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15~16장

단차 | 2023.12.07 20:15:40 댓글: 0 조회: 146 추천: 1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26618
 15 장

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갱신한다

   

   

   

  古之善爲道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儼兮! 其若客.


  渙兮! 若氷之將釋.


  敦兮! 其若朴.


  曠兮! 其若谷.


  混兮! 其若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오래전 도를 터득한 사람은 오묘하고 통달했고 심오하여 현통하였으니, 보통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었으므로 억지로 그 모습을 형용하였다.

  신중하구나! 마치 겨울에 강을 건너 듯 신중하다.

  경계를 잘 하는구나! 이웃 나라의 공격을 대비하여 준비를 잘 한다.

  공경하는구나! 마치 잔치에 가는 손님과 같다.

  시원시원하구나! 마치 얼음덩어리가 차츰 녹는 듯하다.

  순박하구나! 마치 전혀 가공하지 않은 듯하다.

  광활하구나! 마치 깊은 골짜기와도 같다.

  관후하구나! 마치 흐린 강물처럼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누가 능히 흐린 강물을 고요히 안정시켜 천천히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고요한 것을 움직이게 하여 천천히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도를 터득한 사람은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갱신한다.

   

   

  ― 한자 풀이

   

  豫 예 야수의 일종으로 성격이 신중하였다.

  猶 유 역시 야수의 일종으로 경계심이 많았다.

  儼兮 엄혜 장엄한 모습을 형용한다.

 
 渙 환 유동流動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盈 영 ‘자만’, ‘오만’의 뜻이다.

  蔽而新成 폐이신성 “새롭게 갱신하다.”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가득 참’, ‘영盈’을 경계하다

   

  이 장은 도를 터득한 사람을 칭송하는 글이다. 도에 통달한 사람은 미묘현통微妙玄通하여 보통 사람들이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다. 단순히 겉으로만 보면, 그는 청정무위淸淨無爲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창조적이다. 미묘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지니고 있으나 드러나지 아니하며, 너무 깊기 때문에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가장 정적靜的이되 극히 동적動的이며, 가장 동적이되 극히 정적이다.

  하지만 그는 일상생활을 영위함에 ‘자만’과 ‘교만’을 의미하는 ‘영盈’의 단계에는 이르지 않는다. 그는 결코 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다. 그러면서 만물의 이치에 모두 통달하였고, 그러한 원리에 의거하여 만사를 처리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실패가 없다.

 



  16 장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靜이라 한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全, 全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모든 힘을 다해 마음을 청정무위의 상태로 만든다.

  모든 만물이 다투어 자라나면, 나는 그로부터 돌아감의 도리를 본다.

  만물은 아무리 무성하여도 각기 그 근본 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靜이라 한다. 이것을 본성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상常(영구불변의 법칙)’이라 한다. ‘상’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고 한다. ‘상’을 알지 못하면 자주 나쁜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상’을 알면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받아들여지면 공평하게 되며, 공평하면 완전해지고, 완전해지면 하늘과도 같아진다.

  하늘과 같아지면 비로소 도와 같아지고, 도와 같아지면 종신토록 위태로움이 없다.

   

   

  ― 한자 풀이

   

  致虛極, 守靜篤 치허극, 수정독 허虛와 정靜은 사람의 심경이 청정한 상태를 가리킨다. 극極과 독篤은 정점頂點을 의미한다.

  芸芸 운운 ‘무성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 깊이 보기

   

 
 도道와 같아지면 종신토록 위태로움이 없다

   

  노자 사상에서 ‘허무虛無’는 도道의 본체이다. 치허극致虛極, ‘허의 정점에 이르기’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욕에 대한 유혹을 배제해야 한다. 그런데 ‘치허致虛’는 반드시 ‘수정守靜’, 즉, ‘정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허虛는 본체요 정靜은 그 운용이기 때문이다.

  한편 노자는 변증법을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본래 변증법은 대립과 통일을 기본 원리로 하는 것이지만, 노자는 대립이란 과정이고 단지 상대적일 뿐인 반면 통일은 최종 목적지요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노자가 보기에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최종적 결과는 원점으로의 회귀, 즉 귀근歸根이요 복명復命이다. 순환론의 일단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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