가왔다. 꽃에게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우려는 순간, 어린 왕자는 울컥해진 자신을 느꼈다.
"잘 있어."
그는 꽃에게 말했다.
하지만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있어."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하지만 감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마침내 꽃이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사과할게. 부디 행복하기를..."
비난조라고는 찾을 수 없는 꽃의 말투에 그는 놀랐다. 당황한 나머지 유리 덮개를 손에 든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꽃의 이런 나직한 상냥함이 그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 나는 너를 좋아해." 꽃이 말했다. "네가 그걸 몰랐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그런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너도 나만큼이나 어리석었어. 부디 행복해... 유리 덮개는 내버려둬. 더는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바람이 불면..."
"감기... 그렇게 심하게 든 거 아니야. 신선한 밤공기도 도움이 될 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짐승들이 오면..."
"나비를 만나려면 두세 마리 벌레쯤은 견딜 수 있어야겠지. 나비는 아주 예쁜 것 같더라. 나비 아니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어. 너는 멀리 있을 거고 말이야. 덩치 큰 짐승 따위 하나도 안 무서워. 내게도 발톱이 있으니까."
꽃은 순진하게 자신이 지닌 가시 4개를 내보였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렇게 늑장 부리고 있지 마. 정신 사나우니까. 떠나기로 한거잖아."
꽃은 자신이 눈물짓는 것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만큼 도도한 꽃이었다.
​​



봄날의토끼님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1) 선물 (1명)
IP: ♡.252.♡.103
봄날의토끼님 (♡.65.♡.126) - 2023/11/21 04:20:53

서로 마음이 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강한척 하는 꽃의 마음이나 어린왕자의 울적한 마음이 모두 이해가 되네요.

단차 (♡.252.♡.103) - 2023/11/21 04:23:52

저도 꽃의 마음과 어린 왕자의 마음이 다 이해가 돼요. 엇갈림이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봄날의 토끼님 선물 감사드려요.(◍•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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