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14

단차 | 2023.11.22 11:37:17 댓글: 2 조회: 226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9944
14

다섯 번째 별은 아주 묘했다. 어린 왕자가 들른 별 중 가장 작았는데 가로등 하나와 점등인 한 명이 서 있기에도 빠듯한 별이었다. 하늘 아래 어딘가 집도 사람도 없는 작은 별에 가로등과 점등인이 대체 무슨 소용인지 어린 왕자는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터무니없는 사람 같지만 그래도 왕이나 허영꾼보다 나아. 사업가나 술꾼보다 낫고. 적어도 점등인의 일은 의미가 있잖아. 그가 가로등에 불을 밝히는 일은 별과 꽃을 태어나게 하는 일이야. 가로등 불을 끄면 꽃과 별을 잠들게 하는 거고 아주 아름다운 직업이야. 아름다우니 진정 쓸모가 있는 거야.'
그 별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점등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방금 왜 가로등 불을 끈 거야?"
"지시거든. 좋은 아침." 점등인이 대답했다.
"지시? 그게 뭔데?"
"가로등에 불을 끄라는 거지. 좋은 밤."
그러더니 점등인은 바로 다시 불을 붙였다.
"근데 왜 다시 불을 붙여?"
"지시거든." 점등인이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는데." 어린 왕자는 말했다.
"이해하고 말고 할 게 없어." 점등인이 말했다.
"지시는 지시일 뿐. 좋은 아침." 그는 가로등을 껐다.
그러더니 빨간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이건 너무 고된 일이야. 한때는 합리적인 일이었지. 아침이 되면 가로등을 끄고 밤이 오면 불을 밝히고, 나머지 낮에는 쉬고 나머지 밤에는 잘 수 있었어."
"그럼 그 뒤로 지시가 바뀐 거야?"
"지시는 바뀐 게 없어." 점등인이 말했다.
"그게 바로 비극인 거지. 별은 해마다 점점 더 빨리 도는데 지시는 그대로이니!"
"그래서?"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별이 1분에 한 바퀴를 돌고, 나는 한순간도 쉴 수가 없어. 1분에 한 번씩 불을 붙였다 껐다 해야 하니까."
"오 재미있네! 그러니까 여기선 하루가 1분이라는 거네!"
"재미는 커녕. 너랑 나랑 얘기 나누는 동안 어느새 한 달이 흘렀어."
"한 달이라고?"
"그렇지 30분이니까 30일이지. 좋은 밤."
점등인은 다시 가로등에 불을 밝혔다.
어린 왕자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지시에 그다지도 충실한 점등인이 어린 왕자는 마음에 들었다. 의자를 당겨가며 바라보던 예전의 일몰이 떠올랐다. 어린 왕자는 친구를 돕고 싶었다.
"근데 말이야... 원할 때 쉬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기는 한데..."
"늘 쉬고야 싶지." 점등인이 말했다.
사람이란 일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게으를 수도 있는 법이다.
어린 왕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 별은 너무 작아서 세 발만 성큼 걸으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잖아. 그러니까 천천히 걷기만 하면 계속 낮에 머물 수 있어. 쉬고 싶으면 걸으면 되는 거야. 그러면 원하는 만큼 낮이 이어지는 거지."
"그다지 나은 것도 없겠구먼 뭘." 점등인이 말했다.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건 잠이거든."
"그건 안 됐네."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게." 점등인이 답했다. "좋은 아침."
그리고는 바로 가로등을 껐다.
더 먼 곳으로 여정을 이어가며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왕이나 허영꾼, 술꾼, 사업가 이들 모두는 점등인을 경멸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자신의 눈에 우스꽝스럽지 않은 사람은 오직 점등인 뿐이라고.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돌보고 있어서일 거라고.
어린 왕자는 미련 담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친구로 삼을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인데. 그의 별은 정말이지 너무 작아서 두 사람이 있을 수는 없네...'
어린 왕자가 차마 자신에게도 인정하지 못했던 사실은 24시간 동안 해 지는 것을 1440번이나 볼 수 있는 축복받은 이 별이 무엇보다 바로 그 이유로 못내 그리웠다는 점이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23 03:36:17

내가 원하는것도 잠이예요.하루종일 자고나면 정신이 번쩍들고
힘이부쩍 나지요.

근데 이별은 가지말아야 데갯네요.금방 늙고 일생이 끝날것 같
아요.

단차 (♡.252.♡.103) - 2023/11/23 06:30:01

우주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니까 나이만 먹고 신체적 노화는 비슷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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