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7권 29~30

나단비 | 2024.04.16 15:35:20 댓글: 0 조회: 7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1486
29
유령 이야기






이른 유월의 어느 날 저녁 ‘무지개 골짜기’는 무척이나 유쾌한 곳이었고, 거기 앉아 있는 아이들도 모두 기분이 좋았다. ‘연인 나무’에 달린 방울은 요정의 방울처럼 딸랑딸랑 예쁜 소리를 울렸고, ‘하얀 숙녀’는 초록빛 머리를 빗어 내렸다. 바람이 친근하게 웃음 짓고 속살거렸으며 분지에 자라는 어린 양치류는 향내를 풍겼다. 거뭇한 전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산벚나무에서 떨어지는 하얀 꽃 이파리는 안개처럼 온 골짜기를 덮고 있었다.
‘잉글사이드’ 뒤쪽 단풍나무 숲에서는 울새가 노래를 불렀고, 저 멀리 글렌 마을 비탈 과수원에도 꽃들이 만발해 예쁘고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지금은 봄철이고 어린것들은 모두 봄철이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었다. 그날 저녁 ‘무지개 골짜기’에 나와 앉아 있는 아이들도 그저 마음이 들떠 있었다. 메리 밴스가 헨리 워런의 유령 이야기를 해서 피가 얼어붙게 하기 전까지는.
젬은 입학시험 준비를 하느라 저녁마다 ‘잉글사이드’ 다락방에서 공부를 해서 그 자리에 없었다. 제리도 연못에서 송어를 낚느라 없었다. 월터는 아이들에게 롱펠로의 바다에 관한 시를 읽어주어 모두 배의 아름다움과 불가사의함에 빠져 있었다. 그다음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 이야기했다. 저 멀리 아름다운 나라를 보러 갈 것이다. 낸과 다이는 유럽에 갈 작정이었다. 월터는 이집트의 사막을 지나 나일 강에 가보고 싶었다. 스핑크스도 볼 것이다.
페이스는 암울하게 자기는 아무래도 선교사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테일러 부인이 자기는 선교사가 될 운명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신비로운 동양 땅 인도나 중국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칼의 마음은 아프리카 정글에 가 있었다. 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는 그 어디도 아닌 집에 머물고 싶었다. 여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온 세계로 흩어져 버릴 거라는 생각은 싫었다. 우나는 그런 생각을 하자 쓸쓸해져 향수병에 걸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즐거운 꿈을 꾸고 있었다. 그때 메리 밴스가 와서 아이들의 멋진 꿈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아이고,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아. 저 언덕을 숨넘어가게 달려 내려왔어. 베일리네 빈집이 너무 무서웠거든.”
메리가 숨차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다이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 집 정원에 은방울꽃이 피었는지 보려고 라일락 꽃나무 아래를 살펴보고 있었거든. 거기는 음침했어. 그런데 갑자기 정원 저쪽 벚꽃나무들 있는 쪽에서 뭔가가 부스럭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났어. 하얀 것이었지. 너무 무서워서 다시 한 번 돌아보지도 못하고 얼른 담을 넘어 도망쳐 왔어. 틀림없어 헨리 워런의 유령이었을 거야.”
“헨리 워런이 누군데?”

다이가 물었다.
“그 사람은 뭣 때문에 유령이 됐어?”
낸도 물었다.
“어머나, 너희들 그 이야기 못 들어봤니? 너희들은 글렌에서 자랐으면서도 말이야. 내가 숨을 다시 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모두 이야기해줄게.”
월터는 기대감으로 몸이 다 오싹했다. 월터는 유령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 불가사의함, 극적인 클라이맥스, 몸이 오싹오싹해지는 섬뜩함이 아주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롱펠로의 시조차 금방 시시하니 매력을 잃어버렸다.
월터는 책을 치워버리고 몸을 내밀어 턱을 손으로 받치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끝냈다. 그 반짝이는 커다란 눈은 메리의 얼굴에 딱 고정되어버렸다. 메리는 월터가 자기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싫었다. 월터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으면 유령 이야기를 훨씬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텐데. 이야기를 더 무섭게 하려면 몇 가지 장식을 더 붙이고 꾸미고 해야 하건만 월터가 그러고 있으면 순전히 사실 이야기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니면, 사실이라고 자기가 들은 이야기든지.
메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들어봐, 30년쯤 전에 저 언덕 위의 집에 톰 베일리 할아버지와 그의 부인이 살았다는 건 너희들도 알지. 그 톰 할아버지는 지독한 망나니였고, 그 부인도 할아버지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대.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어. 하지만 톰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죽으면서 남긴 아이가 하나 있었지. 그 아이가 바로 헨리 워런이야. 그 아이를 톰 할아버지네가 맡아 길렀지.

헨리가 열두 살 때 그 집에 처음 왔는데 몸도 작고 무척 허약한 아이였대. 톰 할아버지 부부는 처음부터 그 아이를 가혹하게 대했대. 매질을 하고, 굶기기도 하고 말이야. 사람들은 그 부부가 아이를 죽이려고 그런다고 했어. 그래야 헨리 부모가 남긴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헨리는 바로 죽지 않았어. 곧 죽지는 않았지만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어. 간질이었대. 그러는 동안에 정신이 이상해져 버렸고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았대.
헨리 외삼촌은 저기 정원 한구석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헨리를 끌고 가서 매질을 했대. 하지만 매 맞는 소리가 다 들렸대. 그 불쌍한 헨리가 외삼촌에게 제발 자기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대. 하지만 누구도 그 일을 말리고 나설 용기가 없었어. 왜냐하면 톰 할아버지는 아주 망나니 같은 사람이라 보복당할 게 두려웠으니까. 항구 곶에 살던 남자 하나가 톰 할아버지를 화나게 했을 때도 그 사람 헛간을 불태워버렸대.
결국 헨리 워런이 죽어버렸는데 톰 할아버지는 헨리가 발작을 일으켜 죽은 거라고 했대. 하지만 모두들 사실을 알았지. 톰 할아버지가 마침내 진짜로 헨리를 죽여 버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어.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헨리의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도 났고. 귀신이 저 정원에서 돌아다녔대. 밤이 되면 신음 소리가 나고 우는 소리도 들렸대. 그 통에 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부로 가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대. 그 후로 저 집은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는 소문이 나서 아무도 사려고도, 빌리려고도 들지 않아 빈집으로 남게 된 거래. 그래서 저 집이 저렇게 황폐한 채로 있는 거야. 그리고 이건 30년 전 이야기지만 헨리 워런은 지금도 저곳에 나타난대.”
“그런 이야기를 믿니? 나는 믿지 않아.”

낸이 비웃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헨리를 보았다고 하는데도? 헨리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헨리 유령은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의 다리를 붙들고 살아 있을 때처럼 애원하고 신음 소리를 낸대. 난 나무들 사이로 하얀 것이 보이자마자 그 생각이 났어. 그리고 그것이 나를 붙들고 신음하면 죽은 척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정신없이 도망쳐온 거야. 헨리 워런의 유령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만, 난 유령에게 내 운명을 맡길 생각은 없어.”
메리가 대꾸했다.
“스팀슨 할머니네 하얀 송아지가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베일레네 빈집 뜰에 풀어놓아 기르거든. 난 그 소를 본 적도 있어.”
다이가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이제 절대로 베일리 빈집 정원으로는 다니지 않을 거야. 저기 제리가 송어를 잔뜩 잡아서 온다. 이번에는 내가 요리를 할 차례야. 젬과 제리 둘 다 내가 글렌 최고의 요리사라고 말했어. 그리고 엘리엇 아주머니가 과자를 한 판이나 주셨는데 헨리 유령을 보고 도망치느라고 모두 흘려버렸지 뭐야.”
메리가 생선을 구우면서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주었지만, 제리는 유령 이야기를 듣고도 싹 무시해버렸다. 월터는 페이스가 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려고 가고 없어서 장식을 좀 넣어 더 무섭게 이야기를 했건만 제리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페이스와 우나와 칼은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속으로 무서워 떨고 있었다. 모두 같이 ‘무지개 골짜기’에 있을 때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파티도 끝나고 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그 이야기가 다시 생각나 몸이 오싹했다.
제리는 젬을 만나려고 블라이드 아이들과 함께 ‘잉글사이드’로 갔고, 메리 밴스도 그쪽으로 길을 둘러 돌아갔다. 그래서 페이스와 우나와 칼은 셋이서만 목사관으로 돌아가야 했다. 셋은 될 수 있는 대로 베일리 정원에서 멀리 떨어져 서로 몸을 가깝게 붙이고 걸었다. 아이들은 물론 거기서 귀신이 나온다고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30
헨리 워런의 유령






페이스와 칼, 우나는 헨리 워런의 유령 이야기를 털어내 버리지 못했다. 아니,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딱 달라붙어 버렸다. 지금까지는 귀신 따위를 믿지 않았다. 메리 밴스에게 이보다 훨씬 더 오싹한 귀신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다 먼 곳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들으면서 오싹한 스릴감을 즐기고 곧 잊어버릴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는 집까지 따라왔다. 그 버려진 베일리 정원은 목사관 바로 옆에 있었고, 아이들이 매일 가서 노는 ‘무지개 골짜기’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매일 그곳을 지나다녔다. 그 정원으로 가서 꽃을 꺾기도 했고, 마을에서 골짜기까지 지름길을 통해 가려고 그 집 정원을 질러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메리 밴스에게 그 섬뜩한 이야기를 들은 날 밤 이후로 아이들은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는 그곳을, 아니 그 근처도 지나지 못했다. 땅 위를 기는 헨리 워런의 귀신에게 붙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죽음밖에 더 있겠는가!
더운 7월 저녁 무렵 세 아이들은 ‘연인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다른 아이들이 ‘무지개 골짜기’에 나오지 않아서 조금 쓸쓸했다.

젬 블라이드는 입학시험을 치르러 샬럿타운에 갔고 제리와 월터 블라이드는 크로퍼드 선장 할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낸과 다이와 릴라 그리고 셜리는 ‘꿈의 집’에 와 있는 케네스 포드와 퍼시스 포드네 집에간다고 항구 길을 내려갔다. 낸이 페이스더러 함께 가자고 했지만 페이스가 거절했다. 페이스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아주 예쁘고 도시 아이답게 무척 세련되었다는 말을 듣는 퍼시스 포드에게 은밀히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누구의 들러리 노릇이나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페이스와 우나는 ‘무지개 골짜기’로 가서 이야기책을 읽었고, 칼은 개울가에서 벌레를 관찰하며 세 아이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베일리 정원은 기분 나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보였다. 칼은 여자아이들 쪽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셋 다 아까 훤할 때 집으로 갔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커다란 벨벳 같은 자줏빛 구름이 골짜기 위 서쪽 하늘을 덮었다. 갑자기 사방이 바람 한 점 없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늪지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개똥벌레로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 저녁에 요정들의 회의가 열린 것 같았다. 다른 날과는 다르게 ‘무지개 골짜기’는 더 이상 기분 좋은 곳이 못 되었다.
페이스는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골짜기 너머 베일리 정원 쪽을 바라보았다. 피가 얼어붙는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바로 그때 페이스의 피는 확실히 얼어붙었다. 페이스의 눈이 뭔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어서 칼과 우나도 페이스가 보고 있는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거기에, 어둠이 내린 베일리 정원의 커다란 낙엽송 아래 풀이 잔뜩 돋아난 돌담 위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하얀 것이 있었다. 세 메러디스 아이들은 돌로 변해버린 듯 그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앉아 있었다.
“저건, 저건 송아지야.”
우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저걸 송아지라고 하기엔, 너무 커.”
페이스가 속삭였다. 페이스의 입과 입술은 너무나 말라 있어 말을 내뱉기도 힘들었다.
갑자기 칼이 소리쳤다.
“저게 이리로 온다.”
여자아이들은 마지막으로 고통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그것이 정말로 담 위로 슬글슬금 기어갔다. 소라면 절대로 저럴 수는 없었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와 이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순간 세 아이는 자기들이 헨리 워런의 유령을 보았다고 완전히 믿었다. 칼이 벌떡 일어나 잽싸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자아이들도 비명을 지르며 칼을 뒤따랐다. 아이들은 미친 듯 언덕을 뛰어올라 길을 건너고 목사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까 집을 나설 때는 마사 이모할머니가 부엌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거기 없었다. 아이들은 이제 서재로 달려 들어갔다. 서재는 어둑하니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몸을 돌려 ‘잉글사이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지개 골짜기’를 가로질러 갈 수는 없었다. 두려움에 질린 아이들은 날개라도 돋친 듯 언덕을 달려 내려가 글렌을 지났다. 칼이 맨 먼저 앞장서고 우나는 맨 뒤에 달렸다.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을 멈추려고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본 사람들은 모두 저 목사관 악동들이 이번에는 무슨 못된 짓을 꾸미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잉글사이드’ 대문께서 빌렸던 책을 돌려주고 나오는 로즈마리 웨스트를 만났다. 

로즈마리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모두 뭔가 끔찍한, 정말로 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과 눈이었다. 로즈마리는 한쪽 팔로 칼을 붙잡고 다른 팔로는 페이스를 안았다. 우나는 로즈마리에게 달려들어 꼭 붙들었다.
“얘들아, 무슨 일이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겁을 먹었어?”
로즈마리가 물었다.
“헨리 워런의 유령이에요.”
칼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대답했다.
“헨리 워런의 유령이라고!”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로즈마리가 어안이 벙벙해 외쳤다.
“네. 유령이 저기 있어요. 베일리네 빈집 돌담에요. 우리가 봤어요. 그것이 우리를 쫓아왔어요.”
페이스가 정신없이 훌쩍이며 말했다.
로즈마리는 정신이 나가버린 아이들을 ‘잉글사이드’ 베란다로 데리고 갔다. 앤과 길버트는 ‘꿈의 집’에 가고 없었고, 수잔이 비쩍 말랐지만 현실적이고 귀신 같지는 않은 모습으로 문가에 나타났다.
다시 한 번 아이들이 그 섬뜩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로즈마리가 아이들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말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건 올빼미였을 거야.”

수잔이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말했다.
“올빼미요?” 
메러디스 아이들은 그 후로 수잔이 제대로 된 말을 한다고 믿지 않았다!
“그건 올빼미 백만 마리보다도 더 컸어요. 그리고 그것이 메리가 말한 대로 기어 다녔다고요. 우리를 잡으려고 돌담을 기어 내려왔어요. 올빼미도 기나요?”
칼이 훌쩍이며 말했다. 그 이후로 칼은 그 일로 얼마나 자신을 창피하게 여겼는지 모른다.
로즈마리는 수잔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뭔가 무서운 것을 본 모양이에요.”
로즈마리가 말했다.
“내가 가서 확인해봐야겠어요.”
수잔이 시원하게 말했다.
“자, 얘들아, 진정들 하거라. 너희들이 무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은 아니야. 가엾은 헨리 워런도 말이다. 무덤에 들어가 보니까 너무 편안하고 좋아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게 분명해. 절대로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들 하지 마라. 이 아이들에게 잘 알아듣도록 이야기 좀 해주세요, 미스 웨스트. 내가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 와야겠어요.”
수잔은 의사가 건초밭 일을 하다 뒤뜰 울타리에 기대놓은 쇠스랑을 손에 들고 용감하게 ‘무지개 골짜기’를 향해 떠났다. 정말로 ‘그것’을 만난다면 그 쇠스랑이 별 쓸모도 없겠지만 일종의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는 무기였다.

수잔이 ‘무지개 골짜기’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둑하고 잡풀이 우거진 베일리 정원에서 하얀 것이 넘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수잔은 용감무쌍하게 정원을 살펴본 다음 정원 너머에 있는 스팀슨 부인의 집까지 가서 쇠스랑으로 문을 두드렸다.
한편 ‘잉글사이드’에서는 로즈마리가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충격 속에서 훌쩍거렸지만 슬그머니 자기들이 헛것을 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잔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 의심이 분명해졌다.
수잔은 진지한 얼굴로 안락의자에 앉아 손 부채질을 하며 천천히 말했다.
“너희들이 보았다는 유령의 정체를 알아냈다. 스팀슨 할머니가 공장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면 보자기 두 장을 베일리 정원에 일주일 동안 널어두었단다. 풀도 많지 않고 깨끗한 낙엽송 밑 돌담 위에 널어놓았대. 그래서 오늘 저녁에 그것을 걷으러 나갔는데 손에 뜨개질감을 들고 있어서 홑이불을 어깨에 걸치고 왔다는 거야. 그러다 뜨개질바늘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대. 그래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바늘을 찾고 다니는데 아래 골짜기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거야. 고개를 들어보니까 아이들 셋이 마구 달려가기에 무엇에 물려 그런 줄 알았다더라. 그 할머니도 놀라서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버릴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단다. 그러고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서 강심제를 먹었지만 아직까지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아마 올여름이 다 지날 때까지도 오늘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
메러디스 아이들은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져 앉아 있었고 ,로즈마리의 이해심과 동정하는 마음으로도 그런 감정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목사관 문가에서 제리를 만나 후회하는 마음으로 오늘 일을 고백했다. 선행 클럽 회의를 내일 아침에 열기로 했다.
“아까 만났던 미스 웨스트가 우리에게 무척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어?”
페이스가 침대에 누워 속삭였다.
“그래, 계모가 되면 사람이 그렇게 변해버린다니 너무 아쉬워.”
우나도 인정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페이스가 충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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