查拉图斯特拉如是说 2部 구원에 대하여

단밤이 | 2023.12.24 13:57:54 댓글: 0 조회: 15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348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구원에 대하여
하루는 차라투스트라가 큰 다리를 건너가고 있을 때 장애인과 거지들이 그를 에워쌌다. 한 곱사등이가 그에게 말했다.
"보시오, 차라투스트라여! 군중도 그대에게서 배우고 그대의 가르침을 믿고 있소. 하지만 군중이 그대를 전적으로 믿게 하려면 아직 한 가지가 필요하오. 그대는 우선 우리 장애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장애인들이 많이 있으니, 그대는 참으로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소! 그대는 보지 못하는 자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고, 다리를 저는 자를 달리게 할 수 있소. 그리고 등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자의 짐도 약간 덜어줄 수 있소. 나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차라투스트라를 제대로 믿게 할 수 있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곱사등이에게서 혹을 떼어내면 그 자의 정신을 떼어내는 격이다. 이는 군중이 가르쳐준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자의 눈을 뜨게 하면, 세상의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보게 되어, 자신을 낫게 한 자를 저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다리를 저는 자를 달리게 하는 자는 그에게 최고의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달리게 되자마자 그의 악덕도 함께 달리기 때문이다. 이는 군중이 장애인에 대해 가르쳐준 것이다. 군중이 차라투스트라에게서 배운다면 차라투스트라라고 군중에게서 배우지 못할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인간들 사이에 온 이후로 이보다 더한 경우도 많이 보았다. 어떤 자에게는 눈이 없고, 어떤 자에게는 귀가 없고, 또 어떤 자에게는 다리가 없고, 혀나 코, 머리가 없는 자들도 있다.
나는 이보다 더 심한 경우와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혐오스러운 경우들을 보았고 보고 있다. 그중 몇 가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말하자면 한 가지만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커다란 눈이나 하나의 커다란 입, 하나의 커다란 배나 또는 그 밖의 어떤 커다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러한 자들을 거꾸로 된 장애인41)들이라고 부른다.
내가 고독한 생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이 다리를 건넜을 때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 귀를 보라! 사람만큼 큰 귀구나!' 보다 자세히 보았더니 정말이지 귀 밑에 가련할 정도로 작고 빈약하고 가냘픈 어떤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참으로 거대한 귀가 작고 가는 줄기위에 얹혀 있었다. 그런데 그 줄기는 바로 인간이었다! 눈에 안경을 썼다면 시샘하는 작은 얼굴마저 알아볼 수 있었으리라. 또한 부풀어 오른 조그만 영혼이 줄기에 달려 대롱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커다란 귀는 하나의 인간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인간, 즉 천재이기도 하다고 군중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군중의 말을 믿지 않고, 이 커다란 귀는 한 가지만 너무 많이 갖고 있는 반면 다른 모든 것은 너무 적게 갖고 있는 거꾸로 된 장애인이라는 나의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곱사등이에게, 곱사등이를 입이자 대변자로 내세운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잔뜩 언짢은 표정으로 제자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참으로 나의 벗들이여, 인간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인간의 조각난 토막이나 팔다리 사이를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전쟁터나 푸줏간에서처럼 인간이 산산히 조각나서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눈을 돌린다 해도 언제나 같은 광경이 아른거린다. 조각난 토막이나 팔다리, 섬뜩한 우연들, 그러나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이 지상에서의 현재와 과거, ㅡㅡ 아! 나의 벗들이여. ㅡㅡ 이것이 내가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오게끔 되어 있는 것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언하는 자, 의지를 가진 자, 창조하는 자, 미래와 미래에 이르는 다리ㅡㅡ 그리고 아, 이 다리 옆에 장애인처럼 서 있는 신세, 이 모든 것이 차라투스트라다.
그대들도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어떤 사람인가?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그리고 그대들은 물음으로써 나 자신에게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대답해주었다.
그는 약속하는 자인가, 아니면 실천하는 자인가? 정복하는 자인가? 아니면 상속받은 자인가? 수확하는 자인가, 아니면 쟁기를 끄는 자인가? 병을 고치는 자인가, 아니면 병 고침을 받는 자인가?
그는 시인인가, 아니면 진실한 자인가? 해방하는 자인가, 아니면 구속하는 자인가? 선한 자인가, 아니면 악한 자인가?
나는 내가 응시하는 저 미래의 파편들인 인간들 사이를 돌아 다닌다.
그리고 파편이자 수수께끼이며 섬뜩한 우연인 것을 하나로 압축하여 한데 모으는 것, 이것이 나의 모든 시며 의도다.
인간이 시인이며 수수께끼를 푸는 자, 우연의 구원자가 아니라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지나간 과거를 구원하고, 모든 "그러했다."를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로 바꾸는 것, 바로 이것을 나는 구원이라고 부른다!
의지ㅡ 해방하는 자와 기쁨을 주는 자는 이렇게 불린다. 나의 벗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그런데 이것도 알아야 한다. 의지 그 자체는 아직 죄수에 지나지 않는다.
실천하는 의지인 의욕은 해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해방하는 자가 아직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뭐라고 불리는가?
"그러했다." 이를 부드득 가는 의지와 더없이 고독한 슬픔이라고 불린다. 의지는 이미 행해진 일에 무력하고, 지나간 모든 일에 악의적인 방관자다.
의지는 돌아가기를 의욕할 수 없다. 시간을 부수지 못하고, 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의지의 더없이 고독한 슬픔이다.
의욕은 해방하는 역할을 한다. 의욕 그 자체는 자신의 슬픔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옥을 조롱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아, 감옥에 갇힌 모든 죄수는 바보가 되고 만다! 사로잡힌 의지도 바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한다.
의지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과거에 있었던 것" ㅡㅡ 이것이 의지가 굴릴 수 없는 돌의 이름이다.
이처럼 의지는 분노와 불만으로 인해 돌을 굴리고, 자신처럼 분노와 불만을 느끼지 않는 것에 복수한다.
해방하는 자인 의지는 이렇게 하여 고통을 주는 자가 되었다. 의지는 자신이 돌아가기를 의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괴로워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복수한다.
시간에 대한 반감, "그러했다." 에 대한 의지의 반감, 바로 이것만이 복수 그 자체이다.
참으로 우리의 의지 안에는 아주 어리석은 것이 살고 있다. 이 어리석음이 정신을 배우게 된 사실이 모든 인간적인 것에 저주가 되었다!
나의 벗들이여, 복수의 정신은 지금까지 인간이 생각해 낸 최상의 성찰이었다. 그리고 고뇌가 있는 곳엔느 언제나 형벌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복수는 스스로를 '형벌' 이라고 부른다. 복수는 거짓말로 자신을 거리낌 없는 양심이라고 속인다.
의지를 가진 자가 돌아가려는 의지를 펼 수 없는 것이 고뇌이므로 의욕 그 자체와 모든 삶은 형벌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정신 위에 구름이 겹겹이 쌓이는 바람에 급기야 망상이 설교하였다. "모든 것은 사라지므로, 그 때문에 모든 것은 사라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자신의 자식을 먹어치워야 한다는 시간의 법칙, 이것이야말로 정의 그 자체다." 망상은 설교했다.
"사물은 정의와 형벌에 따라 윤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오, 사물의 흐름이나 '생존' 이라는 형벌로부터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망상은 설교했다.
"영원한 정의가 있다면 구원이 있겠는가? 아, '그러했다'는 돌을 굴릴 수 없구나. 즉 모든 형벌도 영원해야 한다!" 망상은 설교했다.
"어떠한 행위도 없앨 수 없다. 어떻게 형벌에 의해 행위가 없었던 걸로 될 수 있는가? 생존도 영원히 되풀이되는 행위이자 죄악이어야 한다는 것, 이럿이야말로 '생존' 이라는 행위에서 영원한 것이다!
마침내 의지가 자신을 구원하고, 의욕이 의욕을 상실하지 않는 한." 하지만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망상이 꾸며낸 이 노래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의지는 창조하는 자다." 라고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쳤을 때 나는 그대들을 이 터무니없는 노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모든 '그러했다' 는 하나의 파편이자 수수께끼이며 이미 이 터무니없는 노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모든 '그러했다' 는 하나의 파편이자 수수께끼이며 섬뜩한 우연이다. 창조적 의지가 "그렇게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라고 그에 대해 말할 때까지는. 우연이다. 창조적 의지가 " "그런데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할 것이다!" 라고 그에 대해 말할 때까지는.
하지만 의지가 이미 그렇게 말했단 밀인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의지는 자신의 어리석음이라는 무장을 벌써 벗어버렸는가?
의지는 자기 자신에게 벌써 구원자이자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가 되었는가? 의지는 이를 부드득 가는 복수의 정신을 잊어버렸는가?
그런데 누가 의지에게 시간과 하하해를, 그리고 모든 해화보다 더 높을 것을 가르쳤는가?
의자는 자기 시신에게 벌써 구원자이자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가 되었는가?
의지는 자기 자신에게 벌써 구원자이자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가 되었는가? 의지는 이를 부드득 가는 복수의 정신을 잊어버렸는가?
그런데 누가 의지에게 시간과의 화해를, 그리고 모든 화해보다 더 높은 것을 가르쳤는가?
의지, 힘에의 의지는 모든 화해보다 높은 것을 의욕해야 한다. 그렇지만 의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누가 외지에게 돌아가기를 의욕하는 것도 가르쳤는가?
하지만 이 말을 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는데. 극도로 놀란 사람처럼 보였다. 놀란 눈으로 그는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화살처럼 제자들의 생각과 그 너무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다시 웃으며 혼화하게 말했다,
"침묵하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살기 살기란 쉽지 않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곱사등이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대화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그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왜 우리에게 하는 말과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다른가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놀랄 일인가! 곱사등이에게는 그에게 어울리는 말로 하는 것이다!"
"좋소." 곱사등이가 말했다. "제자들에게는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과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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