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그라운드 브리핑 4ㅡ발견된시체

뉘썬2뉘썬2 | 2024.03.26 10:47:39 댓글: 0 조회: 144 추천: 1
분류단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6592
4



((그가속한 세계에서 진실과 정의는 승리한 자들만의 특권이엿다.))



이주명 국정원 2차장은 전화벨소리에 눈을떳다. 두번째벨이 끝나기전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전화를 받앗다. 벨이 세번이상 울리기전에 수
화기를 들라고 교육받앗고 30년이넘는 조직생활동안 그게 몸에배 이젠
본능처럼 자연스러웟다.


아내는 나지막이 코까지골며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잇엇다. 결혼이후 아
내가 적어도 이주명과 함께잇는동안 전화벨소리때문에 깨여나 본적은 없
엇다.


이주명은 훤칠한키에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뱃살하나없는 사내엿다.
숱이많은 머리카락은 여전히 검엇다. 젊은시절엔 수색대 소대장으로 월남
의 정글을 누비며 삶과죽음의 고비를 무수히 넘겻다.



그의 오른쪽등판에는 베트콩과 육박전을 벌이다 정글칼에 찍힌 상처가 흉
물스런 뱀처럼 남아잇엇다. 왼쪽허벅지에도 소련제 AK자동소총 총알이
지져놓은 시커먼 화상흉터가 징그러웟다.



그날새벽 백병전에선 수색나갓던 19명중에서 그와 오른쪽 다리가 날아간
신참이등병 한명만이 살아남앗다. 산적두목같은 외모지만 속마음은 비단
결이던 털보 박중사. 왼손잡이로 백발백중의 사격솜씨가 일품이던 짝뼈 길
하사. 총알이 폭우처럼 쏟아지는데 혼자 50미터를 포복으로 기여가 베트
콩벙커에 수류탄을 까넣엇던 독종 최상병 등 혈육같던 부하들은 아침해가
떠올랏을때는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아예 형체를 구별할수없는 핏덩어리로
변해잇엇다.



이주명 소위는 허벅지에 총탄한방을 맞고 피를흘리며 부하들을향해 달려
가다 빗맞은 총알이 철모를 때리는바람에 기절하고말앗다. 아침에 정신이
들고나서야 그는 부하들의 시체더미에 깔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졋다는걸
알게됏다. 그로선 남은인생을 무조건 감사하고 미안해하면서 살아야할 이
유가 충분햇다.



월남에서 귀환한뒤 전쟁영웅 대접을 받으며 군에서 승승장구햇지만 이주
명은 가슴한구석에 죄책감을 숨겨두고 살앗다. 베트콩을 잡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마을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적도 잇엇다.



물론 명령에 따른것이엿다. 만일 다시 그당시로 돌아간다면. 이주명은 여
러번 그런질문을 해봣다. 대답은 언제나 똑같앗다. 군복을 입고잇는이상
다른선택을 하지는 못햇을거라고.



새벽에 걸려오는 국정원내부 직통전화가 의미하는건 한가지엿다.


"차장님. 최철규입니다. 급히 보고드릴게 잇습니다."


국내정세 담당인 최과장은 군에잇을때 이주명의 직속부하엿다. 그가 국정
원으로 옮길때 최철규도 대위로 전역한뒤 상관을 뒤따라왓다.



"베스트 서비스건이 해동일보에 터졋습니다.1면사이드와 사회면톱으로 나
갓습니다."


최과장은 간략하게 용건을 말한뒤 입을다물엇다. 자신의 상관이 말많은 정
보요원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걸 알고잇기 때문이다.



"해동일보가 어디까지 접근한것 같은가."


"확실치 않습니다. 기사로만봐선 기본팩트정도만 파악한것 같습니다. 하지
만 일단 사건이 보도된이상 뒤처리가 복잡할것 같습니다."



"언론담당 요원들을 풀어서 기사가 나가게된 배경을 체크하게. 그리고 우리
쪽의 조사는 어디까지 가잇지?"



"정변호사의 행방이 아직도 묘연합니다. 이번사건과 관련된것으로 보이는
살인청부조직 두군데를 추적하고 잇습니다. 머지않아 꼬리가 잡힐것으로
보입니다. X도 감시하고 잇지만 미동도 없습니다. 너무조용해서 오히려 이
상할 지경입니다."



이주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말을이엇다.


"8시에 회의를 할테니까 사건개요하고 지금까지 확인된 부분을 정리해 보
고하게. 민감한 사안이니까 우리쪽 요원들 보안에도 각별히 신경을쓰고."


이주명은 전화를 끊으며 국정원장에게 상황을 알려야할때가 됏다는 생각
을햇다. 그는 가운을 걸치고 아내의잠을 깨우지 않기위해 발걸음소리를
죽이며 서재로갓다. 창밖으로 여명이 터오고잇엇다. 그새벽빛을 타고 운
명의 수레바퀴가 천천히 굴러오는것만 같앗다.


군에잇을때는 세상을 잘몰랏다. 그러나 대령으로 예편하고 국정원에 몸을
담고난뒤 천하를 호령하던 상관들이 순식간에 목이 날아가는걸 수없이 목
격햇다.



지난대선때 전임원장은 야당총재엿던 지금의 대통령을 낙선시키기 위해
정치공작을 총지휘햇다. 하지만 그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쫓겨낫고 오래지
않아 직권남용.수뢰 등의 혐의로 구속됏다. 이주명은 그런판에 몸을담게
된걸 후회햇다. 평생을 군인으로 명예롭게 살고싶던 꿈은 깨진지 오래엿다.
그가속한 세계는 음지엿다. 그곳에서 진실과 정의는 언제나 승리란 자들만
이 누리는 특권이엿다.


'이제나의 차례가 온건가?'


그는혼자 중얼거렷다. 어느편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할것이다. 운명을걸고.


오전10시. 이주명은 대한민국에서 보안이 가장 철벽같은 방에 들어섯다.
널찍한 책상위에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과 침실로 직접 연결되는 두대의
녹색 전화기가 잇엇다.



그옆에놓인 대통령 비서실장. 한미연합사령관. 합참의장. 기무사 사령관
등에게 이어지는 핫라인 전화기들은 그방주인이 가진 권력의 무게를 상징
하는것 같앗다.



구경도 국정원장은 입을 굳게다문채 꼼짝하지않고 보고를 들엇다. 그의
얼굴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엇다. 눈빛도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웟다. 그럴
수록 부하들은 그를 어려워햇다.


"X가 관련됏을 가능성이 높단말이지?살인사건에.."


한동안의 정적을깨고 구원장이 되물엇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정변호사의 실종에 X가 개입한게 거의 분명합
니다. 정변호사는 X의 비자금 관리를 해왓던것으로 보입니다. 둘사이에
서 갈등이 생겻고 정변호사는 살해됏을 가능성이 큽니다."


구원장의 고구마처럼 뾰족하게 튀여나온 대머리와 매부리코가 이날따라
번들거리는것 같앗다.


"이차장은 X가 비자금을 얼마나 조성햇다고 보시오?"


"정확하진 않지만 천억원은 될것으로 보고잇습니다."


구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뒷짐을지고 서성엿다. 이주명의 훤칠한
키때문에 맹꽁이배를 한 작달막한 구원장은 더욱 볼품없어 보엿다. 하지
만 그는 국정원이 중앙정보부이던 시절에 공채로 입사해 수없이많은 정
보전을 치러낸 백전노장이엿다.



"X가 정신이 나갓구먼. 그래 이차장. 어떻게 햇으면 좋겟소."


구원장이 물엇다. 이주명은 대답하지 않앗다. 답변을 듣기위해 질문한게
아니란 사실을 알고잇기 때문이다. 구원장은 스스로에게 묻고잇는 것이
엿다.


"대통령께 보고하실겁니까?"


이주명이 되물엇다. 순간. 구원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납게 쏘아봣다.
이주명도 피하지않고 마주봣다. 어차피 한번은 맞부닥쳐야 할일이다.


구원장은 이내 눈빛을 풀더니 한숨을 쉬면서 창가쪽으로 걸어갓다. 어
느새 성큼다가온 봄기운이 완연햇다. 창문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누런
잔디밭에도 아스라이 연한 연두색물이 스며들기 시작햇다. 살풀이 춤
이라도추듯 아지랑이가 하늘거리며 솟구치고 잇엇다.



"좀두고봅시다. 이차장. 당신이나나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사람
들이란걸 잊으면 안되오. 당신도 알다시피 나역시 정보기관이 정권에
봉사해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잇소. 그러다가 조직도 망가뜨리고 자
기도망친 사람들을 우리가 얼마나많이 봐왓소. 하지만 이건 단순히 대
통령에게 누를끼치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하면 나라전체가 발칵 뒤집
힐수잇소."



구원장이 조용히 말햇다.


"시간을갖고 추이를 지켜봅시다. 당신이나나나 다 옷벗을 각오를하고
말이오."



이주명은 옷을벗는다는 말의의미가 무엇일지를 곱씹으며 천천히 고개
를 끄덕엿다.


"언론은 어떻게 될것같소?"


"해동일보가 먼저 치고나갓으니 신문.방송들 사이에서 속보경쟁이 벌어
질겁니다. 그과정에서 뭐가 터질지 알수없습니다. 해동일보에서 어디까
지 취재가 돼잇는지 확인중입니다."



"정에요원들을 뽑아서 이사건에 매달립시다. 우리가 개입하고 잇다는걸
야당이나 언론이알면 심각한 문제가 될수도 잇으니까 절대보안에 유의
하시오."


구원장은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앗다. '진실'과 '현실'중에서 구원장이
어느편에 서려는것인지 이주명은 알수가없엇다. 어쩌면 자기는 원장의
반대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엇다. 그래서 몹시 두려웟다.




((그럼 사람죽이는 훈련이라도 받은놈들의 소행이라는거야?))



해동일보 편집국은 흥분으로 들떠잇엇다. 오랜만의 짜릿한 특종이엿다.
석간신문이 오히려 해동일보보다 더많은 지면을 할애햇다. 언론사에는
베스트 서비스의 친구들만 잇는건 아닌듯햇다. 방송사의 저녁뉴스도 마
찬가지엿다.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다는것도 영향을 미쳣을것이다.


아침나절 화장실을 가다 마주친 변태룡 부국장은 민기를 아는체도 안햇
다. 하지만 오후에 다시만낫을때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어젯밤에 고
생햇다고 격려까지햇다. 처음엔 어리둥절햇다. 하지만 금방 속셈을 눈
치챗다. 나중에라도 자기가 기사나가는걸 반대햇다는 사실이 알려져 곤
란해질까봐 미리 선수를 치는게 분명햇다.


그날저녁 경찰기자들은 대부분 회사에 들어오지 않앗다. 실종된 정변호
사와 가족들. 그리고 베스트 서비스의 변호사들을 찾아 어딘가 헤매고
잇을게 뻔햇다.



"김선배. 이놈의 직업은 정말 골때려요."


밤11시가 넘어 다음날 뭘 취재해야 할지를놓고 골치를 앓고잇는데 경찰
기자 팀장인 노형대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문을 열엇다.



"왜. 뭐가어때서?"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특종햇다고 기분내는건 몇시간도 안되고 그다음
부터는 속보를 뭘써야할지. 타사가 뭘로 반격해올지 전전긍긍 하고잇으
니 이게 사람 할짓입니까."



"아니. 노선배. 그걸 이제야 알앗어요? 오죽하면 우리직업 이름에 놈자 자
가 들어잇겟냐고요. 기자.기록하는놈. 그게 우리팔자지 뭘."


철민이 입을 삐죽댓다.


"팔자? 그래 팔자인진 모르겟다만. 도대체 내가 눈에 뭐가씌여서 이직업
을 택햇는지 모르겟다. 이학벌에. 이외모에. 이실력에 젠장 오라는곳 천
지엿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딴건다 시큰둥하더란 말이야."



민기는 노형대가 잘나가는 공기업을 때려치우고 동기들보다 2.3년 늦깎
이로 신문사에 들어왓다는걸 떠올렷다.



"그런데말야. 기자하고 거지하고 기생하고는 3년이상하면 절대로 딴직
업 못 선택한단다. 놀아도 다 그주변에서 놀고.형대.너도 입사한지 좀됏
지?너도평생 못빠져나간다.알아?"



기획취재팀 소파에앉아 셋이 그런농담을 주고받는데 멀리서 사회부후배
가 소리쳣다.


"김선배. 이전화 좀 받아보세요. 우리기사 관련해서 할말이 잇다는데요."


민기는 후딱일어나 사회부쪽으로 뛰여갓다.


"김민기 기잡니다."


"저 궁금한게 잇어서 그런디유. 오늘아침에 해동일보에 나온 그 정변호산
가 하는 사람 실종사건 말이유."


술기운이도는 느릿느릿한 사내의 목소리엿다. 충청도 아니면 강원도. 나
이는 40대후반이나 50대초반. 민기는 부지런히 상대방에대해 추측햇다.
정확지않은 발음이나 늘어지는 말투로봐선 교육수준이 높지않아 보엿다.


"해동일보 읽어봣는데유. 그변호사라는 사람은 내가 본것같아서 말이유.
그 실종됏다는 사람 본데를 알려주면 뭐좀잇는가유?"



"정봉은 변호사를 봣다고요?어디에서요?"


민기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높아졋다. 남자는 당황한듯 더듬거렷다.


"아.아니. 내가꼭 그사람을 봣다는것이 아니구유. 그뭐냐. 혹시 그사람이
맞으면 나중에 가족들이 보상금같은걸 주냐 이말이지유."



맥이탁 풀렷다. 이러식의 전화는 십중팔구 엉터리제보다.


"그런건 없엇습니다. 경찰이 내건것도없고."


민기의 대꾸가 시큰둥하게 바뀌여갓다.


"그려유?보상을 받앗다는 사람도 많던디."


상대방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햇다.


"선생님이 어디서 정변호사 비슷한 사람이라도 보셧나보죠."


별게없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사치레삼아 맞장구를쳣다.


"아니. 내가직접 봣다는건 아니구유. 지난번에 춘천갓다오다가 하두 이
상해서유. 근데 사무실서 해동일보가 굴러댕기길래 읽어봣는디유. 운행
날짜를 따져보니까 그날새벽이 분명하더라니까유."



"춘천에는 왜 다녀오셧는데요?"


"아. 맥반석 싣고왓지유."


"맥반석이요? 트럭운전을 하시는가보죠?"


"그려유. 담프트럭. 그런데 그변호사차가 에쿠스라면서유. 내가본것도
에쿠스가 맞다니까유."


민기는 갑자기 생각이 달라졋다.


"어쩌면 진짜 정변호사일지도 모르겟는데요. 좀자세히 말씀해보세요."


트럭운전사는 잠깐 망설이더니 말을이엇다.


"사실은 그날 돌아오자마자 경찰에 신고하려구 햇엇는디 말이유. 괜히 먹
고살기도 바쁜디 오라가라 귀찮게 굴것같아서 관둿시유. 근데 오늘 신문
에 낫더라 이거유."



민기는 취재수첩을 꺼내 재빨리 적어갓다.


"어디요? 청평에서 춘천쪽으로 10킬로미터쯤 가다가 강건너편에 커다란
모텔이 보이는곳이요?"



민기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갓다.


"양복입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에쿠스 승용차가 잇는데로 끌고가고 잇엇
다는겁니까?"


"그렇다니까유. 그날 미끄러워서 진짜로 살살 기여가고 잇엇다구유. 그런
데 에쿠스차를 길가에 삐딱허니 세워논 바람에 사고날뻔 햇시유. 그래서
똑똑히 기억한다니까유. 분명히 그냥 술먹은 사람을 끌고가는건 아니더
라구유."


트럭운전사는 무용담을 말하듯 점점 흥분하고 잇엇다.


"참. 거기서 좀 떨어져서 또 다른차 한대도 잇엇시유. 무슨 외제차 같던디."


"잠깐만요. 연락처를 좀 알려주실수 없습니까. 저희는 경찰처럼 오라가라
하면서 절대 귀찮게 하지않을겁니다. 혹시나중에 가족들이 보상금을 줄
지도 모르고요."



트럭운전사가 화들짝 놀라며 말햇다.


"아유. 관둬유. 사실내가 뭐 돈받으려고 그런건 아니구유. 그냥하두 이상
혀서 나도바쁘니께. 끊어유."



다음날새벽. 동이트기전 민기는 주철민. 경찰출입 송인기와함께 경춘국
도를 탓다. 경찰기자차를 모는 배차실의 천금수씨는 신바람이 나잇엇다.



"김형. 나이거말야 사건현장에 가보는게 얼마만인줄 모르겟어. 요즘은 대
학생들 데모도 안하고 살인사건도 뜸해서 영 취재하는 재미가없어."



천씨의 별명은 쌕쌕이다. 왜소하고 얌전한 천씨는 취재현장에 갈때면 어
지간히 담이큰 젊은 경찰기자들조차도 천천히 가자고 통사정할 정도로
총알같이 차를몰앗다.



사건현장을 수십년간 쫓아다닌 그는 웬만한 기자들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상황파악이 빨랏다. 현장에가면 신참 기자들에게 뭘 취재해야할지 슬쩍
일러줄 정도엿다.



신문사 배차실에 들어온지 30년이 넘엇고 술이 거나해지면 은퇴한 옛날
기자들과 함께 이리역 폭발사고나 대연각 호텔화재현장을 뛰여다니던
시절의 무용담을 신이나서 떠들어댓다.



민기와 후배들은 제보받은 현장주변을 한시간이 넘도록 샅샅이 뒤졋다.
이른새벽녘이라 오가는 차들도 거의없어 꼼꼼히 살펴봣지만 단서가 될
만한건 없엇다. 승용차바퀴에 여러번 깔려 우그러진 금테안경테 하나를
찾은게 전부엿다.



"김선배.허탕같은데요. 그제보가 사실이라고 해도 벌써 2주일이 넘엇고
비도몇번 왓엇잖아요. 스키드마크도 없고 핏자국이라도 남아잇으면 국
립과학수사연구소에 혈흔분석이라도 해달라겟지만."


송인기의 말에 민기는 힘이빠졋다. 제보는 구체적이엿지만 별도리가 없
엇다. 후배들과 막 철수준비를 할때엿다. 100미터쯤 떨어진 도로윗쪽
풀숲에서 왓다갓다하던 운전기사 천금수씨가 큰소리로 불럿다.


"김형!김형! 이리와봐."


천씨는 멀리서 뭔가를 흔들어댓다. 기자들은 일제히 천씨를향해 달려
갓다. 그가 서잇는곳은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언덕꼭대기인데 왼편으로
완만하게 휘여지는 커브길이엿다. 거기에선 양쪽방향에서 오는 차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왓다. 도로에서 강물까지의 높이는 20~30미터 정
도고 30도정도의 경사엿다.


"여기풀숲에 이게 떨어져 잇더라고. 아주 고급같은데.."


천씨는 여기저기 흙탕물이 묻은 파란색 넥타이를 전리품처럼 건넷다.


"형님도참. 뭘그런걸 주워가지고."


주철민이 핀잔을줫다. 하지만 민기는 냉큼 넥타이를 건네받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햇다. 이태리제 밀라센 상표엿다.



"형님. 이걸어디서 찾은거죠?"


"아니. 여기 가드레일이 구겨져잇잖아. 그래서 사고가 낫엇던것 같아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넥타이가 떨어져잇더라고."



민기는 초년병 기자시절 룸살롱주인 납치살인극을 취재햇던 기억이 떠
올랏다. 우연의 일치인가. 그때도 청평이엿다. 납치범들이 룸살롱주인
을 살해한뒤 승용차를 통째로 강물에 밀어넣엇던 것이다.



"너희들 여기서부터 저아래로 내려가면서 뭔가 흔적이 남아잇는지 찾아
봐. 자동차바퀴 흔적같은거 말이야. 미끄러지지않게 조심하고."



후배들은 잠깐동안 멍청히 잇더니 비로소 감이 잡힌다는듯 후닥닥 경사
진 풀숲으로 내려갓다. 3~4분이나 지낫을까.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왓
다.


"김선배 여기뭔가 잇어요. 내려와 보세요."


분명히 승용차 바퀴자국이엿다. 몇차례 내린비로 거의 흔적이 지워지긴
햇지만 주변의 나지막한 관목들이 일정하게 열을지어 꺾여잇는걸로 봐
서 차가 그위로 지나간게 분명해보엿다. 민기는 거세게 흐르는 시퍼런
물살을 뚫어지게 쳐다봣다.



"김형 뭐야. 뭘 찾은거야?"


천씨가 바짝 다가섯다. 민기는 천씨의 어깨에 팔을두르며 고개를 끄덕엿
다.


"그런것 같네요. 역시 우리쌕쌕이 형님은 기자로 특채해야 한다니까."


기자들은 겸연쩍어하는 천씨를 가운데두고 일제히 너털웃음을 터뜨렷다.


오후4시. 강물속에서 정변호사의 시체가 인양됏다. 잠수부들은 안전벨트
를 칼로 끊어낸뒤 단단히 묶여잇던 정변호사를 건져냇다.


경찰은 인양한 시체를 현장에서 200~300미터쯤 떨어진 모래톱에 올려
놓앗다. 감식반원들은 정변호사의 입속에서 부러진 이빨조각들을 끄집
어냇다. 해동일보 사진기자 한명이 시체근처에 접근하기위해 경찰과 옥
신각신하는 모습이 보엿다. 민기는 언덕위에서서 물살빠른 강물속으로
부지런히 풍덩거리며 자맥질하는 잠수부들을 지켜봣다.



"도대체 어떻게 정변호사가 여기 수장돼잇는걸 알앗어?"


김반장이 다가와 물엇다.


"정말 잔인하더구먼. 머리통을 부숴놧으면 됏지. 그것도 모자라 얼마나
두드려팻는지 온몸이 성한데가 없더라고. 그런데 정말 어떻게 알앗어?"


그래도 민기는 대꾸하지 않앗다. 그는혼자 수수께끼를 풀고잇엇다.


"형님. 난 이해할수 없는게 잇어요."


김반장이 민기를 바라봣다.


"베스트 서비스의 경비원들이 죽은게 새벽두세시 쯤이죠. 한데 정변호
사도 같은날 비슷한 시간에 살해됏단 말입니다."


민기가 강물을 노려보며 말햇다.


"정변호사가 그날 죽엇는지. 다른날 죽엇는지 어떻게알아. 시체부검을
해봐도 너무오래돼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것 같은데."


김반장이 코웃음을 쳣다.


"그게아니라 베스트 서비스에 강도가 침입햇던날 새벽에 정변호사가
여기서 몇명에게 끌려가는걸 목격한 사람이 잇단말입니다."


김반장의 눈이 휘둥그레졋다.


"뭐라고? 그게정말이야? 아니 그런게 잇으면 우리한테 얘길해줘야지."


"제보전화엿어요. 그래서 여기서 정변호사가 살해된걸 알게된거고.
제보자는 곧바로 전화를 끊엇는데 이 사건과는 관련없는 단순목격자
가 분명한것 같더라고요."



김반장은 다잡은 고기라도 놓친듯 입맛을 쩝쩝다셧다.


"그렇다면 결국 같은시간에 세명이 살해된겁니다. 경비원 두명은 테레
란로에 잇는 로펌빌딩 안이엿고 정변호사는 여기 청평에서.."



골똘히 생각하던 김반장이 신음소리를 냇다.


"그렇지. 경비원 두명을 죽인 범인은 한놈일수 잇으니까 같은수법을
사용한게 이해가가지. 그런데 여기서 정변호사를 죽인범인은 분명히
다른놈인데 어떻게 살해수법이 똑같으냐 이거아냐."



민기가 고개를 끄덕엿다.


"누군가 여러명에게 동시에 살인청부를 시켯다고 칩시다. 그래도 이
해가 안가잖아요. 형님도 알다시피 살인수법은 지문처럼 제각각 다른
데 이렇게 정수리의 똑같은 부위를 자로잰듯이 찍어서 죽이는게 가능
한걸까?"



"그럼 김기자 얘기는뭐야. 사람죽이는걸 훈련이라도 받은놈들의 소행
이라는거야?"


김반장은 민기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흔들엇다.


"불가능해. 내가아는한 우리나라에 그런애들은 없어. 아마 외국에도
없을거야. 살인청부업자라는게 다 도쿠다이로 뛰는거지 젠장.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자객조직도 아니고."


민기도 인정할수밖에 없엇다. 사회의 밑바닥도 취재해봣고 조직폭력
배들 계보도 꿰고잇지만 집단적으로 살인을 훈련하는 조직을 만드는
건 불가능햇다.


"그런데가 잇긴잇죠."


한참만에 민기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말햇다.


"뭐? 어딘데. 어디서 누가 살인훈련을 한다는거야?"


"경찰하고 군대지뭐. 사람죽이는 방법 가르치는데가 거기말고 또잇나?"


"뭐 경찰? 아니그럼. 우리애들이 청부받고 살인을 햇다고? 어이구 아
예 소설을써라.소설을."


김반장이 툴툴거렷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바람에 폭소를 터뜨
렷다. 모래톱에 놓여잇던 정변호사의 시체가 들것에실려 앰뷸런스로
가는걸 바라보던 민기가 손가락질을 햇다.


"형님. 저기잇는 저여자는 뭡니까? 베이지색 바바리코트 입은 여자 말
이예요. 왜 경찰통제선 안에까지 들어가서 왓다갓다 하고잇지?"


"검사님이지. 검찰에서 이번사건 지휘하려고 파견나오셧다고."


민기가 놀란표정을 짓자 김반장은 쑥스러운듯 말꼬리를 흐렷다. 아마
도 김반장의 딸뻘이나 될게뻔햇다.


"중앙지검에도 검사들이 되게없는 모양이군. 보나마나 초짜겟지. 하긴
요샌 여자들이 사법고시 휩쓰니까. 아무튼 형님 이래저래 고생이 많겟
수."



"무수소리야. 임관한지 별로 안된다는데 아주 야무지더라고. 웬만한
남자검사들보다 훨씬 낫더라니까."


갑자기 방송사차량 몇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내며 언덕배기에 멈
춰섯다. 기자들 여러명이 우르르 차에서 뛰여내렷다.


"형님 정말 이럴거요? 출동할때는 얘길 해줘야 하잖아. 우리보고 방
송리포트 어떻게 하라는거야."


잔뜩 독이오른 목소리가 귓전을 때렷다. 방송사 기자들에게는 1분이
라도 먼저 보도하는게 생명이엿다. 기자몇명이 멱살이라도 잡을듯
씩씩거리며 김반장을 향해 다가왓다.


"허허. 나야 출동명령 받고 정신없이 뛰여나왓는데 나한테 그러면 어
떻게해. 기자들한테 진행상황 알려주는거야 장계장이 하는거아냐?"


김반장은 무던한 사람이엿다. 그는 젊은 사건기자들의 혈기를 대수롭
지않게 받아넘겻다.



"어? 김선배도 여기계셧어요?"


민기의 얼굴을 알아본 타사후배기자 하나가 놀라며 인사를햇다. 신문
이냐 방송사냐를 따질것없이 사회부 사건취재 기자들은 군대를 뺨칠
만큼 규율이 엄햇다. 해동일보에서 시경캡을 지낸 민기에게 후배들은
소속사와 상관없이 예의를 지켯다.


"김선배. 지난번에도 해동일보가 특종하는바람에 저희들만 박살낫습
니다. 그런데 뭘또 노인네가 이런데까지 나오셧어요. 저희같은 쫄따
구들 신경쓰이게."



그중제일 고참으로 보이는 후배하나가 뼈잇는 농담을햇다. 그들은 민
기의 출현이 적잖이 부담스러운것 같앗다.



"그렇지않아도 막가려는 참이다. 나는 신경쓰지말고 취재 열심히들해."


민기는 대기하고잇던 천금수씨의 차에 올라탓다. 방송사 후배기자들
은 그제야 맘이놓인다는듯 부리나케 정변호사의 시체가 놓여잇는 모
래톱쪽으로 뛰여갓다. 위기에서 벗어난 김반장은 민기를 향해 한쪽눈
을 찡긋거린뒤 자기도 천천히 강가로 걸어내려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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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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