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6ㅡ민웅이의 가출

뉘썬2뉘썬2 | 2023.12.15 07:12:49 댓글: 3 조회: 234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9507

6



신도시도 아웃렛도 들어오기전의 우리동네는 야생의 자연과 누추한 사람살이가 안개가 없는날엔
지나치게 분명하게 보이는 곳이엿다.포장재와 검고푸른 비닐이 여기저기 흩어진 과수원에서 이
유진은 민웅이에대해 다시 생각햇을것이다.고등학생이고 대단한 미래를 약속할만한 사이가 아니
라해도 여자애들 마음속엔 어떤 경보장치 같은 것이 작동하곤한다.




이를테면 명절마다 제수음식을 하는 친척어른들의 얼굴에 떠오른 불행의 반점같은것에 반응하는
센서말이다.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으니 돈많은 놈이나 고르라고 말할때의 체념과 섞인 맡기싫
은 기름냄새 식을수록 싫은 기름냄새.

그렇구나 자칫잘못하면 인생이란거 아주쉽게 비루해지는구나.아ㄴㅣ 웬만해서는 비루함을 피할
수없구나.

여자애들은 두려워하며 자란다.아주작은 신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된다.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달아나는 먹이사슬 하위의 동물들처럼..피하고싶은 인생이 순식간에 덮쳐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아마 그런두려움이 그날 이유진의 마음을 뒤흔들엇으리라 나는 추론한다.



그때는 파주 에 한번 다녀가고는 곧 민웅이랑 헤여져버린 내가 태여나고 자란곳에대해 질색해버
린 그애가 고깝고 원망스러웟지만 이제는 이해할수잇다.


그경솔한 초대는 마치 히아신스처럼 천진하고 낙천적인 민웅이의 본성에서 비롯한것이엿다.
반에 이마를 맞고 죽어버릴줄을 모르고 꼭 히아신스가 아니라도 비극적인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다른소년들같은 무지함으로 해서안될 초대를햇고 그초대로부터 많은것들이 비틀려나갓다.


그리고 그리스 운운하는 나는 정말이지 하주의 외장하드나 클라우드의 백업파일같다.영혼을 백
업하려면 취향을 백업하면된다.전부는 아니더라도 꽤많은 부분이 문제없이 저장될 테다.나는 백
업파일이다.인정하면 많은것들이 편안해진다고 하던데 정말이다.


0018.MPEG


송이 ㅡ수미가 이름을 바꿧대.

찬겸 ㅡ뭘로?

송이 ㅡ안가르쳐줄래.

찬겸 ㅡ그래 그게낫겟다.

나는 내내 민웅이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잇다.

ㅡㅡ


민웅이와 이유진이 헤여졋다는 소식을 들엇을 때 나와송이와 주연이는 수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잇엇다.수미는 어떤표정도 짓지않앗다.그런데 그게꼭 모든표정을 다짓고잇는것 같은느낌이엿다.
수호랑달리 수미는 무표정일때가 없엇다.남매는 닮앗지만 수호쪽이 어린 두꺼비같이 무서운 얼
굴인반면 수미는 큰 이목구비를 활용해 언제나 이모티콘처럼 분명한 표정을 짓고잇엇다.



평생에결쳐 온갖 폭력적인 사태를 목격하고 당하면서도 그얼굴을 유지해왓는데 고작 몇주간 사
귄 십대커플이 수미의 표정들을 지워버린것이다.다른친구들이 우려햇던 일이 결국 일어나버렷다.

수미는 당장 야자를 신청햇다.야자는 2학년 때부터가 필수엿고 1학년때는 선택이엿으므로 신청
을해야 할수잇엇다.우리에게 표정을 숨기는것과 민웅이에게 표정을 숨기는것은 단계가 다른 일
이엿을테니까 나는 수미가 거리두기를 택한 것이 기뻣다.


그런데 그영리한 전략은 일주일동안 소용이없엇다.민웅이는 결별첫주에 가출을 한것이다.그것
이 충격이엿던 것은 민웅이가 학교를 별로 대단히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출석률에 대해서는 상
당한 자부심을 가지고잇엇기 때문이엿다.

우리형들도 나도 개근상은 일년도 빠지지않고 받는다고.”

그말을 자주도 들엇다.그랫던 민웅이가 일주일동안 사라진데다 무단결석 정도가 아니라 집에
도 들어오지 않앗으므로 걱정을 하지않을수 없엇다.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우지
만 모두 결국은 거절당하는 법을배운다.좋아하는 상대에게 거절당하기도 하고 공부에 당하기
도하고 재능과 미래에 당하기도하고..



그러니까 민웅이는 이전엔 거절이란걸 모르고 거기까지 왓던것이다.파주는 민웅이의 왕국이
엿고 왕국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경험은 최초엿다.우리의 골든보이는 완전히 좌절한채 사라져
버렷다.


전화기는 꺼져잇엇고 공원으로 막 문을연 상가들로 민웅이를 찾아다녀봣자 찾을수 잇을리가
없엇다.민웅이의 다른친구들 전화번호를 다수 가지고잇는 것은 수미엿으나 수미는 이 수색작
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앗다.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우리중에 가장 심햇을텐데도.

아 쪽팔리게.”

민웅이의 사촌형들도 민웅이를 찾고잇는 것 같앗지만 대수롭지않아하는 티가 그대로낫다.
때는 신기한 집안이라고 생각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대수로워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잇
엇던게 아닐까싶다.그때의 오빠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어렷으니까.


어쨋거나 놀랍게도 민웅이를 찾아 집으로 데려온건 찬겸이엿다.감정을 소모시키는 사건들에
최대한 관심을 두지않으려하는 찬겸이엿지만 위기가 닥치면 해결의 한수를 두는것도 찬겸이
엿다.찬겸이는 어느저녁 혼자 공부할걸 잔뜩싸들고 민웅이가 일하던 맥도날드에갓다.



세트메뉴를 먹고 두시간뒤 프렌치프라이를 하나더먹고 콜라를 리필해 공부를하며 마감시간
이 될때까지 기다렷다.그리고 일층과 이층을잇는 계단에서 잠복을 하다가 남는 음식을 가지
러 들른 민웅이를 붙잡앗다.알바하는 친구집에 숨어잇엇던 모양이엿다.대체 뭐라고 설명햇는
지 알바 쪽은 휴가상태엿다.


찬겸이가 민웅이를 붙잡앗다는 말은 좀 과장된 표현일수도 잇겟다.민웅이는 찬겸이를 손가
락 하나로 따돌릴수 잇엇다.그날밤 귀가가 이루어진 것은 그러므로 다분히 스스로의 의지엿다.
두사람은 택시를타고 파주로 돌아왓고 물론 택시비도 찬겸이가냇다.



택시안에서 무슨얘기를 나눳는지는 모르지만 그즈음해서 두사람의 관계가 조금바뀐 것은 사
실이다.전까지는 늘 민웅이가 찬겸이를 돌봐주는 느낌이엿다면 어느새 찬겸이가 민웅이를 돌
봐주는 형국이 되엿던것이다.

물론 그후로도 몇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는 일들이 잇엇다.누가 형이냐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꽤 중요한 문제인것같다.

민웅이가 돌아왓고 나는 다시 마음편하게 주완이와 시간을 보낼수 잇게되엿다.그간 벌어진
일들에대해 시시콜콜 얘기하기도 햇는데 주연이가 그런얘기를 별로 하지않기 때문인지 주완
이는 흥미롭게 들엇다.그러나 어떤논평을 덧붙이진 않앗다.

왜 아무말도 안해?”

글쎄 내친구들이 아니니까?”

그거리감이 괜히좋앗다.나머지 애들은 주완이의 친구가 아니다.나만 주완이의 친구다.친구
보다 친밀한 어떤것이다.



((((이만큼 가까워 우리는.))))



여자친구보다도 더 친밀한 어떤 것이 어느날엔가는 될수잇을지도 몰라.가까워지고 가까워
지다보면 분리가 불가능한 사이가 될거라고 나는 주완이의 곁에 캐주얼하게 앉아 음험하고
도 창대한 계획을 세웟다.

안온햇던 우리두사람과 어울리지않게 그주는 히치콕 주간이엿다.영화를 보고잇자니 바보인
나도어디가 뛰여난지 알수잇을 것 같앗지만 그래도 좋아지진 않앗다.뛰여난것과 내가 좋은
것이 일치하지 않을수 잇다는걸 그때알앗다.굉장히 기분나쁜 누군가의 머릿속을 보는 것 같
아서엿는데 훗날 의 티피헤드런이 히치콕에게 성추행과 학대를 당햇다고 고발한 것을
보고는 역시라고 생각하고 말앗다.



나쁜사람,좋지않은 사람에게 천재성과 권력이 주어지는일이 종종잇다는 것을 안다.가학적
인 천재들은 늘 묵인을 받느다.묵인뿐만아니라 칭송을 받기도한다.어쩐지 칭찬해주기싫어,
감탄하기싫어,나라도 좋아하지 않을래..어느부분이 꺼끌거리는지 지금처럼 분명하게 생각
햇던건 아니엿다.



하지만 영화를 계속 보고싶은가 보고싶지 않은가 정도를 결정할 자아의싹이 간질간질 돋아
나고잇엇다.히치콕이 미술감독 출신이라는것도 내가 영화와 영화미술을 하게될줄도 꿈에도
모른채 나는 정지버튼을 눌럿다.

그만볼래.”

나는 히치콕을 끄고 주완이의 니트를 잡아당겻다.목이 늘어나지않게 하려고 주와이가 따라
오리란걸 알앗으니까.이번엔 주완이가 가볍게 키스해주엇다.

누구엿어?”

나는 나전에 주완이에게 키스햇던 사람이 어떤맛이라도 남기고 간것처럼 신중하게 가늠하
며 물엇다.

누가?”

주완이가 주저하며 물엇고 나는웃엇다.

괜찮아 말해봐.”

한학년 위 누나엿어.”

인도에서 다녓던 학교?”

.”

어떤사람이엿어?”

음 햇빛알레르기가 잇엇어.”

그건 고생이엿겟는데?”

그래서 그늘에서 자주 마주쳣지.”

무슨이야기를 햇어?”

키스보다도 그쪽이더 신경쓰엿다.

자기나라 이야기를 많이해줫어.얼마나 돌아가고싶은지.어디가 멋지고 뭐가맛잇는지 두
고온 친구들은 누군지.”

너는?”

별로 할이야기가 없어서 언제나 진것같앗는데 이기고싶엇던적도 없어서.”

하지만 듣고잇는게 싫지는 않앗구나?”

.”

네가햇어?”

아니 그쪽이.”

갑자기?”

부모님의 파견근무가 연장된 날이엿어.이년더.”

햇빛을 이년더 견디게 되여버렷구나.”

내가 좋앗다기보단 그때 그늘속에 잇엇던게 하필 나엿던건데 그게 필요햇대.자기한테.”

키스가?”

응 키스가.”


나는잠시 장면을 떠올려보앗다.햇빛알레르기가 잇는 여자애가 햇빛이강한 도시에 의지와
상관없이 머물게 되엿다면 선크림만큼이나 키스가 필요할지도 몰랏다.사람에게 그때그때
필요한것들이란 그때에 가보지 않으면 알수없으니까.질투가 날줄알앗는데 하나도 기분나
쁘지않은 이야기엿다.


하주랑 자야겟다고 나는생각햇다.’하주와 자고싶다고 생각햇는지도 모른다.아니면
주랑 자는게 필요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엿을지도.하주랑이라면 전혀 기분나쁘지 않을거
라고 말이다.


0019.MPEG


계산서를 향해 손을뻗는 찬겸.주연이가 찰싹 손등을 때린다.


주연 ㅡ왜맨날 네가 내려고해?

찬겸 ㅡ사주고싶으니까?

주연 ㅡ우리도 벌만큼 벌어.됏어.

찬겸 ㅡ하지만 난 고액과외로 축적한 돈이 아직도잇어.

주연 ㅡ흥 사교육계의 부정한 돈이라면 기꺼이 얻어먹어주지.


ㅡㅡ


지브리 스튜디오 주간과 구로사와 아키라 주간을지나 웨스턴과 스파게티 웨스턴 주간을 지
나는동안 송이는 목도리를짯다.물론 송이솜씨에 내내 그리오래 짠 것은 아니고 몇번인가
짯다풀엇다 해서엿다.

앵무새같네.”

그게 모두의 일관된 반응이엿다.요즘이야 울긋불긋한 색실종류가 많고 그때도 없엇던 것은
아니지만 송이의 마음에는 차지않앗던 것이 틀림없다.송이는 굵기는같고 색깔은다른 실들
을 잔뜩사서 뭐라 말할 수 없이 앵무새 같은 목도리를짯다.색깔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
도 변햇다.



줄무늬에 체크에 다이아몬드 모양을거쳐 알파벳도 잇엇고 꽃무늬까지 들어갓다.송이는 여러
시도들에 골몰해잇엇다.머릿속의 목도리를 현실에서 깨우기위해 손가락이 바빳다.


미완성인 상태에서 목도리는 엄청나게 길어졋다.송이목을 두번감고도 땅에끌릴만큼.


너 그런거 하고다니다 버스문에 낑기면죽어.죽는다고.”

주연이가 대표해 말리고나서야 송이는 길이를 수정햇다.여전히 꽤나길엇지만 송이는 교복
위에 그목도리를 잘도 소화해냇다.코도귀도 일부만 쫑긋 보일만큼 얼굴이 파묻히는 목도리
엿다.



겨울이 시작되고 잇엇다.희미한 중성색만 남은 파주의 겨울에 송이의 목도리만이 형형햇다.
발산하는 목도리엿다.그목도리 자체가 중요한 사건이엿던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빠뜨릴수
없는 이미지가 되엿다.다다른애들 그비슷한 것을 만들어보려 햇지만 처참하게 실패햇던 기
억도난다.


우리는 나와주완이는 목도리도 하지않고 목이휑한채 돌아다녓다.이상할 정도로 추위를 타
지않앗고 얇은옷으로 버텻다.언제나 기분좋은 열이낫다.다음을위해 에너지를 저장하지 않
는다는 점에서 우리몸은 어렷다.

텁텁이가 사라졋기 때문에 산책을하며 개들을 쫓기도하고 개들과 멀어지기도햇다.

어쩌면 코끼리처럼.”

주완이가 풍경을 풍경속에서 움직이는 점들을 가늠하며 말햇다.

자기가 죽을자리를 찾아갓는지도 몰라.늙은 코끼리들은 그런다고햇어.”

코끼리 많이봣겟네?인도에는 많지?”

응 하지만 가까이에서 볼수록 코끼리들은 우울해보엿어.사람들하고 지내기엔 너무 똑
똑한 동물이니까.”

..그럼 죽을자리를 찾아간다는 늙은 코끼리들은 사람들하고 지내는 코끼리는 아니겟
.”

사람들이랑 지내는 코끼리는 그렇게 늙기전에 사람들이 죽이겟지.”

그늙은 털보개가 어딘가에 죽어잇을 생각을하며 슬펏던가.아니 별로 그렇진 않앗던 것
같다.모두가 다죽고 사라지고 지구가온통 파주같이 변하고 거기 나와주완이만 남아도 상
관없다고 생각하고 잇엇다.나는 텁텁이를 열심히 찾지않앗다 .



텁텁이를 찾아내버리면 함께걷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앗기때문이다.그개가 죽엇다면 조용
하고 오목한곳에 평화롭게 죽어잇기를 바랏던것도 같다.원래는 무슨색이엿을지 모를 텁텁
이의 짙은 먼지색털이 진짜 먼지가되는 시간은 그리길지 않을것같앗다.사랑받지 못햇지만
갇히지도 않앗던 개의삶을 헤아리기엔 어렷다.


주먹밥같은걸 주로 싸갓는데 초등학교때 쓰던 도라에몽 도시락통을 보고 주완이가 웃엇다.
추운곳에서 먹는 주먹밥에 주완이가 체하면 검지와 엄지사이 부드럽기도하고 뭉치기도하
는 그부분을 눌러주는게 좋아서 계속 주먹밥을 고집햇다.그토록 이기적이엿다.



0020.MPEG


홍대 주차장길.

명동중앙로.

코엑스몰.

뱅뱅사거리.

가로수길.

신촌지하철과 기차역사이.

영등포 지하상가.

로데오거리.


카메라를 잠시 세워둬도 아무도 상관하지않는 스폿에서 찍은 분량에는 카메라앞을 오가는
그때 우리나이 아이들이 가득.

나 ㅡ(내래이션)정말로 놀라운건 종종 내친구들과 똑 같은 얼굴의 아이들과 마주친다는
것이다.친척도 아니고 아무도 아니다.아무관계도 없이 그렇게나 똑 같은 얼굴로 태여난다.



누군가 이세계에 같은 얼굴들을 계속 채워넣고 잇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든다.두려운 것은
그닮은 얼굴뒤의 거의 다르지않을 이야기들이다.우리는 유일하지도않고 소중하지도 않으
며 끊임없이 대체된다.모두가 그사실에 치를떨면서.

ㅡㅡ



버스에 오르는 수미의 눈가가 찢어져잇엇다.우리가 그에대해 뭐라고 하기도전에 수미가
먼저말햇다.

날때리려고 한게아니야.옆에잇다가 실수로 맞은거야.”

수미네 엄마가 와잇다고햇다.겨냥한게 수미가 아니라고 괜찮을리가 없어.주연이가 신경
질적으로 아직 젖어잇는 머리를 털엇다.

난 괜찮아.수호가 더다쳣어.학교도 안가려나봐.”

?너희삼촌 근처에 잇느니 나같으면 학교에 가겟다.”


이례적으로 뒷자리에 와앉은 찬겸이가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다시덧붙엿다.

내가왜 미친듯이 공부하는줄 알아?너희삼촌 같은 사람 안보고 살고싶어서야.너희삼촌
이랑 같은동네에 살기싫어서라고.깡패없는 동네에 살고말거야.”

사실그런 수미에게 열을올릴 문제는 아니엿고 그때의 찬겸이는 사회적 지위가높은 망나
니들도 얼마든지 잇다는걸 깨닫지못한 상태엿다.그저 공부를 잘하면 더러운 세계에서
벗어날수 잇을거라 믿엇다.송이가 찬겸이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그만하라는 신호를주곤
파우치를 열어 연고와 작은밴드를 꺼냇다.


약 아까발랏어.”

수미가 거부하려햇으나 송이가 한번더 발라 하면서 면봉으로 덜어 처치해주엇다.송이의
파우치엔 없는게 없엇다.아마 약은 여드름을 짜고나서 바르려고 들고다닌거겟지만.


눈가의 광대뼈가 꺼져들기 시작하는 지점이엿다.주완이에게도 비슷한곳에 흉터가 잇엇다.
수미와는 다른쪽 눈이엿지만 흰선이 남아잇엇다.주완이도 누구에게 맞앗던걸까.일방적으
로 맞은걸까 다른누구를 때리려다 그랫던걸까.수미의 저상처도 그런 흰선으로 잘아물까.
그렇게 가늘고 희미하게 아물기전에 또 다치지 않을수잇을까.




내가 너무오래 수미를 쳐다봣는지 수미가 고개를 돌렷다.고개를 저쪽으로 젖히자 수미의
교복칼라가 눈에들어왓다.그다지 깨끗한 상태가 아니엿다.우리엄마가 봣더라면 난리를치
며 세제를풀어 담가놓을만한 상태엿기에 나도 고개를 돌렷다.해결할 능력이없는 문제라
고 외면한채 이어폰을 꺼버렷다.

민웅이는 내내한마디도 하지않앗기 때문에 아무도 민웅이가 그날오후에 저지를일을 예측
하지 못햇다.

수미네집앞에서 민웅이가 몇시간동안 기다리고잇엇는지는 모르겟다.그다지 멋지지않은
디테일은 뻬놓고말하는게 민웅이니까.수미를 기다린건 아니엿다.수미네 삼촌을 기다렷다.


수미네 삼촌이 백미터쯤 밖에서 걸어오고 잇을 때 민웅이는 천천히 수미네 삼촌트럭으로
다가가 주머니칼로 타이어를 긋기시작햇다.수미네 삼촌은 처음엔 무슨일이 벌어지고잇는
지 깨닫지 못햇던것 같다.발밑만보고 걸엇을테고 멀리누군가 쭈그리고 앉은것도 설마 자
기트럭인가 싶엇을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익히 알려진 분노제어 불가능 상태가되여 뛰기시작햇을 때 민웅이는 네
개의 타이어에 볼일을 다보고 칼을 접어넣으며 수미네 삼촌을 돌아보앗다.삼십미터쯤 남
겨두고 수미네 삼촌은 민웅이의 얼굴을 알아보앗고 그것이 전날 수미의 눈가에 생긴상처
와 관련된 복수임을 깨달앗으며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민웅이네 사촌형들을 떠올렷을것
이다.



수미네 삼촌과 민웅이네 사촌형들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않앗는데 수미네 삼촌에겐 적이
많은 반면 민웅이네 형들은 동네젊은이들의 중심이엿다.형들은 쾌활하고 의지잇으며 때
론 창의적이기까지 하고 자주잇는 일은 아니엿지만 응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몸을 사리
지 않앗다.무법의 세계에서 태여날수잇는 가장 바람직한 프로타고니스트들이엿다.



민웅이를 건드렷다간 어떤일들이 따라올지 달려오던 수미네 삼촌의 머릿속이 바빳을것
이다.이내 수미네 삼촌은 속도를 늦추고 민웅이가 걷다시피 천천히 도발적으로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만 보앗다.


나는 민웅이의 물흐르는듯한 무용담을 나중에듣고 수미네 삼촌은 사실 분노를 잘 제어할
수 잇는게 아닐까 생각햇다.정말 분노를 조절할줄 모른다면 그때 민웅이를 공격햇어야햇
.초래된 결과를 가늠할수 잇다면 그래서 상대를 골라 때린다면 광기가아닌 비겁함만이
관여햇을뿐이다.


수미는 그이야기를 나보다 더늦게 들엇고 수미네 삼촌은 한마디도 하지않앗을테지만 다
음날아침 트럭바퀴꼴을 보고 바로 민웅이를 떠올렷을것이다.

그래서 수미는 야자를 그만두엇다.돌아오는 버스에 다시 맴버들이 전부차게 되엿다.우리
는 잠시 기뻣던것같다.



0021.MPEG


도서관에서 찾아낸 그날신문의 날씨부분 클로즈업.

19991125일 목요일.

전국이 흐리곤 중부지방과 전라남북도 지방에 오전한때 비또는눈이 온후 점차개겟다.
원 영동지방과 서해안지방은 흐리고 한때 눈또는 비가 오는곳이 잇겟다.바람이 다소강하
게 불겟다.

아침 최저기온은 2도에서 9도사이.

낮 최고기온은 4도에서 15도사이.


ㅡㅡ



바람 때문에 우산을써도 다맞을 수밖에 없는 비엿다.나는 수미가 늘쓰던 청록색 체크무
늬 우산이 과수원으로 움직이는걸 상상한다.손잡이부분은 두꺼운 나무고 칙칙하게 바랜
데다 살이 조금씩휜 우산이엿다.무겁고 낡은 우산이엿기 때문에 나는 몇번인가 수미에게
우산을 선물할까말까 망설엿엇다.




결국 선물하지않은 것은 그게꼭 네우산이 보기싫어로 여겨질까봐서엿다.그렇게까지 고
민하지않고 그냥 사줫으면 됏을텐데.수미는 어쩌면 그날 그우산을 쓰지않앗을수도 잇다.
어차피 날리는 비엿다.


아마 형들중 한명이 민웅이가잇는 창고를 가르쳐주엇을것이다.민웅이는 형들의 유쾌함
을 피해 그곳에 잇지않앗을까.이전까지 그레파스로 그린 그림처럼 단순하고 건강하던 민
웅이의 머릿속엔 그계절부터 가는선들이 그어지고 여러단계의 농담이 생기고 그림자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햇다.



그 목요일에 일ㅇㅓ난일은 민웅이 머릿속의 크레파스 월드가 무너지면서 벌어진 일이엿
다고 생각한다.

수미가 기억하는 것은 민웅이가 계절에 맞지않게 반바지를 입고잇엇다는 것,습기때문인
지 창고에서 사과술냄새가 낫다는 것,민웅이가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웟을 손바닥으로 수
미의 눈가를 쓰다듬엇고 손가락이 그대로 푸슬푸슬한 머리카락을 파고들엇고 수미는 민
웅이가 입은 후드에서 땀내와 소금기를 느꼇지만 그게 싫지않앗고..어떻게든 두사람사이
의 일을 아름답게 상상하려 해보아도 쉽지않다.

두사람은 햇다.

함께 잠들지 않앗으므로 잔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지 않앗으므로 사랑을 나눈 것이 아
니다.그냥햇ㄷㅏ.

어쩌면 하다말앗다 에 가까울 짧고허망한 행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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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차 (♡.252.♡.103) - 2023/12/15 20:36:09

그랬네요. ㅋㅋ 그냥
참 어릴 때는 나름 진지하게 살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 제 기준에서는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2/16 06:01:09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십년씩 바뀔때마다 사람도 바뀌고 또 바뀌여야대요.
이제는 어느정도 확고한 신념이 생길나이죠.40대에 들어서면 또 틀려요.

그렇게 인생의 진미를 알아가는거죠.

단차 (♡.252.♡.103) - 2023/12/16 07:17:56

저는 지금의 제가 10년전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고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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