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 3 八佾

단차 | 2023.12.14 19:55:03 댓글: 0 조회: 256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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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팔일(八佾) 여덟 줄의 춤

공 선생이 계씨를 평하여 말하기를 “여덟 줄의 춤을 제 집에서 추게 하니 그런 짓을 하는 솜씨면 무슨 짓은 못할까!”
孔子 謂季氏 1) 八佾 2) 舞於庭 3) 是可忍 4) 也 孰 5) 不可忍也 6)

세 대부의 집안에서 천자의 노래로 제사를 마치니, 선생 “‘줄줄이 늘어선 제후들. 천자의 묵묵한 모습’이 세 대부 집안의 어느 구석에 있는가 말이야.”
三家 7) 者 以雍徹 8) 子 曰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9)

1) 계씨(季氏): 계손씨(季孫氏). 노나라 대부. 공자(公子) 계우(季友)의 후예.
2) 팔일(八佾): 팔인(八人) 팔열(八列)인 64인의 춤으로 천자의 묘당(廟堂)에서만 출 수 있는 고전무(古 典舞)다. 제후는 육인(六人) 팔열(八列)의 48인이요, 대부는 사인(四人) 팔열(八列)의 32인이요, 사는 이인(二人) 팔열(八列)의 16인이다(다산설). 종래의 설은 64인(천자), 36인(제후), 16인(대부), 4인(사) 이다.
3) 정(庭): 조상을 모신 묘당(廟堂).
4) 가인(可忍): 차마 할 수 있다.
5) 숙(孰): 누구 숙.
6) [평설] 계씨(季氏)는 노나라 삼대부(三大夫)-삼가(三家)-중의 하나인데 다음 장에서 지적된 옹철(雍 徹)의 비례(非禮)를 범했을 뿐만이 아니라 홀로 팔일(八佾)의 참례행위(僣禮行爲)를 범했기 때문에 공자의 나무람은 이처럼 준렬했던 것이다.

7) 삼가(三家): 노환공(魯桓公)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중경(仲慶)⋅숙아(叔牙)⋅계우(季友)가 곧 그것이다. 그의 후손에 맹손(孟孫)⋅숙손(叔孫)⋅계손(季孫)이 있는데 이들을 삼가(三家)라 한다.
8) 옹철(雍徹): 「주송(周頌)」 ‘신공(臣工)’편 ‘옹(雍)’시로써 마치는 것. 천자의 묘제(廟祭)가 끝날 때의 노래. 주무왕(周武王)이 부왕(父王)인 문왕의 제사 때 불렀던 것인데 외람된 세 대부가 제사 때 이노래를 부르며 철상(撤床)한 것이다.
9) [평설] 이 장은 삼가(三家)가 각각 갖고 있는 묘당(廟堂)에서 옹철(雍徹)의 비례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공자는 이를 꾸짖은 것이다.


선생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예법은 무엇하며,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음악은 무엇하노!”
子 曰人而不仁 如禮何 10) 人而不仁 如樂何 11)

임방이 예법의 근본정신을 물은즉, 선생 “옳지, 좋은 질문이다. 예식은 사치스런 것보다 검소한 것이 좋고, 장례식은 번지르르한 것보다 슬픔이 넘쳐야 한다.”
林放 12) 問禮之本 子 曰大哉問 禮 與其奢也 寧儉 13) 喪 與其易 14) 也 寧戚 15)

10) 여~하(如~何): 의문사의 강조형.
11) [평설] 인(仁)이 근본이니 예악은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장에서 지적한 계씨나 삼가(三家)는 이미 불인(不仁)의 자세이기 때문에 그들의 팔일(八佾)과 옹(雍)은 예악 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앞 두 장의 결구(結局)이다.
12) 임방(林放): 노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라기도 하고 비간(比干)의 후예라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예에 관심이 있던 인물인 듯.
13) 여~령(與~寧): ~보다는 차라리.
14) 이(易): 형식을 잘 갖춤.
15) [평설] 여기서는 삼가(三家)의 참례(僭禮)는 그것이 예에 지나친 점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나 치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요, 형식에 치우친 점임을 의미한다. 임방(林放)도 노인(魯人)이기 때문에 계씨나 삼가(三家)의 잘못이 어디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 “되.놈의 짓으로 임금 노릇하는 것은 올바른 나라에서 거저 지내는 것만 못하다.”
子 曰夷狄 16) 之有君 不如諸夏 17) 之亡也 18)

계손씨가 태산에서 여제(旅祭)를 지내니, 선생이 염유더러 “너는 말리지 못했더냐?” 대답하기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선생 “기막힐 일이다. 글쎄 태산이 임방만 못할까!”
季氏 旅 19) 於泰山 20) 子 謂冉有 21) 曰女弗能救與 對 曰不能 子 曰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16) 이적(夷狄): 未開.民族.
17) 제하(諸夏): 중화(中華).
18) [평설] 종래 “미개한 나라에 임금이 있는 것보다는 개화된 나라에 임금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다산은 역문(譯文)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였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되.놈의 법을 쓰면서 지위를 유지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올바른 법을 쓰다가 지위를 잃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 (義)에 따르는 군자의 기본 자세이기 때문이다.
19) 여(旅): 제명(祭名), 산천에의 고유제(告由祭). 제후가 지내는 예법인데 대부인 계손(季孫)이 이를 지낸 것은 불법이다. 임방(林放)도 지례인(知禮人)이지만 태산(泰山)은 산일망정 늘 예(禮)를 받던 처지이므로 그것이 비례(非禮)임을 임방(林放)보다 더 잘 알 것이다.
20) 태산(泰山): 노나라에 있는 산.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
21) 염유(冉有): 성은 염(冉), 이름은 구(求), 자는 자유(子有). 공자의 제자. 계씨(季氏)의 가신(家臣).



선생 “성실한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 있다면 활쏘기 정도지. 서로 절하면서 당상에 오르고, 지면 술을 마시니, 성실한 사람들의 싸움이지!”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22) 其爭也 君子 23)

자하가 묻기를 “‘방긋 웃는 입매, 반짝이는 눈동자, 휜 바탕에 눈부신 칠이여!’란 무슨 뜻입니까?” 선생 “그림은 휜 바탕 위에 그리는 것이다.” “예도 나중 일인가요?” 선생 “상이 나를 깨우쳐 주는구 나! 인제 너하고 시를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子夏 問 曰巧笑倩 24) 兮 美目盼 25) 兮 素 26) 以爲絢兮 何謂也 子 曰繪事後
素 曰禮後乎 子 曰起予者商 27) 也 始可與言詩 28) 已矣 29)

22) 하이음(下而飮): 하(下)는 불승(不勝)의 뜻. 사례(射禮)에 불승자(不勝者) 음주(飮酒)가 하이음(下而 飮)이다(다산). 종래 하당이음(下堂而飮)이라 하였다.
23) [평설] 사(射)는 어(御)와 함께 육례(六藝) 중의 체육(體育)에 해당된다. 사례(射禮)는 곧 스포츠맨십을 연상하게 한다. 단 승자가 불승자(不勝者)에게 술을 먹이되 그것이 결코 벌주가 아님이 특이하다.
24) 천(倩): 입 예쁠 천.
25) 반(盼): 눈 예쁠 반.
26) 소(素): 바탕 또는 흴 소
27) 상(商): 자하(子夏)의 이름.
28) 시(詩): 「위풍(衛風)」 ‘석인(碩人)’.
29) [평설] 예(禮)는 충신(忠信)을 바탕으로 삼고 형식은 그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참조] 「학이 (學而)」편 (1)(15)절을 보라.
[평설] 회사후소(繪事後素)에는 이설(異說)이 많다. 정현(鄭玄)의 고주(古註)는 분소(粉素)를 회사(繪 事)의 뒤로한다는 것이다. 선청적이후분백(先靑赤而後粉白)은 회화에 있어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주(古註)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선생 “하나라 법도는 나도 알지만 기나라 이력은 증거 댈 길이 없고, 은나라 법도는 나도 알지만 송나라 이력은 증거 댈 길이 없으니, 문헌이 부족한 탓이다. 있기만 하다면이야 나도 증거 댈 수 있으련만!
子 曰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 也 足則吾能徵之矣 30)

선생 “체제에 강신까지 끝냈으니 지난 일은 더 보고 싶지도 않다.”
子 曰禘 31) 自旣灌 32) 而往者 吾不欲觀之矣 33)

어느 사람이 체제의 뜻을 물은즉, 선생 “모릅니다. 그 뜻을 안다 면이야 천하를 다루되 여기서 보는 것 같을 거야!” 하고 자기 손바 닥을 가리키시었다.
或問禘之說 34) 子 曰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 35) 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36)

30) 기(杞)는 하왕조(夏王朝)의 후예들이 제사를 모시는 소국(小國). 송(宋)은 은왕조(殷王朝)의 후예. 문 (文)은 전적(典籍)이요 헌(獻)은 현인(賢人)이다. [참조] 「위정(爲政)」편 (2)(23)절을 보라.
[평설] 공자는 예(禮)에 대하여 하은례(夏殷禮) 간의 예(禮)에 널리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이다. 여기서의 예(禮)는 문물제도를 의미한다. 고증을 존중하는 공자의 학자적 태도도 아울러 엿볼 수 있다.
31) 체(禘): 본시 왕자(王者)의 대제(大祭)인데 노나라가 이를 참용(僭用)하였다.
32) 관(灌):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뿌리며 강신(降神)하는 예식.
33) [평설] 체제(禘祭)란 제제(帝祭)로서 종묘시제(宗廟時祭)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춘체추상(春禘秋 嘗)(≷예기(禮記)≸⋅「제의(祭義)」)의 이름이 있다.
34) 체지설(禘之說): 체제(禘祭)에 대한 학설.
35) 어천하(於天下): 평천하(平天下)함에 있어서.
36) [평설] 체제(禘祭)의 의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쯤이야 손바닥 보듯 쉽다는 것이 다. 체제(禘祭)의 의의는 선조의 덕을 사모함에 있기 때문이다.


계신 듯이 제사를 모시고, 다른 신도 계신 듯이 제사를 모신다. 선생 “자신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모시는 것 같다.”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 曰吾不與 37) 祭 如不祭 38)

왕손고가 묻기를 “‘방 구석 조상님보다 부엌 조상님이 낫다’는데 무슨 뜻입니까? 선생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빌곳조차 없습니다.”
ㅡ王孫賈 39) 問 曰與其媚於奧 40) 寧媚於竈 何謂也 子 曰不然 獲罪於天 41) 無所禱也 42)


선생 “주나라는 하⋅은 두 나라를 본떠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으 니, 나는 주 문화를 따르겠다.”
子 曰周監 43) 於二代 44) 郁郁 45) 乎文哉 吾從周 46)

37) 여(與): 제사를 돕는다.
38) [평설] 신(神)은 존재한다가 아니라 존재하신 듯하다는 것이니 신은 어디까지나 가능적(可能的) 존재다. 가능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神)은 절대적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직접 여제(與祭)해야 한다는 것이다.
39) 왕손가(王孫賈): 위(衛)나라 대부. 때에 세도를 부리고 있었으므로 공자를 비웃는 태도다.
40) 오(奧): 서남쪽 모퉁이. 주부가 있는 곳이다.
41) 천(天): 상제천.
42) [평설] 상제천-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의지-자세-를 엿볼 수 있다. 상제천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신주(神主)-오(奧)-보다도 권력-조(竈)-에 아부하라는 왕손가의 오만을 꾸짖는 공자의 자세는 상제를 두려워하며 천명에 순응하는 종교인의 자세 바로 그것인 것이다.
44) 이대(二代): 하(夏)와 은(殷).
45) 욱(郁): 예문(禮文)이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
46) [평설] 공자의 존주사상의 연원을 밝히고 있다. 주문화는 하⋅은문화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자이 니, 주공이 이룩한 봉건제도 하의 장자상속(長子相續)⋅동성불혼(同姓不婚)⋅정전법(井田法) 등은 길이 공자의 존주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효제사상도 주나라의 봉건제도의 유지를 위한 자라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선생이 대묘에 들어가서 매사를 물은즉, 어느 사람이 “누가 추 땅시골뜨기더러 예법을 안다는 거야! 대묘에 들어가선 일일이 묻지 않나!” 선생은 이 말을 듣고 “그것이 예의다.”
子 入大廟 47) 每事問 或 曰孰謂鄹 48) 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子
聞之 曰是禮也 49)

선생 “활쏘기 때는 과녁을 주장삼는 것이 아니다. 실력에 차등이 있기 때문이니 옛날에는 그랬던 것이다.”
子 曰射不主皮 50) 爲 51) 力 52) 不同科 53) 古之道也 54)

자공이 초하룻날의 염소 희생을 그만두려고 한즉, 선생 “사야, 너는 염소가 아까우냐? 나는 보다 더 예법을 아낀다.”
子貢欲去告朔 55) 之餼羊 56) 子 曰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57)

선생 “예의를 갖추어 주군을 섬기는데 남들은 아첨한다는구나.”
子 曰事 58) 君盡禮 人以爲諂 59) 也 60)

47) 대묘(大廟): 주공묘(周公廟).
48) 추(鄹): 공자의 부(父) 숙양흘(叔梁紇)이 벼슬 살던 노나라 마을 이름. ‘추땅 시골뜨기’란 공자를 얕
본 말.
49) [평설] 종래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으로 풀이하였으나 다산은 “주공묘(周公廟)-태묘(太廟)-에서 천자의 예(禮)를 쓰고 있었기 제후의 예(禮)를 써야 할 줄로 알고 있었던 공자로서는 그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참조] 「향당(鄕黨)」편 (10)(27)절을 보라.
50) 피(皮): 곡(鵠), 곧 과녁.
51) 위(爲): 이유. 때문.
52) 력(力): 실력. 육체적 힘이 아니다.
53) 부동과(不同科): 각각 한량이 있기 때문에 실력이 같지 않다.
54) [평설] 사(射)는 본래 적중(的中)을 주로 삼지만 예사(禮射) 때만은 과녁을 주로 삼지 않는다.
55) 곡삭(告朔): 천자(天子)가 나누어 준 곡삭(告朔)을 선조에게 고하여 백관(百官)에게 나누어주는 예 (禮)다(다산).
56) 희양(餼羊): 빈(賓)에게 바치는 양(羊)이다.
57) [평설] 왕빈(王賓)이 오지 않으므로 왕빈(王賓)에 주던 양(羊)이 필요 없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공 (子貢)은 이를 없애려고 했던 것인데 공자는 희양(餼羊)마저 없애버리면 고삭(告朔)의 예(禮)가 영
원히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이를 그대로 두게 한 것이다.
58) 사(事): 섬길 사.
59) 첨(諂): 아첨할 첨.
60) [평설] 당시에는 군왕에게 함부로 실례(失禮)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공자의 극진한 예(禮)를 아첨으로 여겼으니 이로써 당시의 풍조를 짐작할 수 있다.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자면 어떻게 합니까?” 선생은 대답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릴 적엔 예의를 갖추고 신하가 임금을 섬길 적엔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定公 61) 問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 對 曰君使臣以禮 62) 臣事君以忠 63)

선생 “‘징경이의 노래’는 즐겁되 음란하지 않고, 안타까우나 애태 우지 않는다.”
子 曰關雎 64) 樂而不淫 65) 哀而不傷 66)

애공이 재아에게 사직단에 대하여 물은즉, 재아는 대답하기를 “하 나라 왕은 소나무,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백성들이 ‘밤송이’ 보듯 무서워하게 하기 위해 서였습니다.” 선생이 이 말을 듣고 “다 된 일이라 말할 것 없고, 해 버렸으니 이래라 저래라도 않거니와 지난 일이니 책망할 것조차도 없다.”
哀公 問社 67) 於宰我 68) 宰我 對 曰夏后 69) 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70) 子 聞之 曰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71)

61) 정공(定公): 노나라 군주(君主). 양공(襄公)의 아들, 소공(昭公)의 아우, 애공(哀公)의 아비인데 소공 (昭公)의 뒤를 이어 재위(在位) 15년.
62) 예(禮): 제도적인 지위(地位)와 봉록(俸祿).
63) 충(忠): 진심으로 바치는 충성(忠誠).
64) 관저(關雎): ≷시경(詩經)≸, 「주남(周南)」, ‘국풍(國風)’의 수장(首章). “물가에 징경이는 암수 서로 우니나다. 아리따운 아가씨는 임의 좋은 짝이로다…….[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65) 음(淫): 음란할 음.
66) [평설] 인간 감정의 중화(中和)를 설명하고 있다. 락(樂)과 애(哀)의 과정(過情)은 불음(不淫) 불상 (不傷)으로 이를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67) 사(社): 토지신(土地神). 따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68) 재아(宰我): 성은 재(宰), 이름은 여(予), 자는 자아(子我). 공자의 제자.
69) 하후(夏后): 하왕(夏王).
70) 전율(戰慄): 두려워하며 몸이 떨린다.
71) [평설] 두려움을 주기 위하여 밤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천착(穿鑿) 부회(傅會)다. 무릇 입사(立社)할 때에는 그 토지에 알맞는 나무를 심었을 따름이다.



선생 “관중이란 인물은 그 그릇이 작단 말이야!” 어느 사람이 “관 중은 검박하였던가요?” 선생 “관씨는 마누라가 셋이요, 신하도 줄줄이 갖췄으니 어찌 검박하다 하겠소!” “그렇다면 관중은 예의는 알던 분인가요?” 선생 “군왕이라야 안팎 울을 갖는데, 관씨도 안팎 울을 가졌고, 군왕이라야 그네들끼리의 술잔대를 갖는 법인데, 관씨도 그런 술잔대를 가졌으니, 관씨더러 예의를 안다고 하면 예 모를 사람이 어디 있담!”
子 曰管仲 72) 之器 73) 小哉. 或 曰管仲儉乎 曰管氏有三歸 74) 官事不攝 75)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邦君樹塞門 76)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 好有反坫 77)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78)

선생이 노나라 악대장에게 말하기를 “음악이란 알 법도 한 거야.
처음 가락은 가지런히 뽑고, 가닥이 추려지면서 하나로 뚜렷한 것이 줄줄이 잇달아 한 음절을 만드니…….”
子 語魯大師 79) 樂 曰樂其可知也 始作 翕如 80) 也 從之 81) 純如 82) 也 皦 如 83) 也 繹 84) 如也 以成 85)

72) 관중(管仲): 씨(氏)는 관(管), 이름은 이오(夷吾), 자(字)는 중(仲), 시호는 경(敬). 포숙아(鮑叔牙)와
는 수어지교(水魚之交)가 있었고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제후를 통일하였다.
73) 기(器): 인물(人物)의 포용력(包容力).
74) 삼귀(三歸): 삼성여(三姓女)를 취(娶)함. 세 부인을 거느린 셈이다.
75) 섭(攝): 겸임(兼任).
76) 수새문(樹塞門): 내외를 구별하기 위하여 그 중간에 세운 문.
77) 반점(反坫): 반작(反爵)하는 도구로서 두 기둥 사이에다 흙으로 쌓은 대(臺).
78) [평설] 공자는 관중(管仲)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한 구절이 ≷논어(論語)≸에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낮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환공(桓公)과 같은 현주(賢主)를 만나 천하에 군림하였는데도
환공(桓公)으로 하여금 왕도를 천하에 펴게 하지 못한 아쉬움의 토로인지도 모른다. [참조] 「헌문
(憲問)」편 (14)(17)절과 (14)(18)절을 보라.
79) 대사(大師): 악사장(樂師長).
80) 흡여(翕如): 여러 소리가 함께 나오는 모양. 여(如): 형용사로서의 어미(語尾).
81) 종지(從之): 진행과정.
82) 순여(純如): 조화(調和) 정리(整理)하여 하나로 됨.
83) 교여(皦如): 명백한 음절.
84) 역(繹): 소리가 실처럼 이어진다.
85) [평설] 이는 공자의 음악지식을 단적으로 소개한 글인데 이는 아마도 작곡원리(作曲原理)이기도 한것이다. 공자가 항상 예(禮)와 더불어 악(樂)을 이야기한 것은 아무래도 이처럼 음악에 깊은 소양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고을 벼슬아치가 만나 보고 싶어하면서 “훌륭한 분들이 이곳에올 적마다 나는 만나 뵙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모시고 있던 제자가 만나 뵙도록 하였다. 나와서 말하기를 “여러분은 벼슬자리를 잃고 있는 처지일망정 걱정할 것 없습니다. 천하가 갈 길 몰라 허덕이 는지 이미 오래라, 하늘이 우리 선생님으로 하여금 지도자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儀 86) 封人 87) 請見 88) 曰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89) 何患於喪 90) 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91)

선생은 소(韶)의 곡을 평하여 “실로 아름답고 또 실로 좋다.” 무 (武)의 곡을 평하여 “실로 아름다우나 좋다고 할 수는 없다.”
子 謂韶 92)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93) 盡美矣 未盡善也 94)

선생 “윗사람이 조불조불하고 예의 차림도 형식적이며, 상사를 당하여도 슬퍼할 줄 모르는 위인은 난들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
子 曰居上 95) 不寬 爲禮 96) 不敬 臨喪 97) 不哀 吾何以觀之哉 98)

86) 의(儀): 위(衛)나라 국경 지방의 한 마을.
87) 봉인(封人): 국경지대를 맡은 벼슬아치.
88) 견(見): 회견(會見). 만남.
89) 이삼자(二三子): 그대들.
90) 상(喪): 실(失).
91) 목탁(木鐸): 교령(敎令)을 내릴 때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흔드는 망울. 무사(武事)에는 혀가 쇠 로 된 금탁(金鐸)을 사용했고 문사(文事)에는 혀가 나무로 된 목탁(木鐸)을 썼던 것이다.
[평설] 비록 한 번 만났더라도 공자가 장차 천하의 목탁이 되실 것을 예견한 의봉인(儀封人)의 견식 (見識)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92) 소(韶): 순제(舜帝)의 작(作)으로 평화적인 가곡.
93) 무(武): 무왕(武王)의 음악인데 전투적인 음곡.
94) [평설] 종래 순(舜)의 덕은 선양(禪讓)에 있었으므로 그의 악은 진선진미(盡善盡美)하지만 무왕(武 王)은 정벌(征伐)에 의했기 때문에 살기(殺氣)가 있어서 미진선(未盡善)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그의 선미(善美)가 인물(人物)에-순(舜)과 무왕(武王)-관계된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에 관계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순악(舜樂)은 구성(九成)이니 완미(完美) 완선(完善)하려니와 무악(武 樂)은 육성(六成)이라 미진선(未盡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95) 거상(居上): 군목(君牧)의 자리에 있다.
96) 위례(爲禮): 다른 사람과 함께 길례(吉禮)의 예(禮)를 행한다.
97) 임상(臨喪): 조곡(弔哭)
98) [평설] 이는 지위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준 말들이다. 거상자(居上者)는 자칫하면 관용(寬容)을 잃거나
행례(行禮) 때 내실(內實)을 거두지[敬(경)] 못하거나 조상(弔喪) 때도 애정(哀情)을 잃는 따위의 행위가
있기 쉽기 때문에 거상자(居上者)를 위하여 특히 관(寬)⋅경(敬)⋅애(哀)의 덕(德)을 강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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