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황무지를 건너서

단밤이 | 2023.12.26 13:26:01 댓글: 0 조회: 232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4214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황무지를 건너서
메리는 한참을 잤다. 눈을 떠보니, 지나온 어느 기차역에서 인지 메들록 부인이 사둔 점심 바구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닭고기와 차갑게 식한 구운 쇠고기, 버터 바른 빵에 뜨거운 차를 곁들여 먹었다. 비는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쏟아지는 듯했다. 그래서 기차역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비에 젖어 번들번들한 비옷을 입고 있었다. 차장이 객차 램프에 불을 밝히자 메들록 부인은 한결 기분 좋게 차를 마시며 닭고기와 쇠고기를 먹었다. 메들록 부인은 사온 음식을 실컷 먹고 이내 잠이 들었다. 메리는 앉아서 메들록 부인을 지켜보았다. 부인이 쓴 섬세한 보닛이 한쪽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객차 한구석에서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메리가 다시 깼을 때는 이미 주위가 꽤 어둑어둑했다. 기차가 어느 역에서 서자 메들록 부인이 메리를 흔들어 깨웠다.
"실컷 잤군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이제 눈을 뜰 때예요! 스웨이트 역에 도착했어요. 지금부터 마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답니다."
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잠을 깨려고 애쓰는 동안, 메들록 부인이 짐 꾸러미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메리는 부인에게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항상 원주민 하인들이 물건을 주워주거나 들어서 옮겨주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다른 사람에게 시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역은 자그마했고, 그곳에서 내린 승객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역장은 투박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말투로 메들록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억약이 몹시 독특했는데, 메리는 나중에야 요크셔 말투가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다녀오셨소?" 역장이 말했다. "아이구, 그 애를 데리구 오셨구려."
"네, 그 애라오." 메들록 부인도 요크셔 말투로 대답하며 메리를 향해 어깨 너머로 고갯짓을 했다. "부인은 어떠시오?"
"이제 괜찮소. 역 밖에 마차가 기다리구 있다오."
작은 승강장 앞에 사륜마차가 서 있었다. 메리가 보기에 마차는 근사했고, 마차에 오르도록 도와준 마부도 근사했다. 마부의 기다란 비옷과 모자에 씌운 방수천은 건장한 역장을 포함해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번들거렸고,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마부가 문을 닫고 상자를 싣고 마침내 출발했을 때, 메리는 포근하게 쿠션을 댄 마차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들고 싶지 않았다. 메들록 부인이 말한 이상한 저택을 향해 가는 그 길에서 어떤 풍경을 볼지 호기심이 일어, 아이는 앉은 자리에서 창밖을 보았다. 메리는 겁쟁이도 아니고, 정확히 말해서 겁을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백 개나 되는 방들을 거의 다 꼭 닫아둔 저택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저택이 황무지 끄트머리에 서 있다지 않는가.
"황무지가 뭐야?" 메리가 느닷없이 메들록 부인에게 물었다.
"한 10분 정도 창밖을 내다보자면 보일 거예요."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미슬 황무지를 8킬로미터쯤 달리면 미슬 스웨이트에 도착해요. 지금은 밖이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을거예요. 그래도 보이는 풍경도 있죠."
메리는 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컴컴한 마차 한구석에 앉아 창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기다렸다. 마차에 달린 등불이 마차 근처를 비추어, 마차가 지나가는 길의 풍경이 언뜻어뜻 보였다. 역을 뒤로하고 달리던 마차가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서자, 하얗게 칠한 시골집들과 선술집의 불빛이 보였다. 잠시 후 마차는 교회와 목사관을 지나쳤다. 그리고 장난감과 사탕 같은 잡화를 팔려고 펼쳐둔 작은 시골집인지 가게 진열대인지 모를 곳도 지나쳤다. 그러다가 그들을 태운 마차가 큰길로 접어들자 생울타리와 나무들이 보였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별 차이가 없는 듯한 풍경이 이어졌다. 적어도 그 시간이 메리에게는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마침내 말들이 언덕길을 오르는지 점점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바깥에는 생울타리도 나무도 더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메리에게는 마차 양쪽으로 모든 것을 뒤덮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메리가 앞으로 몸을 내밀어 얼굴을 창문에 갖다 대는 순간 마차가 크게 덜컹했다.
"아이쿠! 황무지로 확실히 들어왔나 봐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마차 등불이 울퉁불퉁한 길 위로 노란 불빛을 비췄다. 그 길은 마차 앞쪽과 사방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을 거대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려는 덤불과 키 작은 식물들 사이로 나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일더니 거칠고 나지막하고 단조롭게 휙휙 소리를 냈다.
"이건, 이건 바다가 아니야. 그렇지?" 메리가 메들록 부인을 보며 말했다.
"네, 바다가 아니에요."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들판도 산도 아니에요. 히스와 가시금작화와 양골담초밖에 자라지 못하고 야생 조랑말과 양 떼밖에 살지 못하는, 거친 땅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곳이죠."
"황무지는 바다와 비슷할 것 같아. 물이 가득하다면." 메리가 말했다. "지금 꼭 바다에 있는 것처럼 소리가 나잖아."
"덤불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랍니다."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저는 이곳이 지겹기 짝이 없는 야생의 땅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 황무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특히 히스 꽃이 만발할 때는 말이죠."
마차는 어둠을 뚫고 계속 달렸다. 어느새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마차 옆으로 서둘러 지나가며 휘파람을 부는 듯 묘한 소리를 냈다. 길은 오르락내리락 이어졌다. 마차는 굉음을 내며 빠르게 흐르는 물 위로 놓인 작은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넜다. 메리는 이 마차 여행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넓고 황량한 황무지는 광막한 검은 바다고, 마차는 그 가운데로 좁은 띠처럼 난 땅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황무지가 싫어." 메리가 혼잣말을 했다. "황무지가 싫어." 그리고 얇은 입술을 더 꽉 다물었다.
말들이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메리는 처음으로 불빛을 보았다. 동시에 메들록 부인도 그 불빛을 보았다. 그리고 안도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반짝거리는 불빛을 보니 마음이 놓이네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관리인 집 창문 불빛이에요. 이제 조금 후면 따듯한 차를 마실 수 있겠네요."
메들록 부인이 '조금 후면' 이라고 말한 건, 마차가 장원의 정문을 통과한 후로도 여전히 3킬로미터 넘게 달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진입로 양쪽의 나뭇가지들이 머리 위에서 맞닿을 듯 뻗어 있었기에) 마차가 길고 컴컴한 아치 지붕 아래로 달리는 것 같았다.
마차는 아치 지붕에서 빠져나와 탁 트인 공간으로 들어가더니, 엄청나게 길지만 나직한 건물 앞에 멈춰싿. 그 건물은 돌을 깔아둔 뜰을 에워싸듯 마구 뻗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메리는 저택에 불 켜진 창문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차에서 내려 보니 위층 구석 방 하나를 침침한 불빛이 밝히고 있었다.
저택 문은 엄청나게 컸는데, 신기한 모양의 육중한 떡갈나무 판들에 커다란 장식용 쇠못이 박혀 있고 커다란 쇠막대들로 고정되어 있었다. 문을 열자 으리으리한 현관홀이 나왔다. 그곳이 어찌나 어두침침한지, 메리는 벽에 걸린 여러 초상화 속 얼굴과 갑옷 기사들 쪽으로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았다. 돌바닥에 서 있자니 메리는 자그마하고 기묘하게 생긴 검은 모형처럼 보였다. 메리도 자신이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만큼 보잘것없고 외롭고 기묘한 아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문을 열어준 하인 근처에 단정하고 깡마른 노인이 서 있었다.
"아가씨를 방으로 모셔가게." 그 노인이 탁한 음성으로 말했다. "주인님은 아가씨를 만나지 않으실 거라네. 주인님은 아침에 런던으로 가실 예정이지."
"잘 알겠습니다, 피처 씨."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제게 뭘 기대하시는지 잘 압니다. 그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자네에게 기대하는 것은, 메들록 부인." 피처 씨가 말했다. "주인님이 방해받지 않으시도록 조치하는 거라네. 그리고 보고 싶어하시지 않는 걸 눈에 띄지 않도록 잘 단속하는 것이고."
잠시 후 메리 레녹스는 부인을 따라 넓은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올라 기다란 복도를 걷고, 또 짧은 계단을 오르고, 다시 복도를 걷다가 또 다른 복도로 접어들고 나서야 마침내 메들록 부인이 벽에 달린 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벽난로에는 불이 타올랐고 탁자에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메들록 부인이 느닷없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 마침내 도착했네요! 앞으로 이 방과 바로 옆방이 아가씨가 지낼 곳이에요. 그곳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절대 잊지 말아요!"
이렇게 해서 메리 아가씨가 미슬스웨이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메리는 평생 이렇게 심술궂은 반발심이 든 적이 처음이었다.
​​
추천 (0) 선물 (0명)
IP: ♡.252.♡.103
23,512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나단비
2024-02-04
2
119
뉘썬2뉘썬2
2024-02-04
2
252
뉘썬2뉘썬2
2024-02-04
2
221
춘스춘스밤밤춘스춘스밤밤
2024-01-31
0
255
춘스춘스밤밤춘스춘스밤밤
2024-01-31
0
142
나단비
2024-02-03
3
536
나단비
2024-02-03
2
144
나단비
2024-02-03
2
102
나단비
2024-02-02
2
103
나단비
2024-02-02
2
136
나단비
2024-02-02
2
112
나단비
2024-02-02
2
131
나단비
2024-02-02
2
113
나단비
2024-02-01
2
117
나단비
2024-02-01
2
131
나단비
2024-02-01
2
137
나단비
2024-02-01
2
146
나단비
2024-02-01
2
100
나단비
2024-01-31
2
118
나단비
2024-01-31
2
119
나단비
2024-01-31
2
107
나단비
2024-01-31
1
108
나단비
2024-01-30
1
130
나단비
2024-01-30
1
198
나단비
2024-01-30
1
125
나단비
2024-01-30
1
107
나단비
2024-01-30
1
112
나단비
2024-01-29
1
124
나단비
2024-01-29
1
90
나단비
2024-01-29
1
104
모이자 모바일