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1부 7~8

나단비 | 2024.01.24 07:40:36 댓글: 0 조회: 121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2698
제7장
 
 
 
베넷의 재산은 연간 수입이 2천 파운드 정도 되는 토지가 전부였는데, 아들 없이 딸들만 있었기 때문에 먼 친척 앞으로 상속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베넷 여사의 재산은 여자 입장으로는 많은 편이었지만 남편이 가진 재산의 부족분을 채워주기에는 모자랐다. 베넷 여사의 아버지는 메리튼에서 변호사였는데 그녀에게 4천 파운드의 재산을 물려주었다.

그녀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아버지 밑에서 서기로 근무하던 필립스라는 사람과 결혼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또 남동생도 하나 있었는데, 그는 런던에서 괜찮은 사업을 하고 있었다.

롱본은 메리튼에서 1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베넷의 딸들은 1주일에 서너 번씩 거기 사는 이모 집에 놀러 가거나 모자가게에 들르곤 했다. 가장 어린 딸인 캐서린과 리디아가 메리튼에 가장 자주 놀러 다녔다. 그녀들은 언니들보다 아직 철이 없어서 별로 할 일이 없을 때는 메리튼에 들러서 몇 시간씩 놀다가 저녁 시간에 화젯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낙이었다. 시골 소식이라 그다지 특별히 관심을 둘 만한 것은 없었지만 그녀들은 이모 집에 놀러 가서 무언가 얘깃거리를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군부대가 겨우내 메리튼에 머물면서 그곳이 본부가 되었기 때문에 좋은 얘깃거리가 되었다.

필립스 여사의 집을 방문하는 게 가장 흥미로운 일과가 된 것이다. 장교들의 이름이나 그들의 일과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거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직접 만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모부인 필립스가 장교들을 방문해서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갖고 왔다. 그래서 그녀들은 이제 장교들에 대해서만 얘기하게 되었다. 그녀들의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는 빙리의 막대한 재산 같은 것은 장교들의 군복에 비하면 아무 가치도 없어 보였다.

어느 날 아침에 그녀들이 그런 주제로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베넷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희들 하는 말을 듣자니 이 나라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자애들로 보이는구나. 난 너희들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줄 몰랐는데 이젠 확신할 수 있겠다.”

캐서린은 기가 죽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리디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카터 대위가 다음 날 런던으로 가기 때문에 그날 중으로 그를 만나봐야겠다고 하면서 그 군인을 칭찬해댔다.

“당신, 어쩌면 자식들한테 어리석다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어리석은 건 우리 애들이 아니라 다른 집 애들이라고요.” 베넷 여사가 응수했다.

“우리 애들이 어리석다는 점을 알고는 있어야지.”

“우리 애들은 아주 똑똑하다고요.”

“우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게 이것밖에 없어 다행이군.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일치하기를 바라지만, 내가 우리 애들을 아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점만은 당신하고 차이가 있군.”

“애들이 우리 어른들만큼 성숙한 생각을 할 거라고 기대하세요? 쟤들이 크면 우리처럼 군복 입은 사람들은 쳐다도 보지 않을 거예요. 나도 옛날엔 붉은 옷을 멋지게 입은 군인들이 좋아 보인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가슴 한구석엔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1년에 수입이 한 5, 6천 파운드 정도 되는 어떤 멋지고 젊은 장교가 우리 애들 중에서 하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난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저번에 윌리엄 경 집에서 보니 포스터 대령도 아주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리디아가 나섰다. “엄마, 이모가 그러는데, 포스터 대령하고 카터 대위가 예전만큼 왓슨 양 집에 자주 가지 않는대요. 지금은 이동도서관 앞에 자주 서 있다고 그래요.”

베넷 여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하인 하나가 들어와서 제인에게 서신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네더필드에서 온 것이었고, 그 하인은 답장을 받아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베넷 여사는 좋은 소식을 기대하면서 반색을 했고 제인에게 빨리 읽어달라고 닦달했다.

“제인, 어디서 온 거니? 무슨 내용이야? 뭐라고 썼어?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캐롤라인한테서 온 거예요.” 제인이 대답하고서는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나의 친구에게

 오늘 여기 와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 집안이 조용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두 여자는 항상 말다툼만 하고 지내거든요. 이 서신을 받는 대로 즉시 와주세요. 우리 오빠하고 남자들은 장교들하고 외식하러 나갈 거예요.

캐롤라인 빙리
 


“장교들하고! 그렇담 왜 이모가 그 말을 안 했을까?” 리디아가 소리 질렀다.

“남자들은 다 나가버린다고? 정말 운이 없구나.” 베넷 여사가 말했다.

“마차 타고 가게 해주실 거죠?” 제인이 물었다.

“안 돼. 말 등에 타고 가는 게 낫겠다.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구나. 그러면 그 집에 저녁 내내 머물러 있어야 할 테니까.”

“좋은 생각이네요. 그 사람들이 마차로 제인을 여기까지 데려다주진 않을 거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맞아. 그런데 남자들은 빙리 마차를 타고 메리튼까지 갈 테고, 허스트 부부한테는 마차가 없을 테니까.”

“난 마차로 가고 싶다고요.”

“그치만 아버지가 말을 여러 마리 내주실 수 없을 거야. 농장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여보, 그렇지 않아요?”

“농장에선 지금 말이 부족하지.”

“오늘 노는 말이 여러 마리 없다면 어머니 목적이 달성되는 거겠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결국 제인은 농장에 남아도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말 등에 앉아서 가야 했다. 어머니는 날씨가 나쁠 징조가 보여서 속으로 즐거워하면서 딸을 배웅했다. 베넷 여사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인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언니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베넷 여사는 즐거워했다. 비는 저녁 내내 끊임없이 내렸고 제인은 이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정말 생각 잘했군!” 베넷 여사는 소리치면서 기뻐했다. 마치 자기가 비를 내리게 만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기 전까지 베넷 여사는 얼마나 좋은 일이 닥쳤는지 알지 못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네더필드에서 온 하인 하나가 엘리자베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쪽지를 전달했다.
 

리지

 어제 비를 흠뻑 맞았더니 오늘 아침에 몸이 아주 말을 안 듣는구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 몸이 좋아지기 전까지는 집에 못 돌아가게 하는구나. 존스 씨도 보아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 그 사람이 여기 왔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놀라지 마. 목이 아프고 머리가 좀 아픈 것 외에는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엘리자베스가 편지 읽기를 마치자 베넷이 말했다. “당신, 딸이 만약 병에 걸려서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모두 당신 책임이오. 당신이 하라는 대로 빙리를 쫓아다니다가 그렇게 되는 거니까.”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요? 감기 때문에 죽는 사람 봤어요? 거기 사람들이 잘 보살펴줄 테고, 제인이 거기 있는 동안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마차로 갈 수만 있다면 내가 가서 어떻게 됐는지 보겠는데…….”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서, 마차를 타고 갈 수 없더라도 언니한테 가겠다고 작정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탈 줄도 몰랐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 생각을 말해주었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다니! 진흙탕 속에서 갔다가는 그 집에 발도 들여놓지 못할 거야.” 어머니가 소리 질렀다.

“그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거예요.”

“마차를 내달라는 소리니?” 아버지가 물었다.

“아니에요. 걸어가도 상관없어요. 거리가 좀 멀다고 그만둘 수 있겠어요? 3마일만 걸으면 되는데. 저녁 식사 시간 전에는 돌아올 거예요.”

“언니 생각이 좋기는 하지만, 모든 건 머리로 해결해야 해. 어떤 행동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요구 조건이 있어야 하는 거지.” 메리가 말했다.

“우리가 메리튼까지 동행해줄게.” 캐서린과 리디아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녀들은 함께 출발했다.

“서둘러 간다면 카터 대위가 나가버리기 전에 잠시라도 볼 수 있을 거야.” 그녀들이 걸어가는 도중에 리디아가 말했다.

메리튼에서 그녀들은 헤어졌다. 가장 나이 어린 두 동생은 한 장교 부인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엘리자베스는 혼자서 길을 재촉하여 빠른 걸음으로 들길을 걸어갔다. 들길에 쳐놓은 울타리와 흙탕길을 지나치며 결국 그 저택에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발바닥이 퉁퉁 부었고 양말은 더러워졌으며 얼굴은 화끈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제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 모두 놀라워했다. 그녀가 그처럼 이른 시간에, 그리고 궂은 날씨에 혼자서 3마일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루이사와 캐롤라인에게는 믿기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람들이 속으로 자기를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예바르게 대해주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빙리가 가장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다씨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허스트는 전혀 말이 없었다. 다씨는 엘리자베스가 운동을 해서 얼굴이 달아오른 것을 찬양하다가는 그녀가 혼자서 그렇게 먼 길을 올 이유가 있었는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허스트는 아침 식사에만 관심이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언니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반가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제인은 잠도 잘 못 잤고 아침에 깨어나서도 열이 아주 높았으며 침실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즉시 제인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제인은 가족이 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걱정을 끼치고 불편을 줄까 봐 서신에 써놓지는 않았는데, 엘리자베스가 와주어서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여 대화는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캐롤라인이 방에서 나갈 때 친절하게 돌봐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마디 할 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혼자서 언니를 돌보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빙리 집안의 자매들이 들어왔다. 엘리자베스는 그녀들이 제인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을 갖고서 돌보아주는 것을 보고는 그녀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의사가 와서 환자를 진단했다. 그는 환자에게 감기가 심하게 들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면서 침대로 돌아가서 약을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제인은 열이 심했고 머리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 충고에 기꺼이 따랐다. 엘리자베스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언니를 지켰으며, 그 집안의 자매들도 거의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남자들이 다 외출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사실 다른 할 일도 없었다.

시계가 3시를 쳤을 때 엘리자베스는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하자 캐롤라인이 마차로 가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엘리자베스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는데 제인이 자기 동생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자 캐롤라인은 마차를 내주려는 생각을 철회하고 엘리자베스에게 네더필드에서 더 머물러주기를 요청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요청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하인 한 사람을 롱본으로 보내서 그녀가 거기에 더 머물러 있겠다는 소식을 전하고 옷가지를 가져오도록 했다.
 



제8장
 
 
 
5시가 되었을 때 두 명의 여자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제인이 있는 방에서 나갔고 6시 반이 되자 엘리자베스에게 저녁 식사를 하라는 전갈이 왔다. 엘리자베스가 식사하는 곳으로 들어서자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빙리의 염려하는 질문이 가장 두드러졌는데, 거기에 대해서 엘리자베스는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가 없었다. 제인은 별로 나아진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자매는 그 소리를 듣고서는 자기들이 애달파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지독한 감기가 걸린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며 자기네들이 만약 감기에 걸리면 얼마나 곤경에 빠질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제인이 면전에 없을 때 그녀들이 보이는 무관심에 대해서 알아차리고는 자신이 원래 그녀들을 싫어했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빙리만이 엘리자베스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제인에 대해서 걱정한다는 점은 명백해 보였고, 그 점이 엘리자베스에게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불청객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 빙리만이 관심을 갖고 그녀를 상대해주었다. 캐롤라인은 다씨하고만 얘기를 나누었고 루이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허스트는 오직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카드놀이에만 관심이 있었고, 엘리자베스가 단순하게 조리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자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제인에게로 돌아갔고, 캐롤라인은 엘리자베스가 자리를 뜨자마자 그녀를 헐뜯기 시작했다. 매너도 좋지 않고 오만함과 뻔뻔함으로 뭉쳐 있으며 말도 잘 못하고 멋도 낼 줄 모르며 얼굴도 아름답지 않다고 했다. 루이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라 이렇게 응수했다.

“간단히 말해서 걷는 데만 소질이 있지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고. 오늘 아침에 그 꼴로 나타난 걸 난 잊어버리지 못할 거야. 난폭한 여자 같아 보이더라고.”

“정말이야, 언니. 난 가만히 있느라고 혼났어. 도대체 여길 왜 왔는지 모르겠어. 자기네 언니가 감기에 걸렸다고 온 들판을 쏘다녀야겠냐고. 머리는 요란하게 헝클어져선.”

“속치마는 또 어떻고. 보니깐 완전히 진흙으로 뒤범벅돼 있더라. 겉치마로 가리려고 했지만 그게 감춰지나.”

빙리가 응수했다. “누나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어. 그치만 내가 보기에 그런 건 아무것도 아냐. 아침에 여기 왔을 땐 아주 멋있게 보이더라고. 난 더러운 속치마 같은 건 눈에 띄지도 않았어.”

캐롤라인이 말했다. “다씨 오빠는 봤지? 오빠 동생이 그런 추태를 부렸다면 가만 안 있었겠지?”

“물론 난 그런 걸 싫어하지.”

“그렇게 발을 빠져가면서 3마일이나 걸어오다니, 말이 되는 거야? 그것도 혼자서 말이지. 도대체 그렇게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대단한 독립심을 보여주려는 걸까, 아니면 격식 같은 건 무시하는 여자라는 걸 선전하려는 걸까?”

“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좋은 일이지.” 빙리가 말했다.

캐롤라인이 말했다. “다씨 오빠는 그런 걸 보고 그 여자 눈에서 느꼈던 매력이 달아나버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아냐, 전혀 그런 건 아니라고. 오히려 운동으로 눈이 더 아름답게 반짝이던 것 같던데.” 다씨가 대답했다.

잠시 동안의 적막이 흐른 뒤에 루이사가 말했다.

“난 제인 베넷만은 좋게 보고 있어. 정말 괜찮은 여자야. 좋은 곳으로 시집도 갔으면 하고 바라지만,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식구들이 다 천해 보이니 결혼 잘하기는 틀린 거 같아.”

“이모부가 메리튼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맞아.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런던 후진 곳에서 사나 보더라고.”

“정말 굉장한 거 아냐?”라고 말하면서 두 자매는 크게 웃어댔다.

“별 볼일 없는 외삼촌이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자매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 빙리가 두 자매를 나무랐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좋은 남자하고 결혼할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겠지.” 다씨가 말했다.

이 말에 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자매는 다씨의 말에 동의하면서, 엘리자베스의 천한 가족이나 친척들을 빈정대는 재미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가련한 마음이 되살아났는지 그녀들은 식사하는 홀에서 나와 제인이 있는 방으로 갔고, 거기서 차가 준비되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나갈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 제인의 상태가 여전히 아주 안 좋았으므로 엘리자베스는 언니 곁을 잠시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저녁 늦게 언니가 잠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래 층으로 내려갔다. 응접실에서는 카드놀이가 벌어져 있었는데 그녀 자신도 거기서 함께 어울리도록 요청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거액의 돈을 거는 모습을 보고는 언니한테 다시 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거절했고, 그냥 독서나 하면서 잠깐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허스트가 의아스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드놀이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신다고요? 정말 특이한 분이시군요.”

“엘리자베스 양은 카드를 경멸한다고요. 대단한 독서가이신가 봐요. 다른 거는 취미가 없으니.” 캐롤라인이 말했다.

“전 그런 칭찬의 말도, 비난의 말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전 대단한 독서가도 아니고 다른 데 취미도 많은 사람이거든요.” 엘리자베스가 항변했다.

“언니를 간호하는 정성이 대단하시군요. 언니가 빨리 나아서 두 분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빙리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빙리가 잘 대해주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말한 다음 몇 권의 책이 놓여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갔다. 빙리는 서재에 있는 다른 책도 갖다주겠다고 제안했다.
 
“책이 많다면 엘리자베스 양에게도 좋고 저한테도 좋을 텐데 제가 책 읽는 데는 게으르다 보니 가진 책이 많지 않아요. 그렇긴 해도 제가 읽을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갖고 있어요.”

엘리자베스는 그 방 안에 있는 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난 아버지가 왜 책을 조금밖에 물려주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어. 다씨 오빠는 펨벌리에 굉장한 서재를 갖고 있어서 좋겠다.” 캐롤라인이 말했다.

“그 서재는 몇 세대 동안 이어져 내려온 거니까 좋을 수밖에 없지.” 다씨가 말했다.

“거기에 다씨 오빠도 많이 보탰잖아. 항상 책을 사 보니까.”

“서재를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

“소홀히 하다니? 다씨 오빤 그 서재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릴 거야. 찰스 오빠, 오빠도 집을 사게 되면 다씨 오빠 집 반만이라도 아름답게 꾸미면 좋겠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근데 다씨 오빠가 사는 펨벌리 근처에다 집을 사면 좋겠어. 그리고 다씨 오빠 집을 모델로 삼아서 꾸미고. 우리나라에서 더비셔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고.”

“당연하지. 만약에 다씨가 펨벌리 집을 팔면 내가 사버릴 수도 있지.”

“좀 가능성이 있는 말을 하라고, 오빠는.”

“만약에 펨벌리를 갖고 싶다면 모방하기보단 아예 사버리는 게 더 낫겠지.”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말에 너무 정신이 빠져 있어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놓아버리고는 카드놀이를 하는 곳으로 가서 빙리와 그의 누나 사이에 자리 잡고 카드놀이를 구경했다.

“다씨 오빠 동생은 올봄보다 키가 더 자랐어? 나만큼 컸을지도 모르겠네?” 캐롤라인이 다씨에게 물었다.

“많이 컸지. 아마 엘리자베스 베넷 양만큼은 클 거야. 아니 더 클지도 모르겠어.”

“오랫동안 못 만나서 보고 싶군. 그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만나본 적이 없어. 교양도 있고 그 나이에 어쩜 그렇게 골고루 갖출 수가 있는지. 피아노도 정말 잘 치고.”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한 교양을 갖춘다는 게 정말 놀랍지.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빙리가 말했다.

“다른 여자들도 다 교양을 갖췄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그래, 모든 여자가 다 그렇다고. 모두 그림도 그릴 줄 알고 수도 놓을 줄 알고 핸드백도 짤 줄 알아. 그런 걸 못하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사람들한테 조롱받는 여자도 본 적이 없고.”

다씨가 말했다. “교양을 갖춘 여자에 대해 자네가 한 말은 일리가 있어. 핸드백도 짜고 수도 놓을 줄 아는 여자가 교양 있는 여자라는 점은 맞아. 근데 난 자네가 모든 여자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아.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진정으로 교양을 갖춘 여자는 여섯 명도 되지 않는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씨 오빠.” 캐롤라인이 맞장구쳤다.

“그렇담 교양 있는 여자라는 선생님의 관념에는 여러 가지 자질이 포함되는 것 같군요” 엘리자베스가 다씨를 보고 말했다.

“맞아요. 많은 자질이 포함되죠.”

캐롤라인이 거들어주었다. “당연하죠. 보통 사람들이 갖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교양 있는 사람이라 볼 수가 없어요. 여자라면 음악, 노래, 그림, 춤, 외국어 등에 완전한 자질을 구비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태도에도, 목소리에도, 표현력에도 자질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여자라고 볼 수 없죠.”

“그런 것도 갖추어야 하고, 거기에다 광범위한 독서로 지식을 추가해야 하는 거죠.” 다씨가 언급했다.

“전 교양을 갖춘 여자를 여섯 명밖에 모른다는 선생님 말씀이 놀랍군요. 그런 여자를 한 명이라도 볼 수 있었는지 의심되네요.”

“그런 걸 의심하실 정도로 여성들에 대해서 가혹하게 평가하시나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능력, 취미, 우아함을 갖춘 여자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루이사와 캐롤라인은 엘리자베스의 말이 틀리다고 항변했으며 자기들은 그런 교양 있는 여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허스트는 사람들이 카드놀이에 열중하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냈다. 그래서 대화가 중지되었고 엘리자베스는 바로 자리를 떴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다른 여자들을 비난하여 자기를 띄워보려는 여자로 보이는군. 그런 전략이 통할 때도 있겠지. 그치만 아주 비열한 책략이야.” 엘리자베스가 나간 후에 캐롤라인이 말했다.

“여자들이 쓰는 술책은 비열한 경우가 많지. 그런 비겁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다씨가 맞장구를 쳤다.
캐롤라인은 다씨의 표현이 전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더 이상 그것에 관련된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잠시 후에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는 언니의 병세가 악화되었으며, 그래서 자기는 언니 곁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빙리는 존스라는 의사를 부르자고 했지만, 그의 누이들은 시골 의사가 별로 도움이 안 될 터이니 하인을 런던으로 급히 보내서 저명한 의사를 불러오자고 했다. 엘리자베스는 런던으로 사람을 보내자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빙리의 제안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인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아침 일찍 존스라는 의사를 부르기로 결정을 보았다. 빙리는 아주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의 누이들도 불안하다고 겉으로는 말했다. 누이들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 노래를 부르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떨쳤고 빙리는 하녀에게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잘 보살피라는 말을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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