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16~17

단차 | 2023.12.01 13:31:38 댓글: 6 조회: 225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3599
 16

     

     

     

     

  “전혀 알아볼 만한 데가 없는데요?”

  흰 가운의 소매를 둘둘 걷어 올린 오쿠니시 데쓰코가 실험 기구들을 정리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오에 쪽은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잡담에 함께 어울려줄 여유는 없다, 라고 그 옆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즉각적인 답변이로군. 좀 더 찬찬히 생각해보고 대답해주면 안 되겠어?”

  안경을 쓴 무표정한 얼굴이 그제야 아오에를 돌아보았다.

 
 “생각해볼 여지도 없어요. 가이메이 대학 의학부에는 친구도 없고 지인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뇌신경외과라니, 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에요.”

  “흠, 역시 그런가.”

  아오에는 바닥을 차며, 앉은 채로 의자를 한 바퀴 빙 돌렸다. 연구실에 와 있지만 수업 중이라서 학생들은 모두 나가고 없었다. 의자는 학생 것이다.

  “왜 그러시는데요? 교수님 주위에서 누군가 뇌신경외과에 가봐야 하는 분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단지 연락을 취하고 싶은 인물이 있어서 말이야.”

  “가이메이 대학 의학부에?”

  “응, 뇌신경외과에.”

  오쿠니시 데쓰코는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미간을 좁혔다. “왜요?”

  “그건 좀……. 설명하자면 복잡해.”

  “네, 그러시다면 괜찮습니다. 저도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까요.”

 
 “아니, 일부러 숨기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얘기라니까.”

  “그러니까 굳이 설명하실 거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보다 원고는 어떻게 됐죠? 연구회 회지의 서문, 오늘 중으로 써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요.”

  “아, 그거? 응, 얼른 쓸게.”

  부탁드립니다, 라고 밋밋한 어조로 말하더니 오쿠니시 데쓰코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아오에는 머리를 긁적이며 꾸물꾸물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 글을 읽은 뒤로 줄곧 가슴속에 껄끄러운 게 걸려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가, 라는 자책감이었다.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아오에는 조사를 의뢰받고 두 곳 모두 불운한 사고라는 추론을 이미 밝혀버렸다. 아카쿠마 온천에서는 그 추론을 바탕으로 대비책이 세워졌다. 도마테 온천에서의 조사는 행정 관청에서 들어온 의뢰는 아니었지만 호쿠리쿠 마이초 신문에 기사로 실려 있다.

 
 하지만 지금 아오에는 자신의 추론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양쪽 온천지에서 일어난 사고에 뭔가 관련성이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사고가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더구나 사람이 죽었으니 살인 사건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 현청 본부에 연락해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살인인지도 모른다고 밝혀야 하는가.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이상한 젊은 여자를 만났고 불가사의한 공통점이 발견되었기 때문, 이라고 대답할까. 그러면 범행 수단을 묻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아오에 자신이 인위적으로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 건 무리라고 결론을 내렸던 일이다.

  그 여학생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하라 마도카. 그 아이라면 뭔가 알고 있다.

  도마테 온천에서 그녀가 건네준 종이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조금 전에 마음먹고 전화를 걸어봤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나이 든 여자 목소리였다. 마도카가 아니다, 라고 즉시 알았다.

 
 “아, 저는 다이호 대학의 아오에라고 합니다만, 우하라 씨가…… 아니시군요?”

  “아닙니다. 몇 번에 거셨지요?”

  아오에는 종이에 적힌 숫자를 말해주었다. 상대 여자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라고 말했다. 잘못 누른 건 아닌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습니다만,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학생을 아십니까?”

  “미안하지만, 모르는 이름입니다.”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털썩 고개를 떨구었다. 번호는 가짜였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설령 그 번호가 진짜였다고 해도 반드시 그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만났다 쳐도, 도마테 온천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뭔가를 알려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되자 마음에 걸리는 건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에 나오는 우하라 젠타로라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와 접촉해보려고 이래저래 궁리한 것이었는데…….

  연구실을 나가려고 아오에가 문손잡이를 막 잡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쿠니시 데쓰코가 잽싸게 수화기를 들고 답했다. “아오에 교수실입니다.”

  아오에는 문을 열고 복도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오쿠니시 데쓰코가 그를 불러 세웠다. “교수님.”

  “어, 나한테 온 전화야?”

  그녀는 송화구를 손으로 막고 말했다. “며칠 전에 오신 나카오카 씨라는 형사예요. 또 교수님을 뵙고 싶다는데요?”

  “아, 그 사람?” 야성적인 얼굴 생김새가 뇌리에 떠올랐다.

  퍼뜩 생각났다. 그와 상의해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오셔도 좋다고 대답해요.”

  오쿠니시 데쓰코는 수화기를 귀에 댔다. 얼굴 표정이 부루퉁한 것은 또다시 아오에의 원고가 늦어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카오카는 그로부터 30여 분 뒤에 도착했다. 지난번과는 달리 선물은 없었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아오에와 교수실에서 마주 앉자 나카오카는 새삼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뇨, 마침 잘됐습니다. 내 쪽에서도 상담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아오에의 말에 나카오카는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무슨 일이신데요?”

  “아, 그건 나중에. 우선 형사님 용건부터 들어볼까요?”

  “알겠습니다.” 나카오카는 등을 꼿꼿이 세웠다. “끈질긴 것 같지만, 이번에도 그 아카쿠마 온천 사고에 대한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아직도 사건이 아닌가, 의심스럽거든요.”

  아오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안 그러면 형사님이 여기까지 찾아올 리가 없지요.”

  “네, 맞는 말씀입니다. 지난번에 했던 얘기, 기억하십니까? 수면제로 피해자를 잠들게 한 뒤에 황화수소를 발생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게 가능한지를 여쭤봤었는데, 교수님은 그때 딱 자르셨지요, 그건 어렵다고.”

  “물론 기억하고 있지요.”

  그 후, 비닐봉지 등을 피해자에게 씌운다면 실외에서도 소량의 황화수소로 중독사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고 아오에는 다시 생각을 바꿨었다. 어쩌면 나카오카도 그런 가능성을 알아낸 건가.

  하지만 형사는 “저도 이래저래 고민해봤는데 역시 그건 좀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부검 결과를 살펴보니 피해자에게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거론할 것도 없는 얘기다.

  “그래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봤어요. 아마추어 나름대로 머리를 좀 굴렸죠.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어서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호오, 꼭 듣고 싶군요. 어떤 생각을 했는데요?”

 
 그러자 나카오카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이 볼펜을 피해자라고 치죠. 우선 이 피해자를 한 장소에 혼자 서 있게 합니다. 지형적으로 가스가 고이기 쉬운 장소예요.” 테이블 위에서 볼펜을 세워 잡았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양동이 같은 용기를 놓습니다. 피해자가 서 있는 곳으로 바람이 불어가는 쪽이에요. 이 수첩을 용기라고 치죠.” 수첩을 볼펜에서 3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 놓았다. “자아, 이 용기 속에서 액체를 섞어 황화수소 가스를 발생시킵니다. 발생한 가스는 바람을 타고 이동하겠지요. 그동안에 범인은 가스마스크를 쓴 상태로 바람 위쪽으로 피신합니다. 이윽고 피해자 주위에서 가스 농도가 높아지고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죠.” 그렇게 말하고는 볼펜을 넘어뜨렸다. “어떻습니까, 이 추리는?”

  아오에는 테이블 위의 볼펜과 수첩을 지켜본 뒤에 고개를 들었다. 나카오카의 야심만만한 눈빛을 마주 보았다.

  “대담한 추리로군요. 피해자의 부인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건가요?”

  아뇨, 라고 나카오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방법이라면 단독으로는 어렵습니다. 극히 짧은 시간 안에 높낮이 차이가 나는 장소를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요. 용기의 회수까지 포함해, 가스를 발생시킨 건 별도의 인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부인에게 공범자가 있었다는?”

  나카오카는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어떻습니까?”라고 재우쳐 물었다.

  “대단히 유니크한 발상이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왜 그렇습니까?”

  “확실성이 너무 낮아요. 현장에 가봤지요? 산속이니까 얼마든지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현장은 습지 옆이라 피해자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최소한 20미터는 떨어져야 합니다. 게다가 지형이 복잡해서 발생시킨 황화수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어요. 바람이 부는 방향이 계속 일정하다는 보증도 없기 때문에 범인에게도 지극히 위험한 방법이라고 해야겠지요.”

  나카오카는 잠시 침묵한 뒤에 “선풍기를 쓴다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선풍기?”

  “배터리로 작동하는 타입의 선풍기가 있거든요. 그걸 이용해 바람을 일으킨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가스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엉뚱한 말에 아오에는 다시금 아연해졌다. 형사라는 자들은 모두 이런 식의 발상을 하는 걸까.

  “그건 어렵죠. 배터리로 구동하는 선풍기로는 20미터씩 날아가는 바람은 일으키지도 못할 거고.”

  “무풍 상태의 날씨라면 처음 방향만 잘 조정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다음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것뿐이잖습니까. 게다가 20미터는 너무 멀다고 하셨지만 주택가에서 황화수소 자살이 일어난 경우를 보면 반경 50미터 이내의 주민을 모두 대피시키던데요.”

  “바로 그거예요, 형사님. 집 안이라면 또 모르지만 실외에서 치사농도를 만들려면 상당한 양의 가스를 발생시켜야 합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자칫 애먼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어요. 범인의 눈에 보이는 범위에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가스가 어디까지 퍼질지는 예측할 수 없지요. 아니면 범인이 다른 희생자가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얘긴가요?”

 
 하지만 나카오카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단순히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을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흐음, 하고 아오에는 신음했다.

  “그건 정확히 말할 수가 없군요. 막상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라서.”

  나카오카가 얼굴을 쓱 내밀었다. “즉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아뇨, 라고 아오에는 고개를 저었다.

  “제로라고 생각해요. 막상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라는 건 연습 없이 바로 시작해서는 절대로 무리라는 얘기예요. 현장에서 몇 번씩 실험해보고 재현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돼요. 혹시 그 부인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도 현지에 드나든 흔적이 있었습니까?”

  “아뇨, 그건……. 확인해보겠습니다.” 나카오카는 수첩을 펴고 볼펜으로 메모했다.

  “그런 일은 없을걸요. 작은 동네라서 몇 번씩 드나들었다면 누군가 얼굴을 알아볼 우려도 있고…….” 그렇게 말한 직후, 갑작스럽게 아오에의 뇌리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하는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나카오카가 수첩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게……. 말하자면 부인 본인이 아니라 공범자가 사전에 몇 번씩 실험을 해봤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는데.”

  “그렇군요.” 나카오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크게 참고가 되는 말씀이에요.”

  메모를 하는 형사의 손맡을 아오에는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 추리를 바탕으로 계속 수사할 생각이에요?”

  “우선은 그래야겠죠.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만일 그게 인위적으로 일어난 사고라면 범인들이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사전 준비 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딘가에 증거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아요.” 나카오카는 수첩을 덮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상의하신다는 얘기는?”

  “아, 실은 최근에 또 한 건, 황화수소 중독 사고가 있었어요. 도마테 온천이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한테 또 조사 의뢰가 들어왔었어요. 이번에는 신문사에서 온 것이지만.”

  “도마테 온천요? 유명한 곳이지요. 거기서도 사고가 있었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틀림없이 사고였겠지요?”

  아오에는 코 밑을 쓰윽 비볐다.

  “아카쿠마 온천 때와 마찬가지로 우발적인 사고인 것 같기는 해요. 단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좀 많아서.”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아오에는 사고의 상세한 내용과 오쿠니시 데쓰코에게 설명했던 것, 즉 현장 부근에서 그때까지 황화수소 냄새가 한 번도 난 적이 없었다는 것, 식물이나 동물에게 영향을 끼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등을 얘기했다.

  나카오카는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 건 드문 일입니까? 그런 장소에서 중독 사고가 일어난다는 건?”

 
 “드물죠. 물론 자연계의 일이니까 언제 어디서든 갑작스럽게 이변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나카오카는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 저한테 상의하실 일이라는 건?”

  아오에는 두 손으로 자신의 허벅다리를 쓱쓱 문질렀다. 말하기 힘든 것을 입 밖에 낼 때의 버릇이다.

  “형사님에게 이런 걸 상의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실은 아카쿠마 온천 쪽을 조사했을 때, 출입금지 구역에서 한 인물을 만났었어요. 예전부터 알던 사람은 아닌데……. 아무튼 이번에 도마테 온천에 갔을 때, 그 인물을 또 만났지 뭡니까.”

  “아, 예에.” 나카오카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 사람도 교수님과 비슷한 연구를 하는 분인 모양이지요.”

  “아니, 학자가 아니에요. 젊은 여자예요.”

  “젊은 여자?” 나카오카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됐을걸? 학생은 아니라고 했으니 지구화학이나 화산학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면 단순히 온천 마니아라든가?”

  “아니, 아니에요.” 아오에는 고개를 저었다. “명백히 사고 현장을 살펴보러 온 눈치였어요. 게다가 사람을 찾는 게 목적이라고 하던데.”

  “사람을 찾는다고요?”

  의아한 얼굴을 하는 나카오카에게 아오에는 우하라 마도카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날 즈음, 형사는 점점 더 의아하다는 듯 입가가 삐뚜름해져 있었다.

  “뭡니까, 그 여학생은? 대체 어떤 사람이죠?”

  “나도 모르겠어요. 어떻든 그런 일이 있어서 양쪽 온천지에서 일어난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형사님에게도 말을 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군요.” 나카오카는 턱을 끄덕였다. “도마테 온천 쪽의 피해자는 배우라고요?”

  “나스노 고로라는 배우였어요. 아카쿠마 온천 쪽 피해자는 영화 프로듀서였죠. 즉 양쪽 다 영화 관계자들이에요.”

 
 나카오카는 가슴을 크게 들먹이며 숨을 토해냈다.

  “교수님, 그 말씀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요. 알고 계십니까?”

  “뭐, 막연하게는…….”

  “여태까지 저는 아카쿠마 온천 쪽 사건이 설령 타살이라 해도 단순히 재산을 노린 범행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마테 온천 쪽과 연결점이 있다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요. 양쪽을 한 세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쩌면 연쇄살인의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나카오카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말투가 약간 빨라진 것은 흥분한 탓이리라.

  “나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지만, 그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학생에 관해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한 게 있어요.”

  “특이점이라니, 그게 뭡니까?”

  “형사님,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영화감독, 알아요?”

  “아마카스 사이세이? 아뇨, 모르겠는데요. 영화는 별로 안 보는 편이라서요.”

 
 아오에는 나스노 고로와 미즈키 요시로의 공통점을 검색하다가 아마카스 사이세이에까지 가닿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게다가 아마카스 사이세이가 황화수소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고 말하자 나카오카의 얼굴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어요. 형사님, 시간은 괜찮아요?”

  “시간요? 네, 괜찮습니다. 예정이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아오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인쇄물을 꺼내 왔다.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를 날짜 순서대로 정리해 프린트한 것이다.

  “내 얘기를 듣는 것보다 이걸 읽어보는 게 빨라요. 분량이 꽤 많긴 하지만.”

  “네, 그럼 좀 읽어보겠습니다.” 나카오카는 긴장한 표정으로 인쇄물을 손에 들었다.

 
 “천천히 봐도 괜찮아요. 나는 옆방에 가 있을 테니 뭔가 있으면 불러주시고.”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오에는 교수실을 나왔다. 나카오카가 그걸 모두 읽자면 30분 넘게 걸릴 터였다.

     

  이제 슬슬 다 읽었나 하고 아오에는 교수실로 돌아갔다. 나카오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약간 멍해진 표정이었지만 아오에를 보고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등을 곧추세웠다. 인쇄물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읽어봤어요?” 아오에는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나카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어떻게 생각해요?”

  나카오카는 낮게 신음한 뒤 “한마디로 말해서 좀 막연하네요”라고 말했다. “솔직히 앞부분에서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분명 황화수소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온천지에서의 일과는 전혀 아무 관계도 없을 것 같았어요. 읽는 걸 중단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예요.”

 
 “그렇죠. 아마카스 씨의 슬픔은 절실히 느껴졌겠지만.”

  “아,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공교롭게도 형사라는 인종은 그런 것에는 애초에 둔감하거든요. 어째서 교수님이 이런 걸 읽어보라고 하셨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으로 들어가면서…….” 나카오카는 인쇄물을 집어 들고 뒤쪽을 펼쳤다. “우하라 젠타로라는 의사가 나오더군요. 이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예에, 라고 아오에는 대답했다. “아마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학생의 아버지일 겁니다.”

  “이 부분을 읽고 납득했습니다. 우연이라고 흘려 넘길 수 없다는 교수님 말씀, 저도 충분히 알겠습니다. 이건 분명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다만 무엇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는 전혀 짐작도 못 하겠어서…….”

  “동감입니다. 열쇠를 쥐고 있을 듯한 우하라 부녀가 실은 황화수소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잖습니까.”

  “바로 그거예요.”

  아오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보일 듯 말 듯하면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은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사고 현장에는 피해자의 발자국밖에 없었단 말이지요?” 나카오카가 불쑥 물었다.

  “예?” 무슨 이야기인지 아오에는 얼핏 알아듣지 못했다.

  “도마테 온천의 사고 현장 말입니다. 산책로에 피해자의 발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조금 전에 말씀하셨는데.”

  “아, 그거.” 아오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기였는가. “응, 맞아요.”

  나카오카는 고개를 외로 꼰 채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침묵하더니 이윽고 시선을 아오에에게로 되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방법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현장보다 좀 높은 장소에서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 거 말이에요. 그거라면 범인의 발자국도 남지 않겠지요?”

  “도마테 온천에서 일어난 사고도 타살이라는 건가요?”

 
 “우선은 그런 전제하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어떻습니까?”

  “글쎄요, 실제로 하자면 몹시 어려울 것 같은데…….”

  “만일 사전에 몇 번 실험을 했다면,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는 거지요?”

  “그렇죠. 몇 번 실험을 했다면……. 형사님, 실은 아까 그 얘기에 관해 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뭔데요?”

  “우하라 마도카가 찾고 있는 젊은 남자 말인데, 실은 아카쿠마 온천에 두 번이나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엇, 하고 나카오카가 눈을 부릅떴다. “두 번이라면?”

  “처음 나타난 건 사고 나기 일주일 전이었어요. 피해자와 같은 여관에 묵었죠. 그리고 사고 나기 전날, 사고 현장 근처에서 목격되었어요. 목격자는 처음 왔을 때 묵었던 여관의 여주인입니다.”

 
 나카오카는 생각을 굴리듯이 공중에서 시선이 잠시 허우적거리더니 다시금 아오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조금 전에 교수님은 피해자의 부인이 실험을 위해 몇 번 현지를 들락거렸다면 그 지역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볼 우려가 있다, 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실험을 한 사람이 공범이었다면 얘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렇죠. 바로 그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한 말이었어요.”

  “그렇다면…….” 나카오카는 아오에의 가슴팍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학생이 찾는 남자가 바로 미즈키 부인의 공범자일 수도 있겠네요.”

  “나도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오에는 두 팔을 펼쳤다. “형사님이 말한 범행 방법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아무리 실험을 거듭한다고 해도 일이 그렇게 술술 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교수님, 이렇게 된 마당에 마음먹고 한번 대담하게 가보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을 황화수소 중독으로 죽일 만한 뭔가 좋은 방법이 있다, 라고 가정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뭔가 감이 좀 잡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를테면 어떤 방법이죠?”

  “아직 모르겠습니다. 교수님이시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미즈키 요시로의 부인이 실은 불법 사이트 쪽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어요.” 곁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카오카는 목소리를 낮췄다.

  “불법 사이트?”

  그런 게 있다는 것쯤은 아오에도 알고 있었다. ‘불법 사이트 살인’이라는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도 있다. 그런 곳에서는 청부 살인까지 거래된다고 들었다.

  “그 정보를 입수했을 때, 미즈키 요시로의 부인이 불법 사이트에서 공범자를 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게 아닌지도 모르죠. 전혀 다른 곳에서 컴컴한 만남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상대가 우하라 마도카가 찾고 있는 그 청년?”

  “예에, 그렇게 생각하면 얘기가 딱 맞아떨어지잖습니까. 어쨌든 도마테 온천 쪽 사고도 알아봐야겠어요. 그리고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학생에 대해서도.”

 
 “우하라 박사를 만나볼 생각이에요?”

  “네, 그럴 겁니다.”

  “만일 우하라 마도카에 대해 뭔가 알아낸다면…….”

  나카오카는 씨익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교수님께 보고해드리지요.”

  “음, 부탁해요. 두 군데 온천에서 일어난 일이 사고가 아니라 인위적인 사건이라면 그걸 명백히 밝혀주는 게 내 의무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나카오카는 테이블 위의 종이 더미를 가리켰다. “이 친구는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요?”

  “이 친구라면?”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아들 말입니다. 겐토 군이라고 했던가요? 식물인간 상태에서 다시 살아난 소년.”

  “아, 그건 나도 무척 궁금한 점이에요.”

  “블로그에는 그 뒤로 전혀 새 글이 올라오지 않은 거죠?”

 
 “그렇죠.” 아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의 노트북을 들고 왔다. 전원을 켜고 인터넷을 검색해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를 열었다. “이게 맨 마지막 글이에요.”

  나카오카는 진지한 눈빛으로 들여다보았다.

  “이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없습니까?”

  “검색하면 영화감독으로서의 정보는 꽤 많이 나와요.”

  “이 노트북 좀 잠깐 써도 될까요?”

  “예, 그러시죠.”

  나카오카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상당히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곧바로 정보들이 주르륵 떴다.

  “영화감독으로서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같군요. 천재라느니 귀재라느니 하는 평가가 올라와 있어요.”

  “그렇죠? 나도 그가 감독한 영화 중에 특히 좋아하던 게 있어요. 「얼어붙은 입술」이라는 영화.”

 
 하지만 아오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나카오카는 클릭을 계속했다. 이윽고 화면에 사진이 줄줄이 올라왔다. 영화 개봉 전의 무대 인사나 로케 중의 사진인 것 같았다.

  “흠, 젊은 시절에는 상당한 미남이었네요.” 그중 한 장을 확대해 들여다보며 나카오카가 말했다.

  그것은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얼굴 사진이었다. 상당히 젊은 걸 보니 감독으로 데뷔하고 얼마 안 된 때인 것 같았다. 분명 미남이라고 못 할 것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아오에는 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나카오카가 사진을 닫으려고 해서 “아, 잠깐만” 하고 제지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이 얼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영화 팸플릿 같은 데서 보신 거 아닐까요?”

  “아니, 그런 건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이 얼굴은 아주 최근에 봤는데…….” 거기까지 말한 순간, 갑작스럽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앗, 설마.”

 
 “뭡니까?” 애가 타는지 나카오카가 급히 물었다.

  “그 우하라 마도카가 나한테 보여준 사진! 그녀가 찾던 젊은 청년의 얼굴 사진과 꼭 닮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전혀 다른데요?” 그렇게 말한 직후, 나카오카도 퍼뜩 깨달았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하라 마도카가 찾고 있는 청년이 바로 아마카스 겐토 군?”

  아오에의 말에 나카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둘이서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젊은 시절의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웃는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17

     

     

     

     

  가이메이 대학 의학부의 방문객 응접실은 벽에 풍경화 한 점 걸린 것 말고는 장식이라고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으로 안내받은 방문객과는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나카오카는 내심 궁금했다. 일류 대학 의학부라면 이권도 막강할 것이다. 거액의 돈이 움직이는 밀담이 오고 가는 일도 많지 않을까, 라고 혼자 상상을 부풀렸다.

  다이호 대학 아오에 교수를 만난 게 나흘 전의 일이다. 이렇게 이과 쪽 대학을 자주 들락거린 건 난생처음이다. 나카오카는 경제학부 출신이다. 하긴 대학에서 배운 게 전혀 아무 도움도 안 되었지만.

 
 

     

  17

     

     

     

     

  가이메이 대학 의학부의 방문객 응접실은 벽에 풍경화 한 점 걸린 것 말고는 장식이라고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으로 안내받은 방문객과는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나카오카는 내심 궁금했다. 일류 대학 의학부라면 이권도 막강할 것이다. 거액의 돈이 움직이는 밀담이 오고 가는 일도 많지 않을까, 라고 혼자 상상을 부풀렸다.

  다이호 대학 아오에 교수를 만난 게 나흘 전의 일이다. 이렇게 이과 쪽 대학을 자주 들락거린 건 난생처음이다. 나카오카는 경제학부 출신이다. 하긴 대학에서 배운 게 전혀 아무 도움도 안 되었지만.

  가이메이 대학 의학부에 전화해 뇌신경외과 우하라 박사를 만나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해본 것은 오늘 오전이었다. 경찰이라고 밝히면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전화를 연결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은 상대는 공손히 응해주었다. 지금 우하라 박사는 일이 있어서 나올 수 없지만 한 시간 뒤에는 통화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일러준 대로 한 시간 뒤에 다시 전화했더니 곧바로 우하라와 연결해주었다.

  잠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나카오카는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하라는 용건을 물었다. 여기서 내 손안의 카드를 보여주는 건 득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따님 일입니다”라고만 말해두었다.

  전화 너머에서 헉 숨을 삼키는 기척이 들렸다.

  “마도카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 말을 이끌어낸 것만도 큰 수확이었다. 역시 우하라 젠타로와 마도카는 부녀간이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수사? 딸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대체 어떤 사건이지요?”

  연달아 질문을 던지는 우하라에게 나카오카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겠다고 밀어붙여서 두 시간 뒤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가이메이 대학 캠퍼스는 광대했다. 나카오카는 의학부 접수처를 찾는 데만도 한참 고생했다. 이름을 대고 잠시 기다리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서른 살 전후일까, 맵시 좋은 미인이었다. 건물 안으로 안내를 받는 중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당신도 의사 선생님입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결과는 “사무직원인데요”라고 가볍게 따돌리는 대꾸를 들은 것뿐이었다.

  그 여자가 내준 차를 마시며 나카오카는 우하라에게 접근할 방법을 궁리했다. 상대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고 온천지에서의 일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 요컨대 전면적으로 수사에 협력해줄지 말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되도록 이쪽의 카드는 내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는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

  아오에를 만난 뒤로 나카오카는 몇 가지 사전 조사를 했다. 그중 하나는 아마카스 겐토에 관한 것이었다.

  아오에에 따르면, 우하라 마도카가 찾고 있는 청년은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젊은 시절과 꼭 닮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청년은 아마카스 겐토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8년 전 시점에는 병실에 누워 있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던 그가 훨훨 나돌아 다닐 만큼 회복되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겐토를 담당했던 간호사를 찾아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 간호사의 성씨는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 글에 실려 있었다. ‘야마다 씨’다. 가이메이 대학병원에 문의해보니 당시 재적했던 간호사 중에 야마다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은 두 명이었다.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본 끝에 야마다 가요라는 간호사가 겐토를 담당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 간호사는 3년 전에 다른 병원으로 옮긴 뒤였다.

  즉시 그 병원으로 찾아가 구내 커피숍에서 마주 앉았다. 야마다 가요는 약간 통통하고 상냥해 보이는 여자였다.

  하지만 아마카스 겐토에 대해 물어보자마자 온화하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전에 다니던 병원 일이라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미리 방어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라도 좋습니다. 아버지 쪽의 블로그에 의하면 6년 전 시점에 겐토 군은 상당히 회복된 것으로 나와 있어요. 그 뒤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대로 순조롭게 회복되었나요?”

  “글쎄요, 그건 저는 좀 알 수가 없다고 할까…….” 야마다 가요의 대답은 애매하기만 했다.

  “어째서요? 야마다 씨가 겐토 군의 담당 간호사였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계속 제가 담당했던 건 아니에요. 곧바로 다른 간호사와 교대했거든요.”

  “그래도 같은 병원 안이니까 어떤 상태인지쯤은 얘기를 듣게 되는 거 아닌가요? 말을 하게 됐다든가 일어설 수 있게 됐다든가.”

  “아뇨, 그 환자가 다른 병동으로 옮겨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모릅니다.”

  “다른 병동? 그래도 똑같은 가이메이 대학병원이잖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 병원이 워낙 넓어서…….” 그렇게 말하면서 야마다 가요는 벽시계로 시선을 던졌다. 한시바삐 이 자리에서 풀려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면 야마다 씨의 뒤를 이어 아마카스 겐토 군을 담당했던 간호사의 이름을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몰라요.”

  “하지만 업무 인계도 했을 텐데요?”

  “그건 대충 넘기면 되는 일이고……. 아무튼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보다, 이제 그만 가도 될까요? 일하던 중에 잠깐 나왔거든요.”

  계속 붙잡아둘 만한 재료가 나카오카에게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야마다 가요는 도망치듯이 총총히 커피숍을 나갔다.

  명백히 눈치가 이상했다. 아마카스 겐토에 대해서는 함구령이 내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어서 나카오카는 아마카스 사이세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살던 집은 이미 철거되었고 어디 있는지 연락처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미즈키 요시로에 대해 조사할 때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다녔다. 그들 중에는 아마카스 사이세이를 잘 아는 이도 있었다. 특히 각본가 오모토 하지메는 황화수소 자살 사건 이후에 아마카스를 만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 사건에는 나도 큰 충격을 받았죠.” 온갖 서류며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 옆에서 오모토 하지메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쩍 마른 자그마한 몸집의 남자다. 나이는 쉰 살 전후쯤이나 될 것이다. 덥수룩한 수염이 턱을 뒤덮었다.

  그 사건이란 물론 아마카스 모에의 자살에 대한 것이었다.

  “장례식을 옆에서 거들어줬는데, 아마카스 씨를 지켜보면서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혼자 뒀다가는 금세 자살할 것 같더라고요. 귀재니 괴짜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역시 아마카스 씨도 사람의 아들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잘 아시겠지만 부인과 아들까지 피해를 입었거든요. 지옥에 떨어진 듯한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오모토에 의하면 사건 후에 아마카스를 만난 건 그 직전에 기획했던 영화의 제작을 무기한 연기하기 위한 상의가 주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모처럼 아마카스 씨와 일하게 되어서 나로서는 기대가 컸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사건 후에 만난 아마카스 씨의 눈은 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죠. 영화고 뭐고 돌아볼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마카스를 만난 게 6년 전쯤이라고 오모토는 말했다. 함께 만든 영화의 저작권에 대해 확인할 일이 있어서 오모토 쪽에서 연락했다고 한다.

  “사건 직후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건강한 상태라고 하기는 어려웠죠. 내 얘기도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한 기색이었어요.”

  딸의 자살 사건은 물론이고 아들 겐토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날은 전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 뒤로 사무적인 일 처리 때문에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요새는 서로 간에 전혀 연락한 적이 없었다. 단지 오모토는 아마카스 사이세이에 대해 한 가지 정보를 갖고 있었다.

  “1년 전이었나, 아마카스 씨가 곧 책을 낼 거라는 얘기를 내가 아는 편집인을 통해 들었어요. 그의 반생의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포함해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논픽션 소설로 정리한 것이라고 했어요.”

  블로그 글의 말미에 그런 얘기가 있었던 것을 나카오카는 기억해냈다. 몇 년이 지나 드디어 그 실현을 향해 움직인 모양이었다. 오모토에 의하면 그 책은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다.

  나카오카는 그 편집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한 뒤, 혹시나 해서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연락처도 물어보았다. 오모토는 스마트폰을 터치해 휴대전화 번호와 메일 주소를 보여줬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연락처와 똑같은 것이었다. 즉 이미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 얘기를 나카오카가 해주었더니 “아, 역시 그렇군요”라면서 오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카스 사이세이에 대해 그 밖에 또 뭔가 들은 얘기는 없느냐고 나카오카는 물어보았다.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없군요. 영화 업계도 부침이 심한 곳이에요. 한번 잊히면 거기서 그냥 끝이지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모토는 마치 고인을 회상하는 듯한 얼굴로 말을 맺었다.

 
 그게 지난 며칠 동안 얻은 결과물이었다. 유감스럽지만 수확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오늘 우하라 젠타로에게서는 어떻게든 중요한 정보를 캐내고 싶었다.

  수첩을 들여다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에.” 나카오카는 수첩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이 열리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인물이 들어왔다. 짧게 깎은 머리에는 흰 것이 약간 섞여 있었다. 얼굴도 가늘었지만 결코 빈상은 아니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온화한 눈매에서는 총명함이 느껴졌다. 머리 좋은 사람은 겉모습부터 다르구나, 라고 나카오카는 생각했다.

  “우하라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아뇨, 바쁘실 텐데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나카오카는 명함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자리를 잡자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네, 라고 우하라가 응했다.

 
 들어온 사람은 나카오카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여자였다. 쟁반에 찻잔 두 개를 얹어 내왔다. 그것을 두 사람 앞에 내려놓고 나카오카가 조금 전에 마신 빈 찻잔은 다시 쟁반에 얹더니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갔다.

  우하라가 찻잔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딸에 대한 얘기라는 게 뭡니까?”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보다 말투가 침착했다.

  “그 전에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을 잠깐 드려도 될까요? 예전에 박사님이 수술했던 환자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환자요?”

  나카오카는 한 호흡 틈을 두고 나서 “아마카스 겐토라는 소년입니다”라고 말했다. “아, 벌써 몇 년 전 일이니까 이제는 성인이 되었겠지요?”

  우하라의 눈썹이 아주 조금 꿈틀거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표정 변화는 거의 없었다.

  “분명 아마카스 겐토 군은 내 환자였습니다만, 그의 어떤 것에 대해 알고 싶은 걸까요?”

  “우선은 현재의 상황입니다. 겐토 군에 관해서는 부친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블로그가 이미 6년여 전에 잠정 중단된 상태라서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거든요.”

  우하라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걸 왜 알려고 하지요?”

  “어떤 사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에게 문의하고 싶은데 연락처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쪽 병원이라면 아실 것 같아서.”

  우하라는 오른손 검지를 조용히 가로저었다.

  “겐토 군이 퇴원한 게 벌써 몇 년 전이에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우리도 알지 못합니다.”

  “몇 년 전……. 그럼 퇴원할 때의 건강 상태는 어땠습니까? 블로그 글에 의하면 6년 전 시점에 컴퓨터 등은 사용했다던데요. 그 뒤로도 순조롭게 회복되었습니까?”

  그러자 우하라는 나카오카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본 뒤에 입가를 풀며 빙긋이 웃었다.

  “잘 아시겠지만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은 본인에게 무단으로 외부 사람에게 발설할 수 없습니다.”

  “그건 물론 잘 알지만…….”

  “하지만 뭐, 이 정도 얘기라면 별문제 없겠지요. 말씀하신 대로 순조롭게 회복되었습니다. 겉보기로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카오카는 저절로 눈이 둥그레졌다.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마카스 겐토 군에 대해 언급하는 건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은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환자의 비밀을 지켜줄 의무가 있고, 애초에 그에 관한 정보가 별로 없어요. 그 아이는 과거의 환자입니다.” 부드러운 말투지만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따님에 관한 것입니다.” 나카오카는 등을 반듯하게 펴고 앉음새를 바로잡았다. “지금 따님은 어디 있습니까?”

  우하라는 검은 테 안경을 슬쩍 올리더니 다리를 꼬면서 천천히 소파에 몸을 기댔다.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 어디로요?”

  글쎄요, 라고 우하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요.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여행이라서.”

  “온천지 순례입니까?”

  “온천지?” 우하라는 미심쩍다는 듯 눈가를 찌푸린 뒤 어깨를 움츠렸다. “예, 그런 곳에 갔을 수도 있겠죠.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따님 혼자서?”

  “예에, 이십 대가 되기 전에 전국을 돌아보겠다나 뭐라나. 예전부터 좀 괴팍한 구석이 있는 아이예요.”

  “아직 어린 따님을……. 걱정되실 텐데요?”

  나카오카의 말에 우하라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열여덟 살이면 이미 번듯한 어른이지요. 문제는 분별력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우리 아이는 그게 있습니다.”

  “신뢰하시는군요.”

  우하라는 차가운 눈빛을 던져 왔다. “그러면 안 됩니까?”

  “아니, 아뇨, 좋은 일이지요. 여행은 언제부터?”

 
 “집을 떠난 건 한 달 전쯤이에요.”

  “연락은 취하고 있습니까?”

  “이따금 메일이 와요.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같더군요.”

  “전화 통화는요?”

  “현재로서는 없었어요. 그 아이도 딱히 얘기할 게 없는 모양이고, 나도 이래저래 바쁜데 볼일도 없이 일부러 통화할 건 없죠.”

  “마지막으로 메일이 온 게 언제였습니까?”

  “언제였나.” 우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 열흘쯤 된 것 같은데 …….”

  “어떤 내용이었지요? 별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지장이 있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니 걱정 마라,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메일 좀 볼 수 있을까요?”

  우하라는 헛 하고 콧숨을 토해내며 웃더니 손끝으로 안경을 들어 올렸다.

 
 “보여드려도 상관없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삭제했어요. 별로 대단한 내용도 아니라서.”

  “삭제? 혼자 여행하는 딸이 보낸 메일이라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보관해두는 게 일반적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안 됩니까?” 우하라의 말투는 듣기에 따라서는 도발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원래 성격이 그런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따님 연락처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면 됩니다.”

  우하라가 등을 쭉 폈다.

  “알려줘도 괜찮지만, 일단 무슨 일인지 좀 알고 싶군요. 이건 어떤 사건의 수사지요? 왜 우리 딸을 찾고 있습니까?”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학자다운 냉철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 시선을 맞받으며 나카오카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너무 감추기만 하면 이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다—. 우하라 젠타로를 보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두 지역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에 대한 수사예요.” 마음을 정하고 나카오카는 말했다. “현재로서는 사고로 다루고 있지만 사건일 가능성도 큽니다.”

  “어떤 사고인데요?”

  “일종의 중독사, 라고만 말씀드리지요.”

  “예에, 그렇군요. 근데 우리 딸이 그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지요?”

  “그건 아직 모릅니다. 단지 사고가 일어난 두 지역에서 동일하게 따님이 목격되었어요. 양쪽 다 지방의 작은 동네죠.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거리로 치면 양쪽이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따님이 목격된 것은 둘 다 사고 현장 부근이에요. 그러니 경찰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본인에게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은 게 당연하잖습니까.”

  우하라는 후우 하고 굵은 숨을 토해내더니 다시 손끝으로 안경을 올렸다.

  “사고에 대해 자세한 얘기는 해줄 수 없는 모양이지요?”

  “네, 양해해주십시오.” 나카오카는 머리를 숙였다.

 
 “그렇다면 이것만이라도 알려주시지요. 단순 사고라면 경찰이 나서서 이렇게 수사할 리가 없을 거예요. 형사님은 사건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요. 그런 경우, 타살이라는 게 됩니까?”

  나카오카는 잠시 생각해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우리 딸이 살인 사건에 관여했다는 건가요?”

  “그걸 확인하려고 이렇게 본인의 연락처를 알아보는 겁니다.”

  “흠, 알겠습니다.”

  우하라는 상의 안쪽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나카오카의 명함을 들여다보며 빠른 손놀림으로 터치했다.

  곧바로 나카오카의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메일 착신을 알렸다. 확인해보니 우하라에게서 온 것이고 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근데 말이죠.” 우하라가 스마트폰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형사님이 우리 딸에게 메일을 보내도 확실히 받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전화가 연결될 거라는 보증도 없어요. 그 아이가 이런저런 제한을 걸어둔 모양이니까요.”

  “낯선 번호나 메일 주소는 거부한다든가?”

  “그렇죠.”

  예에, 라고 고개를 끄덕인 뒤 나카오카는 상대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지금 여기서 따님에게 전화를 해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연결된다면 저를 바꿔주시면 될 텐데요.”

  우하라는 지그시 나카오카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형사가 무슨 꿍꿍이인지 간파해보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이윽고 천재 의사는 시선을 돌리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한 손으로 터치한 뒤에 귀에 댔다.

  잠시 뒤 우하라는 말했다. “역시 연결이 안 되는군요.”

  나카오카는 말없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알아들었는지 우하라는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나카오카는 얼른 귀에 댔다. 분명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가 흘러나왔다. 발신 표시도 틀림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카오카는 스마트폰을 우하라에게 돌려주었다.

  “그 애가 변덕이 심한 편이라 자기가 통화를 원할 때가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아요.”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아직은 긴급히 연락해야 할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만일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데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메일을 보내면 됩니다. 그걸 읽고 딸아이도 긴급하다고 생각했다면 그쪽에서 전화를 해 올 겁니다.”

  “네에. 그러면 따님에게 메일을 보내서 제 명함에 적힌 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시고, 여기서 온 메일이나 착신은 거부하지 말라고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우하라는 잠시 생각해보는 표정을 보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간 날 때 보내도록 하지요.”

  “가능하면 되도록 빠른 편이.”

 
 “지금 당장, 이라는 뜻입니까?”

  네, 라고 말하고 나카오카는 상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우하라는 불만스러운 눈치였지만 입을 꾹 다문 채 스마트폰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메일 글을 다 썼는지 나카오카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거기에는 ‘아래 사람에게서 연락이 갈 수도 있으니 거부하지 않도록 해라’라는 내용에 덧붙여 나카오카의 이름과 직업, 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네, 좋습니다.” 나카오카가 말하자 우하라는 눈앞에서 메일을 송신했다.

  “그 밖에 또 질문하실 게 있습니까?” 스마트폰을 챙겨 넣으며 우하라가 말했다. “이제 됐다면 슬슬 실례할까 합니다만.”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나카오카는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우하라 마도카와 아마카스 겐토는 어떤 관계입니까?”

 
 우하라의 눈이 흠칫 놀란 듯 크게 떠졌다. 처음 내보이는 낭패의 기색이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질문인지 잘 모르겠군요.”

  “말 그대로입니다. 두 사람 사이를 묻고 있는 거예요.”

  우하라는 미간을 좁히며 한 차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뒤에 나카오카를 마주 보았다.

  “마도카는 내 딸이고, 아마카스 겐토 군은 내 환자였어요.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인데요.”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라는 말씀입니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우하라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언뜻 드러났던 낭패의 기색은 사라지고 없었다.

  “알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죄송했습니다.” 나카오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야말로 그리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수사 과정에서 우리 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면 언제든지 또 찾아주세요. 가능한 한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머리 숙여 인사하고 실례했다는 말과 함께 나카오카는 응접실을 나섰다. 마음속으로는, 다음에 찾아오는 건 이 천재 의사의 거짓말을 무너뜨릴 카드가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 라고 생각했다.

 

 
추천 (0) 선물 (0명)
IP: ♡.252.♡.103
지평선2 (♡.88.♡.15) - 2023/12/01 14:08:27

음 예상과 맞게.겐코가 기무라였네요.
건토가 당했던 중독사건도 인위적인것 같은 냄새가 나네요. 음. 타살....
그렇다면 겐토는 복수?

단차 (♡.252.♡.103) - 2023/12/01 16:40:52

거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어요.

지평선2 (♡.88.♡.15) - 2023/12/01 17:01:22

소설의 흐름에 뭍혀 함께 탐정해보는 느낌 좋네요.ㅎㅎ

단차 (♡.252.♡.103) - 2023/12/01 17:13:17

그럼 천천히 올려야겠네요 ㅋㅋ

지평선2 (♡.88.♡.15) - 2023/12/01 17:23:20

전혀 아뇨...ㅎㅎ
판단이 마구 설때 맞는지가 궁금합니다.ㅎㅎ
겐토가 아버지를 못 알아보는척 하는건 아닌지?....

단차 (♡.252.♡.103) - 2023/12/01 17:27:47

보다보면 다 나와요 ㅋㅋ

23,51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밤이
2024-01-20
0
109
단밤이
2024-01-20
0
151
단밤이
2024-01-20
0
133
단밤이
2024-01-19
0
136
단밤이
2024-01-19
0
154
단밤이
2024-01-19
0
150
단밤이
2024-01-19
0
136
단밤이
2024-01-19
0
186
단밤이
2024-01-18
0
142
단밤이
2024-01-18
0
202
단밤이
2024-01-18
0
134
단밤이
2024-01-18
1
166
단밤이
2024-01-18
0
198
단밤이
2024-01-17
1
211
단밤이
2024-01-17
1
211
단밤이
2024-01-17
1
201
단밤이
2024-01-17
1
182
단밤이
2024-01-17
1
188
단밤이
2024-01-16
1
193
단밤이
2024-01-16
1
206
단밤이
2024-01-16
1
191
단밤이
2024-01-16
1
173
단밤이
2024-01-16
1
263
단밤이
2024-01-15
0
190
단밤이
2024-01-14
0
190
단밤이
2024-01-13
0
203
뉘썬2뉘썬2
2024-01-13
2
346
뉘썬2뉘썬2
2024-01-13
2
381
단밤이
2024-01-12
1
307
단밤이
2024-01-12
2
654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