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3부 15~16

나단비 | 2024.01.30 01:18:13 댓글: 0 조회: 126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4096
제15장
 
 
 
그러한 갑작스런 방문이 이루어진 데 따른 혼란스런 마음을 엘리자베스는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캐서린 여사는 그녀와 다씨의 결혼 약속을 깨기 위한 목적만으로 로싱스 저택에서 자기 집까지 오는 수고를 감행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당연한 처사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결혼 약속에 관한 얘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다씨가 빙리의 친구이고 제인이 자신의 언니이기 때문에, 이제 하나의 결혼이 이루어지려는 시기에 다른 또 하나의 결혼도 성사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간주한 것으로 짐작했다. 그녀 자신도 언니가 결혼하면 자신과 다씨가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고 루카스네 사람들은 그녀와 다씨가 장래에 결혼할 것으로 즉각적으로 단정해버리고서(그녀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긴 했지만) 콜린스네한테 전해주었고, 그래서 그 말이 캐서린 여사한테도 들어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캐서린 여사가 한 말을 곰곰 생각해보니, 그 여자가 간섭하겠다고 한 그러한 결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어떤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방해할 것이라는 캐서린 여사의 결심으로 볼 때, 그녀가 조카에 대해서 어떤 음모를 꾸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자신의 주변과 관련된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늘어놓을 경우 사람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이모에게 얼마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지, 이모의 판단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보다는 이모를 더 높이 생각할 게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다씨의 이모는 그가 자기 처지에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경우의 해악에 대해 열거하면서 그의 약한 면을 계속 붙잡고 늘어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품위를 중시하는 다씨의 입장에서는 엘리자베스가 하찮게 여기는 요소들도 단단한 기반을 가질 수 있을 게다.
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종종 그렇게 생각되었는데, 그처럼 가까운 친척이 충고하고 간청할 때 모든 의심을 불식시키고 가문에 흠 잡힐 일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게다. 캐서린 여사는 이번에 가는 길에 런던에 들러 다씨를 볼지 모르며, 그렇게 되면 그가 다시 오겠다고 빙리와 한 약속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러니 며칠 내로 자기 친구한테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변명이 들리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있을 거야. 그때는 모든 기대를 접어야 될 테고 그 사람은 완전히 포기해야겠지. 그 사람이 내 애정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 단지 나를 아쉬워하는 걸로 만족해버린다면 나도 더 이상 그 사람을 생각지 않게 되겠지.’ 그녀는 생각했다.
 
방문한 사람이 누구였다는 말을 듣고서 가족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렇지만 단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선에서 만족해야 했고, 엘리자베스는 그 일로 가족들의 성화를 받진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손에 편지 한 통을 들고 서재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리지, 내가 너를 찾으려고 했단다. 내 방으로 오렴.” 아버지가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려는 말에 대한 호기심은, 아버지가 들고 있는 편지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더욱 커져갔다. 그 편지가 캐서린 여사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뒤에는 어떤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벽난로 있는 곳까지 아버지를 따라갔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다음에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오전에 깜짝 놀랄 만한 편지를 한 통 받았단다. 너하고 관련된 일이니까 네가 당연히 내용을 알아야겠지. 결혼할 딸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을 전엔 모르고 있었지. 아주 중대한 성취를 했으니 축하해줘야겠구나.”
그 편지가 캐서린 여사가 아니라 다씨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엘리자베스의 뺨이 붉어졌다. 그녀는 다씨가 자기의 뜻을 아버지에게 밝힌 점을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편지를 그녀 자신에게 직접 보내지 않은 점 때문에 불쾌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너, 아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젊은 여자들은 이런 문제에 아주 민감하다니까. 그치만 네가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널 숭배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을 거야. 이 편지는 콜린스한테 온 거라고.”
“콜린스라고요! 그 사람이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거죠?”
“할 말이 많은가 보지. 콜린스는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루카스네 식구들한테 들어서 안 모양인데, 곧 있을 네 언니 결혼식을 축하한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어. 그 내용을 읽어주면 네가 안절부절못할 테니 거긴 생략할 거야. 너하고 관련된 부분은 여기야. ‘그러한 경사에 대해서 저와 제 처가 진심 어린 축하를 드리고 나서, 이제 다른 한 가지 안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이것도 처가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큰따님이 결혼식을 올린 후로 둘째 따님도 결혼식을 올릴 것이고, 둘째 따님이 선택한 반려자는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 중의 한 분이라는 점입니다.’ 리지, 넌 이 말을 듣고 누군지 짐작할 수 있겠니? ‘그분은 세상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 즉 거대한 재산, 귀한 가문, 그리고 성직 임명권 등 모든 것을 갖춘 분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신사 분의 제안에 무조건 결론을 내려버릴 경우에 어떤 해악이 닥쳐올 것인지에 대해서 제 조카 엘리자베스와 어르신께 경고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신사가 누군지 알 수 있겠니? 이제 알게 될 거야. ‘제가 경고드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씨의 이모인 캐서린 드 버그 여사님이 그 결혼을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씨가 그 사람이야! 리지, 놀랐지?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다른 사람을 콜린스나 루카스네가 찍어낼 수 있겠니? 다씨라…… 여자를 보면 흠이나 잡을 뿐이고 너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사람인데…… 정말 경탄할 일이로구나.”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하는 농담에 기분을 맞추어주려고 했지만 그냥 내키지 않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농담이 이처럼 자신에게 달갑지 않은 경우도 없었다.
“왜, 기분이 좋지 않니?”
“아, 아니에요. 계속 읽어주세요.”
“‘어제 오후에 캐서린 여사님께 그 결혼에 대해서 말씀드렸더니 정색을 하시면서 자신이 느끼는 점을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즉 제 사촌 쪽의 몇 가지 가족적인 문제점 때문에 그러한 불명예스러운 결혼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사촌 엘리자베스와 다씨 선생님으로 하여금 지금의 상황을 깨닫게 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은 결혼은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는 점을 신속히 알려드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콜린스는 이런 말도 추가하고 있구나. ‘저는 제 사촌 리디아의 일이 그처럼 잘 처리된 점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으며, 다만 결혼 전에 동거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두 사람이 결혼하자마자 집으로 받아들이셨다는 말을 듣고서, 저의 상황에 비추어 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악을 장려하는 일이고, 그러니 제가 롱본의 목사였다면 그 일에 한사코 반대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용서는 해야겠지만, 우리 눈에 들어오게 해서도 안 되고 그 사람들 이름이 귀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기독교적인 용서란 이런 것이로군! 편지 나머지 부분은 자기 처 샬럿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샬럿이 곧 애를 갖게 된다는 거야. 리지, 넌 별로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가 보구나. 너, 시치미 떼면서 그게 허황된 소문이라고 일축해버리면 안 된다. 때로는 이웃들에게 조롱감이 돼주고 우리도 때가 되면 이웃을 조롱하는 재미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가니?”
“오, 아버지! 정말 재미있어요. 근데 참 이상하네요!” 엘리자베스가 소리 질렀다.
“그래, 그게 사태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인이지. 사람들이 다씨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짚었다면 일이 단순해. 근데 그 사람은 너를 완전히 무관심하게 대했고 너도 그를 아주 혐오하고 있었으니 일이 재미있게 전개되는 거지. 내가 편지 쓰기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콜린스하고는 어떻게든 왕래를 하려고 그런단다. 아니, 내가 그 사람 편지를 읽을 때면 뻔뻔함과 위선이 도를 넘은 우리 사위 위컴보다도 그가 더 좋아지는 거 같아. 근데 리지, 캐서린 여사는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그러던? 자기가 승낙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방문한 건 아니니?”
그 질문에 대해서 베넷의 딸은 단지 웃음으로만 대답해주었다. 전혀 의심 없이 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질문을 반복한다고 해서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자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그처럼 당황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차라리 울고 싶은데 웃어야만 했던 게다. 아버지는 다씨의 무관심에 대해 말해서 그녀를 잔인하게 괴롭혔다. 아버지의 통찰력 없음에 의아해지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사태를 잘못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너무 공상을 많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제16장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빙리에게 전할 것으로 절반쯤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캐서린 여사의 방문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빙리가 다씨를 데리고 롱본에 나타났다. 신사들은 오전 일찍 도착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어머니가 다씨의 이모가 다녀갔다는 말을 다씨에게 해주지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했는데, 빙리가 제인과 단둘이 있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모두가 산책을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동의했다. 그렇지만 베넷 여사는 산책하는 습관이 들어 있지 않았고 메리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 다섯 사람만 밖으로 나갔다. 빙리와 제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내 자기들을 앞질러 가게 만들었다. 그 두 사람은 뒤로 처졌고 엘리자베스와 키티와 다씨가 함께 걸어갔다. 어느 누구도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키티는 다씨를 의식하여 말이 없었고, 엘리자베스는 마음속으로 어떤 결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씨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였다.
키티가 마리아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들은 루카스네 집 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루카스네 집에 가는 게 모두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에 키티를 앞세워 보냈고, 이제 단둘이 남겨져 걷게 되었다. 이제 그녀의 결심을 실행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다씨 선생님, 난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내 감정의 부담을 덜어버리려면 선생님의 감정을 해칠 것 같은데 그런 건 고심하지 않으니까요. 내 철없는 동생에게 그처럼 막대한 호의를 베풀어주신 데 대해서 감사를 표시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 일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선생님께 전해드리고 싶어서 무척이나 마음을 졸였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알고 있었더라면 내 감사함만 표시하지는 않았겠지만요.”
“엘리자베스 양한테 불안감만 일으킬 일을 알게 됐다니 정말 내가 너무 미안하군요. 가드너 여사님이 그렇게 믿을 수 없는 분인 줄 몰랐네요.”
“내 외숙모를 비난하면 안 돼요. 리디아가 생각이 없는 애라 선생님이 그 일에 연관돼 있다고 내게 알려줬어요. 물론 그 일을 들은 뒤로는 상세한 내막을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그토록 애쓰시고 두 사람을 찾기 위해서 창피스러운 일까지 감내하는 수고를 해주셨으니 우리 가족 전체를 대신해서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나에 대한 감사는 그대 혼자 하면 충분한 거예요. 그렇게 하게 된 다른 동기도 있기는 했지만 엘리자베스 양한테 좋은 일을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죠. 그치만 엘리자베스 양 가족은 나한테 아무 빚진 게 없어요. 엘리자베스 양 가족을 공경하지만 내가 생각한 건 오직 엘리자베스 양뿐이니까요.”
엘리자베스는 너무도 당황하여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다씨가 이런 말을 이었다.
 
“엘리자베스 양은 너그러운 사람이니 날 갖고 놀진 않을 거예요. 그대의 마음이 아직도 지난 4월하고 달라진 게 없다면 나한테 즉시 얘기해줘요. 내 애정, 소망은 아직 그대로예요. 그치만 엘리자베스 양이 한마디만 하면 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그가 힘들어하고 두려움에 젖어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이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한 그 시기 이후로 그녀의 마음이 많은 변화를 겪어서 이제는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을, 아주 유려하지는 않지만 즉각적으로 해서 그를 이해시켰다. 그러한 대답이 불러일으킨 행복감은 다씨가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열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할 수 있을 만큼 감정적으로, 그리고 열렬하게 자기의 마음을 표시했다. 엘리자베스가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더라면 격렬한 기쁨이 그의 얼굴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볼 수는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그는 자기 감정을 전달하면서 그녀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해주었고, 그의 애정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지 그녀가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 걷기만 했다.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말할 것이 너무 많아서 다른 대상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현재 그들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된 것은 캐서린 여사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캐서린 여사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런던에 있는 다씨를 방문해서 자기가 롱본에 다녀온 사실을 얘기하고 그렇게 한 동기, 그리고 자기가 엘리자베스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말했던 게다. 엘리자베스의 뻔뻔스러움과 무례함을 들춰냄으로써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은 양보를 다씨로부터 받아내려고 해보았지만, 캐서린 여사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오히려 반대로 나타나고 말았다.
“전에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지만 그 일이 내게 희망을 가져다 주더군요. 만약 엘리자베스 양이 나에 대해서 단호하게, 회복 불가능하게 거절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캐서린 여사님께 그렇게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다씨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붉히고 미소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다씨 선생님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끈한 사람이라는 점을 이제 알고 계시는군요. 전에 내가 다씨 선생님을 그렇게 면박 주었으니 선생님 친척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나한테 한 말 중에 하나라도 근거가 없는 게 있나요? 엘리자베스 양의 비난이 불충분한 증거에서 기인하고 오해에 따른 가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는 했지만 내가 당시에 엘리자베스 양한테 보여준 행동은 가장 처절한 비난을 받아 마땅했어요. 그건 누구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죠.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와요.”
“그날 오후에 있었던 사태에 관해서 우리 중 누구 잘못이 더 큰지는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해요. 우리 두 사람 다 엄밀히 따져보면 비난을 면할 수가 없어요. 그치만 그 일 이후로 우리 두 사람 다 예바르게 변한 것 같아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난 나 자신에 대해서 쉽게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당시에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 태도, 말투 등을 생각해보면 지금, 아니 여러 달 동안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지는 거예요. 엘리자베스 양의 비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난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었어요. ‘좀 더 신사적으로 행동했더라면’ 하고 엘리자베스 양은 말했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그대는 모를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그 말이 정당하다고 느끼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요.”
“그 말이 그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길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그런 방식으로 느낄 것이라는 점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고요.”
“당연히 그랬겠죠. 엘리자베스 양은 그때 내게 올바른 상식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청혼을 했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라고 얘기할 때 그대가 지은 얼굴 표정을 난 잊을 수가 없었어요.”
“오! 그때 내가 한 말을 반복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렇게 회상해 봐야 아무 소용없을 거예요. 난 그렇게 말한 걸 오랫동안 뼈저리게 후회했거든요.”

다씨는 자기가 전해준 편지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편지가 나에 대해 좀 더 좋은 생각을 갖게 해줬나요? 그걸 읽고 그 내용에 관해서 신뢰는 하고 있었나요?” 다씨가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 편지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자신이 가졌던 예전의 편견이 어떻게 해서 점차적으로 없어져갔는지 말해주었다.
“내가 쓴 내용이 엘리자베스 양한테 고통을 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쓰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 편지를 없애버렸겠죠? 그 편지 서두에 엘리자베스 양이 다시는 읽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어요. 읽으면 엘리자베스 양이 나한테 혐오감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선생님에 대한 내 호감을 간직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편지는 확실히 태워버릴 거예요. 근데 내 생각이 언제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 편지를 내가 쓸 때는 마음이 아주 평온하고 차분한 상태라고 믿었지만 나중에는 내 마음이 아주 비참한 상태에서 썼다는 걸 알게 되었죠.” 다씨가 말했다.
“비참한 상태에서 출발은 했겠지만 끝은 그러지 않았어요. 작별의 말은 아주 부드러웠어요. 그치만 이제 편지 얘기는 그만하기로 해요. 편지를 쓴 사람이나 받은 사람의 기분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으니 그당시의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돼요. 내 철학 중의 하나를 알아뒀으면 좋겠네요. 즐거운 기억만 남겨주는 과거만을 생각하라는 거예요.”

“난 그런 철학이 없어요. 엘리자베스 양은 과거를 돌이켜봐도 누구한테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았을 테니 그런 데서 나오는 만족감은 대단할 거예요. 그치만 난 사정이 달라요. 고통스런 기억이 끼어들어서 그걸 어떻게 격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난 일생 동안, 원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어렸을 때 난 무엇이 옳은 거라는 가르침은 받았지만 내 성질을 교정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어요. 좋은 행동 원칙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교만이나 건방짐으로 그 원칙을 실천했지요. 불행히도 독자였고, 그리고 여러 해 동안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나를 망가뜨려놓은 거예요.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고 특히 아버님은 자비심 많고 상냥한 분이셨지만 내가 이기적이고 거만하도록 방치했고, 심지어 그런 걸 가르치기까지 했어요. 내 가족 외에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을 모두 얕보았으며 나와 비교해서 다른 사람들의 능력이나 가치를 얕봤어요. 여덟 살 때부터 스물여덟 살 때까지 그런 인간이었고, 만약 그대 사랑스런 엘리자베스가 없었다면 지금도 변함없었을 거예요. 내가 그대에게 진 빚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대는 처음에는 가혹했지만 정말 가치 있는 교훈을 가르쳐줬어요. 그대로 인해서 내가 겸손한 인간이 된 거예요. 난 엘리자베스 양한테 그때 받아들여질 걸 의심치 않았어요. 근데 그대는 내가 한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데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보여줬어요.”

“그때 내가 선생님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고요?”
“정말 그랬죠. 내 허영심에 대해서 모르나요? 난 엘리자베스가 날 원하고 내가 청혼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때 한 행동은 잘못된 거예요. 선생님을 속일 생각은 없었지만 내 기분 때문에 잘못 행동하는 때가 있어요. 그날 오후 이후로 날 계속 미워했을 거예요.”
“미워했다고요! 첨에는 아마 화도 났을 거예요. 그치만 화가 나중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됐어요.”
“우리가 펨벌리에서 만났을 때 선생님이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묻기가 두려워요. 내가 간 걸 속으로 비난했겠죠?”
“아니에요. 그냥 놀라기만 했을 뿐이에요.”
“선생님이 놀랐다고 해도 거기서 선생님 눈에 발각된 나만큼은 놀라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거기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걸 기대할 수도 없었고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때 내 생각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과거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거였어요. 그리고 엘리자베스 양이 한 비난을 내가 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도록 그대의 용서를 구하고 나에 대한 나쁜 감정을 불식시키는 것이었어요. 다른 또 하나의 소망이 생긴 게 언젠지는 확실히 말할 수가 없지만 내가 엘리자베스 양을 본 지 30분 정도 지난 뒤라고 생각돼요.”
다음에 그는 동생 조지아나가 엘리자베스를 알게 되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일행이 떠나버려 얼마나 동생이 섭섭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화제는 그 일행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이어졌고,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리디아를 추적하기 위해서 더비셔를 떠날 작정을 한 때가 그 여관을 떠나기 직전이었으며 여관에서 그가 심각하게 생각에 빠졌던 이유는 그러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어떤 방도를 취할 것인가를 고민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했지만 그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길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처럼 한가하게 몇 마일을 걸은 후에, 그리고 얘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시계를 보고 나서야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빙리하고 제인은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말한 다음에 그들은 두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다씨는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한 점에 대해서 반갑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그 소식을 일찌감치 전해주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놀랐는지 알고 싶군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전혀요. 내가 여기를 떠날 때 그런 일이 곧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죠.”
“그건 선생님이 허락했다는 의미군요. 난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예상했어요.”
다씨는 ‘허락’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말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날에 그 친구한테 내가 자백을 했죠. 오래전에 했어야 했지만요. 내가 그 전에 내 친구 일에 개입하게 된 이유가 근거 없고 부적합했다는 점을 알려줬어요. 그의 놀라움은 대단했죠. 그는 내 판단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거예요. 난 엘리자베스 양 언니가 빙리한테 무관심한 상태라는 내 판단이 잘못된 거라는 점도 알려줬어요. 그리고 엘리자베스 양 언니에 대한 그의 애정이 약해진 게 아니란 점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둘이 합치면 행복해질 것을 의심치 않게 됐어요.” 다씨가 얘기했다.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자기 친구를 그처럼 쉽게 다루는 것을 알고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언니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은 선생님이 직접적으로 관찰해보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지난봄에 내가 해준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가요?”
“전자 때문이죠. 최근에 내가 두 번 이곳에 방문하는 동안에 그대의 언니를 유심히 관찰했고 그녀의 애정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그런 사실을 말해주니까 빙리 씨도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군요.”
“그렇게 된 거죠. 빙리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에요. 어떤 때는 너무 주저주저하기 때문에 예민한 사항에 대해서는 자기 판단에 의존하는 대신 나한테 맡겨버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따라주죠. 그 친구한테 한 가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친구 기분이 한동안 좋지 않았어요. 지난겨울에 언니가 3개월 동안 런던에 있었는데, 그 사실을 내가 알고서도 고의로 말해주지 않은 점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는 화를 냈죠. 그렇지만 그대의 언니의 감정을 이제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면서 화는 풀렸어요. 이제는 홀가분하게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된 거죠.”
엘리자베스는 빙리가 아주 선량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나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그녀는 다씨가 아직 사람들의 비판을 많이 받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시작한다는 게 한편으로 너무 늦었다고도 생각되었다. 다씨는, 물론 자신의 행복에야 미치지는 못하지만 빙리가 행복하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했고 그런 말을 하는 동안에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현관에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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