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1ㅡ추억의 2번버스

뉘썬2뉘썬2 | 2023.12.04 06:33:28 댓글: 17 조회: 369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4697

단차님이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 드뎌 블링블링 등장이요~



이만큼 가까이 7ㅡ정세랑/1984

2022년 출판

ㅡㅡ


1


나는 인생의 가장내밀한 진실을 비빔국수를 통해 배웟다.실없이 하는말이 아니다.우리집은 자유로
끄트머리에서 비빔국수집을 햇는데 손님들이 국수먹는 모습을 지켜본게 내 첫기억이나 다름없다.

북창비빔국수.

실향민들은 우리집에서 열심히 국수를 비볏다.태여난곳으로 돌아갈수 없다는 거대한 비극앞에서
묵묵히 동시에 그토록 리드미컬하게 국수를 비비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자랏다.자연스럽게 체득할수
잇엇던거다.도저히 어쩔수없는 단절과도 함께 살아갈수 잇다는 것을.비극만큼이나 고명이나 양념도
중요하다는 것을.

한가지 손님들이 몰랏던게 잇다면 우리집이 입지상 원조처럼 보이지만 실은 체인점이라는 사실이엿
.그걸 말해주고싶어 입이 간질간질해졋을땐 단골분들 상당수가 땅에 묻혓거나 국수를 먹으러올
형편이 아니게 된후엿다.아무래도 상관없는 시대가 온것이다.아니 어쩌면 아무래도 상관없어진건
나 엿는지도 모른다.고등학생이 된다는건 그런거니까.손님들에게 말도 걸기 싫어지고 비빔국수는 더
더욱 쳐다도 보기싫어졋다.

원조는 아니여도 우리할아버지가 북에서 오긴햇으니 아주 사기는 아니엿다.동경유학까지 다녀온 그
시대엘리트중의 엘리트엿다던 할아버지는 혈혈단신 월남햇다.가족들을 다 두고왓기 때문에 새장가
를 들수밖에 없엇다는데 딱히 엘리트는 아니엿던 우리할머니를 택햇다.

워낙에 나이차가 잇엇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십년가까이 지낫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
하시다.그러니까 북창비빔국수에서 국수를 삶는저 포스잇는 할머니는 사실 반도 남단중의 남단출신
이라는게 또다른 아이러니다.

할머니는 처음엔 말을 걸어오는 손님들에게 그사실을 밝혓던것 같지만 이내 은근슬쩍 실향민 흉내
를 내기시작햇다.장삿속이라기보단 일일이 설명하기 번거로왓던것 같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해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하실수 잇엇는데 평생 별로 럭키하지 못햇던 할
아버지가 어째선지 말년에 추첨운이 터졋고 연장자 우선이라는 기준도 적용되엿기 때문에 아슬아슬
하게 기회를얻으셧던것 같다.평소 할아버지는 항상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얼굴로 안쪽방 등나무 의
자에 앉아계셧다.

등나무의자는 원래 정원용이지만 할아버지 전용의자로 실내에 두게되엿는데 몰래앉아본 바로는 착
석감이 별로 좋지않고 딱딱햇다.할아버지는 그의자에 양류관음도를 연상시키는 관조적인 자세로
하루종일 비스듬히 앉아계셧다.

삶은 그저 스쳐흘러갈뿐 내것이아니오 얼굴도 몸도 얘기하고 잇엇달까.그런 할아버지가 1순위에서
3순위까지 만나고싶은 가족을 정하는 그 며칠간은 안절부절못하셧던게 기억난다.막상 만날수 잇엇
던 가족은 나이차가 많이나서 데면데면한 막냇동생뿐이엿지만 말이다.

막냇동생을 붙잡고 할아버지가 통곡을 하셔서 모시고 다녀온 아빠는 좀 놀랏다고햇다.그렇게 격하
게 울수잇는 사람인지 친아들 도 몰랏던거다.

그때는 상봉장소가 금강산이 아니라 평양고려호텔이엿는데 사방에서 주시를 하고잇어서 분위기가
격하다가 불편하다가 햇다고한다.아빠말로는 작은할아버지의 표정이 심드렁한게 할아버지랑 많이
닮앗다고햇다.

작은할아버지는 그때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나오셧다.할아버지가 혼례날 입엇던 저고리가 저쪽에
남아잇엇다는건 사실 꽤찡한 일이다.그저고리를 보관해온 그쪽 가족들의 마음은 상상도 되지않는
.청년보다 소년에 더 가까웟던 할아버지의 저고리는 내가입어도 맞을만큼 작앗다.

할아버지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이미반쯤 부스러진 저고리를 내놓으시며 돌아가시면 함께 묻
어달라고 하셧다.할머니는 그러마 하시곤 나중에 정말로 관에 넣어드렷다.



문제는 할머니가 제대로 삐치셧다는 점이다.할아버지가 살아계실때도 할머니는 자주 분통을 터뜨
리셧다.평생 유령처럼 여기없는듯이 살더니 멀쩡한 자기를 후처취급하고 뻔뻔하기도 저리 뻔뻔할수
가 없다고 치를떠셧다.가끔은 할아버지 면전에서 터지기도햇다.

이게 곰취인가.”

저녁상에 올라온 머위를보고 할아버지가 잘못 말씀하시면

눈이삐엿네.제대로 삐엿구먼.머위지 머위지.곰취랑 머위도 구분못하문 이제 막확가버리소!”

팩 토라지는 할머니엿다.사실 곰취랑 머위를 가끔 헷갈리기는 나머지 가족들도 마찬가지엿으므로
뜨끔 햇다.할아버지는 끄응 소리를내곤 할머니의 늦된분노를 태연하게 받아냇다.

돌아가실때도 오래 앓지않고 삼사일 누워계셧을뿐이다.호흡이 태엽타이머처럼 가빠지다가 멈추엇
.할아버지가 돌아가셧을때 나는문득 할아버지의 존재감이 그토록 희미햇던 것은 여기와저기 흩
어져 존재햇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햇다.

절대 합장하지마라.”

할머니의 단호한 유언이다.하지만 한동안은 건강하실것 같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별로 닮지않앗다.할머니처럼 화가 나잇지도 않앗다.그보다는 늘 즐거운 편이엿
.즐겁지 않아야 할때도 즐거운게 문제라면 문제엿다.아빠는 평생 작은공들에 관심을 쏟고살앗다.

처음엔 탁구 그다음엔 배드민턴,스쿼시,당구,골프 순서엿다.어릴 때 탁구선수가 될뻔햇다고 하나
이제는 배와허리에 살이좀 붙엇고 그앞 종목들보다 골프에 깊이빠져서 나를 박세리선수처럼 만들
고 싶어햇다.

어차피 공부도 못하는거 너도 골프하자.”

지금은 뛰여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아빠가 그렇게 허망한 계획에 가슴 부풀엇을땐 박세리 열
풍이 한창이던 1998년이엿다.나는 두달정도 어설프게 골프를 배우며 아빠에게 장단을 맞춰주다가
혼신을다해 도망쳣다.외동딸인 나는 아빠의 작은공 컬렉션중 하나엿던 것이다.

아빠가 배우면 나도 무조건 배워야햇다.시작할때는 선택권이 없엇으므로 적당한때 잘 굴러서 도망
쳐야햇다.공부만한 좋은핑계가 없엇겟지만 ㅁㅣ지근한 석차여서 다른핑계들을 애써 찾아야햇다.

여하튼 우리국수집의 지하와 옥상은 아빠의 공간이엿고 엄마가 할머니와 가게를 꾸렷다.조금 머리
가 굵어진 다음에 엄마한테 물은적이 잇다.

엄마 안힘들엇어?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사는거?”

그러자 엄마가 쿨하게 대답햇다.

나는 꽤 운이 좋은편이지.제사도적고 친척들도 하나없고 이럴줄 알앗으면 내 친구들한테도 다 북
에서 내려온집에 시집가라고 햇을텐데말이야.”

엄마가 찬물에 헹궈말아둔 국수들은 크기도 모양도 완벽에 가깝게 균일햇다.언젠가 굉장히 할일이
없으면 한덩이마다 몇그램에 몇가닥인지 재여보고 세여보려 마음먹엇지만 아직까지 기회가 없엇다.




01.
MPEG

머리색 예쁘다.

송이 ㅡ(웃는다.)

나 ㅡ너항상 그런색머리 하고싶어햇엇지?오렌지갈색.

송이 ㅡ(고개를 끄덕인다.)

송이를 클로즈업.비스킷 빛깔의 머리카락끝이 몇번감아맨 니트스카프 안으로 추슬러져잇다.색색의
알록달록한 술이 작은종처럼 달려잇다.

카메라를 내려 송이의손.포크를 쥐고잇다.종류를 알수없는 작은 딸기류 열매를 포크로 누른다.붉은
즙이 접시에 번져나간다.

ㅡㅡ

이카메라를 산건 어디까지나 일할 때 자료수집을 위해서엿다.DSLR이긴 하지만 보급형이며 우리나
라에서만 십삼만명이 가지고잇는 카메라다.

그런데 몸담고잇는 업계때문인지 사진은 찍지않고 동영상을 찍는다.기대보다 훨씬 만족할만한 화
질이 나온다.요즘은 방송도 작은카메라로 찍는다는데 그럴만하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보면 잠시 긴장하지만 대충 내려놓고 괴여놓으면 이내 잊어버린채 자연스럽게
웃고 이야기한다.탁자옆이나 남는의자에 옷가지나 가방ㄸㅏ위로 각을 잡아두면된다.나는 대개 가족
이나 친구들을 동영상파일에 담앗고 그걸로 뭘하려는 생각은 사실없엇다.개인소장용 일기같은 것이
라고 설명하자아무도 따로 묻지않앗다.내가 아무것도 하지않으리란걸 직관적으로 아는것 같앗다.

송이를 찍은파일엔 주로 내목소리만 잇다.표정은 풍부하지만 말은없는 송이의 파일이 가장많다.


그냥 십대를 보내는것도 쉬운일이 아닌데 세기말에 십대를 보내는건 더 죽을것같은 경험이엿다.
상할만큼 절망과 무력감 비관적전망이 우리를 감싸고 돌아서 우리는 그것을 잊기위해 다같이 피어
싱을 해댓다.

물론 지금도 피어싱을 하는사람은 많지만 그땐 레이스와 퍼프소매를 입은 여자애들도 가리지않고
귀에 구멍을 넓히는데 혈안이엿다는걸 기억해내면 얘기가 달라진다.여자애들은 주로 투명한 아크
릴틀을 넣엇는데 문득 돌아보면 피어싱 구멍틀 가운데로 하늘이 보엿다.

귀사이로 하늘이 보이던 아이들은 지금 어쩌고잇을까?아마 그렇게 넓어진 구멍도 다시 메울수잇는
방법을 성형외과 의사들이 알아냇을것이다.비단 피어싱만이 아니다.우리가 방학마다 갖가지 색깔
로 머리를 물들이는 바람에 강한염색이 다시 유행으로 돌아오기까지 거의 십년이 걸렷다.

나는 언제나 해골티셔츠를 입고잇엇다.교복을 입지않을때에는 말이다.정통 해골에서부터 눈이 하
트인해골,스팽글해골,미키마우스 해골,도트해골,명화를 패러디한 해골,사탕을 물고잇는 해골,토끼
해골,왕관을쓴 해골,핑크색해골,진주목걸이를한 해골,얼굴반쪽이 매릴린먼로인 해골,망사해골,
광해골,장미를 꽂은해골..

구제옷이 많앗기 때문에 종종 바퀴벌레 알이 묻어왓는지 커다란 바퀴벌레가 출현하면 엄마한테 등
짝을 맞앗다.

티셔츠도 좋아햇지만 가장좋아햇던건 해골스타킹이엿다.검은바탕에 하얀다리뼈가 프린트 되여잇
어서 플리츠스커트밑에 입으면 유쾌한 기분이 들엇다.신발을 벗으면 발가락까지 정교햇다.과격햇
지만 그게또 용인되는 분위기엿다.나는 까맷고 남자애처럼 엉덩이가 납작햇으며 발목이없는 일자
다리엿다.

지금와서 그때 사진들을 보면 약간 부끄럽지만 그래도 꽤 어울리는 차림이엿다고 자부한다.스타킹
은 수입제품이라 홍대구석에 잇는 가게에서 어렵게 구할수 잇엇다.그때 홍대까지의 길은 어찌나 멀
엇는지 한번 나가려면 큰결심을 해야햇다.주차장길에 노브레인 맴버들이 늘 서성이고 잇엇다.




대개는 서울까지 나갈생각을 못햇고 동네에서 하릴없이 방과후를 보냇다.그때의 파주엔 우리가 숨
어놀수잇는 공간이 충분햇다.그런 공간들 때문에 십대출산율이 소폭 높아지지 않앗나 농담들을 한
.다행히 나는 연애보다 옆집 작업실에 더 관심이 많앗다.지금도 없는건 아니지만 그땐 가난한 조
각가들이 단체로 파주에 작업실을 얻엇다.

작업실이라 해봣자 난방도 되지않는 슬레이트 창고들로 여름엔덥고 겨울엔추운 조악한 공간이엿다.
사람손을 탄 야생동물처럼 기웃기웃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부부와 친해져서 그작업실에 자주 기
여들엇다.

창용오빠와 인영언니의 작업실냄새가 기억난다.난로냄새,나무냄새,인스턴트 양념냄새가 631
정도로 섞여잇엇다.조각가들중에 제일 친절햇고 가장오래된 축이엿다.뜨내기들 싫어하는 동네어른
들 마음마저 얻어낸 부부엿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을때면 늘 거기잇엇다.그런내가 부담스러웟을 법도한데 두사람은 전혀 개의
치않앗다.엄마는 묻지도않고 가끔 그쪽으로 국수를 보냇다.우리집은 배달하는 집이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작업실에 쌓여잇는 컵라면을 선호햇다.염치도 없엇다.

너같은 딸 잇으면 좋겟다.”

창용오빠는 그때 지금의 나보다 몇살 많앗을뿐인데도 가끔 그렇게 말햇다.그럼 인영언니는 싸늘하
게 아무대답도 하지않앗는데 언니는 몇년더 활동에 매진하고싶엇던 것이다.예술가들에게도 경력단
절은 똑같이 부담이엿을테고 끌과정과톱과..ㅈㅣ금도 이름을 다모르는 위험한 공구들 사이에서 갓
난아기를 키우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이는 물론 반려동물도 불가능한 환경이엿다.그래서 언니는 언니대로 동네짐승 같은 나를 그래도
대충 다자란 나를 데려다 앞머리도 잘라주고 손톱도 발라주고 하며 뭔가를 키우고싶은 욕구를 해소
햇다.해소햇다고 말하면 좀 이상한듯해도.

천장이 높앗고 언제나 톱밥과 석고 부스러기와 돌가루가 날리고잇엇다.폐에는 매우좋지않고 미의
식에는 굉장히 유익하던 나날이엿다.분명 어딘가에서 주워왓을 소파에 늘어져 언니오빠가 작업하
는걸 구경하다가 가끔 가벼운 도구를 쥐여주면하는 흉내도 내보다가 만화책을 보다가 늘어진 배처
럼 아래로휜 책장에 꽂혀잇는 화집들도 보다가 그랫다.

전혀 문화적인 토양이없는 우리집에서 내가 영화미술로 빠진데는 언니오빠 영향이 일부잇엇다.
히나 좋아햇던건 자코메티의 작품집이엿다.엉덩이가 없는 조각상에 감정이입을 햇던건지도 모른다.
흉하고 거칠게 마른 조각상들을 한번도 본적없으면서 좋아햇다.직접 보게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
엿다.

공기는 좀처럼 꼭대기까지 따뜻해지지 않앗다.




02.
MPEG

출판단지 벤치에서 주연이는 추리닝을 입고잇다.영화관에서 사온 커다란 콜라컵이 놓여잇다.

주연 이콜라는 물이반이네..내생각에 소원은 정말 조심히 빌어야하는 것 같아.

나 ㅡ왜?

주연 ㅡ파주에 출판단지 막 들어섯을 때 말야.건물이 워낙 예뻣잖아.

나 ㅡ응 지금처럼 낡기전엔 더그랫지.

주연 ㅡ집에서도 가깝고 저기서 일하면 딱좋겟다.몇번 입밖으로 말햇엇거든.왜그랫을까.내가미쳣지.

나 ㅡ원래 책 좋아햇잖아.너희집에 책 많앗던거 기억나.그렇게 책꽂이가 많은집은 처음봣엇어.우리
집엔 딱 하나엿거든.그것도 내키만한 아동용.

주연 ㅡ책 좋아하는거랑은 전혀 다른문제야.우리엄마아빠가 나 이렇게 되라고 책 사줫겟니.파주를
떠날수가 없다니 믿을수없어.

나 ㅡ처음에 파주왓을때도 힘들지 않앗어?적응하기?

주연 ㅡ엄청 힘들엇지.파주의 파는 ,파 어웨이의 파인가 고민햇다니까.게다가 독소리가 막 날아
다니는거야.독수리라니.서울에서 겨우 두시간 왓는데 독수리라니.머리통이 나만한 독수리랑
눈이 마주쳣엇어.해외여행 갈필요가 없다니까?

나 ㅡ그렇지.여기가 이국이지.

ㅡㅡ

2번버스.

그망할 버스에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그버스를 빼놓고는 아무얘기도 할수없다.한시간에 한대
그마저도 제때 오는적이없는 버스가 신도시에잇는 고등학교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엿다.다른 노선들
은 귀신같이 어긋나 우리를 피해갓다.우리 여섯명은 곧쓰러져 죽을것같지 않으면 매일 그버스에 탓
.누구 한사람 타지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졋다.

버스를 놓쳣다고해서 학교에 데려다줄만큼 교육열높은 부모님을 둔 친구는 없엇다.그버스를 놓치면
두번내지 세번을 갈아타야햇고 학교에 도착하면 1교시 중간이거나 재수없으면 아예 2교시엿다.

말도안되는 꼬불꼬불한 길을갓다.속이안좋을 때면 쏠렷다.버스자체도 워낙낡아서 심지어 앞문쪽은
철판틈새로 미끄러지는 도로바닥이 보엿다.버스란건 정말 얇은 철판박스구나 실감하며 되도록 그틈
새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애썻지만 자꾸만 눈이갓다.학교가는게 뭐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이 말도
안되는 판때기에 태워보내는가.나만그렇게 아연해한 것은 아니여서 주연이는 가끔 폭발햇다.

이 따위 버스 중고수출도 못해!”

주연이가 폭발하면 상대적으로 차분해질수 잇엇다.

기사아저씨 듣겟어.”

인도에서 한글쓰인 버스만나면 반가웟지만 이차는안돼.폐차만이 답이야.”

눈이오면 여지없이 버스가 퍼졋다.상습폭설 지역이라 수월한 날보다 고단한 날이잦앗다.큰도시 큰
길에서 벗어나면 도로사정이 얼마나 좋지않은지 아는사람들은 알것이다.버스가 퍼져버리면 우리여섯
은 눈길을 헤치고 다른길로 나가기위해 애를썻다.운동화가 젖는건 예사엿다.발가락이 얼어떨어져나
가지 않은게 지금와서도 다행이다.

그런경험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엇다.2번버스가 아니엿다면 우리도 우리가 아니엿을것이다.1번도
3번도 4번도 5번도 우리동네를 지나지 않앗다.2번만 지낫다.나머지 번호의 버스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지조차 가끔은 의심이갓다.2는그렇게 절대적인 번호이기엔 조금 힘이빠지는 숫자다.

지나치게 밭은 버스정류장 이름은 가게앞이라든가 물탱크앞이라든가 창고앞이라든가 황당한것들
이 대부분이엿다.가게가 그것밖에 없는것도 아니엿고 물탱크가 그것밖에 없는것도 아니엿고 널린게
창고엿음에도 그랫다.

아직도 2번버스는 다니고 정류장 이름들은 그대로다.



버스에 가장 불만족스러워햇지만 주연이는 오리지널 버스맴버가 아니엿다.오리지널 버스맴버는 나,
송이,수미,민웅이,찬겸이엿다.주연이는 학기가 끝나갈때쯤 전학와서 타기시작햇다.내가 그사실에대
해 말하면 주연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변두리것들이 텃세를 부린다고 말이다.하지만 내게는 주연
이가 오기전과후가 너무나 다른 세계엿기에 기억의 그지점쯤 분명한 분절로 깃발이 꽂혀잇다.


송이 우리의 송이는 송이만의 방식으로 늘 탁월햇다.그걸 미리 알아채지못한 우리가 촌스러웟을뿐이
.스키니진이 유행할 기미없이 부츠컷의 제국이엿을때도 혼자 다리통을 줄여입엇고 애슬레저룩의 개
념도 없을 때 적절한 아이템을 활용햇고 구할 수 없는 것은 직접 만들엇다.나도수미도 주연이도 송이
없이는 뜨개질실기를 통과하지 못햇을것이다.

나는 겉뜨기 안뜨기를 넘어서면 머리가 멈춰버렷는데 송이는 혼자 배우지않은 뜨개법을 만들어내기
까지 하면서 우리가 엉망으로 떠놓은 장갑과 모자를 말끔하게 고쳐놓앗다.오류를 거꾸로 거슬러오르
는 손가락에는 신성한 느낌마저 잇엇다.

알록달록한 순록을 짜넣은 발토시를 교복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다닌게 송이엿다.그땐 노르딕 패턴
이 유행하기 한참전이엿는데도 말이다.순록이라니 얼마나 생소한가.가끔 배가고파서 민가까지 내려
온 고라니는 봣어도.

송이는 어떤옷이든 소화할만큼 원체 비율이 좋앗다.송이뿐만아니라 송이의 언니들과 여동생도 마찬
가지엿다.송이는 딸넷중에 셋째엿는데 자매들뿐아니라 어머니까지 똑 같은 얼굴을 복사해놓은것 같
아서 처음엔 사실 충격을 좀 받앗엇다.

송이의 얼굴에대해 말하자면 부드럽고 가는 머리카락 아래 말그대로 달걀형얼굴,긴실눈,작고약간들
린코,고르지못한 치열이 뭐라 말할 수 없이 도깨비나 요정같은걸 연상시켯다.귀염성잇는 얼굴인건 분
명한데 요괴과의 귀여움이랄까.송이네 아버지를 봣을때는 나도모르게 감탄햇다.요괴다섯과 사는것치
고 엄청 행복한 얼굴을 하고계시네 하고.

송이네 부모님은 딸넷 모두에게 치아교정을 시키는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셧는지 공평하게 아무에게
도 해주지 않앗는데 그래서인지 송이네 자매는 유난히 과묵햇다.

말도 잘하지않고 웃을때도 입을다물고 소리없이 웃엇는데 그럼에도 송곳니같은게 곧잘 삐죽 튀여나
왓다.그집에서 재미잇는 일이 벌어지면 놀러간 손님만웃고 그집 가족들은 백색소음 같은 소리를냇다.
그건그것대로 유쾌햇다.

송이는 돈을 벌자마자 쌍꺼풀수술을 햇고 조금더 모아서는 치아교정을 햇다.뭐라 말할 수 없이 독특하
던 얼굴이 사라지고 지금은 표준형 미인에 가깝다.미묘하게 들린 발랄한 코에까지 손을댈까봐 염려되
지만 어머니나 자매들과 구분되는 얼굴이된건 다른의미로 자연스러운 일인것같아 별말하지 않기로햇
.그렇게 같은 얼굴들이 버글버글 모여잇으면 이상하니까 오히려 이쪽이 자연스럽다고 말이다.

어릴때나 지금이나 송이는 소리없이 큰사고를 잘친다.중학교 때엿다.그때만해도 두발단속이 보편적인
일이엿으므로 월요일아침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머리카락 뭉치들이 잔뜩 흩어져잇엇다.빗물 배수로를
덮은 시멘트 블록위로 마치 서부극의 굴러다니는 덩굴풀처럼 말이다.

송이도 한번 머리를 잘렷다.나는 줄 뒤쪽에서 그모습을 보앗는데 송이는 발작이라도 일으킬것처럼 몸
을떨더니 학생주임을 향해 신고잇던 두신발을 벗어던졋다.그러곤 신발을 줍지도않고 양말만 신은채
다시집으로 돌아갓다.

신발을 던지는일이 아랍권의 흔한 모욕의 표시란걸 아무도 당사자인 송이도 몰랏을 때엿으니 굉장히
본능적이엿던 셈이다.내가 신발을 주워서 하교후에 갖다주엇다.중학교는 동네여서 다행이엿다.송이네
아파트까지 가는길은 결코 양말을신고 돌아가기 편한길이 아니엿다.

당연히 송이어머니는 학생부의 호출을 받앗지만 가서는 송이와 똑 같은 느긋한 요괴얼굴로 두발단속
이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겟다,애머리를 그렇게 해놓으면 어떡하냐,내딸이 좀 저하고픈대로 해다니면
정녕 안되느냐며 학주의 속을 뒤집어놓으셧다.

결국 송이는 졸업할때까지 학주와 전쟁을 벌여야햇다.험한꼴을 겪을수록 송이의 패션도 보란듯이 과
격해졋다.그때는정말 괴상하다고 생각햇는데 요즘 아이돌들이 꼭 그때의 송이처럼 입고잇는걸 보니
앞서간게 틀림없다.

형광색을 더입엇어야 햇는데 미친것 같은 옷은 다입어봣어야 햇는데.”

최근에 송이가 입을열자 우리는 모두 절레절레하며 동의하지 않앗다.

넌 충분히 입엇어.”



송이와 같은아파트에는 찬겸이가 살앗다.논밭 한가운데 서잇는 한동짜리 아파트라니 큰도시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지 몰라도 의외로 흔한풍경이다.찬겸이네 집은 그 시끌벅적한 복도식 아파트에서 제일
조용햇고 찬겸이는 우리중에서 공부를 가장잘햇다.

멋이라고는 하나없이 빡빡깎은 머리에 통통한 체격이라 교복바지가 위태로웟다.키도덩치도 크지 않으
면서 통통하기만 해서 게다가 유난히 피부가 분홍빛을 띠여서 아이들은 언제나 새끼돼지라고 찬겸이
를 놀렷다.일부러 숨을 들이켜며 꿀꿀소리를 냇는데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엿다.

놀리는 정도를 지나쳐 사태가 점점 폭력적이고 악의적으로 변해가자 당사자가 아닌내가 성질이나서
결국 그애들 책상을 걷어찻다.책상에 명치를 부딪힌 애가 신음소리를 냇고 나는지금은 기억도 나지않
는 욕설을 퍼부엇다.

중학교 때까지만도 남자애들과 완력차이가 그렇게 크지않앗겟지만 돌아보면 겁도 없엇던것같다.그때
이후 찬겸이는 공기가 불안해지면 내주변에 와서 얼쩡거렷고 내친구들하고 친해지려 애썻다.송이와나
는 대수롭지않게 이 똑똑하고 동그랗고 분홍색인 남자애를 끼워줫다..너무 눈치없이 끼려하면 가끔 내
쫓기도 햇지만 말이다.

나중에 찬겸이가 고백햇는데 찬겸ㅇㅣ네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가서 나나 송이와 같은반에 넣어달라고
까지 햇다고한다.

당시 경기도는 비평준화 지역이엿으므로 찬겸이가 우리와 같은 고등학교에 갈거라고는 생각도 하지못
햇다.제일좋은 고등학교에 가리라 모두가 믿고잇엇는데 찬겸이는 큰시험에 약햇다.

대입시험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던 연합고사에서 큰실수를 여러 개 한나머지 송이와 나를따라 중간보
다 아주조금나은 고등학교에 진학햇다.고등학교때 찬겸이는 살이빠졋고 머리를 길럿고 전보다는 놀림
을 덜받기 시작햇다.

한번 연습을 해서인지 수능은 잘봐서 치대에 입학햇고 점점더 길어지더니 라식수술까지 해서 지금은
동네의 대표적 훈남이자 마스코트 개천용이다.딸가진 엄마들은 너그때 걔좀 미리 알아보지 그랫어!”
하며 닦달하지만 그시절 우리에겐 그냥 돌아보면 항상잇는 분홍생물체같은 느낌이엿다.

분홍빛만큼은 아직도 어쩌지 못햇다.본인은 뻔뻔스럽게 고급스럽게 혈색좋은 피부로 밀고잇다.



03.
MPEG

믹서에 사이다와 아이스크림을 넣고돌린다.기분좋은 소리에 이어 기분좋은 색깔과 걸쭉함을 가까이
찍는다.

찬겸 ㅡ학교축제때 크림소다가 진짜 맛잇엇어.집에서하면 절대 그맛이안나.만들어팔던 애한테 물어보
기까지 햇는데.정말 이것밖에 안들어간대.

추천 (1) 선물 (0명)
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단차 (♡.252.♡.103) - 2023/12/04 08:51:57

재밌어요. 역시 이런 생활밀착형 소설이 잘 읽혀요.
읽으면서 잠시 학창시절을 떠올렸어요.
제가 다닐때도 두발단속이 있었어요. 긴머리는 무조건 묶고 다녀야하고 어정쩡한 단발은 금지 짧은 머리는 요즘 숏컷처럼 잘라야 했었어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2/04 08:55:06

우리 학교다닐때도 머리 못기르게 해서 한이맺혀서 졸업후에 머리를 엄청 길럿거든요.
근데 이제는 긴머리 관리하기 힘들어서 못길러요.

머리가지고 역새질하는것도 젊엇을때 한때인것 같아요.

단차 (♡.252.♡.103) - 2023/12/10 06:49:36

어릴때 저는 숏컷 여자애였어요. 엄마아빠 취향이 숏컷이라서요. 자기 결정권이 없었죠.
그래서 나중에 커서 꼭 머리를 기르겠다고 별렀었죠.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0 21:00:23

우리어릴때는 여자애들도 컨쓰 깍앗어요.郭富城머리 ㅋ

단차 (♡.252.♡.103) - 2023/12/10 21:02:59

그때 머리 자르기 싫어서 울고불고 했는데 소용없었어요 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0 21:07:04

나두 너무짧게 짤라서 울엇댓죠.ㅋ

단차 (♡.252.♡.103) - 2023/12/10 21:10:04

그게 한이 돼서 지금 관리하기 힘든 것도 계속 기르고 있어요.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0 21:17:07

실컷기르고나면 또 깎고싶어요.ㅋㅋ

단차 (♡.252.♡.103) - 2023/12/10 21:18:23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냅두는 법이 없죠 ㅋㅋㅋ

뉘썬2뉘썬2 (♡.169.♡.51) - 2023/12/10 04:39:04

단차님은 해골티를 입어본적 잇나요?

단차 (♡.252.♡.103) - 2023/12/10 06:48:13

해골티는 못 입어봤어요. 우리 때는 연한 핑크색 츄리닝이 유행했어요.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0 20:59:11

해골티는 나두 취향아니예요.우리때는 청바지 나오기전이라
곤색바지 유행햇네요.ㅋㅋ

단차 (♡.252.♡.103) - 2023/12/10 21:01:20

해골티는 좀 락밴드하는 사람들이 입는거 아닌가요? ㅋㅋ 제가 학교다닐때는 거진 다 청바지만 입었어요.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1 21:10:29

왜 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우울증이 많죠? 관중석에앉은
사람들은 흥분해서 스트레스 풀려보이는데.

단차 (♡.234.♡.24) - 2023/12/11 21:22:43

연예인들도 우울증이 많잖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던 아이돌이 우울증으로 떠나서 진짜 충격 받았어요. 아스트로..멤버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2/12 05:02:57

문빈이죠? 유투브에 뜨던데.샤이니 종현이도 그렇게 갓죠.

단차 (♡.234.♡.24) - 2023/12/12 06:11:42

네. 맞아요 문빈. 샤이니 종현도 팬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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