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나라의 앨리스 제6장

나단비 | 2024.02.27 13:19:43 댓글: 0 조회: 78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0120
제6장 험프티 덤프티


그렇지만 달걀은 점점 더 커지더니 점점 더 사람처럼 변했다. 몇 발자국 앞에까지 간 앨리스는 달걀에 눈과 코와 입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바짝 다가간 순간 앨리스는 분명히 그것이 험프티 덤프티(영국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민간 동요집에 나오는 커다란 계란 모양의 인물-옮긴이)임을 알 수가 있었다.
“달리 누구겠어! 틀림없어, 얼굴 가득 이름을 써놓은 거나 마찬가지인걸!”
그 거대한 얼굴에는 백 번도 더 이름을 쓸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험프티 덤프티는 터키 사람처럼 다리를 꼬고 높은 벽 위에 앉아 있었다. 앨리스는 저렇게 좁은 곳에서 어떻게 그가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무척 의아스러웠다. 그는 내내 반대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어서 앨리스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앨리스는 그가 박제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렇게 달걀과 똑같이 생겼을까!”
앨리스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떨어질 듯이 보여서 그를 잡으려고 두 손을 위로 뻗었다.
“정말 짜증스럽군.”
긴 한숨을 쉰 험프티 덤프티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앨리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달걀이라고 부르다니, 세상에!”
“전 그냥 당신이 달걀처럼 보인다고 말한 거예요.”
앨리스는 부드럽게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이 칭찬으로 들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어떤 달걀들은 아주 예쁘잖아요.”
여전히 앨리스를 외면한 채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기보다 더 생각이 없지.”
앨리스는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건 대화라고 할 수가 없어’라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는 앨리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실 그의 마지막 말은 분명히 나무에다 대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앨리스는 그 자리에 선 채 마음속으로 조용히 시를 하나 외웠다.
 
“험프티 덤프티가 벽 위에 앉아 있네.
험프티 덤프티가 심하게 떨어졌네.
왕의 말들과 신하들이 모두 와도
험프티 덤프티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가 없네.”
 
“마지막 싯구가 너무 길어.”
험프티 덤프티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깜박 잊고 앨리스는 하마터면 소리내어 이렇게 말할 뻔했다.
“그렇게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지 마.”
처음으로 앨리스를 쳐다보며,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네 이름과 무엇 때문에 왔는지나 들어보자.”
“제 이름은 앨리스예요. 하지만…….”

“정말 바보 같은 이름이로군!”
험프티 덤프티가 불쑥 앨리스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이름에 꼭 무슨 의미가 있어야만 하나요?”
앨리스가 의아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지, 그래야 하고말고.”
험프티 덤프티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내가 생긴 모양과 그 모양이 아주 잘생겼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너 같은 이름이라면 어떤 모양이든지 될 수 있겠는걸.”
“왜 혼자서 여기 앉아 있어요?”
앨리스는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야, 나밖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렇지!”
험프티 덤프티가 소리쳤다.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니? 다른 걸 물어보지그래.”
“바닥에 앉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문제를 더 낸다는 생각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기묘하게 생긴 생물이 걱정이 되어서, 앨리스가 다시 물었다.
“그 벽은 너무 좁잖아요!”

“어쩜 그렇게 터무니없이 쉬운 질문들만 하는 거야!”
험프티 덤프티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만일 내가 떨어지면, 그럴 리는 없지만, 그래도 만일 내가 떨어지면…….”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입술을 오므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엄숙하고 심각해 보여서 앨리스는 간신히 웃음을 억눌렀다.
“그래도 만일 내가 떨어지면.”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왕이 나에게 약속을 했지. 아, 얼마든지 놀라도 좋아! 내가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안 그래? 왕이 나에게 약속을 했어. 난 왕과 직접 말을 했다고. 바로 내가 말이야…….”
“왕의 말들과 신하들을 모두 보내주기로요.”
현명하지 못하게 앨리스는 그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정말 형편없는 아이로구나!”
험프티 덤프티는 벌컥 화를 냈다.
“문 뒤에서 엿들었지, 나무 뒤에서, 그리고 굴뚝 밑에서? 아니면 네가 그걸 알 리가 없어!”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앨리스는 부드럽게 말했다.

“책에서 읽었어요.”
“아하, 그렇군! 책에 그런 일들이 적혀 있을 수도 있지.”
험프티 덤프티가 엄숙하게 말했다.
“그게 영국의 역사라는 책이지, 그렇지. 자, 이제 나를 자세히 보렴! 나는 왕과 이야기를 한 사람이란다. 아마 넌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을 보지 못할 거야. 그리고 말해두지만, 나는 거만하지 않아. 그러니 나와 악수를 해도 좋아!”
그리고 그는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지게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그러느라고 그는 거의 벽에서 떨어질 듯이 보였다) 앨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앨리스는 악수를 하며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더 크게 웃었다가는 머리 뒤에서 입이 만나겠어. 그러면 머리가 어떻게 된담. 그러다가 머리가 잘리면 어떻게 하지!”
“그래, 왕의 말들과 신하들이.”
험프티 덤프티가 말을 이었다.
“금세 나를 다시 일으켜줄 거야, 아무렴! 그렇지만 대화가 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걸. 바로 전 마지막에 했던 말로 돌아가자.”
“죄송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앨리스는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새로 시작하지 뭐.”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 내가 주제를 선택할 차례지.”
(‘마치 시합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네!’ 앨리스는 생각했다.)
“너에게 질문을 하지. 네가 몇 살이라고 말했지?”

앨리스는 잠깐 계산을 하고 나서 말했다.
“일곱 살하고 여섯 달요.”
“틀렸어!”
험프티 덤프티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저는 ‘너는 몇 살이지?’라고 묻는 줄 알았어요.”
앨리스가 설명했다.
“내가 그럴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물었지.”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앨리스는 또다시 말싸움을 하기가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 살하고 여섯 달이라니!”
험프티 덤프티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불편한 나이야. 네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나는 ‘일곱 살에서 멈춰라’고 말했을 거야. 하지만 이젠 너무 늦은 말이지.”
“저는 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조언을 구하지 않아요.”
앨리스가 뾰로통해서 대꾸했다.
“너무 잘난 체하는 것 아닐까?”
험프티 덤프티가 다시 물었다.

앨리스는 이 말에 더욱더 화가 났다.
“제 말은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요.”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달라. 적절하게 돕는다면, 일곱 살로 남을 수도 있어.”
“어머, 정말 멋진 허리띠를 차고 있네요!”
앨리스가 갑자기 말했다. (‘이제 나이 얘기는 질리도록 했어’라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로 차례대로 주제를 선택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앨리스가 주제를 선택할 차례였다.)
“음.”
앨리스는 다시 생각한 후에 말을 바꾸었다.
“멋진 넥타이예요,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아니, 허리띠라고, 아니, 제 말은……, 죄송해요!”
앨리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험프티 덤프티는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 앨리스는 이런 주제를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디가 목이고 어디가 허리인지 알았으면!’
분명히 험프티 덤프티는 무척 화가 나 있었지만,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낮고 퉁명스러웠다.
“이건 너무나 짜증스러운 일이야.”
마침내 그가 말했다.
“허리띠와 넥타이를 구분하지 못하다니!”
“제가 너무 무식한 거죠.”
앨리스가 너무나 처량하게 말을 하자 험프티 덤프티는 화가 누그러졌다.
“이건 넥타이란다, 얘야. 그리고 네 말대로 멋있는 거야. 하얀 말의 왕과 여왕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지. 잘 보렴!”
“정말이에요?”
앨리스는 마침내 좋은 이야기 주제를 찾아서 너무 기뻤다.
“그들이 나에게 주었단다.”
험프티 덤프티는 다리를 꼬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싼 채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생일이 아닌 날 선물로.”
“잠깐 물어봐도 돼요?”
앨리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나, 화 안 났어.”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생일이 아닌 날 선물이 뭐예요?”

“물론 생일이 아닌 날 주는 선물이지.”
앨리스는 잠깐 생각을 했다.
“저는 생일날 선물이 가장 좋아요.”
이윽고 앨리스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험프티 덤프티가 소리쳤다.
“1년은 며칠이지?”
“365일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네 생일은 몇 번 있지?”
“한 번이요.”
“그러면 365일에서 하루를 빼면 얼마가 남지?”
“364일이죠.”
험프티 덤프티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종이에 계산을 해보는 게 좋겠어.”
그가 말했다.
앨리스는 수첩을 꺼내면서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험프티 덤프티를 위해서 계산을 했다.
 
365
361
364
 
험프티 덤프티는 수첩을 잡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맞게 계산한 것 같군.”
그가 말했다.
“거꾸로 잡고 있잖아요!”
앨리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렇군!”
험프티 덤프티는 앨리스가 수첩을 제대로 돌려놓자 쾌활하게 말했다.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말했지만, 맞게 계산한 것처럼 보이는군. 그렇지만 지금은 이걸 자세하게 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 아무튼 이걸 보면 생일 아닌 날 선물을 받으면 364번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그렇기는 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럼 생일 선물은 오직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겠구나. 영광스럽게도!”
“‘영광’이라니, 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험프티 덤프티는 비웃듯이 미소를 띠었다.
“당연히 모르겠지, 내가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건 ‘너를 논쟁에서 멋지게 이겼다!’라는 뜻이야.”
“하지만 ‘영광’은 ‘논쟁에서 멋지게 이겼다’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앨리스가 항의했다.
“내가 단어를 쓰면, 그 단어는 내가 선택한 의미만 띠게 되는 거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우 경멸하는 말투로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문제는, 당신이 단어들의 의미를 너무나 딴판으로 만드는 데 있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문제는, 누가 주인이 되느냐지. 그게 다야.”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앨리스는 너무나 어리둥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잠시 후에 험프티 덤프티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단어들도 성격이 있어. 그중에서도 특히 동사가 그래. 자존심이 가장 강하지. 형용사는 어떻게든 할 수가 있어. 하지만 동사는 안 돼.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 전부를 다룰 수가 있다고! 절대적! 바로 그거야!”
“죄송하지만, 그게 무슨 뜻이죠?”

앨리스가 물었다.
“이제야 네가 분별 있는 아이처럼 말을 하는구나.”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절대적’이라는 단어는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했고, 너의 나머지 인생 전부를 여기에서 멈추려는 게 아니라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는 뜻이야.”
“한 단어가 의미하는 게 정말 많네요.”
앨리스가 생각에 잠긴 말투로 말했다.
“내가 한 단어에 그렇게 많은 작업을 시킬 때는, 언제나 시간 외 수당을 지불한단다.”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어머나!”
앨리스는 너무 놀라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네가 토요일 저녁에 단어들이 내 주위로 몰려드는 것을 봐야 하는데.”
험프티 덤프티는 진지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급료를 달라고 하는 걸 말이야.”
(앨리스는 그들에게 급료로 무엇을 주는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도 여러분에게 그것을 말해줄 수가 없다.)
“단어를 설명하는 데 무척 재주가 많으신가봐요.”

앨리스가 말했다.
“괜찮으시면 「재버워키」라는 시의 뜻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어디, 들어보자.”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나는 이미 지어진 시들은 모두 설명할 수가 있어. 그리고 아직 지어지지 않은 대부분의 시들도.”
이 말에 희망을 얻은 앨리스는 첫 연을 외웠다.
 
지글녁, 유끈한 토브들이
사이넘길 한쪽을 발로 빙돌고 윙뚫고 있었네.
 
보로고브들은 너무나 밈지했네.
몸 레스들은 꽥꽥 울불었네.
 
“일단 그걸로 충분해.”
험프티 덤프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어려운 단어들이 꽤 많이 나오는걸. ‘지글녁’이란 오후 4시를 뜻하는 거야. 저녁에 먹을 고기를 지글지글 굽기 시작하는 시간 말이야.”
“그게 바로 그런 뜻이었군요. 그럼 ‘유끈한’은요?”
앨리스는 다시 물었다.
“흠, ‘유끈한’이란 ‘유연하고 끈적끈적하다’라는 뜻이야. ‘유연하다’는 ‘활동적이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지. 마치 양쪽으로 벌릴 수 있는 여행 가방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한 단어 속에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다는 거야.”
“이제 알겠어요.”
앨리스는 신중하게 대꾸하고 계속해서 물었다.
“‘토브’는 뭘까요?”
“‘토브’는 오소리 같기도 하고, 도마뱀 같기도 하고, 나선 모양의 마개뽑이 같기도 한 생물을 뜻하지.”
“매우 괴상하게 생긴 생물이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그것들은 해시계 아래에 둥지를 틀고 치즈를 먹고 산단다.”
“‘빙돌다’와 ‘윙뚫다’는 무슨 뜻이죠?”
“‘빙돌다’는 자이로스코프(회전 운동을 하는 물체-옮긴이)처럼 회전하는 거야. ‘윙뚫다’는 나사송곳처럼 구멍을 뚫는다는 뜻이고.”
“그러면 ‘사이넘길’은 해시계 주변의 잔디라는 뜻인가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앨리스는 자신의 영리함에 스스로 놀랐다.

“물론 그렇지. 그걸 ‘사이넘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앞도 갈 길이 멀고 그 뒤로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너머도 갈 길이 멀죠.”
앨리스가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밈지’는 ‘부서지기 쉽고 불쌍하다’라는 뜻이야. (이것 역시 양쪽으로 벌릴 수 있는 여행 가방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보로고브’는 깃털이 사방으로 뻗쳐 있어서 마치 살아 있는 빗자루처럼 보이는 바짝 마른 꾀죄죄한 새를 말하지.”
“‘몸 레스’는요?”
앨리스는 서둘러 덧붙였다.
“너무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글쎄, ‘레스’는 초록색 돼지의 일종이야. 그런데 ‘몸’은 잘 모르겠군. 집을 떠나왔다는 말을 줄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길을 잃었다는 의미인 것 같아.”
“‘울불다’는요?”
“흠, ‘울불다’는 큰 소리로 우는 것하고 휘파람을 부는 것의 중간 상태야. 재채기도 하면서 말이야. 저 너머 숲에 가면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직접 들으면 확실하게 이해할 텐데.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어려운 시를 알려줬지?”
“책에서 읽었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쉬운 시를 들었어요. 트위들디한테서요.”
“너도 이미 알겠지만, 시라면 나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잘 외울 수가 있지. 한 번 외워볼까…….”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어머,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앨리스는 그가 시를 외우지 않기를 바라며 급히 말렸다.
“이제 내가 외우려는 시는 순전히 너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지은 거야.”
그러나 그는 앨리스의 만류를 무시했다.
앨리스는 그렇다면 듣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닥에 앉으며 조금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겨울에, 들판이 하얘지면
나는 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르네.”
 
“그렇지만 나는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단다.”
험프티 덤프티가 설명을 덧붙였다.
“알아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지 안 부르는지 알다니,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눈을 가졌군그래.”
험프티 덤프티가 차갑게 말했다. 앨리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봄에, 숲이 초록으로 물들면
나는 너에게 설명을 하려네.”
 
“대단히 고맙습니다.”
앨리스는 말했다.
 
“여름에, 해가 길어지면
너는 나의 노래를 이해하게 될까?
 
가을에, 잎들이 갈색으로 변하면
펜과 잉크로, 이것을 적어두렴.”
 
“그럴게요. 그렇게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게 계속 대꾸할 필요 없어.”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생각 없는 짓이야. 시가 중간에 자꾸 끊기잖아.”
 
“물고기에게 편지를 보냈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바다의 작은 물고기들
나에게 답장을 보냈지.
 
작은 물고기들의 답장은
‘우리는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죄송하지만 잘 이해가 안 돼요.”
앨리스가 말했다.
“뒤로 갈수록 더 쉬워져.”
험프티 덤프티가 대답했다.
 
“그들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지,
‘복종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물고기들 답장을 보냈지, 비웃으며,
‘어머, 기분 나쁘신가봐요!’
 
한 번, 두 번 충고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지.
 
나는 커다란 새 냄비를 골랐지
내가 해야 할 일에 적당한 것으로.
 
내 가슴은 뛰었지, 쿵쿵거렸지.
나는 냄비에 펌프 물을 채웠지.
 
곧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해주었다네.
‘작은 물고기들이 자고 있어요.’
 
나는 그에게 말했지, 침착하게.
‘그러면 다시 물고기들을 깨워요.’
 
나는 크고 분명하게 말했다네.
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네.”
 
험프티 덤프티는 이 부분을 외우면서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목소리를 높였다. 앨리스는 몸을 떨면서 생각했다.
“나라면 어떤 대가를 치룬다고 해도 심부름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는 매우 고집스럽고 자존심이 강했지.
그는 말했네. ‘그렇게 큰 소리 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는 매우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스러웠지.
그는 말했네. ‘가서 물고기들을 깨울게요. 만일…….’
나는 선반에서 코르크 마개 뽑이를 찾아서
직접 물고기들을 깨우러 갔지.
 
그리고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땐
당기고 밀고 발로 차고 손으로 두드렸지.
 
그리고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땐
손잡이를 돌리려고 했다네. 하지만…….”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끝난 건가요?”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끝이야.”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잘 가.”
앨리스는 이건 너무나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만 가라는 신호가 너무나 확실했으므로, 더 머무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일어나서 한 손을 내밀었다.
“안녕히 계세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앨리스는 되도록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난다고 해도 다시 너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악수를 하려고 손가락 하나를 내밀며, 험프티 덤프티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다른 사람들하고 너무 똑같이 생겼거든.”
“보통은 얼굴을 보면 알 수가 있잖아요.”
앨리스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불만스러운 것이 바로 그 점이야.”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네 얼굴은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아. 눈이 두 개이고…….”
말을 하면서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허공에 눈의 위치를 찍었다.
“가운데에는 코가 있고, 아래에는 입이 있어. 언제나 똑같아. 만일 네 눈이 코 옆에 있다거나, 예를 들어서 입이 맨 위에 있다거나, 그렇다면 좀 도움이 되겠지.”
“보기 좋지는 않을걸요.”
앨리스가 반박했다. 그러나 험프티 덤프티는 두 눈을 감아버렸고, 이렇게 대꾸했다.
“네가 시도한 뒤에 보자고.”
앨리스는 그가 다시 말을 할까 싶어 조금 기다려보았지만, 그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도, 앨리스를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안녕히!”
앨리스는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무런 대꾸가 없자, 조용히 길을 떠났다. 그러나 앨리스는 걸어가면서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난 모든 불만족스러운 사람들 중에서…….”
(앨리스는 이 말을 크게 반복했다. 이렇게 긴 단어를 말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만난 모든 불만족스러운 사람들 중에서…….”

그러나 앨리스는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아작하고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숲을 온통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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