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7권 1~2

나단비 | 2024.04.13 19:34:12 댓글: 0 조회: 45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0852
1
귀향






푸른 사과처럼 맑고 푸르른 5월의 어느 날이었다. 포 윈즈의 바다로 어둠이 고요하고 부드럽게 내렸고, 들쑥날쑥한 해안가 사이사이로 보이는 바다에는 서쪽 하늘의 황금빛 구름이 비쳐 있었다. 모래톱에 부딪히는 바닷소리가 어찌나 기괴한지 봄이라고는 해도 슬픈 감정마저 일었다. 하지만 글렌 세인트 메리 마을을 향해 걷는 미스 코넬리아의 편안해 보이는 부인다운 모습과 함께 발랄하고 눈치 빠른 바람이 붉은 항구 길을 타고 불어왔다. 미스 코넬리아가 마셜 엘리엇과 결혼한 지도 어언 13년이나 지났으니, 마셜 엘리엇 부인이라는 호칭이 마땅하겠건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스 코넬리아라고 불렀다. 옛 친구들에게는 옛 이름이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법. 하지만 한 사람만은 일찌감치 그 옛 이름을 버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언제나 엄숙한 표정을 짓고 다니는 ‘잉글사이드’ 블라이드 가의 충직한 가정부 수잔 베이커는 코넬리아 브라이언트를 ‘마셜 엘리엇 부인’이라고 부를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니, 신랄한 말투로 힘주어 ‘엘리엇 부인’이라고 불렀다. “부인이 되고 싶어 했잖아요. 내가 알기로는 부인이 되고 싶어 안달했으니 실컷 부인이라고 불러주겠어요.” 하는 투였다.

미스 코넬리아는 유럽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블라이드 부부를 만나려고 ‘잉글사이드’로 가는 중이었다. 이 부부는 지난 2월에 런던으로 가서 유명한 의학학회 모임에 참석하고, 유럽도 둘러보느라 석 달 동안이나 집을 비웠다. 미스 코넬리아는 이들 부부가 글렌을 떠나 있었던 동안에 일어난 이런저런 일들을 풀어놓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목사관에 새로 이사 온 가족 이야기였다. 미스 코넬리아는 부지런하게 길을 걸으며 그런 가족은 보다보다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수잔 베이커와 처녀 적 이름으로 부르자면 앤 셜리는 ‘잉글사이드’의 넓은 베란다에 앉아 미스 코넬리아가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둘은 황혼 빛을 받아 매혹적으로 변한 세상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단풍나무 가지 사이를 날며 귀엽게 재잘거리는 울새의 노랫소리, 잔디밭을 둘러싼 운치 있는 붉은 벽돌 담장 앞에서 춤추는 노랑 수선화는 마음을 참으로 기쁘게 했다.
앤은 두 손을 무릎에 얌전히 포개놓고 베란다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아이를 여럿 둔 어머니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풋풋해 보였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항구 길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잿빛 감도는 초록 빛깔 아름다운 눈에는 전과 다름없이 꿈과 열정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앤 뒤에 걸린 그물 침대에는 릴라 블라이드가 언제나처럼 통통하고 귀여운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눈가에 우스운 주름이 생기도록 눈을 꼭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섯 살 먹은 꼬마 릴라는 ‘잉글사이드’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고 곱슬거리는 빨간 머리에 옅은 갈색 눈을 가졌다.
누구에게나 ‘구릿빛 왕자님’으로 통하는 셜리는 수잔의 품 안에 잠들어 있었다. 셜리는 갈색 머리에 갈색 눈에 갈색 피부에 볼만 분홍빛이며 수잔의 지극한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이였다. 셜리가 태어난 후에 앤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지내서 수잔이 지극정성으로 셜리의 엄마 노릇을 했다. 물론 수잔이 모든 아이들을 다 사랑하기야 하지만, 사실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블라이드 의사는 수잔이 없었더라면 셜리는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사모님만큼이나 사랑과 정성을 쏟았어요. 이 아이는 사모님 아이지만 내 아이이기도 하다고요.”
수잔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 셜리도 언제나 수잔에게 달려와 볼에 입을 맞추고 품에 안겨 자고 궁둥이를 맞을 일도 모면했다. 수잔은 아이들의 영혼을 구제하려고 필요한 일이다 싶으면 다른 블라이드 아이들의 볼기짝을 때리기도 했지만 셜리만큼은 예외였다.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앤도 때리지 못하게 했다. 한번은 블라이드 의사가 셜리의 궁둥이를 때리려 들었다가 수잔의 성난 반격만 받고 그만둔 적도 있었다.
무서운 표정으로 “저 남자는 천사의 볼기짝도 때릴 거예요. 꼭 그럴 거라고요.” 하고 외치고는 그 가여운 의사 선생님에게 몇 주일이나 파이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블라이드 부부가 집을 떠나 있던 동안에도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에이번리로 보냈지만 셜리만은 수잔이 자기 오빠네 집으로 데려갔다. 그래서 석 달 동안 온전히 자기 혼자만 셜리를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렇더라도 수잔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잉글사이드’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무척 기뻤다. ‘잉글사이드’는 자기 세상이었고 거기서는 자기가 최고였다. 심지어 앤도 수잔의 결정에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었다. 그 때문에 ‘초록 지붕 집’의 레이철 린드 부인은 포 윈즈에 올 때마다 질겁하면서 수잔이 저렇게 집안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었다간 나중에 큰 경을 치게 될 거라며 앤을 엄히 타일렀다.

“저기 항구 길에 코넬리아 브라이언트가 올라오고 있는 게 보이네요, 사모님. 석 달 동안이나 밀린 이야기를 다 풀어놓으려는 거예요.”
수잔이 말했다.
“나도 글렌 세인트 메리 마을 소문에 굶주려 있는걸요, 수잔.”
앤이 무릎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미스 코넬리아가 우리가 없는 동안 일어났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누가 태어났고, 누가 결혼했고, 누가 술에 취해 추태를 부렸고, 누가 죽었고, 누가 이사를 갔고, 누가 이사를 왔고, 누가 싸웠고, 누구 집에서 소를 잃었고, 누구에게 애인이 생겼는지 하는 얘기들이요. 집에 돌아와 다정한 글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어 정말 기뻐요. 모두들 어떻게 지냈는지 빨리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걸으면서도 밀리슨트 드류가 애인 둘 중 누구와 결혼했을까 궁금했다니까요. 수잔, 내가 너무 소문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야 물론 어엿한 부인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소식이 궁금한 법이죠. 나도 밀리슨트 드류의 일은 궁금하기 짝이 없네요. 나야 뭐 애인을 둘은커녕 하나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요. 이제는 그래도 뭐 괜찮아요. 노처녀 생활도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밀리슨트의 머리카락을 보면 꼭 비로 마구 쓸어놓은 것 같아요. 그래도 남자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수잔이 얼른 말을 받았다.
“남자들은 밀리슨트의 그 작고 예쁘고 오만한 얼굴만 보는 거지요, 수잔.”

“맞아요. 딱 그래요, 사모님. 성경에서도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1)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런지 내가 직접 알아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게도 그런 일이 운명적으로 허락되었기만 하다면요. 사람이 모두 천사가 되면 다들 아름다울 거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지만, 모두들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것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소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 항구 마을의 해리슨 밀러 부인이 지난주에 자기 손으로 제 목을 매려고 했대요.”
“어머나, 수잔!”
“아이고, 진정하세요, 사모님. 성공하지는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부인을 탓하지 않아요. 아, 남편이 엄청나게 못된 인간이잖아요. 그래도 자기 목을 맬 생각을 하다니, 바보 같은 일이지요. 그래 봤자 남편이 다른 여자랑 결혼하기밖에 더하겠어요. 내가 밀러 부인이라면 남편을 미치게 해서 내가 아니라 남편이 자살하게 하겠어요. 어떤 경우에나 난 제 스스로 목을 매는 사람을 두둔할 생각 같은 건 없어요, 사모님.”
“그나저나 해리슨 밀러 씨는 뭐가 잘못된 거예요? 늘 사람을 괴롭힌다면서요.”
앤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물었다.
“어떤 사람은 종교 탓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저주받은 거라고도 하죠.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어느 날은 자기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운명에 처했다면서 으르렁거리고, 또 어느 날은 술이나 마시면서 되는 대로 살아버리겠다고 말한대요.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밀러 집안사람은 아무도 멀쩡한 사람이 없거든요. 그 사람 할아버지도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주변에 온통 커다란 검은 거미들이 들끓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 거미들이 자기 몸 위로 마구 기어 다니고 여기저기 날아다닌다고 했어요. 나는 절대로 그렇게 미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사모님. 아니, 내게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베이커 집안에는 그런 기질이 없거든요.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그런 운명을 내려주신다 해도 커다란 검은 거미로는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벌레는 징그럽잖아요. 밀러 부인이 동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 부인이 리처드 테일러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해리슨 씨와 결혼한 거라고 하는데, 앙갚음을 결혼으로 할 수도 있는 것인지 참 이상해요. 물론 나야 결혼 같은 일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는 하지만요, 사모님. 코넬리아 브라이언트가 벌써 대문을 들어서네요. 이제 이 축복받은 구릿빛 왕자님은 침대에다 뉘이고 난 뜨개질거리나 내와야겠네요.”
1. 잠언 31장 30절: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2
소문






오랜만에 만난 미스 코넬리아 쪽에서는 진심 어린 인사를, 앤 쪽에서는 반가움으로 기쁨에 넘친 인사를, 수잔으로서는 위엄을 갖춘 인사를 마치자 미스 코넬리아가 물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어디 있어요?”
“셜리는 침대에 뉘었고, 젬이랑 월터, 쌍둥이는 언제나 나가 노는 ‘무지개 골짜기’에 갔어요. 저 아이들은 오늘 오후에 집에 오자마자 저녁 먹을 때까지도 못 기다리고 거기로 달려 내려갔답니다.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 ‘무지개 골짜기’예요. 단풍나무 골짜기는 비할 바도 못 되죠.”
앤이 대답했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젬이 자기는 죽으면 천국보다 ‘무지개 골짜기’로 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너무 지나친 말이지 싶어요.”
수잔이 암울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에이번리에서 잘 지내다 왔겠죠?”

미스 코넬리아가 물었다.
“그렇다마다요. 마릴라 아주머니가 아이들 버릇을 죄다 버려놓았어요. 특히 젬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마릴라 아주머니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에요.”
“미스 커스버트도 이젠 완전히 할머니겠네요.”
미스 코넬리아가 뜨개질거리를 꺼내며 말했다. 수잔이 뜨개질하는데 자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미스 코넬리아는 훌륭한 여자는 모름지기 항상 손을 놀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릴라 아주머니 연세도 이제 여든다섯이나 되었어요. 머리도 눈처럼 새하얗고요.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시력만큼은 예순 살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답니다.”
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고, 모두들 돌아와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난 정말이지 외로웠어요. 그렇지만 글렌 마을이 조용했던 날은 없었죠. 아, 정말이에요. 내 평생 올봄만큼 시끌벅적했던 적이 없었다니까요. 특히 교회 문제로요. 드디어 우리 목사님을 모시게 됐거든요, 앤.”
“존 녹스 메러디스 목사님이에요, 사모님,”
수잔이 미스 코넬리아만 소식을 다 전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결심한 듯 말했다.
“좋은 분이겠죠?”
앤도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미스 코넬리아는 한숨을 내쉬고, 수잔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래요. 충분히 훌륭한 분이지요. 목사님으로서는요. 성품도 훌륭하시고, 학식도 있으시고, 매우 경건한 분이시구요. 하지만 앤, 그분은 상식이 부족해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분을 모시게 되었죠?”
“설교로 보면 글렌 세인트 메리 교회가 생긴 이래로 그분보다 나은 목사님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스 코넬리아가 칭찬을 하는가 싶더니 금방 비난으로 선회했다. “도시 교회에서 초청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다 그분이 너무 넋을 놓고 멍하니 살기 때문이에요. 그분의 시범 설교는 정말 훌륭했지요. 아, 정말이에요. 모든 사람이 그 설교 말씀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지요. 그리고 그 외모에도요.”
“대단한 미남자예요, 사모님. 그리고 나는 뭐니 뭐니 해도 결국에는 잘생긴 목사님이 설교단에 서 있는 것이 보기도 더 좋더라고요.”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힐 순간이라고 생각한 수잔이 또 말참견했다.
“게다가요, 모두들 얼른 결정해버리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메러디스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좋다고 합의를 본 첫 번째 후보자이기도 했어요. 다른 후보자들은 모두 반대하는 사람이 꼭 있었거든요. 폴섬 씨를 모시자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분도 설교를 훌륭하게 했지요. 하지만 생김새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피부가 너무 까맣고 몸도 너무 말랐어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그 목사님은 아주 커다란 검은 수고양이처럼 생겼어요, 사모님. 난 그런 사람이 일요일마다 설교단에 선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더라고요.”
수잔이 말했다.
“그다음에 오신 분은 로저스 씨였는데, 그 사람은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하긴 로저스 씨가 사도 베드로나 바울처럼 설교했더라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을 거예요. 그날 칼레브 램지 노인이 키우던 양 한 마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잖아요. 그러고는 마침 로저스 씨가 성경 구절을 읽는데 그 양도 같이 큰 소리로 ‘음매애’ 하고 외쳤어요. 모두가 웃고 난리가 났죠. 그 바람에 불쌍한 로저스 씨는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했죠. 어떤 사람들은 스튜어트 씨를 모셔야 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공부도 많이 했고, 신약 성경을 5개 국어로 읽을 수 있다니까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보다 천국 가는 길을 더 확실하게 보장받은 것은 아니에요.”
수잔이 말을 쏘았다.
수잔의 말은 무시하고 미스 코넬리아가 말을 계속했다.
“다들 그 사람 설교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말투가 꼭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어네트 씨가 하는 설교는 전혀 설교도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성경 구절도 가장 나쁜 걸 골랐죠. ‘메로스를 저주하라’2)였거든요.”
“말이 막힐 때마다 성경을 쾅 내리치면서 ‘메로스를 저주하라.’하고 엄숙하게 소리쳤어요. 그 메로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가엾게도 그날 그 사람은 아주 철저하게 저주받았죠.”

수잔이 말했다.
“목사 후보자는 설교할 성경 구절을 잘 골라야 해요. 피어슨 씨도 그때 성경 구절만 잘 선택했더라면 우리 교회 목사로 오게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그만 ‘나는 눈을 들어 저 언덕(hill)을 보리라.’라고 선언했을 때 그 사람 운명은 결판나 버렸죠. 항구 어귀에 사는 힐 집안의 두 딸이 15년 동안이나 글렌 교회 목사들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다들 쿡쿡 웃어버렸거든요. 그리고 뉴먼 씨는 가족이 너무 많았어요.”
미스 코넬리아가 자못 심각한 태도로 말했다.
“뉴먼 씨는 우리 형부인 제임스 클로 집에 머물렀어요. 내가 아이들이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아홉에다 다들 여자 형제를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모두 열여덟인 거죠! ‘세상에나, 엄청나네요!’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와 버리더군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웃고 또 웃고, 웃기를 멈추지 않더군요. 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웃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사모님. 그리고 아이들이 열여덟이나 된다면 그 아이들이 다 들어가 살 수 있는 목사관이 어디 있을 라고요?”
수잔이 말했다.
“그 사람 애들은 모두 열이에요, 수잔. 그리고 열이라도 아이들이 행동거지만 바르다면 지금 목사관 아이들 넷보다 목사관이나 교회 예배에 나쁠 것도 없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앤. 아이들이 아주 말도 못 하게 말썽꾸러기들이에요. 나도 그 아이들이 귀엽기는 해요. 다를 귀여워야 하죠. 그 아이들은 정말로 너무 귀엽게 생겼거든요. 누가 목사관에서 그 아이들에게 예절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줄 사람만 있다면 정말 좋은 아이들이 될 거예요. 학교 선생님 말로도 아이들이 전부 다 아주 모범생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집에만 오면 완전히 다른 아이들이 되어버려요.”
미스 코넬리아는 내가 참아주어야지 어쩌겠느냐는 심정인 모양이었다.
“메러디스 부인은요?”
앤이 물었다.
“메러디스 부인은 없어요. 그것이 문제죠. 메러디스 씨는 홀아비예요. 그 사람 부인은 4년 전에 세상을 떴어요.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사람을 우리 교회로 모시지도 않았을 거예요. 교인들에게는 미혼인 목사보다 홀아비가 훨씬 더 좋질 않거든요. 하지만 그 목사님은 자기 자식들 이야기는 별로 하지도 않았고, 우리는 당연히 부인이 있는 줄 알았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보니 부인은 없고 마사 할머니밖에 없더군요. 그 할머니는 메러디스 씨 어머니의 사촌언니예요. 듣자하니 그 할머니가 양로원으로 가게 된 것을 목사님이 모셔온 거라더군요. 나이가 일흔다섯이고,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는 눈에다 귀도 거의 들리질 않는대요. 거기다 성격도 몹시 고약하고요.”
“음식 솜씨도 형편없고요, 사모님.”
“도저히 목사관을 관리할 만한 사람이 아닌 거죠. 하지만 메러디스 씨는 마사 이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서 가정부도 두려고 들지 않는대요. 있잖아요, 앤. 지금 목사관은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에요. 모든 것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제자리에 놓인 물건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페인트칠도 다 새로 하고 벽지도 새로 발랐건만 그새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미스 코넬리아가 비통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넷이라고 했나요?”

벌써 그 아이들에게 어머니다운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앤이 물었다.
“그래요. 아이들이 마치 계단처럼 줄줄이 이어져 있죠. 제일 맏이는 제럴드인데 열두 살이고 모두들 제리라고 불러요. 아주 똑똑한 아이예요. 페이스는 열한 살이에요. 꼭 남자아이처럼 그야말로 말괄량이지만 아주 그림처럼 예쁘게 생겼답니다.”
“보기에는 천사 같은 아이가 장난치는 것을 보면 아주 입이 딱 벌어져요, 사모님. 지난주 저녁에 내가 목사관에 들렀을 때도 마침 제임스 밀리슨 부인이 와 있더군요. 계란 한 줄과 우유 한 동이를 가져왔더라고요. 아주 작은 양동이지만요. 페이스가 그걸 받아 지하실로 가져갔어요.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갔는데 그만 넘어져버렸어요. 계란이랑 우유를 다 뒤집어써 버렸지요. 그 꼴이 어땠을지 상상이 되죠, 사모님? 하지만 그 애는 깔깔 웃으며 올라오더니 ‘내가 페이스인지, 커스터드 파이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제임스 밀리슨 부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펄펄 뛰었어요. 주는 대로 다 버리고 못쓰게 만든다면 다시는 목사관에 무얼 가져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면서요.”
수잔이 엄숙하게 말했다.
“밀리슨 부인이 목사관에 뭘 가져갔다고 해서 손해 본 것은 없어요. 그날 밤 그걸 가지고 간 것은 순전히 호기심을 채우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고요.”
미스 코넬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페이스는 언제나 그렇게 실수를 저질러요. 굉장히 덤벙거리고 충동적이거든요.”
“꼭 나 같은가 보네요. 페이스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앤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애는 아주 씩씩해요. 난 씩씩한 아이들이 좋더라고요, 사모님.”
수잔도 인정했다.
“그래요, 그 아이에게는 뭔가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어요.”
미스 코넬리아도 인정했다.
“그 애는 언제 봐도 웃는 모습이에요. 그 아이가 웃는 것을 보면 나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군요. 교회에서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질 못한다니까요. 우나는 열 살인데 아주 예쁘고 귀여운 아이예요. 토머스 칼라일은 아홉 살이죠. 다들 칼이라고만 불러요. 두꺼비나 벌레, 개구리 모으는 걸 그렇게 좋아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걸 죄다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죠.”
“지난번에 그랜트 부인이 목사관에 갔을 때 응접실 의자에 죽은 쥐를 둔 것도 칼이 한 짓이 분명할 거예요. 그때 그 부인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어요. 목사관 응접실이 죽은 쥐나 두는 곳은 아니잖아요. 하긴 거기에 쥐를 놓아둔 것이 고양이 짓이었는지도 몰라요. 그곳 고양이도 악마 같은 녀석이니까요, 사모님. 목사관 고양이는 속이야 어떻든 겉모양이라도 위엄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고양이는 하는 짓이 꼭 건달이에요. 거기다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목사관 용마루를 거닐어요. 꼬리를 살살 흔들면서요. 정말 꼴불견이라고요.”
수잔이 말했다.
“그리고 가장 봐주기 힘든 일은요, 아이들이 옷을 제대로 입고 다닌 적이 없다는 거예요. 눈이 내리는 날에도 아이들이 맨발로 학교를 간다니까요. 앤, 그래도 목사님의 아이들이 그건 너무 심하잖아요. 특히나 감리교 교회 목사 딸은 언제나 아주 멋진 단추가 달린 부츠를 신고 학교에 다니는데요. 그리고 아이들이 감리교회 묘지에 가서 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미스 코넬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 묘지가 목사관 바로 옆에 있으니 거기서 놀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 거예요. 나도 언제나 묘지는 너무 재밌는 놀이장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앤이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사모님. 사모님이 얼마나 상식 있고 행동거지가 바른 분인데요.”
충직한 수잔이 앤을 보호하려고 나섰다.
“그나저나 왜 애초에 목사관을 바로 묘지 옆에다 지었을까요? 목사관 잔디밭은 너무 좁아서 묘지 외에는 아이들이 놀 만한 곳도 없는데 말예요.”
앤이 물었다.
“그게 실수지요. 하지만 거기가 땅값이 쌌어요. 그리고 다른 목사관 아이들은 묘지에서 놀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고요. 메러디스 씨가 아이들이 묘지에서 놀거나 말거나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그래요. 하지만 목사님은 집에 있으나 마나예요.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백일몽에 잠겨 멍하니 오락가락하는 게 전부니까요. 아직까지는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일을 잊은 적은 없지만, 기도회는 두 번이나 잊어버려서 장로 한 사람이 목사관으로 가서 목사님을 모셔왔어요. 패니 쿠퍼의 결혼식도 잊어버렸어요. 목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더니 글쎄, 평상시 집에서 입는 옷에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채로 달려왔답니다. 감리교인들이 비웃지만 않았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런데 꼭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일이 있지요. 그 목사님이 설교만큼은 아무도 비난하거나 시비를 못 걸게 잘한다는 거예요. 설교단에만 서면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거든요. 정말이에요. 감리교회 목사님 설교는 형편이 없잖아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나는 다행히 들어본 적이 없지만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미스 코넬리아가 결혼한 후로 남자를 경멸하는 버릇은 좀 덜한 것도 같지만 감리교인에게는 여전히 인정사정없었다. 수잔의 얼굴에 은밀히 미소가 떠올랐다.
“이봐요, 마셜 엘리엇 부인. 사람들이 그러는데,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합친대요.”
“그래요? 그런 일은 내가 죽은 다음으로 미뤄주었으면 좋겠군요. 난 어떤 일이 있어도 감리교인과는 상종하지 않을 거니까요. 메러디스 목사님도 그 사람들은 피하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정말이지 우리 목사님은 그 사람들과 너무 지나치게 허물없이 지내요. 제이컵 드류 씨의 은혼식 피로연 만찬회에 가서도 곤란한 일만 당했잖아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을 쏘았다.
“무슨 일을 당했는데요?”
“드류 부인이 목사님에게 구운 거위 고기를 잘라달라고 부탁했대요. 제이컵 드류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거나 할 줄을 몰랐나 봐요. 어쨌건 목사님은 고기를 잘라보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만 옆에 앉아 있던 리즈 부인의 무르팍에 고기를 떨어뜨려버렸지 뭐예요. 목사님은 멍하게 ‘리즈 부인, 그 거위 고기를 제게 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했대요. 리즈 부인은 물론 순한 양처럼 고기를 ‘돌려’주었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났지요. 그날 새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니까요. 설상가상으로 리즈 부인은 감리교인이잖아요!”
“하지만 그 부인이 장로교인이었던 것보다는 나았을걸요. 만일 그 부인이 장로교인이었더라면 교회를 떠나버렸을 테니까요. 우리는 신도를 하나라도 잃으면 안 될 처지잖아요. 게다가 리즈 부인은 자기 교회에서도 별 인기가 없어요. 너무 거만한 사람이라 감리교인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메러디스 씨가 그 부인의 드레스를 망쳐놓은 것을 알았으면 기뻐했을 거라고요.”
수잔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내 말은요, 목사님이 그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불쾌하다는 거예요. 목사님에게 부인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요!”
미스 코넬리아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목사님 부인이 한 다스가 있었어도 드류 부인이 은혼식에 어울리지도 않는 거위 고기를 내놓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수잔도 똑같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남편이 부추긴 거래요. 제이컵 드류는 과시욕이 있고 인색한데다 아주 자기 멋대로만 하려는 피조물이잖아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그 부부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결혼한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살아야지 그래서야 쓰나요. 물론 나는 그 방면에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수잔이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획 젖히며 덧붙였다.
“그리고 난 무조건 남자 잘못이라고 탓하는 사람도 아니지요. 드류 부인도 상당히 인색한 사람이에요. 그 부인이 지금까지 남에게 준 것이라고는 쥐가 빠진 크림으로 만든 버터 한 단지가 전부였다고 하더군요. 그것을 교회 모임에 내놓았대요. 그것이 쥐가 빠진 것인 줄은 먹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고요.”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메러디스 가족이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들은 죄다 감리교인이었어요. 2주일 전에도 제리가 감리교회 기도회에 갔다지 않아요. 윌리엄 마시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는데, 마시 할아버지가 일어서서 평소와 같은 쉰 목소리로 자기 신앙에 대한 소신을 밝혔답니다. 그러자 제리가 ‘한바탕 떠들고 나니 기분이 좀 나으세요?’ 하고 물었대요. 제리는 그 할아버지가 정말로 안쓰러워 보여서 한 소리지만, 마시 할아버지는 제리가 건방지다며 불같이 화를 냈대요. 제리가 그 기도회에 간 것부터가 잘못이지요. 목사관 아이들은 가도 될 곳이나 안 될 곳이나 가리지를 않고 가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항구 어귀에 사는 알렉 데이비스 부인만큼은 가만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어요. 그 부인은 부자라서 목사님 월급을 거의 다 부담하고 있는데 성격이 아주 예민하잖아요. 벌써 그 부인이 메러디스 아이들처럼 제멋대로인 애들은 보지를 못했다는 말을 했대요.”
수잔이 말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저는 메러디스 사람들이 ‘요셉을 아는 종족’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결론적으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지요.”
미스 코넬리아도 인정했다.
“그래서 나쁜 일이 있어도 다 용서가 되는 거라고요. 이제는 뭐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인걸요. 감리교인에게서 우리 목사님을 지키려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해요. 이제 항구 마을로 내려가야겠어요. 마셜이 곧 집에 올 시간이에요. 오늘 항구 건넛마을에 갔는데 저녁은 집에 와서 먹겠다고 했거든요. 꼭 사내다운 말이지요. 아이들을 못 봐서 서운하네요. 의사 선생님은 어디 가셨어요?”
“항구 어귀예요. 집에 온 지 3일이 되었지만 그동안 자기 침대에 누운 시간이 고작 3시간밖에 되지 않고, 집에서 식사한 적도 두 번밖에 없어요.”
“6주 동안이나 의사 선생님이 돌아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아픈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어요. 그나저나 항구 건너편에 사는 의사는 로브리지 장의사 딸과 결혼했는데 모두들 그 사람 속마음이 뭔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 결혼이 별로 좋게 보이질 않는다고요. 되도록 빨리 의사 선생님과 함께 와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줘요. 아주 멋진 시간을 보냈을 거 아니에요.”
“그랬지요. 우리의 오랜 꿈을 이루었어요. 유럽 대륙은 너무나 멋지고 훌륭하더군요. 하지만 돌아와 보니, 역시 고향이 좋네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은 이곳 캐나다예요, 미스 코넬리아.”
앤이 말했다.
“그렇고말고요.” 
미스 코넬리아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가장 멋진 곳은 우리 정다운 프린스에드워드 섬이고, 포 윈즈는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가장 멋진 항구지요.”
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황혼에 휩싸이고 있는 글렌 마을과 항구와 바다를 돌아보며 앤은 그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풍경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유럽에서도 이보다 아름다운 곳은 보지 못했어요, 미스 코넬리아. 벌써 가시게요? 아이들도 미스 코넬리아를 보지 못했다고 섭섭해할 거예요.”
“아이들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해줘요. 도넛 항아리는 언제나 가득하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이 언제 한번 저녁 먹고 내려가겠다고 했답니다. 아마 곧 찾아갈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시 적응해야 할 일이 급해요. 그리고 쌍둥이는 음악 레슨도 받기로 했답니다.”
“설마 그 감리교회 목사 부인에게는 아니겠죠?”
미스 코넬리아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 아니에요. 로즈마리 웨스트에게 받기로 했어요. 어젯밤에 그분에게 가서 그렇게 하기로 정했답니다. 미스 웨스트는 참 예쁜 분이더군요!”
“로즈마리는 아직 젊고 예쁘죠. 그래도 한창때 같지는 않지만요.”
“난 미스 웨스트가 참 매력적인 아가씨라고 생각했지만 잘은 몰랐어요. 집이 너무 후미진 곳에 있고, 교회에서가 아니면 만날 일도 없었구요.”
“모두들 로즈마리 웨스트를 좋아하죠. 사람들이 로즈마리를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요. 엘런은 언제나 로즈마리를 꼼짝 못 하게 하죠. 말하자면 엘런이 좀 독재적이에요. 하지만 로즈마리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주는 면도 많아요. 로즈마리는 마틴 크로퍼드와 약혼했었죠. 그런데 그 사람은 막달레나 호를 타고 항해를 나갔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어요. 그 배에 탄 선원이 모두요. 그때 로즈마리는 아이나 다름없었어요. 겨우 열일곱 살이었거든요. 그 일을 겪고 나서 로즈마리는 사람이 달라져 버렸어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 후로는 엘런과 단둘이 살았죠. 자기들이 다니던 로브리지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았어요. 엘런이 장로교회에 나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감리교회에 나가는 것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죠. 그건 나도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웨스트 집안은 감독교파였거든요. 로즈마리와 엘런은 경제적으로 궁하지 않아요. 로즈마리가 음악 레슨을 해야 할 필요는 없죠.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요. 로즈마리는 레슬리하고도 먼 친척이에요. 이번 여름에도 포드네가 항구 마을에 오나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했다.
“아니요. 이번 여름에는 일본에 간대요. 1년 정도는 떠나 있을 건가 봐요. 오언이 쓸 새 소설의 무대가 일본이라네요. 이번 여름엔 우리가 ‘꿈의 집’을 떠난 후로 처음으로 집이 비게 될 거예요.”
“오언 포드가 소설로 쓸 소재는 여기 캐나다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텐데요. 자기 부인이랑 애꿎은 아이들을 끌고 일본 같은 이교도 나라로 가지 않고도요. 《짐 선장의 인생록》은 오언이 쓴 소설 중에 최고예요. 그 소재도 바로 여기 포 윈즈에서 얻었잖아요.”
미스 코넬리아가 불평했다.
“그 소재는 짐 선장님이 주셨죠. 짐 선장님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얻은 것을요. 하지만 오언의 책은 참 재미있어요.”
“그렇죠.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어요. 나도 오언의 작품을 빠짐없이 읽고 있긴 하지만, 난 어쩐지 소설이나 읽는 것은 시간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오언에게 편지를 써서 이번 일본행에 내 생각을 전해야겠어요. 그 사람도 케네스와 퍼시스를 이교도로 전향시키고 싶은 생각이야 없겠죠?”
미스 코넬리아는 그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마음에 담고 ‘잉글사이드’를 떠났다. 수잔은 릴라를 침대에 눕히러 갔고, 앤은 초저녁 별 아래 베란다 계단에 앉아 포 윈즈 항구 위로 떠오르는 달빛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하는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종작없는 꿈에 잠기기도 했다.
2. 사사기 5장 23절: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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