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26~27

단차 | 2023.12.02 21:37:22 댓글: 0 조회: 185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4153
 26

     

     

     

     

  “수학자 라플라스를 아십니까? 풀네임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프랑스인이에요.” 기리미야 레이가 아오에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플라스? 아니, 들은 적이 없는데.”

  “만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그러한 원자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 기리미야 레이는 마치 시를 읊는 것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라플라스는 그런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 존재에는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겐토 군의 예측 능력은 그 라플라스의 악마와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수리학 연구소에서는 겐토 군의 능력에 대한 연구를 ‘라플라스 계획’이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계획, 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최종적인 목표점도 설정해야겠지요. 연구소가 설정한 목표는 대략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해명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조금 전부터 누차 얘기했던 대로 재현성의 입증이었습니다. 전자는 기나긴 여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후자 역시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죠. 아무리 궁리해봐도 어떻든 인체 실험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피실험자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애초에 그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될 일인가. 거기에 관해서는 후생노동성이나 문부과학성에서도, 물론 경찰청에서도 지혜를 주지 못했습니다. 내심으로는 한시바삐 건강한 일반인에게 수술을 했으면 하고 바랐겠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우려해 아무도 선뜻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 때에 라플라스 계획의 실질적 책임자인 소장님에게로 한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놀랄 만한 말을 합니다. 라플라스 계획의 피실험자로 지원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아오에는 눈이 둥그레진 채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게 바로 마도카?”

  “그렇습니다.”

  “그럼 마도카가 아버지에게 그런 얘기를 했던 게 아니군요?”

  고개를 떨구고 있던 우하라가 얼굴을 들고 머리를 저었다.

  “나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습니다. 마도카가 라플라스 계획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지요.”

  “소장님도 놀란 얼굴이셨어요. 이 계획은 절대 극비, 관계자 전원이 가족에게도 정보를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했으니까요. 누구에게서 들었느냐고 물어봤더니 겐토 군에게서, 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분명 겐토 군만은 서약서에 사인한 적이 없었어요. 당연한 일이죠. 우리 연구소는 전적으로 그의 협력을 받아 일을 추진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지원한 이유에 대해 마도카는 어떻게 말했죠?”

  “자신도 겐토 군 같은 능력을 갖고 싶다고 했다는군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의 수수께끼를 풀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라고요.”

  다시 낯선 단어가 나왔다. “무슨 방정식이라고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 유체역학에 관한, 아직껏 풀리지 않은 난제예요. 장기간의 연구를 통해 겐토 군의 예측 능력이 그 방정식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밝혀졌어요. 그것이 앞으로 좀 더 밝혀진다면 과학은 비약적으로 진보하겠지요. 슈퍼컴퓨터로도 100퍼센트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한 난류를 수학적으로 해석해낼 수 있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100년 후의 날씨까지 알 수 있는 것이죠. 마도카의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 간 토네이도의 발생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게 됩니다.”

  아오에는 아하 하는 소리를 흘렸다. 그렇게 된 일이었구나, 하고 저간 사정을 이제야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는 어떤 대응을?”

  “즉각 관계자들이 소집되었습니다. 물론 우하라 박사님도 참석하셨죠. 그 자리에서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는 없었는데…….” 기리미야 레이는 우하라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다음 이야기는 직접 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우하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마도카와 얘기를 해봤습니다. 그 아이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어요. 만에 하나, 후유증이 남을지 모른다고 위협도 해봤는데 꿈쩍도 않더군요.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아빠가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태연히 얘기하는 거예요. 설득하기는 도저히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왜 아빠한테 먼저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말하면 아빠가 반대해서 소장님에게 직접 말할 기회까지 사라질까 봐 그랬다더군요. 그건 분명 맞는 말이었습니다.”

  흐음 하고 아오에는 신음했다.

  “당시에 마도카는 중학생이었지요? 아직 어렸는데 어떻게 그런 점까지 미리 짐작을 했죠?”

  우하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말하지 말고 소장에게 찾아가라고 일러준 건 겐토 군이었어요. 라플라스의 악마답게 겐토 군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도 뛰어나니까요. 마도카가 피실험자로 지원한 것도 그의 영향이 컸던 게 아닌가, 나 혼자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아오에는 마도카의 사람 보는 눈이 누구보다 확실하다고 단정했던 기리미야 레이의 말이 생각났다. 이른바 라플라스의 악마가 되면 그런 능력도 생기는 것인가.

  “그래서 회의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우하라는 괴로운 듯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나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즉 판단을 내게 일임한다는 것이었어요. 수술할 사람도 나였고 게다가 피실험자의 유일한 혈육이니 그건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다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습니다. 이토록 이상적인 피실험자는 두 번 다시 없을 테니까.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내 딸의 몸을 실험대로 삼아도 되는가. 만일 무슨 일이 생길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한편으로 연구 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어요. 아니, 실은 그보다…….”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듯이 부여잡았다. “내 탐구심을 억누를 수 없었어요. 과연 재현성이 있을까. 새롭게 라플라스의 악마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만일 재현성이 인정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진화에의 열쇠를 손에 넣게 될지도 모른다…….”

  우하라는 두 손을 떨구고 후우 큰 숨을 토해냈다. 그 즉시 온몸에서 기운까지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아오에를 향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되는 길을 선택했어요. 마도카를, 내 딸아이를, 인체 실험에 사용한 겁니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닌 딸아이의 머리를 가르고 유전자 조작 암세포를 심고 전극과 기계를 넣었어요. 아버지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고,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수술은 성공했군요.”

  “일단은. 하지만 마도카는 수술 후 일주일 동안 전혀 의식이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기분이었죠. 만일 그대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딸을 안락사시키고 나도 죽자는 생각까지 했어요. 여드레 만에 마도카의 눈꺼풀이 열리고 내 부름 소리에 응했을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어요.”

 
 정말 그랬을 거라고 아오에는 생각했다.

  “그 이후부터 마도카는 라플라스의 마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군요.”

  우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건강하던 아이여서 겐토 군보다 더 순조롭게 다양한 능력을 습득했습니다. 퇴원 후에는 겐토 군과 함께 이 연구소에서 생활하면서 라플라스 계획에 협력하게 되었죠. 참 세월이 빨라요, 그로부터 벌써 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마도카는 겐토 군과 거의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기리미야 레이가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아리스가와노미야 공원에서 보여준 실험도 마도카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요.”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에서의 일은 역시 아마카스 겐토 군의 범행입니까?”

  기리미야 레이는 괴로운 듯 미간을 좁히며 우하라와 마주 본 뒤에 다시 아오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감스럽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겐토 군은 작년 봄에 이 연구소를 떠난 이후로 내내 실종 상태였습니다. 왜 이곳을 떠났는지, 우리로서는 그 목적을 알지 못했었는데 아무래도 최악의 범죄에 손을 댄 것 같아요.”

  “동기는? 왜 살인을 저질렀지요?”

  “그건…….” 기리미야 레이는 거기서 문득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오에 교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서.”

  “이만큼 밝혀놓고 어떻게 여기서 딱 자릅니까? 끝까지 얘기해줘야지요.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온천지 일에 대한 진실을 묵비하는 대신에 나도 왜 그런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 권리는 있잖습니까.”

  “그래도…….” 기리미야 레이는 말을 머뭇거리며 의견을 청하듯이 우하라를 돌아보았다.

  천재 의학 박사는 눈가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단지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입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들어주세요. 그리고 지금 하는 얘기도 일절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약속하지요.”

  우하라는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1월 초에 마도카가 돌연 행방을 감췄습니다. 겐토 군이 실종된 뒤로 줄곧 그를 찾으러 가겠다고 조르던 참이었으니까 아마 그것 때문에 사라졌겠지만, 우리는 그것 말고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카오카 형사가 우리를 찾아오고, 교수님에게서 마도카를 만나게 된 경위 등을 듣고 나니까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죠. 방금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온천지에서의 사건은 우리도 겐토 군에 의한 범행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황화수소에 집착하는 범행인 것을 보면 예전에 겐토 군이 당한 비극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에요. 무슨 얘기인지는 교수님도 알고 계시지요?”

  “겐토의 누나가 황화수소 자살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까지 함께 사망한 그 사건?”

  “그렇지요. 겐토 군은 이 연구소에서 계속 연구에 매진했다면 그야말로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 귀한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모두 내팽개치고 살인을 저지를 만큼 누군가를 증오했다면, 그리고 황화수소에 그토록 집착했다면, 그 동기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즉 누나와 어머니를 죽인 자에 대한 복수예요.”

  그 말은 납덩이처럼 묵직하게 아오에의 가슴속에 털썩 내려앉았다.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 그럼 누나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었습니까? 자살처럼 위장한 타살이었다는 건가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겐토 군이 살인을 저지를 만한 다른 동기가 없어요.”

  “그게 타살이었다면 분명 겐토 군이 복수하려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군요. 아니, 하지만 그게…….” 아오에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미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니, 그렇다면 모순되는 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은 겐토 군이에요. 그는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누나가 자살한 것도, 어머니까지 함께 사망한 것도, 전혀 기억을 못 한다고 했었는데? 아니, 애초에 자신에게 누나와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요? 아니면 최근에 기억을 되찾기라도 했습니까?”

 
 아오에의 질문에, 아주 좋은 지적이라는 듯 우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오래전부터 아무래도 미심쩍은 점이 있었습니다.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의 블로그에 내가 처음으로 겐토 군과 의사소통을 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억나십니까?”

  “예, 그거라면 생각납니다. 카레라이스와 축구, 둘 중 하나를 떠올리면서 뇌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었지요.”

  “정확히 기억하시는군요. 맞습니다. 겐토 군은 몇 가지 질문에는 대답했지만, 자신의 경력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어요. 자신의 이름도, 가족에 관한 것도, 어디서 살았는지도.”

  “예, 블로그 글에도 그렇게 나왔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하라는 목소리 톤을 낮췄다. “자신의 나이는 대답을 했어요.”

  “예에?”

  “내 질문을 받고 겐토 군은 분명하게 열두 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는 열세 살이었지만, 그런 착오는 문제가 안 됩니다. 사고를 당한 시점이 열두 살이었으니까 그 뒤의 시간 경과를 파악하지 못한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요. 문제는, 약간의 착오는 있었다 해도 어떻게 나이를 대답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인간의 기억에는 종류가 있거든요. 이를테면 시계, 손수건, 책상 같은 물품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과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전혀 별개의 계통이 사용됩니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더라도 모국어나 물건의 사용법, 규칙이나 관습은 잊어버리지 않는 건 그 때문이지요. 기억상실의 경우, 경력이나 인간관계를 잊어버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겐토 군의 경우도 그랬어요. 하지만 딱 한 가지, 자신의 나이만은 기억했어요. 나는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나이도 경력 중의 하나니까요.”

  “그, 그러면 겐토 군이 기억을 상실한 게 아니었다는?”

  “예, 그렇게 가정하면 이번 사건도 얘기가 맞아떨어집니다. 겐토 군에 의한 복수극이라는 추측이 맞는다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만.”

  “설마 그럴 리가…….”

  “나 역시 이렇게 말하면서도 반신반의입니다. 나이를 대답했다는 것 이외에 겐토 군의 기억상실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사건이 터지고 그가 범인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역시 그는 기억상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하게 된 겁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억에도 없는 가족을 위해 복수극에 나설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겐토 군은 왜 기억상실인 척했을까요?”

  “그 점에 대해서도 짚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아마카스가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 다시금 검증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건 자살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왜죠? 이름이 뭐였더라, 아카쿠마 온천에서 사망한 그 사람…….”

  “미즈키 요시로, 영화 프로듀서입니다.” 기리미야 레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도마테 온천에서 사망한 사람은 배우 나스노 고로, 본명은 모리모토 고로.”

  “맞아요, 그런 이름이었어요. 즉 그 두 사람이 아마카스 겐토의 가족을 죽였다는 겁니까? 대체 무엇 때문에?” 아오에는 두 팔을 크게 내저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아니, 아니죠, 그건 좀 이상한데?”라고 말을 이었다. “그건 불가능해요. 나스노 고로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프로듀서 쪽은 그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을 겁니다. 왜냐면 겐토 군의 누나가 자살을 꾀했을 때, 그 프로듀서는 홋카이도에 있었어요. 부친인 아마카스 사이세이와 함께 있었죠. 블로그 글에 그렇게 나와 있었어요.”

  우하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깊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미즈키 요시로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범행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실행범은 따로 있고 미즈키 요시로는 공범이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나스노가 실행범이었다는 건 어떨까요?”

  “그건……. 네, 그런 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런 짓을? 뭔가 동기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우하라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고개를 저으면서 그 숨을 토해냈다.

  “잘 모르겠어요. 아니, 그보다 그들에게는 직접적인 동기가 없었던 게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과 거의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동기를 가진 주범은 따로 있었고 미즈키와 나스노는 공범에 지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한 명이 더 있다고요?”

  “예.”

  “그게 누구지요?”

  우하라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피해자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입니다. 미즈키나 나스노와도 관계가 있어요. 그리고 그 인물에게도 미즈키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일순 아오에는 우하라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나? 하지만 다음 순간 흠칫했다. 설마, 하고 생각했다.

  “우하라 박사님, 혹시 겐토 군의 친아버지를, 그 아마카스 사이세이 씨를 의심하는 겁니까? 그 사람이 딸과 아내, 그리고 아들까지 죽이려 했다고요?”

  우하라는 대답하지 않고 두세 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마다 가슴과 어깨가 오르내렸다.

 
 “어처구니없는 추측이겠지요? 나도 차마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겐토 군이 기억상실인 척했던 이유도 모두 설명이 되는 겁니다.”

  그 말의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아오에는 생각을 더듬었다. 이윽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겐토 군이 그 사건의 진실을, 즉 친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예, 라고 우하라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얘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요. 겐토 군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식물인간 상태였던 소년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호소할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의사소통을 꾀하게 되었지만 상대의 질문에 예스와 노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 뿐이다. 아들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당연히 아버지로서 아들과의 접촉을 꾀해 왔다. 아내와 딸을 잃고 아들마저 큰 장애를 갖게 된 가엾은 아버지로서. 겐토 군은 어떻게든 그런 아버지와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고 했다. 그래서 아마카스 겐토로서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것으로 하기로 했다……. 어떻습니까, 이건 지나친 억측일까요?”


 아오에는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껏 자신이 믿어온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면, 이라고 중얼거리며 우하라를 마주 보았다. “겐토 군은 부친까지 살해할 생각이라는 건가요?”

  “아마도.”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되지요.” 아오에는 책상을 탕 쳤다. “그런 이야기를 믿으라니, 어떻게 그런 걸 믿겠습니까. 아비라는 자가 제 가족을 몰살시키려 했고, 그걸 알게 된 아들이 제 아버지의 목숨을 노리다니…….”

  “그렇다면 그 밖에 어떤 가능성이 있지요?”

  “……대체 동기가 뭡니까?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자는 왜 제 가족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지요?”

  “그건 모르겠어요.” 우하라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도 안 됩니다. 하지만 아오에 교수님도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잖습니까. 사춘기 소년이 제 가족을 모두 죽인 사건.”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번듯한 성인이잖습니까. 사춘기 소년이 아니에요.”

 
 그러자 우하라는 침통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설득을 당해서 할 말을 잃은 게 아니라 뭔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러느냐고 아오에가 재우쳐 물었다.

  우하라는 한숨을 내쉬더니 태블릿 단말기를 손에 들고 터치했다. 다시 디스플레이의 전원이 켜졌다. 액정 화면에 나타난 것은 몇십 마리의 작은 생물이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그것이 실험동물 마우스라는 건 금세 알아보았다.

  “아마카스 부자는…….” 우하라가 말했다. “한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었습니다.”

 
 

  27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 저 남자구나, 라고 나카오카는 생각했다. 나이가 아마카스 사이세이와 엇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영화감독 아마카스와는 전혀 달랐다. 양복 차림에 깔끔한 가르마 머리, 그리고 안경을 썼다. 팔에는 코트와 서류 가방을 안고 있었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나카오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약간 굳은 표정으로 남자가 다가왔다. 얼굴에 경계심이 감돌았다.

  “우노 씨지요?”

 
 “네, 그렇습니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나카오카는 명함을 내밀었다.

  아뇨, 라면서 상대도 명함을 꺼냈다. 우노 다카오라는 이름 위에 영업부장이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점원을 불러 우노의 희망을 물은 뒤,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우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은 거의, 아니, 전혀 왕래가 없었어요, 아마카스와는.”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함께 다녔고, 대학생 때까지는 교류가 있었다고 하셨지요?” 나카오카는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예, 그렇긴 한데 대학생 때는 기껏해야 서너 번 만난 정도예요.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얘기가 통하지 않더라고요. 아니, 그보다 내가 그의 얘기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죠. 전문적으로 공부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괴물로 변해버려서 좀 놀랐어요.”

  “얘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는 건, 영화 얘기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우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노와 아마카스는 중고등학교 동창일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때는 영화연구회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한 사이였다.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고교 졸업 후, 사립대 예술학부 영화과로 진학했다. 우노가 전문적으로 배웠다고 말한 건 그 얘기일 터였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는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요?”

  “중학교 때는 같은 반이 아니라서 그리 친했던 건 아니에요. 역시 고등학교 때였죠.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려 일주일에 몇 편씩 영화를 보고, 방과 후에는 찻집에서 몇 시간씩 얘기를 나누곤 했으니까요.” 당시의 일이 떠올랐는지 우노는 표정이 조금 온화해졌다.

  “우노 씨도 영화를 아주 좋아하셨군요?”

  “그런 동아리에 들어갈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마카스만큼은 아니었어요.”

  커피가 나왔다. 나카오카는 설탕 없이 블랙으로 마셨다.

 
 그런데요, 라고 우노가 살피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어떤 사건의 수사인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일단 아마카스가 관련된 사건인 모양이죠?”

  나카오카는 오른손을 슬쩍 내두르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감스럽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규칙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라고 우노는 찻잔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나저나 아마카스 씨가 괴물이었어요?”

  나카오카의 물음에 우노는 커피에 밀크를 넣고 저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아무튼 영화는 엄청 좋아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였어요. 아마카스에게서는 영화에 관한 얘기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밖에 모르는 녀석은 아니고 오히려 다방면으로 박식한 편이었죠. 소설 얘기든 음악 얘기든 마지막에는 반드시 영화로 이어지는 식이었어요. 기억력도 아주 뛰어나고 학교 성적도 좋았습니다. 항상 일등 자리를 놓고 다퉜으니까요. 게다가 운동까지 두루두루 잘했으니 괴물은 괴물이죠.”

  나카오카는 어깨를 으쓱 쳐들었다. “너무 완벽한 거 아닙니까?”

  “네, 완벽 그 자체였어요. 내가 항상 했던 말이 있습니다. 재능을 지나치게 많이 갖고 태어난 놈이라고. 근데 그 친구는 전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어요. 잘난 척하는 것도 없었고.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늘 얘기했죠. 좀 더 완벽한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어요. 아까 제가 괴물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완벽주의자라고 하는 게 적합할 것 같네요. 아무튼 이상이 높은 친구였어요.”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혹시 남들에게도 완벽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지는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는 그 친구가 성적이 우수했다는 걸 다 알지만, 그 친구는 아마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우노는 문득 뭔가 생각난 표정을 보였다. “아 참, 근데…….”

  “뭐죠?”

 
 “예외는 있었네요. 완벽하기를 요구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게 누군데요?”

  “사귀던 여자 친구.”

  나카오카는 볼펜을 다시 쥐었다. “연인이 있었군요. 이름을 좀 알려주시죠.”

  “아뇨, 그게요, 연인 사이까지 발전하지도 못했어요. 게다가 한두 명이 아니라 이름은 일일이 기억도 안 납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게다가 생긴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 아마카스가 사귀자고 하면 여자들은 대부분 오케이였죠. 근데 그게 오래가지를 않아요. 매번 잠깐 사귀다가 금세 헤어지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실망했다는 거예요. 그런 맹한 여자인 줄 몰랐다, 완전 실망이다, 라고요. 그러고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요. 그런 짓을 수없이 되풀이했죠. 한번은 아마카스와 사귄 여학생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쪽은 그쪽대로 엄청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먼저 사귀자고 했으면서 너무 거만하게 굴었다는 거예요. 옷차림에 머리 스타일까지 일일이 잔소리를 하고 자기 취향을 강요했던 모양이에요. 아마 그게 아마카스의 이상형이었겠지요.”

  나카오카는 메모하던 손을 멈췄다.

  “그런 완벽주의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런 쪽으로 뭔가 들은 얘기는 없습니까?”

  “자세한 얘기까지는 못 들었어요. 단지 아버지 쪽 영향이 컸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라면…….” 나카오카는 수첩 책장을 넘겼다.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부친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해뒀다. “조각가 아마카스 다이세이 씨 말이죠?”

  “네, 분명 그런 이름이었어요. 천재 조각가였지요.”

  “나는 그런 조각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작품이 많이 올라와 있던데요. 그거 보고 놀랐습니다. 아무리 봐도 나무를 깎아 만든 것 같지 않던데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나무 조각으로 표현한다, 라는 것이 아마카스 다이세이의 작풍作風이었다. 그 정교함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은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고 식물의 꽃잎은 바람에 하늘거릴 것 같았다. 게다가 단순히 리얼하기만 한 게 아니라 보는 이에게 뭔가 호소하는 것이 있었다. 천재의 작업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예술에는 문외한인 나카오카도 감각적으로 납득했다.

  “아마카스는 그런 아버지를 강하게 의식하는 것 같았어요.” 우노가 말했다. “자기도 똑같은 피가 흐를 텐데 그 혈통에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자신은 조각가가 되기는 좀 어렵지만 분명 뭔가 해낼 것이고 그건 아마도 영화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마카스 씨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살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까?”

  “그래요? 아니, 나는 전혀 몰랐는데?”

  “아마카스 씨가 초등학교 때 집을 떠났다고 하던데.”

  “허어, 저런.” 우노는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정말로 처음 듣는 얘기인 모양이었다.

  근데요, 라고 나카오카는 말했다. “그 블로그는 읽어보셨어요?”

 
 커피를 마시려던 우노는 찻잔을 다시 내려놓고 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읽어봤어요.”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블로그 얘기다. 나카오카는 우노에게 연락했을 때, 가능하면 그 블로그 글을 읽고 와달라고 인터넷 주소를 알려주었다.

  “어땠습니까?”

  “그건 뭐, 예에.” 우노는 눈이 약간 커졌다. “놀랐어요. 그가 영화감독이 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니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참 너무나 딱하더라고요.”

  “대학 때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하셨죠? 그러면 당연히 아마카스 씨의 부인이나 자녀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시겠군요.”

  “예에. 그 블로그 글을 읽고서야 알았어요. 나도 그 또래 아이가 있어서 정말로 남의 일 같지 않더라고요.”

  “아마카스 씨의 가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어떻게, 라는 건 무슨?”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그냥 단순한 느낌이라도.”

  “글쎄요, 역시나 아마카스답다고 생각했어요. 그 블로그 글로 봐서는 대단히 모범적인 부인이고, 아이들은 무척 똑똑하고 착한 것 같더군요. 그런데 딸은 아마도 감수성이 너무 강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그런 짓을……. 어쩌면 아마카스의 완벽주의를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런 성품 때문에 괜한 고민이 많았던 거 아닐까요? 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라고 나카오카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마카스 씨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라는 말씀인가요?”

  “예, 나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나카오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을 덮었다.

  “크게 참고가 됐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됐습니까?”

  “네, 고맙습니다.”

  우노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커피를 다 마시고 “그럼 이만”이라면서 일어섰다. 계단으로 향하는 도중에 뭔가 묻고 싶은 듯한 표정을 보였지만 결국 인사만 꾸벅 건네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나카오카는 점원을 불러 커피 리필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다시 수첩을 펴고 우노와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되짚어보았다.

  이상적인 가족…….

  사실을 알려주면 우노는 어떤 표정을 보였을까. 실제로는 그 블로그 글과 전혀 다르다, 아내도 자식도 완전히 창작품이었다, 라고 알려줬다면.

  최근 며칠 동안 나카오카는 아마카스 사이세이와 그의 가족에 대한 탐문 수사를 했다. 아마카스 모에의 동급생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너무도 뜻밖이어서 선뜻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명을 만나보고 얻은 결론은 동급생들의 이야기가 옳고 블로그 글 쪽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아내 유카코에게는 치바 가시와 시로 시집간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유카코에게서 남편에 대한 불평을 어지간히도 많이 들었노라고 했다.

  “집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고, 아이들 키울 때 도와준 적도 없어요. 그런 주제에 어쩌다 집에 오면 이러니저러니 애들을 꾸짖기만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모에도 겐토도 아버지를 싫어해서 자꾸 피하기만 했죠. 유카코가 넌지시 그런 얘기를 하면서 앞으로는 꾸짖지 말라고 당부했더니, 당신이 그런 식으로 어리광을 받아주니 아이들이 형편없다고 도리어 화를 내더래요. 나는요, 그 사람은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될 인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딸 모에가 중학교 시절에 불량소녀였다는 것도 유카코의 언니는 인정했다.

  “그 일로 유카코가 한때는 고민도 참 많이 했어요. 근데 고등학교 올라간 뒤로 댄스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이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그러던 참에 그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으니, 나는 정말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어요.” 유카코의 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카오카는 모에의 중학교 시절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불량서클에서 친하게 지냈던 몇몇 친구들을 탐문해본 결과, 한 친구에게서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에가 중학교 때 임신을 해서 낙태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같은 그룹에서 놀던 두 살 연상의 남자 친구였어요. 임신한 것 같다고 나한테 상의하러 왔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나도 대답을 못 했죠. 하지만 결국 엄마한테 들켜서 병원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빠른 시기였고, 학교에서도 소문이 돌지는 않았지만요.”

  아버지 아마카스 사이세이가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라고 그 친구는 대답했다.

  조사하면 할수록 블로그 글과의 모순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면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어째서 그런 거짓 글을 썼을까.

  모순이라고 하면, 출판사에 보내온 수기 내용도 이상했다. 거기서 밝혀진 모에의 자살 동기는 출생의 비밀에 관한 것이었다. 모에는 아내 유카코와 불륜 상대 사이의 자식이고 아마카스 자신의 친혈육이 아닌 것 같다, 라고 추측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모에가 아마카스 사이세이를 친아버지로 인식했다는 점은 코와 손의 모양새가 아버지를 닮은 것을 몹시 싫어했다, 라는 동급생의 증언을 봐도 명백했다.

 
 대체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어떤 인물인가. 나카오카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인간성을 파악하는 데는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에 같은 학부였던 사람, 아마카스 사이세이가 조감독 시절에 함께 일했던 사람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들 중에 아마카스를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아마카스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항상 자신에게 엄격하고,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는 완벽주의자’라는 것이었다. 우노가 해준 얘기와 똑같았다.

  또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었다.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타인에게는 완벽하기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연인에 대해서는 달랐다는 것이다. 꽤 많은 여자와 사귀었고 곧바로 헤어졌다. 어떤 사람은 취향이 까다롭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이상이 지나치게 높다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추구하는 연인상이 있어서 상대가 거기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 금세 흥미를 잃은 것이다.

  서른 살 때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무명 여배우였던 유카코와 결혼했다. 그렇다면 유카코가 마침내 만나게 된 이상형이었는가. 하지만 당시의 아마카스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은, 그 점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유카코는 이상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업을 하는 그녀의 친가 쪽 자산이 그 결혼을 결정하게 된 요인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무렵 아마카스는 아직 영화감독으로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때에 강력한 경제적 배경을 가진 집안이라는 점이 유카코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줬다는 것이다.

  나카오카는 수첩을 덮었다. 어느새 리필 커피가 나왔다. 입을 대보니 약간 식어 있었다.

  완벽주의자. 사실과는 다른 블로그 글과 수기—.

  뭔가 보일 듯 말 듯한 느낌이었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윤곽이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 안개가 걷히는 것을 가로막는 뭔가가 있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나카오카는 알 수 없었다.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행방은 여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봤지만 항상 전원이 끊겨 있었다. 메시지는 남겼는데 그쪽에서 연락해주는 일은 없었다. 대체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인가.

 
 수첩을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리타 계장이었다.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신바시의 커피점이에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그 건으로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본 참입니다.”

  “그랬군. 이제 끝났어?”

  “네, 끝났어요.”

  “그럼 지금 즉시 들어와. 할 얘기가 있어.” 무뚝뚝한 말투였다.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다.

  “무슨 일인데요?”

  “만나서 얘기하자고.” 그렇게 툭 내뱉고 나리타 계장은 전화를 끊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나카오카는 커피 잔을 비운 뒤에 계산서를 들고 일어섰다.

  형사과로 돌아갔더니 항상 그렇듯이 나리타 계장이 흡연실로 데려갔다. 그들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리타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뽑았지만 냉큼 불을 붙이지 않고 머무적거렸다. 그 대신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나카오카는 즉각 입을 툭 내밀었다.

 
 “손을 떼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리타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얼굴을 찌푸리며 연기를 토해내더니 “이 친구가 말귀를 못 알아듣나”라고 부루퉁하게 내뱉었다. “그 온천지 사건에서는 이제 그만 손을 떼란 말이야.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어째서냐고 물어보려다가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나리타 계장이 이런 식으로 부루퉁하게 말하는 게 어떤 때인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위에서 뭔가 지시가 내려왔어요?”

  나리타는 아랫입술을 툭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때 서장에게 불려 갔었어. 형사과장들도 다 모였더라고. 나카오카에게 뭔가 일을 시킨 모양인데 당장 손을 떼도록 하라는 거야.”

  나카오카는 혀를 찼다.

  “어떻게 눈치를 챘죠? 도마테 온천 건으로 렌터카 회사에 대한 조사를 그쪽 현경에 의뢰했던 게 실수였나요?”

  “아니, 그런 게 아냐.” 나리타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고개를 저었다. “분명 좀 더 위쪽에서 내려온 지시야. 본청, 혹은 경찰청까지도 얽혀 있는 거 같아. 서장 말투로 봐서는 그런 느낌이었어.”

  “경찰청?”

  “이 건에 대해서는 수사는 물론이고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거야. 지금까지 듣고 본 것도 싹 잊어버리라네. 그 대신, 지시한 대로 따르면 그간 비밀 수사를 했던 것이며 그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쳐주겠대. 아무래도 우리가 아주 고약한 덤불숲을 들쑤신 모양이야.”

  “그렇다면 점점 더 들쑤시고 싶은데요? 얼마나 큰 뱀이 기어 나올지, 내 눈으로 꼭 봐야겠어요.”

  나리타는 담배를 잡은 손을 내둘렀다.

  “아서라, 아서. 자네가 좌천당하면 나도 곤란해. 그간의 비밀 수사는 불문에 부쳐주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나리타는 마지막으로 연기를 후욱 내뿜고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껐다. “괜히 나서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마지막 말을 던지고 흡연실을 나가면서 거칠게 문을 닫았다.

 
 나카오카도 뒤따라 나왔다. 복도를 퉁퉁퉁 걸어가는 나리타의 등이 보였다. 그도 분통이 터지는 심정이라는 건 그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들쑤신 것인가. 관할 경찰서의 일개 형사 따위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뭔가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는 건가.

  지금까지 듣고 본 것도 싹 잊어버리라네—.

  그렇다면 나는 이미 극비 사항의 꼬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잠깐—.

  나카오카는 발을 멈췄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다이호 대학의 아오에 교수. 그도 나와 비슷한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그에게도 똑같이 함구령이 내려졌을까. 하지만 그는 경찰관이 아니다. 나한테 한 것처럼 강제 명령은 내릴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그의 입을 막을까.

  해명.

  그것밖에 없는 거 아닌가.

 
 나카오카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오에의 연락처는 물론 아직 잘 보관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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