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8

단차 | 2023.12.13 06:36:49 댓글: 0 조회: 220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8673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


정원 입구에는 커다란 장미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장미 나무에는 하얀 장미가 피어 있었는데, 정원사 세 명
이 하얀 장미를 빨감게 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상해서 앨리스는 자세히 보려고 정원사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 그중 한 정원사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해, 5번! 물감 좀 튀기지 말라고!"

"7번이 내 팔꿈치를 쳐서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5번이 토라져 말했다. 그 말에 7번이 고개를 들더니 톡 쏘아 말했다.

"그럼 그렇지, 5번 넌! 언제나 남만 탓하지!"

"넌 가만히 있는 게 좋을걸, 어제 여왕님이 널보고 목을 날려도 시원치 않을 놈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

5번이 말했다.

"왜?"

처음 말했던 정원사가 물었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2번!"

7번이 말했다.

"그래. 2번의 일은 아니지. 내가 말해 줄게. 그건 요리사에게 양파를 가져다줘야 했는데 튤립 뿌리를 가져갔기 때문이야."

5번이 말했다.

7번이 붓을 내던지더니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 어떻게 이런 억울한 일이......."

그때 7번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앨리스와 눈이 마주쳤
고 갑자기 하던 말을 멈쳤다.

다른 두 정원사도 주위를 돌아보더니 앨리스를 보고 머리숙여 인사를 했다.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장미를 빨갛게 칠하고 있는 거예요?"

5번과 7번이 조용히 2번을 쳐다보았다. 2번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게 말이죠, 아가씨. 사실 이곳에 빨간 장미 나무를 심
였어야 했는데 저희가 실수로 하얀 장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에요. 이 사실을 여왕님이 아시게 되면 우리 목이 날아갈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여왕님이 오시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수습하고 있답니다."

이때 걱정스럽게 정원을 살피던 5번이 소리쳤다.

"여왕님이다! 여왕님이 오신다!"

정원사들이 일제히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앨리스는 여왕을
보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먼저 열 명의 병사가 두 줄로 클로버를 들고 걸어왔다. 병사들의 몸은 정원사와 같이 납작한 직사각형에 손괴 발이 네 귀퉁이에 달려 있었다.

그들 뒤로는 신하 열 명이 따라 걸었다. 그 신하들은 온몸을 디이아몬드로 장식하고 병사들의 행렬처럼 두 줄로 걸어왔다. 그 뒤로는 왕자와 공주들이 따라왔다. 그들 여시 모두 열 명이었는데 서로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즐겁게 뛰어 들어왔다. 다들 하트로 장식한 모습이었다. 그다음으로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왕과 여왕들이었는테, 앨리스는 그들 가운데서 하얀 토끼를 발견했다.

하얀 토끼는 조급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듣는 말마다 미소로 답하느라 앨리스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또 그 뒤로는 하트 잭이 진홍색 벨벳 쿠션 위에 놓인 왕관을 들고 손님들의 뒤를 따랐고 마지막으로 하트 왕과 하트 여왕의 화려한 행렬이 나타났다.

앨리스는 정원사들처럼 자신도 바닥에 엎드려야 하나 잠
시 망설였다. 그러나 행렬에 대한 어떤 규칙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저렇게 납작 없드리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텐데, 그러면 행렬이 무슨 소용이겠어?'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서서 행렬이 오기를 기다렸다.

행렬이 앨리스 앞으로 다가와 모두 걸음을 멈추고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여왕이 근엄하게 하트 잭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냐?"

하트 잭은 대답 대신 머리를 조아리며 웃기만 했다.

"멍청한 놈!"

여왕이 고개를 흔들고는 앨리스를 항해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앨리스라고 합니다. 여왕 폐하."

앨리스가 아주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겨우 카드 한 벌이잖아. 겹낼 필요 없어!"

"이들은 또 누구냐?"

여왕이 장미 나무 옆에 납작 엎드려 있는 세 정원사를 가
리키며 물었다.

그들은 모두 얼굴을 바닥에 대고 잎드려 있었고, 등에 있
는 무늬가 다른 카드들과 똑같았기 때문에 여왕은 그들이 정원사인지, 병사인지, 신하인지, 아니면 왕자나 공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인테요."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대담한 용기에 깜짝 놀랐다.

이 말에 화가 나 여왕의 얼굴이 빨개졌고, 사나운 짐승처
럼 앨리스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소리쳤다.

"저 아이의 목을 당장 쳐라!"

"말도 안 돼요!"

앨리스가 큰 소리로 단호하게 말하자 여왕이 잠잠해졌다.

왕이 여왕의 팔에 손을 없으며 조용히 말했다.

"진정해요 겨우 어린애잖소!"

여왕이 화가 나 몸을 획 돌리더니 하트 잭에게 명령했다.

"저것들을 뒤집어라!"

하트 잭이 한 발로 아주 조심스럽게 정원사들을 뒤집었다.

"일어서라!"

날카로운 여왕의 고함 소리에 세 정원사가 벌떡 일어나
왕과 여왕, 왕자와 공주들, 그 외 모든 이들에게 허리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정신없단 말이야."

여왕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장미 나무를 돌아보며 물
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카드 2번이 한쪽 무릎을 끓으며 공손하며 말했다.

"여왕 페하, 저희들은......."

그들이 머뭇거리는 동안 장미를 살펴보던 여왕이 소리쳤다.

"아, 알겠다. 저놈들의 목을 쳐라!"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병사 세 명만이 사형 집
행을 위해 남았다. 세 정원사가 앨리스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왔다.

"당신들의 목이 날아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올 거
예요!"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고는 옆에 놓여 있는 커다란 화분
속에 정원사들을 숨겼다.

병사 세 명이 죄인들을 찾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묵묵히 행렬을 뒤따랐다.

"그놈들의 목을 쳤느냐?"

여왕이 소리쳤다.

"목이 사라졌습니다. 여왕 폐하!"

병사들이 대답했다.

"잘했다! 그런데 너는 크로케를 할 줄 아느냐?"

여왕이 소리쳤다.

여왕이 앨리스에게 묻는 말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잠자
코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네. 물론이에요!"

앨리스가소리쳤다.

"그렇다면 따라오너라!"

여왕이 고함치며 말했다. 행렬에 끼게 된 앨리스는 다음
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척 궁금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지!"

앨리스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
다. 하안 토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앨리스를 살피고 있었다.

"날씨가 참 좋네요. 그런데 공작 부인은 어디 있어요?"

앨리스가 물었다.

"쉿! 쉿!"

하얀 토끼가 낮은 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앨리스의 어깨 너머를 조심스립게 살피더니 까
치발을 들어 앨리스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공작 부인은 사형 선고를 받았어."

"아니, 왜요?"

앨리스가 물었다.

"방금 '안됐네요!'라고 그랬니?"

토끼가 되물었다.

"아니요. 그저 이유를 물었어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공작 부인이 여왕님의 뺨을 때렸는데......."

토끼가 말하자 앨리스가 작은 소리로 킥킥거리고 웃었다.

"쉿! 쉿!"

깜짝 놀란 토끼가 앨리스에게 속삭였다.

"여왕님이 다 듣겠어! 공작 부인이 조금 늦게 왔거든.그
러자 여왕님이......."

"각자 위치로!"

여왕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모두 사방팔방 뛰기 시작하더니 서로 부딪쳐 넘어졌다..
그러나 금세 다들 제자리를 잡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앨리스는 이렇게 이상한 경기장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바닥은 여기저기 패여 울퉁불퉁하고, 공은 살아 있는 고슴도치였고, 크로케 채는 살아 있는 홍학이었다. 병사들은 두 손을 땅에 짚고 몸을 동글게 구부려 골대를 만들고 서 있었다.

앨리스는 홍학을 다루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홍학의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다음 팔 안쪽으로 몸통을 편안하게 안아 목을 똑바로 세웠다. 하지만 앨리스가 홍학의 머리로 고슴도치를 치려고 하면 홍학이 목을 돌리고 앨리스를 올려다보았고 그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앨리스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홍학의 머리를 아래로 돌리고 고슴도치를 치려는 순간, 이번에는 고슴도치가 둥글게 말고 있던 몸을 펴고 기어가 버리는 바람에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앨리스가 고슴도치를 치려고 하면 땅이 울퉁불퉁하거나, 병사들이 일어나 다른 쪽으로 가 버리곤 했다. 앨리스는 경기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수들은 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한끼번에 공을 치면서 서로 고슴도치를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여왕은 금방 흥분해서 발을 쿵쿵 구르며 1분에 한 번씩 이렇게 외쳤다.

"이놈의 목을 쳐라!"

"저놈의 목을 쳐라!"

앨리스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여왕과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난 어떻게 될까? 이곳 사람들은 목 베는 걸 이렇게
도 좋아하니,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할 지경이야!'

앨리스는 도망칠 길을 찾으러 주위를 둘러보며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앨리스는 그게 무엇인지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것이 싱긋이 미소 짓는 모습인 것을 알아채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건 체셔 고양이야 이제야 나타났군."

"잘 지냈니?"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입이 나타나자 인사를
건넸다.

앨리스는 고앙이의 눈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지금은 말을 해 봐야 아무 소용없이. 두 귀가, 아니 한 귀
라도 나타나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잠시 후 고앙이의 머리 전체가 나타났다. 그때서야 앨리
스는 홍학을 내려놓고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경기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는지 더 이상 몸을 드
러내지 않았다.

"이 경기는 공정하지 않아."

앨리스가 투덜거렸다.

"다들 어찌나 싸우는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특별한 규칙도 없는 것 같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규칙을 지키려 하지 않을 거야. 모든 도구가 살아 움직이니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아니? 공을 넣어야 할 골대가 운동장 저끝으로 가있어. 여왕님의 고슴도치를 크로케에서 써야 하는데, 지금은 도망가 버리고 없어."

"여왕님은 마음에 드니?"

고양이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 전혀. 여왕님은......."

순간 여왕이 바로 뒤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앨
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를 끝까지 할 필요도 없어요. 여왕님이 이길것이 확
실해."

여왕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누구와 얘기하는 거니?"

왕이 앨리스에게 다가오며 아주 신기하다는 듯 고양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제 친구 체셔 고양이에요. 소개해 드릴게요."

앨리스가 말했다.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하지만 원한다면 내 손에
입을 맞춰도 좋다."

왕이 말했다.

"싫어요."

고양이가 대꾸했다.

"무례하구나. 그리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왕은 앨리스 뒤로 몸을 숨겼다.

"고양이도 왕을 바라볼 수 있어요. 어떤 책에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책에서 읽었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어쨌든 저 고양이는 끌어내야 해."

왕이 단호하게 말하더니 지나가던 여왕을 불렸다.

"여보! 저 고양이 좀 치워 주시오!"

문제가 크든 작든 모든 골칫거리를 잠재우는 여왕의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여왕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저놈의 목을 쳐라!"

"내가 직접 사형 집행인을 불러오리다."

왕이 서둘러 나가며 말했다.

앨리스는 크로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러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왕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여왕은 제 차례를 놓쳤다는 이유로 세 명의 선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뒤였다. 앨리스는 자기 차례가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인 경기가 보기 싫어서 자신의 고슴도치를 찾아 나섰다.
앨리스의 고슴도치는 마침 다른 고슴도치와 싸움이 붙어
있었는데 자기 고슴도치로 다른 고슴도치를 맞출 수 있는 좋은기회였다.
문제가 있다면 홍학이 경기장 반대편으로 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홍학은 나무 위로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앨리스가 홍학을 붙잡아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싸움은 끝났고 고슴도치 두 마리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골대도 가 버리고 없잖아.'

앨리스는 홍학이 다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옆구리에 꼭 끼고 친구와 조금 더 애기를 나눌까 하고 고양이에게 돌아갔다.

체셔 고앙이가 있는 곳으로 간 앨리스는 고양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형 집행인, 왕과 여왕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앨리스가 나타나자 세 사람은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여기저기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떠들어 대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형 집행인은 몸이 없는데 어떻게 목을 벨 수 있느냐며, 지금껏 이런 일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결코 자신이 할수 없다고 말했다.

왕은 머리가 있는데 왜 목을 베지 못하느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사형 집행인을 다그쳤다.

여왕은 지금 당장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사형시키겠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고 걱정스러워 보였던 것은 바로 여왕의 말 때문이였다.)

앨리스는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저 고양이는 공작 부인의 것이에요. 공작 부인에게 물어
보는 게 가장 좋겠어요."

여왕이 사형 집행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 감옥에 있어. 가서 데리고 와라."

사형 집행인이 그 자리를 떠나자마자 고양이의 머리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사형 집행인이 공작 부인과 합께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러자 왕과 사형 집행인은 고양이를 찾아 날뛰었고, 그러는 동안 주위사람들은 다시 크로케 경기를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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