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4~5

단차 | 2023.12.07 00:18:18 댓글: 0 조회: 28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6239
4
토끼, 꼬마 도마뱀을 들여보내다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은 천천히 되돌아오고 있는 하얀 토끼였다. 토끼는 마치 뭔가를 잃어버린 듯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작 부인! 오, 내 사랑스러운 발! 내 부드러운 털과 수염아! 부인은 틀림없이 날 죽이려 할 거야. 안 봐도 뻔해! 도대체 어디에 떨어뜨린 거지?"
앨리스는 토끼가 부채와 하얀 가죽 장갑을 찾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마음 착한 앨리스는 부채와 장갑을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눈물 웅덩이에 빠진 뒤부터 모든 게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유리 탁자와 작은 문이 있던 커다란 방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토끼는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 앨리스를 발견하고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메리 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서 집에 가서 내 장갑하고 부채를 가져와야지! 서둘러, 지금 당장!"
앨리스는 너무 깜짝 놀라 토끼가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틈도 없이 토끼가 가리키는 쪽을 향해 달려갔다.
"나를 자기 하녀로 생각하나 봐."
앨리스는 뛰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하녀가 아닌 걸 알면 얼마나 놀랄까! 일단은 부채와 장갑을 갖다 주는 게 좋겠어. 찾을 수 있다면 말이야!"
그 말이 끝날 새도 없이 앨리스는 작고 아담한 집에 다다랐다. 문에는 'W. 토끼'라고 새긴 번쩍이는 놋쇠 문패가 달려 있었다. 앨리스는 문득 부채와 장갑을 찾기도 전에 진짜 메리 앤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문도 두드리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들어간 다음 얼른 위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토끼 심부름이나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군! 다음에는 다이너가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 건 아닌지 몰라."
그러면서 앨리스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앨리스 아가씨! 어서 산책 나갈 준비를 하셔야지요!' '금방 가요. 유모! 하지만 다이너가 돌아롤 때까지는 생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쥐구멍을 지켜야 하는걸요.'"
앨리스는 계속 생각했다.
'다이너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려 했다간 당장 집에서 쫓겨나고 말겠지!'
이런 상상을 하며 앨리스는 창가에 탁자가 놓인 아주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탁자 위에는 (앨리스가 생각했던 대로) 부채와 장갑 두세 켤레가 놓여 있었다. 앨리스가 부채와 장갑 한 켤레를 집어 들고 막 방을 빠져나오려는데 거울 옆에 놓인 작은 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날 마셔요.'와 같은 표시가 없었지만 앨리스는 코르크 마개를 열고 입으로 가져갔다.
"무엇인가 먹거나 마시기만 하면 재미난 일이 생겨나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지 확인을 해 봐야겠어. 다시 키가 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작은 키로 있는 건 정말이지 너무 질렸어!"
그런데 정말 앨리스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 앨리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반병도 마시기 전에 앨리스의 머리는 천장에 닿아 짓눌렸고, 덕분에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앨리스가 서둘러 병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충분해. 더 이상 커지면 안 돼. 그러면 저 문으로 나가지도 못한단 말이야. 너무 많이 마시는 게 아닌데!"
하지만 너무 늦었다. 앨리스의 키가 계속해서 커지는 바람에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곧이어 무릎을 꿇을 공간마저 부족해져 한쪽 팔은 문에 기대고 다른 팔로는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그런데도 앨리스의 키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한쪽 팔은 창문 밖으로 내놓고, 한쪽 발은 굴뚝으로 밀어 넣었다.
다행히 작은 병의 마법이 끝났는지 앨리스의 키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는 여전히 불편했고 다시 방을 빠져나갈 방법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불쌍한 앨리스는 생각했다.
'집에 있을 때가 월씬 좋았어. 계속 이렇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않고, 생쥐나 토끼가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잖아. 토끼 굴로 들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살아 보는 것도 재미있잖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정말로 궁금한걸! 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건 동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 동화 속에 와 있는 거잖아! 나에 대한 책이 쓰여야 해. 정말이야! 내가 크면 꼭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지. 그런데 난 지금 다 자랐는데.'
그러고는 서글픈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보다 나이를 더 먹지 않는다면...... 생각해 보니 좋은 것 같기도 해. 할머니로 늙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공부는 계속해야 하잖아! 아, 그건 정말 싫은데!'
"아이, 바보!"
앨리스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한다는 거야? 이 방에 네 몸 하나로도 꽉 차는데, 책을 어디다 놓는다는거니!"
앨리스는 마치 대화를 나누듯이 혼잣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밖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자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메리 앤! 메리 앤! 얼른 내 장갑을 가져와!"
그러더니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앨리스는 토끼가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기가 토끼보다 천배는 더 크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는 토끼를 겁낼 필요가 없는데도 집이 흔들릴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방문 앞에 이른 토끼가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안쪽으로 열리는 문은 앨리스의 팔꿈치가 꾹 누르고 있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토끼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뒤쪽으로 돌아서 창문으로 들어가야겠군."
'아마, 그렇게 해도 안 될걸!'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창문 아래서 토끼의 기척이 느껴지자 토끼를 잡으려고 손을 펼쳤다 움켜쥐었다.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낮은 비명 소리와 함께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앨리스는 토끼가 오이를 키우는 온실로 떨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토끼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트! 패트! 어디 있는 거야?"
그러자 앨리스가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주인님! 여기 있어요! 사과를 캐고 있는데요!"
"사과를 캐고 있다고! 빨리 이리 와서 나를 도와줘!"
토끼가 여전히 화를 내며 말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패트! 대체 유리창에 보이는 게 뭐야?"
"팔인데요. 주인님!" (패트는 '팔'을 '파아알'이라고 발음했다.)
"팔이라고, 이런 바보! 저렇게 큰 팔을 본 적이 있어? 창문에 꽉 찰 정도라고!"
"뭐,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그래도 팔이 맞는데요."
"알았어. 그러든 말든 어서 가서 치워!"
그러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앨리스에게는 이따금 속삭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주인님! 싫어요. 안 할래요. 안 한다고요!"
"시키는 대로 하지 못해! 겁쟁이 같으니라고!"
앨리스는 다시 한 번 손을 펼쳤다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두 명이 지르는 비명 소리와 함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오이 온실이 꽤 큰가봐!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창문 밖으로 끌어내 준다면 더없이 좋겠는데! 나도 이제 정말이지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다고!"
그 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앨리스는 한동안 기다렸다. 마침내 작은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여럿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다리 하나는 어디 있지?"
"난 하나밖에 안 가져왔는데. 빌이 가지고 있겠지."
"빌! 사다리를 이리 가져와서 이쪽 구석에 세워!"
"아니, 먼저 한데 묶어야겠는데."
"아직 반도 안 닿아."
"아, 이젠 될 거야. 빌! 이 밧줄을 잡아."
"지붕이 버텨 낼까?"
"저 지붕 석판은 헐거우니까 조심해."
"어, 떨어진다! 머리 숙여!"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누가 할까?"
"빌이 하는 게 좋겠어."
"굴뚝으로 누가 들어가지?"
"난 싫어. 안 해. 네가 해!"
"나도 싫어!"
"빌이 내려가면 되겠네."
"빌! 주인님이 너더러 굴뚝으로 내려가래!"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빌이 굴뚝을 내려온다는 말이지? 다들 빌한테만 맡기려 드는군! 난 절대 빌처럼 하지 말아야지. 벽난로가 너무 좁네. 그래도 발차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앨리스는 가능한 만큼 굴뚝 아래로 발을 당긴 채 작은 동물이 굴뚝 벽을 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빌이다!"
여러 사람이 외치는 소리였다.
그리고 뒤이어 하얀 토끼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타리 옆에 있는 사람이 어서 빌을 받아!"
그러고는 조용해지더니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받쳐 봐."
"이제 브랜디 좀 줘."
"숨 막히지 않게 조심해."
"친구!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어? 전부 다 이야기해 봐!"
아주 작고 가냘프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앨리스는 빌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글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제 괜찮아요. 고마워요.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정신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인형이 튀어나오는 용수철 장난감처럼 뭐가 불쑥 나오더니 나를 로켓처럼 쏘아 올렸다니까요!"
"그래 맞아. 날아올랐어!"
"집을 태워 없애 버려야겠어!"
토끼가 말했다. 그러자 앨리스가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그렇게만 해 봐. 다이너를 시켜서 혼내 줄 테니!"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5. 애벌레의 충고
애벌레와 앨리스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애벌레가 입에서 물담배를 떼며 졸린 듯한 늘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넌 누구냐?"
대화를 유쾌하게 나누기에 좋은 질문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약간 주눅이 들어 조마조마하며 대답했다.
"저....... 이제 저도 잘 모르곘어요. 오늘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는 분명히 내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얘기해!"
애벌레가 엄하게 다그쳤다.
"저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보시다시피 전 지금 제가 아니거든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애벌레가 말했다.
"죄송해요.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하루에도 몇번이나 키가 변하니 저도 정신이 없어서요."
앨리스가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니?"
애벌레가 말했다.
"아직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당신도 언젠가는 번데기가 되고, 그런 다음 또 나비가 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래요. 당신이라면 다를지도 모르죠. 저라면 정말 기분이 묘할 것 같거든요."
앨리스가 말했다.
"저라면? 그래, 너! 너는 누구냐?"
애벌레가 경멸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렇게 대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애벌레의 시큰둥한 대답에 약간 짜증이 난 앨리스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먼저 누구인지 말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왜?"
뭐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앨리스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고, 애벌레의 기분이 몹시 나빠 보여서 그냥 돌아서서 가 버렸다.
"돌아와! 꼭 해 줄 말이 있어."
애벌레가 앨리스를 불러 세웠다.
귀가 솔깃해진 앨리스는 몸을 돌려 애벌레에게 돌아갔다.
"화를 참아라."
애벌레가 말했다.
"네? 그게 다예요?"
앨리스는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으며 물었다.
"아니."
애벌레가 대답했다.
앨리스는 달리 할 일이 없고, 또 애벌레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음 말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애벌레는 한동안 말없이 물담배만 피워 대더니 마침내 팔짱을 풀고 물담배를 떼며 이렇게 말했다.
"넌 스스로가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지?"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알던 것도 기억나지 않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걸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뭐가 기억나지 않니?"
"음. '아기 꿀벌' 이란 시를 읊어 보려 했는데 자꾸 다른 시가 되어 버리지 뭐예요."
앨리스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아버지 월리엄'을 외워 봐라."
애벌레가 말했다.
앨리스는 두 손을 모으고 시를 읊기 시작했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백발이 된 머리.
그 연세에도 물구나무를 계속 서시네요.
정말 괜찮으신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아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르 다칠까 겁이 났단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텅 비었으니
계속하고 또 하게 되는구나."
아버지 월리엄이 아들에게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살도 많이 찌셨어요.
그런데 여전히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집에 들어오시니,
정말 왜 그러시는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아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팔다리가 무척 유연했지.
바로 이 연고를 써서 그랬단다. 한 상자에 1실링인 연고란다.
너도 한두 상자 사 두겠니?"
현명한 아버지 윌리엄은 백발을 휘날리며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턱이 많이 약해져 비계보다 질긴 음식은 무리잖아요.
그런데 거위를 통째로 다 드셨더라고요.
세상에, 어떻게 그러신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내가 젊었을 때는 법을 공부해서
네 엄마와 매일 논쟁을 벌였지.
그 덕분에 턱 근육이 단단해져
이제껏 버티고 있는 것이란다."
아버지 월리엄이 말했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눈도 예전 같지 않으실 텐데
콧등에 뱀장어를 세우고도 균형을 잡으시다니
어쩌면 그렇게 재주가 좋으신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내가 벌써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했으니, 이제 끝이야.
잘난 척은 그만하라고.
내가 하루 종일 네 얘기에 답을 해 주어야 하는 거니?
당장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계단 밑으로 걷어차 버릴테다!"
아버지 월리엄이 말했네.
"아니야."
애벌레가 말했다.
"몇 군데 좀 틀린 것 같아요. 단어 몇 개는 제가 바꾼 거예요"
앨리스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
애벌레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애벌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넌, 키가 어느 정도 되면 좋겠니?"
"아, 키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앨리스가 얼른 대답했다.
"단지 자주 변하는 게 싫은 거죠."
"글쎄, 난 잘 모르겠는걸."
애벌레가 말했다.
앨리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무안을 당하니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키에 만족한다는 말이니?"
애벌레가 물었다.
"글쎄요. 조금 더 크면 좋을 것 같네요. 3인치는 좀 초라해 보이잖아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딱 좋은 키인데 무슨 소리야!"
애벌레가 몸을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애벌레의 키는 정확히 3인치였다.)
"하지만 전 지금의 키가 어색하단 말이에요."
앨리스가 애처롭게 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동물들은 왜 이렇게 쉽게 화를 내는 걸까?'
"곧 익숙해질 거야."
애벌레가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물담배를 입에 물고 피우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애벌레가 입을 열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얼마 후 애벌레가 물담배를 입에서 떼더니 하품을 한두번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버섯 위에서 내려와 풀밭으로 기어가며 한마디 던졌다.
"한쪽은 널 커지게 해 주고, 다른 한쪽은 작아지게 만들 거야."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한쪽? 또 무슨 다른 쪽?'
"버섯 말이야!"
애벌레는 앨리스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외치고는 어디론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앨리스는 잠시 버섯을 유심히 살피고 두 쪽으로 나누어보려 했다. 하지만 버섯은 완전히 둥근 모양이라 나누기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앨리스는 두 팔을 힘껏 뻗어 버섯을 감싸고서 양손으로 가장자리 부분을 조금씩 뜯어냈다.
"한쪽이 어느 쪽이지?"
앨리스는 중얼거리며 오른손에 든 버섯을 조금 씹었다. 다음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앨리스의 턱 아래를 강하게 치는 느낌을 받았다. 턱이 발에 부딪혔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앨리스는 깜짝 놀랐지만 키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빨리 버섯의 다른 쪽을 먹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턱이 발에 딱 붙는 바람에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앨리스는 겨우 입을 벌리고 왼쪽 손의 버섯을 한 입 삼켰다.
"야호! 이제 머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앨리스는 기뻐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기쁨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깨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어마어마하게 길어진 목만 있을 뿐이었다. 길어진 목은 저 아래 바다처럼 펼쳐진 푸른 나뭇잎 사이로 뻗어 나온 기다란 줄기처럼 보였다.
"저 푸른 것은 도대체 뭐지? 내 어깨는 어디로 가 버린거야? 아, 불쌍한 내 손들, 어째서 내 손이 보이지 않는 걸까?"
앨리스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손을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저 아래 푸른 잎들만 조금 흔들릴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없을 것 같아 머리를 손 쪽으로 숙여 보려고 했다. 그러자 목이 뱀처럼 어느 방향으로든 쉽게 구부러졌다.
앨리스는 기뻐하며 목을 우아하게 구불구불 늘어뜨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머리를 쑥 밀어 넣었다. 앨리스는 그곳이 저 아래에서 길을 헤매며 올려다보았던 나무들의 꼭대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떄 어디선가 쉭 하는 소리가 들려와 앨리스는 얼른 목을 빼고 물러섰다. 크나큰 비둘기 한 마리가 앨리스의 얼굴을 향해 세찬 날갯짓으로 내리쳤다.
"이놈의 뱀!"
비둘기가 소리쳤다.
"난 뱀이 아니야! 그만해!"
앨리스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뱀이야, 뱀!"
비둘기가 되풀이해 말했다. 이번에 목소리는 한결 누그러졌고 조금 흐느끼듯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노력을 다해 봤지만 소용이 없어!"
"무슨 얘기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나무뿌리에서도 해 봤고, 강둑에서도 해 봤고, 울타리에서도 해 봤다고. 그런데 뱀을 당해 내는 건 하나도 없었어!"
비둘기는 앨리스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너희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다니까!"
앨리스는 점점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둘기가 말을 마칠 때까지는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알 품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뱀까지 감시해야 하다니! 지난 3주 동안 한숨도 못 잤단 말이야!"
"저런, 정말 힘들었겠구나!"
앨리스는 점차 비둘기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제 숲에서 제일 높은 나무에 자리를 잡고, '더 이상 뱀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지.'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늘에서까지 꿈틀꿈틀 기어 내려오다니! 아이고, 지겨운 뱀아!"
앨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난 뱀이 아니야! 난...... 난......."
비둘기가 물었다.
"그럼, 너는 뭔데? 또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거 다 알아!"
비둘기가 다그쳤다.
"난, 난 그냥 작은 여자아이일 뿐이야."
앨리스는 오늘 자신이 몇 번이나 변했는지를 떠올리며 자신 없이 대답했다.
"정말 말도 안 돼! 내가 지금껏 많은 여자애들을 봤지만 너처럼 이렇게 목이 긴 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니, 아니야! 넌 분명 뱀이야.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없어. 또 알 같은 건 한 번도 맛본 적 없다고 말할 거 잖아!"
비둘기가 경멸하는 말투로 말했다.
"물론 알은 먹어 봤어, 하지만 여자애들도 뱀이 먹는 것만큼이나 많은 알을 먹는다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정직한 앨리스가 사실대로 말했다.
"난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만약 여자애들도 알을 먹는다면 그건 뱀이나 마찬가지야."
앨리스는 생각지 못한 뜻밖의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비둘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알을 찾고 있는 중이지. 내 눈은 못 속여. 그러니 네가 여자아이건 뱀이건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잖아?"
"나한테는 정말 중요한 문제야."
앨리스가 다급히 말했다.
"난 알을 찾고 있는 게 아니야. 또 만약 알을 찾는다 해도 네 알은 싫어. 난 날것을 싫어하거든."
"그럼 가 봐!"
비둘기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다시 둥지로 날아가 앉았다.
앨리스는 나뭇가지에 자꾸 목이 엉키어 될 수 있는 한 나무 아래로 목을 웅크렸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엉킨 목을 풀기 위해 잠시 멈추어야 했다. 얼마 뒤 앨리스는 아직 버섯을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한쪽을 뜯어 먹고, 다시 다른 쪽 버섯을 번갈아 먹던 앨리스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원래 키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키가 정상으로 돌아온 게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기분이 좀 이상했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고 예전처럼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 계획의 반은 이뤘어! 키가 자꾸 바뀌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야! 또 어느 순간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이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아름다운 정원으로 들어가야겠지. 그런데 무슨 수로 들어가지?"
앨리스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는 높이가 4피트쯤 되는 작은 집이 있었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런 키로는 만날 수 없어. 다들 깜짝 놀라 겁을 먹을 테니까!'
그래서 앨리스는 오른손에 든 버섯을 다시 조금 뜯어 먹었고, 키가 9인치로 줄어들자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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