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13~14장

단차 | 2023.12.07 18:06:33 댓글: 0 조회: 127 추천: 1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26558
 13 장

총애를 받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것 모두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上, 辱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총애를 받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것 모두 놀라움을 주는 것이니, 심지어 그 큰 아픔은 마치 생명과 같이 진귀하게 여겨진다.

  왜 총애를 받는 것과 굴욕을 당하는 것이 놀라움과 같다고 하는가?

  총애는 좋은 일이고 모욕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얻어도 놀랍고 잃어도 놀라게 된다.

  그리하여 총애와 굴욕을 놀라움이라 한다.

  왜 그 큰 아픔을 마치 생명과 같이 진귀하게 여긴다고 하는가? 나에게 큰 아픔이 있는 까닭은 바로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없으면 내게 어찌 아픔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듯이 천하를 다스리면 비로소 천하를 그에게 맡길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천하를 다스리면 비로소 천하를 그에게 맡길 수 있게 된다.

   

   

  ― 한자 풀이

   

  貴 귀 “중시重視하다.”의 뜻이다.

  及吾無身 급오무신 ‘만약 내 몸이 없다면’으로 해석한다.

   까닭은 바로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없으면 내게 어찌 아픔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듯이 천하를 다스리면 비로소 천하를 그에게 맡길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천하를 다스리면 비로소 천하를 그에게 맡길 수 있게 된다.

   

   

  ― 한자 풀이

   

  貴 귀 “중시重視하다.”의 뜻이다.

  及吾無身 급오무신 ‘만약 내 몸이 없다면’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예가 될 것인가?

   

  이 장은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길 것과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다룬 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자의 총애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총애란 언젠가는 식어가기 마련이다. 그럴 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모욕과 자책이 뒤따른다. 총애와 사람들의 인정, 존중…기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내가 살아가는 데 부가적으로 붙은 것일 뿐이다. 더구나 화禍와 복福은 자주 같이 붙어 다니는 것들이다. “화禍는 복福이 기대는 바이고,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58장].” 또한 어떤 사람들은 모욕을 받는 것을 심지어 자기의 생명을 잃는 것보다 더 치욕으로 여긴다. 그러나 총애와 모욕 모두 결국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모쪼록 살아가면서 외부 요인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그것은 삶의 주인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본말전도本末顚倒되어 노예로 예속되는 길일뿐이다. 만약 우리가 총애든, 인정이든, 모욕이든, 그러한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게 된다면, 그러한 부차적 요인들에 전혀 개의할 필요가 없이 진실로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14 장

맞아들이려 해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따라 가려 해도 그 꼬리를 볼 수 없다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皦,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

  

  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狀.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눈으로 보지만 볼 수 없는 것을 이夷(무색無色)라고 한다.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은 것을 희希(무성無聲)라고 한다.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미微(무형無形)라고 한다.

  이 세 가지 형상은 알아낼 수 없고, 융합되어 일체, 즉 도道가 된다.

  위는 밝음을 드러내지 않고 아래는 어둠을 드러내지 않으며, 처음과 끝도 없이 끊임없이 계속되므로 이름을 붙일 수 없고 끝내는 무無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것을 ‘형체 없는 형상’이라 하고 ‘존재 없는 모양’이라고 한다.

  이를 일컬어 “황홀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맞아들이려 해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따라 가려 해도 그 꼬리를 볼 수 없다.

  옛날의 도를 배워서 지금 행하여 보면 옛날의 처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을 일러 도의 규율이라 한다.

   

   

  ― 한자 풀이

   

  詰 힐 문問의 의미 즉, “묻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皦 교 교皎와 같은 한자어로서 ‘광명’, ‘빛’을 뜻한다.

  繩繩 승승 ‘처음과 끝이 없이’, ‘끊임없이’의 의미이다.

  恍惚 황홀 ‘있는 듯 없는 듯’, ‘끝없이 반짝이는 것’을 형용한다.

  道紀 도기 ‘도의 기율, 규율’을 말한다.

   

   

  ― 깊이 보기

 
 도는 ‘형체 없는 형상’이며 ‘존재 없는 모양’이다

   

  이 장은 ‘도’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도’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또한 만질 수도 없다. 결국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道를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색無色, 무성無聲, 무형無形, 이 세 가지 모두 오묘하여 드러나지 않는 것을 형용하고 있다. 그러나 ‘도’, 그것은 ‘형체 없는 형상’, 혹은 ‘존재 없는 존재’로서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 오로지 성인만이 이 도의 규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어떻게 이 천지 중에 출현하게 되었는가? 만물은 어떻게 하여 이 천지 중에 출현하였는가? 또 천지는 어떻게 하여 이 우주에 출현하였는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 추론해본다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유有’란 기실 ‘무無’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무’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이 ‘무’에는 오히려 모든 ‘유有’의 계기가 포함되어 있고 또 내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무’는 무변무제無邊無際, ‘못할 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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