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6권 23~24

나단비 | 2024.04.11 18:39:54 댓글: 5 조회: 131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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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사이드 아이들은 애완동물 운도 참 없었다. 아빠가 샬럿타운에서 사온 몽실몽실한 작은 검은색 강아지도 일주일 만에 집 밖으로 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 그 강아지를 보았다거나 강아지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항구 어귀에 사는 한 선원이 자기 배에 작은 검은색 강아지를 태우고 항해를 떠났다는 풍문이 들리긴 했다. 그렇게 그 작은 강아지의 운명도 ‘잉글사이드’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이 일로 월터는 젬보다 더 속이 상했다.
젬은 지프 일로 고통을 당한 후로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 강아지 다음에는 훔치는 버릇이 있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헛간에서 살아야 했던 타이거 톰이 있었다. 그래도 상당히 귀여운 놈이었는데 그 녀석마저 헛간 바닥에 뻣뻣하게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해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러준 다음 골짜기에 묻어야 했다. 마지막으로는 젬의 토끼 번이었다. 젬이 조 러셀에게 25센트를 주고 산 토끼인데 번도 그만 병이 들어 죽었다. 번은 젬이 준 특허약을 먹고 더 빨리 죽은 것인지도 몰랐다. 아닐 수도 있지만. 젬은 조의 충고를 듣고 그 약을 주었고, 조는 분명 그 약이 번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젬은 자기가 벤을 죽인 것만 같았다.

‘잉글사이드에 저주가 내려진 걸까?’
번을 타이거 톰 옆에 묻고 나서 젬은 어두운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터는 번을 위해 비문을 썼고, 월터와 젬, 그리고 쌍둥이들이 1주일 동안 팔에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녀서 수잔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성화를 했다. 언젠가 번이 밖으로 뛰쳐나가 수잔의 뜰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일이 있어서 수잔은 번의 죽음을 그리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그리고 월터가 지하실에 넣어둔 두꺼비 두 마리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수잔이 저녁때 두꺼비 한 마리를 밖으로 쫓아내 버려 다시는 찾을 수 없었고, 월터는 밤새 뜬눈으로 걱정을 해야 했다.
‘둘은 아마 남편과 아내였을 거야. 지금 둘은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되어 몹시 외롭고 슬플 거야. 수잔 아줌마가 쫓아낸 놈은 작은 두꺼비니까 아마 부인일 거야. 부인 두꺼비는 저 넓은 뒤뜰 어딘가에서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겠지. 아무도 보호해줄 이도 없이, 미망인처럼.’
월터는 생각했다.
슬픔에 휩싸여 있을 미망인 두꺼비를 생각하다가 견딜 수가 없어진 월터는 남편 두꺼비를 찾으러 살그머니 지하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수잔이 차곡차곡 쌓아둔 못쓰게 된 양철 그릇들을 뒤엎어버려 죽은 사람도 눈을 번쩍 뜰 만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소리에 잠이 깬 사람은 수잔뿐이었다. 촛불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오는 수잔의 여윈 얼굴에 불꽃이 기분 나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월터 블라이드, 너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아줌마, 나는 그 두꺼비를 꼭 찾아야 해. 생각 좀 해보라고, 아줌마. 아줌마에게 남편이 있는데 그 남편이‘잉글사이드에 저주가 내려진 걸까?’
번을 타이거 톰 옆에 묻고 나서 젬은 어두운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터는 번을 위해 비문을 썼고, 월터와 젬, 그리고 쌍둥이들이 1주일 동안 팔에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녀서 수잔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성화를 했다. 언젠가 번이 밖으로 뛰쳐나가 수잔의 뜰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일이 있어서 수잔은 번의 죽음을 그리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그리고 월터가 지하실에 넣어둔 두꺼비 두 마리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수잔이 저녁때 두꺼비 한 마리를 밖으로 쫓아내 버려 다시는 찾을 수 없었고, 월터는 밤새 뜬눈으로 걱정을 해야 했다.
‘둘은 아마 남편과 아내였을 거야. 지금 둘은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되어 몹시 외롭고 슬플 거야. 수잔 아줌마가 쫓아낸 놈은 작은 두꺼비니까 아마 부인일 거야. 부인 두꺼비는 저 넓은 뒤뜰 어딘가에서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겠지. 아무도 보호해줄 이도 없이, 미망인처럼.’
월터는 생각했다.
슬픔에 휩싸여 있을 미망인 두꺼비를 생각하다가 견딜 수가 없어진 월터는 남편 두꺼비를 찾으러 살그머니 지하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수잔이 차곡차곡 쌓아둔 못쓰게 된 양철 그릇들을 뒤엎어버려 죽은 사람도 눈을 번쩍 뜰 만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소리에 잠이 깬 사람은 수잔뿐이었다. 촛불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오는 수잔의 여윈 얼굴에 불꽃이 기분 나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월터 블라이드, 너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아줌마, 나는 그 두꺼비를 꼭 찾아야 해. 생각 좀 해보라고, 아줌마. 아줌마에게 남편이 있는데 그 남편이 없어졌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어?”
월터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잔이 설명을 요구했다.
수잔이 나타나자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으리라 포기한 남편 두꺼비가 수잔의 야채 절임 항아리 뒤에서 폴짝 튀어나왔다. 월터가 얼른 두꺼비를 집어 창문 밖으로 내보내주었다. 이 남편 두꺼비가 사랑하는 아내 두꺼비를 찾아 두 번 다시 헤어지지 말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저런 것들을 지하실에 갖다 두면 안 되는 거야, 월터. 저것들이 대체 뭘 먹고 살겠어?”
수잔이 엄하게 타일렀다.
“내가 벌레를 잡아다 줄 생각이었어. 난 두꺼비들을 연구해보고 싶었다고.”
실망한 월터가 말했다.
“내, 참 당할 수가 없군.”
화가 난 블라이드 꼬마의 뒤를 따라 층계를 올라가며 수잔이 신음소리처럼 말했다. 그 말이 두꺼비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울새는 그보다 운이 좋았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던 어느 6월 저녁 문가에서 이제 겨우 아기티를 벗은 울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등은 회색 털이고 가슴 쪽은 얼룩덜룩했으며 눈은 무척 반짝거렸다. 이 울새는 처음부터 ‘잉글사이드’ 사람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슈림프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슈림프도 울새가 뻔뻔스럽게 자기 접시에 날아올라 멋대로 자기 밥을 먹어 치워도 내버려두었다. 처음에 식구들은 울새에게 벌레를 잡아 먹였는데 식욕이 어찌나 좋은지 셜리는 온종일 벌레를 파내야 했다. 셜리는 벌레를 잡아 깡통에 넣어서는 집 안 여기저기에 두어서 수잔이 질겁했지만 참아주었다. 콕 로빈은 겁도 없이 일로 마디마디가 굵어진 수잔의 손가락에 올라 앉아 수잔의 얼굴을 쿡쿡 쪼기조차 했다. 그런 울새를 수잔은 아주 좋아했고, 레베카 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울새의 앞가슴이 아름다운 갈색이 도는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내 지력이 쇠해가나 보다고 생각지는 말아요, 미스 듀. 새를 좋아하게 되다니 무척이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누구나 정에는 약한 법이잖아요. 요놈은 카나리아처럼 새장에 갇혀 살지도 않아요. 내가 이제까지 아는 어떤 새하고도 달라요, 미스 듀. 집이든 뜰이든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릴라의 방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기도 해요. 잠은 커다란 사과나무 위에 있는 월터의 관찰대 옆 나뭇가지에 앉아서 자죠. 언젠가는 아이들이 골짜기로 데리고 나갔는데 훌쩍 날아가 버렸지 뭐예요. 하지만 저녁때가 되니까 다시 돌아왔어요. 모두들 무척 기뻐했죠. 나도 기뻤다는 걸 숨길 생각은 없어요.”
골짜기는 더 이상 그저 골짜기로 불려서는 안 되었다. 월터는 그렇게 재미있는 곳에는 온갖 낭만적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 비가 내려서 아이들은 다락방에서 놀아야 했다.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구름 사이로 해가 나타나 글렌 마을을 멋진 햇빛 연못으로 바꾸어놓았다.
“아, 저 예쁜 무지개를 바!”
늘 귀여운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릴라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굉장한 무지개는 본 적이 없었다. 무지개의 한 끝은 교회의 뾰족 지붕 탑에 걸려 있고 다른 끝은 골짜기 위쪽 끝까지 들어와 있는 연못의 갈대가 우거진 구석에 빠져 있었다. 월터는 그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무지개 골짜기’라는 이름을 지었다.
‘무지개 골짜기’는 그 자체가 ‘잉글사이드’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산들바람이 노닐고 새벽에서 해 질 녘까지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저기 숙녀 같아 보이는 하얀 자작나무가 반짝이며 서 있어 월터는 밤마다 조그만 나무의 요정이 나와 자작나무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고 상상했다. 단풍나무 하나와 가문비나무 하나는 아주 가까이 서 있어 가지가 서로 얽혀 있었는데 월터는 이 나무들에게 ‘연인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나무에 낡은 썰매 방울을 달아놓아 바람이 스칠 때마다 요정이 내는 소리 같은 은은한 종소리를 냈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는 용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 가지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나무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얼굴이 가무잡잡한 회교도가 되었고, 개울둑을 따라 파랗게 나 있는 이끼들은 사마르칸트에서 온 더없이 호화로운 카펫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로빈 후드와 그의 쾌활한 부하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샘에는 물의 요정 셋이 살았다. 글렌 마을에 있는 버려진 바클리 할아버지네 집은 풀이 잔뜩 자란 담장과 캐러웨이가 웃자라 있는 정원이 있어 포위된 성으로 쓰기에 딱 좋았다. 십자군의 검은 오랫동안 녹슬어 있지만 ‘잉글사이드’의 고기 칼은 요정 나라에서 만든 칼이 되어주었다. 수잔은 프라이팬 뚜껑이 없어지면 ‘무지개 골짜기’로 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깃털 장식에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용감히 모험을 떠나는 멋진 기사의 방패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끔씩 해적 놀이도 했다. 열 살이 되자 피비린내 나는 놀이를 좋아하기 시작한 젬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월터는 젬이 이 놀이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눈을 가리고 뱃전에서 바다 속으로 내민 널빤지를 걸어가야 하는 부분에서 늘 딱 멈춰 서서 앞으로 가려고 들지를 않았다. 그래서 젬은 월터가 정말로 해적이 될 만한 배짱이 있는 녀석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월터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런 생각은 눌러버렸다. 그리고 학교에서 늘 월터를 ‘겁쟁이 블라이드’라고 놀리는 남자아이들과 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남자아이들은 월터를 놀리면 젬과 주먹다짐을 벌여야 하고 젬의 주먹맛이 상당히 맵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놀리지 않았다.
이제 젬은 저녁 무렵이면 이따금씩 항구 어귀까지 가서 생선을 사오는 심부름도 했다. 젬은 이 심부름이 아주 좋았다. 항구 근처 잡초로 뒤덮인 들판 한구석에 자리 잡은 말라치 러셀 선장네 오두막에 앉아 말라치 선장을 위시해 한때는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선장이었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돌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 틀림없이 해적이었을 거라고 말들을 하는 올리버 리즈 노인은 식인종 왕에게 붙잡힌 일이 있었고, 샘 엘리엇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진을 겪어봤다고 하며, 용감한 윌리엄 맥두걸은 상어와 용감무쌍한 결투를 했다.
앤디 베이커는 맹렬한 회오리바람에 끌려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또한 앤디는 자기만큼 똑바로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은 포 윈즈에 없다고 주장했다. 젬은 매부리코에 하얀 수염이 뻣뻣하게 난 말라치 선장을 제일 좋아했다. 말라치 선장은 겨우 열일곱 살에 쌍돛단배의 선장이 되어 재목을 싣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항해를 떠났다. 양쪽 뺨에 닻 모양으로 문신을 했고, 아주 오래된 훌륭한 태엽 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젬이 태엽을 감게 해주었다. 그리고 기분이 아주 좋을 때는 젬을 대구 낚시나 썰물 때 조개 캐러 나가면서 같이 데려가 주었다. 거기다 기분이 아주 좋을 때는 자기가 직접 깎아 만든 여러 가지 배 모형을 보여주었다. 젬은 그 배들이 모두 낭만적인 영웅의 모험 그 자체로 여겨졌다. 그 배들 가운데는 줄무늬가 있는 네모난 돛을 달고 뱃머리에서 무시무시한 불을 뿜는 바이킹 배도 있었고, 콜럼버스가 탔던 경쾌한 범선, 메이플라워 호, 플라잉 더치맨이라고 불렸던 멋진 배, 아름다운 쌍돛대 범선이며 돛대가 두 개 아니면 네 개나 달린 세로돛식의 경쾌한 범선, 세 돛대 범선, 쾌주선, 재목선 등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배들을 어떻게 깎는지 가르쳐줄 수 있나요, 말라치 선장님?”
젬이 간청했다.
말라치 선장은 고개를 흔들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바다에 침을 뱉었다.
“이건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란다, 젬. 30년이나 40년을 바다에서 살다 보면 저절로 배를 이해하게 되지. 애정을 갖고 이해하게 되는 거야. 배는 꼭 여자와 같은 거란다. 배는 이해해주길 원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제 비밀을 털어놓지 않아. 비록 뱃머리에서 꼬리까지 구석구석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여전히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만 있는 것 같다고. 손에 꼭 쥐고 있지 않으면 새처럼 날아가 버리지. 내가 탔던 배들 중에도 내가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단다. 아무리 그대로 깎아보려고 해도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버리거든. 어찌나 샐쭉하고 고집스럽던지! 그 배와 꼭 닮은 여자도 있었단다. 하지만 이제 그만 입을 다물어야겠다. 병 안에다 배를 집어넣을 준비를 해야 해. 언젠가는 그 비밀을 너한테도 가르쳐주마.”
젬은 그 ‘여자’에 관해서는 더는 듣지 못했지만 엄마와 수잔을 빼놓고는 여자에게 관심도 없어서 상관없었다. 그리고 엄마와 수잔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냥 엄마이고 수잔일 뿐이었다.

지프가 죽었을 때 젬은 다른 개를 결코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주었고 젬은 다시 개를 갖고 싶었다. 지프는 이제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았다. 젬은 짐 선장이 남겨준 골동품들을 넣어둔 다락방 자기만의 동굴 사방 벽에 개들을 빙 둘러 붙여놓았다. 잡지에서 잘라낸 개들이었다. 위엄 있고 덩치가 큰 맹견, 아주 재밌게 뺨이 축 처진 불도그, 누군가가 개의 머리와 뒤꿈치를 잡아 고무줄처럼 잡아당겨 놓은 것 같은 닥스훈트, 털을 다 깎아버리고 꼬리 끝에 동그란 술을 단 것처럼 털을 깎아놓은 푸들, 러시아산 여우사냥개인 폭스테리어, 젬은 이 러시아 여우사냥개가 밥을 먹기나 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난 체하는 포메라니아 개, 얼룩무늬 달마티안 종, 눈이 꼭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 같은 스패니얼. 모두가 훌륭한 개들이었지만 젬의 눈에는 뭔가 빠진 것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데일리 엔터프라이즈>에 실린 광고가 눈에 띄었다. ‘개를 팝니다. 문의는 항구 어귀에 사는 로디 크로퍼드에게 해주세요.’ 광고는 그게 전부였다. 젬은 그 광고가 왜 마음에 와 박혔는지, 그 간단한 문구에서 왜 슬픔을 느꼈는지 알 수 없었다. 로디 크로퍼드가 누구인지는 크레이그 러셀에게 들었다.
“로디의 아버지가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나서 로디는 시내에 있는 숙모 집으로 살러 가게 되었어. 로디 엄마도 오래전에 돌아가셨지. 제이크 밀리슨 씨가 그 농장을 샀는데 집을 부숴버릴 생각이래. 로디 숙모가 개를 못 기르게 한대. 그 개는 대단한 종은 아니지만 로디는 그 개를 무척 좋아해.”
“로디가 개를 얼마에 팔까? 난 1달러밖에 없는데.”
젬이 말했다.

“로디가 원하는 건 무엇보다도 개에게 좋은 집을 찾아주는 일일 거야. 하지만 너희 아빠가 개를 살 돈을 주시지 않을까?”
크레이그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내 돈으로 개를 사고 싶어. 그렇게 하면 더 내 개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젬이 말했다.
크레이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잉글사이드’ 애들은 좌우지간 이상해. 개 같은 것에 누가 돈을 내든 무슨 상관이람?
그날 저녁때 아빠는 젬을 초라한 크로퍼드네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로디 크로퍼드와 개가 있었다. 로디는 젬과 같은 또래로 빳빳한 적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얼굴빛이 좋지 않은 남자아이였다. 개는 부드러운 갈색 귀에 갈색 코와 꼬리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예쁜 눈은 본 적이 없을 만큼 예쁘고 순해 보이는 갈색 눈을 갖고 있었다. 젬은 앞머리에서부터 하얀 줄무늬가 두 눈 사이로 내려와 눈과 코에 테두리를 둘러놓은 것 같은 그 개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개를 팔려고 하니?”
젬이 몸이 달아 물었다.
“난 개를 팔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제이크가 개를 팔지 않으면 물속에 빠뜨려버린댔어. 우리 비니 숙모가 집 안에 개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개를 사려면 얼마를 내야 해?”
젬이 도저히 낼 수 없는 금액을 부를까 봐 두려워하며 물었다.
“로디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개를 내밀었다.”
“여기, 데려가. 난 우리 개를 팔고 싶지 않아. 난 팔지 않을 거야. 우리 브루노는 절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어. 우리 브루노에게 좋을 집을 주고 친절하게 대해주기만 하면 돼.”
로디의 말이 갈라져 나왔다.
“친절하게 해주고말고. 하지만 넌 내 1달러를 받아야만 해. 네가 돈을 받지 않으면 내 개라는 느낌이 안 들 것 같아. 네가 돈을 받지 않으면 난 개를 데려가지 않을 거야.”
젬이 열정적으로 말했다.
젬은 로디의 손에 억지로 1달러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브루노를 받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이 작은 개는 자꾸만 주인을 뒤돌아보았다. 젬은 브루노의 눈을 보지 못했지만 로디의 눈은 보았다.
“너, 개를 그렇게 좋아하면…….”
“우리 브루노를 데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이 개를 사겠다고 다섯 사람이 왔었지만 내가 주지 않았어. 제이크는 화를 많이 냈지만 난 상관없어. 그 사람들은 브루노를 잘 키워줄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너는…… 난 브루노를 키울 수 없으니까 네가 잘 키워주길 바랄게. 얼른 데려가 버려.”
로디가 얼른 말을 내뱉었다.
젬은 얼른 뒤돌아 나왔다. 작은 개는 젬의 팔 안에서 몸을 떨었지만 반항하지는 않았다. 젬은 ‘잉글사이드’로 돌아오는 내내 강아지를 따뜻하게 안고 있었다.

“아빠, 아담은 어떻게 개가 개인 줄 알았을까요?”
“개는 개가 아니고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빠가 싱긋 웃었다.
젬은 그날 밤 너무 흥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젬은 브루노처럼 사랑스러운 강아지는 본 적이 없었다. 로디는 당연히 브루노와 헤어지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루노는 로디를 곧 잊어버리고 자기를 사랑할 것이다. 둘은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엄마에게 정육점에서 뼈를 좀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랑하는 하느님, 이 세상의 모든 고양이와 강아지를 축복해주세요, 특히 브루노를요.”
젬은 기도를 올렸다.
젬은 드디어 잠에 빠졌다. 아마 그 작은 강아지는 젬의 발치에 누워 앞발에 턱을 올려놓고 같이 잠이 들었을 것이다. 아니, 잠이 들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24






콕 로빈은 지렁이만 먹던 습관을 버리고 쌀, 옥수수, 상추, 금련화 씨앗 같은 것도 먹게 되었다. 몸집도 아주 커져서 ‘잉글사이드’의 ‘커다란 울새’로 불리며 그 근방에서 유명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가슴은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변했다. 콕 로빈은 수잔의 어깨에 앉아 수잔이 뜨개질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앤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얼른 날아와 마중하고 저 먼저 앞장서서 집 안으로 깡충깡충 뛰어 들어왔고 아침이면 빵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고 월터의 창문턱으로 날아들었다.
이 울새는 뒤뜰 구석 들장미 울타리 아래에 둔 대야에서 매일 미역을 감았는데, 대야에 물이 담겨 있지 않으면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을 정도로 떠들어댔다. 길버트는 펜이며 성냥이 제자리에 있는 법이 없고 늘 온 서재에 뒹굴어 다닌다고 불평했지만, 아무도 동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길버트도 콕 로빈이 겁도 없이 자기 손바닥에 올라앉아 꽃씨를 쪼아 먹는 것을 보고는 그만 항복해버렸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이 울새에게 매료되어버렸지만 젬만은 그렇지 않았다. 젬의 마음은 온통 브루노뿐이었다. 젬은 천천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돈을 주고 개를 살 수는 있지만 개의 마음까지 살 수는 없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다.
처음에 젬은 그런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브루노도 옛집을 그리워하며 쓸쓸해하겠지만 곧 잊어버리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브루노는 더할 나위 없이 순종적이고 얌전한 개였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해서 수잔조차 이렇게 얌전한 개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브루노에게는 활기가 없었다. 젬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처음에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꼬리를 흔들고 힘차게 출발했지만, 곧 눈은 빛을 잃고 젬 곁에서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걸어갈 뿐이었다.
모두들 굉장히 친절하게 대했고, 가장 맛있고 고기가 많이 붙은 뼈를 브루노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주었으며, 밤마다 젬의 침대 발치에서 자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브루노는 조금도 변하질 않고 여전히 거리를 둔 채 이방인처럼 행동했다. 젬이 자다가 눈을 뜨고 그 작은 몸을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뻗쳐도 한 번도 혀로 핥거나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지 않았다. 쓰다듬는 것은 허락해주었지만 기쁘다는 답례는 없었다.
젬은 이를 악물었다. 제임스 매슈 블라이드는 기어이 이 개의 사랑을 얻고 말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이 개는 내가 힘들게 용돈을 모아 정당하게 산 내 개다. 브루노는 로디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겨낼 것이다. 넋이 빠져버린 듯 비통한 눈빛을 거두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
젬이 브루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아는 학교 남자아이들이 브루노를 괴롭히려 들어서 젬은 브루노를 지키려고 분연히 일어서야 했다.
“네 개는 벼룩이 많아. 아주 큰 벼룩.”
페리 리즈가 놀렸다.
젬이 그런 페리를 한 대 패주어서 페리는 그 말을 취소하고 브루노에게는 벼룩이 단 한 마리도 없다고 말해야 했다.

“우리 강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발작을 일으켜. 네 개는 평생 한 번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을걸. 만일 우리 개가 네 개 같으면 당장 고기 가는 기계에 처넣어버렸을 거다.”
봅 러셀이 자랑했다.
“우리 집에도 전에 그런 개가 있어서 물에 빠뜨려버렸어.”
마이크 드류가 말했다.
“우리 개도 굉장한 개야. 닭을 물어 죽이고 옷을 빨아놓으면 모조리 다 물어뜯어 버리거든. 네 개는 그럴 배짱도 없지?”
샘 워런도 자랑했다.
젬은 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브루노는 그럴 배짱이 없다고 서글프게 인정했다. 브루노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워티 플래그가 “네 개는 참 착한 개야. 일요일에는 짖지를 않잖아.” 하고 외치던 말이 젬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브루노는 일요일뿐 아니라 어떤 날에도 결코 짖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브루노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강아지다.
“브루노, 날 좀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난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우린 함께 아주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고.”
젬은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젬은 항구 어귀로 조개를 구워 먹으러 갔다가 폭풍우가 다가올 것 같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가 거세게 울부짖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기분 나쁘게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젬이 ‘잉글사이드’로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천둥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브루노는 어디 있어요?”
젬이 외쳤다.
어디를 나가면서 브루노를 데려가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그만 강아지가 항구 어귀까지 걸어가기에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 개와 그렇게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 좀 괴로울 것 같아서였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루노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젬이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간 뒤 브루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젬은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비는 이제 폭풍우처럼 퍼붓기 시작했고 세상은 번개로 번쩍번쩍 아수라장이었다. 이런 밤중에 브루노가 집을 나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브루노는 천둥 치는 소리를 무서워했다. 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놓으려는 듯 폭풍우가 퍼붓는 날이면 브루노는 제 발로 젬 옆으로 왔다.
폭풍우는 잦아들었지만 젬이 너무 걱정을 하자 아빠가 말했다.
“내가 항구 어귀로 로이 웨스트코트를 진찰하러 나가야 하니, 젬, 너도 함께 나가자. 돌아오는 길에 크로퍼드네 집에 들러보자. 틀림없이 브루노는 거기 가 있을 거다.”
“10킬로미터나 되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젬이 말했다.
.하지만 정말 브루노는 거기 가 있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그 버려진 크로퍼드네 빈집에 흙투성이 작은 개가 층계에 웅크리고 앉아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지치고 허망한 눈빛으로 둘을 올려다보았다.
젬이 브루노를 안아 올렸다. 무릎까지 파묻히는 무성한 풀을 헤치며 마차까지 오는 동안 강아지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젬은 행복했다. 달이 하늘을 달리고 있었고 구름은 달을 제치고 더 앞서 달려 나갔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길 양편으로 비에 젖은 숲은 어쩌면 그리도 향기롭던지!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제는 브루노도 ‘잉글사이드’에 만족할 거예요, 아빠.”
“아마 그렇겠지.”
아빠는 그렇게밖에 말하지 않았다. 찬물을 끼얹기는 싫었지만 이 작은 개는 이제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무너져 버리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날 밤 이후로 브루노는 거의 먹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먹지를 않았다. 그리고 결국엔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는 날이 와버렸다. 수의사가 왔지만 부르노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했다.
“전에도 슬픔을 못 이겨 먹지 않고 죽었던 개를 봤어요.”
수의사는 그런 말을 했다.
브루노는 의사가 준 영양제를 순하게 받아먹고, 다시 드러누워 앞발에 머리를 얹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젬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오랫동안 브루노를 바라보고 섰다가 아빠와 상의하려고 서재로 갔다.
다음 날 길버트는 시내로 가서 로디 크로퍼드가 사는 곳을 물어물어 알아내어 로디를 ‘잉글사이드’로 데려왔다. 베란다 층계에서 로디의 발소리가 들리자 거실에 누었던 브루노가 얼른 고개를 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다음 순간 말라빠진 그 작은 몸을 창백한 갈색 눈의 소년을 향해 냅다 날렸다.
“사모님, 브루노가 눈물을 흘렸어요. 정말이에요. 눈물방울이 정말 코로 흘러내리더라고요. 내 말을 믿지 못한다고 해도 사모님을 탓하지는 않지요. 나도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믿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날 밤 수잔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말했다.
로디는 브루노를 가슴에 꼭 껴안고 절반은 원망하듯 절반은 애원하듯 젬을 바라보았다.
“네가 브루노를 산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브루노는 내 거야. 제이크가 내게 거짓말을 했어. 비니 숙모는 개를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단 말이야. 하지만 브루노를 다시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네 1달러 여기 있어. 난 1센트도 쓰지 않았다고. 쓸 수가 없었어.”
한순간 젬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브루노의 눈을 보고는 ‘내가 얼마나 돼지 같은 인간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 로디가 내민 1달러를 받았다. 로디가 갑자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가 샐쭉한 로디의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무뚝뚝하게 “고마워.” 하는 한 마디만 내뱉었다.
그날 밤 로디는 젬과 함께 잤다. 실컷 배불리 먹은 브루노는 두 사람 사이에 길게 누웠다. 잠자리에 눕기 전에 로디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데, 브루노는 로디 옆에 궁둥이를 깔고 앉아 앞발을 침대에 걸쳐놓았다. 만일 개가 기도를 한다면 그때 브루노는 기도를 했던 것이었으리라. 삶의 기쁨을 다시 찾은 감사의 기도를.
로디가 먹을 것을 가져오자 브루노는 정신없이 먹었으나, 먹으면서도 로디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젬과 로디가 글렌으로 나서자 브루노는 기쁜 듯 둘 뒤에서 졸랑졸랑 따라왔다.
“저렇게 씩씩한 개는 처음 봤어.”
수잔은 말했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로디와 브루노가 돌아간 뒤 젬은 곁문 층계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젬은 월터와 해적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무지개 골짜기’로 가는 것도 마다했다. 젬은 이제 더 이상 용감무쌍하게 싸우는 일이 신나지도, 정말 해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 사나운 산중 사자처럼 곧 튀어오를 듯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슈림프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고양이는 ‘잉글사이드’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데 왜 개들은 모두 자기의 가슴을 찢어놓는단 말인가?
릴라가 파란색 벨벳 코끼리를 갖다 주었을 때에도 젬은 화를 냈다. 벨벳 코끼리라니, 브루노도 없는데! 낸이 와서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야 한다고 속삭였을 때도 매정한 대접을 받았다.
“이 일로 내가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너는 참 균형 감각도 없구나, 낸 블라이드.”
젬이 단호하게 말했다.
낸은 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주눅이 들어 물러났다. 젬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져가는 해만 애꿎게 노려보았다. 글렌 마을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길 저 아래 사는 젠킨스네 집에서도 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식구들이 모두 번갈아가며 부르고 있었다. 글렌의 모든 집이, 심지어는 저 젠킨스네 집마저도 개를 기르는데 자기만 없었다. 개도 없는 사막 같은 인생이 젬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앤이 내려와 젬 쪽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며 젬보다 낮은 층계에 앉았다. 젬은 엄마의 동정 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브루노는 왜 나를 좋아해주지 않았을까요? 내가 브루노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는, 나는 개가 좋아하지 않는 아이일까요?”
젬이 목멘 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젬. 지프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생각해보렴. 브루노는 그저 사랑이 너무 많은 강아지라서 그런 거야. 브루노는 그 사랑을 로디에게 모조리 줘버린 거야. 그런 개가 있단다. 오직 한 사람밖에 좋아할 수 없는 개 말이야.”
“브루노와 로디는 행복하니까 됐어요. 이젠 개를 기를 생각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
젬이 씁쓸하게 자신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몸을 기울여 엄마의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앤은 젬의 이런 마음이 곧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지프가 죽었을 때도 젬은 지금처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젬의 가슴 깊이깊이 그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다시 ‘잉글사이드’에 개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했다. 가족이 모두 사랑하고 또 좋은 개들이었다. 젬도 그 개들을 쓰다듬어주고 다른 아이들처럼 같이 놀기도 했다. 하지만 ‘젬의 개’라는 것은 없었다. ‘귀염둥이 먼데이’라는 강아지가 젬의 가슴을 차지해 브루노를 잊을 만큼 헌신적으로 젬을 좋아해주기까지는, 그리고 그 헌신적인 사랑이 글렌의 역사가 되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젬은 그날 밤 몹시 외로운 마음으로 침대로 들어갔다.
‘내가 여자아이였으면 좋겠어. 그럼 마음껏 울어버려도 되잖아.’
젬은 생각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4/11 23:56:51

20세기에도 애완동물을 많이키웟네요.비밀의화원에도 울새가 나오더니 여기두 울새가
나오네요.그래서 네이버 검색해보니 참새목 딱새과라네요.그래서 또 딱새두 검색해봣
지요.다 비슷하게 생긴 작은새네요.붉은가슴 울새는 진짜이뻐요.

나단비 (♡.62.♡.158) - 2024/04/12 06:37:00

소설에 또 선택받은 걸 보면 울새가 특별한 새인가봐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4/12 07:14:43

이때의 아이들은 대자연과 동물들과 어울려 크지만 요즘애들은 핸드폰만 만져서
시력도 나쁘고 인지기능도 떨어진다네요.

나단비 (♡.62.♡.158) - 2024/04/12 11:35:20

제가 흙으로 장난치면서 큰 마지막 세대 같아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4/12 14:10:31

우리딸은 고무떡가지고 장난쳣댓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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