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나라의 앨리스 제8장

나단비 | 2024.02.27 20:59:14 댓글: 0 조회: 72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0224
제8장 내가 직접 발명한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사방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앨리스는 조금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앨리스는 자신이 사자와 유니콘, 그리고 그 이상한 앵글로색슨족 심부름꾼들에 대한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앨리스의 발밑에는 건포도 케이크가 담겨 있던 커다란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꿈은 아니었어.”

앨리스는 중얼거렸다.

“만약, 만약 우리가 한 사람이 꾼 꿈에 한꺼번에 나온 게 아니라면 어쩌지. 그렇다면 그게 나의 꿈이었으면 좋을 텐데. 붉은 왕의 꿈이 아니고 말이야! 내가 다른 사람의 꿈에 나타나는 건 싫어.”

앨리스는 계속 투덜거렸다.

“가서 왕을 깨워볼까, 무슨 일이 일어나나 보게!”

그 순간 “야호! 야호! 장군!”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서 앨리스의 생각을 방해했다. 붉은 갑옷을 입은 한 기사가 큼지막한 곤봉을 휘두르며 앨리스 쪽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앨리스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너는 내 포로다!”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붉은 기사는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앨리스는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그 순간 자신보다 그 기사가 더 걱정스러워서, 기사가 다시 말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안장에 걸터앉자마자, 그는 다시 한 번 소리치려고 했다.

“너는 내…….”

그러나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기사의 말을 잘랐다.

“야호! 야호! 장군!”

앨리스는 새로운 적의 출현에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번에는 하얀 갑옷을 입은 하얀 기사였다. 그는 앨리스 옆으로 다가오더니, 붉은 기사가 그랬던 것처럼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런 다음 하얀 기사는 다시 말에 올라탔고, 두 기사는 얼마 동안 묵묵히 서로를 노려보았다. 앨리스는 당황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나의 포로다!”

드디어 붉은 기사가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내가 와서 이 아이를 구출했다!”

하얀 기사가 대꾸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아이를 걸고 결투를 할 수밖에 없군!”
붉은 기사가 이렇게 말하며 투구를 집어 들었다. (투구는 말안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말머리처럼 생긴 것이었다.)
“물론, 결투의 규칙은 지키겠지?”

하얀 기사도 투구를 쓰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붉은 기사가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맹렬하게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결투의 규칙이 뭘까.”

몸을 숨긴 채 결투를 훔쳐보면서 앨리스는 생각했다.

“규칙 하나는 한 기사가 다른 기사를 제대로 쳐서 말에서 떨어뜨리는 건가봐. 만일 헛치면 자신이 떨어지고 말이야. 그리고 또 다른 규칙은 서로 곤봉을 끌어안는 것인가봐. 펀치와 주디처럼 말이야. 떨어질 때 나는 소리가 정말 엄청나게 크네! 꼭 난로 연장들이 난로 가로 한꺼번에 쏟아질 때 나는 소리 같은걸! 그런데 말들은 어쩌면 저렇게 얌전할까! 말을 타고 내리는 것이 꼭 탁자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 같아!”

앨리스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또 다른 규칙 하나는 언제나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인 듯싶었다. 결투는 두 기사가 나란히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다시 일어난 두 기사는 악수를 했고, 그런 다음 붉은 기사는 말에 올라타고 떠났다.

“멋진 승리야, 그렇지?”

하얀 기사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앨리스는 우물우물 대답했다.

“저는 누구의 포로도 되고 싶지 않아요. 여왕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될 거야. 다음 개울을 건너가면 말이야.”

하얀 기사가 말했다.

“숲 끝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주마. 그런 다음 나는 물론 돌아가야 해. 나는 거기까지밖에 움직일 수 없거든.”
“정말 고맙습니다.”

앨리스는 인사를 했다.

“제가 투구를 벗는 것을 도와드릴까요?”

분명히 그 투구는 기사가 혼자서 다루기엔 매우 힘들어 보였다. 앨리스는 투구를 흔들어서 간신히 벗겨냈다.
“이제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하군.”

두 손으로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기사가 말했다. 그리고 기사는 부드러운 얼굴과 따스한 눈길을 앨리스에게 돌렸다. 앨리스는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군인은 평생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그는 형편없이 맞지 않는 양철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제재목 상자를 어깨에 거꾸로 매달고 있었는데, 상자 뚜껑이 열려 있었다. 앨리스는 상자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내 작은 상자가 마음에 드는 게로구나.”

기사가 상냥하게 말했다.

“이건 내가 직접 발명한 거야. 옷가지와 샌드위치를 넣기 위해서지. 보다시피 나는 이 상자를 거꾸로 메고 다닌단다. 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말이야.”

“하지만 물건들이 밖으로 나오잖아요.”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뚜껑이 열린 걸 모르셨나요?”

“난 몰랐어.”

기사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럼 물건들이 다 빠져버렸겠군! 그렇다면 이 상자는 아무 소용이 없어.”

기사는 말하면서 상자를 풀었다. 그리고 상자를 덤불 속에 던지려고 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한 나무에 조심스럽게 상자를 매달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겠니?”

기사가 앨리스에게 물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벌들이 이 상자 안에 집을 만들지도 모르잖니. 그럼 나는 꿀을 얻을 수가 있겠지.”

“하지만 이미 벌통 비슷한 것을 안장에 매달았잖아요.”
앨리스가 말했다.

“맞아. 이건 아주 좋은 벌통이야.”

기사는 못마땅한 말투로 대꾸했다.

“최고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벌은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아. 그리고 이 상자는 쥐덫이야. 혹시 쥐가 벌들을 쫓아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아니면 벌들이 쥐를 쫓아버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어느 쪽인지 나는 모르겠어.”

“쥐덫이 왜 필요하죠? 말등에 쥐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앨리스가 말했다.

“있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만약 쥐들이 온다면 멋대로 쥐들이 돌아다니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기사가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기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모든 상황에 대비를 해두는 것이 좋단다. 그래서 말 발목에 저렇게 뾰족한 장식들이 많은 거야.”

“하지만 저것들이 무엇에 필요하죠?”

앨리스는 무척 궁금했다.

“스나크의 이빨을 막기 위해 쓰이지.”

기사가 대답했다.

“그것도 내가 직접 발명한 것이란다. 자, 이제 내가 말에 올라타도록 도와주렴. 너와 숲의 끝까지 가야 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접시는 무엇에 쓰지?”

“건포도 케이크를 담았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것도 가져가는 게 좋겠다. 혹시 건포도 케이크를 발견하면 쓸모가 있을 거야. 이 자루에 넣어보자.”

그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앨리스는 매우 신중하게 자루를 벌렸지만, 기사가 접시를 집어넣는 행동이 매우 서툴렀다. 처음 2∼3분 동안 기사는 자신이 접시 대신 자루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좀 심하게 꽉 차 있지.”

마침내 접시를 집어넣는 데 성공하자, 기사가 말했다.

“자루 속에 초가 너무 많거든.”

그리고 기사는 이미 홍당무 다발이며 난로용 제구들이며, 다른 잡다한 물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안장에 자루를 붙잡아맸다.

“머리카락을 단단하게 묶는 게 어떨까?”

출발할 때, 기사가 말했다.

“저는 늘 이렇게 하고 있는걸요.”

앨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곤란해. 여기에서는 바람이 정말 세게 불거든. 수프만큼이나 진하게 말이야.”

기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을 방지하는 발명도 하셨나요?”

앨리스가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발명했단다.”

기사가 말했다.

“꼭 듣고 싶어요.”

“먼저 곧은 막대기를 하나 들어.”

기사가 말했다.

“그런 다음 머리카락이 막대기를 타고 기어오르게 만드는 거야. 과일나무처럼 말이야. 머리카락이 아래로 늘어지는 것은 아래로 매달려 있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모든 사물들은 반드시 밑으로 떨어지지. 이것도 내가 직접 발명한 거야. 좋다면 실험해보렴.”

‘편리한 발명 같지는 않아’라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앨리스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말없이 걸었다. 그러는 동안 때때로 멈추어서 훌륭한 기수가 아닌 것이 분명한 가엾은 기사를 도와주어야만 했다.

말이 멈추어 설 때마다(말은 아주 자주 멈추었다) 기사는 앞으로 엎어졌다. 그리고 말이 다시 출발할 때마다(말은 주로 갑자기 걷기 시작했다) 기사는 뒤로 벌렁 쓰러졌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꽤 괜찮았다, 옆으로 쓰러지는 습관만 빼고. 기사는 주로 앨리스가 걷는 쪽으로 쓰러졌고, 앨리스는 곧 말 옆에서 조금 떨어져서 걷는 것이 안전하다고 깨달았다.
 
“말 타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으셨나봐요.”

다섯 번째로 쓰러진 기사를 부축하면서, 앨리스는 용기를 내 말했다.

기사는 무척 놀란 듯했고 조금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왜 그런 말을 하지?”

기사가 물었다. 그는 다시 안장으로 기어 올라가면서 반대편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앨리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연습을 많이 한 사람들은 이렇게 자주 떨어지지 않으니까요.”

“나는 충분히 연습했어. 충분히!”

기사는 엄숙하게 말했다.

앨리스는 ‘그래요?’라고밖에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앨리스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그후 그들은 말없이 얼마 동안 걸었다. 기사는 두 눈을 꼭 감고 혼자서 중얼중얼거렸고, 앨리스는 기사가 다시 또 굴러떨어질까봐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말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갑자기 기사가 오른팔을 휘두르면서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균형을…….”

그러나 이때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말이 끊어졌다. 기사가 앨리스가 걷고 있는 길로 정확하게 머리부터 매우 심하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앨리스는 진짜로 겁에 질렸다. 그래서 기사를 부축해서 일으키면서 불안하게 물었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겠죠?”

“별것 아니야.”

기사는 뼈 한두 개쯤 부러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말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말했듯이 균형을 잘 유지하는 거야. 이렇게 말이야.”

기사는 고삐를 놓고, 두 팔을 뻗어서 시범을 보이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로 넘어져서 말발굽 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충분히 연습했어!”

앨리스의 도움을 받아서 일어날 때마다 기사는 계속 그 말을 반복했다.

“충분히 연습했다고!”

“말도 안 돼요!”

이번에 앨리스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기사님은 바퀴 달린 목마를 타셔야만 해요. 그래야만 한다고요.”

“그건 얌전하게 가니?”

기사는 무척 궁금한 듯이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말의 목을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진짜 말보다 훨씬 더 얌전하죠.”

참으려고 애썼지만, 앨리스는 짧은 비명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구해야겠군.”

기사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나 두 개, 아니면 여러 개를 말이야.”

그런 후 짧은 침묵이 흘렀고, 기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발명에 재능이 있어. 너도 눈치챘겠지? 조금 전 네가 나를 부축할 때 내가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던 걸?”

“조금 심각해 보이기는 했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흠, 바로 그때 문을 넘어가는 새로운 방법을 발명했지. 들어보겠니?”

“듣고 싶어요.”

앨리스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 생각을 하게 됐는지 말해주마.”
기사가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어. 유일한 문제는 발에 있다. 머리는 위에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먼저 머리를 문 위에 올려놓는 거야. 그러면 머리는 위에 높이 있게 된단 말이지. 그런 다음엔 물구나무를 서는 거야. 그럼 발도 높이 있게 되잖아. 그런 다음 넘어가는 거야.”

“네. 그렇게 된다면 넘어갈 수 있겠네요.”

앨리스는 생각을 하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아직 그렇게 시도해본 적은 없어.”

기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해.”

그 생각을 하자 기사는 조금 기분이 나빠진 것처럼 보였다. 앨리스는 급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투구가 참 신기해요! 그것도 발명하신 건가요?”

앨리스는 쾌활하게 말했다.

기사는 말안장에 매단 투구를 자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럼.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발명했단다. 설탕덩어리처럼 생긴 걸 말이야. 그걸 쓰면, 말에서 떨어져도 항상 투구가 먼저 땅에 닿았어. 그래서 나는 거의 땅에 떨어지지 않았지. 하지만 대신 내가 투구 속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지. 한 번은 그 일이 일어났는데,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지. 내가 빠져나오기 전에 다른 하얀 기사가 와서 그걸 자기 투구라고 생각하고 써버린 거야.”

기사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앨리스는 감히 웃을 수 없었다.

“그럼 그 사람이 다쳤겠네요. 기사님이 그 사람 머리 위에 있었으니까요.”

앨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나는 그 녀석을 걷어찰 수밖에 없었지.”

기사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녀석은 투구를 다시 벗었어. 하지만 나는 투구를 빠져나오는 데 몇 시간이나 걸렸단다. 나는 정말 빠르거든(빠르다는 영어fast에는 ‘단단한, 꽉 잠긴’이라는 뜻도 있다-옮긴이), 번개처럼 말이야.”

“빠른 게 아니라 꽉 끼었던 것이겠죠.”

앨리스가 말했다.

기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무척 빨랐어. 장담할 수 있다고!”

기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흥분해서 두 손을 위로 번쩍 들었고, 그 즉시 안장에서 굴러떨어져서 깊은 구덩이 속에 거꾸로 처박혔다.

앨리스는 구덩이 옆으로 달려갔다. 한동안 기사가 균형을 잘 잡고 있었으므로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앨리스는 더 크게 놀랐다. 앨리스는 이번에야말로 기사가 진짜 다쳤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구두 밑창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평온한 기사의 목소리를 듣고서 앨리스는 크게 안심을 했다.
 
“무척 빨랐어!”

기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투구를 쓰는 건 경솔한 짓이야. 더구나 그 안에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계속 말을 할 수가 있죠? 거꾸로 서 있으면서요?”

기사의 발을 잡고 끌어내서 강둑의 풀잎 위에 눕혀놓으며 앨리스가 물었다.

기사는 앨리스의 질문에 깜짝 놀란 듯이 보였다.

“내 몸이 어디에 있는 게 무슨 문제가 되지?”

기사는 말했다.

“생각은 똑같이 할 수가 있는데 말이야. 사실, 나는 거꾸로 서 있을 때 더 많은 새로운 발명을 해내거든. 내가 발명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재치 있는 것은.”

기사는 잠시 쉰 후에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고기 정식 요리 사이에 나오는 새로운 푸딩을 발명한 거란다.”

“그렇다면 다음 요리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야 하겠네요?”

앨리스가 물었다.

“어머나, 정말 빨리 요리를 해야 되겠어요!”

“글쎄, 다음 요리를 위해 만드는 건 아니야.”

기사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느릿느릿 대꾸했다.

“그럼 다음 날 준비하겠군요. 저녁 식사에 푸딩이 두 번씩 나올 리는 없잖아요?”

“글쎄, 다음 날을 위한 것도 아니야.”

기사는 조금 전처럼 느릿느릿 대꾸했다.

“다음 날은 아니야. 사실은…….”

말을 하면서 기사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고, 목소리를 점점 낮추었다.

“그 푸딩이 앞으로 진짜 만들어질까도 의심스러워! 그래도 어쨌든 그 푸딩은 매우 재치 있는 발명이었어.”

“뭘로 만드는데요?”

가엾은 기사가 너무나 풀이 죽어 보였으므로, 앨리스는 기사의 기운을 북돋워주려고 물었다.

“그건 흡수 종이부터 시작하지.”

기사는 못마땅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건 그다지 좋지 않겠는데요. 저는…….”

“그것만으로는 그다지 좋지 않지.”

기사는 열기 띤 목소리로 앨리스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화약 가루나 봉랍 같은 다른 것들하고 섞으면 얼마나 달라지는지 너는 짐작도 못할 거야. 그런데 난 여기에서 돌아가야만 되겠구나.”

그들은 숲의 끝에 도착해 있었다.

앨리스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 푸딩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픈 거로구나.”

기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위로가 되는 노래를 불러줄게.”

“아주 긴 노래인가요?”

앨리스가 물었다. 그날 하룻동안 질리도록 많은 시를 들은 뒤였기 때문이었다.

“길지.”

기사가 말했다.

“하지만 매우 매우 아름다운 노래란다.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울든지 아니면…….”

“아니면요?”

기사가 갑자기 말을 끊었으므로, 앨리스가 물었다.

“아니면 울지 않지. 당연하잖아. 그 노래의 제목은 ‘대구의 눈’이라고 불리지.”

“아, 그게 그 노래의 제목이로군요, 그렇죠?”

앨리스는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물었다.

“아니야, 이해를 못 하는구나.”

기사가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목이 그렇게 불린다는 거야. 진짜 제목은 ‘늙고 늙은 남자’야.”

“그러면 ‘노래가 그렇게 불린다’고 말해야 했군요?”

앨리스는 문장을 고쳐서 다시 말했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그건 전혀 다른 거야! 그 노래는 ‘길들과 방법들’이라고 불리는걸. 하지만 그건 단지 그렇게 불릴 뿐이라고.”

“어머나, 그럼 그 노래는 뭐죠?”

앨리스는 이제 완전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금 그 말을 하려던 참이야.”

기사가 말했다.

“그 노래의 진짜 제목은 ‘문 위에 앉아 있는’이며, 선율은 내가 직접 발명했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말을 세우고 고삐를 말의 목에 걸쳐놓았다. 그런 다음, 천천히 한 손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그의 상냥하고 바보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자기 노래의 선율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앨리스는 거울 나라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모든 이상한 일들 중에서도, 이때의 장면을 언제나 가장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앨리스는 바로 어제 일처럼 그때 일을 회상하곤 했다. 기사의 유순해 보이는 파란 눈동자와 상냥한 미소,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던 석양, 그리고 빛을 받아서 눈부시게 번쩍이던 갑옷, 고삐를 목에 건 채 얌전하게 움직이며 발밑의 풀을 뜯어먹던 말, 그리고 뒤로 드리워진 숲의 거무스름한 그림자. 모든 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앨리스는 한 손을 올려서 눈 위에 그늘을 만들고 나무에 기댄 채, 그 이상한 한 쌍을 지켜보며 꿈결인 듯 들려오는 우울한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선율은 그가 직접 지어낸 것이 아니야.’

앨리스는 생각했다.

“이건 ‘나는 그대에게 모두 주었어요, 더 이상 줄 수가 없어요’라는 노래의 선율이야.”

앨리스는 서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너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마.
관계는 거의 없지만.
나는 늙고 늙은 남자를 만났지.
 
문 위에 앉아 있는.
‘당신은 누구시죠, 노인이여?’ 나는 물었네.
‘어떻게 사셨죠?’
그리고 노인의 대답이 내 머릿속을 졸졸 흘렀네,
체 사이로 빠져버리는 물처럼.
 
노인은 말했네. ‘나는 찾아다녔지.
밀밭에서 자고 있는 나비들을.
양고기 파이 속에 그것들을 넣어서
거리에서 팔았지.
사람들에게 팔았어.’ 그가 말했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난 그렇게 먹고 산다네.
조금 들겠나, 어떤가?’
 
그러나 나는 수염을 초록색으로 물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리고 늘 커다란 부채를 들고 다니는 거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말이지.
아무튼, 노인의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서,
나는 소리쳤네.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잖소!’
그리고 노인의 머리를 내리쳤네.
 
노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네. ‘나는 내 길을 걸었소.
그러다가 산 속에서 시내를 만나면
나무 껍질을 벗겨서 표시를 해놓았지.
나중에 사람들은 로랜드 머릿기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었어.
하지만 2펜스 반 페니가 고작이었지.
내가 품삯으로 받은 것은.’
 
그러나 나는 좀더
잘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었네.
날마다 날마다
조금씩 뚱뚱해지려고.
나는 노인을 좌우로 마구 흔들었네,
노인의 얼굴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어떻게 사시는지 말해 달라고요.’ 나는 소리쳤네,
‘하시는 일이 뭐냐고요!’
 
노인은 말했지. ‘나는 대구 눈을 찾아다녔지.
히스 덤불 속에서.
그리고 조용한 밤이면 그것을
조끼 단추 속에 집어넣었지.
하지만 금화를 받은 것도,
은화를 받은 것도 아니라오.
고작해야 반 페니 동전 하나를 받았을 뿐.
그걸로 아홉 개는 살 수 있다오.’
 
‘때로는 버터 바른 롤빵을 찾으려고 땅을 팠지.
게를 잡으려고 새를 잡는 끈끈이 가지를 놓기도 했지.
때로는 풀숲 우거진 언덕을 뒤졌지.
이륜 마차의 바퀴를 찾으려고.
그게 내 사는 방식이야.’ (노인은 윙크를 했네.)
‘난 그렇게 먹고산다네.
기꺼이 잔을 들지.
자네의 건강을 위하여.’
 
나에겐 그때서야 그의 말이 들렸네, 막 나의 계획을
완성했던 거야.
메나이 다리를 녹슬지 않게 하려면
포도주에 넣고 끓이면 되지.
나는 재산을 모은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어서 무척 고맙다고 인사를 했네.
하지만 내 건강을 빌어준 것이
더욱 고마웠네.
 
그리고 이제, 어쩌다 손가락을
풀 속에 담그거나,
미친 듯이 오른쪽 발을
왼쪽 신발에 꾸겨넣거나,
발가락에 무척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할 때,
나는 운다네.
내가 한때 알았던 그 노인이 생각나서─
부드러운 얼굴, 느릿한 말투,
눈보다 하얀 머리카락,
꼭 까마귀 같은 얼굴,
재처럼 붉게 빛나던 두 눈,
슬픔을 잊으려는 듯,
앞뒤로 몸을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입 속 가득 빵을 문 것처럼,
들소처럼 콧김을 내뿜던─
오래전 그 여름 저녁
문 위에 앉아 있던 노인.”
 
기사는 마지막 구절을 부르며, 고삐를 집어들고, 그들이 걸어왔던 길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몇 미터만 가면 돼.”

기사가 말했다.

“언덕을 내려가서 작은 개울을 건너. 그러면 너는 여왕이 되는 거야. 하지만 먼저 나를 배웅해주겠지?”

앨리스가 기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기대에 찬 눈길을 돌리자 기사는 덧붙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기다리다가 내가 저 모퉁이에 도착하면 손수건을 흔들어주겠지! 그럼 기운이 날 것 같거든.”

“배웅해드리고말고요.”

앨리스가 말했다.

“이렇게 멀리 바래다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그 노래요, 무척 좋았어요.”

“그랬기를 바란다.”

기사는 의아스러운 듯이 덧붙였다.

“그런데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울지는 않는구나.”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그리고 기사는 말을 타고 천천히 숲 속으로 멀어져갔다.

“배웅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앨리스는 기사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중얼거렸다.

“또 넘어지네! 언제나 머리부터 떨어진담! 그렇지만 아주 쉽게 다시 올라타네. 저렇게 많은 물건들이 말에 매달려 있어서 그렇겠지.”

계속 혼자 중얼거리면서, 앨리스는 어슬렁어슬렁 걷는 말과 한 번은 이쪽으로, 다음번엔 저쪽으로 굴러떨어지는 기사를 지켜보았다. 네 번인가 다섯 번을 굴러떨어진 후에야 기사는 모퉁이에 도착했고, 앨리스는 손수건을 흔들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운이 나는 데 보탬이 되면 좋을 텐데.”

언덕으로 몸을 돌리며 앨리스가 말했다.

“자, 이제 마지막 개울이야! 그리고 여왕이 되는 거야! 정말 근사한걸!”

불과 몇 걸음만에 앨리스는 개울가에 섰다.

“드디어 여덟 번째 칸이다!”

앨리스는 소리치며 껑충 개울을 넘었다.
 
그리고 작은 꽃무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끼처럼 부드러운 잔디밭 위에 쉬려고 벌렁 누웠다.

“아, 마침내 도착해서 너무나 기뻐! 그런데 내 머리에 이건 뭐지?”

앨리스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며 머리에 딱 맞는 매우 무거운 물건으로 두 손을 올렸다.

“어떻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게 머리에 씌워져 있지?”

중얼거리며, 앨리스는 그것을 벗겨서 살펴보려고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황금 왕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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