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1

단차 | 2023.12.14 17:50:07 댓글: 0 조회: 25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9373
11

누가 타르트를 훔쳤지?

앨리스와 그리핀이 도착했을 때 왕과 여왕은 왕좌에 앉아있고 그 주위로 온갖 새와 짐승, 카드들이 모여 있었다. 맨 앞에는 카드 잭이 사슬에 묶인 채 병사들에 둘러 싸여 있었다.

왕 옆에는 하얀 토끼가 서 있었는데 한 손에는 트럼펫을, 다른 한 손에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법정 한가운데 탁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는 큰 타르트 접시가 놓여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타르트를 보자 배가 고파진 앨리스는 얼른 재판이 끝나고 타르트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었으므로 재판이 시작하기 전 시간을 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앨리스는 법정에 가 본 적은 없었지만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법정에서 쓰는 용어들을 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해서 중얼거렸다.

"커다란 가발을 쓴 사람이 재판관일 거야."

그런데 재판관은 왕이었다. 왕은 가발 위에 왕관을 쓰고 있어 아주 불편해 보였고 그리 어울리지도 않았다.

'저기는 배심원석, 저기 있는 열두 마리의 생물들이 배심원이겠지.'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단어를 몇 번 더 되뇌며 뿌듯해했다.

그 이유는 앨리스 또래의 여자아이들 중에 그 말의 뜻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심원들'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열두 명의 배심원들은 바쁘게 석판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아직 재판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앨리스가 그리핀에게 물었다.

그리핀이 속삭이듯 대답했다.

"자기 이름을 쓰고 있는 거야.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잊어버릴지도 몰라서."

"정말 바보들 아니에요!"

앨리스가 어이없어 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법정에서는 정숙하시요."

하얀 토끼가 외치는 소리에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왕은 안경을 쓰고 누가 떠드는지 보려고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

앨리스는 배심원들이 석판에 '바보'라고 쓰는 모습을 상상했다. 심지어는 '바보'를 쓸 줄 몰라 옆에 있는 배심원에게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석판은 뒤죽박죽이군.'

앨리스는 생각했다.

배심원 중에 하나가 연필로 끽끽 긁는 소리를 내며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앨리스는 그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법정 뒤로 가 그 배심원의 연필을 빼앗아 버렸다.

앨리스가 순식간에 연필을 빼앗자 작고 가엾은 그 배심원(도마뱀 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는 한참 동안 연필을 찾다가 결국 그날의 기록은 손가락 하나로 써야 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는 석판에 글이 써지지 않아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왕이 말했다.

"서기, 고소장을 읽어라."

그러자 하얀 토끼가 트럼펫을 세 번 불더니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하트 여왕님이 온종일 타르트를 만드셨네.

하트 잭이 그 타르트를 훔쳐서

멀리 달아났다네!

"평결을 내리시오."

왕이 배심원을 향해 말했다.

그때 토끼가 황급히 나서며 말했다.

"아직 안 됩니다. 그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첫 번째 증인을 세워라!"

왕이 명령했다.

하얀 토끼가 트럼펫을 세 번 불더니 소리쳤다.

"첫 번째 증인 나오시오!"

첫 번째 증인은 모자 장수였다.

한 손에는 찻잔을, 다른 한 손에는 버터 바른 빵을 들고와 말을 시작했다.

"용서하소서. 폐하! 부름을 받았을 때 다과회가 미처 끝나지 않아 이것들을 들고 오게 되었습니다."

왕이 말했다.

"다 마시고 왔어야지. 너는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느냐?"

모자 장수가 삼월 토끼를 바라보며 말했다. 삼월 토끼는 겨울잠쥐와 팔짱을 끼고 법정에 들어서고 있었다.

"제가 알기로는 3월 14일부터입니다."

삼월 토끼가 말했다.

"아니, 15일."

겨울잠쥐가 말했다.

"16일이지."

왕이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기록하라!"

그러자 배심원들은 석판에 셋이 말한 날짜를 열심히 적더니 그 숫자를 합하여 돈으로 환산했다.

왕이 모자 장수에게 말했다.

"모자를 벗어라!"

"이 모자는 제 것이 아닙니다."

모자 장수가 말했다.

왕이 배심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훔친 것이구나!"

배심원들이 즉시 기록했다.

"전 모자 장수라 제 것은 하나도 없어요. 전부 파는 겁니다."

모자 장수가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여왕이 안경을 쓰고 모자 장수를 매섭게 쏘아보자 모자 장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안절부절못했다.

왕이 말했다.

"겁내지 말고 증거를 대거라. 그렇지 못하면 지금 당장 처형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자 장수를 더 겁나게 했다.

모자 장수는 발을 구르며 불안한 기색으로 여왕의 눈치를 살피더니 버터 바른 빵을 먹는다는 게 너무 긴장해서 그만 찻잔을 깨물고 말았다.

그때 앨리스는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아차리기까지 한참을 어리둥절해 있었다. 앨리스의 몸이 다시 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앨리스는 법정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바꿔 가능하면 더 남아 있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렇게 밀치지 좀 마! 숨을 쉴 수 없잖아."

옆자리에 있던 겨울잠쥐가 투덜거렸다.

앨리스는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키가 커지는 중이거든요."

"이 법정에선 키가 클 권리 따윈 없어!"

겨울잠쥐가 말했다.

앨리스가 용기를 내어 대꾸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당신도 조금씩 크고 있잖아요."

"그래, 하지만 난 너처럼 터무니없지 않아. 정상적으로 크고 있다고!"

이제까지 모자 장수를 매섭게 노려보던 여왕이 겨울잠쥐가 자리를 떠나 반대편으로 가는 순간 병사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지난 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의 명단을 가져오너라!"

가엾은 모자 장수는 그 소리에 놀라 벌벌 떨었는데 급기야는 신고 있던 신발 두짝이 모두 벗겨질 지경이었다.

"증거를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떨든 말든 처형할 것이다!"

왕이 화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러자 모자 장수가 벌벌 떨며 말했다.

"폐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다과회는 일주일도 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얇아진 버터 바른 빵과 반짝거리는 차는......."

"뭐가 반짝 빛난다는 말이냐?"

왕이 물었다.

"그건 차(tea)로 시작하는 말입니다."

모자 장수가 대답했다.

"물론 반짝 빛나는 것은 티(T)로 시작하지 넌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증언을 계속하라!"

왕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모자 장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 후로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고 삼월 토끼가 말했......."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삼월 토끼가 황급히 말했다.

모자 장수가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다시 삼월 토끼가 말했다.

"아니야!"

"삼월 토끼가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건 생략하도록 하거라."

왕이 말했다.

"어쨌든, 겨울잠쥐가 말하기를......."

모자 장수는 말을 계속하면서도 내심 겨울잠쥐도 아니라고 할까 걱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겨울잠쥐는 이미 깊은 잠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 버터 바른 빵을 좀 더 잘랐는데......."

모자 장수가 말을 계속하자 한 배심원이 물었다.

"그런데 겨울잠쥐가 뭐라고 했나요?"

"기억나지 않는데요."

모자 장수가 대답했다.

왕이 엄하게 말했다.

"기억해 내거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처형할 테다!"

가여운 모자 장수는 찻잔과 빵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으며 간절히 말했다.

"불쌍히 여겨 주소서! 폐하!"

"너는 참 말주변도 없구나. 그것이 더 불쌍하구나!"

왕이 말했다.

그때 기니피그 한 마리가 환호성을 질렀는데 법정 경위들이 즉각 진압했다. (진압 과정을 설명하자면 경위들이 기니피그의 주둥이를 끈으로 묶고 큰 자루 속에 머리부터 집어넣은 다음 그 자루 위에 앉았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이런 장면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신문 기사에 종종 재판이 끝날 무렵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경위들에 의해 즉각 진압되었다고 하는 걸 보긴 했지만 말이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게 됐잖아.'

왕이 이어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게 그게 다라면 그만 증인석에서 내려가도 좋다."

모자 장수가 말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어요. 지금도 거의 바닥에 서 있거든요."

왕이 다시 말했다.

"그러면 자리에 앉아라."

그때 또 다른 기니피그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곧 진압되었다.

'이제 기니피그들이 다 진압되었으니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겠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가수들의 명단을 보고 있는 여왕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자 장수가 말했다.

"전 우선 차를 마저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왕이 말했다.

"그래, 이제 가도 좋다!"

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자 장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서둘러 법정을 빠져나갔다.

"저 놈의 목을 쳐라!"

여왕이 집행관에게 말했다. 모자 장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증인을 세워라."

왕이 명령했다.

다음 증인은 공작 부인의 요리사였다.

앨리스는 요리사가 접정에 들어서기 전주터 사람들이 재채기를 하는 것을 보고 다음 증인이 누구인지 잠작할 수 있었다. 요리사는 한 손에 후추 통을 들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증언하라!"

"증언할 수 없습니다."

요리사가 말했다.

왕은 당황하며 하얀 토끼를 바라보았다.

하얀 토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더 엄하게 심문하셔야 합니다."

왕이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야 한다면 할 수 없지."

그러고는 눈이 보이자 않을 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고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타르트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후추로 만듭니다."

요리사가 말했다.

그때 요리사 뒤에서 누군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당밀이오."

여왕이 소리쳤다.

"저 겨울잠쥐를 잡아라! 겨울잠쥐의 목을 쳐라! 법정 밖으로 끌어내라! 꼼짝 못하도록 진압해라! 꼬집어라! 수염을 뽑아버려라!"

한동안 겨울잠쥐를 쫓아내느라 법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법정이 안정을 되찾았을 때는 요리사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한시름 놓은 왕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말라! 다음 증인을 세워라!"

그러고는 여왕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다음 증인의 심문은 당신이 하구려. 난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앨리스는 하얀 토끼가 명단 살피는 것을 지켜보았다.

앨리스는 호기심이 발동해 다음 증인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증언다운 증언은 아직 못 들었는데......."

그떄 하얀 토끼가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앨리스'를 외쳤을 때 앨리스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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