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어린 라자

단밤이 | 2024.01.16 22:08:40 댓글: 0 조회: 265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0886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어린 라자
이튿날 아침, 황무지는 안개 속에 모습을 감췄고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이래서야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마사가 너무 바빠서 메리는 좀처럼 말을 걸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메리는 마사를 놀이방으로 불렀다. 마사는 요즘 할 일이 없을 때면 짜는 목 긴 양말을 가지고 왔다.
"무슨 일이세요, 아가씨?" 마사는 앉자마자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깐 할 말이 있으신 모양이여요."
"있어. 울음소리의 정체를 알아냈어." 메리가 말했다.
마사는 뜨개질감을 무릎 위로 툭 떨어뜨린 채, 놀란 눈빛으로 메리를 바라보았다.
"설마!" 마사가 소리쳤다. "그럴라구요!"
"밤에 그 소리를 들었어." 메리가 말했다. "그래서 일어나서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알아보러 나갔지. 콜린의 울음소리였어. 내가 그 애를 찾아냈다고."
마사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맙소사! 메리 아가씨!" 마사는 반쯤 울상이 되어 말했다. "왜 그러셨어요...... 그러면 안된다구요. 아가씨 땜에 제가 곤란허게 될 거여요. 도련님에 대해서 아가씨한테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런데두 저는 아가씨 땜에 혼이 나겠어요. 여기서 쫓겨나면 어머닌 어떻게 해요!"
"네가 여기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거야." 메리가 말했다. "내가 가서 콜린이 좋아했어. 우리는 한참이나 이야기를 했다고. 그리고 콜린이 내가 와서 기쁘다고도 했어."
"도련님이 그랬다구요?" 마사가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셔요? 도련님이 골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가씨는 모르셔요. 도련님은 다 컸는데두 아기처럼 우셔요. 그러다가두 화가 나면 어찌나 크게 소릴 지르는지 우리는 벌벌 떨어요. 도련님은 우리가 꼼짝두 못한다는 걸 아시니깐요."
"콜린은 골을 내지 않았어." 메리가 말했다. "내가 가봐야 한다고 하니, 계속 있으라고 했어. 그리고 질문을 잔뜩 했어. 그래서 발 받침대에 앉아서 인도와 울새와 정원 이야기를 들려줬어. 나를 보내주려고 하지 않던걸. 자기 어머니 그림까지 보여줬어. 콜린에게 자장가를 불러서 재운 후에야 방으로 돌아왔어."
마사는 너무 놀라 숨을 죽였다.
"아무래두 믿을 수가 없어요!" 마사가 반신반의했다. "아가씨는 사자 굴에 들어간 거나 진배없어요. 도련님이 평소에 하던 대로였음, 분명 잔뜩 성을 내구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을 거여요. 낯선 사람들이 자길 쳐다보는 걸 좋아허지 않으셔요."
"콜린은 내가 쳐다봐도 아무 짓 안 했어. 나는 내내 콜린을 봤고, 콜린은 나를 봤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고!" 메리가 말했다.
"어째야 헐지 모르겠어요!" 겁에 질린 마사가 울먹이며 말했다. "메들록 부인이 아시게 되면 제가 규칙을 깨구 아가씨한테 다 말을 했다구 생각하실 거여요. 그러면 전 짐을 싸서 어머니한테로 돌아가야겠죠."
"콜린은 어제 일에 대해서, 메들록 부인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을 거야. 일단은 이 이야기를 비밀로 할 거야." 메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콜린이 그러는데, 사람들이 전부 콜린 기분을 맞춰줘야 한대."
"네, 정말이어요. 어찌나 버르장머리가 고약헌지!" 마사가 앞치마로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콜린은 메들록 부인이 반드시 그래야 한댔어. 콜린은 내가 매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 그러니 콜린이 나를 보고 싶어하면 네가 알려줘."
"저가요!" 마사가 말했다. "그랬다가는 일자리를 잃을거여요. 아무렴 그렇구말구요!"
"네가 콜린이 시킨 일을 하고 모두가 콜린의 말을 따라야 하는 거라면, 네가 일자리를 잃을 리 없잖아." 메리가 조리있게 말했다.
"그러니깐 지금 아가씨 말은." 마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울부짖듯 말했다. "도련님이 아가씨한테 잘 대해주셨다는 얘기여요?"
"내 생각에는, 콜린이 나를 좋아해." 메리가 대답했다.
"그렇다구 허면 아가씨가 도련님 마음을 홀린 게 틀림없어요." 마사가 길게 숨을 쉬며 말했다.
"마법을 썼다는 뜻이야?" 메리가 물었다. "인도에서 살 때 마법에 대해서 들어보기는 했지만, 내가 마법을 일으키지는 못해. 나는 그냥 콜린의 방을 찾아 들어갔어. 그 애를 보고 너무 놀라서 멀뚱히 서서 빤히 바라봤지. 그랬더니 콜린도 몸을 돌려서 나를 봤어. 콜린은 내가 유령이거나 자기가 꿈을 꾸는 줄 알았고, 나는 콜린을 그렇게 생각했어. 한밤중에 서로 누군지도 모른 채 그 방에 단둘이 있으니 정말 이상했어. 조금 있다가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어. 내가 이제 갈까 물었더니, 걔는 그러지 말라고 했고."
"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가?" 마사가 숨을 헉 들이마셨다.
"그 애는 어디가 안 좋아?" 메리가 물었다.
"아무두 확실허게는 몰러요." 마사가 말했다. "주인님은 도련님이 태어나셨을 무렵,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의사 선생님들은 주인님을 정신병원엘 보내야 헌다구 생각허셨죠. 그게 다 전에 말하였다시피 마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여요. 주인님은 도련님을 보려구두 허지 않았어요. 미친 듯이 화를 내시면서, 어차피 자기처럼 등이 굽어버릴 테니깐 죽는 편이 더 낫다구 허셨죠."
"콜린이 등이 굽었어?" 메리가 물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아직은 아니여요." 마사가 말했다. "하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지구 있어요. 어머니는 이 저택에는 골칫거리하구 분노가 하두 많아서 어느 애라두 나빠질 거라구 허셨죠. 다들 도련님 등이 약해질까 걱정을 해서, 늘 등에 신경을 쓰구 있어요. 그래서 늘 누워 계시게 하구, 걷지두 못허게 해요. 한번은 교정기구를 대게 했는데, 어찌나 짜증을 내는지, 오히려 더 상태가 나빠졌지 뭐여요. 얼마 후에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 와서 보시구 그 기구를 떼버리라구 하셨어요. 그 선생님은 다른 의사 선생님들한테 꽤나 심헌 말을 허셨죠. 뭐냐, 정중한 태도루 그러긴 했지만요. 그분은 도련님한테 약을 너무 먹이구 너무 제멋대로 하게 둔다구 허셨어요."
"내가 보이게, 콜린은 정말 제멋대로인 아이야." 메리가 말했다.
"세상에서 젤로 고약헌 아이일게 분명해요." 마사가 말했다. "도련님이 많이 아프지 않다는 말은 아니여요. 도련님은 기침허구 감기를 달구 살아서,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돌아가실 뻔두 했어요. 한번은 류머티스 열병에 걸렸구, 또 한번은 장티푸스에 걸렸어요. 에휴! 메들록 부인이 그때 기겁하였죠. 도련님이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니깐, 부인은 간호사하구 이야기를 허다 도련님이 아무것두 모르는 줄 알구 이렇게 말했지 뭐여요. '이번에는 확실히 돌아가실 거야. 그게 본인을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최선이지.' 그러구 도련님을 봤는데,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부인을 빤히 보구 계셨지요. 정신이 부인만큼이나 말짱해서요. 부인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갈피두 못 잡구 있는데, 도련님이 부인을 빤히 보며 그러셨어요. '내게 물 좀 갖다 주고, 그만 떠들어.'"
"콜린이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해?" 메리가 물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신선한 공기를 안 마시구 방에 누워서 그림책만 보구 약만 먹는데, 살 수 있을 거라구 생각헐 이유가 뭐냐구 하셔요. 도련님은 허약하구, 고생스럽게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하셔요. 게다가 걸핏하면 감기에 걸려서, 밖에 나가면 몸이 아프다구 말허시죠."
메리는 앉아서 난롯불을 가만히 보았다.
"궁금해." 메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콜린이 정원에 나가서 꽃과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건강에 정말 나쁠지. 나는 덕분에 건강해졌잖아."
"도련님이 최악의 발작을 일으킨 건." 마사가 말했다.
"장미꽃이 만발한 분수 옆에 도련님을 모시구 나가려구 했을 때였어요. 도련님은 신문에서 '장미열'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 얘길 읽으셨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재채기를 시작하며 그 병에 걸린 것 같다구 허셨죠. 하필 그때, 새로 들어온 정원사가 규칙을 전혀 모르구 지나가다가 도련님을 신기한 듯 바라본 거여요. 도련님은 불같이 화를 냈구, 자기가 곧 곱사등이가 될 거라서 그 정원사가 빤히 바라봤다구 했죠. 울구불구 허다가 그만 열이 나서 밤새 끙끙 앓았어요."
"콜린이 내게 화를 내면, 난 다시는 그 애를 보러 가지 않을 거야."
"도련님이 아가씨를 보구 싶다 그러면 아기씰 보셔야 해요. 우선 그 점을 명심허는 게 좋겠네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 울려서, 마사는 뜨개질감을 돌돌 말았다.
"분명 간호사가 도련님을 잠시 보살피라구 부른 거여요." 마사가 말했다. "부디 도련님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마사는 10분 정도 방을 비웠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맙소사, 아가씨가 도련님을 홀리셨어요." 마사가 말했다. "도련님이 그림책 몇 권을 갖구 소파에 앉아 계시더라구요. 간호사에게는 여섯 시까지 나가 있으라구 하셨어요. 저는 옆방에서 대기하라구 하시구요.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도련님이 저를 불르셨어요. '메리 레녹스를 불러와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명심해.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면 안 돼.' 아가씨, 얼른 가보는 게 좋겠어요."
메리 역시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가고 싶었다. 디콘을 보고 싶은 것만큼 콜린을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콜린도 얼른 보고 싶었다.
콜린의 방으로 들어가자, 벽난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낮에 다시 보니, 정말 아름다운 방이었다. 바닥에 딸린 깔개들과 벽에 걸린 양탄자들, 그림들, 책들의 색이 알록달록 풍요로워서, 하늘이 회색으로 우중충하고 비가 쏟아져도 방 안 분위기는 화사하고 포근했다. 콜린은 흡사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벨벳 가운을 입고 양단을 씌운 커다란 쿠션에 기대 앉아 있었다. 두 볼은 발그레 했다.
"어서 와." 콜린이 말했다. "오전 내내 네 생각을 했어."
"나도 네 생각을 했어." 메리가 대답했다. "마사가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몰라. 마사는 자기가 나한테 네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서 메들록 부인이 자길 이 저택에서 쫓아낼 거래."
콜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가서 마사를 여기로 데려와." 콜린이 말했다. "마사는 옆방에 있어."
메리가 가서 마사를 데려왔다. 가여운 마사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콜린은 찌푸린 얼굴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너는 내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콜린이 물었다.
"저는 도련님 기분을 맞춰드려야 해요." 마사가 얼굴이 벌게져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메들록 부인은 내 기분을 맞춰줘야 하지?"
"모두가 그래야 하죠." 마사가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메리 양을 내 방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 걸 메들록 부인이 알게 되었다고 해서 너를 어떻게 내보낼 수 있을까?"
"제발 메들록 부인이 절 내보내게 하지 마셔요, 도련님." 마사가 간청했다.
"메들록 부인이 그런 말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메들록 부인을 내보낼 거야." 작은 크레이븐 주인님이 근엄하게 말했다. "메들록 부인은 그렇게 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야. 장담해."
"고맙습니다. 도련님." 얼른 절을 하며 말했다. "인제 맡은 일을 할게요, 도련님."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콜린은 더 근엄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챙길 거야. 자, 이제 가봐."
마사가 문을 닫고 나가자 콜린은 메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메리가 콜린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빤히 보는 것이 아닌가.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야?" 콜린이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두 가지를 생각하던 중이었어."
"뭔데? 앉아서 이야기해줘."
"첫 번째는 이거야." 메리가 등받이 없는 커다란 의자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 인도에서 살 때 어떤 소년을 봤는데, 그 애는 라자(과거 인도의 국왕이나 왕자 ㅡ 옮긴이)였어. 라자는 루비와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온몸에 주렁주렁 달아 치장했어. 그 아이는 방금 네가 마사에게 말한 것과 똑같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어. 모두 그 애가 무슨 말을 하건 따라야 했어. 그것도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을 거야."
"라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 콜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네가 하던 두 번째 생각을 말해봐."
"나는 말이지." 메리가 말했다. "너는 디콘과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
"디콘이 누구야?" 콜린이 말했다. "진짜 이상한 이름이네."
메리는 디콘에 대해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밀 정원을 쏙 빼고 디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될터였다. 메리는 마사가 디콘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게다가 자신도 디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면 디콘이 더 가까이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디콘은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달라. 인도 원주민들이 뱀을 부리는 것처럼, 디콘은 여우들이며 다람쥐들, 새들을 끌어들여. 그 애가 아주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피리를 불면 야생의 동물들이 들으러 와."
콜린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콜린이 갑자기 그중 한 권을 잡아당겼다.
"이 책에 뱀을 부리는 마술사 그림이 있어." 콜린이 탄성을 지르듯 말했다. "와서 한번 봐."
그 책은 몹시 화려한 그림들이 그려진 아름다운 책이었는데, 콜린이 여러 그림 중 하나를 펼쳤다.
"그 애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콜린이 흥분해서 물었다.
"디콘은 제 피리를 불고, 동물들은 그 소리를 들을 뿐이야." 메리가 설명했다. "하지만 디콘은 그걸 마술이라고 부르지 않아. 디콘은 늘 황무지에서 살다시피 하기 때문에, 동물들의 습성을 잘 알아서 그렇대. 디콘은 자기가 새나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가끔 든대. 그만큼 동물들을 좋아하는 거야. 디콘이 울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나 보더라. 그애와 울새는 부드럽게 지저귀는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어."
콜린이 쿠션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눈이 점점 커지고, 두 볼도 점점 붉어졌다.
"디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줘." 콜린이 말했다.
"그 애는 새들의 알과 둥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어." 메리가 말했다. "그리고 여우들과 오소리들과 수달들이 어디 사는지 다 알아. 그렇지만 그 사실을 비밀로 해. 그래야 다른 애들이 동물들 은신처를 찾아내 겁주는 일이 없을 테니까. 디콘은 황무지에서 자라거나 사는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그 애도 황무지를 좋아해?" 콜린이 말했다. "그렇게 넓고 황량하고 따분한 곳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황무지는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야." 메리가 반박했다. "그곳에서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식물들이 몇천 포기나 자라. 또 몇천 마리 작은 동물들이 둥지를 짓고, 은신처와 굴을 파고, 서로에게 짹짹거리고 지저귀고 끽끽거리지. 모두 늘 바쁘고, 땅속에서건 나무나 히스 관목 위에서건 항상 재미있게 지내. 황무지는 그런 식물과 동물의 세상이야."
"그걸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콜린이 메리를 볼 수 있게 팔꿈치로 몸을 받치며 말했다.
"실은 나도 황무지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 메리가 문득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컴컴한 밤에 그곳을 마차로 달렸을 뿐이지. 나는 끔찍한 곳이라 생각했어. 황무지에 대해 처음 들려준 사람은 마사였어. 그다음이 디콘이었지. 디콘이 황무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는 실제로 꽃들이 보이고 동물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 거야. 게다가 해가 빛나는 날 히스 들판에 서서 꿀처럼 달콤한 가시금작화 향기를 맡는 느낌이 들 거야. 주위는 온통 윙윙거리는 벌과 나풀거리는 나비 천지일 테고."
"네가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보지 못할걸." 콜린이 초조한 듯 말했다. 콜린은 멀리서 난생처음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방에만 있으면 당연히 못 보지." 메리가 말했다.
"나는 황무지에 못 나가." 콜린이 분하다는 듯 말했다.
메리는 1분 정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큰맘 먹고 이렇게 말했다.
"너도 갈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콜린이 깜짝 놀란 듯 움찔했다.
"황무지에 나간다고? 무슨 수로? 나는 죽을 텐데."
"그걸 어떻게 알아?" 메리가 매정하게 말했다. 메리는 콜린이 죽음에 대해 말하는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정심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콜린이 곧 죽을 것이라고 자랑을 한다고 느껴졌다.
"어, 내가 기억하는 한 늘 그런 말을 들었다니까." 콜린이 뚱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은 항상 그런 이야기를 속삭이면서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다들 내가 죽기를 바라는거야."
메리 아가씨는 몹시 심사가 뒤틀렸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들이 그러길 바란다면." 메리가 말했다. "나는 오히려 안 죽을 거야. 도대체 네가 죽기를 누가 바란다는 거니?"
"하인들이지. 그리고 당연히 크레이븐 선생님도. 왜냐하면 가난하게 사는 대신 미슬스웨이트를 상속받아서 부자가 될 테니까. 차마 말은 그렇게 하지 안하아. 하지만 내가 몸이 더 나빠질 때마다 기분이 좋아 보여. 내가 장티푸스에 걸렸을때, 선생님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어. 아버지도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고."
"고모부가 그렇게 생각하실 리 없어." 메리가 꽤 완강하게 말했다.
그 말에 콜린이 고개를 돌려 메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 콜린이 되물었다.
그러더니 다시 쿠션에 기대 누워,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었다. 그 후로 침묵이 꽤 길게 이어졌다. 두 아이는 아이들이라면 평소에 생각하지 않을 이상한 것들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난 런던에서 온 저명한 의사 선생님이 좋아.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그 철로 도니 기구를 떼버리라고 했잖아." 마침내 메리가 말했다. "그 선생님이, 네가 곧 죽을 거라고 했어?"
"아니."
"그러면 뭐라고 하셨어?"
"그 의사는 속삭이지 않더라." 콜린이 대답했다. "내가 속삭이는 소리를 싫어하는 걸 알았나 봐. 그 선생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이렇게 말했지. '이 아이는 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기분을 불어넣어 주세요.' 꼭 화난 사람 같더라."
“네게 그런 기분을 불어넣어 줄 사람을 알아.” 메리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메리는 이 일을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고 싶었다. “디콘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 애는 항상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절대 죽거나 아픈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 디콘은 항상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는 새를 관찰해.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그곳에서 자라는 것들을 살펴보거나. 그 애의 눈은 놀라울 정도로 동그랗고 눈동자는 파래. 주위를 둘러볼 때면, 눈이 아주 동그래져. 그리고 웃을 때면, 커다란 입으로 하하하 하고 웃어. 두 볼은 빨게. 꼭 체리 같아.”

메리는 의자를 소파에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반달처럼 휘는 커다란 입과 크게 동그랗게 뜬 두 눈을 떠올리자, 메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 말 잘 들어.” 메리가 말했다. “우리 이제 죽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나는 그 이야기가 싫어. 사는 이야기를 해. 디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거야. 그런 후에 네 그림책들을 보자.”

그것은 메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다. 디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황무지에 대해, 시골집과 그 집에서 일주일에 16실링으로 먹고 사는 열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야생 조랑말들처럼 황무지 풀밭에서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또 디콘의 어머니와 줄넘기, 해가 뜬 황무지, 시커먼 땅을 뚫고 나온 연두색 새싹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모든 사람과 자연은 너무나 생명력이 넘쳤기 때문에, 메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을 많이 했다. 콜린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말하고 들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러듯이, 두 아이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배꼽을 잡고 웃는데, 고집불통에 자그마하고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여자아이와 자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남자아이가 아니라, 평범하고 건강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열 살짜리의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두 아이가 어찌나 즐겁게 놀았는지, 그림책을 보기로 한 것도 잊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두 아이는 벤 웨더스태프와 울새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콜린은 등이 약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는지 소파에 똑바로 앉아 있다가, 별안간 뭔가를 기억해냈다.

“너 그거 알아?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어.” 콜린이 말했다. “우리는 사촌이야.”

지금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도 이 빤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찌나 이상한지, 두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실컷 웃었다. 두 아이는 무슨 일에도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즐겁게 웃고 있는 데, 별안간 문이 열리며 크레이븐 선생과 메들록 부인이 들어왔다.

의사 선생은 말 그대로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선생이 잘못하여 메들록 부인에게 부딪혔기 때문에 부인은 넘어질 뻔했다.

“맙소사!” 불쌍한 메들록 부인은 거의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어 소리쳤다. “아이고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야?” 의사 선생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러자 메리는 어린 라자가 또 떠올랐다. 콜린은 놀란 의사나 기겁한 메들록 부인에게는 눈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대답했다. 콜린은 늙은 고양이와 개가 방으로 들어와서 살짝 방해를 받았거나 놀랐다는 정도로 보였을 뿐이다.

“이 아이는 내 사촌 메리 레녹스예요.” 콜린이 말했다. “여기 와서 이야기를 하라고 내가 불렀어요. 나는 얘가 좋아요. 얘는 내가 부를 때마다 와서 내게 이야기를 해야 해요.”

크레이븐 선생이 나무라듯 메들록 부인을 바라보았다.

“오, 선생님.” 부인이 다급히 말했다.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요. 이 저택에는 함부로 입을 놀릴 하인이 하나도 없답니다. 하인들 모두 지시 사항을 잘 지키거든요.”

“아무도 메리에게 말하지 않았어.” 콜린이 말했다. “메리가 내 울음소리를 듣고 스스로 나를 찾아낸 거야. 나는 메리가 와서 기뻐. 쓸데없는 행동은 말아줘, 메들록.”

메리가 보기에 크레이븐 선생은 전혀 기쁘지 않았지만, 굳이 환자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선생은 콜린 옆에 앉아서 맥을 짚었다.

“너무 흥분을 할까 봐 걱정이구나. 흥분은 네게 좋지 않단다, 얘야.” 의사 선생이 말했다.

“메리가 가버리면 흥분할 거예요.” 이렇게 대답하는 콜린의 두 눈이 위험스럽게 반짝거렸다. “나는 더 좋아졌어요. 메리 덕분에 좋아진 거예요. 간호사에게 메리와 내가 마실 차를 가져오라고 해요. 우리는 같이 차를 마실 거니까.”

메들록 부인과 크레이븐 선생은 곤란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손을 쓸 도리가 없는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도련님이 훨씬 좋아 보여요, 선생님.”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그런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도련님은 아가씨가 이 방에 오시기 전인 오늘 아침부터 더 좋아 보이셨어요.”

“메리는 지난밤에 이곳에 왔어. 그리고 한참이나 여기에 있었고. 메리가 힌두스탄 말로 노래를 불러줬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어.” 콜린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몸 상태가 평소보다 좋았어. 배도 고팠고. 지금은 차를 마시고 싶어. 간호사에게 말해, 메들록.”

크레이븐 선생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간호사가 들어오자 짤막하게 지시 사항을 남기더니, 콜린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잠깐 했다.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아주 쉽게 피곤해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메리가 보기에 사촌에겐 잊어서는 안 되는 불편한 사실들이 잔뜩 있는 것 같았다.

콜린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새까만 속눈썹이 난 기묘한 두 눈으로 크레이븐 선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걸 잊고 싶어요.” 콜린이 마침내 말했다. “메리는 그런 걸 잊게 만들어줘요. 그래서 메리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

방을 나서는 크레이븐 선생은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선생은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힐끔 보았다. 메리는 의사 선생이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뻣뻣하고 말없는 아이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의사 선생은 메리의 어떤 점이 콜린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콜린은 정말로 평소보다 더 밝아 보였다. 선생은 복도를 걸어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항상 배도 안 고픈데 날더러 뭘 먹으라고 해.” 간호사가 차를 가져와 소파 옆 테이블에 올려두자 콜린이 말했다. “자, 네가 먹으면 나도 먹을게. 저 머핀들은 무척 맛있고 따끈따끈해 보여. 이제 라자에 대해서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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