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1부 17~18

나단비 | 2024.01.26 06:43:21 댓글: 0 조회: 9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3167
제17장
 
 
 
다음 날 엘리자베스는 위컴과 나눈 얘기를 제인에게 말해주었다. 제인은 놀라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표정도 지으면서 얘기를 들었다. 그녀로서는 다씨가 빙리와의 우정에 못 미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위컴 같은 선량한 사람의 말을 의심하는 것도 그녀의 천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위컴이 그런 부당한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동정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두 사람에 대해 다 같이 좋게 생각하면서, 어떤 잘못이 있다면 그건 서로의 오해 때문이라고 간주해버리기로 했다.
“내 생각엔 두 사람이 모두 속고 있는 거야. 그것이 뭔지 우린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서로 오해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 우리는 두 사람이 어떻게 소원해졌는지 그 원인이나 상황은 알 수가 없잖아” 제인이 말했다.
“맞아, 언니. 근데 두 사람을 이간질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지? 그 사람들은 죄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들이 나쁜 사람들일까?”
 “네가 좋을 대로 생각해. 그치만 내 말을 듣고 비웃지는 말아줘. 자기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고 생계를 책임져주기로 했던 사람을 그처럼 부당하게 취급하면 그 사람 입장이 어떻게 되겠니? 그건 불가능해. 인간이라면, 그리고 자기 인격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야.”
“내 생각에는 위컴이 모든 얘기를 꾸며냈다기보다 빙리가 속고 있는 거 같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씨는 그걸 증명해야 할 거야. 그리고 위컴의 표정에는 진실이 깃들어 있었어.”
“너무 어려운 문제야. 골치 아프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군.”
“미안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난 알고 있어.”
그렇지만 제인은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즉 빙리가 만약 속아온 거라면 그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가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두 여자가 숲 속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 그들의 얘기 대상이던 바로 그 사람들 중 일부가 찾아와서 그녀들을 불러내었다. 네더필드에서 고대하던 무도회가 다음 주 화요일에 열리게 되어 빙리와 그의 누이들이 그녀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왔던 것이다. 빙리의 두 누이는 제인을 만나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못 본 것처럼 반갑다고 하면서 그들이 헤어진 뒤로 어떻게 지냈는지를 반복해서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베넷 여사와의 접촉은 되도록 피하려 했고 엘리자베스에게는 거의 말을 붙이지 않았으며 그 외 다른 사람들하고는 전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금방 돌아갔다. 빙리는 베넷 여사와 다정하게 헤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듯 부리나케 자리를 떠버렸다.
네더필드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베넷 집안의 모든 여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베넷 여사는 그 무도회가 맏딸인 제인을 위해서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의례적인 초대장만 보내지 않고 빙리 자신이 직접 찾아온 데 대해서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제인은 빙리의 두 누이와 만나고 빙리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설레었다. 엘리자베스는 위컴과 함께 수없이 춤을 추고 다씨의 표정이나 행동을 지켜보면서 사건의 내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했다. 캐서린과 리디아는 어느 특정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엘리자베스처럼 위컴과 춤을 추겠지만 그녀들이 기대하는 사람은 위컴 하나만이 아니었다. 메리조차도 그 무도회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전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저녁때 그런 모임에 가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사교도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오락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메리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무도회로 너무 들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쓸데없이 콜린스에게 이런 말 저런 말을 하지 않아왔지만 그가 빙리 집안의 초대를 받아들일지, 그리고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된다면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춤을 출 의향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거기 가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사람들하고 춤을 춘다고 해서 대주교나 캐서린 드 버그 여사로부터 책망을 들을 염려도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놀라게 되었다.
“난 훌륭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이런 종류의 무도회가 절대 나쁜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나 자신도 춤추는 데는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 밤에 내가 아름다운 사촌들과 한 번씩 추는 영광을 가졌으면 해.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말하는데, 첫 번째 두 번의 춤을 나하고 춰달라고 간청하고 싶군. 제인도 거기에 반대하지 않을 테고 내가 제인을 무시하는 것도 아닐 테니까.”
엘리자베스는 완전히 당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위컴과 추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촐랑대는 바람에 일을 망쳐버린 게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위컴과의 행복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될 수 있는 한 정중하게 콜린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녀는 콜린스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신이 헌스포드 목사 저택의 여주인이 되는 것으로 자매들 중에서 선택되었으며, 로싱스 저택에 손님이 없을 때는 자기가 가서 카드놀이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콜린스가 자신에게 점점 더 다정하게 대하고 자신의 유머 감각이나 명랑한 기질을 칭찬하는 말을 듣게 되면서 그러한 확신은 더 굳어져갔다. 자신의 매력에서 비롯된 그러한 효과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놀라운 마음이 들었는데,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어머니가 자기보고 콜린스와 결혼하면 좋은 일이라고 넌지시 언급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암시를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만약 대응을 하다가는 어떤 심각한 논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콜린스가 그러한 제안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따라서 그가 실지로 제안을 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놓고 다투는 일이 소용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갈 준비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베넷 집안의 딸들은 아주 따분한 나날을 보낼 뻔했다. 왜냐하면 초대를 받은 날부터 그 무도회 날까지 줄곧 비가 내려서 메리튼에 한 번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모나 장교를 만날 수도 없었고 어떤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도 없었다. 무도회에 신고 갈 구두를 장식할 장미 모양의 리본도 하인을 시켜야 했다. 엘리자베스조차도 위컴과 교제하는 일이 날씨로 제지당하자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는 것 같았다. 화요일의 무도회가 아니었다면 키티나 리디아가 그 지겨운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을 견뎌내기 힘들 뻔했던 것이다.
 



제18장
 
 
 
네더필드의 응접실에 들어서서 붉은 옷을 입은 군인들 사이에서 위컴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엘리자베스는 깨달았다. 그와 나눈 대화를 돌이켜볼 때 그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때보다 더 아름답게 차려입었고 아직 자기에게 넘어오지 않은 위컴의 마음을 그날 저녁 안으로 완전히 정복해버릴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빙리가 다씨의 의중을 고려해 일부러 위컴을 초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한순간에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정확히 맞는 건 아니었지만, 리디아가 데니에게 물어본 결과 위컴이 하루 전에 런던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데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여기 있는 어떤 신사와의 만남을 피하고 싶지만 않았더라면 하필 이때 런던에 가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리디아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엘리자베스는 예사로 듣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에 짐작한 이유로 위컴이 불참한 건 아니었지만, 다씨에 대한 실망감은 더욱 커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다가와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을 때 예의바르게 상대할 수도 없었다. 다씨에게 관심을 갖거나 그를 이해해 주는 건 위컴을 모욕하는 일이었다. 다씨와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했고 불쾌한 심정으로 그에게서 돌아섰다. 그런 기분은 빙리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빙리와 다씨 간의 맹목적인 우정에 대해 생각하고는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나쁜 기분을 길게 끌고 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날 밤에 대한 자신의 기대감이 모두 사라져버리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불유쾌한 상태로 있진 않았다. 1주일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샬럿에게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다 털어놓고 콜린스의 괴짜스러운 면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렇지만 두 번의 춤을 춘 뒤에는 다시 기분이 나빠져버렸다. 두 번의 춤이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근엄한 표정으로 춤도 어색하게 췄고 못 추는 것에 대해서 변명만 늘어놓았으며 자기가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녀는 창피스럽고 처참한 마음만 들었던 게다. 그래서 그와의 춤이 끝난 순간이 그녀에게는 황홀의 순간이었다.
그녀는 다음에 한 장교와 춤을 췄는데, 그에게 모든 사람이 위컴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 춤이 끝나고 샬럿에게로 돌아가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씨가 그녀에게로 다가와서는 자기와 한번 추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도 없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허락하고 말았다. 다씨는 말을 끝내자마자 다른 곳으로 갔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그토록 당황했던 사실에 대해서 분개했다. 그런데 샬럿이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이었다.
“그 사람, 아주 좋은 사람인 거 같아.”
“그런 끔찍한 소리 마. 그렇게 되면 정말 재수없을 거야. 누가 미워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사실은 좋은 사람이라고?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다시 무도가 시작되고 다씨가 다가오자 샬럿은 엘리자베스에게 멍청하게 굴지 말라면서 위컴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보다 열 배는 더 중요한 다씨에게 불쾌한 모습을 보이지 말 것을 충고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다씨와 쌍쌍 속에서 마주 서게 되었다. 그녀는 다씨 같은 사람과 추게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워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 얘기도 않고 잠시 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침묵 상태가 두 번의 춤을 추는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먼저 침묵을 깨지는 않을 것이라고 작정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에게 더 큰 벌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춤에 관한 가벼운 얘기를 그녀가 먼저 하게 되었다. 그가 대답을 했고 그다음에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몇 분이 지난 후에 다시 그녀가 말을 꺼냈다.
“다씨 선생님, 이제 그쪽에서 말을 붙일 차롄데요. 제가 춤에 대해 말을 해봤으니 이제 선생님은 이 방의 규모라든가 여기 온 사람들의 숫자 등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차례 같군요.”
그는 엘리자베스의 말에 웃으면서, 그녀가 원하는 어떤 말도 자기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 좋아요. 현재로선 그 대답이면 되겠어요. 제가 나중에는 개인이 여는 무도회가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무도회보다 재밌다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그치만 지금은 침묵하는 게 좋겠군요.”
“춤을 추는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에 따라서 말을 하시나요?”
“때에 따라서는요. 말을 조금이라도 하기는 해야 하잖아요? 반시간 동안이나 추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대화를 적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지금의 경우는 엘리자베스 양의 기분에 맞추어나가는 것인가요, 아니면 제 기분을 맞추어주는 건가요?”
“둘 다죠. 왜냐면 우리가 성격적으로 아주 유사하다는 점을 느꼈으니까요. 우리 둘 다 사교적이지도 않고 과묵한 편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일단 말을 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놀라고, 후세까지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정도가 아니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엘리자베스 양의 성격에 대해서는 정확한 묘사 같군요. 내 성격에 관해서라면…… 어떻게 말할 수 없네요. 엘리자베스 양은 충실히 지적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말한 게 맞다고는 하지 않겠어요.”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다시 침묵 속에서 춤을 추었다. 이윽고 다씨가 엘리자베스에게 그녀와 그녀의 자매들이 메리튼에 자주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해주었다. “저번 날에 거기서 선생님하고 만났을 때 우린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됐죠.”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는데, 다씨가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말은 안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자신감의 부족으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씨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위컴이 사람을 쉽게 사귀는 체질이기는 한데 그 사귐을 길게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심스럽군요.”
“선생님 같은 분과의 우정을 유지 못하는 운 없는 사람이겠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평생 고통을 당해야 할 테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해주었다.
다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대화의 소재를 바꾸고 싶어 하는 걸로 보였다. 그때 윌리엄 루카스 경이 룸의 반대편으로 가려다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다씨를 보고 예의바르게 목례를 하고 나서 다씨의 춤 솜씨와 그의 파트너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다씨 선생님. 이런 춤은 구경한 적이 별로 없어요. 완전히 수준급이시군요. 근데 아름다운 파트너도 선생님 못지않네요. 다음에도 이런 무도회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어요. 특히 엘리자베스 양, 그 일이 잘되었으면 좋겠군요(그는 제인과 빙리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 일만 제대로 된다면 얼마나 큰 경사겠어요. 다씨 선생님도 힘 좀 써보시지요. 그치만 지금은 더 이상 선생님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젊은 숙녀 분하고 대화하는 걸 제가 훼방놓기를 바라시지도 않을 테고요. 저 여자 분도 속으로 날 나무라고 있는 거 같으니까요.”
다씨는 그 말의 후반부는 거의 듣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친구에 대해서 윌리엄 루카스 경이 언급한 점이 그를 강하게 자극했고, 그래서 그는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빙리와 제인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곧바로 시선을 엘리자베스에게로 돌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윌리엄 경이 방해하는 통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렸군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아마도 우리가 이 응접실 안에서 가장 말이 없는 사람들로 보여 다가오셨나 봐요. 우리가 이미 두세 가지 주제에 관해서 얘기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해버렸고, 이젠 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 모르겠어요.”
“책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으세요?” 다씨가 미소 지으면서 물어보았다.

“책이라고요? 아니에요. 우리가 같은 책을 읽을 리도 없고, 똑같은 감정으로 책을 읽지도 않을 거 아녜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유감이군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화젯거리가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상이한 의견을 서로 비교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니에요. 이런 무도회장에서 책을 갖고 얘기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제 머리는 항상 책 말고 다른 것으로 꽉 차 있으니까요.”
“이런 장소에서는 항상 현재 일에만 몰두하신다는 말씀인가요?” 다씨가 의심의 눈초리로 말했다.
“그래요. 항상요.” 그녀는 다른 생각에 몰두한 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에 이런 말을 함으로써 자기가 다른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다씨 선생님은 자신이 용서를 못하는 성격이고 일단 화가 나면 누그러지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그럼 화를 낼 때는 아주 신중하신 건가요?”
“물론이죠.”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편견으로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하시는 거죠?”
“그러길 바라죠.”
“자신의 견해를 전혀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맨 처음에 판단을 잘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냥 선생님 성격을 짚어보려고 하는 거죠. 그걸 알아보고 싶거든요.” 그녀는 무거운 표정을 떨어내려고 노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뭘 알아내셨나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서 아주 혼동되는군요.”
“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어요. 그치만 지금 당장은 나에 대한 성격을 그려주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래야만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쓸데없는 오해가 없을 테니까요.” 다씨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양을 막을 의도는 없습니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그들은 말없이 나머지 춤을 추고는 갈라졌다. 두 사람 다 기분은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정도가 같지는 않았다. 다씨의 마음속에는 그녀에 대한 상당한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돌려버렸다.
얼마 후에 캐롤라인이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와서는 약간 경멸적인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양, 조지 위컴하고 잘돼간다면서요? 엘리자베스 양 언니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근데 그 사람의 아버지가 다씨 아버지 밑에서 관리인을 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을 테죠? 이건 내가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면 안 될 거예요. 왜냐면 다씨가 그 사람에게 잘못을 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니까요. 오히려 아주 잘 대해줬다고요. 조지 위컴이 다씨에게 고약스럽게 한 거예요. 나도 세세한 점은 몰라요. 그치만 다씨는 비난받을 일은 하지 않았고 조지 위컴이라는 사람 얘기만 들어도 참을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오빠는 그 사람을 빼고 다른 장교들만 초대할 수 없었는데 그 사람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줘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고요. 그 사람이 이 근처에 나타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요. 엘리자베스 양이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평가해서 유감이지만, 그 사람 혈통을 생각해본다면 다른 결론이 나오기는 힘들 거예요.”
“캐롤라인 양 말을 듣고 보니 그 사람의 죄하고 그 사람의 혈통이 동일한 거 같군요. 왜냐면 캐롤라인 양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이 다씨 가문의 관리인이라는 점 때문에 비난하는 걸로 보이니까요. 근데 그런 일이라면 난 이미 그 사람한테 들어서 알고 있거든요.” 엘리자베스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군요. 내가 괜히 간섭한 거 용서해줘요. 난 그냥 선의의 마음에서 얘기했을 뿐이에요.” 캐롤라인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뻔뻔스런 여자로군! 그런 식으로 공격해서 날 골탕 먹이려 한다면 큰 오산이지. 그런 말 해봤자 너나 다씨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드러내기만 할 뿐이야.’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그런 문제에 대해서 빙리에게 물어보기로 되어 있던 그녀의 언니를 찾았다. 제인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무도회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즉각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순간 위컴에 대한 동정심이나 위컴의 적들에 대한 분개심 등의 다른 나쁜 기분이 사라지고 제인의 일이 잘돼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언니가 위컴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알고 싶어. 근데 다른 즐거운 일 때문에 그 사람 일은 잊어버린 거 같아. 그렇더라도 난 괜찮아.” 엘리자베스가 언니 못지않은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잊어버리진 않았어. 그치만 그 사람에 대해서 좋은 얘기는 해줄 수 없어. 빙리는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다씨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모르고 있어. 그치만 다씨가 좋은 사람으로 명예를 존중하고 위컴이 다씨한테 나쁘게 행동한 걸로 알고 있더라. 빙리하고 그의 동생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위컴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난다고. 위컴이 아주 안 좋게 행동했고, 그래서 다씨로부터 완전히 신임을 잃어버린 거지.” 제인이 말했다.
“빙리가 위컴을 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
“아니, 저번에 메리튼에서 만나기 전에는 본 적도 없대.”
“그렇다면 빙리가 아는 얘기는 다씨가 해준 말일 거야. 알겠어. 근데 목사 직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대?”
“다씨한테 몇 번 들은 적은 있지만 그 상황에 대해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는가 보더라고. 어떤 조건하에서 위컴이 그 목사 직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가 보던데.”
“빙리를 믿지 못하면 안 되겠지. 그치만 그 사람이 확인하는 거만 가지고 내 마음이 바뀌지는 않아. 빙리가 자기 친구를 변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치만 그 사람이 진짜 내막은 잘 모르고 모두 다씨한테 들은 내용일 테니 난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야.” 엘리자베스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다음에 그녀는 둘 다 만족스럽고 둘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주제로 넘어갔다. 제인은 자신에 대한 빙리의 관심에 대해서 다소간 희망이 섞인 말을 했고, 엘리자베스는 제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빙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엘리자베스는 샬럿에게 옮겨 갔다. 샬럿이 엘리자베스에게 파트너가 어땠는지 물었는데, 엘리자베스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콜린스가 그녀들에게 다가와서는 자기가 아주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흥분에 겨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방금 아주 우연히 이 무도회에 내 후원자 되는 분의 가까운 친척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 그분이 이 집의 여주인과 함께 그분의 사촌인 드 버그 아가씨와 그 아가씨 어머니인 캐서린 여사님에 대해 언급하는 걸 들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군. 이런 모임에서 캐서린 드 버그 여사님의 조카와 만나게 될 줄 예상이나 했겠냐고. 그분한테 이제 경의를 표할 기회를 갖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어. 그분이 내가 좀 더 일찍 그렇게 하지 않은 걸 용서해주시겠지? 내가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는 게 변명은 될 테니까.”
“다씨 선생님께 직접 가서 인사를 하실 건 아니죠?”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지. 내가 좀 더 일찍 인사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겠어. 그분이 캐서린 여사님의 조카가 틀림없어. 캐서린 여사님이 1주일 전까지 건강한 상태로 계셨다는 점을 알려드려야겠다고.”
엘리자베스는 그가 그렇게 하지 말도록 설득했다. 다씨는 콜린스가 누구의 소개도 없이 그렇게 하는 걸 자기 이모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기보다는 뻔뻔스러운 행동으로 여길 테고, 서로 인사를 나눠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으며, 만약 인사를 나누더라도 신분이 높은 다씨가 먼저 아는 척하는 게 순서라고 얘기해주었다.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의 의견에 따르지 않기로 작정하면서 그녀의 말을 들었고, 그녀가 얘기를 끝내자 이렇게 응수해주었다.
“엘리자베스, 난 엘리자베스가 아는 범위의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아주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고 믿고 있어. 그치만 일반인의 행동방식과 성직자들의 행동방식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줬으면 좋겠군. 성직자들의 위엄이란 올바른 행동이 유지되는 한 우리 왕국에서 가장 고상한 것이지. 그러니 이번 경우만은 내가 내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도록 해줬으면 좋겠군. 다른 문제에선 엘리자베스의 충고가 나한테 좋은 지침이 되겠지만 이번만큼은 엘리자베스의 의견을 따르지 않겠어. 이번 경우는 교육상으로 보나 경험상으로 보나 내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그는 엘리자베스를 떠나서 다씨 공략에 나섰다.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콜린스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콜린스가 접근해 다가오자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의 사촌은 먼저 정중하게 인사한 다음에 얘기에 들어갔는데, 그녀에게는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모두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콜린스의 입에서 ‘사과드립니다’, ‘헌스포드’, ‘캐서린 드 버그 여사님’ 같은 말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다씨 같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비굴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그녀에게는 역겨워 보였다. 다씨는 놀라운 눈초리로 콜린스를 바라보다가는 그가 자기에게 말할 기회를 주자 냉랭한 태도로 대응해주었다. 그렇지만 콜린스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두 번째 얘기가 길어지자 다씨의 경멸감은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콜린스가 말을 마치자 다씨는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뒤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에게로 돌아왔다.
“아주 만족스런 만남이 이루어졌군. 다씨 씨가 나를 알게 되어 아주 기뻐하는 걸로 보였어. 저분이 나를 아주 예의바르게 대해줬고, 자기가 캐서린 여사님의 신중하심을 잘 아는데 그분이 나한테 호의를 베풀어줬다면 내게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얘기해주는군. 정말 생각이 깊은 사람이야. 내가 만나보기를 아주 잘한 거 같아.” 콜린스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과 관련되는 일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에 이제 주의를 그녀의 언니와 빙리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그녀 자신도 제인만큼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애정이 담긴 결혼이 가져오는 모든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빙리의 두 누이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고, 그래서 어머니의 수다 떠는 행동을 보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 옆으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과 어머니가 오직 한 사람만을 사이에 두고 저녁 식사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불행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둘 사이에 앉은 루카스 여사에게 제인이 이제 곧 빙리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광경을 보고는 엘리자베스 자신이 당황스러워졌다. 베넷 여사에게는 아주 즐거운 화젯거리였으므로 그러한 결혼에 대해 열을 올려서 얘기하는 것이었다. 빙리가 대단히 매력적인 남자이고 아주 부자이며 그녀의 집에서 3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 우선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요인이었다. 거기다가 빙리의 두 누이가 제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녀들 또한 자기 못지않게 둘의 결혼을 원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이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인이 그런 훌륭한 사람과 결혼을 함으로써 나머지 동생들도 돈 많은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커질 터이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도 말했다. 또한 자기 나이에 벌써 나이 어린 딸들을 큰딸에게 맡겨버리고 더 이상 골치 아프게 파티에 쫓아다니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집에만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루카스 여사에게도 그런 행운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말을 끝냈는데, 사실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가 그처럼 황당한 말을 못하게 말리면서 남들이 못 알아듣게 작은 소리로 얘기하게 하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맞은편에 앉은 다씨가 그녀의 어머니가 하는 얘기를 대부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다씨가 누군데 내가 그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니? 그 사람이 듣기 싫은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우리가 그 사람한테 죄라도 졌단 말이니?”
“어머니, 제발 좀 작은 소리로 얘기하세요. 다씨 씨 마음을 상하게 해서 어머니한테 좋을 게 뭐 있다고 그러세요? 그러면 저분 친구한테 어머니가 좋게 보일 리 없잖아요.”
그녀가 어머니에게 무슨 소리를 하든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모든 주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떠들어댔다. 엘리자베스는 창피하고 당황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다씨 쪽으로 자주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녀의 우려가 사실이라는 점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다씨가 그녀의 어머니를 계속 주시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분개하고 경멸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중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베넷 여사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공유할 가능성이 없는 그런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 차츰 싫증이 나던 루카스 여사는 이제 식어버린 햄과 닭고기를 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도 기분이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평온의 시간은 길게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녁 식사가 끝나고 이제 노래 부를 시간이라는 말이 나오자 누구의 권고도 받지 않은 메리가 나서는 바람에 창피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면서 메리의 주책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의 눈길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게 그녀에게는 아주 즐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거다. 엘리자베스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메리를 바라보며 그녀가 여러 절을 부르는 동안 참지 못하겠다는 시늉을 해보였지만 모든 노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렸다. 사람들이 칭찬의 말을 좀 해준 뒤로 누군가가 한 번 더 불러주면 좋겠다는 말을 넌지시 던지자마자 30초쯤 지난 후에 그녀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던 것이다. 메리의 노래 솜씨는 그런 장소에서 과시할 만한 정도가 못 되었다. 목소리에 힘이 부족하고 노래를 부르는 태도도 좋지 못했다. 엘리자베스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제인은 어떻게 참고 있나 궁금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주 차분하게 빙리와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빙리의 자매들 쪽을 보니 둘이서 서로 경멸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씨는 어떤 알 수 없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저녁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눈길을 주었는데, 아버지는 눈치를 채고 메리가 두 번째 노래를 끝내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아주 잘했다, 메리. 우리를 너무도 즐겁게 해줬어. 근데 다른 사람들한테도 노래 부를 기회를 줘야지.”

메리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면서도 다소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엘리자베스는 메리에게도 좀 미안하고 아버지한테도 좀 죄송스런 마음이 들면서 자신의 우려가 아무 소용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제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기회가 찾아왔다.
콜린스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저한테 노래 솜씨가 있다면 한 곡 뽑아냈을 겁니다. 왜냐면 음악이라는 게 아주 순수한 오락이며 목사의 직위와도 양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성직자들이 많은 시간을 음악에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랍니다. 다른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교구목사는 일이 많답니다. 우선 자신과 후원자를 위해서 십일조를 거둬야 한답니다. 설교문도 작성해야 하고요. 교구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고 자신의 처소를 돌보는 데도 시간을 할당해야 한답니다. 자기가 사는 곳을 안락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모든 사람한테, 특히 자기를 발탁해준 사람한테 잘해드리는 것도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지요. 그런 일을 가볍게 본다면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성직자의 가족과 관련되는 사람들에게 소홀히 대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는 다씨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을 마쳤는데,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무도회장 안에 있는 절반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바라보았고 많은 사람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베넷이 가장 흥미롭게 콜린스의 말을 들었고 베넷 여사는 콜린스가 아주 분별력 있게 말을 한다면서 칭찬해주었다. 그러고는 그가 아주 영리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루카스 여사에게 반쯤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가족들이 그날 저녁에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기로 미리 작정을 하고 왔다 한들 그보다 더 자기들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빙리가 그런 조롱거리의 일부를 못 보고 지나갔으며,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우스꽝스러운 일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성격이란 게 빙리와 제인를 위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빙리의 두 누이와 다씨가 그런 우스운 일을 보고서 조롱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쁜 일이었고, 엘리자베스에게는 다씨의 말없는 경멸이나 그 숙녀들의 비웃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참을 수 없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날 저녁의 나머지 시간에도 엘리자베스에게는 좋은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콜린스가 그녀의 곁에 붙어 다니면서 끊임없이 귀찮게 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과 다시 춤추도록 설득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하고 춤추는 것도 방해해버렸다. 그녀는 그에게 다른 사람들하고 춤추도록 하거나 무도회장 안의 다른 여자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콜린스는 춤에 관해서라면 아무 관심도 없으며 자기의 최대 관심사는 그녀에게 잘 보이는 것이고, 그래서 저녁 시간 내내 그녀의 곁에 붙어 다니겠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오는 데는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샬럿이 구원이 돼주었는데 그녀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서 콜린스를 상대해주었던 거다.
다씨가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가 가까운 곳에 서 있기는 했지만 그녀와 말을 할 만큼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위컴에 대한 말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는 속으로 고소하다고 여겼다.
롱본의 가족은 그 집에 남아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 되었다. 베넷 여사의 술책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난 후 15분이나 더 마차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 일 때문에 네더필드의 사람들 몇몇은 그들이 떠나기를 무척이나 고대하게 되었다. 루이사와 캐롤라인은 계속해서 피곤하다고 불평하면서 자기네들끼리만 있고 싶어 하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베넷 여사가 그녀들과 몇 번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거절당했고 지루함은 이어져갔다. 콜린스는 파티가 아주 우아했고 빙리와 그의 누이들의 손님 접대가 매우 후덕했다는 소리를 하면서 긴 언사를 늘어놓았다. 다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베넷도 별말 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빙리와 제인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둘이서만 얘기를 했고, 엘리자베스는 루이사나 캐롤라인과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켰다. 리디아조차도 “아휴, 진짜 피곤해”라고 말하면서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떠나려고 일어섰을 때, 베넷 여사는 빙리의 가족 모두를 롱본에서 다시 한번 보기를 희망하며 특히 빙리에게는 공식적으로 초대하지 않더라도 아무 때나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댔다. 빙리는 그 말에 감사를 표하면서, 다음 날에 자기가 잠시 일을 보기 위해서 런던에 가는데 다녀온 즉시로 그들을 방문하겠노라고 기꺼이 약속했다.
베넷 여사는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러고는 결혼에 필요한 준비, 즉 마차나 웨딩드레스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앞으로 서너 달 후면 그녀의 딸이 네더필드의 안주인이 돼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른 딸 하나를 콜린스와 결혼시키는 데 대해서도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제인만은 못하지만 그것도 기쁜 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가 가장 호감을 갖지 않는 딸이었다. 그래서 그 남자와의 그런 결혼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빙리나 네더필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로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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