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카페 11~20

단차 | 2023.12.11 08:06:45 댓글: 2 조회: 217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7788
11 

  

  존재 이유를 알면 달라지는 것

  

  

  

  

  

  

  나는 식탁 앞에 차려진 음식을 하나씩 공략해나가기 시작했다. 오믈렛과 토스트를 끝내고 나서 과일을 먹고 있는데 케이시가 다가왔다.

  “음식이 입에 맞으세요?”

  나는 씹고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답했다.

  “맞고말고요. 정말, 진짜 맛있어요.”

  “기분도 훨씬 좋아지신 것 같네요.”

  확실히 그랬다. 카페 문을 들어설 때 나를 압도하고 있던 짜증스러운 기분은 이제 거의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라는 질문과 그 이후 이어진 토론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낮에 있었던 교통 체증 같은 문제들은 다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리고만 느낌이었다. 엄청나게 맛있는 오믈렛도 이 변화에 일조했다.

  “조용히 혼자 마저 드시겠어요? 아니면 말동무라도 해드릴까요?”

  “말동무가 있으면 좋죠. 사실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어요. 생각해봤는데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게 있어서요.”

  “어떤 점이 그렇지요?”

  “메뉴판에 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사람들 말이에요. 답을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던가요?”

  케이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요. 일단 답을 찾으면 그건 자기 것이거든요. 자기 것을 찾았으니까 그것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지요.”

  나는 케이시의 말을 곱씹어보고 말했다.

  “자기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깨달음을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하겠죠. 따라서 제 질문은 어떻게 그 깨달음을 실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케이시를 쳐다보니 그녀는 이미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단지 내가 스스로 그 길을 찾아내기를 기다리느라 말을 아끼는 느낌이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달라요.”

  그녀의 답이었다. 케이시를 쳐다보며 내가 물었다.

  “힌트라도 좀 줄 수 없나요?”

  “예를 들어드리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살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어떤 종류의 예술 작품을 남기고 싶으세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어요. 어떤 종류의 예술가가 되고자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그게 뭐든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려고 할 것 같은데요.”

  나는 여기에서 일단 말을 멈추고 케이시가 조언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침묵했고 나는 스스로 답을 생각해보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였나요?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 깨달음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무엇이든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무엇인가 특별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확인시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내용이 너무나 간단한 것이어서, 내가 찾던 정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존재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면 된다.’ 이렇게 단순할 수 있다니.

  “그럼 나의 존재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거라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을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나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의료계에 종사하는 거라면 그렇게 하는 거지요.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거라면 그렇게 하면 되고요. 회계사가 되어서 세금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회계사가 되는 거지요.”

  현기증이 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족들이 해주는 조언을 따르거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박에 눌려, 또는 사람들의 의견을 좇아 결정을 내리며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시각은 확실히 새로운 것이었다.

  “만약 내 존재 이유가 백만장자를 경험해보는 거라면 어떻게 되죠?”

  “그럼 백만장자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그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 뭐든지 해야죠. 그게 백만장자들과 사귀는 것이라면 백만장자와 사귀어야죠. 또는 그게 백만장자가 될 때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면 일을 해야 하고요. 아까도 말했듯이 선택은 스스로 하는 거랍니다.”

  “백만장자가 된다, 그것참 괜찮은 생각인데요.”

  나는 점점 더 열을 올렸다.

 
 “차도 몇 대 더 사고, 집도 두세 채 정도 더 장만해야겠어요.”

  그러자 케이시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다 좋아요. 그런데 그게 정말 당신이 여기 존재하는 이유인가요?”

  그 질문을 듣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모르겠습니다.”

  케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판에 있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어요?”

  나는 메뉴판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로 보였던 질문이 ‘나는 왜 여기 있는가?’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놀라움 가득한 얼굴로 케이시를 쳐다봤다.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일컬어 ‘존재의 목적’을 찾았다고 하는데, 인생을 살면서 바로 이 존재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 가지 일을 할 수도 있고, 스무 가지 또는 수백 가지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존재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아내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덜 행복한 사람들은 어떻죠?”

  “덜 행복한 사람들도 많은 일을 해요.”

  케이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마음 한구석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말로 내뱉었다.

  “그 사람들은 존재 이유와 무관한 일을 많이 하겠죠.”

  이 말에 케이시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끌어내야 할 결론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케이시, 내가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존재 이유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존재 이유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통해서일 수도 있고 여행이나 취미 활동 등 온갖 다양한 경험이 될 수 있는데,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요?”

  “존, ‘내 존재 이유는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아는 것이다’라고 해볼게요. 그리고 그 존재 이유를 충족시키기로 결심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우선 자동차에 대한 책을 많이 봐야겠죠. 그리고 견학 가서 자동차 제조과정을 직접 지켜보거나 자동차 만드는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할 것 같아요.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 일을 해볼 수도 있겠죠.”

  “그럼 한 곳에 머물면서 하시겠어요?”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니요, 진짜 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자동차 만드는 곳을 찾아 세계 이곳저곳을 다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겠지요. 아까 제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오네요. 사람은 자기의 존재 목적을 탐험하고 그와 관련한 수많은 일을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면서 그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나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는 모두 자기가 가진 현재의 경험이나 지식 안에 갇혀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현재’입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갖가지 정보라든가, 여러 분야의 사람들, 다양한 문화와 접할 수 있어요.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접근성의 한계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런 정보나 사람, 문화에 접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게 문제지요.”

 
 “맞는 말이에요. 나부터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아요.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요?”

  나는 다시 한 번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그건 바로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메뉴판을 가리켰다.

  “내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 그리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며 살아왔으니까요.”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12 

  

  파도 위의 녹색 바다거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뛰었다.

  “존, 녹색 바다거북을 본 적이 있나요?”

  “바다거북이요?”

  “예, 바다거북이요. 그중에서도 발이랑 머리에 녹색 반점이 난 바다거북이요.”

 
 “사진으로는 본 것 같은데, 왜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생의 지혜를 녹색 바다거북한테서 배웠어요.”

  “바다거북이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얼굴에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우습죠?”

  케이시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바다거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해주진’ 않았어요. 하지만 말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죠. 그때 저는 하와이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답니다. 바다거북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특별한 날이었어요. 왜냐면 그날 생전 처음으로 얼룩무늬 보라색 뱀장어와 문어를 보았거든요. 또 그곳 바다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있었어요. 눈에 확 띄는 화려한 야광 파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색깔의 물고기 떼가 유영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때 해변에서 한 30미터쯤 떨어진 데 솟은 큰 바위들 사이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바로 오른쪽으로 녹색 바다거북이 유유히 헤엄을 치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야생의 바다거북을 본 건 처음이었죠.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라요. 저는 수면 위로 올라와 스노클을 벗고 물 위에 동동 떠 있었어요. 바다거북을 자세히 보려고요.”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바다거북은 바로 제 발밑에서 먼바다 방향으로 헤엄쳐 가고 있었어요. 저는 그냥 수면 위에 떠서 한동안 바다거북을 지켜보기로 했지요. 바다거북은 발을 흔들기도 하고 그냥 물 위에 떠 있기도 하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막상 제가 바다거북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의외였죠. 그때 저는 물갈퀴를 끼고 있어서 제법 빠르게 헤엄칠 수도 있었고, 속도를 내는 데 방해가 될 만한 구명조끼 같은 것도 안 입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바다거북을 쫓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바다거북은 점점 제게서 멀어져 갔죠.”

  “그렇게 한 10분쯤 흘렀을까? 바다거북은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어요. 피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느려 터지기로 유명한 거북도 따라잡지 못한 게 창피해서 저는 해변으로 돌아왔답니다.”

  “다음 날 혹시 또 바다거북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같은 곳으로 헤엄쳐 갔어요. 바다거북을 만났던 장소에서 한 30분쯤 놀고 있었더니 검은색과 노란색 물고기 한 떼가 지나간 후 드디어 또 다른 녹색 바다거북 한 마리가 나타나더군요. 저는 바다거북이 산호초 근처를 유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그리고 바다거북이 해안가에서 멀리 바다 쪽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하자 따라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허탕이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그냥 물 위에 동동 뜬 상태로 거북을 지켜보았어요. 그때 저는 인생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죠.”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케이시는 말을 멈췄다.

  “사람 잔뜩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어서 계속해봐요. 뭘 배웠는데요?”

  케이시는 가볍게 웃으며 슬쩍 농담을 했다.

  “바다거북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안 믿으시는 줄 알았는데요…….”

  나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말을 했다는 건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양새를 보니 뭔가 가르쳐주었다는 말은 그럴싸하게 들리는데요.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됐어요?”

  “물 위에 동동 뜬 채로 가만히 지켜보니까, 바다거북은 물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파도가 바다거북 쪽으로 다가올 때 거북은 그냥 떠 있기만 했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파닥거렸죠. 그러다가 파도가 먼바다 쪽으로 쓸려갈 때는 열심히 파닥거리는 거예요. 자기가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갈 때 파도의 힘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던 거예요.”

  “바다거북은 결코 파도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헤엄치지 않았어요. 대신 파도를 이용했죠. 제가 바다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건, 저는 파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파닥거렸기 때문이었어요. 처음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어요. 적어도 바다거북을 놓치지는 않았으니까요. 사실 바다거북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다리를 좀 천천히 휘저어야 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밀려드는 파도를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더 피곤해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파도가 쓸려 나갈 때는 이 파도를 이용해서 빨리 나아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거죠.”

  “파도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저는 점점 더 지치고 효율이 떨어졌어요. 하지만 바다거북은 파도의 흐름을 최적의 상태에서 잘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보다 훨씬 더 빨리 헤엄쳐 갈 수 있었던 거예요.”

  “케이시, 그 거북 이야기 굉장히 재미있는데요.”

  그러자 케이시가 내 말을 고쳐줬다.

  “녹색 바다거북 이야기죠.”

 
 “그래요, 녹색 바다거북 이야기. 정말 재미있네요. 특히나 바다를 좋아하는 저한텐 더더욱요. 하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감이 잘 안 오는데요.”

  “알았어요, 잠깐만.”

 
 13 

  

  파도와 씨름하는 사람들

  

  

  

  

  

  

  나는 녹색 바다거북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생각해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즉 존재 목적을 깨닫게 되면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하셨죠. 또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했죠.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이제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맞습니다.”

  나는 대답하면서 케이시의 밝은 미소를 바라보았다.

  “제 생각에 그 거북은…… 그 녹색 바다거북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 헛된 짓으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 같아요. 지금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진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 일을 하는 데 쓸 힘이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뭐 그런 걸 가르쳐준 게 아닌가요?”

  “아주 멋져요. 그리고 그냥 거북이라 하지 않고 녹색 바다거북이라고 정확히 지칭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러고는 짐짓 심각한 어조로 덧붙였다.

  “제게는 정말 의미 깊은 순간이었어요. 제 인생에서 ‘아하! 이거구나’ 하고 깨달은 몇 안 되는 순간이었죠.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이것저것 해보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요? 우편물만 해도 그래요. 각종 광고 우편물에서 홍보하는 모든 행사나 세일, 서비스에 다 응하고 산다면 정말 자기 자신에게 남는 시간은 눈곱만큼도 없을 거예요. 그냥 우편물에서 부추기는 내용만 해도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를 쓰는 그 모든 광고물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기로 먹으러 와라, 여기 이 여행지가 좋다…….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다 보면 금세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또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두 번째 날 녹색 바다거북을 보고 해변으로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모래 위에 수건을 깔고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죠. 내 인생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바로 내 관심을 끌고 시간과 에너지를 가져가려 하는 모든 사람, 일 그리고 사물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는 무관한 것들이요. 그리고 밀려가는 파도는 바로 내 존재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을 도와줄 모든 사람, 일, 사물이라는 걸 깨달았죠. 지금 밀려오는 파도와 씨름하는 건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라는 사실을……. 그러고 나면 나중에 밀려가는 파도에 쓸 힘이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모든 게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는 어떤 상황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열심히 파닥거려야 할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말 재미있네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나의 하루하루를 반추해보았다.

  “이제 녹색 바다거북한테서 무엇을 배웠는지 확실히 알겠어요.”

  그러자 케이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신 것 같아요. 더 드세요. 전 조금 있다 다시 올게요.”

  “케이시, 종이와 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녀는 앞치마에서 펜 한 자루를 꺼내고, 주문 용지를 한 장 찢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계산해보시면 놀랄 거예요.”

  케이시는 이렇게 말하며 살짝 윙크를 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이미 저만치 가고 있는 케이시의 등 뒤에서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정신을 수습하고 나서 나는 케이시가 말한 대로 열심히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기대수명을 만 78세로 잡고, 대학 졸업할 때쯤 나이가 만 22세,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이 열여섯 시간, 이메일과 우편물을 훑어보는 데 드는 시간은 하루에 20분…….

  계산이 끝났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아 다시 계산을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케이시가 한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78세까지 매일 20분을 읽으나 마나 한 이메일과 우편물을 보는 데 소비한다면 결국 나는 내 인생에서 꼬박 1년을 그 쓸데없는 광고들을 살펴보는 데 허비하는 셈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남는 인생은 56년 정도. 그 귀중한 56년의 시간 중에서 꼬박 1년을 그런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다니! 나는 세 번째 계산도 마쳤는데, 역시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어때요?”

  케이시였다. 그녀는 아까부터 내 자리 가까이 서 있었던 듯한데 나는 계산하는 데 정신이 팔려 그녀가 다가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맞아요. 놀랐습니다. 사실 놀랐단 말로는 부족합니다. 충격적이라고 해야겠네요. 아무 의미도 없는 광고들 때문에 내 인생에서 귀중한 1년이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니…….”

  케이시는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모든 이메일이나 우편물이 다 광고는 아니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적어도 저한테 오는 이메일과 우편물의 대부분은 광고가 맞아요. 그리고 이 광고들 이외에도 이렇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매일 잡아먹고 있는 파도가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생각해보세요. 녹색 바다거북하고 보낸 시간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이유도 바로 그런 생각을 계속했기 때문이랍니다.”

  케이시는 미소를 짓고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14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

  

  

  

  

  

  

  나는 팬케이크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팬케이크도 역시 맛있었다. 나는 식사하면서 조금 전 마이크, 케이시와 나눈 대화 내용을 반추해보았다. 우리의 대화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흔히 나누는 그런 종류의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깨닫게 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녹색 바다거북한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카페에서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과일 접시를 비우고 있는데 마이크가 다가왔다.

  “음식은 마음에 드세요?”

  “훌륭해요. 정말 맛있습니다. 지점을 내셔야겠어요. 분명 떼돈을 버실 수 있을 겁니다.”

  마이크가 미소 지었다.

  “이미 한 재산 번 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럼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 거죠?”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이곳이 멋진 장소가 아니란 뜻은 아니고, 단지 그냥…… 어쩌다 보니 그냥 무심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네요.”

  “괜찮습니다. 그런 질문 처음 듣는 것도 아닌걸요. 혹시 휴가 갔다가 어부를 만난 사업가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아뇨.”

  “2년쯤 전까지만 해도 꽤 유행했던 이야긴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지금 말씀하신 지점 내는 것과도 관련된 이야기이거든요.”

  “네.”

  마이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사업가가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위해 휴가를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날아가 낯선 나라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 사업가가 선택한 첫 번째 휴가 즐기기 방법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마을 사람들을 관찰했더니 그 마을에서 한 어부가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부에게 흥미를 느낀 사업가는 어느 날 어부에게 다가가 매일 무엇을 하며 사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 아내와 아이들이랑 아침 식사를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자기는 고기 잡으러 가며, 아내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낚시를 해서 가족들과 충분히 먹을 만큼 생선을 잡고 나면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아내와 바닷가를 산책하며 석양을 바라보고, 아이들은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고 했다.

  사업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몹시 놀라서 물었다.

  “매일 그렇게 산다고요?”

  “거의 날마다죠. 다른 일을 하는 날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그렇게 하루를 보냅니다.”

  어부가 대답했다.

  “매일 고기가 잡히나요?”

 
 “예, 고기는 많습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보다 더 많이 잡히지는 않나요?”

  어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요, 간혹 너무 많이 잡혀서 일부는 다시 바다에 놔준답니다. 전 낚시를 좋아하거든요.”

  “그럼 온종일 일해서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잡으면 어때요? 그럼 잡은 걸 내다 팔아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돈으로 배를 두세 척 사고 그 배에서 일할 어부들을 고용해 고기를 많이 잡게 하는 거예요. 그럼 몇 년 내로 큰 도시에 사무실을 열 수 있을 테고, 그러고 나선 한 10년 안에는 국제적인 어류 물류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뭐 하러 그렇게 하죠?”

  어부는 사업가에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죠.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고 그런 다음 은퇴하는 겁니다.”

  “그럼 은퇴하고 나서는 무엇을 하죠?”

  어부는 이런 질문을 하며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원하는 건 뭐든지요.”

  “예를 들어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 거요?”

  사업가는 어부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약간 실망하며 이렇게 답했다.

  “그런 것도 있겠네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낚시를 좋아하니까, 매일 몇 시간 정도 낚시를 즐길 수도 있겠네요?”

  “못할 것도 없지요. 아마 그때쯤이면 바다에 고기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사업가가 답했다.

 
 어부는 또다시 말했다. “아내와 해변을 산책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해지는 것도 함께 바라보고, 아이들은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럼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때쯤이면 애들은 다 자랐겠지만…….” 사업가의 답이 돌아왔다.

  어부는 미소 지으며 악수를 하고 사업가에게 잘 쉬고 충전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마이크는 말을 마치고 나를 쳐다보았다.

  “어때요? 존.”

  “그 사업가, 저하고 조금 닮은 거 같네요. 저는 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나중에 퇴직하고 나서 먹고살 돈을 충분히 모으고 싶었죠.”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어느 날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퇴직은 미래의 일이고 내가 퇴직하는 그 미래에 나는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겠죠. 그때쯤이면 내가 원하는 취미 활동도 하고 그러면서 만족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낼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에서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이게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이 간단명료한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몹시 허탈했지만 그래도 그건 좋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나는 마이크를 바라보며 정확히 무엇을 깨달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매일매일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소중한 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아까 메뉴판에서 잠깐 보셨던 그 질문에 대한 답, 즉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오늘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 퇴직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나는 식사를 멈추고 포크를 식탁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너무도 단순 명료한 진리를 깨닫고 놀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라면, 그렇게 단순한 거라면, 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지 못하는 거죠?”

  “글쎄요, 제가 모든 사람을 대변할 수는 없고……. 존, 그러면 당신은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나요?”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 내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 이야기를 하는 쪽은 마이크이고 나는 듣기만 하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나는 마이크가 던진 질문을 잠깐 생각해보고 이렇게 답했다.

  “그런 것 같지 않네요.”

  “왜죠?”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학에 들어갈 때는 뭘 전공해야 할지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제가 좀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졸업하고 나서 취직이 잘된다고 말하는 그런 과를 골랐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점점 더 돈 버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결국에는 꽤 많은 월급을 받게 됐고, 그러면서 지금 이 방식에 젖어 들어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네요.”

  나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 오늘 밤까지는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질문은 예상치 못한 때,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불쑥 나타난답니다.”

  “정말 이상해요.”

  “뭐가요?”

  “우리가 방금 나눈 이야기 말이에요. 왜 우리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앞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는 걸까요? 그냥 지금 당장 이 순간 원하는 것을 하며 살지 않고.”

  “그 질문에 대해 혜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분을 만나게 해드릴까요?”

  마이크는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시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쪽으로 갔다. 그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내 자리까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뒤 그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와 함께 내 쪽으로 걸어왔다.

 
 15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는 이유

  

  

  

  

  

  

  내 자리로 다가와 마이크가 같이 온 사람을 소개했다.

  “존, 제 친구 앤을 소개합니다. 앤, 이분은 존인데 오늘 우리 카페에 처음 오셨어요.”

  앤은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이 카페에 자주 오시는 모양이지요?”

 
 “네, 가끔 와요.” 그리고 앤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 카페는 가장 필요할 때 저절로 발길이 닿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앤, 존과 함께 앤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러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쪽으로 모셨지요.”

  마이크가 이렇게 말하자 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글쎄, 전문가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의견을 듣고 싶다면 얼마든지 들려드릴 수 있지요.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는데요?”

  “존은 왜 우리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어요.”

  “아, 정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네요.”

  앤은 이렇게 말하며 또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앤의 웃음에는 일종의 전염성이 있었다. 그 웃음소리를 한번 들으면 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이 스쳤다.

  “여기 앉아서 대화를 나누시죠.”

  “그래요, 다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마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전에 앤에 대한 소개 말씀을 간략히 드리겠습니다. 앤은 명문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유명한 광고 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했어요.”

 
 “와, 정말 대단한 분이군요.”

  “뭐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대화 주제의 맥락에서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앤은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존, 텔레비전이나 잡지 즐겨 보세요? 라디오도 들으시나요?”

  “네, 가끔요. 헌데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이유는?”

  “왜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지 않고 나중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 눈앞에 매일 전개되는 그런 메시지에 담겨 있거든요. 광고사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나 욕망을 목표로 하면 그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꿰뚫고 있었답니다. 두려움, 욕망을 제대로만 공략하면 특정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요.”

 
 “예를 들어 말씀해주시겠어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든가 또는 안전을 지켜준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본 적 있으시죠? 보통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죠. ‘이 제품을 소유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이 더 나아질 것이다.’”

  “글쎄요.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보통 아주 미묘하게 전달하니까 쉽게 포착할 수는 없죠. 대부분 업체들은 그런 메시지를 대놓고 떠들지는 않는답니다. 하지만 광고 속에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또는 광고 제작일을 많이 하다 보면 다 보이거든요. 이런 광고 메시지의 목적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사람들이 믿도록 만드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 차를 몰고 다니면 인생이 의미 있어진다든가,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해진다든가, 이 다이아몬드는 만족을 의미한다든가…….”

 
 앤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런 메시지에는 이걸 사면 행복해진다는 의미뿐 아니라 이게 없으면 인생이 완벽해질 수 없다, 혹은 이게 없으면 만족할 수 없다는 의미까지도 교묘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앤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사람들이 물건을 사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요? 그건 너무 극단적인 말인데요. 현실적이지도 못하고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에요. 당연히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야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차를 사지 말라거나 쇼핑몰에 가지 말라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예요. 전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으니까요. 아까 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면서 살고 있는지 물어보셨잖아요? 그 대답을 다는 아니어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거든요. 경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매일 접하는 마케팅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흡수해버립니다. 결국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방법이 바로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있다고 믿게 되지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고 마는 겁니다.”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그럼 아주 일반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우선 제가 말씀드리는 사례가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건 아니란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어온 주제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16 

  

  스스로 볼 줄 아는 눈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만족이라는 것이 물질에서 온다고 하는 광고를 많이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죠?”

  “광고에서 떠드는 대로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건을 사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광고에서 본 것을 구매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상적인 일자리가 아니라도, 귀중한 내 인생을 투자해 하고 싶은 그런 일이 아니라도, 내가 사들인 물건값을 지불하기 위해 그 일을 그냥 하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는 ‘한동안만 이러고 사는 거야’라고 주문을 거는 겁니다. ‘잠깐만 이거 해서 돈 벌고, 그다음에는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거야’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퇴직 이후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살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원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시간을 상상해요. 그와 동시에 현실에서는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상받기 위해 물건을 사댑니다. 그렇게 광고에서 보았던 메시지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물건을 사면서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만족을 얻길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불행히도 물건을 많이 사들이면 사들일수록 청구서는 산처럼 쌓이고, 그러면 불어나는 대금을 치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고 말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원하고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닌데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생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지고, 결국에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시간은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존재 목적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고, 그렇게 살면서 싫어하는 일은 더 이상 안 해도 되는 미래,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미래에 대해 꿈만 꾼다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말씀이 제대로 정곡을 찌른 것 같습니다.”

  앤과 마이크가 큰 소리로 웃었다.

  “존, 저는 그냥 광고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스스로 볼 줄 아는 눈을 갖춰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 말을 무조건 다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요.”

  앤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케이시 말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셨다고 하던데요. 바로 그걸 통해서 우리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도 제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답니다. 이제 제 견해를 들으셨으니 세상을 둘러보고 이게 정말 맞는지, 맞는다면 전부 다 맞는지, 부분적으로 맞는지 또는 아무것도 맞는 것이 없는지 스스로 알아보셔야지요.”

 
 17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제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네요. 앤, 조금 전에 말씀하신 그 사이클 있잖아요. 혹시 본인 스스로 그 사이클을 거쳐보신 거 아닌가요?”

  앤은 소리 내어 웃었다.

  “맞아요.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했답니다. 그땐 정말 불행했고, 내가 인생에 휘둘리는 느낌이었어요. 매일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일만 하며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내 시간은 하나도 없었고, 그렇게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쇼핑을 하곤 했죠. 그때는 그런 걸 아주 당연하게 여겼어요. 주말에도 일을 했어요. 일을 하면서 그래, 이렇게 열심히 일했으니까 좋은 옷 한 벌 사도 되겠지, 아니면 최신 가전제품이나 아주 멋진 가구를 살 자격이 있어, 이렇게 자위하곤 했답니다. 헌데 문제는 그렇게 일만 하며 살다 보니 나를 위해 산 물건을 써볼 시간이 없다는 거였어요. 저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집을 보고 멋지다고들 했지만 정작 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죠.

  어느 날 밤, 내 월급과 맞먹는 액수의 청구서 더미를 훑어보고 나서 침대에 누웠어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더군요. 아무리 해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옆으로 술술 모두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한답시고 쇼핑을 해대며 살고 있었죠.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내가 그렇게 사들인 물건을 실은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거였어요.

  거기에다 한술 더 떠서 계획대로 살아간다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때는 환갑이 지난 다음이라는 사실이 더 절망적이었어요. 그때나 되어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어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변하셨나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내 질문에 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요, 많이 달라졌어요. 그날 밤, 저는 그렇게 천장을 노려보며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그러고는 산책을 나섰죠. 그땐 대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면 항상 사람들이 넘쳤어요. 나는 길을 걸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어요.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느낌일까? 행복할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보통 때 그냥 지나치면서 보기만 했지 한 번도 들러보지 않은 작은 카페에 들렀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카페에 낯익은 분이 앉아 있었어요. 그분은 볼 때마다 항상 어쩜 저렇게 편안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던 사람이었죠. 그분이 반가워하며 저에게 차 한잔 같이하자고 하더군요.

  그날 저는 그분과 커피를 마시며 세 시간도 넘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저의 상황과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그분이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제가 만든 광고 카피를 저 스스로 너무 많이 보는 것 아니냐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아까 제가 말한 그 사이클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가 그때 이후로 계속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그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이라 정의 내린 대로 산다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껴야 만족스러운 삶이 되는 거지요.’ 그날 밤, 저는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그리고 그런 인생이 만족을 가져다주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어요.

  다시 말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자문해보았죠.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파고들어 봤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모든 게 한 가지 문제로 수렴되었어요.”

  나는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앤이 메뉴판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그래서요?”

  내가 묻자 앤은 또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아까 케이시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바로 그날 밤 이후 제가 그랬어요. 세상이 달라 보였죠. 처음에는 조금씩 달라졌어요.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서서히 늘어났죠. 그리고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더 이상 쇼핑을 통해 받으려 하지도 않게 되었어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상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매일 적어도 한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데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좋아하는 소설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식이죠. 그 한 시간이 두 시간 그리고 세 시간으로 점점 더 늘어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일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내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만족시켜주는 일들을 하며 살게 되었어요.”

  18 

  

  죽음이 두렵습니까?

  

  

  

  

  

  

  앤이 마이크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한 토론은 하셨나요?”

  “뭐라고요?”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앤은 미소 띤 얼굴로 메뉴판을 가리켰다.

  “두 번째 질문 말이에요.”

  나는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나는 메뉴판에 있는 나머지 두 가지 질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첫 번째 질문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답니다.”

  마이크가 말했다. 그는 또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정상적인 카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의구심은 마음 한쪽 구석에 접어놓고 이렇게 물었다.

  “연관되어 있다니요? 무슨 뜻이죠?”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앤이 말했다.

  “글쎄요,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그 일들을 다 해보기 전까지는 죽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고요.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내가 대답했다.

  “메뉴판에 있던 그 질문은 이런 각도에서 보시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시작한 앤은 나를 쳐다보며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그런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답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앤과 마이크를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사람들이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산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아요.”

 
 마이크가 미소 지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요. 두려움이라는 것은 주로 무의식 속에 잠재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매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지요.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더 줄었다고 인식하죠. 그래서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을 아주 못 하게 되는 날이 진짜로 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답니다. 다시 말해 죽는 날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나는 마이크가 방금 한 말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묻고,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이미 원하는 일을 했거나 매일 하고 있다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죠.”

  앤이 미소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맞아요.”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존. 이제 저쪽에 앉아 있는 제 친구한테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즐거웠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좋은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나도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느낌이 사뭇 달랐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에 아주 귀중한 무언가를 배운 기분이었다.

  마이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좀 안 좋은 듯한데.”

 
 “아, 그냥 좀 생각 중입니다. 앤도 그렇고 두 분 다 일리 있는 말씀을 하시네요. 지금까지 왜 아무도 내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왜 나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했던 것일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답니다. 사실 이전에 이미 생각해보신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해도 실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든가, 그런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겁니다.”

  마이크가 빈 접시 두 개를 집어 들고 말했다.

  “다 드신 접시는 치워드릴게요. 해시브라운 계속 드실 건가요?”

  “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아직도 너무 배가 고파서 너끈히 다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가 사라지자 나는 방금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곱씹어보았다. 한꺼번에 소화하기에는 정말 힘든 내용이었다. 앤이 얘기해준 광고의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성공과 행복에 대해 내렸던 정의에는 얼마나 많은 남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사람들의 말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짚어 읽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대화는 아주 색다른 것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다가올 죽음을 걱정하면서 황폐한 마음으로 살았던 건 전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면 매일매일 나의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미 원하는 일을 했거나 매일 하고 있다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나는 혼자 되뇌었다.

  좀 더 일찍 이런 걸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울림이 들려왔다.

  “깨달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

 



 19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는 다시 한 번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제는 이러한 질문이 처음 봤을 때처럼 더 이상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뚱맞거나 이상하기는커녕 아주 중요한 질문처럼 다가왔다.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존재 이유를 알고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갈 때까지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겠죠?”

  케이시였다. 그녀는 내 물컵을 치우고 있었다.

  “쉽지 않죠. 내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직장에서 뭘 해야 하는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삭하게 다 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거고요. 그런데 내가 이제 나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는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리고 돈은 어떻게 벌죠?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고요? 퇴직 후 살 돈은 어떻게 모으죠?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소질이 없다면 어쩌죠? 또는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비웃거나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케이시는 내 말이 다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럼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존재 이유를 알아내고, 존재 이유에 대해 답을 찾는다면 사람들이 자기가 찾아낸 것에 대해 기뻐할까요?”

  나는 잠깐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나서 답했다.

  “그럼요, 당연히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당연히 기쁠 것 같은데요.”

  “그럼 그 존재 이유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산다면 그 역시 그만큼 기쁠까요?”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답이 너무 빤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답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문득, 내가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안 기쁜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 어떤 것보다 기쁜 일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나는 케이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처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케이시가 말을 이었다.

  “매일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을 본 적 있으세요? 정말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들요.”

  나는 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분명 있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자기 일을 잘하던가요?”

  “글쎄요, 뭐 그렇겠죠.”

  나는 약간 냉소적으로 답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당연히 잘해야지요. 여가 시간에도 관련 자료를 찾아 읽고, 그 분야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관련 모임이나 전시회도 찾아가고, 항상 그 이야기만 하는걸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잘하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그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지겨워하던가요?”

  “아니요, 지겨워하기는커녕 더 하지 못해 안달인 것 같던데요!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활력을 얻고, 그리고…….”

 
 나는 하던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케이시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일거리가 없어 힘들어하던가요?”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아뇨,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 게 매우 많았어요. 그리고 무척 열심이었죠.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 했어요.”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들이겠죠? 그리고 재충전을 하겠다고 자기 일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안 할 거예요.”

  케이시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맞다. 그렇게 볼 수도 있었다.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면 어떨까? 내가 항상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면 어떨까? 그러다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돈은 어떻게 벌죠? 뭔가를 잘한다고, 뭔가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일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일에 대한 보수가 늘 넉넉할까요?”

 
 20 

  

  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나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한 나 자신을 속으로 기특해하며 계속 밀어붙였다.

  “결국 돈도 중요하지 않은가요?”

  “알았어요. 그럼 돈과 관련해서 최악의 상황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여기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일을 찾아낸 사람이 있다고 쳐요. 그 사람은 그 일을 하며 평생을 살죠. 그게 바로 자기 존재 이유인 걸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을 한다고 해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해요. 세상에, 정말 비극적인 일이죠. 그럼 그 결과를 한번 상상해보세요. 평생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줄 만족스러운 일을 하면서 살아왔어요.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케이시는 여기서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65세가 되고 보니까, 퇴직 후 살아갈 자금을 넉넉하게 저축해두질 못한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렇다면 그냥 그때까지 해왔던 대로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야겠네요, 쯧쯧. 세상에 그렇게 비극적인 일이…….”

  이 말을 할 때쯤 케이시의 목소리는 냉소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웃었다.

  “케이시, 그 냉소적인 멘트 정말 끝내주는데요!”

  케이시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그냥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제 짐작이 맞는지 한번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알았어요. 어부에 대해 마이크가 해준 이야기로 돌아가는군요. 지금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뒤로 미루느냐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또 있죠. 앤이 했던 말 기억하세요? 왜 사람들이 물건을 사재는 건지?”

  “그럼요, 사람들은 왜 돈을 벌려고 하나, 그건 물건을 더 사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것은 매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물건이라도 구매해서 대리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는데 바로 물건을 많이 사면 살수록 그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따라서 아차 하는 순간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런 말을 했죠.”

 
 여기까지 말하고 멈추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케이시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내 눈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 말한 최악의 상황이란 것과 관계가 있는 거죠?”

  케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일을 선택하는 것이겠죠.”

  케이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 있으면, 최상의 상황도 있을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죠. 그러면 존재 이유가 충족될 겁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의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물을 마셨다. 힌트를 좀 달라고 하려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마 돈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덜 중요해질 겁니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사람들이 애초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앤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일을 하는 목적이 만족을 추구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었지요.”

  “예를 하나 들어보시겠어요?”

  케이시가 말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사들인 것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 거죠.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앤이 언급했던 그 사람들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사들인 물건 중에는 일상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것들 말이죠.

  궁금한 건, 내가 ‘탈출’할 필요가 없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지금 내가 소유한 물건 중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겁니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면 탈출해야 할 일도 줄어들 것이고, 해소해야 할 스트레스 또한 그리 많지 않겠죠. 그렇다고 숲속의 통나무집에서 은둔생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어느 정도 존재 이유를 충족하는 삶을 사느냐에 따라 ‘많은 돈’에 대한 정의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케이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람들이 더 이상 돈을 벌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뇨.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내 말은 만약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내고, 그 존재 이유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산다면 돈이란 것이 지금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지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케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빈 접시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존.”

  그녀는 접시를 챙겨 들고 돌아서서 주방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재미있는 곳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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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34.♡.24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2 21:11:48

세공에서 언급햇던 그책이군요.

존재의이유ㅡ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위해 존재해요.나의가족과
가족같은 주위사람들이 나를 존재하게 하네요.결국 인간관계를 떠나서 살수없어요.
무인도에 가서 혼자살아라면 무시무시하겟죠?

돈ㅡ그 인간관계의 주요명맥이자 핏줄같은 존재이죠.돈이돌아서 피가돌아요.돈돌기
피돌기.

죽음ㅡ공부도 할만큼햇고 남자두 사겨밧고 결혼육아두 해밧고 일두 할만큼햇고 부
모를 부양하고 동생을 챙겨줫고 친구도 도와줫으니 낼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단차 (♡.234.♡.196) - 2023/12/13 13:53:38

존재의 이유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돈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죠.
죽음 저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이라도 아쉬울 것 없다 싶을정도로 살고 있어서 내일이 끝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받아 들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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