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22~23

단차 | 2023.12.02 17:59:46 댓글: 0 조회: 200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4067
22









시나가와 역 근처 비즈니스호텔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정확히 오후 1시였다. 약속한 시각이다.

정면 현관으로 들어서자 중국인 관광객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마도카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로비를 걸으면서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어요?” 연결되자마자 마도카가 불쑥 물었다.

“지금 로비에 있어.”

“그럼 볼링장으로 오세요.”

“볼링장? 그런 게 있어?”


“1층에 있어요. 호텔 사람한테 물어보면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여직원이 눈에 띄길래 말을 건네 물어보았다. 분명 볼링장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 곳에서 만나자는 건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그쪽으로 향했다.

화장품이며 액세서리숍이 늘어선 매장을 지나 그 안쪽이 볼링장이었다. 입구 옆에 카운터가 있었지만 플레이할 생각은 없는지라 그대로 지나쳤다.

평일 점심때인데도 레인이 상당히 붐볐다. 아무리 봐도 회사원들인데 일은 어떻게 하고 여기 와 있는 건가.

마도카는 플로어 한쪽 귀퉁이의 게임 코너에 있었다. 체크무늬 셔츠에 타이트한 면바지 차림이었다. 눈에 익은 방한복은 손에 들고 있었다. 핑크색 니트 모자는 쓰지 않았다.

그녀는 크레인 게임기 옆에 있었다. 가까이 가자 아오에를 알아봤는지 얼굴을 이쪽으로 돌렸다.

“볼링장에 오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아오에가 말했다.

“교수님 세대는 꽤 잘 치지 않아요?”

“잘 치는 건 나보다 좀 윗세대야. 내가 어렸을 때는 이미 유행이 지나간 뒤였어.”

“나는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크레인 게임이야?” 아오에는 게임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상품은 미니마우스 봉제 인형이었다. 머리 크기만 해도 20센티미터가 넘는다. 무게도 제법 나갈 거라서 잡아내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구나. 드디어 만났네.”

“난 평생 다시 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시원찮은 중년 학자 선생에게는 별 볼 일 없다는 건가?”

“교수님은 애초에 국외자예요. 우리 얘기에 끼어들면 안 되었던 거라고요.”

“나도 좋아서 끼어든 게 아니야. 단지 내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뿐이야. 학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거라고.”

“책임?”

마도카가 고개를 갸웃했을 때, 모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와 크레인 게임을 하고 싶다는 몸짓을 보였다. 엄마는 아직 젊고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일까. “네, 하세요”라면서 마도카가 기계 앞에서 비켜섰다.

“그냥 단순 사고로 처리하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무슨 문제라도 생겨요?”

“문제가 생겨도 아주 크게 생기지. 그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양쪽 온천지가 큰 타격을 입고 있어. 사고가 아니라면 한시바삐 그렇다고 알려줘야 해.”

“교수님 말씀은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어렵다니, 뭐가?”

“사고가 아니었다는 말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잖아요. 사고가 아니면 대체 뭐였느냐고 할 테니까요.”

“당연하지. 그래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어. 너는 뭔가 알 것 같아서. 얘기 좀 해봐, 그건 사고가 아니었니?”

하지만 마도카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한 손을 내밀었다.

“뭐냐?”

“백 엔짜리 동전, 있어요?”

“지갑에 있긴 할 텐데.”

“한 개만 주세요.”

“뭐?”

마도카의 시선을 따라가보았다. 조금 전의 엄마와 딸아이가 뭔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아마도 크레인 게임에 도전한 엄마가 미니마우스를 잡아내는 데 실패한 것 같았다. 딸아이는 또 해달라고 졸라대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려고?” 아오에가 물었다.

“됐으니까 빨리 동전이나 주세요.”

아오에는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마도카에게 건넸다.

그녀는 아이 엄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잠깐 제가 해볼게요.”

아이 엄마는 당황한 기색으로 비켜섰다.

마도카는 어린 여자애에게도 “언니가 따줄게”라고 미소를 짓더니 백 엔짜리 동전을 게임기에 넣었다. 그러고는 쇼케이스 안을 노려보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케이스 안에서 작은 크레인이 움직였다. 이윽고 스르륵 내려오는 크레인을 지켜보며 아오에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바로 아래쪽에 봉제 인형이 있었지만 위치가 약간 어긋나 몸통을 잡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오에는 입이 떡 벌어졌다. 미니마우스 인형이 보기 좋게 낚여 올라왔기 때문이다. 크레인이 붙잡은 것은 다리 한쪽뿐이지만 끝마디가 굵직해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크레인은 미니마우스를 낚아 올린 채 무사히 원위치로 돌아왔다. 마도카는 게임기 아래 출구에서 인형을 꺼내 여자애에게 건넸다.

“이걸 그냥 받아도 될까?” 아이 엄마가 미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네, 난 별로 갖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 미안하니까 이거라도.” 엄마가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내밀었다. 마도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동전을 받았다.

엄마는 딸에게 인사를 시키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한 뒤에 자리를 떴다.

마도카가 아오에 쪽으로 돌아와 백 엔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돌려드릴게요.”

“역시 크레인 게임은 많이 해본 모양이구나.” 동전을 받아 지갑에 넣으며 아오에가 말했다.

“아뇨, 이 게임, 두 번째인가?” 마도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두 번째라고? 에이, 설마.”

“그건 됐고요.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넌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어. 온천지에서 일어난 일이 사고인지 아닌지 내가 물어봤잖아. 근데 갑작스럽게 크레인 게임을 하러 가서……!”

아오에의 말을 가로막듯이 마도카가 그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쫙 펼쳤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제가 물어볼 게 있어요. 어떻게 교수님이 겐토 군을 알고 있죠?”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면 좋겠는데.”

“걱정 마세요, 틀림없이 말할 테니까. 나를 믿으시라고요.”

아오에는 입가를 삐뚜름하게 틀었다.

“너를 만나는 바람에 양쪽 온천지의 황화수소 사고에 뭔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 둘 다 피해자가 영화 관계자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영화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까지 알아냈고 그의 블로그 글도 읽어본 거야. 그 글을 통해 겐토 군에 대한 얘기를 알았어. 그리고 마도카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역시 그랬구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지난번에 통화할 때 기리미야 씨 이름을 대시던데, 교수님 혹시 가이메이 대학에 갔었어요?”

“가이메이 대학에 갔던 건 내가 아니야. 아자부기타 경찰서의 나카오카라는 형사야.”

“형사?” 마도카의 얼굴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형사가 아카쿠마 온천 사고에 의문을 품고 나한테 찾아왔었어. 그게 모든 일의 발단이었지. 더구나 그 뒤에 너를 도마테 온천에서 다시 만난 거야. 그러니 나와 나카오카 형사는 당연히 겐토 군의 존재에 주목하게 됐지.”

아오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의 자세한 경위와 나카오카가 가이메이 대학에 갔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기리미야 씨가 교수님을 찾아갔군요.” 마도카는 격투 게임 화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기리미야 씨는 나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내가 물어본 건 거의 대답하지 않았어. 네가 겐토 군을 찾아다니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고.”

“네, 당연히 그렇게 대답했겠죠.”

“그 말투를 보니, 역시 기리미야 씨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모양이구나.”

“기리미야 씨는 고용된 사람이니까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에요.”

“지시를 하는 건 누구지? 너희 아버지?”

“그건 말 못 해요.”

“뇌신경외과 의사가 왜 그런 일을 할까.”

마도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글쎄 그건 말할 수 없다니까요? 진짜 끈덕지시네.”

끈덕지다는 말에 아오에는 불끈 화가 났다.

“내가 뭘? 너도 기리미야 씨하고 똑같구나. 질문만 잔뜩 던지고 내가 묻는 말에는 전혀 대답을 안 하잖아. 조금쯤은 대답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대체 뭘 감추고 있지? 아마카스 겐토 군이 이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모양인데, 너는 대체 왜 그를 찾아다니지? 아니, 애초에 너와 겐토 군은 어떤 관계야? 사실은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닌 거지?”

흥분한 나머지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목소리가 컸는지 주위의 손님들이 이쪽을 흘끔거렸다.

마도카는 한숨을 내쉬더니 볼링장 쪽으로 이동했다. 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 이웃한 두 개의 레인을 차지하고 와와 떠들며 볼링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서 마도카는 발을 멈췄다.

아오에도 그 옆으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잠깐 화가 나서.”

“사과하실 거 없어요. 교수님이 답답해하시는 마음도 잘 알고, 이런 일에 휘말리시게 한 것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다면 내 질문에 대답을…….”

“세 개 남아요.”

“응?”

마도카가 저거 보라는 듯이 레인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바라보니 오른편 레인 끝에 핀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지금 볼링 얘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

하지만 마도카는 시선을 왼편으로 옮겨 “저쪽은 네 개가 남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던져진 공은 아직 레인 중간쯤을 굴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주르륵 늘어선 핀에 명중했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정확히 네 개의 핀이 남았다.

아오에는 조금 전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세 개 남아요”라고 말했었다. “세 개 남았다”가 아니다. 즉 아까도 공이 레인을 한창 굴러가는 중에 쓰러뜨리지 못한 핀의 수를 맞혔던 것이다.

“의미가 없어요.” 마도카가 말했다. “교수님이 나와 겐토 군에 대해 알아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니까요. 오히려 모르시는 편이 나아요.”

“그건 네 얘기를 듣고 나서 내가 판단할 일이야.”

“그렇지 않아요, 교수님.” 마도카는 아오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교수님은 그게 사고인지 아닌지를 밝히고 싶죠? 사고가 아니면 대체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거잖아요.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내가 꼭 알려드린다고요. 그러니까 그 밖의 다른 일은 알려고 하지 마세요. 교수님과는 관계없는 일이니까요. 제발요.”

마치 애원하는 듯한 말투였다. 거기에서 연기를 하는 듯한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진심으로 아오에를 걱정해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너 때문에 한계치까지 올라가버린 내 호기심은 어떻게 하고?”

“미안하지만 그건 좀 참아주세요.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게 교수님을 위해서 좋아요. 더 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아무래도 마도카의 결심은 요지부동인 것 같았다. 알았어, 라고 아오에는 대답했다.

“기리미야 씨는 내가 너한테서 받은 전화번호를 원하는 것 같았어. 네가 써준 전화번호는 가짜였다고 말했는데도 일단 알려달라는 거야. 끈덕지게 캐묻는 걸 보고 내가 감을 잡았지, 그 번호가 진짜일 거라고. 기리미야 씨가 내 얘기를 듣고, 최대한 믿음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네가 거짓 번호를 알려줄 리 없다고 눈치챈 것 같았거든.”

“그럴 거예요. 그 사람, 머리가 좋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눈치챈 교수님도 상당하신데요?”

“괜한 칭찬은 됐어. 나는 기리미야 씨보다 먼저 너를 만나려고 끝까지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버텼어. 근데 이제 어떻게 하지? 그 여자에게 알려줘도 되나?”

마도카는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면 알려주지 않는 게 좋아요.”

“오케이. 그럼 이렇게 하자. 아무 일 없다면 알려주지 않겠어.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알려주는 게 좋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즉시 알려줄 거야. 그걸로, 어때?”

잠시 생각해본 뒤 마도카는 “네,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또 한 가지, 희망 사항이 있어.” 아오에는 손가락을 쳐들며 말했다. “내가 거는 전화는 가능하면 받도록 해. 웬만한 일이 아닌 한 전화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꼭 연락해야 할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물론 네가 전화해주는 것도 대환영이야.”

마도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망설이고 있는 것이리라.

아오에는 말을 이었다. “나를 믿어달라니까. 나도 너를 배신하지는 않아.”

“배신한다는 게 아니라 교수님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단 얘기예요. 내 쪽에서 연락할 일도 없을 거고.”

“관여하든 안 하든 내 자유야.”

마도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하세요. 근데요,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도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요. 언제든지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어쨌든 거래 성립이지? 그럼 이제 내 요구를 들어줄 차례야.” 아오에는 마도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고의 진실을 얘기해줄래?”

그녀는 가슴 앞에서 두 팔로 X자를 그려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어려워요.”

“에이, 이런! 그래서야 약속이…….”

“그게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는 어렵단 거예요. 그냥 말로만 들어서는 교수님이 납득하지 못할 거예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교수님 눈으로 직접 보시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다시 시간과 장소를 연락할게요. 걱정 마세요, 그리 오래 기다리시게 하진 않아요. 오늘 중으로 연락할 테니까.”

“정말이지?”

“교수님은 나한테 자기를 믿어달라고 하셨죠? 그럼 나도 믿어주셔야죠.”

대꾸할 수 없었다.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마도카가 시선을 레인 쪽으로 돌리더니 엇 하는 소리를 흘렸다. 아오에도 그쪽을 보았다. 공이 굴러가고 있었다.

“에구, 딱해라. 양 끝에 두 개.”

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핀을 쳐냈다. 감이 좋았는지 공을 던진 본인은 주먹을 내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가 되지 못하고 마도카의 예언대로 양쪽 끝에 하나씩 핀이 남았다.

아오에는 깜짝 놀라 마도카를 돌아보았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그녀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아오에는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도, 연구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호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배터리 잔량을 몇 번씩 확인하기도 했다.

“누군가 소중한 분의 중요한 전화라도 기다리세요?” 연구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 이런 때는 필요 이상으로 눈치가 빠른 조교 오쿠니시 데쓰코가 물었다.

“아니, 중요하다기보다 그냥…….”

“학생들이 숙덕거리던데요, 오늘 교수님이 좀 이상하시다고. 수업 중에 몇 번이나 똑같은 얘기를 하시고 문득문득 멍해지시고.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무것도 아냐. 걱정할 거 없어.”

아오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옆에 있다가는 의심만 받을 것 같아 자신의 방에 틀어박히기로 했다.

노트북을 마주하고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을 시작해봤지만 그래도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목이 빠져라 연락을 기다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볼링장에서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우하라 마도카는 볼링공이 핀을 맞히기 전부터 핀이 몇 개가 남을지, 더구나 어떤 식으로 남을지 정확히 예측했다. 프로 선수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정확도를 높이는 건 무리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전에 마도카가 보여준 퍼포먼스, 즉 크레인 게임에서 기막히게 봉제 인형을 잡아낸 것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 걸렸다.

신경이 지칠 대로 지쳤는지 졸음이 몰려왔다. 하긴 간밤에 마도카의 전화를 받은 뒤로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의자에 앉아 끄덕끄덕 졸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마도카에게서 온 것이었다.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오늘 밤 11시,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으로 오세요.” 마도카는 말했다.

“밤 11시? 왜 그런 늦은 시간에?”

“남의 눈에 띄는 건 되도록 피하려고요. 게다가 최상의 조건이 갖춰지는 게 그 시간뿐이에요.”

“최상의 조건?”

“와보시면 알아요. 그럼 이따 만나요.” 그렇게 말하고 마도카는 전화를 끊었다.

아오에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겨우 오후 6시를 지난 참이다. 일단 집에 들렀다 가는 방법도 있지만, 밤늦은 시간에 외출할 구실이 언뜻 생각나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리포트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였지만 하나같이 형편없는 내용이라 읽다 말고 던져둔 것이다.

시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겠다고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복사해서 붙인 글이 속출하는 리포트 더미와 두 시간쯤 격투한 뒤, 다른 자잘한 업무 몇 가지를 처리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회 정식을 느릿느릿 먹었는데 그래도 아직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맥주를 주문해 할짝할짝 핥듯이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유산을 노리고 고령의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그 아내가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아나운서가 읽고 있었다. 혼인신고를 한 지 얼마 안 된 참이었기 때문에 결혼 전부터 계획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네, 라고 아오에는 아카쿠마 온천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카오카 형사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가이메이 대학에 다녀온 모양인데 결국 아무 수확도 없었던 건가. 우하라 마도카에 대해 뭔가 알아내면 반드시 연락해준다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

맥주를 다 마시고 나니 마침 적당한 시각이었다. 식당을 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은 히로오 역에서 도보로 2~3분 거리다. 사각 석재를 쌓아 올린 입구 앞까지 갔을 때, 타이밍을 딱 맞춰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금 어디에요?” 마도카였다.

“공원 입구 앞이야.”

“그럼 전화 끊지 말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세요. 산책로를 따라오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이에요.”

밖에서 보니까 공원 안이 캄캄한 것 같았는데 막상 들어서니 군데군데 외등이 있어서 생각보다 환했다. 마도카의 말대로 걸어갔더니 아닌 게 아니라 갈림길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꺾어지자 잠시 뒤에 다시 길이 갈라졌다. 마도카에게 말했더니 거기서는 왼쪽으로, 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식으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산책로는 경사가 있어서 안으로 갈수록 점점 지대가 높아졌다.

아오에는 이 공원을 걷는 게 처음이었다. 게다가 좁은 길이 구불구불 휘어졌다. 점점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외등이 있다고 해도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져 짙은 어둠이 드리운 장소도 적지 않았다. 그런 곳에 들어설 때는 정체 모를 뭔가가 툭 튀어나올 것 같아 저절로 긴장했다.

“거기예요.” 마도카가 말했다. “경사면 위쪽을 보세요.”

아오에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사면은 그의 오른편이었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어슴푸레한 가운데 파란 불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케미컬라이트일 것이다. 거리로 봐서 20미터 이상은 될 것 같았다.

“보여요?” 마도카가 물었다.

응, 하고 아오에가 대답하자 빛의 동그라미는 사라졌다. 그 대신 희미하게 사람 그림자가 떠올랐다. 키나 몸집으로 보아 마도카였다.

“뭘 하려는 거지?”

“보시면 알아요. 답을 알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럼 아무 말 말고 거기 계세요.”

아오에는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고 경사면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마도카가 움직이는 모습은 보이는데 무엇을 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발치에서 흰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게다가 그 연기는 주위로 퍼지는 게 아니라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왔다.

흠칫했다. 그 연기가 무엇인지는 금세 알았다. 드라이아이스에 의한 스모크다. 아마 마도카가 물을 넣은 용기에 드라이아이스를 던져 넣은 모양이었다.

스모크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거대한 흰 뱀이 이동하는 것처럼 나무 틈새를 지나고 풀 위를 기어 아오에 쪽으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꿈틀꿈틀하면서도 스모크의 폭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확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침내 스모크는 아오에의 발치에 도달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직후였다. 스모크는 그가 있는 지점을 통과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고이기 시작했다. 흰 연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아오에의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현상은 있을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오에는 스마트폰을 귀에 댔다. “어떻게 된 거야? 뭔가 마술이라도 쓴 건가?”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는 진즉에 끊겨 있었다.

아오에는 그 자리를 벗어나 마도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산책로에 갈림길이 많아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도착했을 때, 마도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땅바닥에 놓인 네모난 발포스티롤 상자가 아직도 흰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옆에서 파란 빛을 내는 건 케미컬라이트였다.

아오에는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마도카는 받지 않았다. 수없이 호출음이 울린 끝에야 겨우 연결되었다. 네, 라는 마도카의 목소리.

“지금 어디지?”

“공원 밖이에요.”

“왜 밖으로 나갔어? 다시 돌아와. 너와 할 얘기가 있어.”

“미안해요. 벌써 택시 타버렸어요.”

그 직후, 부우웅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오에는 스마트폰을 잡은 손에 힘을 꾹 넣었다.

“이래서야 뭐가 뭔지 모르잖아. 답을 알려주기로 했으면서.”

“모를 게 뭐가 있어요? 말씀드렸잖아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어떤 장치를 어떻게 썼는지 알려줘야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마도카는 전화 너머에서 후훗 웃었다.

“장치 따위는 없어요. 어린애라도 알걸요? 물속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으면 흰 연기가 나온다는 거.”

“그거야 알지. 근데 왜 확산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내가 질문하죠. 스모크는 반드시 확산되는 건가요? 어떤 조건에서라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야 해요?”

“그, 그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과학적으로는 마도카의 지적이 옳은 것이다.

“이제 알겠죠, 교수님?” 마도카가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답을 알려드렸어요. 약속은 지킨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아, 잠깐, 잠깐.”

“잠깐 못 기다려요. 내가 알려드릴 건 이제 없어요. 그다음은 교수님이 직접 생각하세요. 아 참, 미안하지만 발포스티롤과 케미컬라이트 좀 치워주세요.”

그럼 이만, 이라면서 전화는 끊겼다. 아오에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버렸다.

발포스티롤 상자로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스모크가 발생하고 있었다.

드라이아이스는 이산화탄소를 고체화한 것이다. 마이너스 78.5도에서 승화한다. 물 등의 액체에 투입하면 그 즉시 기화하지만, 발생하는 거품에 순간적으로 응고된 물이 얼음 초미립자 상태로 내포된다. 거품이 수면 위에서 소실할 때는 그 얼음 초미립자가 기화한 이산화탄소와 함께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그것이 스모크의 정체다.

마도카가 한 말을 모르는 건 아니다. 얼음 초미립자와 이산화탄소의 혼합물인 스모크는 공기보다 무겁다. 즉 조금 전의 스모크는 화학반응에 의해 발생한 황화수소 가스의 움직임을 비슷하게 재현해본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왜 확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달했고, 게다가 거기서 줄곧 고여 있었느냐는 점이었다. 그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모크의 행방을 지켜보다가 아오에는 흠칫했다.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제 스모크는 확산되고 있었다. 강물처럼 외줄기로 흐르는 게 아니라 부채를 쫙 펼친 것처럼 땅바닥에 퍼졌다. 좀 더 지켜보고 있는 참에 휘익 바람이 불었다. 그리 강한 바람도 아닌데 그것만으로도 스모크는 한순간에 소실되었다. 그리고 다시 발포스티롤에서 새롭게 스모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조금 전처럼 전혀 흐트러짐 없이 강물처럼 일정한 폭을 유지한 채 흐르고, 게다가 한곳에 모여서 고이는 게 이례적인 일인 것이다.

하지만 마도카의 말도 진실이었다.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그렇다는 얘기다.

조건—.

그러고 보니 마도카가 말했었다. 최상의 조건이 갖춰지는 건 그 시간뿐이라고. 스모크가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이 외줄기로 하강하고, 게다가 한 지점에 고이는 조건이라는 뜻이었던가. 무풍 상태에다 지면이 냉각되어 상승기류도 없고 지형 또한 적합하다는 조건. 그래서 한밤중에 이런 곳으로 불러낸 것인가. 그렇다면 물론 그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마도카가 어떻게 이 시각 이 장소라면 그 조건에 합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는가, 라는 점이다.

아오에는 바닥에 놓인 케미컬라이트를 집어 들었다. 20센티미터 길이의 봉으로, 아직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누군가 다가오는 참이었다. 외등 불빛 아래에 섰을 때, 상대의 단정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오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여기에?”

기리미야 레이는 웬일로 미소 비슷한 것을 짓고 있었다.

“교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안내해주셨어요. 대학에서부터 여기까지. 중간에 들른 식당은 단골로 드나드시는 곳인가요?”

아오에는 입을 헤벌렸다. “나를 미행한 거예요? 언제부터?”

기리미야 레이는 어깨를 으쓱 쳐들었다. “그건 어떻든 상관없잖아요?”

“그래도 미행을 하다니…….”

앗, 실례합니다, 라면서 기리미야 레이가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네. ……아, 그래요? 알았어요. 계속해서 부탁합니다. 이쪽은 지금 아오에 교수님과……. 네, 그럼 수고하세요.”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다시 넣고 아오에 쪽을 돌아보았다. “마도카의 위치는 확인되었다는군요.”

마도카도 누군가 따로 미행 중이라는 것인가. 어제 기리미야 레이와 함께 있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방금 통화한 상대는 아마 그 남자일 터였다.

“당신들, 뭐 하는 겁니까?” 아오에는 들고 있던 케미컬라이트를 기리미야 레이를 향해 들이댔다. “대체 목적이 뭐냐고.”

하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스모크 양이 점점 줄어드는 발포스티롤 상자로 시선을 던졌다.

“멀리서나마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어요. 상당히 놀라시는 것 같더군요.”

아오에는 케미컬라이트를 힘없이 내려뜨렸다. “그쪽은 놀라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기리미야 레이는 한 차례 시선을 떨구더니 턱을 쓱 당겼다. “네, 이제는 별로.”

“이제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아오에 교수님.” 기리미야 레이가 정색을 하고 지그시 이쪽을 보았다. “오늘 밤에 여기서 보신 일들, 모두 잊어주시겠습니까?”

“뭐요?”

“못 본 걸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카오카 형사에게도 말씀하시지 말고 그냥 교수님 기억 속에만 담아두실 수 없을까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아오에는 일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나서 말했다. “잠깐만요, 그게 말이 됩니까?”

“안 될까요?”

“당연하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파란 빛을 내는 봉을 내저으며 아오에는 말했다. “가능한 얘기를 해야지요. 분명 신기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내 눈앞에서 일어난 건 사실이잖아요. 그렇다면 그걸 해명해보는 게 과학자의 의무예요.”

“그럼 좀 여쭤보겠는데, 해명할 자신이 있습니까? 과학적인 증명이란 재현성이 있어야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조금 전에 마도카가 한 일을 교수님이 재현하실 수 있을까요?”

“그, 그건…….” 아오에는 대꾸할 수 없었다. 자신 따위는 없다. 마도카가 한 일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기리미야 레이는 공부 못하는 어린 제자를 타이르는 교사처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마도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어도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아오에 교수님이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잊어버리시는 게 더 마음 편한 일이죠.”

“마도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어떻게 평범하지 않다는 겁니까? 마도카가 초능력자예요? 기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이라도 갖고 있어요?”

“그렇다고 말씀드리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 사람이 정말!” 아오에는 케미컬라이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진지하게 대답하란 말입니다.”

“저는 진지합니다. 게다가 마도카가 어떤 사람이든 그건 교수님과는 관계없는 일 아닌가요?”

“그럴 수는 없죠. 손님이 뚝 끊겨버린 온천지를 생각하면 진실을 숨긴 채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그럼 수정 기사라도 쓰시겠습니까? 온천지에서 일어난 일은 황화수소 가스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사람이 저지른 것이라고? 하지만 신문사가 과연 그런 글을 받아줄까요?”

아오에는 입을 꾹 다물고 어금니를 악물었다. 분통이 터졌지만 그녀의 말이 옳았다.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한 지금도 이걸 어떻게 공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볼링장에서 만났을 때 마도카도 말했었다. 사고가 아니면 대체 무엇인지, 그걸 설명해야 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온천지 두 곳은 정말 딱하게 됐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마냥 내버려둬도 괜찮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교수님의 명예에 상처를 입히거나 폐를 끼칠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니 이 건에 대해서는 저희에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조곤조곤 설득하듯이 말하는 기리미야 레이의 얼굴을 아오에는 마주 쏘아보았다. “그나저나 당신들이야말로 대체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그것도 교수님과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오늘 밤 일은 잊어버리시고, 앞으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겠습니까?”

“싫다고 한다면? 나카오카 형사에게 모두 다 말하겠다고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기리미야 레이가 예쁘장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나도 모르죠. 단지 나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나카오카 형사에게 말하면 뭔가 행동에 나서주겠지요.”

“경찰까지 끼어들면 일이 점점 혼란스러워질 뿐이에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내 알 바 아닙니다.” 아오에는 거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집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기리미야 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교수님의 의향을 위에 전달하겠습니다. 뭔가 지시가 내려올 테니까 그때 다시 교수님께 정식으로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오늘 밤 일을 비밀로 해달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오에는 잠시 숙고했다.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그러면 연락을 기다리지요.”

“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합니다.”

기리미야 레이는 머리를 숙이고 발길을 돌려 멀어져갔다. 그 뒷모습이 옅은 어둠에 섞이는 것을 지켜본 뒤에 아오에는 발포스티롤 안을 들여다보았다. 스모크는 이제 거의 발생하지 않고 물속에서 투명한 거품이 떠오를 뿐이었다.

23









그 오피스빌딩은 야에스에 있었다. 벽면이 온통 유리로 된 건물의 5층이 나카오카의 목적지였다. 비즈니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 여러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5층에서 내린 건 나카오카뿐이었다. 딱딱한 분위기의 하얀 벽을 따라 복도로 들어가자 덴탈클리닉이라고 적어놓은 유리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카오카는 그쪽으로 다가가 입구 앞에 섰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바로 옆 카운터에 있던 여자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단정한 용모의 여자였다. 하얀 간호사 가운이 무척 잘 어울렸다.

나카오카는 경찰 배지를 내밀었다. “아까 전화한 사람입니다.”

“아, 네에.” 여자는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카오카 형사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아가씨가…….”

“네, 니시무라예요. 죄송하지만 잠깐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러겠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사라졌다. 나카오카는 옆의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완전 예약제라서 그런지 기다리는 환자는 없었다.

테이블에 임플란트를 사용한 치료 설명서가 세워져 있었다. 비용을 보고 눈을 허옇게 떴다. 나카오카가 살고 있는 집의 임대료 3개월분이었다.

조금 전의 여자가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간은 괜찮습니까?”

“네, 30분 정도라면.”

“고마워요. 되도록 빨리 끝내도록 하지요.”

빌딩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 커피숍이 있다는 건 이미 확인해뒀다.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미안해하면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나카오카는 블랜드 커피를 주문하고, 둘이서 귀퉁이 테이블로 이동했다.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미안해요. 놀랐어요?” 나카오카가 말했다.

“조금요. 그게 정말 오래전 얘기잖아요.” 그녀는 카페라테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녀의 이름은 니시무라 야요이라고 했다. 아마카스 겐토의 누나 모에의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이다. 함께 댄스부에서 활동했다.

“니시무라 씨 얘기는, 나중에 댄스부 부장이 된 스즈키 유리 씨에게서 들었어요. 요즘도 가끔 만난다면서요?”

“유리한테도 찾아가셨어요?” 니시무라 야요이는 큼직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네, 갔었어요. 근데 왜요?”

“아뇨, 날마다 문자를 주고받는데 형사님 만났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거든요.”

아아, 하고 나카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내가 부탁했어요. 형사가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봤다는 얘기는 니시무라 씨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런 얘기를 듣고서 예단을 하게 되면 별로 좋지 않거든요.”

“그랬군요.”

“어떤 질문을 했는지 미리 알아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답을 준비하게 되죠. 그러니까 스즈키 씨를 나무라지 말아요.”

“아이, 나무라기는요.” 니시무라 야요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근데 제가 어떤 얘기를 해드리면 되는 거예요?”

전화로는 고등학교 댄스부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 라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나카오카는 커피를 후루룩 마신 뒤에 등을 바로 세우고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댄스부 동기 중에 아마카스 모에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혹시 기억납니까?”

니시무라 야요이의 속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입가로 가져가던 카페라테 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네, 물론 기억나죠.”

미안합니다, 라고 나카오카는 사과했다.

“아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사건 수사를 위한 일이에요. 힘들겠지만 협조를 부탁합니다. 스즈키 씨 얘기로는, 아마카스 모에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니시무라 씨일 거라더군요. 그건 틀림없습니까?”

“가장 친한 친구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네, 친하게 지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마카스 모에가 자살한 동기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게 없었다는?”

“네, 없었어요. 그래서 그 얘기 처음 들었을 때는 진짜 믿어지질 않아서…….”

“그런 일을 벌일 징후 같은 것도 없었던 모양이죠?”

“네, 전혀 없었어요. 다음 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연습하자고 거의 매일같이 서로 격려했을 정도니까요.”

“니시무라 씨는 아마카스 모에의 아버지와는 만났습니까?”

아버지 얘기가 나올 줄은 예상을 못 했는지 니시무라 야요이는 뜻밖이라는 듯 흠칫 몸을 뒤로 젖혔다.

“네에, 딱 한 번 만났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어떤 얘기를 했어요?”

“물론 모에 얘기였어요. 모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댄스부에서는 어떻게 지냈었느냐, 라든가.”

“얼마나 오래 얘기했지요? 한 시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냥 길에 선 채로 얘기했거든요. 기껏해야 10분이나 5분?”

“아마카스 모에의 아버지가 블로그를 개설한 건 알고 있었어요?”

“아, 네…….”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알려줘서 그 블로그, 읽어봤어요.”

“읽어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죠?”

“어떤 생각이라뇨?”

“그 글을 본 느낌을 솔직히 말해주면 돼요. 괜찮습니다. 지금 하는 말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아요.”

“얘기하셔도 별 상관은 없어요. 네, 우선은 참 안됐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친구가 죽은 거지만 그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내와 딸이 사망하고 게다가 아들까지 그렇게 된 거잖아요. 정말 견디기 힘드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니시무라 야요이는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밖에는?”

“그 밖에는, 글쎄요…….”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기색이었다. “모에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블로그 글에 적힌 일화들은 모에를 통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들이었거든요.”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요? 블로그에 적힌 일화는 모두 아마카스 씨가 모에와 친하게 지낸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했거든요. 근데 당시 가장 친한 친구였던 니시무라 씨가 모르는 얘기라니, 어떻게 된 거죠?”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인가 봐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시선을 들어 나카오카를 흘끗 쳐다보았다. “저어, 근데요…….”

“괜찮아요, 얘기해봐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젓고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뭔데요, 궁금하잖아요. 얘기를 하려다 마는 건 반칙이죠.” 나카오카는 목소리에 웃음을 담아 농담처럼 말해보았다.

니시무라 야요이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얼굴을 들었다.

“정말 솔직히 말해도 돼요?”

“물론이죠, 그게 내 희망 사항인데요.”

니시무라 야요이는 마음을 정한 듯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 블로그, 뭔가 좀 이상했어요.”

“이상해요? 어떤 식으로?”

“글을 읽고도 전혀 공감이 안 된다고 할까, 뭔가 핀트가 안 맞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그 글에 묘사된 모에는 내가 아는 모에와는 전혀 달라서 뭔가 딴사람 얘기 같았어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점이?”

“내가 아는 모에는 활발하고 잘 까불고, 좀 나쁘게 말하면 말괄량이 같은 면이 있을 정도예요.”

“말괄량이?”

“네. 중학교 때는 상당히 불량학생이었다는 얘기도 했어요. 늘 교무실에 불려 가고 담배도 피웠대요. 근데 길거리 퍼포먼스로 춤추는 사람을 보고 댄스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도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좀 착실해졌다고 했어요. 모에가 나한테 직접 해준 얘기예요.”

“그래요? 듣고 보니 정말 블로그에 묘사된 모에와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군요.”

“그렇죠? 블로그에 나오는 모에는 얌전하고 청순한 여고생 같잖아요. 그래서 나는 어째 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죠.” 그렇게 말하고 니시무라 야요이는 뭔가 생각난 듯 나카오카를 보았다. “형사님, 유리한테도 똑같은 질문, 하셨어요?”

“예, 했죠.”

“유리는 뭐랬어요?”

“그건 왜요?”

“아니, 예전에 내가 유리하고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유리도 나랑 비슷한 얘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네, 그랬다더군요.” 나카오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유리 씨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사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기는 그 블로그가 죄다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나카오카가 의심을 품게 된 계기는 가와카미 세이야의 증언 때문이었다. 가와카미는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에 등장하는 인물로, 축구부 친구들 중에서 아마카스 겐토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나와 있다.

기억을 잃은 겐토가 예전 축구부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았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만나보기로 했던 것이다.

현재 가와카미는 도쿄의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나카오카는 집 주소를 알아내 그를 만나러 갔다. 거실에서 마주 앉은 가와카미는 몸집이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섬세한 느낌의 청년이었다. 그 점을 지적하자 가와카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학교 올라가기 전까지는 키가 큰 편에 속했어요. 그래서 나한테 골키퍼를 맡겼죠. 근데 그 뒤로 별로 크지를 않아서…….”

축구도 중학교 중간쯤에 그만뒀다고 가와카미는 말했다.

나카오카가 아마카스 겐토와의 관계를 묻자 즉각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실은 병문안도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팀 코치가 지금은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면회 사절 조치가 내려져 있었대요. 근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학부모들이 상의한 끝에 병문안은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던 모양이에요. 식물인간 상태인 겐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을까 봐서 그랬답니다. 그건 아버지 쪽에서 부탁한 일이기도 하다고 들었어요.”

“아버지라면,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 말이에요?”

“네, 그렇죠.”

“그래서 결국 그 사건 이후에 겐토 군과는 한 번도 못 만났어요?”

“네.”

“연락한 적도 없고?”

“연락한 적도 없어요. 아니, 그보다 겐토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전혀 몰라요. 형사님은 아세요?” 가와카미는 거꾸로 질문을 해 왔다.

“아마카스 씨의 블로그는 봤어요?”

“블로그요? 그게 뭔데요?”

나카오카는 들고 간 태블릿 단말기로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를 보여주었다. 가와카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지만 중간중간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느냐고 나카오카가 물었다. 그러자 가와카미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겐토 아버지를 만나긴 했어요. 축구 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나를 부르더라고요. 겐토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근데 딱 한 번뿐이었고, 여기 이 글처럼 오랜 시간은 아니었어요. 분명히 기억하는데, 별 대단한 얘기도 없었어요.”

“그럼 아마카스 씨가 오래오래 대화한 사람은 가와카미 씨 이외의 다른 친구인가?”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얘기, 다른 축구부 친구들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는데요?”

“그렇다면 뭔가 좀 묘하네.”

“게다가 여기 이거.” 가와카미는 못마땅한 듯 입을 툭 내밀고 태블릿 단말기의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글 속에 겐토가 했던 얘기나 행동이라고 나온 것들이 내가 겐토에게서 들은 얘기하고는 전혀 달라요.”

“어떤 식으로?”

“내가 겐토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이런 식으로 사이좋은 가족이라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뭔가 각자 따로 놀고, 아무튼 썰렁하다고 했었어요.”

“썰렁하다니, 어떻게?”

“애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완전히 식어버렸다고 얘기했거든요. 아버지가 따로 여자가 있어서 전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그런 걸 다 알지만, 허영심이 강하고 천재 영화감독의 아내라는 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혼은 하지 않기로 한 거라고 했어요.”

“그, 그건 얘기가 상당히 다르네?”

“누나에 대해서도 내가 들은 얘기와는 전혀 달라요. 겐토와는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지만 아버지는 엄청 싫어한다고 했거든요. 겐토도 아버지는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고 했어요.”

“아니, 그래도…….” 나카오카는 태블릿을 터치했다. “여기 이 부분을 봐요. 여기에는 겐토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동경한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화면의 글을 죽 훑어본 뒤에 가와카미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이건 아니에요.”

“전혀 생각도 못할 일이라는 얘기?”

“네. 아버지가 감독한 영화 따위, 겐토는 본 적도 없다고 했어요. 나중에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가와카미는 딱 잘라 말했다.

나카오카는 당혹스러웠다. 그렇다면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는 대체 뭐란 말인가.

가와카미의 말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겐토의 누나 모에가 아버지를 싫어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댄스부에서 그녀와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을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모에가 아버지를 싫어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죠.” 니시무라 야요이는 카페라테 잔을 손에 든 채 말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서는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자기 인생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건 말건 전혀 관심이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다, 아내나 자식도 자기 소유물로만 본다, 라고 했어요.”

“소유물? 이를테면?”

“영화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를 꾸며준다고 할까 기를 세워준다고 할까, 아무튼 가족을 자기 이미지를 올리는 데 이용해먹었을 뿐이래요. 모에가 어릴 때, 괴상한 옷을 자꾸 입으라고 해서 엄청 싫었는데, 그걸 입지 않으면 마구 화를 냈대요. 그러면서 남들이 왜 그런 옷을 입었느냐고 하면 모에 자신이 원해서 입었다고 말하라고 강요했다는 거예요. 천재 감독의 비범한 피가 자식에게도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자랑하려는 거라고 모에가 말했었어요.”

나카오카는 끄응 신음 소리를 흘렸다. 모든 것이 블로그 글과는 전혀 달랐다.

니시무라 야요이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모에가 중학교 때 비뚤어졌던 것도 아버지가 너무 이기적인 게 화가 나서 그 천재 영화감독이라는 명성에 흠집을 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엄청 꾸짖었대요. 하지만 모에는 그러더라고요, 그런 사람의 딸이 아니라면 진짜 좋겠다고. 그 사람의 피가 제 몸속에 흐른다는 게 너무 창피하다는 거예요.”

“아, 잠깐, 잠깐.” 나카오카는 오른손을 펼쳐 들었다. “그 사람의 피가 몸속에 흐른다? 모에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거, 틀림없어요?”

“네, 틀림없어요.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는데요?”

“성형수술? 왜?”

“아니, 그건요.” 니시무라 야요이는 자신의 손끝을 콧등에 댔다. “모에가 코에 꽤 신경을 썼거든요. 못생긴 코는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아버지 코를 닮아서 싫다는 거예요. 눈이나 입은 화장으로 어떻게든 되는데 코는 속일 수가 없다면서. 그리고 손도 아버지를 닮은 게 너무 싫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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