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2부 9~10

나단비 | 2024.01.28 09:13:55 댓글: 0 조회: 10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3592
제9장
 
 
 
다음 날 오전에 샬럿과 마리아는 읍내로 볼일을 보러 나갔고 엘리자베스는 혼자서 제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누가 왔다는 신호로 초인종이 울려서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마차 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캐서린 여사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질문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쓰던 편지를 치우고 나가보니, 놀랍게도 다씨가 혼자서 방문한 것이었다.

다씨 역시 혼자 있는 엘리자베스를 보고 깜짝 놀랐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있는 줄 알고 왔다면서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았고, 로싱스 사람들에 대한 안부를 엘리자베스가 묻고 나자 이제 완전한 침묵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예전에 하트포드셔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를 기억해내고는, 왜 그렇게 신속하게 그곳을 떠나야만 했는지를 알아보려고 이렇게 말했다.

 “작년 11월에 왜 그렇게 빨리 네더필드를 떠나야 하셨나요? 빙리 씨는 그처럼 댁들을 다시 빨리 만나게 돼서 반갑기는 했겠지만 말이에요. 내 기억이 맞는다면 빙리 씨는 그 전날에 그곳을 떠났으니까요. 선생님이 런던을 떠날 때 빙리 씨하고 빙리 씨 자매들은 잘 지내고 있었겠죠?”

“아주 잘 지내고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다른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고, 그래서 약간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빙리 씨가 다시 네더필드로 돌아갈 마음이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가 직접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은 없죠. 그치만 앞으로 거기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군요. 지금 런던에 많은 친구들이 있고, 빙리 나이에는 친구들이나 다른 볼일들이 늘어나죠.”

“네더필드에 그렇게 있을 생각이 없다면 그 집을 완전히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그 집에 와서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그치만 빙리 씨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집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 집을 포기하든 안 하든 그건 그분이 알아서 하겠죠?”

“그 집에 들어갈 사람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빙리가 그 집을 포기한다고 해도 우리가 놀랄 일은 아니죠.” 다씨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빙리의 얘기를 하는 데 따른 일종의 불안감도 있었다. 자기는 더 이상 할 말이 특별히 없었기 때문에 이제 대화의 주제를 찾는 일을 다씨에게 넘겨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다씨가 그 점에 대해서 짐작을 하고서는 얘기를 시작했다. “이 집은 아주 아늑해 보이는군요. 콜린스 씨가 맨 처음 헌스포드에 오게 됐을 때 캐서린 여사님이 아주 많은 배려를 해주셨죠.”

“저도 그랬을 거라고 봐요. 그리고 콜린스 씨만큼 그런 일에 고마움을 표시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콜린스 씨는 아내를 아주 잘 만난 거 같더군요.”

“정말 그래요. 콜린스 씨 친구들은 그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아내를 갖게 되어서 덩달아 기뻐할 거예요. 샬럿은 아주 생각이 깊은 사람이에요. 난 그녀가 콜린스 씨를 남편으로 선택한 게 아주 현명한 일은 아니라고 보지만요. 그치만 지금 아주 행복해하고 있고, 사실 꽤 신중한 선택을 한 걸로 보여요.”

“그녀로서는 자기 가족들이나 친구들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살게 돼서 아주 마음이 흡족할 테죠.”

“이게 가까운 거리라고요? 거의 50마일이나 되는데요?”

“길이 좋은데 50마일이 문제가 되나요? 한나절이면 올 수 있는 거린데요. 난 아주 가까운 거리 같은데요.”

“설령 가까운 거리라고 하더라도 그게 두 사람 결혼의 한 가지 이점이라고 볼 수는 없죠. 난 샬럿이 자기 가족하고 가까운 곳에 살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엘리자베스가 응수했다.

“그건 엘리자베스 양이 하트포드셔에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롱본하고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다면 멀게 느껴질 거예요.”

그 말을 하면서 다씨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는데, 엘리자베스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제인과 네더필드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다씨가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고 추측한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여자가 결혼해서 자기 가족들 옆에 가까이 살아야만 한다는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에요. 멀거나 가까운 거리는 상대적인 것이고 여러 상황에 따라서 감각이 달라질 수 있어요. 재산이 많아서 여행하는 일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리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그치만 여기는 그런 환경이 아니에요. 콜린스 부부의 수입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여행을 자주 해도 좋을 만큼은 되지 않아요. 샬럿은 지금 거리의 절반 되는 곳에 산다고 하더라도 자기 친정하고 가깝게 산다고 여기지 않을 거예요.”

다씨가 자기 의자를 그녀 쪽으로 더 가까이 당기고서는 말했다. “엘리자베스 양은 그처럼 자기 고향에 대해서 애착을 갖지 않으면 좋을 거 같은데요. 항상 롱본에서만 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엘리자베스는 그 말에 놀라는 듯했다. 다씨는 엘리자베스의 감정에 생긴 변화를 느끼고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테이블에서 신문을 집어들었고, 그것을 보면서 좀 더 침착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켄트 지방은 마음에 드시나요?”

다음에 두 사람 다 조용하고 간략한 말투로 지금 그들이 있는 잉글랜드 남동부에 소재하는 주(州)의 명칭인 켄트 지방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샬럿과 그녀의 여동생이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 나게 되었다. 샬럿과 마리아는 단 둘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다씨는 자기가 실수로 엘리자베스만 혼자 있는데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했고, 그런 뒤로 누구한테도 별로 얘기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그 집에서 나갔다.
 
“이게 모두 무슨 의미겠니! 리지, 그 사람이 너한테 빠진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이 그처럼 친근하게 찾아올 리가 없다고.” 샬럿이 말했다.

그렇지만 다씨가 별로 말이 없었다는 사실을 엘리자베스에게 들었고, 샬럿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다씨가 엘리자베스에게 빠져 있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되었다. 여러 가지로 추측한 끝에 그들은 다씨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그곳에 왔다고 간주해버렸다. 지금은 계절상으로 야외에서 하는 놀이를 하는 때도 지나 있었다. 그 저택에는 캐서린 여사나 책이나 당구대가 있기는 했지만 남자들이 항상 집 안에서만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목사관이 가깝기도 하고 그리 가는 산책길이 기분을 좋게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목사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로싱스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두 사촌은 거의 매일 목사관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따라서 거닐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오전 중의 아무 시간에라도 혼자서나 둘이서, 또는 이모를 대동하고서 목사관 쪽으로 갔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방문하는 것은 목사관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았으므로 그곳 사람들은 그가 오는 것을 반겼다. 엘리자베스는 피츠윌리엄이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옛날의 조지 위컴이 생각나서 피츠윌리엄에게 호감을 가졌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부드러운 면에서는 위컴만 못했지만 학식으로는 피츠윌리엄 쪽이 더 나았다.

그런데 다씨가 왜 그렇게 자주 목사관을 방문하는지 그 점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10분 동안이나 앉아 있곤 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을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서 한다기보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말로 들렸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지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생기 넘쳐 보이는 적도 거의 없었다. 샬럿으로서는 그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다씨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한도에서는 짐작할 수 없었는데, 피츠윌리엄 대령이 가끔씩 다씨에게 왜 그렇게 멍하니 있느냐고 놀리는 것을 보면 다씨가 원래 그런성격이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샬럿은 그러한 변화의 원인이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대상은 엘리자베스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그런 증거를 찾아보려고 했다. 샬럿은 자기들이 로싱스 저택에 갔을 때나 다씨가 목사관으로 올 때 항상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다씨가 엘리자베스를 자주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 표정이 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표정이 진지하고 꾸준하기는 했지만 그 속에 얼마만 한 애정이 깃들어 있는지를 알 수 없었고, 어떤 때는 단순히 그가 정신이 나간 상태로 보이기도 했다.

샬럿은 엘리자베스한테 다씨가 그녀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한두 번 말해보기도 했지만 엘리자베스는 항상 웃어넘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샬럿은 더 이상 그 문제로 엘리자베스를 귀찮게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에는 실망으로 끝날지 모르는데 기대감만 높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샬럿이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다씨에게 혐오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씨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감정이 일시에 사라져버릴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샬럿은 엘리자베스의 일이 잘 풀리기를 기대하면서, 어떤 때는 엘리자베스가 피츠윌리엄과 결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는 같이 있기에 가장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가 엘리자베스를 좋아하는 것도 확실해 보였고 그의 사회적 지위 같은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씨에게는 그러한 이점을 상쇄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가 교회의 성직자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리를 아주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10장
 
 
 
엘리자베스는 정원을 거닐다가 다씨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그녀는 지금껏 그런 길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었는데 자꾸 그런 일이 일어나자 자기가 운이 나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처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 길은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길이라는 점을 다씨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두 번씩이나 일어나는 것도 묘한데 세 번까지도 일어났다. 그것은 다씨가 고의로 부리는 심술이거나, 아니면 고행 의식 같은 걸로도 보였다. 왜냐하면 그가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어색하게 침묵을 지키다가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가던 방향을 돌려서 그녀와 함께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가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고 엘리자베스 역시 말을 많이 하거나 귀 기울여 듣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세 번째로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다씨는 그녀에게 헌스포드에 머물러 있는 게 즐거운지, 혼자서 산책하는 일이 좋은지, 그리고 콜린스 부부의 행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의 묘한 질문을 해댔다. 그리고 그가 로싱스 저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엘리자베스가 그 저택에 대해서 모르는 점이 많을 거라고 얘기할 때는 다음에 그녀가 다시 그곳에 오면 그 저택에서 머무를 수도 있다는 의미가 함축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피츠윌리엄 대령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그녀와 피츠윌리엄의 관계가 발전하게 될 때를 생각하고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는 피곤해졌기 때문에 그 산책길이 끝나고 목사관 입구에 도달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느 날 그녀가 최근에 제인이 보내온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불평하는 투로 쓴 구절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다씨가 자기를 놀라게 하는 건 아니고 피츠윌리엄 대령이 인사를 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편지를 접어두고서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전에는 이쪽 길로 산책을 하지 않으시던데요.”

“난 해마다 정원 전체를 산책하죠. 마지막으로 목사관을 둘러볼 생각이었어요. 이쪽 길로 계속해서 가실 건가요?”

“아니에요. 돌아가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 말을 하고서 그녀가 발걸음을 돌렸고 그들은 함께 목사관 쪽으로 걸어갔다.

“토요일 날 이곳을 떠날 게 확실한가요?” 엘리자베스가 물어보았다.

“그렇죠. 다씨가 다시 그 일을 연기하지만 않는다면요. 난 다씨가 하자는 대로 할 거예요. 그가 자기의향대로 계획을 짤 거예요.”

“그렇다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에도 그분은 자기가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데 만족할 수가 있겠군요. 그런 권리를 그분만큼 즐기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그는 자기 의향대로 하는 걸 즐기죠. 그건 다른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예요. 다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권리가 많다는 점이 다르죠. 그는 부자니까 다른 가난한 사람하고는 다르겠죠. 난 내 생각대로 말하는 거예요. 다씨 같은 입장이 아닌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익숙해져야 해요.”

“내 생각에는 선생님처럼 백작의 차남이라면 그런 점들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것 같은데요. 이제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보셨나요? 돈이 없어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다거나 돈이 없어서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했다거나 한 경우가 있으세요?”

“날카로운 질문이로군요. 그런 경험은 많이 없었다고 봐야겠죠. 그렇지만 어떤 큰일에서는 나도 돈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있답니다. 장남이 아니라면 결혼도 자기가 원하는 상대와 못할 수도 있어요.”

“여자에게 재산이 많지 않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죠.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돈을 무시하고 결혼을 생각하기가 어렵죠.”

‘나를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일까?’라고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생각해보고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침착하고 쾌활한 어조로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럼 백작의 차남이라면 여자한테 값을 얼마나 매기는 건가요? 장남이 아주 병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5만 파운드 이상은 요구하지 않겠죠.”

남자는 그런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고 그다음에 그런 내용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괜한 말을 해서 대화가 중단되었다는 느낌을 상대방이 가질까 봐 이런 말로 관심을 돌렸다.

“선생님의 사촌은 결혼해서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선생님하고 함께 이곳으로 왔는지 모르겠군요. 자기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그치만 지금 당장은 동생만 있어도 충분할지 모르겠어요. 자기가 동생의 유일한 후견인이니까 동생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건 나하고 같이 누려야 하는 권리예요. 나도 그 동생의 후견인이거든요.” 피츠윌리엄 대령이 말해주었다.

“그러세요? 어떤 후견인 일을 하고 계신가요? 그녀가 귀찮게 하지는 않나요? 그 또래의 여자들은 다루기가 힘든데다 그녀가 다씨 같은 성질이라면 자기 멋대로 하는 쪽일 텐데요.”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남자가 자기를 유심히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왜 다씨의 여동생이 자기를 귀찮게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자기가 앞에서 제대로 짐작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즉시 대답해주었다.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그녀에 대해서 나쁜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사람일지도 모르죠. 허스트 여사나 캐롤라인은 그녀를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선생님도 그녀들을 알고 계신다고 했죠?”

“조금 알죠. 그녀들의 형제가 아주 신사다운 사람이고 다씨하고 매우 가까운 사이예요.”

“오, 그래요. 다씨 씨는 빙리 씨하고 아주 친근하고 잘 위해주죠.” 엘리자베스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위해준다고요! 물론 도움이 필요한 면이 있다면 다씨가 아주 잘 위해주겠죠. 우리가 이리로 오는 도중에 다씨한테 들은 얘기에 따르면, 빙리가 다씨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는 것 같아요. 그치만 다씨가 도움을 준 대상이 반드시 빙리라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내 추측일 뿐이죠.”

“무슨 말씀이세요?”

“다씨는 이런 얘기가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랄 거예요. 만약 여자 쪽 가족의 귀에 들어간다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요.”

“난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를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반드시 빙리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다씨가 얘기해준 건 단지 이 말뿐이었어요. 얼마 전에 경솔한 결혼을 할 뻔한 사람을 구제해주었고, 그렇게 한 걸 만족하게 생각한다는 거였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 이름이나 그 외 사실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죠. 근데 내가 보기에 빙리라면 그런 곤경에 처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작년 여름에 다씨가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도 빙리였으니까 난 그 사람이 빙리라고 추측하는 거죠.”

“다씨 씨가 왜 그런 개입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던가요?”

“그 여자에 대해서 반대할 만한 몇 가지 강력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럼 그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서 어떤 수를 쓴 거죠?”

“무슨 수를 썼는지는 다씨가 나한테 얘기해주지 않았죠. 지금 얘기해준 것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요.” 피츠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무 응수도 하지 않았고 다만 분노로 가슴이 쿵쿵거리면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피츠윌리엄은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고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졌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지금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었어요. 선생님 사촌의 행동이 나한테는 이해되지 않는군요. 왜 그 사람이 판관이 돼야 하는 거죠?”

“그 사람이 간섭하는 게 주제넘다고 생각하는군요?”

“그 사람이 친구의 감정 문제를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있는지 난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 친구가 자기의 행복 문제로 고민하는데 이런저런 참견을 왜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정신을 좀 가다듬고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치만 우리가 그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비난하는 건 올바른 일이 아니겠죠. 두 남녀 사이에 애정이 결핍돼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녜요?”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죠. 근데 나도 내 사촌이 아주 잘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피츠윌리엄이 말했다.
피츠윌리엄은 농담으로 해본 말이었지만 엘리자베스는 다씨를 잘 판단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응수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른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목사관까지 갔다. 이윽고 그 방문객이 돌아간 다음에 그녀는 자기가 머무는 방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서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다씨가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뿐일 것이다. 빙리와 제인을 갈라놓기 위한 모략에 그가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두 사람을 갈라놓은 주인공이 캐롤라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인이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원인이 그 사람의 교만함과 사악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언니의 행복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루어놓은 해악이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반대할 만한 몇 가지 강력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로 알아들었다’는 게 피츠윌리엄 대령의 말이었는데, 그 강력한 이유라는 건 아마도 제인의 두 삼촌 중에서 한 사람은 시골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런던에서 장사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녀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언니 하나만 놓고 본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테지. 매력도 있고 선량하기도 하니까. 머리도 좋고 교양도 있고 매너도 좋고.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 좀 괴팍한 데가 있으시긴 하지만 다씨가 경멸할 수 없는 능력도 갖추시고 다씨가 따라갈 수 없는 인품도 있으시니까.’ 그녀의 생각이 어머니에게 미치자 약간 기가 사그러들기는 했지만 어머니 때문에 다씨가 반대할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다씨가 반대를 한다면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같은 사람의 지각력 결핍보다는 지위 결핍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그리고 자기 여동생과 빙리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제인과의 결혼을 반대했을 것이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서 흥분된 그녀의 감정은 눈물이 나오면서 두통으로 이어졌다. 저녁때는 두통이 더 심해져서 사촌을 따라 로싱스 저택으로 가서 차를 마시는 걸 거부해야만 했다. 샬럿은 엘리자베스가 정말로 몸이 안 좋은 모습을 보고는 강권하지 않았고 자기 남편이 엘리자베스와 함께 가자고 독촉하는 것도 막아주었다. 콜린스는 엘리자베스가 집에 남아 있게 되면 캐서린 여사가 기분 나빠할 것이라면서 우려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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