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4

나단비 | 2024.02.06 10:09:36 댓글: 2 조회: 143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5802
제4장 날아가기


“오른쪽으로 두 번째, 그리고 아침이 될 때까지 곧장 가면 돼.”

그것이 바로 네버랜드로 가는 길이라고 피터는 웬디에게 일러 주었다. 하지만 지도를 갖고 다니며 바람 부는 모퉁이에서 들여다보는 새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설명만 가지고는 그곳을 눈으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피터는 뭐든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할 뿐이니까.

처음에 동행자들은 그를 무조건 신뢰했으며, 날아가기의 기쁨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교회 첨탑을 비롯해서 날아가는 동안에 자기네 마음에 드는 높은 물체가 있으면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존과 마이클은 경주를 했고, 마이클이 앞서 나갔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전의 일까지는 아닌데, 고작 방 안을 빙글빙글 날아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멋진 친구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며 창피해했다.

오래전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이 생각으로 웬디가 심각하게 불안해하기도 전에, 이들은 바다를 날아서 건너고 있었다. 존은 이 바다가 자신들이 건너는 두 번째 바다이며, 이날은 자신들이 날아가는 세 번째 밤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빛이 있었으며, 지금은 너무 추웠다가 다시 너무 더워지기도 했다. 그들은 정말 때때로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배고픈 척 시늉만 했던 것일까? 왜냐하면 피터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는 유쾌하고도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법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먹이를 부리에 물고 날아가는 새를 쫓아가서, 그 먹이를 낚아채는 것이었다. 그러면 새들도 쫓아와서 그걸 도로 낚아채 갔다. 그러다보면 그들은 몇 킬로미터씩이나 즐겁게 서로를 쫓아다니곤 했으며, 나중에 가서는 서로 호의를 표시하면서 헤어지곤 했다. 하지만 웬디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을 얻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기묘한 편이며, 이 세상에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피터가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정말로 졸렸으므로 그저 졸린 시늉만 하지는 않았다. 이건 위험한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잠들어 버리는 순간, 그들은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더 끔찍한 사실은 피터가 이를 재미있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저기 또 시작이네!” 그는 즐거운 듯 소리를 질렀다. 마이클이 갑자기 돌멩이처럼 뚝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구해 줘, 구해 주라고!” 웬디는 공포에 떨면서 소리소리 지르며 저 아래 있는 잔인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결국 피터가 공중을 가로질러 아래로 몸을 날렸고, 바다에 빠지기 직전에야 마이클을 붙잡았는데, 그가 그렇게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멋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곤 했으므로,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보다는 단지 자기 똑똑함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여러분도 느꼈을 것이다. 아울러 그는 다양성을 좋아해서, 한 순간에는 마음을 빼앗았던 놀이가 갑자기 흥미를 끌지 못하기도 했으므로, 다음번에 여러분이 떨어질 때에는 그가 가만 내버려 둘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그는 공중에서 자면서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으며, 단지 등을 아래로 하고 누워서 둥둥 떠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는데, 어쨌든 어느 정도는 그가 워낙 가볍다 보니 만약 여러분이 뒤에서 그에게 입김을 불어 주면 더 빨리 날아갈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더 공손하게 대해 줘.” 웬디가 존에게 속삭였다. 두 사람이 ‘나 따라 해 봐라’ 놀이를 할 때의 일이었다.

“그럼 그에게 잘난 척 좀 그만하라고 하든가.” 존이 말했다.

‘나 따라 해 봐라’ 놀이를 할 때에 피터는 수면 가까이 날면서 물 위를 지나는 동안 상어의 꼬리를 하나하나 만졌는데, 그 모습은 여러분이 철책을 지나가는 동안 손가락으로 그 살을 하나하나 만지는 것과 똑같았다. 그들은 그를 따라 했지만 그리 성공을 거두지는 못해서, 어쩌면 상대방이 잘난 척하는 듯 보였을 것이며, 특히 그들이 놓친 꼬리가 몇 개나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피터가 계속 뒤를 돌아볼 때에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너희는 그에게 착하게 굴어야만 해.” 웬디는 남동생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만약 그가 우리만 놔두고 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우리가 알아서 돌아갈 수 있어.” 마이클이 말했다.
“그가 없는데 돌아갈 길을 어떻게 찾으려고?”

“음, 그러면, 계속 가면 되지.” 존이 말했다.

“그건 끔찍한 일이야, 존. 당연히 우리는 계속 가야만 할 거야. 어떻게 멈추는지를 모르니까 말이야.”

그건 사실이었다. 피터는 멈추는 방법을 그들에게 시범으로 알려 주는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존의 말에 따르면, 만약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계속 나아가는 것뿐인데, 왜냐하면 세계는 둥글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기네 집의 창문으로 반드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리 먹을 건 누가 가져다주는데, 존?”

“나는 저 독수리의 부리에서 조금씩 낚아채기를 상당히 잘하고 있다고, 웬디.”

“무려 스무 번이나 시도해서 말이지.” 웬디가 그에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먹을 것 구하기는 잘하게 된다 하더라도, 혹시 구름이나 다른 것과 부딪쳤을 때 그가 곁에 없어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봐.”

실제로 이들은 계속해서 뭔가에 부딪치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발을 너무 많이 굴러야 하긴 했지만, 이제 힘차게 날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저 앞에 구름이라도 보일 경우, 이들이 구름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틀림없이 거기에 부딪치곤 했다. 만약 나나가 이들과 함께 있었다면, 그 개는 지금쯤 마이클의 이마에 붕대를 둘둘 감아 주었을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 피터는 함께 있지 않았고, 그 높은 곳에는 오로지 이들만 있어서 어쩐지 외로운 느낌이었다. 그는 이들보다 훨씬 더 빨랐으므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이들과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어떤 모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느 별에게 자기가 해 준 무척이나 우스운 이야기 때문에 깔깔거리며 아래로 내려왔지만, 정작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잊어버린 다음이었으며, 또는 인어의 비늘이 몸에 달라붙은 채 위로 올라왔지만, 정작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가 없었다. 인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이들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오히려 좀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일들을 저렇게 빨리 잊어버린다면” 웬디가 주장했다. “그가 계속 우리를 기억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어?”

정말로 가끔은 그가 어딘가에 다녀와서는 그들을 미처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고, 설령 기억하더라도 아주 잘 기억하지는 못했다. 웬디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하마터면 그가 이들에게 가벼운 인사만 건네고 무심코 지나갈 뻔했던 찰나, 그의 눈에 간신히 알아본 기색이 떠오르는 것도 그녀는 보았다. 한번은 그녀가 자기 이름을 그에게 다시 말해 주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나 웬디야.” 그녀는 초조해하면서 말했다.

그는 매우 미안해했다. “저기, 웬디.” 그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언제라도 내가 널 잊어버린다면, 그때마다 말해 줘. ‘나 웬디야’ 하고. 그러면 나도 기억이 날 거야.”

물론 이 정도로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그는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부는 강한 바람 위에 편하게 눕는 시범을 보여 주었고, 이는 무척이나 즐거운 변화였기 때문에 이들은 이 방법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이제 자기들이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그들은 더 오래 잘 수도 있었겠지만, 피터는 잠자는 것에도 금세 싫증을 내고는 이내 특유의 대장 목소리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여기서 내려야 돼!” 그리하여 이들은 때때로 말다툼을 벌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신이 나서 떠들면서 네버랜드 근처로 다가갔다. 여러 번 달이 뜬 뒤에야 이들은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으며, 그뿐만 아니라 줄곧 가장 빠른 길로 가고 있었는데 이것은 피터나 팅크의 안내 덕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섬이 그들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그곳에 있는 마법의 바닷가를 목격하는 것은 오로지 그런 경우뿐이었다.

“저기 있어.” 피터가 차분하게 말했다.

“어디, 어디?”

“화살들이 모두 가리키는 곳에.”
 
실제로 백만 개나 되는 황금 화살이 아이들에게 그 섬을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그 모든 화살은 이들의 친구인 태양이 겨냥한 것으로, 그는 밤이 되어 떠나기 전에 이들이 갈 길을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웬디와 존과 마이클은 공중에서 까치발로 일어나 그 섬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이들은 그곳을 첫눈에 알아보았으며 두려움이 엄습하기 전까지 환호성을 질렀는데, 이들의 기분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뭔가를 마침내 보았을 때라기보다는 오히려 명절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서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와 같았다.

“존, 저기 석호가 있어.”

“웬디, 거북이들이 모래밭에 알 낳는 것 좀 봐.”

“있잖아, 존, 다리가 부러진 너의 홍학을 나는 봤어.”
“저것 봐, 마이클, 저기 너의 동굴이 있어!”

“존, 저기 관목 숲에 있는 저건 뭐지?”

“그건 늑대와 그 새끼들이야, 웬디. 내 생각에는 저기에 누나의 작은 새끼 늑대도 있을 것 같아.”

“저기 있는 건 내 보트야, 존. 양쪽 옆구리에 구멍이 났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왜, 우리는 네 보트를 불태워 버렸잖아.”

“그건 누나의 보트였어, 여하간. 있잖아, 존, 내 눈에는 인디언 마을의 연기도 보여!”

“어디? 나도 봐 봐. 연기가 둘둘 말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전쟁에 나서는지 어떤지를 내가 맞힐 수 있으니까.”
“저쪽이야. 미스티리어스 리버〔신비스러운 강〕 바로 건너편에.”

이들이 이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피터는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만약 이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한다면, 그의 승리는 손쉬울 것이었다. 왜냐하면 곧이어 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하게 된다고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 일은 황금 화살이 날아가자마자, 섬이 어스름에 잠기면서 닥쳐왔다.

예전에 집에 있을 때에도, 잠잘 시간이 되면 네버랜드는 항상 어딘가 어둡고 위협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안에서도 미처 탐험되지 못한 구역들이 떠올라 펼쳐졌으며, 검은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육식동물들의 으르렁대는 소리도 그즈음에는 상당히 달라졌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자기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여러분은 야간등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한다. 심지어 여기 있는 것은 벽난로 선반에 불과하다는, 그리고 네버랜드는 모두 꾸며 낸 것이라는 나나의 말조차도 여러분은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네버랜드는 그 당시에만 해도 꾸며 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이었으며, 야간등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두워졌지만, 도대체 나나는 어디 있단 말인가?

이들은 한때 서로 떨어져서 날아갔지만, 이제는 피터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의 무신경한 태도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고, 그의 눈은 반짝였으며, 서로의 몸에 닿을 때마다 이들의 몸에는 짜릿한 흥분이 훑고 지나갔다. 이제 그들은 두려운 섬 위에 있었고, 워낙 낮게 날아간 터라 가끔은 나무 꼭대기가 발에 스쳤다. 공중에는 무서운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의 진행은 점차 느리고도 힘들어졌으니, 마치 적대적인 힘들에 맞서서 나아가는 것과도 똑같았다. 때때로 이들은 공중에 가만히 매달려 있다가, 피터가 공중을 양쪽 주먹으로 때린 다음에야 움직이곤 했다.

“그들은 우리가 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의 설명이었다.

“그들이 누군데?” 웬디는 몸을 떨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는 말할 수가 없었거나 또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팅커 벨은 그의 어깨 위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이제 그는 그녀를 깨워서 자기 앞에서 날아가게 했다.

때때로 그는 공중에서 뭔가 자세를 잡았고, 한 손을 귓바퀴에 갖다 대고 유심히 귀를 기울였으며, 또다시 무척이나 빛나는 눈으로 아래를 응시하는 것이 땅에다 두 개의 구멍이라도 뚫을 태세였다. 이런 일을 한 다음,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용기는 섬뜩하기까지 한 지경이었다. “너희는 지금 당장 모험을 하고 싶니?” 그가 태연한 어조로 존에게 물었다. “아니면 차를 먼저 마시고 싶니?”

웬디는 “차를 먼저” 마시겠다고 재빨리 말했고, 마이클은 고맙다는 표시로 그녀의 한 손을 꾹 눌렀지만, 용감한 존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어떤 모험인데?”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바로 우리 아래의 초원에는 해적이 한 명 잠들어 있어.” 피터가 그에게 말했다. “너만 좋다면,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서 그를 죽일 거야.”

“나한텐 해적이 안 보이는데.” 한참 침묵한 후에야 존이 말했다.

“난 보여.”

“만약에” 존은 약간 목쉰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깨어난다면 어쩌지?”

피터가 화난 듯 말했다. “설마 내가 그를 잠든 사이에 죽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나는 우선 그를 깨우고 나서 죽이려고 했던 거야. 내가 항상 하는 방식이 그러니까.”

“잠깐! 너는 많이 죽였어?”

“몇 톤쯤 되지.”

존은 “정말 대단한데” 하고 말하기는 했지만, 일단 차를 먼저 마시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금 당장 이 섬에 있는 해적이 여러 명이냐고 물었고, 피터는 자기가 아는 한 아주 많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지금 선장은 누구지?”

“후크.” 피터가 대답했다. 이 증오스러운 단어를 말하는 순간, 그의 얼굴은 매우 굳어졌다.

“재스 후크?”

“그래.”

그러자 실제로 마이클은 울기 시작했고, 심지어 존조차도 대답 없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후크의 평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블랙비어드〔검은 수염〕8)의 갑판장이었지.” 존이 목쉰 소리로 속삭였다. “그중에서도 최악이었어. 바비큐9)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사람도 바로 그였으니까.”
“바로 그였지.” 피터가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야? 키가 커?”

“예전에 그랬던 것만큼 크지는 않아.”

“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그를 한 부분 잘라 버렸거든.”

“네가!”

“그래, 내가.” 피터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무례하게 굴려고 한 말은 아니야.”

“아아, 괜찮아.”

“하지만, 있지, 어떤 부분을?”

“그의 오른손이었어.”

“그럼 이제 그는 못 싸우는 거야?”

“설마!”

“왼손잡이야?”

“오른손 대신에 쇠갈고리를 달았어. 그래서 그걸 가지고 할퀴지.”

“할퀸다고!”

“있지, 존.” 피터가 말했다.

“응.”

“‘예, 알겠습니다, 대장님’이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대장님.”

“그리고 한 가지,” 피터가 말을 이었다. “내 밑에서 일하는 아이라면 반드시 약속해 줘야 하는 게 있는데, 그러니까 너도 반드시 약속해야 해.”

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바로 이런 거야. 만약 우리가 전면전에서 후크를 만날 경우, 너는 반드시 그를 내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해.”

“약속할게.” 존은 충성스럽게 대답했다.

그 순간 이들은 아까보다는 섬뜩한 기분을 덜 느꼈는데, 왜냐하면 팅크가 이들과 함께 날아가고 있었으며 요정의 불빛 덕분에 서로를 분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운하게도 요정은 이들처럼 아주 느리게 날 수는 없었던 터라 계속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주위를 돌아야만 했고, 결국 이들은 일종의 후광 속에서 움직이는 형국이 되었다. 웬디는 이런 상황을 상당히 좋아했지만, 바로 그때 피터가 이 일의 한 가지 단점을 지적해 주었다.

“그녀가 내게 말하기론” 그가 말했다. “어둠이 닥치기 전에 해적들이 우리를 보고는, ‘롱 톰’을 꺼냈다는 거야.”

“대포 말이야?”

“그래. 그들은 당연히 그녀의 불빛을 보았을 테고, 우리가 그 불빛 근처에 있다고 추측했다면 틀림없이 포탄을 날리겠지.”

“웬디!”

“존!”

“마이클!”

“그럼 그녀에게 얼른 가 버리라고 말해, 피터!” 세 명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단박에 거절했다. 

“팅크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대.” 그는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되레 겁을 먹었어. 겁까지 먹은 상황에서 내가 그녀를 혼자 보내 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빛의 원이 흩어지더니, 뭔가가 피터를 사랑스럽게 살짝 꼬집었다.

“그러면 그녀에게 말해 줘.” 웬디가 애원했다. “그 불빛을 좀 끄라고 말이야.”

“그녀는 끌 수가 없어. 그거야말로 요정이 할 수 없는 유일하다시피 한 일이니까 말이야. 그녀가 잠들면 저절로 빛이 꺼져 버리기는 해. 별들과 마찬가지로.”

“그러면 그녀에게 얼른 자라고 해.” 존은 명령조로 말했다.

“그녀는 졸릴 때가 아니면 잠잘 수가 없어. 그것 역시 요정이 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일이니까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존이 투덜거렸다. “이 두 가지야말로 지금 상황에서는 유일하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은데.”

이 대목에서 뭔가가 그를 꼬집었는데, 사랑스럽게 꼬집은 것까지는 아니었다.

“만약 우리 중에 호주머니를 가진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피터가 말했다. “그녀를 그 안에 넣어서 데려갈 수 있어.” 하지만 워낙 서둘러서 출발했기 때문에, 네 명 모두 호주머니라고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피터는 멋진 방법을 떠올렸다. 존의 실크해트였다!

누군가 실크해트를 들어 주기만 한다면, 그 안에 들어간 채로 여행을 하겠다고 팅크도 동의했다. 존이 실크해트를 들었는데, 사실 요정은 피터가 실크해트를 들고 갔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날아가는 동안 실크해트가 무릎에 자꾸 부딪친다고 존이 불평해서 이제 웬디가 실크해트를 들게 되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게 되듯이 이 결정은 어떤 불운을 낳았는데, 왜냐하면 팅커 벨은 웬디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검정색 실크해트 안에서는 팅크의 불빛이 완전히 가려졌고, 이들은 침묵 속에서 날아갔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지금까지 알았던 가장 적막한 침묵이었으며, 한번은 멀리서 물 찰싹이는 소리가 나면서 침묵이 깨졌는데, 피터의 설명에 따르면 야생동물이 여울에서 물을 마시는 소리라고 했고, 또 한번은 나뭇가지가 스치면서 나는 것처럼 서로 쓸리는 소리였는데, 그의 말로는 인디언들이 자기네 칼을 예리하게 다듬는 소리라고 했다.

이런 소음조차도 결국에는 멈추었다. 마이클에게는 이 외로움이 끔찍스러웠다. “뭔가가 소리를 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외쳤다.

이 요청에 답변이라도 하듯이, 그가 이제껏 들어 본 소리 중에서도 가장 어마어마한 폭발 소리에 공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해적들이 ‘롱 톰’을 그들에게 발사한 것이었다.
굉음은 산을 관통하면서까지 메아리쳤고, 그 메아리는 마치 이렇게 난폭하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놈들 어디 있나, 그놈들 어디 있나, 그놈들 어디 있나?”

겁에 질린 세 사람은 꾸며 낸 것으로서의 섬과 현실로 나타난 섬 의 차이를 비로소 확실하게 배운 셈이었다.

마침내 하늘이 다시 안정되자, 존과 마이클은 어둠 속에 자기들만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존은 기계적으로 공기를 밟고 있었고, 마이클은 어떻게 떠 있는지도 모르면서 떠 있었다.

“너 혹시 맞았어?” 존이 몸을 떨면서 속삭였다.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아.” 마이클이 도로 속삭였다.

이제 우리는 둘 중 어느 누구도 포격에 당하지는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피터는 포격에서 생겨난 바람에 떠밀려 바다 멀리까지 날아갔으며, 웬디는 팅커 벨과 단둘이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차라리 그 순간에 실크해트를 떨어뜨렸더라면 웬디에게는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그 생각이 팅크에게 갑자기 생겨났는지 아니면 오는 도중에 계획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곧바로 실크해트에서 튀어나와 웬디를 꼬여서 파멸로 이끌기 시작했다.

팅크는 결코 나쁜 요정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 당장에는 아주 나빴지만, 가끔은 아주 착하기도 했다. 요정들은 반드시 이것이나 저것,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작아서 불운하게도 한 번에 한 가지 감정이 들어갈 만한 자리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될 수도 있는데, 그 변화란 오로지 완전한 변화여야만 했다. 지금 그녀는 웬디를 향한 질투심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사랑스러운 딸랑딸랑 소리로 한 말을 웬디는 물론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중 일부는 나쁜 말이었음에도 오히려 친절하게 들렸고, 그녀는 앞뒤로 날아다니면서 한마디로 “나를 따라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라는 뜻을 전달했을 것 같다.

불쌍한 웬디가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피터와 존과 마이클을 불렀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메아리만을 답변으로 얻었을 뿐이었다. 팅커 벨이 대단히 여자다운 격렬한 증오를 품고 자기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웬디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당황한 상태에서, 이제 날아가는 것조차도 비틀거리면서, 그녀는 팅크를 따라서 불운으로 향하고 있었다.



8) 카리브 제도와 미국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활동한 1700년대의 악명 높은 영국 해적 에드워드 티치의 별명. 잔인한 성정으로 해적들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는 뻑뻑한 검은 수염과 공포스러운 외모로 인해 ‘검은 수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9) 『보물섬』에 나오는 악당 롱 존 실버의 별명 가운데 하나. 『피터 팬과 웬디』에서는 해적 이야기를 할 때 이 작품의 내용이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보물섬』을 먼저 읽고 나서 『피터 팬과 웬디』를 연이어 읽은 독자라면 각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2/07 23:33:43

요정은 맘대로 불을끌수도 없고 졸리지 않으면 잘수도 없네요.근데 웬디만은 격렬하게
질투를 하네요.역시 여자의 질투는 공포스러워요.

나단비 (♡.252.♡.103) - 2024/02/07 23:38:55

팅커벨은 피터를 많이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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