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아무도 남지 않았다

단밤이 | 2023.12.23 13:52:55 댓글: 0 조회: 23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3212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비밀의 화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메리 레녹스가 고모부와 함께 살기 위해 미슬스웨이트 장원에 가게 되었을 때만 해도, 보는 사람마다 메리처럼 보기 싫은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말 그대로였다. 얼굴은 야위었고, 체구는 작고, 연한 머리카락은 숱이 별로 없고, 표정은 늘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노란 색이고 인도에서 태어나 얼굴빛도 누르께했다. 게다가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았다. 메리의 아빠는 영국 총독부관리로 늘 바빴으며, 본인도 병을 달고 살았다. 메리의 엄마는 파티에 가서 유쾌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메리의 엄마는 딸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리가 태어나자 젖먹이 딸을 아야(과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떄 영국인 집에서 일하던 인도인 유모나 하인-옮긴이)에게 맡겨버렸다. 아야는 멤 사히브(인도인들이 영국인 여자 주인을 부르는 말-옮긴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갓난아기를 최대한 멤 사히브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메리는 허약하고, 떼쟁이고, 못생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냈고, 여전히 몸이 허약하고, 떼쟁이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게 된 후로도 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지냈다. 메리는 아야와 인도인 하인들의 거무스레한 얼굴밖에 본 기억이 없었다. 아야와 하인들은 언제나 메리에게 복종했고, 매사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했다. 메리가 떼를 쓰느라 울어대면, 심기가 상한 멤 사히브가 화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리가 여섯 살이 되었을 즈음 이 아이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 세상 최고의 못 말리는 독불장군이 되었다. 메리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라고 고용한 젊은 영국인 가정교사ㅎ는 이 아이에게 어찌나 질렸는지 3개월 만에 떠났다. 새로 고용한 가정교사들 역시 먼저 있던 가정교사가 근무한 기간만큼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기 일쑤였다. 그러니 메리가 책을 읽는 법을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았다면, 평생 글자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숨 막히게 더운 여름날 아침, 메리는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그런데 침대 옆에서 시중을 들려고 서 있는 하인이 자기 아야가 아니라 더 짜증이 났다.
"왜 네가 왔어?" 메리가 못 보던 여자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 있지 마. 어서 아야나 불러와."
그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만, 더듬더듬 아야가 올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에 메리가 불같이 화를 내며 손으로 때리고 발로 마구 찼지만, 하인은 더욱 겁에 질려 아야는 아가씨에게 도저히 올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날 아침 집안 분위기는 어딘지 수상쩍었다. 평소의 일과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현지 하인들 가운데 몇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메리가 본 하인들은 핏기가 없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살금살금 돌아다니거나 종종걸음을 쳤다. 하지만 아무도 메리에게 사정을 알려주지 않았고, 유모도 끝내 오지 않았다. 오전 내내 메리는 정말 홀로 남겨졌다. 마침내 메리는 어슬렁어슬렁 정원으로 나가서, 베란다 근처 나무 아래서 혼자 놀기 시작했다. 꽃으로 화단을 만들며 놀았다. 커다란 주홍색 히비스커스 꽃들을 작은 흙무더기에 꽃으며 놀다가 점점 더 부아가 치밀어 올라, 사이디라는 이름의 아야가 돌아오면 어떤 욕을 퍼부어줄지 혼자 중얼중얼했다.
"돼지! 돼지! 돼지들의 딸!" 메리가 말했다. 원주민을 돼지라고 부르는 게 가장 지독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메리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렇게 욕을 해주어야겠다고 곱씹고 있는데, 엄마가 누군가와 함께 베란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함께 있는 젊은 금발 머리 남자였다. 두 사람은 그곳에 서서 이상하게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소곤거렸다. 메리는 소년이라고 해도 될 만한, 예쁘장한 젊은 남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영국에서 갓 부임한, 매우 젊은 장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자기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가 평소에 멤 사히브라고 부르는 엄마는 키가 무척 날씬하고 예뻤으며 항상 멋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불거리는 머리칼은 비단결 같았고, 작은 코는 항상 주위를 깔보듯 섬세하게 솟아 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두 눈은 항상 방긋 웃었다. 엄마의 드레스는 얇고 하늘거려서, 메리는 그 옷이 "레이스로 가득하다" 라고 말하곤 했다. 그날 아침 엄마의 드레스는 유독 레이스가 더 풍성해 보였지만, 엄마의 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휘둥그레 뜬 두 눈은 겁에 질렸고, 청년 장교의 잘생긴 얼굴을 간청하듯 올려다보고있었다.
"그렇게 상황이 나빠요? 오, 정말로요?"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끔찍해요." 젊은 장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끔찍해요, 레녹스 부인. 두 주 전에 산 쪽으로 가셨어야 했어요."
멤 사히브가 양손을 맞잡고 비틀었다.
"오, 그럴 줄 알았어!" 엄마가 한탄했다. "그 바보 같은 저녁 연회에 가려고 남았지 뭐예요. 어쩌자고 어리석게 굴었담!"
바로 그때 하인들 숙소가 있는 곳에서 통곡 소리가 터져나오자 메리의 엄마는 젊은 장교의 팔을 움켜쥐었고, 메리도 그 자리에 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벌 떨었다. 울음소리는 점점 거세지고 비통해졌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일까요?" 레녹스 부인이 놀라 말했다.
"누가 죽었군요." 어린 장교가 대답했다. "댁의 하인들사이에서 발병했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잖아요."
"난 몰랐어요!" 멤 사히브가 소리쳤다. "같이 가봐요! 어서 오세요!" 그러더니 돌아서서 황급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무시무시한 변고들이 일어났고, 메리에게도 그 날 아침의 수상쩍은 분위기를 누군가 설명해주었다. 콜레라가 걷잡을 수 없이 창궐했고,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어나갔다. 아야는 전날 밤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아야가 결국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오두막의 하인들이 통곡을 한 것이다. 다음 날이 밝기 전에 하인 셋이 더 죽었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하인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사방에서 공포가 기승을 부렸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죽어갔다.
콜레라가 시작된 지 이틀째 되는 날 모두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메리는 자기 방에서 숨은 듯 지냈고, 모두에게 잊히고 말았다. 아무도 메리를 떠올리지 않았고, 찾지 않았다. 그러더니 메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메리는 울다가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아프다는 것밖에 몰랐는데, 이따금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한번은 식당 밖으로 살며시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대신 식탁 위에 먹다 남은 음식이 있고, 음식을 먹던 사람들의 무슨 이유로 느닷없이 일어섰는지 의자와 접시들이 아무렇게나 뒤로 밀려 있었다. 아이는 과일과 비스킷을 조금 먹었다. 그러다가 목이 말라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와인 잔의 와인을 마셨다. 와인이 달콤해서 메리는 그 술이 얼마나 독한지 깨닫지 못했다. 와인을 마시자마자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웠다. 그래서 메리는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주위 오두막에서 들리는 비명과 사람들이 다급하게 뛰어가는 발소리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와인 때문에 잠이 쏟아진 메리는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메리가 깊이 잠든 몇 시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이는 울음소리와 사람들이 뭔가를 집으로 들여오고 밖으로 내가는 소리에도 뒤척이지 않고 푹 잤다.
마침내 잠에서 깼지만, 메리는 누워 벽만 바라보았다. 집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집이 이렇게 조용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메리는 모두 콜레라에서 회복되어 소동이 다 끝난 건지 궁금했다. 아야가 죽었으니, 이제 누가 자신을 돌봐줄지도 궁금했다. 아마 새 아야가 올 테고, 새 아야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 터였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은 이제 지겨웠다. 메리는 아야가 죽었다는데도 울지 않았다. 아이는 마음속에 사랑이 많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정을 느끼지 못했다. 콜레라 때문에 집안이 시끄럽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울어서, 몹시 겁이 났다. 게다가 아무도 메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서 화도 단단히 났다. 사람들은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콜레라에 걸리자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모두 다시 건강해지면 누군가는 기어갛고 보살펴주러 올 것이라고 메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서 기다리는데, 집이 점점 더 조용해졌다. 거친 깔개 위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작은 뱀 한 마리가 미끄러지듯 기어가며 보석 같은 눈으로 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독이 없는 작은 놈이라 메리를 해치지 않을 테고, 얼른 방에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뱀이 방문 틈으로 스르르 나갔다.
"너무 조용하고 이상해." 메리가 말했다. "이 집에 나랑 뱀 말고 아무도 없는 것 같잖아."
바로 다음 순간 마당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베란다에서 소리가 났다. 남자들 발소리였다. 그 남자들은 집으로 들어와 작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아무도 그들을 맞이하러 나가거나 누군지 묻지 않았다. 그들이 알아서 문을 열고 방방마다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적막할 수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그 아리따운 부인이! 아이도 있었을 텐데.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어. 아무도 그 애를 본 사람은 없지만."
잠시 후 그 사람들이 메리의 방문을 열었을 때, 아이는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메리는 못생기고 화가 잔뜩 나 보였다. 슬슬 배가 고팠고 어처구니없이 방치되었다는 생각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방에 제일 먼저 들어온 남자는 예전에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덩치 큰 장교였다. 그 남자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는데, 메리를 보자마자 너무 놀라서 뒤로 펄쩍 물러날 뻔했다.
"바니!" 그 남자가 소리쳤다. "여기 아이가 있어! 혼자 있다고! 이런 집에! 하느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대체 이 아이는 누구지?"
"나는 메리 레녹스에요." 아이가 몸을 곧게 펴며 말했다. 메리는 아버지의 집을 '이런 집' 이라고 부르다니 무척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려 있는 동안 나는 잠을 잤어요. 그리고 방금 일어났어요. 왜 아무도 오지 않는거죠?"
"아무도 못 봤다는 바로 그 아이잖아!" 그 남자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이 아이를 까맣게 잊었어!"
"왜 나를 잊었어요?" 메리가 발을 쿵쿵 구르며 말했다. " 왜 아무도 오지 않아요?"
바니라고 불린 젊은 남자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메리를 보았다. 메리는 바니가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찡그리는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가여운 아이!" 바니가 말했다. "네게 올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메리는 아빠도 엄마도 떠났다는 사실을, 그날 밤 부모는 숨을 거두어 사람들이 시신을 내갔고, 몇 안 되는 살아남은 하인들은 아무도 집에 아가씨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최대한 그 집에서 도망을 쳤다는 사실을, 이렇게 기묘하고 갑작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집 안이 그토록 고요했던 것이다. 정말로 그 집에는 메리와 뱀 한 마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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