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18~19

단차 | 2023.12.01 17:48:36 댓글: 0 조회: 14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3688
18









실례했습니다, 라는 말소리가 들려왔을 때 형사의 모습은 이미 모니터 화면에 없었다. 보이는 것은 형사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선 우하라 젠타로의 모습뿐이었다. 뒤를 이어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지난 뒤 우하라가 이쪽을 향해, 즉 그림 액자로 꾸며둔 몰래카메라 쪽을 향해 이제 괜찮다는 듯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기리미야 레이가 스위치를 끄자 모니터 화면이 캄캄해졌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며 “의외로 간단히 물러났네요”라고 말했다. “좀 더 오래 버틸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틸 만한 손안의 카드가 없었던 모양이죠.” 다케오가 대답했다. “우하라 박사의 태도에서 뭔가 감추고 있다고 감지했을 겁니다. 그런 상대와 길게 이야기해봐야 별 의미가 없어요. 조금 더 정보를 수집한 뒤에 다시 찾아오자고 생각했을 거예요.”

기리미야 레이가 단정한 얼굴을 그에게로 향했다. “역시나 전직 민완 형사님의 평가는 다르시네요.”

“내가 일한 부서는 경비과예요. 게다가 시골 경찰서의.” 다케오는 고개를 떨구었다.

도쿄에 폭설이 쏟아진 그날 우하라 마도카를 놓쳐버린 이후로 다케오에게는 자택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그동안에도 보수는 지급된다고 했지만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마도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해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시간쯤 전에 돌연 기리미야 레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이메이 대학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단 수리학 연구소가 아니라 의학부 병동이라고 장소를 지정해주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즉각 정장을 차려입고 달려오자 이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다케오가 처음 수리학 연구소에 갔을 때도 봤던 인물이었다. 그는 우하라 젠타로라고 이름을 밝히고, 마도카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게다가 가이메이 대학 의학부 뇌신경외과 교수라는 것이었다.

“인사가 많이 늦어졌지만, 우리 마도카를 경호하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아, 근데.” 우하라는 한쪽 뺨만 치켜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 곧 돌아올 겁니다. 그러면 다시 경호를 맡아주셔야죠.”

다케오는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하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걸리는 일도 많을 텐데 지금까지 일절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을 만큼 입이 무거운 분이라고 하더군요. 기리미야에게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다케오는 침묵했다.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뒤 형사가 나를 찾아올 겁니다.” 우하라가 새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용건은 딸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만 하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다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식적인 탐문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다케오 씨도 알다시피 마도카는 여전히 행방불명이에요.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마도카의 행방을 우리 손으로 알아내는 거예요.”

여기서도 다케오는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형사가 어떤 말을 할지, 전혀 예상도 못 하겠군요. 우리로서는 마도카가 실종 상태라는 건 어떻게든 덮어두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질문이 날아오더라도, 마도카의 움직임은 파악했지만 현재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밀어붙일 생각이에요. 우리는 오히려 형사가 가진 정보를 어떻게든 알아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케오 씨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나와 형사의 대화를 모니터로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충고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니터?”

이거예요, 라면서 기리미야 레이가 가리킨 것은 책상 위에 세팅된 모니터와 스피커, 태블릿 단말기였다.

“방문객 응접실에 몰래카메라와 마이크를 설치해서 우하라 박사님과 형사가 나누는 대화를 이쪽에서도 모두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요컨대, 라고 우하라가 뒤를 이었다.

“형사와의 줄다리기를 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프로를 상대할 때는 프로가 필요하지요.”

다케오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제 프로가 아니라…….”

“아니, 전직 프로라도 나한테는 귀중한 전력이에요. 어떻든, 도와줄 수 있겠어요?”

“시골 경찰 출신이 경시청 형사와 상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맡아줄 거지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다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다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다행이다.” 우하라는 입가를 풀며 웃었다.

곧바로 절차가 정해졌다. 이쪽에서 다케오가 기리미야 레이와 함께 우하라와 형사의 대화를 모니터링하고, 여차할 때는 다케오가 태블릿 단말기로 메시지를 전송한다. 그 메시지는 우하라가 착용한 검은 테 안경의 렌즈에 표시된다. 이런 타입의 상품은 이미 발매되긴 했지만 외관이 평범한 안경과 이토록 흡사한 경우는 드물다. 얘기를 들어보니 수리학 연구소 관련 시설에서 개발한 시제품이라고 했다.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형사를 맞이했다. 응접실에 들어온 형사는 카메라나 마이크가 있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곧바로 우하라와 형사의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다케오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아마카스 겐토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하라에게 충고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마도카에 관한 얘기로 접어들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다케오는 한 가지 충고를 보냈다. 그건 ‘살인 사건의 수사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기리미야 레이가 예, 라고 대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케오도 몸을 일으켰다.

우하라 젠타로가 들어왔다. 이제 안경은 쓰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앉으라는 듯 오른손을 들더니 의자를 당겨 자리를 잡았다.

“어땠습니까.” 우하라는 다케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내 대답에 뭔가 문제는 없었어요?”

“전혀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매우 타당한 대답이었어요. 형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마도카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을 때는 저도 좀 당황했지만요.”

“음, 허를 찔렸죠.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마도카에게 전화해봤자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살인 사건 수사인지 아닌지 확인하라는 충고가 아주 좋았어요. 덕분에 나도 각오를 했죠. 근데 왜 그런 질문을 하라고 했어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형사가 마도카를 용의자로 보느냐 아니냐를 확인하는 겁니다. 살인 사건이라면 반드시 알리바이를 확인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그런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어요. 즉 마도카는 용의자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오호, 그렇군요. 또 하나는?”

“사건성의 유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는 것입니다. 그 형사는 아자부기타 경찰서 소속이었어요. 만일 살인 사건 수사라면 보통 경시청 수사 1과에서 주도합니다. 그러니까 현시점에서는 아직 사건성을 확인하지 못했고 기껏해야 내사內査 단계일 겁니다.”

“아, 그렇군. 역시 대단하시네.”

우하라는 감탄한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다케오로서는 시선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자아, 라고 우하라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우리가 마도카를 찾아낼 만한 단서를 얻어냈느냐는 것이로군. 나카오카 형사의 말 속에 뭔가 힌트가 있었던가?”

“우선은 어떤 사고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리미야 레이가 태블릿 단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중독이라고 했지요? 이를테면 최근 한 달 동안의 신문 기사를 중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액정 화면 위에서 매끈하게 손끝을 움직인 뒤 후우 숨을 내쉬었다. “70건이 넘는군요.”

“중독이라는 게 매우 다양하니까 그렇기도 하겠지. 식중독, 약물중독, 가스중독…….”

“약물중독은 아닐 겁니다.” 다케오가 옆에서 말했다. “그런 거라면 충분히 사건성이 있어요. 사고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지요.”

“분명 그렇군. 장소는 지방이라고 했어. 특산품을 먹고 식중독 같은 걸 일으켰나?”

기리미야 레이가 재빨리 단말기를 조작했다. “도쿄 이외 지역에서 일어난 식중독이라도 30건이 넘어요.”

“그렇게 많아?”

“게다가 꼭 신문에 실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또 다른 키워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뭐가 있었을까.” 우하라가 턱에 손을 짚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어, 하고 다케오가 입을 열었다. “장소는 온천지 아니었습니까?”

“온천지?”

“네, 교수님이 마도카가 여행을 떠났다고 대답했을 때, 나카오카 형사가 온천지 순례냐고 물었습니다. 그건 교수님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은근히 떠본 게 아닐까 싶은데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었어.” 우하라가 중얼거렸다.

기리미야 레이가 태블릿 단말기를 터치했다.

“온천과 중독이라는 키워드로 올라온 기사는 한 건이에요. L현의 도마테 온천에서 남성 한 명이 사망, 화산가스에 의한 중독사로 보인다, 라고 나와 있는데요.”

“화산가스? 아무리 그래도 그건 관계가 없을 것 같은데?”

우하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다케오의 머릿속에서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커져서 한 가지 생각이 되었다. 저도 모르게 엇 하는 소리를 흘렸다.

왜 그러느냐고 우하라가 물었다.

“마도카가 행방을 감추기 몇 주일 전에 그 비슷한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단지 도마테 온천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케오는 기리미야 레이를 보았다. “마도카가 혼자서 외출하고 싶다고 했던 날이에요. 그녀가 갑자기 신문을 읽기 시작했던 거, 생각나요? 그 신문에 그런 기사가 실려 있었어요. 마도카가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 마음에 걸려서 나중에 나도 읽어봤기 때문에 기억이 나는데.”

“마도카가 사라진 게 한 달 전이었죠?”

기리미야 레이의 손끝이 액정 화면 위에서 급히 움직였다.

“이건가요? 관광객이 산중에서 사망, 아카쿠마 온천지에서, 라고 나와 있네요. 날짜도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라고 다케오는 말했다. “아카쿠마 온천입니다. 틀림없어요.”

“기사를 자세히 좀 보자고.” 우하라가 재촉했다.

“아카쿠마 온천 마을에서 인근을 산책하던 남성 관광객이 산속에서 돌연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기리미야 레이가 기사를 읽었다. “발견자는 이 남성의 아내로, 구급대원이 출동했을 때 현장 부근에서는 희미하게 달걀 썩은 듯한 냄새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쿠마 온천 마을의 원천에는 황화수소가 포함되어 있어 땅속에서 새어 나온 가스가 일시적으로 정체되면서 농도가 높아져 중독사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황화수소?” 우하라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험악해졌다.

기리미야 레이가 말없이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도 심상치 않은 기색이 감돌았다.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을까? 피해자의 신원이라든가.”

“……여기 있군요. 피해자는 도쿄 미나토 구의 영화 프로듀서 미즈키 요시로 씨, 66세, 라고 나왔어요. 부부가 그 전날부터 아카쿠마 온천에 숙박 중이었대요.”

기리미야 레이가 화면이 잘 보이게 이쪽으로 돌려주었다. 미즈키 요시로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카오카 형사가 소속된 아자부기타 경찰서도 미나토 구입니다.” 다케오가 말했다.

“영화 프로듀서란 말이지?” 우하라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아까 봤던 그 기사, 다시 한 번 확인해봅시다. 도마테 온천 쪽 말이야. 화산가스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가스였지?”

잠깐만요, 라고 말하고 기리미야 레이가 손끝을 움직였다.

“여기 나왔네요. 도마테 온천 산책로에서 남성이 사망한 사건은 부검 결과 사인이 황화수소 중독으로 판명되었다, 라는군요.”

“역시 그렇군. 나카오카 형사는 사고가 일어난 장소가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고 말했어.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이라면 그 말이 딱 맞아. 도마테 온천 피해자의 신원은?”

“모리모토 고로라는 서른아홉 살의 남자예요. 그 이외의 정보는 올라와 있지 않네요.”

우하라는 심호흡을 하더니 팔짱을 꼈다. “어떻게 생각해?”

“정확히 찾아낸 것 같아요.” 기리미야 레이가 대답했다. “황화수소 중독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얘기예요. 게다가 나카오카 형사가 마도카뿐만 아니라 겐토 군에 대해서도 질문했었으니까요.”

“그거 말인데, 전에 겐토 군을 담당했던 간호사가 수리학 연구소로 연락을 해 왔어. 형사가 찾아와 겐토 군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거야. 물론 잘 모른다고 대답한 모양이지만.”

“그것도 나카오카 형사겠죠?”

“아마도.” 우하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케오를 돌아보았다. “아마카스 겐토 군에 대한 얘기는 들었던가요?”

다케오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에 교수님과 나카오카 형사가 나눈 대화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아차, 그렇군. 그러면 방금 우리가 나눈 얘기도 뭐가 뭔지 모르겠군요.”

“네.”

우하라는 망설이듯이 시선을 떨군 뒤, 그 눈빛을 기리미야 레이에게로 향했다.

“겐토 군에 대해서 얘기해주도록 해요.”

기리미야 레이는 턱을 바짝 당겼다. “어느 선까지 밝히면 될까요?”

하라는 잠시 틈을 두고 나서 말했다.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그러자 기리미야는 태블릿 단말기를 터치했다. 그리고 침착한 눈빛으로 화면을 다케오에게로 내보였다. 그곳에는 ‘아마카스 겐토’라고 적혀 있었다.

“나카오카 형사와의 대화에서도 나왔지만, 아마카스 겐토 군은 우하라 박사님의 환자였어요. 불행한 사건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했죠. 그 뒤에 겐토 군은 사정이 있어 수리학 연구소에서 기거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에 돌연 행방을 감춰버렸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편지를 남기긴 했는데 거기에는 병원이나 우하라 박사님에 대한 감사 인사가 적혀 있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밖에 또 한 사람, 수리학 연구소에서 기거했던 인물이 있었어요. 다케오 씨도 잘 아시는 우하라 마도카. 그녀는 행방이 묘연해진 겐토 군의 일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었죠. 그대로 두면 당장이라도 찾으러 나갈 기세였어요. 그걸 막기 위해 마도카를 감시해줄 분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바로 다케오 씨였죠.”

다케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역시 그랬구나, 라고 생각했다. 마도카가 도망쳤을 때, 퍼뜩 생각했던 게 정답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뒤로 되돌려볼까요.” 기리미야 레이가 말을 이었다. “겐토 군이 당한 불행한 사건이라는 건 친누나가 자살을 시도한 데 휘말린 것이었어요. 그건 평범한 자살이 아니었습니다. 황화수소에 의한 중독사였어요. 겐토 군의 어머니까지 함께 사망했습니다.”

다케오는 저절로 앗 하는 소리를 흘렸다. 그렇게 된 일이었구나.

“이제 우리가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에서 일어난 사고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우하라의 말에 다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알겠습니다. 황화수소는 아마카스 겐토 군과 인연이 많은 물질이군요.”

단지, 라고 기리미야 레이가 말했다.

“겐토 군이 자신의 신상에 일어난 비극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왜냐면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렸거든요.”

“기억상실이라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정신이 들어보니 식물인간 상태였고 자신이 누구이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가 사정을 알게 된 건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다음이었죠.”

다케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가혹한 상황이라니,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겐토 군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이걸 읽어보시면 돼요.” 기리미야 레이가 태블릿 단말기의 화면을 다케오 쪽으로 돌려주었다. 인터넷 사이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겐토 군 아버지의 블로그예요.”

“그런 것이 있었어요?”

기리미야 레이가 문득 뭔가 생각난 표정으로 화면 위에서 손끝을 죽 밀었다.

“역시 그렇군요. 박사님, 여기 좀 보세요. 미즈키라는 이름의 영화 프로듀서가 나옵니다.”

우하라는 화면을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틀림없네”라고 중얼거리고 다케오를 보았다. “겐토 군의 아버지는 영화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사람이에요.”

“아하.” 이해가 되었다. 그 이름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다.

“기리미야의 말대로 겐토 군은 극적인 회복세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지요. 그것이 밝혀진 무렵부터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이윽고 병원에 나타나지 않더군요. 이쪽에서 연락해도 받지 않고. 그 상태로 오늘까지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그렇습니까.”

우하라가 손가락을 타악 튕겼다.

“자아, 문제를 정리해볼까요? 아카쿠마 온천 사고를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마도카가 겐토 군을 찾기 위해 행방을 감춘 것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왜 그 사고가 겐토 군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만일 정말로 연결이 되는 거라면 겐토 군은 그 사고에 어떻게 관여했을까.”

“나카오카 형사가 살인 사건일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유도 마음에 걸립니다. 조금 전에 다케오 씨도 말했지만, 수사 1과가 움직이는 건 아닌 모양이니까 타살을 의심할 만한 명확한 근거는 아직 없을 거예요. 나카오카 형사 혼자서 파악한 뭔가가 있는 걸까요?”

우하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뒤에 다케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전직 프로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다케오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나카오카 형사의 말 중에서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했습니다.”

“그게 뭐지요?”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온천지 양쪽 모두에서 마도카의 모습이 목격되었다고요.”

“음, 그런 말을 했었죠. 근데 그게 왜요?”

“그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요?”

“아하.” 우하라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으로 기리미야 레이와 마주 보았다.

“마도카가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인사라면 이해가 됩니다. 우하라 마도카를 봤다는 증언을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에서 얻었다는 것도 있을 법한 얘기겠지요. 하지만 마도카는 유명 인사가 아니에요. 만일 카오카 형사 혼자서 파악한 뭔가가 있는 걸까요?”

우하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뒤에 다케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전직 프로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다케오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나카오카 형사의 말 중에서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했습니다.”

“그게 뭐지요?”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온천지 양쪽 모두에서 마도카의 모습이 목격되었다고요.”

“음, 그런 말을 했었죠. 근데 그게 왜요?”

“그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요?”

“아하.” 우하라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으로 기리미야 레이와 마주 보았다.

“마도카가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인사라면 이해가 됩니다. 우하라 마도카를 봤다는 증언을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에서 얻었다는 것도 있을 법한 얘기겠지요. 하지만 마도카는 유명 인사가 아니에요. 만일 그녀를 사고 현장에서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을 형사에게 전했다고 해도, 기껏해야 젊은 여자를 보았다, 라는 얘기만 했을 겁니다. 양쪽 온천지에서 똑같은 증언을 얻어냈다고 쳐도, 나카오카 형사는 어떻게 그 젊은 여자가 우하라 마도카라는 걸 알아냈을까요?”

“목격자가 본인에게 이름을 물어봤다든가?” 기리미야 레이가 웬일로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한 뒤에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아니겠네요. 마도카가 그리 쉽게 본명을 밝힐 리는 없죠. 게다가 각각 다른 두 지역에서.”

“동감입니다. 복수의 장소에서 목격 증언을 얻어낸다는 건 그 인물이 유명 인사가 아닌 경우, 경찰이 특정한 인물로 범위를 좁혀 탐문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 인물의 사진을 들고 목격 정보를 탐문해본 것이지요. 하지만 나카오카 형사의 말을 들어본 바로는, 경찰이 마도카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목격 정보를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니까 이건 순서가 뒤바뀌었어요.”

“음, 분명 맞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나카오카 형사는 어디서 그런 목격 정보를 얻었을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어떤 영상이나 사진을 봤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양쪽 온천지에 설치된 방범카메라의 양쪽 모두에 마도카의 모습이 찍혔다든가. 그런 경우에도 어떻게 본명을 알아냈느냐 하는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습니다만.”

“아니, 그것도 아니에요.” 기리미야 레이가 딱 잘라 말했다. “마도카는 방범카메라에 찍히는 어설픈 실수는 하지 않아요.”

“음,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목격자는 한 사람이에요. 양쪽 온천지에서 동일한 누군가가 마도카를 목격한 겁니다. 그리고 어떤 계기로든 그 사람이 마도카의 본명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그런 얘기를 나카오카 형사에게 했다, 그런 것이지요.”

“잠깐, 잠깐. 동일한 누군가가 양쪽 사고 현장에 있었다? 그건 과연 어떤 경우일까. 경찰? 아니면 언론 관계자?”

“서로 다른 현이라서 한 명의 경찰관이 양쪽 사고 현장에 갔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언론 관계자라면,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아카쿠마 온천 사고를 취재했던 기자가 유사한 사고라는 점에서 도마테 온천에도 갔다, 그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하라가 기리미야 레이를 가리켰다.

“양쪽 온천지의 사고를 다룬 기사를 모두 알아봐요. 두 곳을 모두 다 취재한 언론인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가 지시를 끝내기도 전에 기리미야 레이의 손가락은 벌써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표적을 응시하는 저격수 같았다.

“아주 좋은 착안점이군요.” 우하라가 다케오를 보며 말했다. “기리미야가 추천하더니, 역시 다르시네. 대단해요.”

“별말씀을.” 다케오는 머리 숙여 인사하고 그대로 몸을 움츠렸다. 칭찬을 받는 건 영 서툴다.

박사님, 하고 기리미야 레이가 말했다. 목소리에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찾았나?”

“언론 관계자는 아니지만, 양쪽 사고 현장을 찾아간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지?”

“학자예요.”

“학자?”

다케오는 고개를 들었다. 기리미야 레이가 내밀어주는 태블릿 단말기를 우하라가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우하라가 중얼거렸다. “다이호 대학 지구화학과 교수란 말이지…….”


19





잔에 든 커피가 반쯤 줄었을 무렵, 커피점 문을 열고 양복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 정도나 됐을까.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남자는 실내를 둘러보더니 나카오카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종이봉투에서 시선이 멈췄다. 유명 백화점 종이봉투다. 그게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였다.

나카오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맞이했다. “네기시 씨지요?”

그렇습니다, 라고 약간 긴장한 얼굴 표정으로 남자가 대답했다. 형사를 상대해본 일은 별로 없는 것이리라.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카오카는 명함을 내밀고 자기소개를 했다. 남자 쪽에서도 명함을 내밀었다. 문예서적 편집부의 편집장이라는 직함이 인쇄되어 있었다.

점원을 불러 마실 것을 주문했다. 나카오카도 자신의 잔을 물리고 추가로 커피를 부탁했다.

“바쁘실 텐데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 나카오카는 새삼 인사를 건넸다.

“아까 통화할 때, 오모토 씨에게서 내 얘기를 들었다고 하셨지요?” 네기시가 물었다.

“맞습니다. 지금 어떤 사건을 수사 중인데,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에 대해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그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분들에게 문의하고 다니는 참입니다. 네기시 씨 출판사에서 아마카스 씨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네, 분명 그런 기획이 있었죠. 작년 1월경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카스 씨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 왔어요. 보여줄 원고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벌써 8년 넘게 만난 적이 없었던 터라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전부터 안면이 있었군요?”

“아마카스 씨의 책을 한 차례 출간한 적이 있거든요. 「얼어붙은 입술」이라는 영화의 노벨라이즈였어요. 그럭저럭 잘 팔리고 평판도 괜찮아서 제2탄을 제안한 적도 있었는데, 결국 더 이상 진척되진 못했지요. 아마카스 씨는 이제 책을 낼 마음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점원이 두 사람분의 커피를 내왔다. 나카오카는 밀크를 넣지 않고 한 모금 마셨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셈이군요. 아마카스 씨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네기시는 스푼으로 커피를 저으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보였다.

“한마디로, 딴사람 같았어요. 원래부터 호리호리했었는데 한층 더 말랐더군요. 단지 얼굴빛은 나쁘지 않았고 수척해진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건강해 보였다는 건가요?”

“건강하다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표정은 온화하고 어떤 일에도 동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돌았어요. 달관해버렸다고 하면 적당하려나.”

“흠, 그렇군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자신의 체험을 써 내려간 논픽션 소설을 읽어봐달라고 했습니다. 아마카스 씨의 블로그는 나도 그 전부터 봤기 때문에 그걸 정리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블로그는 도입부일 뿐이고 그 뒤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메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즉시 읽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블로그라면 줄곧 주목해왔으니까 그 뒤로 아마카스 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그러면 원고를 읽어보셨겠군요?”

“물론입니다.”

“어땠습니까?”

네기시는 입을 열려다가 일단 다물더니 입술을 적시고 나서 말했다. “역작이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지요?”

“저주스러운 그 사건이 일어난 뒤 오늘날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장감 넘치는 필치로 극명하게 써 내려간 글이었어요.”

“블로그에는 6년 전쯤의 일까지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뒤의 얘기도 담은 거군요.”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얘기들이죠? 대략적인 것이라도 좋으니 내용을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기시는 떨떠름한 표정을 보였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작가의 허락도 없이 발설하는 건 금기입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논픽션이니 더더욱 그렇죠. 프라이버시 문제가 걸리거든요.”

“수사를 위해서, 라고 해도 안 되겠습니까?”

네기시는 광대뼈 언저리를 손끝으로 긁적였다.

“그거 말인데요, 대체 어떤 사건의 수사입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네기시는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다. “혹시 아마카스 씨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겁니까?”

아뇨, 아뇨, 라고 나카오카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실은 알고 싶은 건 아마카스 겐토, 즉 아들에 대한 거예요. 그 블로그 이후에 부자 관계는 어떻게 되었나 해서요.”

네기시는 알겠다는 듯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 거라면 수기 내용을 알려드려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그렇죠?”

“수기에는 아들에 대한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요?”

“네, 블로그에 적힌 것 이외에 추가된 건 없습니다.”

뜻밖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혈육인데 설령 자신을 아버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항상 그 아들이 마음에 걸리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러면 책 얘기는 안 해도 되겠지요?”

“사정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도 참고가 될 수 있으니 개요만이라도 알려주시죠. 부탁합니다.”

네기시는 콧잔등에 주름을 잡고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이윽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 흘리시면 절대 안 됩니다.”

“물론이지요.”

네기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입을 열었다.

“그 블로그를 중단한 뒤에 아마카스 씨는 방랑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과거와의 연결을 모두 끊어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문을 찾기로 했다, 라고 표현했더군요. 하지만 그 여행이 상당히 가혹했던 모양이에요. 무엇보다 정신적인 것이 컸어요. 며칠씩 잠을 못 자거나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네요. 블로그에서는 나름대로 극복한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달랐던 거지요. 각지를 전전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문이 아니라 역시 나는 죽을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깨닫는 장면도 있습니다.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나카오카는 메모를 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말로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요, 라고 네기시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마카스 씨의 시련에는 속편이 있었어요.”

“속편이 있어요? 그게 뭔데요?”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정말로 사적인 내용이니까 절대로 입 밖에 내시면 안 됩니다. 꼭 부탁합니다. 실은…….” 네기시는 입술을 적시고 나서 말을 이었다. “딸이 자살한 이유가 밝혀진 거예요.”

“엇!” 나카오카는 수첩에서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단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다, 라고 아마카스 씨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글을 썼어요. 그걸 전제로, 모에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라고 밝혔습니다.”

나카오카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왜 그런 생각을?”

“아마카스 씨가 어느 시골 영화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답니다. 글에서는 알파벳의 A로 나와요.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얘기가 잘 맞길래 영화관을 나온 뒤에 함께 술을 마시러 갔답니다. A씨는 상대가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건 모르는 기색이었대요. 근데 A씨가 술자리에서 묘한 얘기를 꺼낸 거예요. 자기 지인 중에 딸을 만나려고 한 달에 한 번씩 도쿄에 가는 사람이 있다. 그 딸을 낳은 여자는 유부녀여서 현재 남편의 아이로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 현재 남편이라는 사람이 유명한 영화감독이라고 하더라…….”

“그 얘기만으로는 근거가 희박하지 않아요?”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네기시가 말했다. “그 딸이 3년 전에 자살했다, 라고 A씨가 말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정확하게 일치했다는 거예요.”

나카오카는 몸을 슬쩍 뒤로 물리고 커피 잔을 들었다. “그래서 아마카스 씨는 어떻게 했지요?”

“물론 A씨에게 그 지인이 누군지 물었습니다. A씨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아마카스 씨가 정체를 밝히고 자신의 딸이 자살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금세 얼굴이 새파래지더랍니다. 그러고는 지인이라고는 했지만 자기와는 그리 친한 사람도 아니고 딸 얘기도 건너 들은 것이라서 사실인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고 발뺌을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도 괜찮으니 어서 말하라고 아마카스 씨가 추궁하자 A씨는 그제야 다도코로라는 성씨와 근무하는 회사 이름을 알려줬다는군요. 아, 그 다도코로라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소설에서 본명은 밝히지 않았어요.”

“아마카스 씨는 그 다도코로라는 사람을 만나봤어요?”

“회사로 찾아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네기시는 어깨를 으쓱 치켜들고 양팔을 펼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도코로는 이미 죽고 없더랍니다. 목을 매서 자살했대요. 게다가 그게 3년 전 일이래요. 아마카스 씨의 딸이 사망하고 약 2주일 뒤였습니다.”

나카오카는 숨을 헉 삼켰다. “그럼 친딸의 자살을 알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겁니까?”

“아마카스 씨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다도코로 씨의 과거 행적을 알아봤더니 역시 빈번하게 도쿄에 드나들었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독신이었지만 자신에게는 아이가 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흘린 적도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건, 네, 결정적이군요.”

“아마카스 씨가 옛일을 돌이켜보니 이래저래 짚이는 게 많았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아마카스 씨가 집에 없는 동안에 부인과 딸이 둘이서만 외출했다는 얘기를 겐토 군에게서 자주 들었다든가. 그럴 때마다 딸이 혼자 방에 틀어박히거나 몹시 기분이 상한 모습을 보였던 모양이에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하고……. 사춘기니까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갔었는데 실은 딸의 마음속에 갈등이 있었던 게 아닌가, 아마카스 씨는 글에 그렇게 썼더라고요.”

“그 갈등이라는 게…….”

“딸 모에가 어머니를 따라가 이따금 만나는 남자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라는 거예요. 즉 호적상의 아버지를 배반하고 어머니의 부정한 상대를 만났다는 자각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게 아니냐고 추측한 겁니다. 이건 그리 엉뚱한 추측은 아니겠지요?”

나카오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기시의 의견에 그도 동감이었다.

“아마카스 씨는 딸의 섬세한 성격을 되돌아보면서, 그 아이가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었을 가능성도 지적했습니다.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갈 것인가, 라는 식으로. 그런 다양한 요인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폭발해버린 것이 그 자살 사건이었던 게 아니냐, 라는 것이 아마카스 씨의 추리예요. 단 이미 확인할 도리가 없는 일이죠. 관계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네기시는 한숨을 내쉬듯이 가슴을 들먹이더니 커피를 마시고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그렇게 아마카스 씨에게는 새로운 고뇌가 시작된 거예요. 자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는가, 새삼 알 수 없게 되었죠. 아내의 마음은, 딸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는가, 자신이 가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서술하고 있어요. 넋이 나가서 살아갈 힘도 잃어버렸다고요.”

“그런 상태에서 용케 다시 일어섰군요.”

“허탈한 가운데서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만은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튼 사는 것이라고 되뇌면서 다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죠. 그리고 각지를 돌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나갔다고 합니다. 그런 에피소드들이 매우 감동적이고 뛰어난 문학성을 갖고 묘사되고 있어요.”

이를테면, 이라면서 네기시는 그중 몇 가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어린 자식을 범죄자의 손에 잃은 부부가 경영하는 완구점에서 일을 거들었던 얘기, 일류 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소매치기를 하다가 해고된 전직 엘리트 사원에게서 노숙자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얘기 등이었다. ‘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검은 개가 여행의 길동무였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이윽고 아마카스 씨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눈에 보였던 것이 모든 것, 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어요. 속사정이니 진실이니, 그런 건 아무런 힘도 없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누리지 않았느냐, 그거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요.” 네기시는 후우 긴 숨을 토해냈다. “이상이 그 수기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나카오카는 ‘내 눈에 보였던 것이 모든 것’이라고 수첩에 급히 써넣었다. “예에, 고맙습니다.”

“그 수기를 읽어본 바로는 아마카스 씨는 아들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어요.”

“그런 모양이군요. 책은 언제 출간되지요?”

“근데요, 그게 아직 정해지질 않고 있어요. 아마카스 씨가 감상을 들려달라고 전화를 했길래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즉시 출간하자고 말했죠. 그랬더니 자신에게 생각이 있으니 출간 시기에 대해서는 다시 만나서 상의하자고 하더라고요.”

“생각이 있다니, 어떤?”

“그건 얘기를 안 했어요. 하지만 아마도…….” 네기시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 수기를 원작으로 영화를 찍을 생각일 겁니다. 후기에, 이 수기를 발판으로 삼아 영화계로 복귀하고 싶다, 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나카오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메모했다. 본업이 영화감독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연락은?”

“글쎄요, 전혀 연락이 없었어요. 나도 그 밖에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그 건은 거기서 얘기가 멈춰 있는 상태입니다. 솔직히 형사님 전화를 받기 전까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참이에요. 오늘 여기 나오기 전에 아마카스 씨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해봤는데 전원을 꺼뒀는지 연결이 안 되더군요.”

나카오카는 들고 있던 볼펜으로 네기시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아마카스 씨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요?”

“예, 알고 있죠. 근데 집 전화가 아니라 휴대전화 번호만 알아요. 아무래도 주거가 일정치 않은 모양이라서.”

“그거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기시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뭐, 알려드려도 별문제는 없겠지요”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거기에 등록된 번호는 오모토 등이 아는 것과는 달랐다. 방랑 생활을 하는 동안에 바꾼 휴대전화일 터였다.

네기시와 헤어진 뒤, 나카오카는 즉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네기시의 말대로 전원이 꺼져 있는지 연결되지 않았다. 나카오카는 일단 자신의 소속과 전화번호, 그리고 연락해달라는 메시지를 부재중 전화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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