查拉图斯特拉如是说 2部 겨울을 지닌 아이, 지극한 행복의 섬에서, 동정하는 자들에 대하여

단차 | 2023.12.07 00:15:19 댓글: 0 조회: 130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6238
제 2 부
거울을 지닌 아이
그 후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산속으로, 자신의 동굴로 돌아와 고독하게 지내며 사람들을 피했다. 즉 그는 씨를 뿌려놓고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지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무척 안절부절했고,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찼다. 그들에게 줄 것이 아직 많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활짝 폈던 손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오므리고, 베푸는 자로서 수치심을 간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고독한 자에게 달이 가고 해가 갔다. 하지만 그의 지혜는 커져 갔고, 그것이 너무 충만해서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잠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마침내 마음속으로 말했다.
"내가 꿈을 꾸다가 깜짝 놀라 깨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거울을 지닌 아이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던가?
'오, 차라투스트라여.'ㅡㅡ아이가 나에게 말했다.ㅡㅡ '거울속의 그대 모습을 보세요!'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놀라 비명을 질렀고 내 마음은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거울 속의 모습은 내가 아니라, 악마의 찌푸리고 조롱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나는 이 꿈의 징조와 경고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나의 가르침이 위험에 처해 있고, 잡초가 밀이라고 행세하려는 것이다!
나의 적들은 힘이 세졌고, 나의 가르침의 본뜻을 왜곡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내가 준 선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의 벗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잃어버린 벗을 찾으러 나설 때가 온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 모습은 속이 답답해 시원한 공기를 쐬려는 자라기보다 오히려 영감을 받은 선지자나 가인(歌人)처럼 보였다. 그의 독수리와 뱀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다가올 행복이 마치 아침놀처럼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의 짐승들이여?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내 모습이 변하지 않았는가? 축복이 폭풍우처럼 나에게 오지 않았는가?
나의 행복은 어리석으므로 나의 입에서는 어리석은 말이 나오리라. 나의 행복은 아직 너무 어리므로 너그럽게 참고 견디어라!
나는 나의 행복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고뇌하는 자들은 모두 나의 의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벗들에게 다시 내려갈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적들에게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말하고 베풀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성급한 사랑은 콸콸 넘쳐흐르며, 해 뜨는 방향이나 해지는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침묵의 산과 고통의 폭풍으로부터 나의 영혼은 골짜기로 흘러내렸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그리워하며 먼 곳을 바라보았고,나는 오랫동안 고독에 잠겨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침묵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했다.
나는 온몸이 입이 되었고, 높다란 바위에서 떨어지는 시냇물의 쏴쏴 하는 소리가 되었다. 나는 나의 말이 골짜기 아래로 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사랑의 물길이 길이 없는 곳으로 떨어진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끝내는 바다로 이르는 길을 찾고 말 텐데!
아마 내 마음속에는 하나의 호수, 은둔자처럼 자족하는 호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사랑의 물길은 호수를 허물고 바다로 흘러가리라!
나는 새로운 길을 가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전한다. 나는 창조하는 자들이 다 그렇듯이 진부한 말에 싫증이 났다. 나의 정신은 더 이상 낡은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고자 하지 않는다.
모든 말이 너무 느리게 들린다. 폭풍우여, 그대의 수레에 뛰어오르리라! 그리고 나의 심술로 그대를 채찍질하고자 한다.
나는 함성처럼 환호성처럼 드넓은 바다를 건너가, 나의 벗들이 기다리는 지극한 행복의 섬을 발견하리라.
그들 중에는 나의 적들도 있겠지! 이젠 내가 말할 수 있는 자면 누구든 사랑하리라! 나의 적들도 내 축복의 일부가 아니던가.
사납기 짝이 없는 나의 말에 올라타려고 할 때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언제나 나의 창이 아니던가. 그 창은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내 발의 하인이 아니던가.
내가 나의 적을 향해 창을 던질 수 있게 되다니! 마침내 창을 던질 수 있게 해주니 나의 적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나의 구름은 너무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었다. 즉 번갯불의 너털웃음 사이로 저 아래를 향해 우박을 퍼부으리라!
이때 내 가슴은 크게 부풀어 오르며, 자신의 폭풍우가 저 산너머로 몰려가게 하리라. 그러면 내 가슴은 가벼워지리라.
참으로 나의 행복과 자유는 폭풍우처럼 찾아오리라! 그러나 나의 적들은 악인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날뛴다고 생각하겠지.
그렇다, 나의 벗들이여, 그대들도 나의 사나운 지혜 때문에 놀라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대들도 나의 적들처럼 달아날지도 모른다.
아, 나는 그대들을 목자의 피리 소리로 유혹해 그대들을 되돌아오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면 좋으련만! 아, 지혜라는 나의 암사자가 사랑스럽게 으르렁거리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함께 배우지 않았던가!
나의 사나운 지혜는 고독한 산 위에서 잉태되었고, 거친 바위 위에서 아이를, 최후의 아이를 낳았다.
이제 나의 지혜는 황량한 벌판을 바보처럼 뛰어다니며, 부드러운 풀밭을 찾아다니고 있다. 나의 해묵은 사나운 지혜는!
그대들 마음의 부드러운 풀밭 위에, 나의 벗들이여! 나의 지혜는 그대들 사랑 위에 자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를 눕히고 싶어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극한 행복의 섬32)에서
무화과 열매들이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것들은 잘 익어 달콤하다. 그 열매들은 떨어지면서 붉은 껍질을 터뜨린다. 나는 무화과 열매에 불어닥치는 북풍이다.
나의 벗들이여, 나의 가르침은 이러한 무화과 열매처럼 그대들에게 떨어진다. 이제 그 과즙을 마시고 달콤한 속살을 먹도록 하라! 가을이 무르익었고, 맑은 날 오후다.
보라, 주위가 얼마나 충만한가! 그리고 이렇듯 넘치는 가운데 먼바다를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찍이 사람들은 먼바다를 바라보면서 신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초인을 말하도록 가르치겠다.
신이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므로, 나는 억측이 그대의 창조하는 의지보다 멀리 나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대들은 하나의 신을 창조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침묵하라! 하지만 그대들은 초인을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형제들이여, 어쩌면 그대들은 스스로 창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들은 자신들을 초인의 아버지나 조상으로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대들 최고의 창조이리라!
신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므로, 나는 그대들의 억측이 생각의 가능성에 머물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신을 사유할 수 있는가? 그런데 진리에의 의지란 모든 사물을 인간이 생각할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대들은 자신의 감각을 끝까지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먼저 그대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즉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심상,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이 세계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대들 인식하는 자여, 그러면 참으로 행복을 얻게 되리라!
그대들 인식하는 자여, 그대들은 이러한 희망도 없이 어떻게 삶을 견디려 하는가? 그대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나 합리적이지 않은 것 속에서 태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대 벗들이여, 그대들에게 내 마음을 다 드러내도록 하겠다. 만약 신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신이 아니란 사실을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이젠 그것이 나를 이끌어간다.
신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억측이라는 고통을 다 마시고도 죽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창조하는 자에게서 그의 믿음을, 독수리에게서 하늘을 맴도는 능력을 빼앗으란 말인가?
신이란 반듯한 것을 모두 구부러지게 만들고, 가만히 서있는 것을 모두 돌게 하는 사상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시간이 사라져버리고, 덧없는 모든 것이 거짓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온몸이 소용돌이치며 어지럽고, 위에서는 구역질이 난다. 참으로 이러한 억측을 하는 것을 나는 어지러운 현기증이라 부른다.
나는 이를 사악한 것, 인간에게 적대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즉 하나뿐인 것, 완전무결한 것, 변하지 않는 것, 충만한 것, 영원한 것에 대한 이 모든 가르침을!
불멸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그런데 시인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그러나 최고의 비유라면 시간과 생성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비유는 모든 덧없음을 찬양하고 정당화해야 한다!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되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고,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그렇다. 그대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삶에는 수많은 쓰라린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모든 무상함을 대변하고 옹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나는 백 개의 영혼을 거치고, 백 개의 요람과 산고를 겪으며 나의 길을 걸어왔다. 이미 여러 번 작별을 했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최후의 순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창조하려는 의지, 나의 운명이 이를 바라고 있다. 아니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바로 그러한 운명을 나의 의지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나에게 시달리며,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나의 의욕은 언제나 나를 해방시키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로서 나에게 온다.
의욕은 해방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의지와 자유에 대한 참된 가르침이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그대들에게 가르친다.
더 이상의 의욕, 더 이상의 평가, 더 이상의 창조는 없다! 아, 나는 이런 심한 권태를 더 이상 맛보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무언가를 인식할 때에도 나는 내 의지의 생식 욕구와 생성 욕구만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인식에 순진함이 있다면 이는 나의 인식에 생식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지가 나를 유혹하여 신과 신들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만약 신들이 있다면 창조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나의 불타오르는 창조 의지는 늘 새로이 나를 인간에게 몰고 가서, 망치로 돌을 치게 한다.
아, 그대 인간들이여. 돌 속에는 하나의 형상, 내가 바라는 형상들 중의 한 형상이 잠들어 있다! 아, 그 형상이 단단하고 흉하기 짝이 없는 돌멩이 속에 잠들어 있어야 하다니!
이제 나의 망치가 그 형상을 가두고 있는 감옥을 잔혹하게 내리친다. 돌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떤 그림자가 나를 찾아왔기 때문에, 나는 이 형상을 완성하고자 한다.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벼운 것이 언젠가 나를 찾아왔던 것인다!
초인의 아름다움이 그림자로서 나를 찾아왔다. 아, 나의 형제들이여! 신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동정하는 자33)들에 대하여
나의 벗들이여! 그대들의 벗은 이런 빈정대는 말을 듣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를 보라! 그는 짐승사이를 돌아다니듯 우리들 사이를 돌아다니지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말했으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그 인식하는 자는 짐승인 인간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인식하는 자가 볼 때는 인간 자신이 붉은 뺨을 지닌 짐승인 것이다.
어쩌다가 인간이 그렇게 되었는가? 너무 자주 부끄러워해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오, 나의 벗들이여! 인식하는 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치, 수치, 수치ㅡㅡ이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그 때문에 고귀한 자는 남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라고 자신에게 명한다. 그는 고뇌하는 모든 자에게 수치심을 느끼라고 자신에게 명한다.
참으로 나는 동정을 베풀며 행복을 느끼는 자비로운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수치심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동정해야 하더라도 동정심이 많은 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그럴 상황이 된다면 멀찍이 떨어져서 동정하고 싶다.
또 다른 자가 나를 알아보기 전에 얼굴을 가리고 달아나고 싶다. 나의 벗들이여, 그대들도 이렇게 하도록 하라!
나의 운명이 언제나 그대들처럼 고뇌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이끌어주면 좋겠다! 희망과 식사, 꿀을 같이 나누어도 되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참으로 나는 고뇌하는 자들을 위해 기꺼이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내가 더 잘 즐길 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보다 나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로 인간은 너무 즐길 줄 몰랐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것만이 우리의 원죄다!
우리가 더 잘 즐길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거나 고통을 줄 생각을 더 잘 버릴 수 있다.
그 때문에 나는 고뇌하는 자를 도운 나의 손을 씻고, 그 때문에 나의 영혼도 깨끗이 씻는다.
고뇌하는 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그의 수치심 때문이며, 내가 도와주었을 때 그의 자긍심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친절은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라 복수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조그만 선행이 잊히지 않으면 그로써 좀벌레가 생긴다.
"받아들일 때 냉담한 태도를 취하라! 그로써 그대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표 나게 하라!" 나는 베풀 게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나는 베푸는 자다. 나는 벗이 벗에게 하듯 베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낯선 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은 나의 나무에서 직접 열매를 따는 게 덜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거지들은 모두 쫓아버려라! 참으로 그들에게는 줘도 화나고, 안 줘도 화난다.
그리고 죄 지은 자들과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쫓아버려라! 나의 벗들이여.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들은 남을 물게 된다.
가장 나쁜 짓은 하찮은 생각들이다. 하찮은 생각을 하느니 나쁜 짓을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사실 그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작은 나쁜 짓을 생각하면 큰 나쁜 짓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예방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나쁜 행위는 궤양과 같다. 나쁜 행위는 가려워서 긁어대다가 터지게 된다. 나쁜 행위는 이처럼 솔직하게 말한다.
"보라, 나는 질병이다." 나쁜 행위는 이렇게 말한다. 즉 그것이 나쁜 행위의 솔직함이다.
그러나 하찮은 생각은 진균과 같다. 기어 다니고 파고들면서 어디에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다. 조그만 진균 때문에 온몸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나는 악마에게 홀린 자의 귀에 이렇게 속삭인다. "그대의 악마를 크게 키우는 게 더 낫다! 그대에게는 아직 위대한 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아,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모두를 정말 많이 알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꿰뚫어 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아직 그들을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없다.
침묵이란 너무 어렵기 떄문에,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은 힘들다.
우리는 우리에게 거슬리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자들에게 가장 부당하게 대한다.
만약 고통받는 친구가 있다면 고통의 휴식처가 되도록 하라. 다만 딱딱한 침대, 야전 침대가 되도록 하라. 그래야 그대가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벗이 그대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면 이렇게 말하라.
"네가 한 일을 용서한다. 하지만 그대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위대한 사랑은 말한다. 사랑은 용서와 동정마저 극복한다고.
우리는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한다. 마음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분별력마저도 금방 달아나기 때문이다!
아, 세상에 동정하는 자들보다 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 동정하는 자들의 어리석음보다 더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 자신의 동정심도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언젠가 악마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신에게도 지옥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최근에 악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인간을 동정하는 바람에 신은 죽어버렸다."
그러므로 동정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곳으로부터 인간에게 먹구름이 몰려온다! 정말이지 나는 날씨의 징조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말도 명심하라. 모든 위대한 사람은 동정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랑의 대상조차도 창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에 바치고, 나와 마찬가지로 내 이웃도 나의 사랑에 바친다." 창조하는 자는 모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들은 모두 냉혹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


32) 그리스의 영웅이 죽으면 간다는 낙원임.
33) 니체는 이 장에서 동정하는 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1889년 1월 투린에서 마부에게서 채찍을 맞는 말에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려다 쓰러진 이후 정신이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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