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15

나단비 | 2024.02.08 03:19:35 댓글: 0 조회: 100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153
제15장 "후크냐 나냐, 둘 중 하나다."


살다 보면 기이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게 마련이며,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는 우리가 미처 모르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귀가 먹어서 안 들리게 되어서도 도대체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를 수가 있고, 예를 들어 30분 동안이나 멍하니 있을 수가 있다. 그날 밤에는 피터에게 바로 그런 경험이 찾아왔다. 우리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한 손가락은 자기 입술에 대고, 단검은 금방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한 채로 조용히 섬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악어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별다른 특이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계의 똑딱똑딱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처음에는 섬뜩했으나 곧이어 그는 시계가 죽었음이 분명하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

그토록 가까운 동료를 갑자기 잃어버린 짐승의 기분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없이, 피터는 어떻게 하면 이 재난을 자기가 이용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그는 똑딱똑딱 소리를 내기로 작정했으니, 그렇게 하면 맹수들은 그를 악어라 여기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멋지게 똑딱똑딱 소리를 흉내 냈지만, 미처 예견하지 못한 한 가지 결과가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맹수들 중에는 바로 그 악어도 있어서, 급기야 그를 따라오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놈의 목적이 과연 자기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데 있었는지 아니면 시계가 다시 똑딱똑딱 소리 내기 시작했다고 믿은 나머지 친구로서 다가온 것인지 우리는 결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고정관념을 가진 모든 노예가 그러하듯이, 이놈 역시 어리석은 짐승이기 때문이었다.

피터는 무사히 바닷가에 도착했고, 거기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두 발은 새로운 원소와 접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듯이 물을 헤집었다. 육지에서 물로 마음대로 오가는 짐승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으로 말하자면 내가 아는 중에는 아무도 없다. 헤엄치는 동안 그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후크냐 나냐, 둘 중 하나다.’ 그는 워낙 오랫동안 똑딱똑딱 소리를 내고 있었으므로, 이제는 미처 의식하지도 않고 소리를 냈다. 만약 그 사실을 의식했다면 그는 소리 내기를 멈추었을 텐데, 똑딱똑딱 소리를 이용해 범선에 오른다는 생각이 기발하기는 했어도 이때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떠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반대여서, 그는 자기가 생쥐처럼 아무 소리 없이 배의 옆구리를 기어오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해적들이 몸을 오그리고 있는 모습이며, 그 한가운데 낀 후크가 마치 악어의 소리를 들은 양 처참한 상태인 것을 보자 되레 깜짝 놀랐다.

악어! 그제야 피터는 자기도 똑딱똑딱 소리를 들었음을 기억해 냈다. 처음에는 그 역시 이 소리가 악어에게서 나왔다고 착각한 나머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뒤에야 자기가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음을 깨달았으며, 순간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똑똑해!’ 그는 곧바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지 말라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때 조타수인 에드 타인티가 선원실에서 나와 갑판을 따라 걸어왔다. 독자 여러분도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을 시계로 한번 재어 보시라. 피터는 정확하고도 깊게 찔렀다. 존은 그 불운한 해적이 내뱉은, 죽어 가는 자의 신음 소리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박수를 쳤다. 해적의 몸은 앞으로 기울었다. 아이들 넷이 그를 붙들어서 쓰러지지 않게 했다. 피터가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아이들은 시체를 배 밖으로 던져 버렸다. 풍덩 소리와 함께 침묵이 깔렸다. 과연 이 모든 일에 걸린 시간은 얼마일까?

“하나!”(슬라이틀리가 처치되는 해적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온몸이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었던 피터는 이때다 싶어서 선실로 사라져 버렸다. 해적 가운데 어느 누구도 차마 이쪽을 돌아볼 만한 용기를 짜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불안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이는 그보다 더 끔찍한 소리가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라졌습니다, 선장님.” 스미가 이렇게 말하며 안경을 닦았다. “다시 만사가 조용해졌어요.”

후크는 주름 칼라 위로 천천히 머리를 내밀었고, 혹시 똑딱똑딱 소리의 메아리라도 들을까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는 단단히 몸을 추스르고 똑바로 섰다.

“그러면 이제 조니 플랭크〔판자 조니〕가 나올 시간이다!”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지금으로선 자신이 겁내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미웠다. 그는 악당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 호, 요 호, 흔들리는 판자야,
너희는 이 위를 따라 걸어가지,
자꾸 내려가고 또 자꾸 내려가서
저 아래 데이비 존스에게로!”
 
포로들을 더욱 겁주기 위해 그는 위엄이 깎이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상상의 판자 위에서 혼자 춤추었으며,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향해 인상을 찡그렸다. 춤과 노래를 마치자 그는 소리를 질렀다. “판자 위를 걷기 전에 고양이 채찍31) 맛을 보고 싶으냐?”

이 말에 아이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이들이 어찌나 처량하게 외치던지 해적들은 모두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 채찍을 가져와라, 주크스.” 후크가 명령했다. “선실에 있으니까.”

선실! 지금 선실에는 피터가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 알겠습니다.” 주크스가 쾌활하게 대답하고는 선실로 달려갔다. 아이들의 눈은 전부 주크스를 좇았다. 후크가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며, 그의 개들도 함께 부르기 시작한 것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요 호, 요 호, 발톱 세운 고양이,
꼬리는 무려 아홉이나 된다네,
너희 등짝에 떨어졌다 하면─”
 
하지만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가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이, 선실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에 갑자기 노래가 딱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비명은 배 곳곳에 메아리치고 나서 잦아들었다. 곧이어 수탉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아이들은 무척이나 잘 아는 것이었지만 해적들에게는 비명보다 오히려 더 섬뜩한 것이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후크가 외쳤다.

“둘.” 슬라이틀리가 정색하며 말했다.

이탈리아인 체코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선실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초췌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빌 주크스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 이 개 녀석아?” 후크가 그의 앞에 버티고 서서 물었다.

“그 녀석의 문제는 죽었다는 겁니다, 칼에 찔려서요.” 체코가 공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 주크스가 죽었다고!” 깜짝 놀란 해적들이 외쳤다.

“선실은 칠흑처럼 깜깜해요.” 체코는 떠듬떠듬 늘어놓았다. “하지만 거기 뭔가 끔찍한 게 있어요. 방금 수탉 울음소리 들으셨죠.”

아이들의 환한 표정과 해적들의 근심 어린 표정을 후크는 모두 보았다.

“체코.” 그는 가장 냉혹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도로 들어가서 그 꼬꼬댁 녀석을 잡아 와라.”

체코는 해적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축이었지만, 자기 선장 앞에서는 몸을 움츠리며 이렇게 외쳤다. “싫어요, 싫습니다!” 그러나 후크는 쇠갈고리를 보여 주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들어가겠다고 대답한 거지, 체코?” 그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체코는 선실 쪽으로 가면서, 처음으로 자포자기하여 양팔을 늘어뜨렸다. 더 이상은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곧이어 또다시 죽어 가는 비명이 들렸으며, 또다시 수탉 울음소리가 들렸다.
슬라이틀리를 빼고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셋.” 그가 말했다.

후크는 손짓으로 자기 개들을 불러 모았다. “이런 되어지고 빌려 먹을 것 같으니!”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 꼬꼬댁 하는 놈을 잡아 올 녀석이 없나?”

“체코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죠.” 스타키가 중얼거리자, 다른 해적들도 너도나도 맞장구쳤다.

“방금 네가 자원한 것 같은데, 스타키.” 후크가 다시 한 번 아양을 떨듯 말했다.

“아니에요, 절대로!” 스타키가 외쳤다.

“내 쇠갈고리는 네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후크가 이렇게 말하며 부하에게 다가갔다. “이 쇠갈고리의 비위를 맞추라는 것이 말이야, 스타키, 그게 좋은 조언이 아니라는 거냐?”

“저 안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교수형을 당하겠어요.” 스타키가 완강하게 거부하자, 이번에도 역시나 동료들은 그의 편을 들었다.

“그렇다면 반란인가?” 후크는 어느 때보다도 더 유쾌한 듯 물었다. “스타키가 주모자로군!”

“선장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스타키가 우는소리를 하며 온통 몸을 떨었다.

“악수나 나누지, 스타키.” 이렇게 말하며 후크가 쇠갈고리를 내밀었다.

스타키는 도와 달라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시선을 피했다. 그가 뒷걸음질 치자 후크는 더욱 다가왔고, 이제 선장의 눈에서는 붉은 불꽃이 튀었다. 급기야 스타키는 자포자기한 비명을 지르며 ‘롱 톰’ 위에서 펄쩍 뛰어내려 바다로 곤두박질했다.

“넷.” 슬라이틀리가 말했다.

“그럼, 이제,” 후크는 정중하게 말했다. “혹시 다른 신사 중에서도 반란을 이야기하는 분이 계실는지?” 그는 한 손에 랜턴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달린 쇠갈고리를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저 꼬꼬댁 하는 녀석은 내가 직접 끌어내겠다.” 그는 이렇게 내뱉고는 선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다섯.” 이 말을 하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슬라이틀리는 이렇게 말할 채비를 하고 자기 혀로 입술을 축였지만, 후크는 랜턴도 없이 비틀거리며 밖으로 도로 나왔다.

“뭔가가 불을 꺼 버렸어.” 그가 약간 불안해하면서 말했다.

“뭔가가!” 멀린스가 말을 받았다.

“체코는 어떻게 됐습니까?” 누들러가 물었다.

“그놈도 주크스처럼 죽었어.” 후크가 짧게 대답했다.

선실로 들어가기 주저하는 선장의 모습이 부하들에게는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으며, 폭동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전면에 대두했다. 해적들이란 미신적이게 마련이었으며, 급기야 쿡선이 외쳤다. “어떤 배가 저주받았다는 걸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징조는, 실제 숫자보다 사람이 하나 더 많을 때라고 하지!”

“나도 들었어.” 멀린스가 동조했다. “그놈은 항상 해적선에 맨 마지막으로 오르지. 혹시 놈에게 꼬리가 있었습니까, 선장님?”

“모두들 하는 말로는” 또 한 명이 사나운 표정으로 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놈이 나타날 때에는, 그 배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의 모습을 취한다고도 하던데.”

“혹시 그놈에게 쇠갈고리가 있었습니까, 선장님?” 쿡선이 무례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해적들은 너도나도 소리를 질렀다. “이 배는 저주를 받았어!” 이 말에 아이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후크는 자기 포로를 잊어버리다시피 한 참이었지만, 이들을 바라보자 그의 얼굴에 환한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이 녀석들아!” 그가 선원들을 향해 외쳤다. “여기 방법이 하나 있다. 선실 문을 열고 저놈들을 집어넣어라. 저놈들이 목숨을 걸고 꼬꼬댁 하는 녀석과 싸우게 만드는 거지. 저놈들이 그놈을 죽이면 우리야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놈이 저놈들을 죽이더라도 우리야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

후크의 개들은 정말 마지막으로 선장을 우러러보았으며, 열심히 그의 명령을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은 안 가려고 버티는 척하면서, 선실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고, 곧바로 문이 닫혔다.

“이제 귀를 기울여 볼까!” 후크가 외치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차마 문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했다. 아니, 한 사람이 있긴 있었는데, 이때까지 줄곧 돛대에 묶여 있던 웬디였다. 그런데 그녀가 신경 쓰고 있던 것은 비명도 수탉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다시 나타난 피터였다.

웬디야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실에서 피터는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아이들을 수갑에서 풀어 줄 열쇠였다. 이제 아이들은 찾아낼 수 있는 한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일단 아이들에게 숨으라고 손으로 신호를 보낸 다음, 피터는 웬디의 포박을 칼로 잘라 냈고, 바야흐로 이들 모두에게는 그냥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 없을 참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피터의 앞길을 막았으니, 그것은 바로 맹세였다. “후크냐 나냐, 둘 중 하나다.” 그리하여 웬디를 풀어 주자마자 피터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숨으라고 그녀에게 속삭였고, 자기가 대신 돛대에 있는 그녀의 자리에 서서, 그녀의 망토를 둘러서 마치 자기가 그녀인 양 꾸몄다. 그런 뒤에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수탉 울음소리를 냈다.

해적들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곧 아이들이 선실에서 모두 학살당했다고 알려 주는 소리였다. 이들은 당황해 마지않았다. 후크는 부하들을 격려하려고 무던 애를 썼다. 하지만 진짜 개들과 마찬가지로, 선장은 오히려 부하들이 자기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게 만들었을 뿐이었고, 이제 자기가 부하들에게서 눈길을 거두기만 하면 곧바로 부하들이 자기에게 달려들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녀석들아.” 후크는 감언이설이건 공격이건 필요한 대로 내놓을 채비를 하면서 결코 잠시도 주춤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내가 알아냈다. 이 배에 요나32)가 있었던 거야.”

“그래.” 해적들이 으르렁거렸다. “바로 갈고리 달린 사람이지.”

“아니지, 이 녀석들아, 아니라고. 그건 바로 저 계집애야. 해적선에 여자가 타고 있으면 재수가 없게 마련이니까. 그러니 저 계집애만 없애 버리면 배도 정상으로 돌아올 거다.”

해적 몇은 이것이 플린트의 명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한번 해 볼 만한 가치는 있겠지.” 그들은 미심쩍어하며 대꾸했다.

“저 계집애를 바다로 던져 버려라!” 후크가 외쳤다. 그러자 선원들은 망토를 두른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너를 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군, 아가씨.” 멀린스가 빈정거렸다.

“한 사람 있긴 하지.” 망토를 두른 사람이 대꾸했다.

“그게 누군데?”

“복수자 피터 팬이다!” 끔찍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피터는 이렇게 말하면서 망토를 벗어 던졌다. 그제야 해적들은 선실에 숨어서 자기 동료들을 죽인 것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고, 후크는 두 번이나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두 번 모두 실패했다. 내 생각에는 바로 이 끔찍한 순간에 그의 광포한 가슴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을 것 같다.

마침내 후크가 외쳤다. “그놈의 가슴팍을 찔러 버려!” 별 자신감은 없는 이야기였다.

“덤벼라, 얘들아, 저놈들한테!” 피터의 목소리가 울리자 곧바로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배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함께 모여 있기만 했더라도 해적들이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전투는 이들이 아직 얼빠져 있던 상황에서 닥쳐왔기 때문에, 해적들은 이리저리로 뛰어다니면서 서로 세게 부딪쳤고, 저마다 자기가 선원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라고 생각했다. 일대일로 붙으면 해적들이 더 강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방어만 할 수 있었으므로, 아이들은 둘씩 짝지어 다니며 사냥감을 골랐다. 악당 몇 명은 자진해서 바다로 몸을 날렸다. 또 몇 명은 어두운 구석에 몸을 숨겼지만 결국에 가서는 슬라이틀리에게 발각되었으니, 그는 싸우지 않는 대신에 랜턴을 하나 들고 다니다가 해적들의 얼굴에 불빛을 비추어서, 반쯤 눈이 안 보이게 된 악당들을 다른 아이들의 피투성이 검 앞에 제물로 바쳤다. 무기 부딪치는 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는 거의 없었으며, 다만 간혹 비명이나 첨벙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슬라이틀리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숫자를 셌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내가 보기에 해적들은 모조리 처치된 듯, 이제는 야만인 아이들이 후크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는 불사의 생명이라도 가진 양 그 불구덩이 속에서도 침착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그의 개들을 모두 처치했지만, 이 남자만큼은 혼자서도 아이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듭하고 거듭해서 아이들은 그에게 다가갔으나, 거듭하고 거듭해서 그는 칼을 휘둘러 빈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는 갈고리로 한 아이를 들어 올려 일종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멀린스에게 검을 찔러 넣은 또 한 아이가 이 싸움에 새로 끼어들었다.

“모두들 검을 내려!” 새로 온 아이가 외쳤다. “이 사람은 내가 맡겠어!”

문득 후크는 자기가 피터와 마주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은 뒤로 물러나서 두 사람을 둥글게 에워쌌다.

오랫동안 적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후크는 가볍게 몸을 떨었고, 피터의 얼굴에는 기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래, 팬.” 마침내 후크가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네 짓이었던 거군.”

“그래, 제임스 후크.” 굳은 어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게 다 내 짓이었다.”

“건방지고 거만한 녀석 같으니!” 후크가 외쳤다. “네 죽음을 만날 준비나 해라!”

“어둡고도 사악한 인간 같으니!” 피터가 대답했다. “어디 붙어 보자!”

더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 없이 이들은 싸움을 시작했고, 한동안은 둘 중 어느 한쪽도 우위에 서지 못했다.

피터는 뛰어난 검술사였으며,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공격을 막아 냈다. 때때로 그는 거짓 공격에 이어 찌르기를 시도해서 자기 적수의 방어를 뚫었지만, 팔이 짧아서 오히려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상대를 찌르지 못하고 있었다. 후크는 검술의 탁월함에서는 피터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지만, 팔목을 움직일 때에는 상대만큼 재빠르지 못했다. 대신 공격 때마다 힘을 실어서 상대를 뒤로 밀어내다가, 갑자기 유리한 일격을 날려서 만사를 끝내기를 고대했으니, 이것은 오래전에 그가 리우에서 바비큐에게 배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로선 놀랍게도 자신의 일격이 거듭해서 옆으로 밀려나고 밀려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곧이어 그는 상대에게 바짝 다가간 다음, 지금까지 내내 공중만 긁고 있었던 자신의 쇠갈고리로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피터는 고개를 숙여서 이 공격을 피했고, 힘차게 찌르기 공격을 가하며 후크의 갈비뼈 사이로 칼을 집어넣었다. 자기 피가 흘러나온 것을 보자 후크는 불쾌감을 느꼈는데, 여러분도 기억하다시피 그 피는 색깔이 야릇했기 때문이었고, 급기야 그는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고 이제 피터의 처분에 생명을 내맡긴 셈이 되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모두 소리를 질렀지만, 당당한 몸짓으로 피터는 상대에게 검을 다시 집으라고 권했다. 후크는 곧바로 그렇게 했지만, 혹시 지금 피터가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기가 어떤 악마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어두운 의심이 떠올랐다.

“팬, 너는 누구냐, 아니, 무엇이냐?” 후크가 목쉰 소리로 물었다.

“나는 젊음이다, 나는 기쁨이다.” 피터는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새다.”

물론 터무니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불운한 후크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피터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증거였으며, 이것이야말로 좋은 모습의 정점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해 보자!” 그는 자포자기한 듯 외쳤다.

이제 후크는 인간 도리깨처럼 싸우고 있었으며, 그 끔찍한 검을 휘두르는 기세만 보면, 앞을 막아서는 사람은 어른이건 아이건 절반으로 갈라놓을 듯했다. 그러나 피터는 마치 바람에 날려 위험지역에서 벗어나듯 그의 주위에서 깡충거리며 뛰어다녔다. 거듭하고 거듭해서 그는 돌진하고 찔렀다.

후크는 이제 아무런 희망 없이 싸웠다. 그 열정 가득한 가슴도 더 이상 생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갈망하는 게 있었다. 몸이 영영 식기 전에 피터의 나쁜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아예 싸움을 포기하고, 화약고로 달려가서 거기에 총을 쏘았다.

“앞으로 2분 안에!” 그가 외쳤다. “이 배는 산산조각이 날 거다!”

이제는, 드디어 이제는 피터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피터는 총알을 손으로 받아 쥐고 화약고에서 나오더니, 침착하게 바다에 버렸다.

후크 본인은 과연 어느 쪽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가? 비록 길을 잘못 든 사람이기는 했어도 결국에 가서는 그가 자기네 종족의 전통에 충실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기뻐하는 한편, 그에게 굳이 동정을 품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이제는 그의 주위로 날아다니면서, 그를 비웃고 조롱했다. 갑판 위에서 비틀거리며 아이들과 힘없이 부딪치는 동안, 그의 정신은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런 구부정한 걸음걸이는 오래전에 운동장에서, 또는 좋은 일을 했다고 불려 올라갔을 때에, 또는 유명한 담장에 올라가서 담장 경기를 구경할 때에나 나왔던 것이었다.33) 그의 신발은 제대로였고, 그의 조끼는 제대로였고, 그의 넥타이는 제대로였고, 그의 양말은 제대로였다.

제임스 후크, 그대는 전적으로 영웅답지 못한 인물이었도다, 안녕히.

우리는 이제 그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다.

피터가 단검을 겨냥한 채 공중에서 천천히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자, 후크는 난간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다. 악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그도 몰랐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시계를 의도적으로 멈추었기 때문인데, 이 사실만 알았더라도 그는 아마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막판에 우리가 주는 작은 존경의 표시였다.
그는 적어도 한 가지 마지막 승리를 거둔 셈이었는데, 내 생각에 우리는 이것 때문에 그를 미워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난간에 선 상태에서 그는 날아 다가오는 피터를 어깨 너머로 돌아보며, 칼 대신에 발을 쓰라고 몸짓으로 알렸다. 그러자 피터는 그를 칼로 찌르는 대신 발로 걷어찼다.

마침내 후크는 자기가 열망하던 소원을 이루었다.

“나쁜 모습!” 그는 조롱하듯 외쳤고, 만족한 채로 악어에게 떨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제임스 후크의 최후였다.

“열일곱!” 슬라이틀리가 외쳤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에 열다섯 명은 자기네 죄악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두 명은 바닷가로 도망쳤다. 스타키는 인디언에게 붙잡혀서 그곳 아이들의 유모 노릇을 해야만 했는데, 이는 해적으로서는 서글픈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스미는 안경을 쓴 채로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자기야말로 재스 후크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갔다.

물론 웬디는 싸움에 전혀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그래도 빛나는 눈으로 피터를 바라보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그녀는 다시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똑같이 칭찬해 주었으며, 마이클이 해적 한 명을 직접 죽인 자리를 보여 주자 기쁨에 몸을 떨었다. 곧이어 그녀는 아이들을 후크의 선실로 데려가서, 못에 걸려 있는 선장의 시계를 가리켜 보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1시 반!’

시간이 이렇게 늦었다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가장 큰일이었다.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그녀는 아주 재빨리 해적들의 침상에서 아이들을 모두 재웠다. 피터는 예외였으니 그는 갑판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으며, 그러다가 마침내 ‘롱 톰’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 밤에 그는 평소의 꿈 가운데 하나를 꾸었고, 잠결에 한참 동안 울었으며, 웬디가 그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31) ‘꼬리 아홉 달린 고양이’는 끝이 아홉 갈래로 갈라진 채찍을 가리킨다. 19세기 말까지도 영국의 육군과 해군에서 체벌용으로 사용되었다.
32)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하느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탄 배도 풍랑을 만나 침몰 위기에 처한다. 결국 뱃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인 그를 바다에 내던짐으로써 풍랑을 그치게 만들었고, 그는 커다란 물고기에게 삼켜졌다가 다시 육지로 나온다.
33) 모두 이튼 칼리지의 전통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전자는 성적이나 품행 우수 학생이 교장실로 ‘불려 올라가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매년 이튼의 벽돌 담장 옆에 있는 경기장에서 재학생들 간에 벌어지는 럭비 경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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