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4ㅡ시각디자인을 전공

뉘썬2뉘썬2 | 2023.12.10 06:11:33 댓글: 7 조회: 274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7379

4


0011.MPEG


엄마 ㅡ(빨래를널며 밀양아리랑을 부르고잇다.)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오오.동지섣달 꽃본 드
읏이이 날좀보소.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에에.아리라앙 고개에로오 날넘겨주
소오오.정든임이 오시는데 인사를못해애애 행주치마 입에물고오 입만벙긋.

나 ㅡㅡ엄마는 밀양이랑 연고도 없으면서 왜맨날 그아리랑만 불러?

엄마 ㅡ글쎄 늘 궁금하더라.정든임이랑 인사를 왜못하나?

나 ㅡㅡ당연히 부적절한 사이겟지.임이떠난 사이 딴놈이랑 결혼을 해버렷다든지 뭐그런.

엄마 ㅡ아 그거 그럴듯하다.(엄마가 손을 멈추고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너그래서 그런일을 하는구
.

ㅡㅡ


엄마가 그런일이라고 부르는 영화미술은 막상 종사하고잇는 사람도 무슨일인지 딱잘라 설명하지 못
하는일이다.웬만한건 다하기 때문에 나처럼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도잇고 건축을 전공한 사람도
잇고 무대미술을 전공한 사람도잇고 전혀 엉뚱한걸 전공한 사람도많다.어떻게 하다가 이쪽으로 흘러
들엇나 서로의 이력을 늘 궁금해한다.



어느직업이나 그렇겟지만 일을하면서 내가하는일이 가장 중요 하지않게 여겨질때도잇고 가장 중요하
게 여겨질때도잇고 그랫다.하찮게 여겨지는 날에는 나를 이세계로 보낸 주완이를 가볍게 원망하기도
햇다.

나의사수는 청사진을 정말로 청사진 기술로찍던 시절의 세트감독이엿다.할아버지뻘이라고 하면 과장
이고 아버지와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큰아버지뻘 정도가 맞겟다.모직조끼와 팔토시에서 내가모르는
시절의 냄새가낫다.이꼼꼼한 어른에게 일을 배운건 행운이엿다.제대로된 사수를 만나는것만큼 일을
시작하는데에 잇어 중요한건없다.

뭐가 제일 위에 와야하는지 알아?”

데코소품요?”

그런얘기를 하는게 아니고 뭘제일 우선해야 하냐고.”

어차피 맞힐수없는 문제엿다.그나마 그럴듯하게 대답하려고 하는데 힌트를 주셧다.

이응시읏.맞혀봐.이응시읏이야.”

예술?”

노노노 예산이야 예산이라고.”

일을 더배우면서 어떤영화도 애초에 정한 예산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걸 깨달앗지만 그나마 근삿값
이라도 맞추려면 끊임없이 예산을 생각하고잇어야 한다는것도 알게되엿다.손목안쪽에 예산이라고 그
대로 쓰기 뭣하면 한자나 영문레터링으로 새기고싶은 기분이 들때도잇엇다.

곧 톱에망치에 온갖것들을 다룰수잇게 되엿지만 처음시작도 그렇고 가장 자주하는일은 소품담당이
.나는세상에 그렇게많은 종류의 대여점이 존재하는줄 몰랏다.가구부터 시작해서 온갖 패브릭,유래
를 알수없는 골동품들,속이텅빈 가짜 전자제품들,여러 번 재사용되는 세트들,문짝들,이제는 별로 쓰
지않는 배경사진들..



나는 꽤괜찮은 전문 대여꾼이엿다.촬영스케줄에 맞춰 최소비용으로 빌리고 제때에 반납하는 것.어떤
것도 사라지거나 흠집나지않게 하는 것.흠집이나면 최대한 눈에띄지않게 수리하는 것.익숙해질수록
세상에 빌리지 못할건 없을 것 같앗다.

물론 가끔은 꼭사야하는 물건들도 잇엇다.영화에 거듭 참여할때마다 짐이늘엇다.엄마아빠는 내가 온
갖 잡동사니를 쌓아두는걸 묵인해주엇고 괴상한 물건들이 지하실과 다락을 잠식해들어갓다.특히 이
태원 가구거리에서는 매력적이지만 집에두기에는 다소 파격적인 물건들을 꽤 만날수잇엇다.

이런 귀신 붙어올 쓰레기들을 돈주고 사다니.”

엄마와 할머니는 진절머리를 냇다.

감독들은 어쩔수없이 시각적인 동물이라 내가 괜찮은 소품을 얻어가면 갑자기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
한 상징으로 채택하기도햇다.조그만 알전구들이 달린 회전목마 오르골이나 잘못햇다간 살갗이 까지
는 녹비늘 일어난 철제침대 같은 것들말이다.그런게 영화에서 클로즈업되고 오래찍히면 종종 평론가
들이 그걸보고 감독의 정신세계를 분석햇다.그냥 소품담당이 럭키햇던거예요,윙크를 해주고싶은 심
정이엿다.

큰영화에 참여하면 산중이나 벌판에 폐가따위를 급조해 세트를 짓기도하고 작은영화에선 평소엔 내
일이아닌 일까지 하기도햇다.예를들면 가짜피를 섞는 것.만약 그게 배우의 입가에 한줄기 흐르는 정
도라면 분장담당이 만들지만 세트전체에 뿌릴양이라면 내가만든다.적절한 점도와 붉기를 조절하는데
에는 경험이 필요햇다.


나는종종 물엿이나 밀가루풀에 찹찹찹 색소를 섞으며 내가여기서 뭘하고잇나 아연해햇다.감독이 유
난히 유혈이 낭자한걸 원하는 경우엔더욱.어떨땐 그냥 몇방울 떨어진피가 더무서운데 그걸 이해못
하는 것 같앗다.

배우들한테는 왜그렇게 관심이없어?이렇게 관심없는 사람은 처음봐.”

골몰해잇다가 무려 그런말까지 듣고말앗지만 아니다.나는 배우들이 대단히 멋진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하는일이 배우를 제외한 모든것과 연결되여 잇다보니 자연스레 신경이 쏠리지않게 된것뿐
이다.

0012.MPEG

송이 ㅡ잭스나이더 광팬인 남자하고 만나면 골치아픈 것 같아.

민웅 ㅡ그게누군데?

주연 ㅡ’300’감독.

찬겸 ㅡ왓치맨은 나쁘지 않앗고 써커펀치는 나빳지.

ㅡ그보다왜?

송이 ㅡ내가 짧은치마를 입은날엔 되게 친절하고 꾸미지않은 날엔 반응이없어.

주연 ㅡ..알것같아.

찬겸 ㅡ그거야말로 시각적인 동물이구나.

ㅡㅡ



찬겸이는 그해에 나쁘기도햇고 좋기도햇다.실력보다 한참못한 고등학교에 입학햇기 때문에 이변
없이 첫중간고사부터 전교1등을 햇다.쉬는시간에도 공부하는 녀석이엿기 때문에 찬겸이네 반에
자주 놀러가진 않앗던것같다.시험전에는 버스에서 늘 압축강의를 해주엇는데 때로 찬겸이가 예상
한 문제가 그대로 나오는일도 잇어서 득을봣다.

그러나 모두가 찬겸이를 좋아햇던 것은 아니여서 어느날 사층에서 떨어진 화분을 맞앗다.같은학
년 교실의 화분이엿는데도 학교에서는 단순사고로 처리햇다.증거도 목격자도 없엇으니까.다행히
제때 팔로막아서 팔만 부러졋는데 그게하필 오른팔이엿고 기말고사 일주일전이엿다.

어떡하냐 시험 바로앞인데.”

우리모두 안타까워햇다.하지만 기말고사 성적이 나왓을때는 기도안차서 걱정햇던걸 물어내라고 하
고싶은 심정이엿다.찬겸이는 왼손으로 마킹을 해서도 전교1등을햇다.약간 괴물같앗다.뛰여넘을수
없는 클래스라는게 잇구나 탄식하며 새삼 찬겸이의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고 말앗다.

여름내내 깁스에서 냄새를 풍겻던 찬겸이는 2학기들어 키카확컷다.볼살이 빠지며 팔다리가 주욱길
어졋고 특징적이던 엉덩이가 작아졋다.그러고보니 체격이 좋진않앗지만 비율이 좋앗다.최고인기인
이 된건아니여도 더 이상 우습게 보이지는 않앗다.자신감이 생긴 찬겸이는 무려 학교에서 제일예쁜
여자애한테 고백도 햇는데 모두의 예상대로 단칼에 거절당햇다.

고백을 거절하느라 내내바빳던 유진에대해 이야기해야겟다.우리동창들은 물론 아래위로 함께 학교
를 다닌 이들은 어디서나 유진이란 이름을 들으면 다 그앨 떠올릴거다.같은이름을 가진 사람이 평
범할경우 의아한 느낌이 들정도로 흔한이름 하나를 완전히 차지할 정도로 예쁜애엿다.나는처음 핑
크마티니의 헤이유진을 듣고도 그유진이를 떠올렷다.

같은반은 아니엿지만 합동체육시간에 이유진을 가까이서 본적이잇다.모공이 빛나고잇어서 깜짝놀
랏다.피구를 하고나서엿는데 노폐물이 쌓이는 것 따위는 용납하지 않겟다는듯 잔잔한 땀이 콧등에
서 반짝거렷다.그린것 같은 눈썹에 속눈썹에 눈코입도 물론 완벽햇지만 나를 감탄시킨건 모공이엿
.미인은 모공 같은 작은단위에서 결정된다는걸 그때알앗다.

이유진은 찬겸이뿐만 아니라 수십명을 거절햇다.다른학교 애들까지 포함하면 백단위엿을수도 잇다.

걔 똑똑햇지.나랑같이 과학반 활동을햇어.”

찬겸이가 회상하자 역시 성적 우수자엿던 주연이가 약간 갸웃햇다.주연이가 한국지리와 한문에서
죽을쑤지 않앗더라면 성적이 찬겸이랑 비슷햇을것이다.국내 정규교육과정을 받지않으면 비는 부분
이 잇엇다.

이유진?별로 똑똑하지 않앗어.착실햇지.그거두개는 달라.”

그런평가엔 냉정한 주연이다.

아무리 민웅이라해도 착실하기까지한 그 이유진이랑 사귈수잇을줄은 아무도 몰랏다.가장예쁜 여자
애랑 가장 인기좋은 남자애가 사귀는건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그렇게 당연하지 않앗다.그만큼 이유
진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엿다.

섣부른 고백같은건 없엇다.민웅이는 그저 뛰엿을뿐이다.

가을체력장은 학교행사중 낭만과 제일 거리가먼 행사라 할수잇을텐데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엇
을까.이유진네 반 여자애들의 오래달리기 순서가 오자 민웅이가 갑자기 자기반에서 이탈해 함께뛰
기 시작한것이다.

저놈 왜저래?저놈보래?”

체육선생님이 어이없어하며 민웅이한테 소리도 지르고 손짓도 햇지만 육상부에서 사랑받는 민웅이
엿다.이미한번 뛰여놓고 더뛰다니 저런바보가 잇나 결국 내버려두게 되엿다.민웅인는 영 속도를 내
지않고 뛰엿는데 곧 선생님들도 애들도 민웅이가 누구에게 맞추고잇는지 알게되엿다.이유진이엿다.

이유진은 착실햇지만 심폐지구력이 좋지는 못햇다.오래달리기는 뛰고나면 기침에서 피맛이나는 종
목이엿으니 옆에서 민웅이가 같이뛰는게 신경이 쓰이기도 햇을것이다.민웅이가 이유진에게 뭐라말
하는게 보엿기 때문에 처음 환호인지 야유인지 모를것들을 외치던 애들도 입술을 읽느라 집중하며
조용해졋다.



남자애들은 질투로 타올랏고 그래도 설마 이유진이 넘어가겟느냐 저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민
웅이면 인정할수 잇지,미묘한 수긍에 이르럿다.여자애들몇이 화장실에 울러갓다.수미는 끝까지 둘
을 보고잇엇다고 나중에 송이가 말해줫다.

마지막 이백미터에서 민웅이가 이유진의 소매를잡고 같이뛰엿다.백미터를 남겨두고는 이유진의 팔
꿈치를 살짝감싸며 밀엇다.손을덥석 잡거나하는 미숙함을 보이지않고 민웅이는 그렇게 이유진과 사
귀기 시작햇다.

수미의 괴로움을 달래느라 친구들은 바빳지만 나는 내심 주완이가 학교에 다니지않는게 그렇게 기
쁠수가 없엇다.세상에 이유진 같은 여자애들이 몇명이나될까.한학교에 한명씩이면 우리나라에만
몇명인가 헤아리며 짧은안도감에 젖어들엇다.

좋아하는 남자애가 갇혀잇길 바란다는 점에서 나는 굉장히 십대여자애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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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마늘을 찧다가 문득 고개를든다.카메라를 보더니 뭐라도 말해줘야겟다고 생각하신 모양이
.

할머니 ㅡ친구가 돈빌려달라고 하면 없어몰라그두마디면 된다.다른말은 할것도없어.없다는데
어쩔거야?모른다는데 어쩔거야?

ㅡㅡㅡ할머니 내친구들중에 내가 젤 돈없어.

할머니 ㅡ넌 관상이 돈붙을 관상은 아니지.복없어.얼굴이영.(한숨)

나 ㅡㅡㅡ할머나 옛날에 곗돈떼인거 그렇게 속상햇어?

할머니 ㅡ내돈떼여간 년 언젠가 버스정류장에서 딱 마주쳣다.

나 ㅡㅡㅡ언제?

할머니 ㅡ그것도 한십년됏지 뭘.

나 ㅡㅡㅡ뭐랫어?

할머니 ㅡ남의돈 처먹고 잘살줄 알앗냐는말 나올줄 알앗는데 막상보니 남의돈 처먹고도 못살면
쓰냐는말이 나오더라.

ㅡㅡ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는 없엇다.심지어 다단계에 들어간 친구마저 나만쏙 빼놓고 전화를 돌렷다.
화계에서 일한다는게 이런식으로 가끔좋다.꺼림칙한 연민은 겪어도 곤란한 입장은 겪을일이 없엇
.핀란드 영화인들은 일을쉬는 달엔 실업급여가 나온다는데 그것까진 바라지않고 받을돈만 제대
로 받아도 소원이 없겟다.

친구들이 나를찾을땐 대개 지금좀 와줄수 잇느냐는 부탁을 할때다.아마 영화에 들어가지 않을땐 시
간이 많다는걸 들켯기때문일 것이다.가볍게 움직일수잇는 몸,묶인것없는 시간.그것마저도 없는 가
난이 아니라 다행이다.

오늘밤은 주연이가 나를 소환햇다.소화제 잇으면 챙겨와달라는 문자에 활명수에 베아제에 한방소
화제까지 골고루 들고나섯다.파주의 까만밤 깨진보도블록이 많아 조심해야한다.다른동네에선 예산
챙기려고 멀쩡한 보도블록들을 간다는데 여긴 잘못하면 발이쑥 빠진다.밤에도 위험하고 눈이 많이
내리고난 다음도 위험하다.그리고 안개가 낀날은 인도도 도로도 가릴것없이 위험하다.안개라기보
다는 거의 강이 침범해온다는 느낌이다.

((((내가 이만큼 가까이 잇엇어.))))

그런과시를 하며 강의 기분나쁜 영혼같은 것이 몸에 밀착해오는것이다.냄새에서 건강에 좋지않은
안개라는걸 확신할수잇다.

왜문이 그냥 열려잇을거라 생각햇을까.문고리가 돌아가지않자 나도모르게 당황햇다.

하주.”

어쩐지 초인종은 누르기 어색해서 문을두드린다.한참걸려서야 주연이가 기여나왓다.

나다 토햇어.”

가글냄새가 확끼쳣다.그와중에 가글을하고 나온 주연이가 가상햇다.주머니가득든 약들을 꺼내 거
실탁자에 늘어놓앗지만 주연이는 막상 집어들 기색이 없엇다.

물까지 토하고 나니까 좀낫네.”

의존적인 다른사람도 스스로가 의존적이되는 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주연이 성격에 그정도로 아프
지 않앗다면 부르지 않앗을것이다.

회사많이 힘들어?최근에 내시경은 언제햇어?”

지난봄에..나사실 핫윙먹고 탈난거야.”

채식한다며?”

내말이.버릴 것 같아서 먹엇더니 닭이 저주햇나봐.네이년 안먹는다더니 잘도처먹는구나.당해봐라
하고.”

집이 전체적으로 써늘해 여러장 쌓여잇던 담요중에 하나를 집엇다.슬슬냉기가 올라오는 계절이다.

난방좀해.그러니까 탈나지.”

아직은 좀그렇잖아.가을인데.이상하지않아?난분명 이동네에서 봄도살고 여름도 사는데 되돌아보
면 가을이랑 겨울만 기억나.”

나도그래.난 여기서 태여나 쭉 살앗는데도 갈대랑 눈밖에 기억이안나.”

주연이가 입고잇는 짙은 베이지색 맨투맨티와 카키색 면바지는 이동네의 빛깔인가 싶엇다.

“..나분명 이러다가 출판단지에잇는 모든회사를 다 다니고말거야.”

소파 팔걸이에 앉은 주연이가 시무룩하게 말햇다.역시 핫윙보다는 회사가 문제엿나보다.회사문제
에 보태줄조언 같은건 별로없어서 난감해진다.회사비슷한것에 나가본 것은 아르바이트가 전부엿
고 그다음부터는 영화판계약에서 계약으로 뜀뛰기엿다.

오늘내가 무슨얘기를 들엇는지알아?”

내가 고개를젓자 하주는 내가 잘모르는 사람의 성대모사를 하기시작햇다.아마 전에 말햇던 꼰대
팀장인것 같앗다.

하주연씨 당신이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는 한국사회에는 싫어도 해야하는 일들이 잇어요.”

팀장이 그랫어?그사람이 할만한 말이네.”

나는 도대체 이해가안가.꾸역꾸역 나쁜방향으로 가기만하면 뭐가되나?아니다 싶으면 아니다하
는게 건강한거아냐?”

체제순응 같은건 불가능한 친구의등을 잠시 두드려줫다.미국인 학교를 다닌 주연이안의 미국인이
불쑥 나올때마다 힘들겟다 싶기도하고 왠지 부러울때도 잇다.

이번엔 뭘안한다고 햇길래 그런소릴 들엇어?”

사장딸 영어토론대회 대본을 쓰라잖아.가도 너무갓지.”

나도모르게 어이쿠야 하는 탄식이 나왓다.그건 안하겟다 할만햇다.영화나 출판이나 후지긴 매한
가지구나.이렇게 후지니까 어디가서 직업 말하기가 싫어지고만다.

나는그래도 나아.마케팅부 선배들은 사장 이삿짐도 옮기고 리모델링 공사에도 불려가.이사는
또왜 그렇게 매년 다니는지 모르겟어.심심하면 사람자르면서 차는점점 더좋아져.좀잇음 배트카
타겟어.”

너희사장 옛날에 유명한 진보인사 아니엿냐?”

그러니까말야.변질되면 더나빠.”

더럽네.”

더더러운게 뭔지알아?동기가 나더러 그냥 발로써주래.나 때문에 다같이 불편하다면서.”

우리하주는 불편한게 매력인데 걔가모르네.”

그말에 주연이가 나를살짝 안앗다.어깨뼈에 와닿는 주연이의 턱이 꼭 주완이것 같앗다.

화낼일에 함께 화내주지 않으면 친구가 아닌거야 그치?”

그만둬.”

그만둘거야.그만두고 이집도 팔아버리자 할거야.요즘 부모님은 거의 돌아오시지도 않고.가끔
은 이짐들이 너무지겨워.내가 돌 해태처럼 짐들을 지키고잇는 것 같아.”

새삼 주연이가 혼자 이집을 지키고잇다는걸 알앗다.어릴때도 그랫고 지금도 홀로 책임을 지고
잇다.잘 유지하고 잇느냐면 그건아니여서 집은 낡고좁아졋다.좁아질 크기의 집이아닌데 원래
잇던 책들에다 출판사를 다니면서 늘어난 책들이 집을 미로로 만들엇다.

책을 좀 정리하면 되겟네.”

응 다 갖다버릴거야.”

나는 속이아픈 하주가 먹을게 잇나보려고 부엌불을 켯다.전등세개중 하나에만 불이들어왓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엇다.바퀴벌레도 살수없을 부엌이지 싶엇다.죽이라도 끓여주려고 쌀통을
흔들어보니 쌀도 거의 바닥나잇엇다.다음에는 약이아니라 쌀을들고 와야겟구나 싶엇다.그새
주연이가 욕실에서 다시 토하는듯햇다.

쌀을 한주먹 불려두고 주연이가 양치질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완이 방앞에 가보앗다.주연이
가 알아채지 못하게 주의하면서 문을 밀어보앗다.

열리지않앗다.하지만 이번에는 열리지 않을걸 알고잇엇다.열어둘리 없엇다.

귀를대고 서서 방안의 기척을 들으려 애써보앗다.내가 알고잇는 그방의 풍경을 그렇게 확인할
수 잇을것처럼.하지만 박쥐가 아닌바에야.


0014.MPEG

옥상의 오렌지빛 빨랫줄.

내해골 티셔츠 스물몇장이 거풍중이다.나는 최대한 카메라를 흔들지않으면서 클로즈업으로
한장한장을 찍는다.

다시 멀리서 찍으니 옥상이 해적선처럼 보인다.

나 ㅡ(나레이션)하지만 이티셔츠들을 입지안은지 오래되엿다.적나라한 표지없이도 죽은 것
냄새가 난다면 굳이 티내지 않아도된다.어떤나이가 지나고 해골티셔츠들은 방치되엿는
데 친구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꾸 세계곳곳에서 해골티셔츠들을 사온다.

ㅡㅡ



수미가 며칠 학교에 나오지않더니 그다음엔 나와서 옆드려잇엇다.평소에 우리가 일으키고 휘
말리는 드라마에 별 관심이없던 찬겸이마저 수미한테 신경을썻다.

차라리 연예인을 좋아하는게 낫지.민웅이가 뭐 그렇게 잘생겻냐?”

무신경한 위로라 할수잇겟지만 의외로 송이가 그말에서 힌트를 얻엇다.송이는 수미가 민웅이
다음으로 좋아한 아이돌 멤버를 기억해냇다.그래서 수미를 꼬드겨 7교시를 짼다음 여의도로,
콘서트나 팬미팅장으로,그아이돌의 부모님이 차렷다는 음식점으로,기획사앞으로,연습실로 부
지런히도 나갓다.출발할때는 일산이요 돌아올때는 파주니 결코 짧지않은 기이엿다.

수미는사실 아이돌을 따라다녓다기보단 송이를 따라다녓다.얼떨결에 더빠진 것은 송이엿다.
송이처럼 남다른 감각을가진 애가 왜그런 포대자루 같은 비닐옷을입고 분수 같은 머리를한 아
이돌에게 빠졋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튀는 운동화나 백팩 때문이엿는지 아니면 유니크한 송이의 얼굴 때문이엿는지 몇번갓더니 그
아이돌도 송이를 알아본 모양이엿다.

너희 날라리지?학교 제대로 안다니지?상장같은거 하나받기전엔 오지마.”

아이돌의 짓궂은 면박에 송이는 반은 울컥하고 반은 칭찬받고 싶어서 한동안 교내 공모전이
란 공모전은 다 응모햇다.결국 입상한 것은 소비자의식 고취표어전이엿다.주연이화 나까지 동
원해 동상을탓고 주연이는 절대 자신의 참여를 밝히지 말라고 못박앗다.그런데 막상 그아이돌
앞에 어렵게탄 상장을 팔랑팔랑 펼쳐보이자 이랫다고한다.

이거 네가 만들엇지?뻥치지마.”

그날로 그아이돌은 팬을 하나잃엇다.아니 둘을 잃엇다.송이가 발길을 끊자 수미도 다시혼자 침
잠하기 시작햇다.

후에 그아이돌은 각종 사기사건에 휘말려 추문이 되엿다.추문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젊은나이
엿는데 믿어야할걸 믿지못하고 엉뚱한걸 믿엇던게 틀림없다.

그대단한 민웅이도 수미의 변화에 아주태연할 수는 없엇다.최대한 예전처럼 대햇지만 수미는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제대로 받아내지못햇다.그저 마음에든 애와 사귀엿을뿐이데 민웅이는 죄
인처럼 되여버렷다.수미는 민웅이를 그렇게 만드는 자기자신을 더싫어햇다.그러잖아도 불편한
버스가 더불편해졋고 앉는자리가 바뀌엿다.

찬겸이는 여전히 기사님 바로뒷자리에 프린트물을 보며 앉아잇엇고 민웅이도 원래앉던 이인
석 창가자리에 앉앗다.다만 민웅이의 옆자리가 비엿다.수미가앉던 자리에 민웅이는 가방을 두
엇다.언제나 반쯤 열려잇고 흐물대는 가방이엿다.그대각선으로 나와 주연이가 앉고 그뒤에 송
이와 수미가 앉앗다.

한달정도 그렇게 앉앗던가.갑자기 수미가 맨뒷자리로 갓다.말도안되는 승차감의 2번버스에서
맨뒷자리라니 거기앉느니 서서가는게 나앗을것이다.하지만 송이는 묵묵히 뒤따랏고 나랑 주연
이도 한칸 더뒤로갓다.뒤에서 두번째자리로 말이다.수미가 민웅이로부터 최대한 멀리앉고 싶
엇던건지 아니면 더높은 자리에서 민웅이를 보고싶엇던건지 잘모르겟다.

나는내심 민웅이가 죄지은것도 없이 안됏다고 생각하다가 무신경하게 굴더니 고소하다고 생각
하다가 하며 날마다 오락가락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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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단차 (♡.252.♡.103) - 2023/12/10 07:05:17

고백하면 받아줄 것도 아니면서 자기를 좋아해서 호의를 보내는 사람을 그대로 두는 것도 좀 괘씸할 때가 있어요. 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0 21:14:35

사랑과 우정사이? ㅋㅋ 어떤사람들은 학교때 안사귀고 사회나와서 다시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미술을 좋아하는거는 정세랑님이랑 단차가 닮앗네요.

단차 (♡.252.♡.103) - 2023/12/10 21:17:17

심지어 다른 사람 만나서 연애하다가 헤어지고 첫사랑 만나서 결혼한 경우도 있잖아요. 가수 허각처럼요.

정세랑 작가가 추구하는 방향이 좀 저와 비슷해요. 친환경에 관심이 많아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좋아하나봐요. 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0 21:19:45

이뤄지지 않아도 첫사랑은 그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워요.이룰수없는
사랑이 더 아름다워요.

단차 (♡.252.♡.103) - 2023/12/10 21:25:08

이뤄졌다면 볼꼴 못볼꼴 다보고 구차하게 헤어졌을 수도 있겠죠. 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1 20:58:20

人都是半人半鬼,凑近了都没法看。

이성친구던 동성친구던 현실친구던 온라인친구던 그관계가 오래갈려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잇어야대요.

단차 (♡.234.♡.24) - 2023/12/11 21:31:35

네. 사람이 그렇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죠.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해줘야 하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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